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0 봄.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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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즘인가?③

수잔 왓킨스 | 뉴레프트리뷰 편집장
번역 김진영(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7. 새로운 운동들

 
그에 따라, 주류 페미니스트 모델은 그 중심지(즉 미국)에서조차 중위소득층 여성 문제의 해결책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그토록 많은 중위소득층 여성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위해 집결하기를 거부했거나, 심지어 트럼프에 투표했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면,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페미니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페미니즘은 어느 정도나 헤게모니적 패러다임에 도전하고 또 초월하는가, 또는 어느 정도나 헤게모니적 패러다임을 재생산하는가? 새로운 페미니즘은 다국적 기업, 관료화된 비영리기구, NATO 강대국으로 구성되었으나, 이제는 온건하게 여성화된 세계 질서로부터 얼마나 자율적인가? 이에 대한 어떤 확정적인 대답도 시기상조일 것이다. 전체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고, 항의 행동은 본성상 단명하기 마련이며, 의식의 변화는 그런 척도로 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페미니즘에 대한 예비적이고 매우 도식적인 조망을 통해, 새로운 페미니즘이 ‘통합, 규제, 투옥’ 모델에 얼마 만큼이나 도전했는지,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언뜻 보기에 오늘날 국가들 내 이질성과 국가 간 이질성 양자는, 기부자가 주도했던 고요한 1990년대보다는 열광적인 1980년대를 연상시킨다. 소셜 미디어라는 조직화 방법,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주제, 그리고 개인적이고 성적인 정체성에 관한 유토피아적이고 포스트-젠더적인 실천이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의 표현과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캠페인은 글로벌 페미니즘 시대에 확립된 기성체제와 공존한다. 동시대적으로 보면, 새로운 캠페인의 발전은 각 지역의 정치 문화와 사회적 조건, 경기순환의 지속성에 따라 강하게 차별화된다. 앞으로의 내용은 새로운 캠페인이 이미 영향을 미친 지역들 즉, 라틴 아메리카, 유럽, 미국을 다루고, 이들과 대조하기 위해 중국을 다룬다. (다른 곳들에서의 운동 발전을 예단하는 것은 아니다.) 각 사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캠페인만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며, 각 캠페인이 취하는 조직적 형태, 제기하는 주제, 그들이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검토할 것이다. 사회적 변화는 언제나 여러 요소가 융합한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기록을 남기기 위한 조사라고 할지라도, 어떤 광범위한 힘과 행위자가 그 지역의 특수한 결과물을 형성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 반드시 동반하는 수많은 오류와 누락이, 다른 이들이 더 나은 설명을 제시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라틴 아메리카 남쪽 뿔 지역 

새로운 라틴 아메리카 페미니즘은 우파 정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혹은 우파 정부의 등장 때문에 페미니즘의 스펙트럼 내에서 좌파에 위치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01년 경제 위기에서 분출된 대중운동이 공식적인 여성 기구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매년 열리는 ‘전국여성회합’은 원래 유엔 사업과 연결된 고루한 행사였으나, 대중운동은 이를 학생, 노동자, 피케테로스(피켓시위자) 12,000여 명이 모이는 강력한 회합으로 탈바꿈시켰다. 2014년, 이 회합은 라틴 아메리카 남쪽 뿔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여성이 모이는 집결지가 되었고, 3일간에 걸쳐 44,000명이 참여한 급진적인 집회가 되었다. 브라질에서도 1995년 베이징 회의를 위해 결성된 전국적인 조정기구인 ‘브라질 여성모임’이 좌파로 진화하면서, 반자본주의와 반인종주의를 표방했다. 이들은 재분배 경제정책, 정치 민주화, 성적 자유, 재생산의 자기결정권, 여성에 대한 폭력의 종식을 요구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여러 주제 중에서 가정폭력, 특히 여성살해가 중심 이슈가 되었다. 2015년, 즉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 말기에, 한 젊은 남성이 임신한 10대 여자친구를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게 결정적 계기가 되어, 여성 언론인들이 소셜 미디어 행동을 촉구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25만 명 행진을 포함해 전국의 도시에서 ‘#니우나메노스’(#NiUnaMenos,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라는 구호를 걸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피케테로스라는 대중운동의 전통 위에서 구축된 것이었다. 2016년에 이르러, 이 캠페인은 50만 명 이상이 참여한 대중시위를 조직하며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다. 그해 11월에는 10만 명의 여성이 전국여성회합에 참가했다. #니우나메노스는 또 다른 충격적인 뉴스에 대응하며 재생산권까지 의제를 확장했다. 교회 병원이 유산한 여성을 ‘낙태죄를 범했다’라고 고발하여 7년형이 선고된 사건이었다. #니우나메노스는 새로운 교황의 입장에 반대했고, 가혹한 임신중지 금지법과 싸우는 폴란드 페미니스트들이 요청한 2017년 3월 8일 국제 여성파업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 투쟁은 3일간의 대규모 파업으로 확대되었는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은 마크리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가 여성인 교사, 학생, 공공부문 노동자 시위에 동참했다. #니우나메노스의 영향력은 스카이프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었고, 라틴 아메리카 전역(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으로 확대되었고, 유럽 남부 지역(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르렀다. 
브라질의 새로운 페미니즘은 우파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14년간의 노동자당(PT) 지배가 끝나는 정치적 대혼란 가운데 등장하였다. 언론이 2015년 ‘페미니스트의 봄’(#PrimaveraFeminista)이라고 부른 흐름은 (다른 나라의 흐름과 반드시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특징적인 접근법과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 흐름의 일부는 노동자당에 대한 중상층의 반란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였고, 가두시위를 이끄는 신우파에 비할 때 그 흐름은 중상층의 반란에 더 매력적인 외양을 제공했다. 다른 이들은 지우마 대통령에 대한 역겨운 성차별주의적 공격에 분노했고 (예를 들어 언론은 대통령을 ‘플라나우투〔브라질 대통령 집무소가 위치한 지역〕의 거짓말쟁이 창녀’라는 별명으로 부르거나, 그러한 이미지를 활용했다), 테메르 신임 대통령과 의회 우파들이 밀어붙이는 수많은 반동적 법률(강간 피해자의 임신중지 불법화, 헌법에서 가족제도의 신성화, 민영화, 연금 삭감 등)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흑인의식운동, 사회경제적 이슈에 관한 운동, 빈민지역에서 군사화된 경찰활동에 반대하는 운동이 함께 결합했다. 대중시위 규모가 아르헨티나에는 못 미치지만, 성폭력은 핵심 이슈였다. 2016년 6월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10대 소녀 집단강간 사건은 상파울루의 3만 명을 포함하여 브라질 50여 개 도시에서 시위를 촉발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벌어진 #니우나메노스 행진과 연결되었다.  
주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지역의 새로운 페미니즘은 다양성이 가장 특징이다. 수많은 블로그(<페미니스트 블로거>, <흑인 블로거>, <잡년 행진> 등등)는 광범위한 이슈들(흑인 정체성, 몸의 정치학, 제도 비판)을 가로 질러 서로 연결된다. <페미니스트 블로그>에서 여성 오르가즘을 다루는 ‘쾌락의 해부학’은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이렇다. 브라질의 새로운 페미니스트가 브라질 정치에서 주변적 세력으로 남아 있다면, 아르헨티나의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국가적 영향을 미쳤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아르헨티나는 여성살해나 살인 사건 발생률이 높지 않다. 여성살해는 전체 살인사건의 절반가량이고, 여성살해와 전체 살인 발생률은 모두 미국보다 낮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언론은 공포와 선정성을 강조하는 방식(grand guignol)으로 성과 폭력을 다뤘는데, 이는 여성살해가 이렇게 두드러진 이슈로 부상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국가적 이미지 속에 존재하는 남성의 폭력(violencia machista)에 담긴 진실을 건드리기도 했다. (이러한 남성의 폭력은 인종청소의 전제였다.) 동시에 마크리 정부는 여성살해 이슈로 고조된 감정을 그가 제시한 ‘법과 질서’ 정책으로 흡수하고자 시도했다. (법과 질서 정책은 그의 경제적 조치보다는 더 인기가 있었다.) 예컨대 마크리 대통령 자신이 #니우나메노스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결과는 더욱 가혹해진 판결 방침이다. 또한 가정폭력 위험에 처한 여성을 위해 핫라인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의례적인 언사도 있었다. 이 운동의 다른 주요 주제, 즉 재생산권에 대해 살펴보면, 아르헨티나 의회는 임신 첫 3개월 내 임신중지를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는 마크리 대통령이 말한 입장과 상반된다. 한편 긴축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중해 지역 

유럽의 경우, 청년 실업률이 높고 유럽연합의 긴축정책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있으며, 주류 페미니즘이 자유주의 미디어 전반에 걸쳐 무제한의 헤게모니를 향유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이 부상했다.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패턴이 존재했다. 폴란드에서는 보수적인 임신중지 금지 법안을 무산시킨 2016년의 대중시위가 서로 연결된 집단 신경망으로 남아 있고, 다시금 대중시위를 조직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런던의 경우, (주류 페미니즘과 새로운 페미니즘 간) 세력판도가 국제 여성의 날에 전형적으로 드러났다. 공식 행진은 ‘케어 유케이’(CARE UK, 돌봄 서비스 관련 기업)가 스폰서를 맡았고, DFID(영국 국제개발부), PWC(매출액 기준 세계 1위의 다국적 회계 감사 기업), KPMG(다국적 회계, 경영컨설팅 기업) 등이 후원했다. 공식행진은 의회에서부터 트라팔가 광장까지 탈없이,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이를 의료서비스 중단과 강제적인 주택퇴거에 항의하는 시위로 확장하는 임무는 일군의 용맹한 성노동자들과 긴축반대 단체 <삭감반대 자매들>(Sisters Uncut)의 몫으로 남겨졌다.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완전히 새로운 투쟁 형태를 개척했다. 아르헨티나의 요청에 화답하면서, ‘이오 데시도’(Io decido, ‘내가 결정한다’) 임신중지권 활동가, 점거운동 단체, 여성보호소 활동가로 구성된 연합체가 2016년 11월 로마에서 ‘#논우나디메노’(#NonUnaDiMeno, 아르헨티나의 #니우나메노스와 같은 뜻) 행진을 소집했다. 25만 명 이상이 모여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렌치 정부의 공공의료에 대한 공격, 불안정 노동자의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에 맞섰다. 다음 날 참가자 집회에서는 젠더 폭력에 맞선 페미니스트 계획의 초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9개의 실무그룹이 그에 따른 여러 분야를 다루기로 했다. 그다음 1년간, #논우나디메노 집회가 이슈들을 토론하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열렸다. 정책의 핵심 조항을 정리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파업과 시위 전술을 합의하기 위한 일련의 전국적 모임도 열렸다. 
 

주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논우나디메노 계획, 즉 ‘피아노 페미니스타’(페미니스트 계획)는 주류 페미니즘 모델과 결정적으로 결별했다. 피아노 페미니스타는 성폭력 문제에 있어 형사처벌 접근법 대신 사회적 맥락을 다루었다. 즉 직장, 가족, 보건, 교육 제도나, 거대 미디어 기업이 유포하는 성차별주의적 이미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성과 의존성에 기반을 둔 전략을 분명히 거부했다. 피아노 페미니스타를 기초한 작성자 집단은 이탈리아어의 문법적 젠더화 문제를 다루려고 시도했다. 여성형 어미 –a와 남성형 어미 –o 대신에 @를 사용하는 것이 한 예다. 이들은 또한 여성, 페미니스트, 트랜스페미니스트(트랜스젠더와 관련된 페미니즘), 퀴어, LGBT*QIA+ 운동 간의 전국적 토론을 통한 수렴을 환영했다. 피아노 페미니스타는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요구했다. 또한 렌치 정부의 교육법의 철회, 자산·수입 조사 결과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복지 개혁의 철회, 불안정 고용 부문의 육아휴직 확대, 여성 보호소을 위한 기금, 이민자를 위한 시민권을 요구했다. 이들은 유럽연합의 더블린 조약이나, 리비아·터키와 체결한 치안 협약이 난민에 타격을 가하는 제도적 인종주의라며 비판했다.  스페인에서도 2018년 국제 여성의 날 축제에 500만 명 이상이 모였다. 이 축제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좌파-페미니스트 시장이 주도했지만, 수년간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a) 운동, 공공 부문의 ‘물결’(mareas) 투쟁, 퇴거 반대 운동, (자기결정권 요구를 최전선에 내세운) 페미니즘 운동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fACTIV 집단이 수도 자그레브에서 성폭력에 맞선 야간 행진을 조직했고, 민영화 정책과 집권당인 크로아티아민주연합(HDZ)의 재생산권 공격에도 맞서 싸우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논우나디메노 시위는 이탈리아 언론에서 폭넓게 환영받았으며, 그들의 ‘페미니스트 계획’은 2018년 총선에서 작은 진전을 이루었다. 보편적 기본 소득은 오성운동의 핵심 강령이 되었고, 오성운동은 총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유로존의 제도적 권력은 오성운동이 제시한 기본소득 정책의 이행에 반대한다. 유로존은 긴축지침에 대한 약간의 위반도 허용하지 않는 긴축정책의 방벽이자, 공식 페미니즘의 주요한 후원자다. 스페인의 집권세력인 인민당(PP)에는 2018년 여성파업의 규모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인민당은 이 파업을 지지하지 않은 유일한 주요 정당이었다. 그러나 카탈루냐에서 1978년 헌법을 둘러싼 정치위기가 전개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하여 제도권의 의제를 위해 여성파업의 에너지를 재가동하려는 시도가 곧바로 이어졌다. 스페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시들었고 퇴행적’이라고 보는 이들과 반대로, 《국가》(El Pais)는 8-M(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운동)이야말로 스페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역동적, 의식적, 다원적’임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치파오 페미니즘 

중국의 경우,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라틴 아메리카나 유럽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지배적이었다. 2015년 국제 여성의 날 전야에는 5명의 청년 페미니스트 반체제 활동가가 체포되었다가 나중에야 풀려났다. «중국부녀보»(중화전국부녀연합회의 신문) 기자 출신 인사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주요 블로그 웹사이트인 《페미니스트 목소리》(Feminist Voices)는 지난 2년간 (국제 여성의 날이 있는) 3월마다 폐쇄되었다. 공식 기구인 중화전국부녀연합회(ACWF)에는 경쟁자가 없다. 베이징은 이 영역에서 미국과 경쟁할 능력이 있다고 오랫동안 확신을 품었다. 여성 해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념이었다. 미국 트루먼 정부가 여성의 자리는 가정 안이라고 주장하던 때에, 중국에서는 여성이 생산활동 현장에서 환영을 받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75년 멕시코 여성대회에 열성적으로 참가했고, 그 4년 뒤에는 가장 먼저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을 비준한 나라 중 하나였다. 1990년대 중국의 성차별금지법은 동일임금에 있어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최고기준을 따랐다. 그 후로 젠더 불평등이 확대되었지만, 혁명기의 진보 덕분에 중국은 세계 기준으로 보면 젠더 평등에 관한 한 여전히 우수하다. 자수성가한 중국 여성 억만장자는 미국보다 더 많으며, 민간부문 여성 CEO도 미국보다 두 배 많다. 미디어나 제조업에서도 미국보다 더 좋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의 44%, 언론·출판 분야 편집자의 50%가 여성이다. 게다가 4개월의 유급 출산 휴가가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중국은 1995년 이래로 베이징 행동강령의 진전 상황을 감시하는 국제회합을 이끌고 있다. 2015년, 베이징 행동강령 20주년을 맞아 중화인민공화국과 국제연합은 젠더 평등에 관한 ‘세계 지도자회의’를 공동주최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석하여 연설을 했고, 여성의 권리를 ‘세계적 의제의 중심’에 두겠다는 중국의 약속을 재확언했다. 시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국내에서 ‘중국 특색을 지녔으며 사회주의적으로 발전된 젠더 문화’를 계속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화전국부녀연합회가 이 과정의 중심이 될 것이다.
중화전국부녀연합회는 세계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독특한 존재다. 중화전국부녀연합회의 조직적인 범위와 사회개혁 권한은 전미여성기구(NOW)나 여성국제민주동맹(WIDF)조차 보잘 것 없어 보이게 한다. 부녀연합회의 피라미드식 구조는 국가 수준에서부터 성(省), 시, 구, 현, 향, 촌 수준까지 연결되어 내려가며,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각 단계의 부녀연합회 사무소는 해당 단계의 공산당 조직으로부터 인력과 예산을 지원받는다. 부녀연합회 지도부는 간부단을 감독하지만, 그들을 직접 임명할 수는 없다. 국가 수준에서 보면, 부녀연합회는 여러 여성 연구기관과, 일련의 잡지, 주간지, 일간지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수천 명의 지식인이 고용되어 있고, 그중 꽤 많은 사람이 페미니스트다. 부녀연합회가 책임을 맡은 바는 국가기관 내에서 여성의 관심사를 옹호하는 것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바는 노동과 환경보호를 위해 여성을 조직하며, 국가의 출산정책을 강제하는 것이다. 부녀연합회 간부는 ‘한 자녀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임신중절이나 불임 시술을 조직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지역 공산당 간부에 책임 지고 설명해야 했다. 2016년부터는 아이를 한 명 둔 어머니가 하나를 더 낳도록 압력을 가해야 했다. 젠더 평등은 부녀연합회가 맡은 바의 일부이지만, 그 과업은 재생산(출산) 목표처럼 당 규율로 강제되지 않으며, 소도시와 향 수준으로 가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전략적 패러다임은 일종의 우생학적 페미니즘이다. 이는 페이비언주의자와 마거릿 생어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중화민국 시대의 현대화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가지 핵심적인 주제는 중국 여성의 ‘자질’(quality)을 향상하자는 프로젝트와, 성적 차이에 대한 강조다. 문화혁명기의 남녀동일 평등주의(예를 들어, “시대가 변했다, 남성과 여성은 같다!”)는 1980년대 이래로, ‘자연적’ 특성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날카롭게 공격받았다. 젠더 평등은 남성-여성의 상호보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재정의되었고, 이러한 상호보완성은 조화로운 전체를 위한 기초로 여겨졌다. 그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은 유학의 내외(內外) 범주에 맞추어 조정되었다. 중화전국부녀연합회의 《도시여성》과 같은 고급 잡지는 새로운 중국 여성을 선전했는데, 새로운 여성은 현대적이고, 극도로 여성스럽고, 부유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자산을 보유한다. 즉 순종적인 딸, 매력적인 연인, 교육 수준이 높은 아내이며, ‘적절한’ 직업생활(교사, 심리학, 문예)을 누리고, 그에 따라 문화적 소양과 발전가능성이 높은 아이를 기를 수 있다. 부녀연합회는 여성의 자질을 제고하기 위한 ‘사개자신’(四个自信)(자립성, 자존감, 자신감,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다. 
50년 전,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들고 있다!”(마오쩌둥)라는 중국 페미니즘의 구호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한편 ‘사개자신’ 페미니즘이 국제적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갈 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그것은 상위 카스트 여성의 순결을 지키자는 인도의 힌두주의 프로젝트와 공명하고, 미국에서 셰릴 샌드버그가 펼치는 ‘린 인’(Lean In, 기회에 달려들기) 운동과도 틀림없이 유사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중화전국부녀연합회가 맡는 국가적 책임분야는 부녀연합회가 더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보유하도록 보장한다. 최근 국제 여성의 날 프로그램은 ‘이중적 정체성’을 다뤘다. 동일한 여성들이 본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하나는 안전모를 쓴 건설노동자로 찍었고, 다른 하나는 치파오를 입은 패션쇼 모델로 찍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집중공세에 맞서, 용감한 청년 페미니스트들이 NGO의 지원을 받아 차별 반대 이슈로 대중동원을 시도했다. 거리 퍼포먼스와 소규모 플래시몹을 진행하면서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 고등교육에서의 차별, 동성애 혐오와 같은 이슈를 제기했다. 당국은 이런 시도를 쉽게 진압한다. 그러나 이 운동이 벌어진 후, 외부 논평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여성이 소셜 미디어에서 성차별에 관해 더 많이, 더 강경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차이나 데일리》(중국공산당 일간 영자신문)의 기사가 하비 와인스틴 사건을 다루며, 성적 괴롭힘이 발생하는 빈도가 낮은 게 중국 문화의 미덕이라고 언급하자 온라인 항의가 빗발쳤다. 2017년 3월, 《페미니스트 목소리》가 팔로워들에게 ‘도저히 참고 들을 수 없는 말’을 열거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 목록의 맨 위를 차지한 말은 “중국은 이미 젠더 평등을 달성했다”였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준비하던 1990년대 후반, 사회서비스가 지역 노동단위로부터 단절되고 탁아소는 폐쇄되었다. 그 후로 ‘한 자녀 정책’ 아래 태어난 외동딸은 서구 여성보다 훨씬 더 큰 부양 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들은 자기 자식을 돌봐야 할 뿐만 아니라, 부담을 나눌 다른 형제자매 없이 혼자 부모와 시댁을 봉양하라는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미국처럼 새로운 가사노동자 계급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중화될 수 있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상황은 중국에서 새로운 페미니즘을 배양할 수 있으며, 새롭게 등장할 페미니즘은 정말로 독특한 것이 될 수 있다. 
 

미국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새로운 페미니즘이 들끓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을 더 폭넓게 살펴보면 2008년 금융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페미니즘 시대가 낳은 편향적 결과에다가 급격한 세대적 전환을 더했다. 1980년대에는 노동자계급 남성이 구조조정의 예봉을 감내해야 했다면, 이제 대졸자 집단이 취업 기회의 가장 급격한 축소라든가, 가장 강렬하게 고조된 경쟁적 긴장감에 직면했다. 전문직 계층으로 편입이 쓰라린 제로섬 투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존 페미니즘과 다르며 급진적인 경향(퀴어와 교차성 페미니즘 활동가, 강간반대 캠페인)이 대학에서 부상할 수 있었고, 그러한 경향이 미국 페미니즘에 새로운 간부층을 제공했다. 그러나 좁아진 취업 기회가 가하는 압력은 모순적이다. 이전 불황기와 마찬가지로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가 부여하는 자격이 매달릴 수 있는 지푸라기가 될 수 있고,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드문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문화정치학은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라는 관점에 이미 깊이 물들었다. 여기서 새로운 운동은 반차별 패러다임의 한계를 넘어 밀고 나가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가?
잠정적인 대차대조표는 뒤섞여있다. 2008년 경제 붕괴의 초기 여파로, 정치적 분노가 급격히 표출되어 연속적인 반란의 물결을 일으켰다. 2010년 학생시위, 2011년 ‘점령하라’(Occupy) 운동, 2013년~2014년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2015~2016년 버니 샌더스의 대선후보 캠페인 등이다. 이 모든 사례는 정도는 달라도 기성 정치모델에 대한 공격이었다. 긴축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반격은 대학 제도와 졸업 후의 불안정한 생활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으로 나아갔다. ‘점령하라’ 운동은 월스트리트를 겨냥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여성운동이다. 그들은 총기 규제, 학교, 주거 문제를 두고 수년간 전개된 지역공동체 행동에 기반을 두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은 ‘범죄와의 전쟁’, 즉 흑인 남성에 대한 영속적인 진압작전에 맞서는 전국적 봉기로 읽힐 수 있다. 기존 제도 내에서 활동하는 샌더스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했고, 단일 보험자 건강보험을 주창했다. 페미니즘적 의식의 새로운 표현이 학생시위 속에서 탄생했고, ‘점령하라’ 운동 내에서 분명히 표출되었으며,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에서 중심에 섰고, 샌더스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의 물결을 통해서 클린턴을 지지하는 주류의 공세와 전투를 벌였다. 
이와 달리, 또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펼쳐진 대중운동과 다르게, 교육개정법 9조를 두고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진 새로운 시위를 추동했던 힘은 정부의 최정점으로부터 나왔다. (교육개정법 9조는 “미국의 교육 내에서는 누구도 성별에 따른 어떤 배제나 불이익,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2011년, 대통령 지지율 추이가 부정적이고 1,500만 명의 실업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지지층에 자극을 주려면 ‘희망과 변화’(2008년 미 대선에서 오바마의 표어)를 상징하는 저비용 정책이 필요했다. 초점집단을 대상으로 한 신중한 실험을 거친 결과, 동성 결혼, 이민자 아동, 캠퍼스 내 성폭행(sexual assualt)이라는 세 가지 이슈가 선정되었다. 마지막 이슈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의 정책 목록(즉 여성 친화적 법률체계, 강간에 관한 법률적 정의의 완화, 범죄 범위의 확대)을 노린 일종의 제스처였다. 오바마가 2012년 재선 출마를 공식 발표한 날, 교육부는 대학 행정당국에 ‘친애하는 동료에게’라는 편지를 보내서 성폭행 의제를 많이 포함한 새로운 9조 관련 규정을 상세히 알렸다. 고발자가 제시해야 하는 증거 기준이 완화되었고, 피고발자에 대한 정당한 절차는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성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1986년에 연방대법원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성적 괴롭힘의 기준으로, 합리적인 제3자의 시각에서 볼 때 ‘심각성’, ‘침투성’(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침), ‘해로운 영향’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교육부의 새로운 규정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사실상 제거되었고, 고발자의 ‘원하지 않았음’이 유일한 기준으로 남았다.
대학 행정당국은 2011년 ‘친애하는 동료에게’ 편지를 받고 처음에 얼마간 혼란스러웠지만 이를 환영했고, 그 후 관련된 여러 계획이 잇따라 나왔다. 경찰의 흑인 남성 살해 사건들로 오바마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러한 계획은 그에게 유리한 신문 헤드라인을 이끌어냈다. 2014년 백악관 태스크포스는 압박을 강화했는데, ‘성폭력’의 범위를 확대하여 신체적 외모에 대한 언급도 포함하도록 했다. 동시에 교육부 민권국은 새로운 ‘친애하는 동료에게’ 규정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캠퍼스 조사에 착수했다. 2015년 바이든 부통령은 대학을 순회하며, 학생 강간은 ‘전염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표현은 닉슨과 레이건이 ‘마약과 범죄와의 전쟁’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그는 대학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 비율이 ‘5명 중 1명’이라는 헤드라인의 수치도 퍼뜨렸다. 행정부가 이끌고 나가자, 기업 기부금이 성적 괴롭힘에 반대하는 학생 캠페인에 쏟아졌다. 2013년 설립된 〈당신의 제9조를 알자〉(KYIX)라는 단체는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청소년의 지지자>(Advocates for Youth)에서 분리된 것으로, 원래는 10대 임신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기업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연간 6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캠퍼스 강간을 끝내자〉(EROC)도 2013년에 설립되었는데, 세 명의 학생 강간 피해생존자가 주도했다. 이 단체는 케링 재단과 구찌 사의 후원을 받았다. 2014년 맨해튼 미디어의 대대적인 보도 덕분에 이러한 새로운 운동가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캠페인은 불안정 노동자와 실업자들을 동원하며 기반이 광범위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캠퍼스 강간을 끝내자〉와 〈당신의 9조를 알자〉의 에너지는 대학 시스템 내로 제한되어 있다. 이들의 전술은 9조라는 법적 한도에 따라 이미 결정되었다. 즉 9조의 논리에 따르면, 여학생을 ‘보호할 의무’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 대학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로마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운동이 자율적인 집단행동을 강조한 것과는 정반대다. “여성의 존재야말로 거리를 안전하게 한다.” 이것이 #논우나디메노 운동의 구호였다. 이탈리아 페미니스트들은 선언문을 공식화하는 데 1년간의 논쟁을 거친 반면, 미국 캠퍼스 캠페인의 방향은 대체로 행정명령을 통해 위로부터 설정되었다. 또한 그 방향은 성폭력의 정치학을 두고 오랫동안 이어진 페미니스트 간 입장 차이를 무시했다. 특히 사후의 범죄처리 절차보다 물질적, 공적, 개인적 자기방어 형태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무시했다. 미국 9조 캠페인에 담긴 흑백논리식 법률주의에는 브라질 운동의 다채로운 문화정치학이 설 자리가 없다. 반면 브라질 운동에서는 성적 즐거움(sexual pleasure)이 중심지를 차지하고 있다. 퀴어, 젠더유동적 생활방식과 함께 하는 실험은 미국에서 널리 퍼졌는데, 이러한 실험은 캠페인 활동가들의 언론 발표에서 종종 의도적으로 윤색되었다. #논우나디메노 운동은 그들의 반성폭력 캠페인을 인종 문제화하려는 언론의 모든 시도를 단호히 물리친 반면, 〈캠퍼스 강간을 끝내자〉의 활동가 일부는 대의를 위한 명분으로 그런 언론과 어울렸다. 어느 활동가가 동조적인 기자에게 한 말을 보자. 
“만약 당신이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게 된 백인 여성을 돕지 않는 행위를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게 한다면, 만약 당신이 우리가 쫓아내고 증오할 수 있는 범죄자에 대해 말한다면, 만약 미국인이 사랑하는 가혹한 처벌과 징벌적 조치로 우리가 그들을 제거한다면...”
그녀는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요지를 알 수 있었다. 얻을 이득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생존자가 주도하는 새로운 강간반대 캠페인의 정치문화는 더 오래된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비교할 때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즉, 개인적인 트라우마라는 관념이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종속이라는 구조적 개념을 대체했다. 그 주체는 이제 ‘계급으로서 여성’이 아니라 ‘나’였다. 매트리스 시위는 호루라기를 불고 다니던 펑크 시대의 ‘밤을 되찾자’ 행진보다 이론적으로 훨씬 더 정교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접근법은 모두 매우 법률주의적이었고, 징벌적 규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여성 연대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자신의 신체 완전성을 방어하기 위해 여성의 문화적, 심리적 역량을 강화하려는 대안적 페미니즘 프로젝트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프로젝트가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변호사는 명확한 정책 목록을 제시했다. 그것은 사소하고 단순한 조치에서 시작해서 법률체계의 수정을 향해 가는 이행 프로그램이었다. 즉 성폭력의 법적 정의를 확대하고 증거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범죄화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제 그 의제는 캠퍼스 활동가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지배한다. 
한편 미국 캠퍼스 캠페인의 구체적인 결과는 대학 기관의 이해관계 때문에 과잉대응으로 나타났다. 대학 관료는 성폭행을 에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증명할 수 없으면 그 사건에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고 통지를 받자, 겁에 질려 지나친 규정 준수로 대응했다. 오버린 대학 당국은 금요일 밤 11시에 학생 술집에서 ‘원치 않는 접촉’을 한 사람을 경찰이 끌고 나갔다고 보고하는 이메일을 캠퍼스 전체에 보냈다. 일괄적으로, 대학은 이 분야의 위기 컨설턴트가 광고하고 여러 학생 단체가 지지하는 ‘적극적 동의’(affirmative consent) 정책패키지를 시행했다. 와이오밍 대학은 학생들에게 ‘자발적인 동의,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동의, 열정적인 동의, 말로 표현한 동의, 강요가 없는 동의, 지속적인 동의, 적극적인 동의, 정직한 동의가 없다면 모든 것이 성폭행’이라고 경고한 많은 대학 중 하나다. 바디 랭귀지는 잘못 해석될 수 있다. 동의란 말로 표현된 ‘예스’를 요구한다. 또는 심지어 “예스, 예스, 오! 예스!”이어야 한다. 조지아 서던 대학에서 합법적 섹스는 ‘창발적 합의, 열정적인 합의, 창조적인 합의, 서로 원하는 합의, 서로 의사를 전달한 합의, 상호 합의, 정직한 합의, 말로 표현된 합의’를 요구한다. 엘론 대학에서는 ‘각자의 성적 행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고, 모호하지 않으며, 긍정적이고, 열렬하게 동의가 소통되었을 때만’ 성폭행으로 고소될 위험을 피할 수 있다. 2015년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의 입법부는 ‘적극적 동의’ 법을 통과시켰는데, 명백하게 말로 허락을 받지 않은 모든 성적 행동을 성폭행으로 처리하라고 학교에 요구했다. 
캠퍼스 성폭행 캠페인과 #미투 운동(#MeToo) 사이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민주당 유권자들의 반응은 공황, 충격, 비탄이었다. 클린턴에 투표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있었다. “모든 페미니스트는 단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긴급성이 2017년 1월 백만 명의 워싱턴 여성 시위를 추동했고, 여성 행진의 배후에 있는 주류 페미니스트 로비단체의 통합을 이끌었다. 여성행진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클린턴의 보좌관들이 주도하는 전국적인 네트워크인데, 여성행진은 너무나 체제 순응적이어서 (샌더스의 공약과 같은) 단일보험자 건강보험 시스템도 지지할 수 없었다. 한편 민주당이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야권을 이끄는 것은 뉴욕 언론의 몫이 되었다. 이처럼 분노가 고조된 분위기에서 하비 와인스틴 같은 상습 성추행범은 흠잡을 데 없는 민주당원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트럼프 대리인이 됐다. 《뉴욕 타임즈》와 《뉴요커》가 보기에, 와인스틴의 성적 약탈에 관한 이야기는 호화로운 무대배경, 유명인사의 가십, 외설적인 세부묘사, 유력 인물의 몰락이 주는 쾌감(Schadenfreude, 남의 불행이 주는 쾌감)을 결합했다. 이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는 페미니즘적 정서로 포장되었다. 성적 괴롭힘에 반대하는 미국의 운동과 유럽, 라틴 아메리카의 페미니즘 캠페인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 중 하나는 지도적 인물의 사회적 지위였다. 이탈리아의 여성 보호소 활동가나 아르헨티나의 실직한 간호사 대신에, 미국에서 사태를 지배한 사람들은 할리우드-맨해튼 중심축에 속했다. 시위는 거리가 아니라 오스카나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레드 카펫 위에서 벌어졌다. 팔로워에게 자신이 겪은 성적 괴롭힘에 대해 해시태그 #미투를 써서 트윗을 올리도록 초대한 사람은 <멜로즈 플레이스>와 <웻 핫 아메리칸 썸머>에 출연했던 과거 스타였다. (미국 트위터 사용자 50만 명 이상이 여기에 참여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 뒤를 이어 홍수처럼 쏟아진 증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7년 10월 초, 최초 분출 시기에 여성의 포스팅 중 상당수가 10대 초반에 ‘의붓아버지’, ‘삼촌’, ‘아버지의 친구’가 자신을 더듬었던 기억이나, 직장 초년 시절에 젊은 여성 직원을 직장 생활에 주어진 (급료 이외의) 특전으로 여기는 중년 남성이 자신을 만진 기억을 담고 있었다. (관계) 진전을 거절당한 남성이 가한 보복을 말하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는 집단적 의식 고양의 계기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치유효과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증거가 되었다. 치유효과란 숨막히는 침묵, 즉 악몽처럼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무력함을 깼다는 뜻인데, 이러한 침묵과 무력함은 수많은 젊은 여성이 남성 추행에서 핵심적 부분으로 경험했던 바다. 증가란 사회적 사실로 존재하는 성적 공격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지 그 규모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타라나 버크가 처음으로 미투를 제기했던 사례나, 브라질의 <올가를 생각하라>(ThinkOlga) 사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경우 운동의 초점은 여성 자신에 있었다. 이름을 말하거나 응징을 요구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는 여성이 서로 대면하여 자신과 친구들이 겪은 경험에 관해 셀 수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촉진했다. 아마도 이는 1970년대 이래로는 볼 수 없었던 규모였다. 이러한 운동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방식으로, 남성을 동조자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주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가장 협소한 운동이었다. <올가를 생각하라>나 버크의 NGO와 달리, 할리우드의 미투 운동은 반차별과 관련된 새로운 법률방어(소송지원) 자선단체인 ‘타임즈 업’(“이제 시간이 다 됐다”)을 능가하는 활동, 즉 학대로 고통을 받은 여성에 대한 물질적, 심리적 지원을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에서처럼 폭력을 둘러싼 더 광범위한 사회적 의제를 개발해내려는 시도도 없었고, 브라질처럼 대안 문화 프로젝트도 없었다. 그 대신에, #미투가 작동했던 패러다임, 즉 강력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한 성적 불만(sexual discontent)의 분출에 정치적 형태를 부여했던 패러다임은 대체로 다양하게 변형된 급진주의 페미니즘, 반차별 정책, 범죄-사법 접근법으로 제한되었다. 캠퍼스 성폭행 캠페인은 그러한 패러다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즉 모든 고발을 사실상 진실(bona fide)로 인정하고, 사후적인 남성 처벌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남성 일부를 극적으로 처벌함으로써 남성 모두를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실질적, 문화적, 물질적 지원을 전면에 내세우는 예방전략을 배제했다.  
그러한 틀 안에서는, 사소한 경범죄에 대한 유죄 추정과 불균형한 (과잉)처벌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더 큰 억제 효과를 낳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재판이라는 새로운 실천이 더해졌다. 소셜 미디어 재판에서는 공정하게 항변의 기회를 준다는 개념을 완전히 폐기했다. 결과적으로, #미투 증언을 두고 잠정적으로 형성된 온라인 여성 연대는 종종 밀려났고, 개별 남성을 겨냥한 보복성 캠페인이 이를 대신했으며, ‘고발되면 유죄’라는 캠퍼스 규범이 강요되었다. 소위 ‘깨어난’ 남성은 이러한 맹렬한 비난 속에서 종종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는데, 아마도 공격이 최선의 자기방어라고 계산한 모양이었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UAC) 시절을 연상시키는 가장 터무니없는 사건들 경우에, 광신적인 사람들은 익명이고 증거가 없는 제3자 고발에 근거하여 고전 목록에서 고발된 남성의 작품을 퇴출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과 유색인에게 편파적인 재판 제도에서, 고발자의 공평한 발언권을 위한 싸움은 피의자의 공평한 발언권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아가, 이를 넘어서, 성적 괴롭힘에 대한 효과적인 페미니스트 정치는 성적 괴롭힘이 차별적 양상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성적 괴롭힘은 인생주기 과정에 따라 공시적으로 변화하며, 사회적, 계급적, 인종적 상황에 따라 통시적으로 변화한다. 이탈리아의 피아노 페미니스타는 그러한 차별적 양상을 인식하고자 했다. 희망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운동은 남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더 급진적이고 더 광범위한 기반을 지닌 캠페인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이다. 역시 희망적으로 말하자면, #미투의 순 효과는 더 많은 중위소득 여성이 목소리를 내도록 할 것이며, 남성이 거절을 당했을 때 보복하지 못하도록 더 강하게 억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미투를 둘러싼 운동은 새로운 결실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다. 이 운동은 성적 괴롭힘을 가능케 하는 조건, 예를 들어 불안정 노동, 인종화된 젠더 고정관념, 범죄자화된 이민자 지위라는 조건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조건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폭력은 대부분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미투 운동은 트럼프 당선 이후 주류 미국 페미니즘을 재통합하는 과정의 일환이 되고,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도전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긍정할 위험이 있다. 와인스틴 사건은 문화 산업을 발본색원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레드 카펫을 가로지르는 페미니스트 활동가 퍼레이드는 할리우드를 핑크워싱해 주었고, 그 명성에 묻은 오점을 씻어 냈다. (핑크워싱은 젠더평등의 상징인 분홍색으로 현실을 가리고 세탁하려는 전략을 뜻한다.) #미투 운동은 ‘썩은 사과’ 몇 개를 제거했지만, 더 광범위한 시스템을 지금 그대로 내버려 두는 위험을 감수했다. 역설적으로, 이는 결국 트럼프가 권력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던, 바로 그 실패한 페미니즘 조류를 다시 인정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미국 모델은 당연히도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또는 아르헨티나 판본보다 더 넓은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성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주도적 이슈로 남아 있는 반면, #미투가 소셜 미디어에 미친 영향은 불균등했다. 미국에서 트위터 게시물이 50만 개 올라온 데 비해, 미국 밖에서 가장 높은 수치는 프랑스(10만 개), 영국(7만 4,000개), 캐나다(4만 3,000개)이고,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호주, 인도는 1만 3000개~2만 4000개 범위에 있다. 주류 언론의 지지가 없고 소셜 미디어 사용도가 낮은 그 외 지역, 즉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에서는 네 자리수 또는 이하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다가 맨해튼 언론이 이제 너무 충분하다고 판단하자, #미투는 미국 내에서 사그라질 기미를 보였다.
지금까지 스웨덴은 미투를 자국의 운동으로 적극적으로 채택한 유일한 국가다. 대중집회, 전문직 부문이 자기 분야에서 벌어지는 [성적] 괴롭힘에 항의하는 청원시위가 진행되었다. 왕실은 고위급 정책토론에서 이를 지지했다. 다른 국가를 살펴보면, 미투의 영향력은 정부 수준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났다. (이 역시 지금까지 검토한 다른 운동과 다른 점이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은 더 가혹한 처벌과 억압적 법을 다수 도입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동 규제 완화 확대와 함께, 성적 괴롭힘에 대한 50가지 조치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거리 벌금, 10대 성관계의 범죄화 확대가 포함되었다. 호주 정부는 성적 금욕을 선언했다.
 영국에서 부총리는 컴퓨터로 포르노를 보고 기자의 무릎을 ‘스쳐’ 만진 죄로 파면된 반면, 보건부장관은 환자들이 병원 복도에서 죽어간 겨울 위기에 책임이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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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가장 눈에 띄는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만을 다룬 조사는 불가피하게도 현재 진행 중인 더욱 흥미로운 많은 운동을 놓칠 것이다. 레이더 아래에 있지만, 브라질과 남유럽 사례처럼, 미국 청년들이 더 창의적이고 희망적인 방식으로 젠더와 사회경제적 이슈를 연결하고 있다는 수많은 신호가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생각이 소셜 미디어 포스트나 트윗보다 더 오래가고, 복잡하고, 확장된 형태로 명료히 표현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시리즈의 향후 연구과제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매우 상이한 젠더 체제들(gender regimes)의 지리문화적·경제적 출발점을 검토하고, 글로벌 페미니즘 프로그램이 각 젠더 체제에 미친 불균등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30년간 중국의 여성개발(gender developments)은 인도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중동 내에서, 터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역학관계는 분명히 서로 구별되며, 황폐화된 ‘전쟁의 활 모양 지대’(말리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어진다)와도 다르다. 라틴 아메리카는 좌파 정부 10년 동안, 그 외 다른 지역의 추세와 달리, 사회적 불평등이 다소 감소했다. 노동, 성, 재생산의 패턴은 유럽 지역과 동남아시아 문화에 걸쳐 놀랍도록 다양하다. 미국의 패턴 역시 다르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뉴 레프트 리뷰》는 페미니즘 이론과 문화적 실천이 새로운 운동에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탐구하고자 한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궤적은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는 젠더 평등과 사회적 불평등 간 관계에 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 미국과 중국, 이 두 강력한 공식 페미니즘은 전자(젠더 평등)를 후자(사회적 불평등)와 혼합할 수 있는 전략을 촉진한다. 즉, 각 사회계층 내에서 젠더평등을 추구하지만, 사회계층 역시 종족집단별로 위계화되어 있다. 남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남쪽 뿔에서 가장 두드러진 급진적 대안운동은 젠더 평등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킬 것이며, 그 반대로도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세력관계는 그러한 대안운동을 국가적 환경 내에서 포위하고 있다. 지배적인 정치경제적 세력은 몹시도 자본에 우호적이다. 또한 미국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국제질서 역시 대안운동을 포위하고 있다. 그에 따라 계급 지배와 가부장적 권력이 단일질서를 형성하는 지역이 존재한다. 그 상황은 대단히 흥미롭다. 비록 견고한 평등주의라는 견지에서 볼 때 특별히 희망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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