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투쟁 5년을 돌아본다
근기법 개악만을 남긴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평가하며
노동시간단축투쟁 5년을 돌아본다
지난 8월 29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사정위 공익안보다도 후퇴하고, 그나마 정부안보다도 후퇴한 법안 통과는 노동계의 극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을 일삼던 여야 보수정당은 이 법안의 통과에는 한 목소리를 모았다. 보수정당들만이 아니라 보수언론, 재계 등 남한의 지배계급들이 오랜만에 ‘일치단결’로 한 목소리를 내는 이례적인 사안이었다.
노동계의 경우는? 역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단일안’을 만들고 수 차례의 공동집회를 열고 투쟁하는 등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단결을 이루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두 내셔널센터의 공동투쟁의 이면에는 고용형태와 임금수준, 성별에 따라 분할된 대중이 존재하고 있었다. 총단결 총투쟁의 구호와 양대노총의 연대투쟁 선언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현장으로부터 대중투쟁을 만들어낼 수 없는 한계가 존재했다. 민주노총은 공언했던 총파업을 위력적으로 조직할 수 없었다. 이는 하나의 계급의 단결은 적대적 계급의 분할을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법 개악으로 98년 노사정위에서 도입논의가 시작되었던 여러 쟁점들은 이제 거의 다 제도화된 셈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 불안정 노동자층을 확대하는 근로자파견법 등의 법■제도 개악은 신속하게 이루어진 반면 노동계가 요구해온 주 40시간 노동제는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다. 그마저도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기준법 개악의 형식으로, 애초에 비판되어 온 바와 같이 노동의 불안정화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98년 IMF구제금융 위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노동시간 단축요구가 결국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고 여성/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으로 결말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3년 이번 근기법 개악 반대 투쟁은, 노동자 운동이 처한 상황을 바닥까지 보여주는 계기였으며 이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예고되었던 결과였던 것이다.
IMF 구제금융위기 이후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제기된 과정
주40시간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민주노총이 건설된 다음 해인 96년부터 민주노총 임단투 요구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97년 임단투에서 상당수의 사업장이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제기하고 주 43시간, 4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 운동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는 것은 IMF구제금융위기 이후의 시기다. IMF구제금융으로 조성된 위기 정세에서 정부와 자본은 97년 총파업으로 지체되었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관철해갔고, 노동자 운동은 개별 기업 수준에서나 전 사회적인 수준에서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논의는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목표로 98년 투쟁과정에서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1998년 2월, 민주노총도 함께 한 ‘노사정 합의’에서 노사정 및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근로시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민주노총은 이 합의 때문에 1기 지도부가 교체되는 파란을 겪었지만, 새로 선출된 2기 민주노총 지도부도 수 차례의 총파업 선언과 합의, 파업철회 등을 거치면서 6월 5일 노정합의 이후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철폐를 관철하지 못하고 노사정위에 복귀한다.
98년 상반기에는 정리해고 철폐 요구에 가려 중요한 요구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98년 하반기 들어 민주노총이 정리해고 철폐투쟁을 중장기적 과제로 전환함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요구는 전면에 부각된다. 정리해고 철폐가 단기적 투쟁목표가 아니라 중장기적 과제라는 ‘현실론’이 제기된 결과였는데,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을 고용안정의 핵심적인 요구로 제출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노총의 6월 총파업 철회와 노사정위 복귀 이후 정리해고제 철폐를 중심으로 하는 생존권 요구가 재벌과 정치권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개혁투쟁’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98년 6월의 합의에 따라 노사정위에 ‘근로시간위원회’를 설치하여 법정근로시간, 실근로시간 단축 및 임금조정 등 노동시간제도 개선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한 상태에서 1999년 6월에는 1999년 말까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률개정을 추진키로 노정간에 합의가 이루어진다.
보다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5월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가 발족한 후부터이다. 노사정위는 근로시간 단축문제, 관련임금 및 휴가■휴일문제를 함께 다루기로 하고 다시 연내에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노사정위는 ‘근로시간 단축관련 기본합의문’을 채택했는데, ① 주 40시간, 연간 2,000시간 이내로 단축 ② 휴일■휴가 합리적 조정 및 실제 사용하는 휴일■휴가의 합리적 조정 및 실제 사용하는 휴일■휴가일수 확대 ③ 업종별■규모별 단계적 시행이 그 내용이다. 결국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한 이 당시 합의에서 주목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휴일 휴가의 축소, 업종별■규모별 단계적 시행이라는 2003년 8월 법안의 핵심적인 문제점이 이미 ‘합의’안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논의는 계속되어 2001년에는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이 제출되었고 2002년 10월에는 노동부에서 정부입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당시 경제특구 저지 투쟁과 함께 이 투쟁을 결합시키면서 국회 앞 노숙농성 투쟁, 시한부 총파업 투쟁 등을 전개했다. 정권말기라는 조건까지 겹쳐 통과가 무산된 이 법안은 2003년 들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단일안까지 만들면서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결렬을 선언한다. 협상이 진행 중인 8월 14일, 국회 환노위 위원장이 개인자격으로 조정안을 제출했다. 당시 조정안은 임금보전, 휴가일수, 시행시기 등에서 노동계의 의견을 일정하게 반영한 내용이었고, 한국노총은 수용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노동계 단일안 관철을 요구했고 경총도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제출한 안이 통과되었는데, 이는 애초의 정부안에서조차 시행시기를 1년 연기한 최악의 안이었다.
이러한 5년의 과정 동안 민주노총의 요구는 애초에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에서, 실질임금 삭감과 노동조건 후퇴없는 노동시간 단축,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 희생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변해갔다,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근기법 개악 저지로까지 끊임없이 미끄러져 갔다. 애초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제기한 것이라던 노동시간 단축은 99년 이후 경기 활성화로 실업률이 낮아지자 이 주장의 근거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과 문화 향유에서 찾을 지경으로 변질되었다. 결국, 2003년에 와서는 어느 누구도 98년에 노동시간 단축이 제기된 이유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실업률 저하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 운동 내에서 사후적인 반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3년 8월, 대중투쟁으로 진행되지 못한 근기법 투쟁
작년 11월에 진행된 민주노총의 근기법 개악 저지, 경제특구 저지 투쟁은 근기법 개악이 유예된 상황에서 힘없이 마무리되었다. 당장의 가시적인 위협이 인식되기 힘든 경제특구 저지투쟁은 대중적인 참여를 조직하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이에 비해서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임금삭감을 불러올 노동시간 단축법안에 대한 반대투쟁은 조직하기 수월했고, 이에 따라 11월 투쟁의 주된 동력은 근기법 개악 반대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당시에 근기법 개악이 유예된 상황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경제특구 반대투쟁으로 대중투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올해 상반기를 거치면서 대중투쟁을 형성하기 힘든 방향으로 변화되어갔다는 점이다.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연맹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사업장들은 금속노조의 집단교섭과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대공장 사업장의 임단협을 통해서 적어도 직접적인 임금삭감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냈다. 금속노조가 자동차 하청업체에 대해서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사항을 완성차 업체의 타결을 참고하여 정하도록 한 상황에서, 8월 6일 현대자동차노조의 임단협이 이루어졌다. 법안통과 이전에 이미 이들 제조업, 대공장 사업장 노조와 조합원들은 근기법 개악을 저지해야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금속산업연맹과 함께 민주노총의 주된 투쟁동력이라 할 수 있는 공공연맹 소속의 공기업 노조도 대다수 사업장에 이미 42시간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임금삭감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조건이었다. 더구나 이미 철도노조 등 궤도 부문은 한바탕 투쟁을 전개하고 난 이후 극심한 현장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자 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과제로서의 근기법 개악 저지 요구는 대중적 힘을 얻기 힘들었다. 민주노총의 주된 투쟁동력을 형성해왔던 노조들의 이해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이 불안정노동자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라 해도 그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런 상황에서도 총력투쟁을 전개해야한다는 당위적인 입장을 유지했지만 주로 활동가와 간부들이 동원된 여의도 노숙투쟁 이외에 대중적인 현장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노동시간 문제와 관련된 단협이 이미 타결된 상태에서 그러한 현장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실제의 투쟁일정도 투쟁사업장 조합원들과 간부대오의 참가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결국 이 법의 통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게 되는 여성/중소/영세/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이 직접 투쟁에 나설 수 없는 조건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무관심은 치명적인 것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기방어적 실리주의에 갇히지 않도록 투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이것이 실패할 경우에 그것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지가 이번 투쟁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계속되는 불안정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대신 막을 수는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한다. 불안정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실천이 더욱 요구되는 지점이다.
개악된 근기법 통과가 말해주는 것
정부는 IMF 구제금융 이후 정리해고 법제화, 변형근로의 확대, 근로자파견법의 제정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노동유연화에 반대하면서도, ‘대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제기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하나의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대안’이라기보다는 단지 보완물일 뿐이었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 운동이 항상 제기해온 요구사항이었다. 게다가 남한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상당히 긴 것으로 악명이 높고, 유럽 각국에 비해서는 약 600~900시간 정도가 길고,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약 500~600시간 정도 더 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의 단축 요구는 정당한 것일 수 있지만, 현재 그것이 제기되는 정세적 맥락에서는 문제이다.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유연화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노동자측이 양보하면서 ‘보상’을 요구하는 수세적인 것이었는데, 이미 이것이 제기되는 맥락은 노동유연화를 보완하는 것이었다.
결국 노사정 협상에서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이후 법제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이란 노동시장의 유연화의 유기적인 일부로 배치되어야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결국 2003년 여름의 근기법 개악으로 실현되었다.
노동시간단축이 휴가휴일의 축소와 병행되고 장기간에 걸친 변형근로제와 결부되어 시행되기 때문에, 힘없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로 인한 절대적 혹은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매우 높다. 여기에 시급제 또는 일급제 형태의 임금제도를 적용받는 상당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해 오히려 직접적인 임금손실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한편 단계적 법률시행으로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새로운 노동시간 제도의 적용이 상당기간 지체될 경우 하청화, 용역화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지연하려는 시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이 하나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개혁을 완성하는 요소가 아니며 오히려 이것은 일련의 정책 패키지의 일부라는 점이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연동되는 정규직에 대한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변형근로제의 확대, 정리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 보호입법의 부분적 도입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 인구의 관리, 노동자운동의 ‘사회적 합의주의’ 포섭(집단적 노사관계법 개정과 지역 업종별 노사정위, 산별교섭) 속에 위치하는 전반적인 노동체제 변화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2003년 들어 8월의 근기법 개악을 필두로 해서, 비정규직 보호입법이 논의되고 있으며 사용자 대항권 등이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내년초 임시국회에서 다루어질 예정인데, 노무현 정권은 정권 초반에 이러한 과제들을 모두 마무리할 것이다.
법 개정의 정치적 의미
한편 최근 근기법 개악과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등은 90년대 초중반 이후 김영삼 정권을 거쳐 김대중 정권 시절까지 계속된 노사관계 제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합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의 노사정 합의에서 유지된 합의는,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87년 이후 변화된 계급정치 지형에 맞게 민주노조 진영을 합법화하는 등 ‘양보’를 통해 제도적으로 포섭하고, 개별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중심으로 법 제도를 개혁,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에 걸맞게 노동시장 유연화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96년 노개위 논의부터 97년 총파업 이후의 법개정, 98년 노사정위 합의에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민주노총도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구상에 호응하였고 결국 민주노총의 제도화(합법화, 국가보조금 수령)와 노동시장 유연화(근로자파견법, 정리해고 수용)는 상호교환될 수 있었다.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재벌개혁’, ‘노동시간 단축’ 등에서도 민주노총과 일정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노무현 정권에 들어 굴절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사업장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전투성을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제시된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은 이제까지의 합의와는 달리 조직된 노동자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를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데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방안을 노동자운동과 전반적으로 공유하기 힘들다는 진단이 깔려있다. 이번 근기법 개악이 98년 노사정위 합의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 할 때, 이는 단지 합의된 내용이 전반적으로 제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시점에 이미 새로운 신자유주의자들의 합의가 형성되고 또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개별적 노사관계에서 노동유연화를 더욱 밀고 나가지만 이전처럼 집단적 노사관계의 양보를 통해 ‘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활동반경을 더욱 제약하면서 이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집단적 노사관계의 ‘양보’라는 것이 87년 이후 법을 넘어서 이미 물질화된 노사관계의 구조를 법적으로 추인하는 형태를 취했던 것이라면 이제는 이미 그러한 물리적 배경은 소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노동법 개악안 통과는 98년 노사정위 합의로 시작된 과정을 마무리하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노동자운동의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해서 개입하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전과 같은 방식의 타협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이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의 구상이 관철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위노조의 개별적인 대응이 아니라 전국적 공동투쟁을 준비해야한다
근기법 개악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민주노총과 노조들의 대응은 단위노조의 임단협으로 노동시단 단축문제에 대응했던 이제까지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은 법 개정 이후에는 단위 사업장에서 임단투를 통해서 임금 저하, 노동조건 개악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근기법 개악에 따른 사용자들의 공세를 저지하고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투쟁을 전개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은 새로운 것도 아닐뿐더러 노동조합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투쟁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단위노조의 단협 투쟁을 통한 해결은 금속노조의 집단교섭이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노조의 상반기 임단투처럼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방식이다.
단위노조의 임단투를 중심으로 대응하자는 입장이라 근기법 개악 반대 투쟁은 하반기 민주노총 투쟁과제에서도 빠져있다. 내년 임단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위노조의 임단투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그것이 기업별 투쟁이든 산별 투쟁이든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이는 이미 2003년 상반기에 전개했던 투쟁이고, 2003년 여름 근기법 개악을 저지할 수 없게 했던 투쟁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2003년 근기법 개악저지 투쟁에 대중적인 현장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가 ‘단협을 통한 단위노조별 대응’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따라서 내년 투쟁에서는 오히려 각 사업장의 단협 개악저지 시도에 따른 쟁점들을 단일하게 묶어내고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 상반기에는 각 현장에서 단협 개악요구가 사용자로부터 공세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개악된 근기법 부칙4조에서 언급하는 법 개정사항의 단협 반영 조항이 직접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정부는 통상임금 저하 금지 조항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이 규정이 강행규정이 아니라 선언규정이라고 해석했지만, 2004년에 단협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사업장이나 당장 2004년 7월부터 주40시간제를 도입해야하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는 첨예한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한편,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바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서 제시된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대한 각종 개악이 내년 봄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내년 봄에는 사업장 단위에서 사측의 단협 개악 요구와 함께 개별적 노사관계법에 이어 집단적 노사관계법조차 개악하려는 공세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투쟁을 전국적인 연대투쟁으로 모아내고 개악시도를 분쇄해야한다. 민주노총 출범 이후에 실종되었던 전국적인 공동임단투를, 시기집중만이 아니라 요구안의 통일로 활성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법안의 내용 자체를 다시 쟁점화, 개정을 요구해야한다. 이미 개정이 이루어진 법안이지만 ‘논란이 되는’ 것이 되도록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또한 시행시기와 독소조항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면서 동일한 요구를 현장에서 관철해냄을 통해 법안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고 향후 법 개정을 압박해야한다.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정규직 연대를 강화해야한다.
또한 각 현장에서 공세적인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에 나서야한다. 이번 법안이 심화되고 있는 노동자들간의 분할을 강화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전반적으로 강제하려는 것이라면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투쟁의 연대가 관건이다. 사업장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정규직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부담을 비정규직에 전가하거나 비정규직을 충원하는 방식의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내 하청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작업장 안에서도 주40시간제의 도입시기가 달라지면서 갈등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규직 노조가 내년 임단협 과정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부담을 비정규직에 전가하는 방향으로 교섭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동일한 시기에 주40시간제를 도입하고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후퇴가 없도록 함께 투쟁을 조직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활성화하고 내년 임단투에 공동의 요구를 결정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한다. 내년 임단투는 어느 때보다 노동자간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는 공동의 요구를 어떻게 제기하고 투쟁하는가에 따라 계급적 단결을 한발 더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슷한 이유로, 지역적 수준에서부터 대공장과 중소영세, 하청사업장의 연대투쟁을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공장 노동조합이 지역적 연대투쟁에 우선 나서야 하는 것은 물론, 연맹과 총연맹이 적극적으로 조직화 방안을 세우고 나서야한다.
98년 이후 지난 5년 동안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결과적으로는 개악된 노동법만을 남겼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논리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98년 당시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의 과제가 이미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일부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시간 단축이 다른 개악 조항과 함께 통과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을 수 있다. 더구나, 그러한 효과를 막아내기 위한 법안의 조항들을 둘러싼 투쟁과정에서 노동자 운동의 대응방식은 이런 방식의 개악에 속수무책이었다. 주40시간 노동제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진 근로기준법 개악안이 통과된 지금, 이 법안이 강제할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 더욱 심해질 불안정 노동자들의 초과착취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이제까지 노동자운동의 투쟁에 대한 반성적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 운동 내부의 평가없이 정권과 자본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이번 노동시간 단축, 근기법 개악저지 투쟁과정에서의 실패를 매번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SSP
노동시간단축투쟁 5년을 돌아본다
지난 8월 29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사정위 공익안보다도 후퇴하고, 그나마 정부안보다도 후퇴한 법안 통과는 노동계의 극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을 일삼던 여야 보수정당은 이 법안의 통과에는 한 목소리를 모았다. 보수정당들만이 아니라 보수언론, 재계 등 남한의 지배계급들이 오랜만에 ‘일치단결’로 한 목소리를 내는 이례적인 사안이었다.
노동계의 경우는? 역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단일안’을 만들고 수 차례의 공동집회를 열고 투쟁하는 등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단결을 이루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두 내셔널센터의 공동투쟁의 이면에는 고용형태와 임금수준, 성별에 따라 분할된 대중이 존재하고 있었다. 총단결 총투쟁의 구호와 양대노총의 연대투쟁 선언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현장으로부터 대중투쟁을 만들어낼 수 없는 한계가 존재했다. 민주노총은 공언했던 총파업을 위력적으로 조직할 수 없었다. 이는 하나의 계급의 단결은 적대적 계급의 분할을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법 개악으로 98년 노사정위에서 도입논의가 시작되었던 여러 쟁점들은 이제 거의 다 제도화된 셈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 불안정 노동자층을 확대하는 근로자파견법 등의 법■제도 개악은 신속하게 이루어진 반면 노동계가 요구해온 주 40시간 노동제는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다. 그마저도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기준법 개악의 형식으로, 애초에 비판되어 온 바와 같이 노동의 불안정화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98년 IMF구제금융 위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노동시간 단축요구가 결국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고 여성/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으로 결말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3년 이번 근기법 개악 반대 투쟁은, 노동자 운동이 처한 상황을 바닥까지 보여주는 계기였으며 이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예고되었던 결과였던 것이다.
IMF 구제금융위기 이후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제기된 과정
주40시간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민주노총이 건설된 다음 해인 96년부터 민주노총 임단투 요구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97년 임단투에서 상당수의 사업장이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제기하고 주 43시간, 4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 운동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는 것은 IMF구제금융위기 이후의 시기다. IMF구제금융으로 조성된 위기 정세에서 정부와 자본은 97년 총파업으로 지체되었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관철해갔고, 노동자 운동은 개별 기업 수준에서나 전 사회적인 수준에서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논의는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목표로 98년 투쟁과정에서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1998년 2월, 민주노총도 함께 한 ‘노사정 합의’에서 노사정 및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근로시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민주노총은 이 합의 때문에 1기 지도부가 교체되는 파란을 겪었지만, 새로 선출된 2기 민주노총 지도부도 수 차례의 총파업 선언과 합의, 파업철회 등을 거치면서 6월 5일 노정합의 이후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철폐를 관철하지 못하고 노사정위에 복귀한다.
98년 상반기에는 정리해고 철폐 요구에 가려 중요한 요구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98년 하반기 들어 민주노총이 정리해고 철폐투쟁을 중장기적 과제로 전환함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요구는 전면에 부각된다. 정리해고 철폐가 단기적 투쟁목표가 아니라 중장기적 과제라는 ‘현실론’이 제기된 결과였는데,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을 고용안정의 핵심적인 요구로 제출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노총의 6월 총파업 철회와 노사정위 복귀 이후 정리해고제 철폐를 중심으로 하는 생존권 요구가 재벌과 정치권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개혁투쟁’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98년 6월의 합의에 따라 노사정위에 ‘근로시간위원회’를 설치하여 법정근로시간, 실근로시간 단축 및 임금조정 등 노동시간제도 개선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한 상태에서 1999년 6월에는 1999년 말까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률개정을 추진키로 노정간에 합의가 이루어진다.
보다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5월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가 발족한 후부터이다. 노사정위는 근로시간 단축문제, 관련임금 및 휴가■휴일문제를 함께 다루기로 하고 다시 연내에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노사정위는 ‘근로시간 단축관련 기본합의문’을 채택했는데, ① 주 40시간, 연간 2,000시간 이내로 단축 ② 휴일■휴가 합리적 조정 및 실제 사용하는 휴일■휴가의 합리적 조정 및 실제 사용하는 휴일■휴가일수 확대 ③ 업종별■규모별 단계적 시행이 그 내용이다. 결국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한 이 당시 합의에서 주목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휴일 휴가의 축소, 업종별■규모별 단계적 시행이라는 2003년 8월 법안의 핵심적인 문제점이 이미 ‘합의’안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논의는 계속되어 2001년에는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이 제출되었고 2002년 10월에는 노동부에서 정부입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당시 경제특구 저지 투쟁과 함께 이 투쟁을 결합시키면서 국회 앞 노숙농성 투쟁, 시한부 총파업 투쟁 등을 전개했다. 정권말기라는 조건까지 겹쳐 통과가 무산된 이 법안은 2003년 들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단일안까지 만들면서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결렬을 선언한다. 협상이 진행 중인 8월 14일, 국회 환노위 위원장이 개인자격으로 조정안을 제출했다. 당시 조정안은 임금보전, 휴가일수, 시행시기 등에서 노동계의 의견을 일정하게 반영한 내용이었고, 한국노총은 수용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노동계 단일안 관철을 요구했고 경총도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제출한 안이 통과되었는데, 이는 애초의 정부안에서조차 시행시기를 1년 연기한 최악의 안이었다.
이러한 5년의 과정 동안 민주노총의 요구는 애초에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에서, 실질임금 삭감과 노동조건 후퇴없는 노동시간 단축,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 희생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변해갔다,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근기법 개악 저지로까지 끊임없이 미끄러져 갔다. 애초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제기한 것이라던 노동시간 단축은 99년 이후 경기 활성화로 실업률이 낮아지자 이 주장의 근거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과 문화 향유에서 찾을 지경으로 변질되었다. 결국, 2003년에 와서는 어느 누구도 98년에 노동시간 단축이 제기된 이유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실업률 저하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 운동 내에서 사후적인 반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3년 8월, 대중투쟁으로 진행되지 못한 근기법 투쟁
작년 11월에 진행된 민주노총의 근기법 개악 저지, 경제특구 저지 투쟁은 근기법 개악이 유예된 상황에서 힘없이 마무리되었다. 당장의 가시적인 위협이 인식되기 힘든 경제특구 저지투쟁은 대중적인 참여를 조직하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이에 비해서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임금삭감을 불러올 노동시간 단축법안에 대한 반대투쟁은 조직하기 수월했고, 이에 따라 11월 투쟁의 주된 동력은 근기법 개악 반대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당시에 근기법 개악이 유예된 상황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경제특구 반대투쟁으로 대중투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올해 상반기를 거치면서 대중투쟁을 형성하기 힘든 방향으로 변화되어갔다는 점이다.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연맹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사업장들은 금속노조의 집단교섭과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대공장 사업장의 임단협을 통해서 적어도 직접적인 임금삭감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냈다. 금속노조가 자동차 하청업체에 대해서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사항을 완성차 업체의 타결을 참고하여 정하도록 한 상황에서, 8월 6일 현대자동차노조의 임단협이 이루어졌다. 법안통과 이전에 이미 이들 제조업, 대공장 사업장 노조와 조합원들은 근기법 개악을 저지해야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금속산업연맹과 함께 민주노총의 주된 투쟁동력이라 할 수 있는 공공연맹 소속의 공기업 노조도 대다수 사업장에 이미 42시간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임금삭감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조건이었다. 더구나 이미 철도노조 등 궤도 부문은 한바탕 투쟁을 전개하고 난 이후 극심한 현장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자 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과제로서의 근기법 개악 저지 요구는 대중적 힘을 얻기 힘들었다. 민주노총의 주된 투쟁동력을 형성해왔던 노조들의 이해가 직접 관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이 불안정노동자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라 해도 그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런 상황에서도 총력투쟁을 전개해야한다는 당위적인 입장을 유지했지만 주로 활동가와 간부들이 동원된 여의도 노숙투쟁 이외에 대중적인 현장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노동시간 문제와 관련된 단협이 이미 타결된 상태에서 그러한 현장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실제의 투쟁일정도 투쟁사업장 조합원들과 간부대오의 참가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결국 이 법의 통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게 되는 여성/중소/영세/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이 직접 투쟁에 나설 수 없는 조건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무관심은 치명적인 것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기방어적 실리주의에 갇히지 않도록 투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이것이 실패할 경우에 그것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지가 이번 투쟁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계속되는 불안정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대신 막을 수는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한다. 불안정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실천이 더욱 요구되는 지점이다.
개악된 근기법 통과가 말해주는 것
정부는 IMF 구제금융 이후 정리해고 법제화, 변형근로의 확대, 근로자파견법의 제정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노동유연화에 반대하면서도, ‘대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제기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하나의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대안’이라기보다는 단지 보완물일 뿐이었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 운동이 항상 제기해온 요구사항이었다. 게다가 남한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상당히 긴 것으로 악명이 높고, 유럽 각국에 비해서는 약 600~900시간 정도가 길고,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약 500~600시간 정도 더 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의 단축 요구는 정당한 것일 수 있지만, 현재 그것이 제기되는 정세적 맥락에서는 문제이다.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유연화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노동자측이 양보하면서 ‘보상’을 요구하는 수세적인 것이었는데, 이미 이것이 제기되는 맥락은 노동유연화를 보완하는 것이었다.
결국 노사정 협상에서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이후 법제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이란 노동시장의 유연화의 유기적인 일부로 배치되어야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결국 2003년 여름의 근기법 개악으로 실현되었다.
노동시간단축이 휴가휴일의 축소와 병행되고 장기간에 걸친 변형근로제와 결부되어 시행되기 때문에, 힘없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로 인한 절대적 혹은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매우 높다. 여기에 시급제 또는 일급제 형태의 임금제도를 적용받는 상당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해 오히려 직접적인 임금손실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한편 단계적 법률시행으로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새로운 노동시간 제도의 적용이 상당기간 지체될 경우 하청화, 용역화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지연하려는 시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이 하나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개혁을 완성하는 요소가 아니며 오히려 이것은 일련의 정책 패키지의 일부라는 점이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연동되는 정규직에 대한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변형근로제의 확대, 정리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 보호입법의 부분적 도입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 인구의 관리, 노동자운동의 ‘사회적 합의주의’ 포섭(집단적 노사관계법 개정과 지역 업종별 노사정위, 산별교섭) 속에 위치하는 전반적인 노동체제 변화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2003년 들어 8월의 근기법 개악을 필두로 해서, 비정규직 보호입법이 논의되고 있으며 사용자 대항권 등이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내년초 임시국회에서 다루어질 예정인데, 노무현 정권은 정권 초반에 이러한 과제들을 모두 마무리할 것이다.
법 개정의 정치적 의미
한편 최근 근기법 개악과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등은 90년대 초중반 이후 김영삼 정권을 거쳐 김대중 정권 시절까지 계속된 노사관계 제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합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의 노사정 합의에서 유지된 합의는,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87년 이후 변화된 계급정치 지형에 맞게 민주노조 진영을 합법화하는 등 ‘양보’를 통해 제도적으로 포섭하고, 개별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중심으로 법 제도를 개혁,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에 걸맞게 노동시장 유연화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96년 노개위 논의부터 97년 총파업 이후의 법개정, 98년 노사정위 합의에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민주노총도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구상에 호응하였고 결국 민주노총의 제도화(합법화, 국가보조금 수령)와 노동시장 유연화(근로자파견법, 정리해고 수용)는 상호교환될 수 있었다.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재벌개혁’, ‘노동시간 단축’ 등에서도 민주노총과 일정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노무현 정권에 들어 굴절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사업장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전투성을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제시된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은 이제까지의 합의와는 달리 조직된 노동자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를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데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방안을 노동자운동과 전반적으로 공유하기 힘들다는 진단이 깔려있다. 이번 근기법 개악이 98년 노사정위 합의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 할 때, 이는 단지 합의된 내용이 전반적으로 제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시점에 이미 새로운 신자유주의자들의 합의가 형성되고 또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개별적 노사관계에서 노동유연화를 더욱 밀고 나가지만 이전처럼 집단적 노사관계의 양보를 통해 ‘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활동반경을 더욱 제약하면서 이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집단적 노사관계의 ‘양보’라는 것이 87년 이후 법을 넘어서 이미 물질화된 노사관계의 구조를 법적으로 추인하는 형태를 취했던 것이라면 이제는 이미 그러한 물리적 배경은 소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노동법 개악안 통과는 98년 노사정위 합의로 시작된 과정을 마무리하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노동자운동의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해서 개입하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전과 같은 방식의 타협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이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의 구상이 관철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위노조의 개별적인 대응이 아니라 전국적 공동투쟁을 준비해야한다
근기법 개악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민주노총과 노조들의 대응은 단위노조의 임단협으로 노동시단 단축문제에 대응했던 이제까지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은 법 개정 이후에는 단위 사업장에서 임단투를 통해서 임금 저하, 노동조건 개악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근기법 개악에 따른 사용자들의 공세를 저지하고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투쟁을 전개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은 새로운 것도 아닐뿐더러 노동조합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투쟁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단위노조의 단협 투쟁을 통한 해결은 금속노조의 집단교섭이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노조의 상반기 임단투처럼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방식이다.
단위노조의 임단투를 중심으로 대응하자는 입장이라 근기법 개악 반대 투쟁은 하반기 민주노총 투쟁과제에서도 빠져있다. 내년 임단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위노조의 임단투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그것이 기업별 투쟁이든 산별 투쟁이든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이는 이미 2003년 상반기에 전개했던 투쟁이고, 2003년 여름 근기법 개악을 저지할 수 없게 했던 투쟁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2003년 근기법 개악저지 투쟁에 대중적인 현장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가 ‘단협을 통한 단위노조별 대응’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따라서 내년 투쟁에서는 오히려 각 사업장의 단협 개악저지 시도에 따른 쟁점들을 단일하게 묶어내고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 상반기에는 각 현장에서 단협 개악요구가 사용자로부터 공세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개악된 근기법 부칙4조에서 언급하는 법 개정사항의 단협 반영 조항이 직접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정부는 통상임금 저하 금지 조항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이 규정이 강행규정이 아니라 선언규정이라고 해석했지만, 2004년에 단협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사업장이나 당장 2004년 7월부터 주40시간제를 도입해야하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는 첨예한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한편,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바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서 제시된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대한 각종 개악이 내년 봄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내년 봄에는 사업장 단위에서 사측의 단협 개악 요구와 함께 개별적 노사관계법에 이어 집단적 노사관계법조차 개악하려는 공세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투쟁을 전국적인 연대투쟁으로 모아내고 개악시도를 분쇄해야한다. 민주노총 출범 이후에 실종되었던 전국적인 공동임단투를, 시기집중만이 아니라 요구안의 통일로 활성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법안의 내용 자체를 다시 쟁점화, 개정을 요구해야한다. 이미 개정이 이루어진 법안이지만 ‘논란이 되는’ 것이 되도록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또한 시행시기와 독소조항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면서 동일한 요구를 현장에서 관철해냄을 통해 법안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고 향후 법 개정을 압박해야한다.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정규직 연대를 강화해야한다.
또한 각 현장에서 공세적인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에 나서야한다. 이번 법안이 심화되고 있는 노동자들간의 분할을 강화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전반적으로 강제하려는 것이라면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투쟁의 연대가 관건이다. 사업장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정규직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부담을 비정규직에 전가하거나 비정규직을 충원하는 방식의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내 하청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작업장 안에서도 주40시간제의 도입시기가 달라지면서 갈등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규직 노조가 내년 임단협 과정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부담을 비정규직에 전가하는 방향으로 교섭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동일한 시기에 주40시간제를 도입하고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후퇴가 없도록 함께 투쟁을 조직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활성화하고 내년 임단투에 공동의 요구를 결정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한다. 내년 임단투는 어느 때보다 노동자간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는 공동의 요구를 어떻게 제기하고 투쟁하는가에 따라 계급적 단결을 한발 더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슷한 이유로, 지역적 수준에서부터 대공장과 중소영세, 하청사업장의 연대투쟁을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공장 노동조합이 지역적 연대투쟁에 우선 나서야 하는 것은 물론, 연맹과 총연맹이 적극적으로 조직화 방안을 세우고 나서야한다.
98년 이후 지난 5년 동안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결과적으로는 개악된 노동법만을 남겼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논리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98년 당시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의 과제가 이미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일부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시간 단축이 다른 개악 조항과 함께 통과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을 수 있다. 더구나, 그러한 효과를 막아내기 위한 법안의 조항들을 둘러싼 투쟁과정에서 노동자 운동의 대응방식은 이런 방식의 개악에 속수무책이었다. 주40시간 노동제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진 근로기준법 개악안이 통과된 지금, 이 법안이 강제할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 더욱 심해질 불안정 노동자들의 초과착취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이제까지 노동자운동의 투쟁에 대한 반성적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 운동 내부의 평가없이 정권과 자본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이번 노동시간 단축, 근기법 개악저지 투쟁과정에서의 실패를 매번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