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여름.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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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확충은 지금 필요한 정세적 요구가 아니다

민주당 선거전략에 이용만 당할 뿐이다

김진현 |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병원 확충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2020년 겨울, 확진자가 폭증하기 전까지 코로나19 환자 치료는 공공병원이 전담했다. 한국은 OECD 평균의 약 3배,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병상 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중 공공병원 병상 수는 10%에 불과해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 게 주요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도 처음부터 민간 병상을 준비해서 이용했더라면 병상 부족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결코 병상 자체가 부족한 국가는 아니라서, 민간 병상을 준비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무능함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공공병원 확충 요구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쪽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건보공단은 2020년 11월 19일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고속도로 4~7㎞ 정도를 만드는 비용이면 공공병원 하나를 지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를 인용하며 공공병원 비중이 30%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건보공단의 보고서에서는 공공병원 설립에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도 공공병원 예타 면제에 힘쓰고 있다. 2020년 7월에는 민주당 이용빈 의원, 10월에는 강병원 의원, 12월에는 서영석 의원이 공공병원 예타 면제 법안을 발의했다.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 때는 이낙연 당시 민주당 당대표가 울산의료원 예타를 면제해 주겠다고 선거운동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도 이를 일부 수용하는 흐름이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12월 13일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대전 동부권, 부산 서부권, 경남 진주권 의료원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것을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런 계획으로도 부족하다면서 더 많은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준)’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과 부산은 공공병원을 2배로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021년도 보건의료 예산을 평가하면서, 5년간 공공병원을 30개 신축해야 하며 신·증축을 통해 공공병상 3만 개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공공병원 확충전략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다. 건보공단, 민주당, 시민사회단체에서 확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해 ‘국가 소유의 병원’이다. 여러 스펙트럼의 국가 소유 병원 중에서 세 가지에 주목한다. 먼저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소련의료를 검토하고 국유화된 병원이 사회주의적 지향점에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평가해본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공공성’이나 ‘보건의료의 공공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공병원 확충전략을 평가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결론부터 제시하겠다. 소련의료는 국유화된 병원 중심성이 큰 문제였으며, 이는 사회주의적 지향점에서 벗어난다. 공공병원 확충전략은 건강의 공공성이나 보건의료의 공공성에도 한참 미달하는, 한계가 많은 보건개혁 운동에 불과하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공공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의료의 질이나 경제적 효율성에서 뛰어나다는 근거는 없다. 비급여와 실손보험의 천국인 한국에서 공공병원은 의료비 절감이라는 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지금 제기되고 있는 공공병원 확충전략은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병상 수를 늘려 도리어 의료비를 증가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공공병원 신축보다는, 민간병원 병상 수를 줄이는 전략이 공공병상 비율을 늘리는 방안으로는 훨씬 더 합리적이다. 따라서 총 병상 수를 줄이는 전략이 선행되는 가운데, 공공병원은 꼭 필요한 의료취약지에 많은 토론과 예타를 거쳐 설립하는 게 합당하다. 그래야 공공병원 설립의 모범사례를 창출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실패한 공공병원만 늘려 기존 공공병원의 존립 근거마저 위협할 수 있다.
 

소련의료의 교훈: 병원 중심 의료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거리가 멀다


소련의료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많으나,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소련의료를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소련의료를 비판하는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교수인 비센테 나바로다. 그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소련의 사회보장과 의료: 마르크스적 비판』은 비교할 자료를 찾기 힘들 정도로 소련의료에 대한 충실한 비판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이 책의 주장과, 나바로의 문제의식을 확장시킨 과천연구실의 『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를 토대로 소련의료를 분석해 본다.

나바로는 소련의료를 비판하기에 앞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베틀렘 등의 논의에 따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며, 소련의료의 문제점도 여기서 파생된 것이라 주장한다. 나바로는 이 책에서 스탈린주의의 핵심을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한다. ①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변혁은 같은 말이다. ②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는 경제 발전이 특정 수준에 이르면 달성될 수 있다. ③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이루어지면, 국가는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④ 국가의 기능은 경제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에 따라 소련 보건의료체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산력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도시와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병원이 설립되었다. 보건의료체계는 전문의, 특히 최고위에 있는 의대 교수들이 장악했으며 이는 병원 중심 의료를 만들어냈다. 

의료기관은 크게 입원 병상이 없는 ‘의원’과 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의원은 외래 진료 중심이며, 병원은 입원 진료 중심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흔한 경증 질환을 치료하고, 건강 증진 및 질병 예방 기능도 수행한다. 이 기능을 일차(1차) 의료라고 한다. 병원은 2차 병원과 3차 병원으로 나눌 수도 있다. 2차 병원은 일반적인 수술이나 응급 진료를 수행하게 되며, 3차 병원은 암 수술이나 선천성 심장 질환 수술 같이 난이도가 높고 드문 의료행위를 하게 된다. 3차 병원은 의료인 교육과 수련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대학병원과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 대학병원이 아닌데도 진료에서 3차 병원 역할을 하는 병원들이 꽤 있다.

한때 소련의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많이 줄였지만 러시아는 지금도 2017년 기준으로 8.1개로 OECD 평균의 약 2배다. 세계에서 러시아보다 병상이 많은 국가는 일본(13.1)과  한국(12.3) 정도다. 의학의 내용 자체도 유럽, 특히 독일에서 가져온 생의학적 모델을 그대로 도입했다. 나바로는 의료기관을 국가가 소유한 것 이외에는, 소련의료가 자본주의 의료와 매우 유사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병원 중심 의료는 노동의 분리와 지적 격차를 낳았다. 전문의와 일반의 진료가 완전히 분리되었고, 전문의들은 일반의를 무시했다. 대중들은 보건의료에 있어 수동적 존재로 전락했으며, 소수의 전문가와 당 관료가 모든 의사결정을 장악했다. 의료 자원은 병원, 도시, 전문 의료로 집중되었다. 물론 시골에는 아예 의사가 없었던 러시아 혁명 이전보다는 의료기관의 평등한 분포가 이루어지긴 했다. 하지만 나바로는 의료를 재분포해서 불평등을 없애는 일을 의료의 사회화로 이해하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제한되고 좁은 이해라며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나바로는 책의 결론에서 “국유화는 사회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국유화의 한계를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소련의료뿐만 아니라 영국의 NHS(국민보건서비스) 설립 과정도 비판한다. NHS 설립에 있어, 노동자계급이나 일반 시민의 참여는 없었다는 것이다. 나바로는 NHS도 단지 국유화된 의료에 불과하며, 사회화된 의료가 아니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회주의적 의료의 조건을 두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보건의료에 있어 대중의 능동적 참여이며, 둘째는 건강/의학/의료의 개념과 내용 변화다. 그러나 대중의 능동적 참여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의학의 내용은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과천연구실의 연구는 이를 계승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과천연구실은 생태학을 토대로 의학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동자 간 지적 차이의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도 생태학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의료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건의료체계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과천연구실의 연구도 이론적 분석을 진행한 것뿐이라, 현실에 적용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적 의료에 대한 실천은 병원이 아니라 일차 의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전문화된 의료에 생태학을 적용하거나, 노동자 간 지적 차이의 감축을 시도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일차 의료는 상대적으로 지적 격차가 적고, 대중 참여를 기반으로 여러 대안을 시도해보기 유리한 조건에 있다. 이미 실패한 실험도 많지만, 새롭게 도전할 과제도 많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단순히 국가 소유의 공공병원을 늘리는 일은 사회주의나 의료의 사회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이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자본주의로 넘어와서, 공공성과 의료공공성 담론을 분석해보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의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의 내용을 주로 참고했다. 김창엽 교수는 책에서 공공성을 일반적인 공공성, 건강의 공공성, 보건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분석한다.

먼저 공공성 일반에서는 공공성의 주체와 공공성의 내용을 살펴보자. 주체와 관련한 이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국가의 소유가 곧 공공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소련의 경험이나, 공공병원을 의료산업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한국 정부를 상기할 수 있다. 오히려 공공성의 주체는 시민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는 노동자계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공공성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 권위주의적 국가권력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권력에 대한 대안으로서 구성된 개념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형평성’ ‘접근성’ ‘공정성’ ‘민주성’ ‘투명성’ 등을 포괄한다. 

그렇다면 건강의 공공성은 어떤 것일까? 김창엽 교수는 건강의 공공성의 세 가지 핵심 요소로 형평성, 권리로서의 건강, 과정에서의 민주성을 제시한다. 형평성은 집단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데, 쉽게 말해 건강 불평등의 문제를 뜻한다. 권리로서의 건강은 도달해야 할 지향점에 가깝다. 다만 절대적인 건강 수준 자체는 국가의 경제적 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에, 공공성 실현의 지표로 삼기 어렵다. 과정적 공공성이란 건강 결과를 산출하는 과정이 공적 가치를 실천하고 실현하느냐를 따지게 된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건강의 공공성을 성취하는 데 지향점이 있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접근성’ ‘효과’ ‘적정성’ ‘질’ ‘효율’ ‘지속성과 포괄성’ 등이 주요 평가 지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다. 보건의료가 건강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정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보다는 영양이나 위생이 건강수준 향상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리고 보건의료 기술 발전으로 인한 수명 연장 효과는 지난 수십 년간 정체된 반면에,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건의료가 가진 의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전체 인구 수명 연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다치거나 병들었을 때 치료받고 싶어 한다. 권리로서의 보건의료가 가지는 의미다. 이는 뒤에서 나올 나바로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의료는 치료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통치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김창엽 교수는 앞의 논의를 바탕으로, 건강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유 주체와 국가 중심의 보건의료 공공성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국가 소유의 병원이라고 공공성을 지향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 보건의료 공공성의 개념을 확장해 사회경제체제와 행위 주체들 간 상호작용까지 포괄해 사고하지 않으면, 건강의 공공성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장된 보건의료 공공성을 실현할 주체로 사회권력에 주목한다. 쉽게 이야기해 시민사회운동이다.

김창엽 교수의 책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소위 ‘의료공공성’ 담론의 개념화를 시도했다는 의미가 크다. 사회경제체제까지 포괄하는 넓은 공공성 개념도 자본주의적 보건개혁 운동에는 필요한 것이다. 다만 시민사회를 공공성의 주체로 설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의미가 있으나 오늘날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수 양당의 한 축인 민주당이 시민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시민사회운동 중 일부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운동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낸 보건개혁 운동이 문재인 케어나 공공병원 확충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들은 보건개혁 운동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지적하는 보건개혁 운동의 한계들


보건개혁 운동의 한계를 살펴보기 전에,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적 보건의료를 분석한 내용을 간단히 짚어보자. 자본주의적 보건의료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본주의 국가의 기능을 알아야 한다. 알튀세르와 브뤼노프가 정리한 국가의 기능을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경제적 기능이다. 시장경제에서 개별기업이 생산하지 못하는 특수한 상품인 화폐와 노동력을 관리하고 재생산하는 기능이다. 둘째, 이데올로기적 기능이다. 노동자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도록 자본주의적 주체로 만들어준다. 이는 학교, 가족, 교회 등을 통해 작동한다. 셋째, 억압적 기능이다. 경찰과 군대를 통해 자본주의적 질서를 유지한다. 

이 중 보건의료는 경제적 기능과 이데올로기적 기능과 관계가 있다. 나바로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보건의료는 치료 기능과 통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치료 기능은 생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노동자가 밀집한 주거 지역에 상하수도 시스템을 설치한다든가, 감염병에 걸렸을 때 항생제로 치료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또한 현대의학은 실제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통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식민지에 만연했던 감염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세균학이 발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 문명의 우월성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던 차에, 감염병이 창궐하자 식민지에서 반란의 조짐이 나타났다. 결국 세균학을 통해 감염병을 통제함으로써 식민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건의료는 체제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므로, 노동자계급은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되는가? 그렇지 않다. 나바로는 오늘날의 보건의료체계가 계급투쟁을 통해 결정된 역사적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며, 자본주의적 보건의료 내에서도 계급투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또 보건의료체계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태동한 것이므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로 노동자들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노동력 재생산을 담보할 수 없는 불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엥겔스와 비르효 등이 노동자 불건강의 원인을 자본주의 또는 사회 체제에서 찾는 사회의학을 발달시켰지만, 이는 자본가계급의 투쟁에 의해 소실되었다. 자본가계급은 세균학에 기반한 위생개혁과 농업생산력 증대를 통한 충분한 영양소 공급으로 노동자들의 불건강 문제를 해결했다. 동시에 사회보험이나 NHS를 도입해 정치적 불만을 잠재웠다. 

이 과정에서 국가별로 서로 다른 양상의 계급투쟁이 나타났기에, 서로 다른 형식의 보건의료체계가 도입되었다. 북유럽이나 영국과 같이 보편적 의료체계를 도입한 국가도 있었고, 미국과 같이 선별적 의료체계를 도입한 국가도 있었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북유럽과 영국에서는 승리한 것이고, 미국에서는 실패한 것인가? 여기서 나바로가 지적한 자본주의적 보건의료 개혁운동의 두 가지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의 개입에 의해 자본주의적 의료를 더 평등하게 누리는 것은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대증요법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국가주의적 의료이지, 사회주의적 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주의적 보건의료는 비감염성 질환을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봤을 때, 현재의 자본주의는 감염성 질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글의 핵심 주제는 아니므로 넘어가자.) 야간노동, 건강불평등, 자본주의적 농업과 식품산업의 문제는 국가주의적 의료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물론 일정 부분 해악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은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주로는 일차 의료의 역할이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질병에 걸린 사람의 수명을 약간 더 연장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공공병원 확충전략 자체의 한계는 명확하다.

둘째, 자본주의적 보건의료 개혁운동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윤율의 운동과 국가가 수행하는 화폐와 노동력의 재생산 기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각종 사회복지 정책이 만들어졌던 것은, 역사적 호황기였고 노동력 재생산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로 그 정책들이 변형되어 가는 건 이윤율 하락과 이에 대응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자본과 국가에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 보건개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건개혁이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사회보험 도입은 국가와 자본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의료접근성에 도움이 되었다. 세균학의 발달과 위생개혁 운동, 항생제의 개발은 감염병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구하는 데 일조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도 정세에 따라 보건개혁 운동에 참여하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 다만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보건개혁 운동이 지배계급의 계획과 공명하거나, 노동자계급의 단결에 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체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에 반하는 보건개혁 운동은 민중의 건강에 도리어 악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정세를 기회로 착각한 보건의료운동


그렇다면 지금은 보건개혁 운동의 적기인가? 코로나19로 인해 보건의료가 중요해지고, 재정지출이 쉬워지는 현재가 공공병원을 지을 좋은 기회인가? 안타깝지만 이건 착각이다. 지금은 보건의료운동과 전체 사회운동의 위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병원 건설을 단기에 밀어붙이면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 건설될 수 없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사회운동에는 해가 될 수 있다.

먼저 사회운동이 위기인 이유는 사회운동이 차별화된 대안을 내지 못하고 민주당의 포섭 전략에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주도한 대북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에 있어 사회운동의 주장은 민주당과 대동소이하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보건의료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소위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보장성 강화 정책이나 공공병원 확충전략 모두 주도권은 민주당이 쥐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보건의료운동은 더 잘하라고 할 뿐, 민주당과 차별점이 없다. 과거 보건의료 시민사회운동의 핵심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등으로 대거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민주당의 보건의료 개혁의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더 잘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이대로 가면 보건의료 시민사회운동의 존재 의의 자체가 위태롭다.

민주당식 보건개혁은 합리적이지도 않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보건개혁 정책인 문재인 케어의 중간평가 결과가 최근 제출되고 있는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사회진보연대도 효과에 비해 가격이 비싼 의료행위를 부분급여화해주는 예비급여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비급여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의료기기 기업이나 제약기업에 건강보험 재정을 퍼주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측했다.

문재인 케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보장률과 비급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평소에 건강보험료를 내다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여기서 발생한 의료비 중 64% 정도는 건보공단이 평소 받아둔 건강보험료를 통해 부담한다. 나머지 36%는 환자가 부담한다.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에는 법정본인부담금과 비급여가 있다. 법정본인부담금은 환자에게 비용 의식을 줘서 의료행위 과다이용을 막기 위해 법으로 정한 의료비다. 2019년 기준, 전체 의료비의 21% 정도다. 비급여는 건보공단이 진료비를 부담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뜻한다. 비슷한 효과를 지닌 다른 항목에 비해 가격이 비싼 의료행위를 하거나, 정해진 횟수를 초과할 때 등이 있다. 보장률은 전체 의료비 중 건보공단이 부담하는 의료비 비중을 뜻한다.

문재인 케어가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제일 중요한 목표였던 보장률 70%를 달성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신규재정 기준으로 전체 지출 증가액의 70%를 투입했는데, 보장률은 62.7%에서 64.2%로 1.5%p 오르는 데 그쳤다. 둘째, 비급여가 증가했다. 2017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민영보험의 실손의료비 청구 항목을 살펴보면, 비급여의 규모 및 비율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상반기에 비해 2020년 상반기 비급여 규모는 약 34% 증가했다. 셋째, 가계의 의료비 지출이 늘었다. 전체 소비 지출에서 의료비 지출이 10%가 넘는 가구의 비율이 2017년 22.2%에서 2019년 30.8%로 증가했다. 이는 저소득층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소득 1분위에서 의료비 지출이 10%가 넘는 가구의 비율이 2년 사이 10%p 넘게 증가했다.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예비급여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추측하건대, 취약한 일차 의료와 의료전달체계, 실손보험과 행위별 수가제는 건드리지 않고 부분급여화만으로 보장률을 높이고 비급여를 줄이는 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실패한 문재인 케어가 2017년에 나왔을 때, 상당수의 보건의료운동 단체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비판적인 입장도, 더 잘하라는 ‘비판적 지지’가 많았다. 문제는 문재인 케어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총 30조를 투입하는 계획이어서, 건강보험 흑자분을 소진한 후엔 건강보험료가 대폭 인상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패한 정책을 하느라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걸 대중이 깨닫게 되었을 때, 지지를 잃게 될 것은 민주당만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지금 보건의료운동에 필요한 것은 민주당식 개혁에 동조하거나 더 잘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식 보건개혁과 단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병원 예타면제나 공공병원 설립 주장은 모두 민주당과 공명한다. 그것 자체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별로 없는 반면, 민주당에 정당성만 보태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건보공단 공공병원 확충전략의 허와 실


이제 구체적인 공공병원 설립운동의 정책안을 분석하고 비판해보려 한다. 현재 민주당과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공공병원 설립운동 정책안 중 가장 완결된 형태를 갖춘 것은 건강보험연구원이 2020년 12월에 발간한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의료 확대 방안」 보고서다. 여기서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기준으로 비판하고, 필요한 경우에 보건복지부나 시민사회단체의 주장도 인용하겠다. 이 보고서는 지방의료원을 중심으로 한 공공병원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공공의료’라고 부르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공공병원과 공공의료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공공병원으로 명칭을 통일하겠다.

먼저 공공병원의 현황을 분석하는 2장의 내용을 검토해보자. 한국에서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 비영리법인, 의사 개인이다. 이 중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병원을 공공병원이라 한다. 크게 봐서는 국립대학병원들과 지방의료원을 생각하면 된다. 이 외에 결핵병원, 국립정신병원 등 특수질환 치료병원이나 근로복지공단병원, 보훈병원, 군 병원 등도 포함된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병상 수는 전체 병상의 10%이며, 인구 천 명당 공공병상 수는 1.2개다. 보고서에서는 이 수치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매우 적다고 비판하면서 OECD 국가 적정 추정치가 인구 천 명당 3.7~5.9개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공공병상 비율이 매우 작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그 정도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12.3개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이며 OECD 평균인 4.5개의 약 3배다. 과잉병상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인구 천 명당 공공병상 수를 비교하는 게 옳다. 인구 천 명당 공공병상 수는 OECD 평균이 3.1개이며, 한국은 평균의 39% 정도다. 당연히 적은 수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미국보다 적진 않은데, 미국은 인구 천 명당 공공병상 수가 0.6개로 한국의 절반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런 식으로 한국의 과잉병상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수치를 과장한다. 예컨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어 효율적인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여기서도 비율을 따진다. 병상 수를 기준으로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비율이 OECD는 50% 이상인데, 한국은 30%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한국의 병상이 OECD 평균의 3배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공공병원이 민간병원보다 의료의 질이 낫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요양기관 적정성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1등급을 받은 병원의 비율에서 공공병원이 민간병원보다 많다는 게 근거다. 그러나 이 주장엔 문제가 많다. 이 보고서는 황수희 등이 대한공공의학회지에 기고한 논문을 입맛대로 편집해서 썼다. 

이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병원의 비율을 계산할 때,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일반 병원의 개수를 단순합산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체 병원 중 상급종합병원 비율은 공공병원이 훨씬 높다. 국립대학병원이 많아서인데, 병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하더라도 상급종합병원 비율이 공공병원에서 두 배 이상 높다. 상급종합병원은 당연히 1등급을 받은 비율이 종합병원이나 병원급 의료기관보다 훨씬 높다. 예컨대 상급종합병원은 공공, 민간 모두에서 급성 뇌졸중에서는 90% 이상, 급성심근경색에서 80% 이상, 수술 시 예방적 항생제 사용에서는 100%가 1등급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서와 같은 방법을 쓰면, 공공병원 의료의 질이 훨씬 더 좋다고 통계를 왜곡할 수 있다.

예컨대 국립대학병원이 10개, 기타 공공병원이 10개, 사립대학병원이 10개, 기타 민간병원이 90개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대학병원은 100% 1등급을 받고, 기타 병원은 공공과 민간이 똑같이 50%가 1등급을 받았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의료의 질은 같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건보공단 보고서와 같은 방식으로 평균치를 내면, 공공병원은 75%가 1등급을 받고 민간병원은 55%가 1등급을 받아, 공공병원 의료의 질이 훨씬 낫다고 잘못 판단하게 된다. 

인용한 논문 원문을 통해 공정하게 비교해보면, 공공병원 의료의 질이 민간병원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외국의 연구를 살펴봐도, 공공병원이 비영리 민간병원보다 의료의 질이 낫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칠레 연구진이 발표한 리뷰 논문을 통해, 공공병원과 민간 비영리병원을 비교한 연구들을 검토해 보자. 사망률을 지표로 비교한 논문 12개 중 4개에서 공공병원의 사망률이 더 높았고, 나머지는 차이가 없었다. 부작용을 지표로 비교한 논문 5개 중에서는 1개에서만 공공병원의 부작용 발생이 많았고, 나머지는 차이가 없었다. 즉, 의료의 질에 있어서 공공병원과 비영리병원은 큰 차이가 없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문제 중 실제 의미가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의료비 문제다. 민간병원에서 비급여를 더 많이 시행하고, 건당 진료비도 더 많다. 예컨대 종합병원급 이상에서 비급여 진료비 비율은 공공에서 10%, 민간에서 13.8%다. 한국은 현재 약 3천 9백만 명이 실손보험에 가입해, 대부분의 비급여 진료비는 환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병원급 진료비 지불제도의 기본이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병원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병원은 성과급이나 매출 실적 압박 등을 통해 의사들에게 과잉진료를 요구한다. 급여 의료행위는 가격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고가의 비급여 의료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에게 비급여 의료를 시행하면, 병원과 의사는 돈을 벌고 환자는 비용 부담 없이 추가적인 의료행위를 받게 된다.

다음으로 의료 불균형이다. 수직적 불균형과 수평적 불균형이 있다. 수직적 불균형은 비효율적인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특히 100~200병상 병원이 많다. 이런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한정적이며, 고가 의료장비를 들여놓으면 효율적인 사용이 어렵다. 수평적 불균형은 병원이 없어 치료를 받기 어려운 의료취약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지역이다.
 

현재 의료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 ‘공공병원 30%로 의료비 절감’


그렇다면 공공병원이 설립되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보고서에서는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일단 의료비 문제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공공병원 30% 확충’의 근거가 되었던 보고서 하나를 같이 살펴보자. 2004년에 김창엽 교수와 김용익 이사장이 함께 발표한 「공공병원 확충방안 개발에 관한 연구」(이하, 2004년 보고서)이다. 이 연구에서는 공공병상이 전체의 30%가 되면 의료비가 절감된다고 주장했다. 공공병원의 표준진료모델이 민간병원으로 얼마나 파급되는지에 따라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일단 여기서는 50% 파급 모델을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자.

50% 파급 모델에서는 총 116조 8561억 원이 절감된다고 했다. 절감되는 것은 크게 3가지 의료비다. 만성환자 부적절재원 감소로 3조 6293억, 입원 진료에서의 적정 진료 효과로 28조 44억, 외래 진료에서의 적정 진료 효과로 85조 2224억 원 절감된다고 한다. 만성환자 부적절재원이란, 요양병상에 입원해야 할 환자가 급성기 병상에 입원해서 생기는 부적절한 의료비 지출을 말한다.

여기서 병상 분류에 대해 잠깐 짚어보자. 병상은 크게 봐서 급성기 병상과 요양병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신, 재활 등 특수 병상도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급성기 병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병원이며, 요양병상은 요양병원이다. 요양병상이 필요한 환자는 급성기와 같이 많은 치료가 필요하진 않지만, 지속적인 의료진의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보고서의 내용을 다시 보면, 첫째, 만성환자의 부적절재원 감소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보고서를 썼던 2003년 당시 한국에 장기요양 병상은 공공과 민간을 합쳐서 총 7천 개에 불과했다. 따라서 장기요양 병상에 입원해야 하는 환자들이 급성기 병상에 입원해 있어서, 의료비가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급성기 병상을 장기요양병상으로 전환하는 걸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잉된 급성기 병상은 줄이고, 부족한 장기요양 병상은 확충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이제는 현실화될 수 없다. 장기요양 병상도 과잉 상태가 된 데다가 급성기 병상 수도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한국의 인구 천 명당 급성기 병상은 4.8개, 전체 병상은 5.1개였다. 2017년에는 급성기 병상이 7.1개, 장기요양 병상은 3.5개다.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실 김윤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 필요한 요양병원 병상은 1.9개다. 장기요양 병상 자체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공공병원의 표준진료모델이 민간병원으로 파급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004년 보고서와 건보공단 보고서는 먼저 공공병원이 생겨서 적정 진료를 하게 되면, 민간병원이 이를 의식하면서 비급여를 덜 하게 되고, 과잉진료도 덜 하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환자들이 진료비가 많이 나오는 민간병원에 가지 않고, 적게 나오는 공공병원으로 간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2003년과 다르게, 3천 9백만 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이 있다. 매우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환자들은 굳이 공공병원을 선택하지 않는다. 2003년이나 지금이나 한국은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어 있고, 주치의 제도의 문지기 역할도 없기 때문에 환자들은 원하는 의원이든 병원이든 마음대로 골라 갈 수 있다. 

두 보고서 모두 공공병원 적정 진료의 민간병원 파급 효과의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건보공단 보고서에서는 모범사례만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중 하나는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이다. 보라매병원은 시립병원이자 국립대병원이 위탁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로봇수술 1건당 30~50만 원의 인센티브를 의사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로봇수술은 효과나 후유증 측면에서 복강경수술과 차이가 없지만, 가격만 3~5배 비싸, 낭비적 비급여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공공병원은 불필요한 비급여를 하지 않을 거라는 통념을 깨뜨린 사건이었다.

셋째, 외래 진료도 적정화되지 않을 것이다. 2004년 보고서에서는 표준진료지침이 개발되어 일차 의료에서 교과서적 진료가 확산된다면 외래 진료가 적정화된다고 주장한다. 표준진료지침 개발과 보급에 지방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이 꼭 필요하지 않으며, 지금도 관련 학회에서 논의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외래 진료는 일차 의료, 즉 의원급 의료기관이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공공병원에서는 개발된 표준진료지침을 지킬 지도 모르지만, 동네의원들이 그걸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지침을 지키지 않는 동네의원에 건강보험을 통해 불이익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게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애초에 외래 진료 적정화에 공공병원이 필요하지도 않다. 결정적으로 표준진료지침이 보급되어도 실손보험이 있는 한, 외래 진료에서의 비급여 행위와 과잉의료도 해결하기 어렵다.
 

의료불균형은 못 없애고, 
민주당 선거전략에 기여한 공공병원 확충전략


그렇다면 의료 불균형은 해결할 수 있을까? 수직적 불균형은 병원급 의료기관 중 300병상 미만 중 상당수를 없애야 하는 문제라서, 공공병원 설립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수평적 불균형은 의료취약지 공공병원 설립으로 해결할 수 있다. 수익이 나지 않아 병원 세우길 꺼리는 의료취약지야말로 공공병원을 세워야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의료취약지는 어디일까? 앞서 언급한 김윤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파주, 포천, 영월, 속초, 공주, 홍성, 남원, 서귀포다. 지역 내 가까운 거리에 3차 병원과 2차 병원이 없고, 지역병원과 전문단과병원도 적다. 그런데 이 중 포천, 공주, 홍성, 남원은 인구 천 명당 급성기 병상 수가 4.0보다 크다. OECD 국가 급성기 병상 평균이 2017년 기준으로 3.7개다. 의료취약지라는 곳조차도 OECD 평균보다 병상이 많으니, 한국의 병상과잉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공공병원을 설립하자는 곳은 엉뚱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건강보험연구원 보고서에서는 지방의료원을 신설할 지역으로 울산, 대전, 광주를 꼽고 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준)에서도 서울과 부산 지역에 공공병원을 설립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고려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복지부는 2020년 12월에 대전 동부권, 부산 서부권, 경남 진주권 의료원에 대한 예타면제와 신축 추진을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김윤 교수팀의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병원이 충분한 지역을 두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자급자족형과 의료중심지형이다. 자급자족형은 2차, 3차 병원이 모두 있고, 지역 내에서 의료를 충족하는 자체충족률이 높은 지역이다. 의료중심지형은 2차, 3차 병원이 모두 있고, 2차 이상 병원 병상 수가 자급자족형보다 높다. 자체충족률도 높지만, 외부 지역에서의 환자 유입률도 높다. 따라서 자급자족형과 의료중심지형은 공공병원 설립이 불필요한 지역이다. 

공공병원 설립운동 측에서 신축을 주장하는 서울, 부산, 대전, 울산, 광주, 진주가 의료취약지인지 살펴보자. 서울은 4개의 진료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2개는 자급자족형, 2개는 의료중심지형이다. 부산은 3개의 진료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부산 중부는 의료중심지형, 부산 동부는 자급자족형이다. 서부산의료원이 들어설 부산 서부는 공급 불균형형이지만, 보고서에서는 “대도시의 경우 인구수는 많으나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교통 환경이 좋아 분할한 진료권이 의료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큼.”이라고 언급하면서 부산 서부에는 새로운 공공병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은 동부와 서부 2개로 나뉘어 있는데, 대전의료원이 들어설 동부는 의료중심지형이며, 서부는 자급자족형이다. 울산은 서남과 동북으로 나뉘어 있다. 서남은 2차 병원은 있으나 3차 병원이 없으며, 동북은 자급자족형이다. 광주는 광서와 동남으로 나뉘어 있다. 광서는 2차 병원은 있으나 3차 병원이 없고, 동남은 의료중심지형이다. 진주는 자급자족형이다.

즉, 실제 의료 필요만 따르면, 서울, 부산, 대전, 울산, 광주, 진주에는 지방의료원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대전, 부산, 진주에 지방의료원 신축이 결정된 것에는 정치적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던 부산은 오래전부터 민주당의 약세가 예상되어 왔고, 이를 뒤집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하기도 했다. 공공병원 설립운동을 하는 쪽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엔 민주당의 선거전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도 이런 식의 비합리적인 공공병원 신축 계획이 공약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공병원 예타면제 요구, 타당한가


물론 건보공단 보고서에서는 한국은 병상과잉이기 때문에 기존 민간병원을 매입하거나, 지금 있는 지방의료원의 증축 및 기능 보강이라는 선택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울산, 대전, 광주에는 일단 의료원을 신축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모순된 주장이다. 

특히 예타 면제 주장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 재정이 투여되는 대형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경제적, 정책적, 기술적 타당성에 대한 사전 검토를 하기 위해 시행된다. 예타 면제를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예타가 경제성과 수익성만을 기준으로 하므로 공공병원이 조사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공공의료기관은 수익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경제성을 평가해 설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를 잘못 이해한 주장이다. 의료기관이 주민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도 경제성 평가에서 편익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타의 비용-편익 분석은 기업 등에서 기준으로 삼는 재무성 분석과는 달리 사회적 관점 또는 국민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타에서의 편익은 ‘병원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아닌 ‘사업으로 인한 사회적·국민경제적 효용가치가 어떠한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공공의료시설이 담보해야 할 기능 중에는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이 있다. 응급 외상 환자를 살렸을 때 병원이 적자를 본다고 가정하면 재무성 평가의 기준에서는 응급의료서비스로 인한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 그러나 예타 경제성 평가에서는 응급 외상 환자가 살아남아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이 있다면 이를 편익으로 산출한다. 즉 응급 외상 환자를 살리는 일이 사회적으로 사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에서 가점 요인이 되는 것이다.

공공병원 설립계획이 선거전략에 이용되는 상황 속에서 예타까지 면제된다면, 공공의료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공공병원의 양적 확대만이 이루어질 우려가 있다. 지금 예타와 관련해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평가 기준을 개선하라는 요구다. 현재 의료시설 부문 예타 기준에는 감염병 대응을 평가하는 항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의료시설 사업계획에 감염병 관리가 있을 경우 경제성 평가나 정책성 평가의 일부로 평가하는 정도다. 이 부분을 개선할 필요는 있다.
 

지금의 공공병원 확충전략은 의료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앞서 지적했듯이, 공공병원 확충의 의의는 의료비 절감과 의료취약지 의료 제공에 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식 계획으로는, 의료비를 절감하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총 병상 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무현의 대선 공약이자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의 지론인 공공병원 비율 30% 달성을 오롯이 병원 신·증축으로만 해결한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인구 천 명당 병상 수가 약 12개, 공공병상 수는 1.2개다. 같은 기간 동안 민간병상이 하나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인구 천 명당 3.4개의 공공병상을 지어야 30%가 된다. 그러면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15.4개가 되어 독보적인 세계 1위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불가능한 이야기 같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은 1993년에 인구 천 명당 병상 수가 15.6개였다. 계속 줄이려는 노력 끝에 2017년에 13.1개까지 떨어진 것이다. 반대로 한국은 1993년에 3.7개였던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17년에 12.3개까지 온 것이다.

병상 수와 의료비가 비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201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OECD 국가들의 병상 수와 입원량·재원일수는 비례 관계를 보였다. 한국도 시도별 병상 수와 입원이용량의 상관관계를 따져봤을 때, 상관계수가 0.8을 나타냈다. (상관계수는 완전한 반비례 관계이면 –1, 완전한 비례 관계이면 1을 나타낸다.) 병상 수가 많은 시도가 입원량도 많고 재원일수도 길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실손보험 도입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실손보험 의료비 지급액에서 통원치료는 1일 30만 원이 최대이지만, 입원은 5천만 원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원치료로 가능한 것들도 모두 입원치료로 돌려서 각종 비급여를 시행한 후 실손보험에 청구하는 일이 흔하다. 이렇게 하려면 의원이 아니라 병원을 지어야 하고, 병상 수를 늘려야 한다. 또 병상 수가 많은 병원을 지으면 CT나 MRI를 도입해 추가적인 비급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물론 공공병원은 비급여 진료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병상 수가 늘어도 비급여 진료나 과잉진료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진료비 통계에서 살펴봤듯이 공공병원은 비급여 진료를 ‘덜’ 하는 것이지, ‘안’ 하는 게 아니다. 보라매병원 사례와 같이 성과급을 통해 비급여 진료를 늘리려는 시도도 분명 있다. 또 공공병원에서 데려간 환자만큼, 민간병원이 추가적인 비급여나 과잉진료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공공병원 병상 증가도 의료비 증가에 기여할 거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바로 공공병원에서 국산 신의료기기를 테스트하겠다는 계획이다. 건보공단 보고서에서는 공공병원이 ‘국산 의료기기의 테스트 베드’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산 의료기기 제조사는 대부분 영세해서 의료기관이 요구하는 수준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런 질 낮은 의료기기를 공공병원에서 사용해서 지원해주자고 한다. 의료기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일정 부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할 순 있겠지만, 공공병원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신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행위는 대부분 고가 비급여 진료다. 공공병원이 비급여 진료를 적게 해서 좋다면서, 신의료기기를 많이 써주자는 건 모순이다. 물론 민주당의 속셈은 의료비 절감보다는 국산 의료기기 지원 쪽에 더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문재인 케어 때도 마찬가지였듯이, 보장성 강화 정책이나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은 의료산업 지원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공공병상 비율은 민간병상을 줄여서 늘리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지금 나오고 있는 지방의료원 대량 신축 계획은 지향하는 바를 전혀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병원은 필요한 곳에,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고 지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보건의료의 공공성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우선이다. 

여론 좋을 때 빨리 많이 지어버리자는 주장은 김창엽 교수가 건강의 공공성의 하나로 지적했던 ‘과정에서의 민주성’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인해 공공병원에 대한 여론이 좋지만, 백신 접종이 끝나고 대규모 유행 국면이 사실상 종식되면 다시금 공공병원 무용론이 등장할 것이다. 만약 새롭게 지어진 공공병원들이 제대로 된 역할은 하지 못하면서 병상과잉에만 기여한다면 역풍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도 내용을 개선해 제대로 시행해, 경제성 있는 공공병원을 짓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경제성 있게 설계하려면 오래 걸리고 어려우니까 아예 면제해버리자는 주장은, 국가 재정을 비합리적으로 낭비하겠다는 주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는 오히려 “민간병상을 어떻게 줄일 것이냐”이다. 공공병상 비율을 늘리는 데는 공공병원을 더 짓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현존하는 공공병원의 내실을 다지면서 민간병상을 줄여도 공공병상 비율이 증가할 수 있다. 지금 같이 민간병상 수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라면, 공공병원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공공병상 비율은 비슷할 수 있다. 병상이 과잉인 지역에는 신규 병상을 허가하지 않고, 병상을 줄이거나 없애는 병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걸 고려해야 한다. 공공병원 확충전략을 주장하는 쪽도 병상 규제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우선순위에서는 공공병원 신축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민간병상 감축은 공공병원 확충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병원이 없는 의료취약지에는 기존 민간병원을 매입해서 제대로 된 공공병원으로 만드는 걸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의료취약지여야 한다. 병원이 많은 자급자족형 진료권이나 의료중심지 진료권에서는 매입도 신축도 추진해서는 안 된다.

민간병원의 비급여 진료와 과잉의료 제어는 공공병원 신축으로는 달성하기 어렵고, 노동조합이 감시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규제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실손보험과 행위별 수가제가 만연한 한국에서 제도적 규제만으로 목표를 달성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의료현장에서 구체적 상황을 인지하고 비판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이는 공공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앞서 지적한 보라매병원의 로봇수술 성과급 사례도 노동조합이 밝혀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간병상을 줄이는 운동이나 공공병상을 늘리는 운동이나 한계를 지닌 보건개혁 운동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병상을 줄이면서 공공병상 비율을 늘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공공병원은 사회주의적 의료도 아니고, 건강의 공공성이나 보건의료의 공공성에도 한참 미달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공공병원을 확충하기 위해 사회운동과 보건의료운동을 망치고 있는 민주당의 포섭전략에 끌려다니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전체 사회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정세적으로 공공병원 확충전략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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