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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씨 이야기

이소형 | 조직부장
김혜정씨 이야기
이 소 형 | 조직부장

총무부장 김혜정씨
오전 11시, 눈을 떴다. 그러나 여느 때와 같이 서둘러 출근준비를 하지 않고 기절하듯 다시 눈을 감는다. 어제 일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온다. 다음날 잡혀있는 집회를 점검했던 어젯밤 회의시간, 그녀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실을 나와 버렸다. "저는 활동을 그만 두겠습니다"라는 말을 던지고는.
김혜정. 그녀의 이름이다. 올해 29살인 혜정씨는 어느 사회단체의 총무부장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운동단체에 상근활동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운동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한 삶은 자신과 무엇을 약속하는 것인지에 대해. 그러나 그녀는 보다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살고자하는 자신의 열정을 믿었고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과 동지들의 진실성을 믿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상근활동을 결심할 수 있었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맡은 일은 회의록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출근 첫날 팩스 보내기와 커피 잔을 씻었던 것이 정확히 먼저 한 일이지만 말이다. 사무실에서 유일한 20대였고 또 여성인 혜정씨는 얼마 후 주위로부터 정말로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회의록 정리를 비롯해 기자회견 참가자 점검, 회견문과 공문을 복사해 챙기는 일, 팩스를 보내고 수리하는 일, 이면지와 쌓여있는 우편물과 신문을 챙기는 일, 커피 잔을 씻고 점심을 시켜먹을 음식점 전화번호를 외우는 일 등이 그녀의 일이다. 그녀는 단 한번도 그것들을 거른 적이 없었고 그 성실함을 인정받아 한 달만에 총무부장이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그녀의 담당업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혜정씨보다 몇 년이나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한 훌륭한 남성 활동가들이 이면지를 어디에 두는지, 팩스는 어떻게 보내는지, 커피 잔은 어떻게 씻는 건지, 회의록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탓이다. 얼마 전에 새로 활동을 시작한 27세의 한 여성 동지는 어디서 배웠는지 신기하게도 능숙하게 그 일들을 해내고 있는데 말이다. 김혜정씨를 지치게 했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문제제기 할 수 있을까?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기엔 지난 4년은 너무 길었고, 그녀의 일처리는 너무나 완벽하기만 했는데.
얼마 전 김혜정씨가 결합하고 있었던 외부회의 중 @@연대회의가 주관하는 회의에 함께 일하는 남성 활동가가 대신 결합한 적이 있었다. 임박한 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조직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혜정씨는 1년 동안 그 분야를 담당해온 자신보다 그가 더 많은 정보력과 발언권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지난 점거농성을 그가 담당하게 되고 나서부터 여기저기 인터뷰와 기고글이 그에게 제안되었다. 그가 너무 바빠 미처 소화하지 못할 때면 김혜정씨가 일들을 도와주어야(?)했다. 그녀는 이렇듯 정말 '무능한' 활동가였던 것이다.
김혜정씨가 분명히 알고 있는 그 '문제'는 어린 나이와 여성이라는 자신의 조건으로 인한 '차별'이었다. 그녀는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원래 '운동'이란 힘겨움을 이겨내는 자기단련의 과정이 아닌가. 김혜정씨의 자기성장을 위해서는 '성차별'의 철폐가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제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해야 할까?

여성국장 김혜정씨.
마흔 한 살의 김혜정씨는 3월 8일이면 신문이나 단체잡지에 종종 등장하는 어느 대공장 노동조합의 여성국장이다. 덕분에 결혼당시에는 숨겼던 그녀의 정체는 이미 시댁에서 '운동권 며느리'로 밝혀졌고 이제는 모두들 그녀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오늘은 작은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소풍가는 날이다. 같은 노조에서 조직1국장을 맡고 있는 남편은 파업날짜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함께 하는 큰 공굴리기 대회'에 출전하기로 아이와 굳게 약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일별 아이보기당번의 남편순서가 마침 오늘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제의 밤샘회의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새벽부터 김밥을 싸느라 분주하다.
이번 파업은 각종언론에서도 정부와 사측의 반응을 일일이 보도하며 관련한 쟁점이 부각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그와 관련해서 여성국장인 김혜정씨의 공이 컸다. 그녀는 사내 여성정규직을 대상으로 현재의 특수고용 여성노동자의 권리문제, 또한 여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확산이 현재의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전략임을 교육 선전하였고, 힘겨운 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하는 여성들의 버거운 현실을 호소하며 투쟁을 조직했다. 결국 6개월 동안의 혜정씨의 노력은 유래 없는 "여성노동권 쟁취 결의대회"로 이어질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이번 파업투쟁에 비정규직관련 요구안이 쟁점화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A지역본부의 파업출정식에는 "비정규직 여성노조 준비위의 발족"이 계획될 수 있었다. 오늘은 마침 아이소풍을 남편에게 맡길 수 있어, 김혜정씨는 마지막 점검을 하러 A지역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 지도부에게는 이번 파업투쟁전술과 관련하여 A지역에서 강력하게 문제제기가 접수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비상지역간담회소집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내용인즉슨, 여성비정규직노조의 발족과 관련하여 A지역의 특수한 지역 조건상 받아 안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중앙사무처는 회의 소집해 긴급히 A지역에 내려갈 사람들을 결정했다. 당연하게도 조직국이 가야한다는 것, 그 중에서도 이번 파업투쟁전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하고 있었던 조직1국장이 반드시 가야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김혜정씨는 "조직1국장은 아이소풍에 가야하기 때문에 갈수 없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였지만, A지역 여성조합원 조직을 자신이 주도해왔고 오늘 마침 내려갈 계획이 있으니, 자신이 가서 논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설득력은 부족했던 모양이다. 애초부터 이번 파업투쟁에서 비정규직여성노조의 발족은 '조직적 성과' 이기보다는 '여성국 사업의 일환'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에 있을 위원장 선거에 중요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A지역과 중앙과 얽혀있는 '이 민감한 문제'는 정식적인 조직라인에서 풀려야 한다는 것이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혜정씨와는 다르게 남편인 조직1국장님은 비장한 자세로 고쳐 앉아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내려가 봐야겠네요."
결국, 오늘 김혜정씨는 A지역 방문대신 1시간 여에 걸친 A지역본부 여성국장과의 전화통화로 대신한 체 소풍장소로 부랴부랴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굳건한 책임감을 원망해야 하는가? 그동안 A지역 조직화과정에서 지역본부 내부의 미묘한 갈등을 세밀하게 간취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 하는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린 여성관련 사업이 내부의 이견과 부딪칠 때, 정세의 엄중함과 상황의 급박함, 그리고 이 노동조합의 자랑스러운 전투적 명성은 그녀로 하여금 '그래, 여기까지만'이라는 상한선의 범위를 판단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고 정말로 달라야했다. 김혜정씨는 그동안 여성국장으로서 작업장내의 성차별 근절만을 주된 사업과제로 삼아왔으나, 작년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서 주목받게 된 여성특수고용직의 기형적 증가라는 현실을 보다 정세적인 투쟁으로 만들어 내야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그동안 여성국사업의 부차화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 이상으로 현재의 관성화 된 노조의 투쟁요구안을 정치적으로 급진화 할 수 있는 혁신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그녀는 자신했다. 김혜정 국장의 이러한 생각은 기대보다 많은 성과를 나타내었고 그녀의 구상은 여성조합원이 특히 많은 A지역을 중심으로 실현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나, 김혜정씨는 이번 파업투쟁을 앞두고 마치 20년 전 처음으로 거리에 나와 수많은 파업대오를 바라보며 뜨거운 가슴을 주체 못했던 그날의 기분으로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노력이 부족한 탓인가. 오늘의 회의결과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빠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와앙~ 울음을 터트린 작은아이를 추켜 안았을 때, 그녀는 갑자기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두 가지의 진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는 여성국 사업은 급박한 상황에서 얼마든지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단지 하나의 사업일 뿐이라는 것, 또 하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인정한다 해도 자신은 아이의 소풍날에는 조직1국장처럼 (자신의 '여성국사업'만을 위해서라도) A지역에 내려갈 수는 없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늘 있는 일이었고 그럴 때면 그녀는 언제나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녀의 이러한 배려를 가슴 깊이 감사해하였으며 '투쟁의 중심인 조직국장'으로써의 임무와 '자상하고 성실한 아빠'의 임무 모두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으로 그녀에게 답례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혜정씨는 저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멸치다시를 우려내고, 파를 다듬고, 두부를 썰고. 그녀는 지금 정말로 깊이 생각하고 있다. 남한사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 타겟인 여성노동자의 불안정한 삶에 맞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방안과 끓고 있는 찌개에 두부를 언제쯤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차이에 대해서. 그 차이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무엇인지에 대해서.

독신주의자(?) 김혜정씨.
김혜정씨는 37세의 어느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그 보기 힘들다는 여성 조직국장이다. 그러나 그녀는 '비정상적인 여성'이었다. 노조위원장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너무 성질이 독해서 이혼까지 당(?)했다. 쓰린 속에 담배를 빼어 물고서야 그녀는 어제 자신이 엉엉 울다가 잠이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는 노조사무실 '3인방'이 참여하는 회의와 이어지는 술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서른일곱인데도 혼자인 그녀의 외로움과 고독을 걱정해주며 요즘 잘 못 지내고 있다는 옛 남편 소식을 전해주었을 뿐이었는데.
김혜정씨는 생활력이 강한 활동가였다. 또한 빠른 정세판단과 동지를 배려할 줄 아는 논의력, 사업추진력을 갖춘 그녀는 그 누가 봐도 '훌륭한 활동가'였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소위 '가정이 있는 여자'의 티를 한번도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 흔한 명절과 제사 등, 시댁과 친정을 오고가는 다양한 가족사에 대해서도 배려를 요구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 빈틈없이 일을 처리했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빈자리가 지역간담회 및 출장을 말하는지, 아니면 시아버지의 제사를 말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였다. 이에 사람들은 그녀가 시댁에 소홀하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혼사실을 시댁에 알렸을 때, 늙으신 시어머니는 말귀를 잘 못 알아 들으셨다. 어떻게 우리 착하고 성실한 며느리의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나오느냐 라며. 그런 그녀는 지난 7년 동안 더욱더 부지런해졌고 또 더욱 깡말라갔다. 그녀의 남편은 모두들 알아주는 이론가였다. 논문작업에 골몰해있는 남편은 연구주제가 너무 심오한 나머지 공과금이란 게 무엇인지, 집세와 명절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시사철 맛깔스런 김치가 어떻게 늘 냉장고에 있게 되는지 따위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김혜정씨의 노동조합의 활동비는 한달 전기·수도세를 내고도 그의 밥값과 차비까지는 충당할 수는 있었기 때문에, 그는 별 잡념 없이 연구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과로로 쓰러져 임신3개월이 된 아기가 유산되었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성실함과 훌륭한 활동력이, 이혼사실이 알려지고 나자 "독하고 고집스러운 독신여성"의 특징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랑이 너무 일찍 식었다, 심지어는 새로운 애인이 생긴 것 같다,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참을성이 없는 그녀는 늘 조용하고 소심한 남편에게 소리를 질러 그를 언제나 괴롭혔다. 아기가 유산된 것도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원래 김혜정씨는 독신주의자였는데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하면서 적응을 잘 못했다 등등의 각종 추측들과 함께...
김혜정씨는 훌륭한 활동가이자 좋은 술친구이고 또한 어려울 때 기댈 수도 있는 넉넉한 아줌마이긴 했지만, '원만한 가정생활'을 해내지 못한 위험한 여자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그녀의 책임도 있다고 한다. 남편에게 화가 났던 일들, 아이를 낳고 싶지만 너무 버거울 것 같다는 고민, 더욱 많은 활동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없다는 푸념 등, 공적인 회의에서 '나의 결혼생활'이라는 논의안건을 제출하지만 않았지 그녀는 동지들에게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털어놓았던 것이다. 현재 자신의 고민을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동지들과 함께 풀어보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은 동지들에 대한 '오버된' 신뢰였던 것이다.
지배계급의 평화와 번영이 '행복한 가족'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노동자 계급의 해방세상을 향한 그 길에도 '행복한 가족'은 여전히 필요한 걸까? 노조사무실의 수많은 동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변치 않는 사랑'과 '보다 평등한 역할분담'이 존재하는 가족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 어떻게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삶의 가치일까? 김혜정씨는 오늘아침, 도저히 출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나의 생각.
이 글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의 사랑, 연애, 일과 결혼, 사회적 지위, 성욕, 가족, 이혼, 모성 그리고 아직까지 적절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그 많은 '여성문제들'을 두서 없이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문제들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또한 여성문제의 해결방안이 각각의 사건에 내포된 전제조건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이 글은 일종의 논의제안서의 성격을 띨 것이다.
그 첫 번째 글로 운동사회 내 여성 활동가들의 구체적인 일상의 사례들을 가상적으로 구성해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 활동가들의 열악한 조건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의도가 결코 아님을 먼저 확인했으면 한다. 오히려 진보적인 '활동가에게조차'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여성문제의 어떤 심각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이후 <오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에서 다루게 될 너무도 다양한 여성문제들의 그 넓이와 깊이에 비해 지금까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여성문제'란 것은 다소 협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한계적인 조건에서라도 우리가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지금 이곳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세 명의 김혜정씨들의 상황을 다시 곱씹어 본다. 문제의 근본원인은 언제나 어찌할 수 없는 무엇으로 제쳐두게 되는 것 같다. 오직 갈등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나 혹은 당시의 특수한 상황논리만이 부각되어 그에 대한 해결이 또다시 "규율을 확립하는 것" 이상으로 보다 근본적이며 풍부한 해결방안을 모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그 한걸음'이 필요한 시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과제의 단초들을 부족하나마 이곳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덧붙여 '여성의 문제'에 대한 동지들과의 지속 가능한 토론과 이에 기반을 둔 보편적인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 한 가지를 추가하고자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으레 제기되고 마는 '객관적인 관점의 결여'라는 지적은 이 글에 대한 평가에서만큼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단지 그 '객관적 관점'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반여성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입장은 언제나 그렇듯 지속 가능한 토론의 공간을 봉쇄하고 말기 때문에, 또한 그것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답안이 치열하게 준동하고 있는 그 불안정한(보다 가능성 있는) 위치를 은폐한다는 이유에서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다.
이렇듯 이 몇 장의 지면을 할애하는 우리의 노력이 그동안 활로를 찾지 못했던 여성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풍부한 쟁점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소망해본다. PSSP
주제어
여성
태그
갈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