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철도를 위해 철도노조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단체장들과의 잇따른 만남 후에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비도덕성을 개탄하며 법과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천명했다.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은 곧바로 평화적인 철도노동자 파업에 경찰력을 동원한 폭력진압을 자행함으로써 실현됐다.
“어떤 좋은 판결보다도 화해가 낮다”며 끈질긴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오던 대통령이 “주먹이 우선”인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집권초기 “비록 불법파업이라도 폭력이나 시설물 점거 등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노동자의 구속이나 손배, 가압류 등을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헌 신짝처럼 내버려졌다. 철도현장에서는 유래 없는 중징계와 수십 억에 달하는 가압류가 집행된 상태다.
수년 전부터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명목 하에 정권과 자본에 의해 광범위하게 진행된 노동자의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의 문제가 어느새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인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은 어처구니가 없다. 더구나 도덕성을 잃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표본으로 찍힌 철도노동자들은 억울함과 분노로 또는 체념으로 현장을 지키고있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혜택이라는 혜택은 다 받으면서도 강성노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익을 챙기고자 파렴치한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변질된 대형노조가 바로 철도노조인 것이다.
그러나 철도현장이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소방관들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손발이 잘려나가거나 죽는 다는 사실은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일년 내내 공식적인 휴일이 존재하지 않는 현장이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믿기나 하겠는가? 철도기관사, 차장이나 여객전무 등 승무원들은 수시로 바뀌는 근무형태에 생체리듬이 망가져 만성질병을 갖고 있으며 정년퇴직 하자마자 노후를 즐기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은 구조조정을 한다며 기존 인력의 1/3을 줄였다. 인력은 줄었으나 새로운 선로의 개통으로 철도 연장은 늘어가고 전철화 등 각종 개량사업으로 일의 양은 오히려 늘어났다. 철도현장의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강도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하고 늘 피로한 상태에서 철도가 안전하길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문에 철도노동조합은 끊임없이 인력충원을 요구했고 지난 4월 20일 정부와 정규직 인력충원을 하기로 합의했으나 이 합의는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신 대대적인 계약직 직원이 채용되어 현장의 곳곳에서 정규직의 일을 대신 하고 있다. 궤도산업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시간, 가장 적은 임금수준, 언제 죽거나 다칠 줄 모르는 불안 속에 있는 철도노동자가 과연 집단이기주의자들인가?
더구나 이번 철도파업은 임금의 문제나 근로조건 문제가 아니라 철도산업의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왜곡된 효율의 논리와 수익성에만 집착해 사회적 공공성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국가의 기간동맥인 철도마저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안전은 물론 자유로운 이동권이 심각하게 제한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철도노동자 또한 철도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순간 근로조건개선이나 고용안정 등의 문제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파업이 일어나기 불과 두 달 전인 4월 30일 정부는 철도의 구조개혁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고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의 충분한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비밀리에 단 두 차례 몇 명의 철도관계자들과의 청와대 간담회만을 거치고는 사회적 합의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입법안을 의원입법인 것처럼 편법으로 발의했다. 입법을 위해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공청회도 입법발의 하루 전 쫓기듯 여는 것이 충분한 사회적 의견 수렴의 방식인가? 이토록 졸속적으로 진행된 철도 구조개혁이 결코 새롭게 각광받는 산업으로서 철도산업의 올바른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철도노조의 주장이 이기적이라면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정부는 철도노조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법과 원칙을 어기며 파업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정부는 구조개혁법추진과정에서 노동자와의 합의를 파기한 것은 물론 입법과정에서의 편법과 입법절차에서 반드시 지키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안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법적 절차를 무시해도 되고 노동자는 지켜야 하는가?
절박한 철도 현장은 시민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철도노조를 강성노조 운운하지만 사실 철도노조는 신생노조와 다를 바 없다. 철도노조는 50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노동조합으로서의 일은 한 것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미군정의 후원 하에 우익집단이 세운 대한노총의 가맹조합으로서 출발하여 5,16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한국노총소속의 제1노조로서 철도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해오지 못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철도노조는 각종 반공궐기대회에 단골로 참여했으며 유신지지선언이나 87년 4.13호언 지지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94년 기관사들의 파업 중에는 농성중인 기관사들을 진압한 경찰병력에게 노고를 위로한다며 특별 도시락을 시켜주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노동조합이었다.
노조위원장을 3중 간선으로 뽑는 등 철옹성 같던 철도노조도 민주노조를 열망하는 철도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지난 2001년 민주노조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5개의 지역별 지방본부와 3개 정비창 본부 134개의 현장지부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조직이 50년 어용노조의 굴레를 하루아침에 벗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집행부의 민주화는 이루어 냈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해있는 노회한 상당수의 지부장과 대의원들은 노동조합의 결의사항을 따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흔들며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과거 관리자들과 적당히 거래하고 권력을 향유하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선 지부장이나 노조간부들에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발로 뛰라는 것은 소귀에 경을 읽는 것보다 황망한 일이었다. 지난 2002년 대의원 대회 때도 “조국의 근대화와 멸공통일의 전위적 역할”운운하는 철도노조의 전문과 강령을 고치자는 의견이 대의원들의 뜻에 따라 부결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로 출범한 철도노조는 민주노조로서 제대로 서기도 전에 수년간 인력감축 및 빈발한 산업재해에 맞서 싸우고 철도민영화저지라는 거대한 파도를 뛰어넘으며 달려왔다.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가 파면, 해임으로 현장을 떠나야 했다. 특히 6․28 파업투쟁이후의 징계국면에서 노동조합의 집행력이 저하되고 조합원이 위축되면서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는 기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철도청은 노조에 항복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입법저지를 목적으로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가 4․20합의를 파기했다”며 대국민 사과와 쟁의대책위원회 해체, 쟁의행위 중지선언을 교섭재개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철도노조가 아무런 조건 없이 파업을 철회했던 이유는 국민불편에 대한 미안함과 조합원들의 피해 최소화 그리고 정부가 강조했던 “선 복귀, 후 대화”에 대한 순진한 믿음도 있었다. 파업을 접고 복귀 후에는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철도청은 파업이후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대화를 위한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유사이래 최고수준으로 자행된 징계는 과연 지금이 이성이 존재하는 시기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한다. 사회보장이 미흡한 한국사회에서 가장의 월급이 유일한 생활수단인 현실에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79명이나 해고시키는 등 200여명에 가까운 철도노동자들을 중징계하고 수 천명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아예 노조를 뿌리뽑고 말살시키겠다는 의지가 아니면 79명 노동자의 가정을 파괴하면서 까지 법과 원칙을 세워야 하는 것인가?
민주노조를 흔드는 일들은 현장의 곳곳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파업을 준비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현장노동자의 기세에 눌려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 무용설을 들고 나오거나 종속적인 노사관계의 다른 명칭인 노사협조주의를 주창하거나 심지어는 노동조합에 무쟁의 선언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그럴싸한 명분론과 실리적 이익을 앞세우며 무력감에 빠진 현장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이란 것이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지역과 직종을 이간질 시켜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는 반 노동자적 대안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과거의 어용노조 집단과는 달리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노동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강성투쟁으로는 미래가 없다”, “한국노총의 어용성도 문제지만 정치투쟁만 일삼는 민주노총의 총알받이로 철도노조가 이용당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근로조건개선을 위해서는 무파업선언을 비롯한 산업평화 선언을 통해 사용자인 철도청이 움직이게 해야한다”면서 지금까지 철도노조가 벌여온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에 대한 공안당국적 불온한 시각과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깊은 혐오증으로 뭉친 이들은 철도현장 곳곳에서 민주노조의 기반을 저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철도노조의 한계를 비판하며 직종별조직의 이해를 대변하자며 노동조합이 아닌 제3의 단체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기관차승무분야의 시도가 총투표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부결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파업의 결과로 발생된 해고자들에 대한 구호기금 모금 운동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어려움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현장의 일부 지부장들이 노동조합의 지침을 이행하지 않거나 모른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철도노조가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민주노조를 제대로 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일이라 믿고 열심히 활동하는 지부에서는 구호기금 모금이 100%에 육박하고있다. 그러나 조직력이 미약하고 관리자들의 압박이 심한 곳, 노동조합자체를 부정하거나 불신하는 사고를 가진 지부장들이 있는 곳은 구호기금 모금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일반 조합원들에게 구호기금을 뭐 하러 내느냐며 선동하는 비인간적 지부장들도 있다.
파업이 끝난 후 철도노조는 이성을 잃은 철도청의 광적인 징계바람과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현장내의 어용세력들 그리고 소위 노사협조를 통한 산업평화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민주노조의 발전을 막는 세력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공공부분은 노동조합이 바로 설 때 부패와 부정이 없는 사업장을 만들어 왔다. 더구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담보해야할 철도는 노동조합이 바로 서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침체된 철도현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민주노조가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PSSP
“어떤 좋은 판결보다도 화해가 낮다”며 끈질긴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오던 대통령이 “주먹이 우선”인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집권초기 “비록 불법파업이라도 폭력이나 시설물 점거 등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노동자의 구속이나 손배, 가압류 등을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헌 신짝처럼 내버려졌다. 철도현장에서는 유래 없는 중징계와 수십 억에 달하는 가압류가 집행된 상태다.
수년 전부터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명목 하에 정권과 자본에 의해 광범위하게 진행된 노동자의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의 문제가 어느새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인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은 어처구니가 없다. 더구나 도덕성을 잃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표본으로 찍힌 철도노동자들은 억울함과 분노로 또는 체념으로 현장을 지키고있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혜택이라는 혜택은 다 받으면서도 강성노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익을 챙기고자 파렴치한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변질된 대형노조가 바로 철도노조인 것이다.
그러나 철도현장이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소방관들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손발이 잘려나가거나 죽는 다는 사실은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일년 내내 공식적인 휴일이 존재하지 않는 현장이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믿기나 하겠는가? 철도기관사, 차장이나 여객전무 등 승무원들은 수시로 바뀌는 근무형태에 생체리듬이 망가져 만성질병을 갖고 있으며 정년퇴직 하자마자 노후를 즐기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은 구조조정을 한다며 기존 인력의 1/3을 줄였다. 인력은 줄었으나 새로운 선로의 개통으로 철도 연장은 늘어가고 전철화 등 각종 개량사업으로 일의 양은 오히려 늘어났다. 철도현장의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강도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하고 늘 피로한 상태에서 철도가 안전하길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문에 철도노동조합은 끊임없이 인력충원을 요구했고 지난 4월 20일 정부와 정규직 인력충원을 하기로 합의했으나 이 합의는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신 대대적인 계약직 직원이 채용되어 현장의 곳곳에서 정규직의 일을 대신 하고 있다. 궤도산업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시간, 가장 적은 임금수준, 언제 죽거나 다칠 줄 모르는 불안 속에 있는 철도노동자가 과연 집단이기주의자들인가?
더구나 이번 철도파업은 임금의 문제나 근로조건 문제가 아니라 철도산업의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왜곡된 효율의 논리와 수익성에만 집착해 사회적 공공성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국가의 기간동맥인 철도마저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안전은 물론 자유로운 이동권이 심각하게 제한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철도노동자 또한 철도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순간 근로조건개선이나 고용안정 등의 문제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파업이 일어나기 불과 두 달 전인 4월 30일 정부는 철도의 구조개혁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고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의 충분한 의견을 듣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비밀리에 단 두 차례 몇 명의 철도관계자들과의 청와대 간담회만을 거치고는 사회적 합의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입법안을 의원입법인 것처럼 편법으로 발의했다. 입법을 위해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공청회도 입법발의 하루 전 쫓기듯 여는 것이 충분한 사회적 의견 수렴의 방식인가? 이토록 졸속적으로 진행된 철도 구조개혁이 결코 새롭게 각광받는 산업으로서 철도산업의 올바른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철도노조의 주장이 이기적이라면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정부는 철도노조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법과 원칙을 어기며 파업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정부는 구조개혁법추진과정에서 노동자와의 합의를 파기한 것은 물론 입법과정에서의 편법과 입법절차에서 반드시 지키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안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법적 절차를 무시해도 되고 노동자는 지켜야 하는가?
절박한 철도 현장은 시민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철도노조를 강성노조 운운하지만 사실 철도노조는 신생노조와 다를 바 없다. 철도노조는 50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노동조합으로서의 일은 한 것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미군정의 후원 하에 우익집단이 세운 대한노총의 가맹조합으로서 출발하여 5,16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한국노총소속의 제1노조로서 철도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해오지 못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철도노조는 각종 반공궐기대회에 단골로 참여했으며 유신지지선언이나 87년 4.13호언 지지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94년 기관사들의 파업 중에는 농성중인 기관사들을 진압한 경찰병력에게 노고를 위로한다며 특별 도시락을 시켜주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노동조합이었다.
노조위원장을 3중 간선으로 뽑는 등 철옹성 같던 철도노조도 민주노조를 열망하는 철도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지난 2001년 민주노조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5개의 지역별 지방본부와 3개 정비창 본부 134개의 현장지부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조직이 50년 어용노조의 굴레를 하루아침에 벗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집행부의 민주화는 이루어 냈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해있는 노회한 상당수의 지부장과 대의원들은 노동조합의 결의사항을 따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흔들며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과거 관리자들과 적당히 거래하고 권력을 향유하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선 지부장이나 노조간부들에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발로 뛰라는 것은 소귀에 경을 읽는 것보다 황망한 일이었다. 지난 2002년 대의원 대회 때도 “조국의 근대화와 멸공통일의 전위적 역할”운운하는 철도노조의 전문과 강령을 고치자는 의견이 대의원들의 뜻에 따라 부결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로 출범한 철도노조는 민주노조로서 제대로 서기도 전에 수년간 인력감축 및 빈발한 산업재해에 맞서 싸우고 철도민영화저지라는 거대한 파도를 뛰어넘으며 달려왔다.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가 파면, 해임으로 현장을 떠나야 했다. 특히 6․28 파업투쟁이후의 징계국면에서 노동조합의 집행력이 저하되고 조합원이 위축되면서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는 기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철도청은 노조에 항복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입법저지를 목적으로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가 4․20합의를 파기했다”며 대국민 사과와 쟁의대책위원회 해체, 쟁의행위 중지선언을 교섭재개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철도노조가 아무런 조건 없이 파업을 철회했던 이유는 국민불편에 대한 미안함과 조합원들의 피해 최소화 그리고 정부가 강조했던 “선 복귀, 후 대화”에 대한 순진한 믿음도 있었다. 파업을 접고 복귀 후에는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철도청은 파업이후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대화를 위한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유사이래 최고수준으로 자행된 징계는 과연 지금이 이성이 존재하는 시기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한다. 사회보장이 미흡한 한국사회에서 가장의 월급이 유일한 생활수단인 현실에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79명이나 해고시키는 등 200여명에 가까운 철도노동자들을 중징계하고 수 천명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아예 노조를 뿌리뽑고 말살시키겠다는 의지가 아니면 79명 노동자의 가정을 파괴하면서 까지 법과 원칙을 세워야 하는 것인가?
민주노조를 흔드는 일들은 현장의 곳곳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파업을 준비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현장노동자의 기세에 눌려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 무용설을 들고 나오거나 종속적인 노사관계의 다른 명칭인 노사협조주의를 주창하거나 심지어는 노동조합에 무쟁의 선언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그럴싸한 명분론과 실리적 이익을 앞세우며 무력감에 빠진 현장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이란 것이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지역과 직종을 이간질 시켜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는 반 노동자적 대안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과거의 어용노조 집단과는 달리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노동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강성투쟁으로는 미래가 없다”, “한국노총의 어용성도 문제지만 정치투쟁만 일삼는 민주노총의 총알받이로 철도노조가 이용당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근로조건개선을 위해서는 무파업선언을 비롯한 산업평화 선언을 통해 사용자인 철도청이 움직이게 해야한다”면서 지금까지 철도노조가 벌여온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에 대한 공안당국적 불온한 시각과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깊은 혐오증으로 뭉친 이들은 철도현장 곳곳에서 민주노조의 기반을 저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철도노조의 한계를 비판하며 직종별조직의 이해를 대변하자며 노동조합이 아닌 제3의 단체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기관차승무분야의 시도가 총투표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부결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파업의 결과로 발생된 해고자들에 대한 구호기금 모금 운동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어려움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현장의 일부 지부장들이 노동조합의 지침을 이행하지 않거나 모른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철도노조가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민주노조를 제대로 세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일이라 믿고 열심히 활동하는 지부에서는 구호기금 모금이 100%에 육박하고있다. 그러나 조직력이 미약하고 관리자들의 압박이 심한 곳, 노동조합자체를 부정하거나 불신하는 사고를 가진 지부장들이 있는 곳은 구호기금 모금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일반 조합원들에게 구호기금을 뭐 하러 내느냐며 선동하는 비인간적 지부장들도 있다.
파업이 끝난 후 철도노조는 이성을 잃은 철도청의 광적인 징계바람과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현장내의 어용세력들 그리고 소위 노사협조를 통한 산업평화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민주노조의 발전을 막는 세력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공공부분은 노동조합이 바로 설 때 부패와 부정이 없는 사업장을 만들어 왔다. 더구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담보해야할 철도는 노동조합이 바로 서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침체된 철도현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민주노조가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