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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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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주의의 군사대국화와 신자유주의

도마쯔 카쯔노리(土松克典) | 일한 민중연대
***<편집자 주> 이 글은 작년 하반기 일본상황을 배경으로 1999년 10월에 집필된 글이다.
인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의 흐름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급격한 우경화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99년 10월의 일본상황은 분명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글에서 도출되는 투쟁과제 역시, 지금도 유효하다. ***


일본 전후사를 긋는 반동입법들의 양산

일본 노동자계급·인민은 이제 '전후 민주주의의 죽음'이라고 불릴만한 상황에 있다. 지난 8월 13일에 폐막한 제145회 정기국회에서는 일본 보수반동 세력들이 이루어내지 못했던 반동입법들이 집중적으로 상정되어 통과되고 말았다. 이것은 일본 전후사에 없던 사태이다. 이번에 통과된 반동입법들은 크게 군사대국화·치안관리 부문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 부문의 2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중 주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군사대국화·치안관리부문】
·미일 방위 협력을 위한 지침(신가이드라인)관련법
이는 '전쟁의 방기'를 명기한 일본헌법을 유린하는 것이고 자위대의 직접 참전을 합법화하며 지방자치단체·주민의 재산·용역 제공을 강제하는 전쟁법이다. 주변사태에서 미군에의 후방지역 지원·불심 선박에 대한 검문과 단속 및 수색 구
난(救難) 활동을 하는 '주변사태법', 자위대기(自衛隊機)에 한정되고 있던 재외 방인(邦人) 구출을 위해 함정(艦艇)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위대법 개정', 주변사태에 즈음하여 미군에 물품을 제공할 수 있게 만드는 '미일물품역무 상호제공협정(美日物品役務相互提供協定,ACSA) 개정'이 포함된다.

·국기·국가법
침략의 상징인 '히노마루'(일본기)와 '키미가요'(일본 국가)를 법제화하고, 천황제(天皇制) 아래 계급지배를 강화하고 국민통합을 기도하는 것이다. 국내 재일 조선인·한국인을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동화와 배외(排外)를 강제한다.

·통신방수법(通信傍受法)
통칭 '도청법(盜聽法)'이라 불린다. 오움진리교(眞理敎)나 폭력단 등의 조직 범죄대책을 명목으로 삼고 있지만, 그 핵심은 경찰·검찰 권력이 좌익세력이나 `노동조합 등 진보적 민주진영을 단속하는 데에 있다. 전화 방수(傍受)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수도 합법화된다.

·주민기본대장법(住民基本臺帳) '개정'
시정촌(市町村, 일본의 행정단위)에서 관리하는 주민기본대장의 주민 모두에게, 10자리 식별번호를 붙이고 여기에 주소·성명·생년월일·성별 4가지 정보를 싣는다. 또 전국 자치단체를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이를 정부가 컴퓨터로 일원화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관리될 정보는 앞으로 얼굴사진이나 지문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치안관리로 악용될 위험성이 높다.

·국회법 '개정'
이로 말미암아 중의원(衆議院: 미국의 하원의원에 해당)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될 것이다. 헌법조사회에서는 자민당·자유당과 같은 보수반동세력들에 의해 '전쟁의 방기'를 명기한 일본헌법 제9조 개악이 도모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 부문】
·중앙성청개혁(中央省廳改革) 관련법
현행 1부(府) 21성청(省廳)을 2001년 1월에 1부 12성청으로 재편·통합하고 자본에게 효율적인 '작은 정부' 만들기를 노린다. 여기에는 10%의 국가공무원 인원삭감과 민영화가 전제된다. 또 수상 권한강화 등 전시(戰時)·주변 '유사(有事)'에 대응하는 법 개악을 담았다.

·지방분권관련일할법(地方分權關聯一括法)
이 관련법은 475개에 걸친다. 시정촌(市町村)에 관한 위양(委讓)과 국가의 직접 집행사무 재검토를 명분으로 하지만 미군용지 제공을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에 강제하는 '미군용지특별조치법(美軍用地特別措置法) 재개악' 등 전시·주변 유사에 대응한 법 개악들을 도처에 담았다.

·학교교육법 개정
대학에서 교직원이나 학생에 의한 학내 자치를 파괴하고 학장이나 학부장 권한의 비약적 강화를 노린다. 또 산업계의 요청에 응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국립대마다 '운영자문회의'를 설치하고 산업계에서 대학운영 자문위원을 초청하는 것이다.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産業活力再生特別措置法)
2003년 3월까지 시한 입법이다. 재계 총본산(總本山)인 경단련(經團連)의 강한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 80대 후반 '거품경제 청산과 산업 경쟁력 강화'란 이름 하에 진행된 대기업 사업 재구축(리스토라)에 거액의 세금을 퍼붓고 노동자 대량해고를 합법화하는 것이다.

·노동자파견법/ 직업안정법 '개정'
파견노동과 유료 직업소개사업을 '원칙 금지·한정 적용'(positive list)하던 것을, '원칙 자유·한정 금지'(negative list)로 180도 전환하여 자본이 필요할 때, 필요한 노동력을 값싸게 조달할 수 있는 체제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인간간판방식(人間看板方式)'이라 불린다. 이 노동자파견법ㆍ직업안정법 개정에 앞서, 일본정부는 1997년 6월 국회에서 <(노동기준법) '모성보호규정 철폐'>를 강행한 바 있고, 1998년 9월 임시국회에서는 <변형노동시간제 요건개악>이나 <재량노동제 적용대상 확대>, <3년임기(任期) 유기고용 법인(法認)> 등 일본 노동자계급이 50년을 넘게 지켜왔던 노동기본법의 대개악을 강행한 바 있다.

이번 국회에서는 이 반동입법들을 포함하여, 정부가 제출한 법안 135개 중 90%에 달하는 120개가 통과된 것이다. 앞으로 오부치(小淵)정권은 여세를 타, 자민ㆍ자유ㆍ공명(公明) 3당 연립정권을 짜고 군사·경제적 반동법 제정을 도모하고 있다.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취할 '유사입법' 제정, 무력행사를 수반할 PKF(UN 평화유지군)에의 자위대 참여 동결의 해제, '헌법조사회' 도입(이로 인해 인민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기업에게는 의무화되어 온 사회보장비를 사업주가 부담이 한번에 해결될 것이다), 산관학(産官學)이 일체로 되어 국제경쟁력을 가진 첨단기술 연구ㆍ개발에 매진할 것을 노리는 '산업기술력강화법' 제정 등이 그 내용이다. 하시모토(橋本) 전 정권이 내건 21세기를 향한 '6대 개혁' 전략, 즉 행정, 재무구조, 사회보장 시스템, 경제구조, 금융 시스템, 교육 등을 이어받아 군사 대국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이 동반된 반동입법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의회정당들의 동향 및 대중운동의 대응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 반동입법들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지배계급이 그 법안 하나라도 국회 1회기에 통과시키기는 아주 힘든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2000년을 앞둔 오늘날에 이와 같은 군사대국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을 특징으로 한 반동 입법들이 한꺼번에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인가? 여기에 지금 현재 일본에 있어서의 계급간 역관계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 의회정당이 이 반동입법들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자민당과 자유당의 연합, 여기에 '공명당'이 정책제휴하면서 만들어진 소위 '자자공노선(自自公路線)' 때문이었다.
자민당은 전후 장기간에 걸쳐 정권을 독점해 온 일본 독점자본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유당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의 나라' 만들기를 내세우며 1993년 자민당을 깨나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등에 의해 결성된 신보수주의 정당이다. 여기에 제휴한 공명당은 '소카가까이(創價學會)'란 불교계 종교단체를 지지모체로 한 소부르주아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야당 3당 중 위와 같은 반동입법들에 대해 동요와 기회주의를 거듭하면서도, 일부 찬성으로 돌아섰던 것이 자민당 탈당자로부터 구(舊) 일본사회당 탈당자까지 포함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 민주당, 사회민주당(당시 일본사회당)이었다. 민주당은 시민주의자들의 야합 정당이며, 사회민주당은 1993년 자민당과 연합정권을 짜고 무라야마(村山) 수상을 내보내는 대신, 미일안보ㆍ자위대 용인 노선으로 전향해서 의석을 격감시킨 바 있다.
모든 반동입법들에 대한 반대자세를 견지한 것은 '일본공산당'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일본 노동자계급의 전위이어야 할 이 당은 반동입법들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통일전선으로 조직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이 '자민당 주도의 올(all) 여당화' 되어 있다고 분석하며 자민 대 공산이란 이른바 '자공대결(自公對決)' 노선을 취하여 광범위하게 대중운동을 조직하고 그것을 통일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다.

또 노동조합 내셔날센터들은 이 반동입법들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전쟁법인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면 '연합'(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조합원757만명)은 지지 정당인 민주당과 같이 이 전쟁법에 대해 수정 요구로 시종일관하며, 폐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연합 내 구(舊)총평계와 구(舊)동맹계와의 대립을 배경으로 동요와 기회주의를 거듭하면서, 전쟁법을 반대하는 대중집회 하나도 조직하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메이데이에는, 이 전쟁법의 국회 심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모 행진마저 취소하고 말았다. 그러한 연합 중앙의 방침에 대해 가맹 단산(單産)인 자치노(自治勞), 일교조(日敎組), 사철총련(私鐵總連) 등 연합 내의 구총평계 블록은 '수정' 요구가 아닌 '폐안' 요구를 내걸고 대중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전노련'(전국노동조합총연합, 84만명)은 메이데이에 전쟁법 반대자세를 관철하여 데모 행진을 벌였다. 또 '신가이드라인과 그 입법화를 반대하는 국민연락회의'를 꾸려 공산당계 단체들과 행동해 왔다.
하지만 전노련은 지지 정당인 일본공산당의 의회주의와 시민운동적 노동운동에 편향되어, 직장생산점(生産點: 생산현장)에서의 계급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직장투쟁 속에서 파업 태세를 구축하는 운동을 포기한지 오래다. 따라서 사공(사민당과 공산당)에 의한 일일공동투쟁(一日共鬪) 대중집회로는 동원을 지시하더라도 직장생산점에는 영향이 못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내셔날센터들의 동향 속에 3월 19일 내셔날센터의 틀을 넘어선 '육, 해, 공, 항만'의 교통ㆍ운수관련 20개 노조들이 '공동 아삐르'를 발표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연합 내 구총평계 전국자동차교통노동조합총연합회, 연합내 구동맹계 전일본해원조합, 전노련 산하 전일본운수일반노동조합, 전노협 산하 국철노동조합, 상부조직을 가지지 않는 전국항만노동조합협의회, 수평적 연락체인 항공노조연락회 등이 포함된 이 교통ㆍ운수관련 20개 노조들의 '공동 아삐르'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리 육·해·공·항만 교통 운수관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절대로 가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아 가이드라인 법안을 반대하고 폐안을 위해 노력하는 하나의 관점으로, 세부적인 입장 차이를 넘어 국민 각층과 노동조합들이 연대하여 행동할 것을 호소합니다."

여기에는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이 미군의 후방지원 활동으로 전쟁물자의 수송이나 시설 제공 등을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에게 협력의뢰(사실은 강제)한다고 결정되는 데 대한, 노동자들의 어쩔 수 없는 위기의식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한국전쟁 당시에 UN군(실제로는 미군)의 출격거점이 된 일본은 노동자들이 미군의 전쟁물자 수송이나 군수기재(機材) 생산 및 수리, 군사기지 제공 등에 적극 가담해 간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교통·운수관련 20개 노조들은 지난 과오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고 여겨 '공동 아삐르' 발표 이후, 적극적으로 대중운동에 참여해 간 것이다.

또 이번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을 반대하기 위해서, 반전 지주들을 비롯한 오키나와(沖繩) 반(反)미군기지 운동세력이 선봉에 서서 싸웠다. 일본 전국토 면적 중 0.6%에 불과한 오키나와현(縣)에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기지 집중에 대해, 해방과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그들의 투쟁은 지금 일본 평화운동의 최선봉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학자·문화인·종교인들이 발기인이 되어, 사공(社共)이나 '신사회당'(1996년 1월 일본사회당이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 당내 최좌파 그룹이 결성한 당으로 현재 국회에는 의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과 더불어, 신좌파계 대중조직, 노동조합, 학생 그룹, 여러 시민운동 단체들이 몇차례 전쟁법 반대집회로 결집해 갔다.

이는 전쟁법 반대집회 뿐만 아니라, 반동입법들을 반대하는 갖가지 대중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다만 노동법 개악저지 집회는 노동조합이 중심축을 맡았다). 여기에 일본 변혁운동의 현재 역량이 반영되고 있다.
말하자면 전술한 전쟁법이든 국기ㆍ국가법이든 도청법이든 간에, 반대집회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각각 일본 전후사를 긋는 반동공세임을 인식하되 개별적인 과제에 매몰되어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연대의 대항축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총평'이 해체되면서 '연합'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노자협조화되고, 자본이 공격하고 있는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 소홀하여 투쟁의 전망을 상실해 갔다. 이것이야말로 2000년을 앞둔 오늘날, 군사대국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을 특징으로 하는 반동입법들이 한꺼번에 통과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지금과 달리, 80년대 총평이 존재하고 사공공투(社共共鬪)가 이루어지면서 진보적 지식인이나 학생 등 대중운동이 결집하여 국민적 운동의 센터를 형성함으로써 정부의 반동공세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일본 독점자본의 다국적 전개, 이를 위한 반동 입법

그렇다면 일본정부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이런 반동입법들을 한꺼번에 국회에 상정한 것일까?
85년 G5에 의한 플라자 합의 이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독점자본은 급격히 다국적화되어갔다. 이러한 자본축적 형태의 변화에 따라 내적 갈등이 존재했던 것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 전반 내내 일본·아시아·미국에는 일본(생산재 공급)→ NIES·ASEAN(제조)→ 미국(소비)라는 삼각 무역관계가 형성되어 왔다. 이 시기 미국 제국주의는 거대한 시장으로 세계에 군림하여 오로지 달러를 전세계에 계속 살포했다. 더불어 레이건 정권시대의 초군확정책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하여 막대한 (재정ㆍ무역의) '쌍둥이 적자'를 안게 되었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국제 제국주의는 85년 G5 플라자 합의에 의한 엔고 기조로, 일ㆍ독ㆍ미 3극(極)이 협조하여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이 국제 제국주의의 위기 연명책, 즉 급격한 엔고 기조 속에서 일본 독점자본은 산업구조 전환을 강요받게 되고, 국내시장 개방과 더불어 생산 거점을 아시아 지역에 이동하여 홍수처럼 다국적으로 전개해간 것이다.
이번에 반동입법들이 양산된 것 역시, 일본 독점자본이 플라자 합의 이후 취해 온 다국적적(多國籍的)인 전개를 안팎에서 지탱하기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가이드라인 관련법 성립에 의한 자위대 해외파병의 합법화는 어디로 그 조준이 맞추어지고 있을까? 말할 나위 없이, 일본 독점자본이 다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날 노동쟁의나 정치위기, 인민의 혁명적 고양국면에 개입·탄압하고자 하는데 맞춰지고 있다.
노동법제 개악에 의한 '인간간판방식' 합법화는 어디로 그 조준이 맞추어지고 있는가? 말할 나위 없이 일본 독점자본이 다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필요한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이제까지 세계에 자랑해 온 일본식 경영전략마저 파괴하여 국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새로운 일본적 경영' 전략에 기초한 새로운 자본축적 형태를 재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도청법 성립에 의한 통신방수 합법화는 어디로 그 조준이 맞추어지고 있는가? 말할 나위 없이 일본 군사대국화를 반대하여, 국내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좌익세력들이나 노동조합 등 진보적 민주진영의 향후의 투쟁을 방해하는데 맞춰지고 있다.
이렇게 자자공 연합정권이 앞으로 추진해 나갈 정책들은 요컨대, 다국적화한 일본기업들의 해외거점과 세계화한 해외시장의 안정유지 및 최근의 MAI(다국간투자협정)나 한일투자협정 체결책동에 볼 수 있는 새로운 자유시장 확대를 일본 독점자본에게 최대한 보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
1980년 5월 23일 한반도 남부에 찬연히 출현한 비폭력 자치도시 광주 꼬뮌의 전사들이 무장한 파시스트 전두환 일파와 대치하는 와중에, 펜타곤(미국방총성)이 필리핀 해역을 순항 중이었던 미 공모 꼬랄시를 긴급하게 한반도 해역으로 파견한 사실을!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을 위시한 반동입법들이 통과되면, 앞으로 우리 일본 노동자계급ㆍ인민은 '미국이 행할 전쟁에 자동적으로 말려들게 된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일본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는 아시아 전역 노동자ㆍ인민의 싸움이 혁명적으로 고양되는 국면에서 분명히 반혁측에 서도록 강요받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이를 저지해야 한다.


'반 북한' 배외주의 극복이 과제

일본 노동자계급ㆍ인민의 대항축을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싸워야 될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본 지배계급이 장기간, 의식적으로 만들어 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에 대한 배외의식을 극복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군국주의 패배 이후 여태껏 일본 정부는 북한 적시로 일관하면서 언론을 동원하여 '북한위협'론을 유포하고 인민에게 '위기'의식을 부추겨 왔다. 그 중 제일 어리석었던 사건이, 북한 인공위성 발사(1998년 8월 31일)에 대해 중참양원(衆參兩院: 중의원과 참의원)이 발표한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에 항의하는 결의'(98년 9월 3일)였다.
주지한 바처럼 그 때 일본공산당을 포함하여 만장일치로 북한에 대한 '항의결의'를 가결시켰던 것이다. 이후 9월 14일 미 정부가 위성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에도, 현재까지 일본 정부와 언론은 그 북한 적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신가이드라인 관련법 국회 심의 중에도 타이밍을 맞추듯이 동해 해상에 '불심선'이 나타났고 이것을 구실로, 사상 처음 자위대 '해상경비행동'을 발동하고 공해 상에서 포(砲)를 폭격하는 등 긴장을 격화시켰다.
이렇게 북한 적시·배외주의 캠페인이 일본 전국을 휩쓰는 와중에 민족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포함한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협박ㆍ폭행 등 인권침해 사건들이 횡행하고 있으며, 마침내 1998년 10월 15일 조선총련 치바(千葉) 지부 라훈(羅勳) 부위원장 학살ㆍ방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오부치 정권은 이 역겨운 반(反)공화국 배외주의적 이데올로기 상황을 의도적으로 꾸미면서, 신가이드라인 관련법 성립과 더불어 전역미사일방위(TMD) 미·일 공동연구의 개시, 군사위성 보유, 평화유지군(PKF)으로 참가동결 해제에 따른 UN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 개악 등을, 한번에 자자공 연합의 힘으로 강행 돌파할 작정인 것이다.

이제는 지배권력의 반북 선전에 쉽게 포섭되어 버리는 오늘날의 일본 좌익전선의 사상을 정비하고, 전선을 재구축해 나가는 투쟁이 병행하여 조직되어야 한다. 지배권력이 벌이는 반(反) 북한 캠페인에 맞서 싸우지 않고서는 자자공 연합정권이 추진하는 군사대국화 노선과의 투쟁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 글쓴이: 도마쯔 카쯔노리(土松克典)
1955년 출생. 노동자의 자주적 영상집단 '오가와마치 (小川町)씨네클럽'에서 활동하였으며,1996년부터 매년 전국노동자대회와 서울 국제노동영화제에 참여하였다. 일본 노동자·민중에게 한국 민주노총의 투쟁이 살아있음을 전하기 위해,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제작한 <민주노총 87부터 95까지><총파업속보 1·2><해고자> 등을 일본어판으로 제작ㆍ보급하고 있다. 또한, 1999년 4월 15일 서울에서 열렸던 "누구를 위한 한미/한일 투자협정인가" 토론회에도 참여, 다국간투자협정과 한일투자협정에 대한 일본 측의 동향에 대해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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