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겨울.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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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돌봄교실과 위드코로나

아동 돌봄 제도 재정립을 위한 세 가지 제안

문설희 | 사무국장, 페미니즘팀
11월 1일부터 시행된 단계적 일상회복으로의 방역체계 전환(이하 ‘위드코로나’) 이후 60세 이상 고령층과 18세 이하 학령기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학교와 학원 등 시설의 확진자와 집단감염이 늘었으며, 어린이집 영유아 및 보육교직원 확진자 수는 지난 10월 693명(22.4명/일)에서 11월 1주 359명(51.3명/일)으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청소년·어린이 대상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학교·학원·어린이집 등에서의 확진자 증가 추세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드코로나’ 시기 ‘의료’ 등의 문제와 더불어 ‘돌봄’의 문제에 사회적 관심과 대책이 집중될 필요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돌봄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상이한 인식은 관련한 합의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적으로, 작년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직후 ‘초등돌봄교실 확대’를 둘러싸고 상당한 갈등이 폭발했던 것을 상기해볼 수 있다. 지난 8월 4일 교육부가 ‘초등돌봄교실 운영 개선 방안’을 발표함으로써 해당 사태가 한차례 매듭지어졌으나, 긴 진통 끝에 우리 사회가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쟁점적이다. 교육부 권고안 이후 각 시·도 교육청과의 협의가 원만하지 않아 최근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또다시 투쟁에 돌입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돌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학령기 아동에 대한 돌봄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쏟아져나오는 돌봄 공약이나 관련 요구 모두 한결같이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재원을 더 많이 쓰도록 한다는 것 이상의 성숙한 논의는 부재하여, 과연 현시기 필요한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글에서는 학교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회진보연대 회원들과 올 한해에 걸쳐 ‘초등돌봄교실 확대와 사회운동의 과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위드코로나 시대의 돌봄' 문제를 초등돌봄교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꼬인 실타래 1. 긴급돌봄과 ‘돌봄 대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문제가 어디에서 어떻게 꼬였는지를 먼저 파악해보자. 첫 번째 꼬인 실타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발발한 소위 ‘돌봄 대란’이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학 연기로 이어졌고, 2월 28일 문재인 정부는 개학연기 후속 조치로 긴급돌봄 제공 추진을 발표하였다. 돌봄 수요는 세 차례의 개학 연기와 4월의 원격수업 전환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정부는 수도권 소재 초등학교 대상 돌봄서비스 강화(9~19시 운영, 10명 내외 유지 권장), 돌봄 교실 급식 제공, 방역지침이 포함된 긴급돌봄 운영 관련 지침 등을 배포했다. 교육부는 일련의 과정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어 현장밀착형 긴급돌봄 대응과 지원, 돌봄 인력에 대한 국가의 돌봄 강화 및 협력적 추진체계 구축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2020 교육 분야 코로나19 대응’ 백서」), 학교 현장은 유례없는 혼란 속에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상처가 곪아터지듯 터져 나왔다.

초등돌봄을 전담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이하 돌봄전담사)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지 않은 돌봄노동의 특성상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봤다. 그러나 돌봄교실 확대와 인력 충원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 없이 긴급돌봄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급기야 11월 전국적인 파업을 단행한다. 소위 ‘돌봄 대란’이라고 불리웠던 돌봄 파업은 2021년 상반기 중 학교돌봄 운영 개선 대책을 마련한다는 합의하에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대책 마련이 지지부지한 가운데, 3월 15일 새 학기 업무 과중에 시달리던 돌봄전담사 한 분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까지 발생하였다. 

마침내 8월 4일 교육부는 ‘초등돌봄 운영 개선 협의회’(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교육부, 시·도 교육감협의회,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전국교육공무직본부·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전국여성노조〕, 교원단체〔전교조·교사노조연맹〕, 학부모단체 등) 논의를 거쳐 ▶돌봄교실 확충 지속, ▶2022년 3월부터 운영시간 19시까지 확대 추진, ▶교육청별 돌봄전담사의 적정근무시간 확보, ▶돌봄전담사 중심의 행정 지원체계 구축, ▶교육(지원)청 주도의 ‘거점 돌봄기관’ 시범 운영 추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초등돌봄교실 운영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 방안은 돌봄서비스의 양적 확대를 꾀하면서도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돌봄전담사의 적정 근무시간 확보 및 전문성 강화, 행정 지원체계 구축 등이 담겼다는 점에서 진전된 측면이 있으나, 내년 사업 시행 과정에서 시·도교육청이 교육부의 권고를 충실히 따를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겨졌다. 돌봄서비스 확충을 지속한다는 정부안을 학부모단체 등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권고안의 불확실성에 따른 우려를 표하면서도 공적 돌봄에 대한 책무하에 시·도교육청과 향후 협의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했던 문제가 일단 한차례 매듭이 지어진 셈이었다.
 

꼬인 실타래 2.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논란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부 발표 직후 논평을 통해 다음과 같은 요구를 분명히 한다. “하나, 초등돌봄교실 확대 중단하고 돌봄겸용교실 해소하라. 하나, 교사에게서 돌봄 업무를 즉각 배제하라. 하나, 국가가 예산을 책임지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돌봄체계 마련하라.”

초등돌봄교실 확대가 교육의 질 저하를 야기한다는 교사들의 문제제기는 비단 코로나19 시기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긴급돌봄 시행 등으로 학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초등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문제가 첨예한 갈등으로 부상했다. 원격 개학 시기 긴급돌봄교실에 나온 학생들을 누가 담당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발생했는데, 돌봄전담사가 없는 학교도 있었고 학교별로 돌봄전담사 채용 시간이 천차만별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돌봄은 원칙적으로 지자체 몫인데 학교가 일시적으로 책임졌던 것’이었으므로 ‘돌봄교실을 더는 확대하면 안 되고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교사들의 인식이 강화되었다. 반면 돌봄전담사들은 ‘돌봄교실이 지자체로 이관되면 민간위탁이 확대되고 공적 돌봄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며 초등돌봄교실 주체를 지자체나 범정부 차원의 통합 체계로 구축하는 방안에 강력 반대하게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에 대응하여 교육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학습 결손과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며 교육의 정상화를 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교육주체 간의 갈등이 폭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 부분이 두 번째 꼬인 실타래다.

교육부 장관은 초등돌봄교실 확충 사업은 지자체와 학교 간 협력하에 서비스 대상자를 3만 명 확대하겠다는 계획으로, 민간위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돌봄 파업에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사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확정하고 2018년 발표한 ‘온종일 돌봄 정책’은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초등돌봄교실을 7만 명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학교 시설을 이용한 지자체 협업 사업도 3만 명 확대하고,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마을돌봄 역시 10만 명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초등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민간위탁 전환이 아니라는 교육부의 해명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시기에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논란이 불거진 데에는 문재인 정부의 무능이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여타 정부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선의만 앞세웠을 뿐 일관성 없이 무책임하게 추진한 돌봄 정책으로 갈등이 증폭되었고 그 혼란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었던 것이다.

초등돌봄교실의 법적 근거조차 부재했던 현실(현재 초등돌봄교실은 방과후학교 정책 안에 포함되어 교육부 고시를 통해 운영된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계획은 없이 서비스의 양적 팽창만 추진했던 것, 코로나19 시기 긴급돌봄 수요급증에 직면해서야 부랴부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교사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단 이틀 만에 법 개정을 철회한 것 등은, 코로나19 시기 학교 현장의 첨예한 갈등과 ‘돌봄 대란’이 바로 문재인 정부 정책의 실패에서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적 지위도 없이 3시간, 4시간, 6시간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온 돌봄전담사의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 해마다 돌봄교실 사업은 확대되지만 운영의 합리성과 체계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교사들이 본연의 교육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워진 학교 현장 등, 초등돌봄교실을 둘러싸고 켜켜이 쌓여있던 기존의 문제들을 그대로 둔 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온종일 돌봄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애초 정책이 계획대로 실현되기 어려웠던 한계를 성찰하기는커녕 정책 실패의 원인을 학교 현장 노동자 간의 갈등으로만 치부하며 절충적인 미봉책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꼬인 실타래 3. 돌봄 ‘제도’의 부재


세 번째 꼬인 실타래는 ‘초등돌봄교실’이 시행된 지 20여 년 가까이 되고 적지 않은 예산이 투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으로는 존재하되 ‘제도’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방과 후 돌봄을 학교에서 책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등돌봄교실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돌봄전담사와 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구별되고, 둘은 어떠한 협력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합의와 체계가 학교 현장에 부재하다는 사실이 이번 코로나19 시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실타래가 어디에서 엉켰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보육·돌봄 정책이 크게 변화했던 201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9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당선을 시작으로 전면 무상급식과 진보교육감 시대가 펼쳐진다. 그리고 민주당은 무상급식, 무상의료에 이어 무상보육과 반값 대학등록금 정책(‘3+1’정책)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2010년 6.2 지방선거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이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임한다. 

한나라당은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며 빈곤층을 위한 복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선별적 복지를 고수하다가 2011년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패배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고 10.26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선출되자, ‘0세부터 전면 무상보육’을 내세우며 입장을 선회한다. 

이처럼 ‘무상’담론 선점을 위한 각축 속에서, 보육 정책 역시 소득 하위 70%까지 선별적 지원을 목표로 했던 기조에서 보편적 지원으로 전환된다. 2013년 이명박 정부는 ‘만 0~5세 보육비 지원, 84개월 미만 양육수당 지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무상보육 정책을 시행했고, 보육예산도 대폭 증가하게 된다. ‘초등돌봄교실’ 역시 이 시기 양적으로 눈에 띄게 팽창하는데, 서비스 대상이 확대되고 이용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났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교육격차와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한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하는 목표로 시행했던 ‘방과 후 교실’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종일돌봄교실’과 박근혜 정부의 ‘온종일 돌봄교실’을 거치며 문재인 정부의 ‘온종일 돌봄 정책’으로 이어진다. 2010년 ‘초등돌봄교실’로 명칭이 통일된 방과 후 돌봄은 현재 저학년 중심 돌봄교실과 고학년 방과후학교 연계형 돌봄교실로 운영되면서 25.6만 명의 초등학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2020년 9월 기준). 문제는 이렇게 보편적 지원으로 정책이 변화하면서 서비스의 양적 확대는 일정 정도 이루었을지 몰라도, 보육·돌봄이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로 체계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보육·돌봄서비스의 전달 체계는 과연 진전되었는가? 보육·돌봄서비스의 질적 관리는 어떠한가? 보육·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개선되었는가? 이상의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이 ‘무상복지’로 의제를 형성하고 ‘선별 대 보편’이라는 허구적 대립에 일조했던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포퓰리즘 복지정책의 나열, 체계 없는 돌봄 사업의 난립을 넘어, 아동 돌봄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합의와 규범 마련을 위한 진지한 고찰이 이제부터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칼로 잘라내는 대담함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제도의 역사성을 단번에 끊어내기는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관점의 변화다.
 

1) 돌봄은 아동에게 중요한 교육적 자원


우선 ‘교육과 돌봄의 상호연관성’에 주목해보자. 이는 ‘돌봄’을 상호의존성·유대·관심·배려·책임·사랑과 같은 윤리적 속성으로 정의하고 합리적 이성을 대신하는 유용한 사고 양식으로 여겨 ‘교육 그 자체’로 격상시키는 입장, 돌봄과 교육의 관계를 전복되어야 할 근대적 위계로 바라보면서 돌봄을 특권화하고 교육을 상대화하는 관념과는 구분된다. 아동의 발달을 꾀하는 교육에 있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호작용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는 것이다. 

인간의 고등정신과정 발달은 자연스러운 성장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인간문화의 역사가 반영된 정신도구들에 대한 숙달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종의 진화와 자연선택과정의 결과로 발전된 하등정신과정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의 토대를 구축한 것이 환경에 대한 인간적응의 독특한 특징이듯이, 언어·개념·상징·기호 등과 같은 정신도구는 인간의 정신발달을 매개한다. 그리고 문화의 대리인으로서 성인은 인간사회의 정신도구를 아동에게 전달하고 사용방법을 익혀 숙달하도록 이끈다. 이를 비고츠키 교육학은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했는데, 아동의 정신연령에 따른 실제적 발달수준과 타인의 도움을 받아 문제해결에 도달하는 잠재적 발달수준의 거리는 유능한 또래와의 협력이나 양육자의 안내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동이 내면의 의식이나 통제에 의해 자기 행위를 조절하고 지적성장을 이루기까지는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성인은 양육자를 향해 품은 아동의 관심과 능동적인 정서를 사물에게로 전이시키고 행위 목표를 전환시키도록 자극하여 새로운 활동 발달을 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육자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아동의 정서가 선물이라는 사물로 전이가 되고, 선물하기라는 행위의 목표가 선물이 될 만한 물건을 수집하거나 창조하는 새로운 행위로 전환되어 활동의 정교함과 난이도가 높아지고 인지구조가 발달되는 과정은, 특정한 활동 단계가 새로운 활동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동물의 그것과 차원이 다른 정신과정이다. 

이처럼 성숙한 타인과의 협응활동은 아동에게 중요한 교육적 자원이 된다. 이때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부모의 노동조건이나 지역사회의 환경에 따라 아동에게 제공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학교 정규수업과정이 아무리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동의 양육환경에 변화가 없다면 인간의 전인적 발달과 지적 격차 감축은 요원한 일이다. 교육격차를 줄이는 문제도 돌봄을 외면하고 진행될 수 없는 이유이다. 초등돌봄교실이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학령기 아동의 정신과정 발달을 꾀하는 질 높은 돌봄을 제공하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과 돌봄의 상호연관성’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2)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초등돌봄제도


두 번째로,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돌봄’이라는 관점이 절실하다. 초등 학령기 아동에 대한 돌봄서비스는 정부 부처별로 유사한 사업이 각기 분절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보건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는 모두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정작 돌봄이 필요한 대상에게 통합적인 서비스가 연속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문제가 크다. 특히 보육기관 이용 시 가능했던 저녁돌봄이 교육기관 취학을 하면서 중단되는 문제는 여성의 경력단절 혹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유치원으로 진학한 유아들이 오후 수업 종료 후 영아 시절 다녔던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이동하여 석식을 포함한 저녁돌봄을 제공받도록 하는 거점형야간보육서비스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낮아 서비스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및 지자체 간 협력하에 영유아에 대한 통합적인 돌봄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하겠다. 연속적인 돌봄서비스는 양육자의 부담을 덜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초등돌봄을 책임지는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부처별 사업마다 상이한 것도 문제다. 특히 초등돌봄교실과 다함께돌봄센터의 경우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이 학교 안과 밖이라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초등 학령기 아동에게 보편적 돌봄을 제공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행하고 있음에도 돌봄 인력의 명칭, 요구되는 자격증, 노동환경 등이 다르다. 돌봄노동자에 대한 표준적인 인력기준, 적정한 임금과 안정적 고용, 경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은 질 높은 돌봄서비스의 필수적인 요건이자, 동일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높이는 전제가 된다. 돌봄노동자의 연대와 역량 강화는 초등돌봄서비스의 공적인 기능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은 비단 학교라는 공공기관, 직접고용이라는 고용조건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 전달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운영을 효율화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자들이 제도운영에 참여하며 역량을 키울 수 있을 때 초등돌봄서비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제도로 거듭날 수 있다. 돌봄사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분절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와 아동, 노동자 모두에게 안정감을 주는 제도로 자리 잡도록 하는 관점의 변화가 절실하다. 
 

3) 돌봄은 여성의 의무가 아닌 권리 


세 번째 필요한 것은 돌봄을 여성의 의무가 아닌 권리로 사고하는 관점의 변화이다. 출산이 가족에 대한 의무가 아닌 성별화된 권리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듯이, 아이 돌봄 역시 여성이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아동을 양육하는 데 있어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는 출산이나 양육에 대한 수당 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인데, 의무이행에 대한 대가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재생산 전반에 대한 자율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어머니가 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가족, 교회, 국가의 간섭 없이 임신 여부와 그 횟수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며, 양육의 방식을 공동체와 협의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할 때에 비로소 여성은 온전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아버지의 딸이나 남편의 아내 혹은 아들의 어머니라는 가족 내 지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말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학령기 아동에 대한 사회적 돌봄이 가족 내 여성의 몫을 임시방편으로 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아동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로 진지하게 성찰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의 돌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다름 아닌 저출산 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됨에 따라 형성되었다. 일례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시행된 조사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무상보육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저출산·고령화, 즉 인구감소 문제로 인해 야기될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강력한 보육·돌봄 서비스 확대 요인이 된 것이다. 

사실 돌봄서비스 정책은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고 같은 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족한 것을 시작으로 크게 달라졌다. 보육예산의 급증,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확대, 출산보조금 및 양육수당 지급, 신혼부부 주택공급, 불임부부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초등돌봄교실의 출발인 ‘방과후교실’도 이 시기에 수립되었다. 

그런데 정책의 목표가 ‘저출산 극복’에 있다 보니 예산의 확대와 각종 사업에도 불구하고 보육·돌봄서비스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이 아닌 여성의 돌봄 부담을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출산보조금 등 현금성 지원의 확대는 돌봄의 경제적 부담은 일정 완화했을지언정 가족 내 여성의 재생산 의무를 전제로 했다.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가정에서 아이를 직접 돌보면 지급되는 양육수당 역시 대표적인 사례이다. 보육·돌봄서비스의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에 있어, 여성단체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민영화·시장화 기조가 문제였고 김대중 정부 시절 확립된 젠더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의 저출산에 대한 분석과 돌봄 문제를 접근하는 관점에 있어 공백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4) 인구감소와 저성장이라는 정세와 돌봄서비스 확충


그렇다면 무상보육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 효과가 있었나?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또다시 최저치를 경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사실은, ‘저출산 회복’의 기미가 없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는 무상보육을 더욱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으로 산업혁명 이후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공통적으로 겪어온 문제이다. 인구감소의 속도와 폭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인구유입의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 크게 역전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서비스 확충을 이유로 한 공공부문 확대 및 국가재정 증대가 오히려 저출산이 야기하는 문제, 즉 저성장 심화라는 문제를 가속화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구감소와 저성장이라는 정세를 인식하는 것, 이것이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관점의 변화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어르신 요양, 간호·간병 통합돌봄, 장애인 지원, 초등 돌봄, 영유아 보육 등 ‘5대 돌봄 국가책임제’를 공약하면서, “돌봄 부담에서 개인을 해방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며, 양질의 돌봄 일자리를 창출하여 선순환적 돌봄 경제를 만드는 일”, “초저출생·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이자 성장전략”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런데 앞서 짚은 것처럼 돌봄 정책의 양적 확대가 곧바로 여성 해방과 ‘공동체 가치 복원’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여성의 재생산 의무와 개별 가족의 부담을 존속시키는 방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진지한 평가 없는 공약은 성공하기 어렵다. 또한 저성장이라는 정세적 조건하에서 돌봄 일자리 창출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공공부문은 생산성 제고에 간접적으로 기여할지언정 그 자체로 국민경제의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돌봄서비스 확충의 필요성과 의의와는 별개로 그것이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정세적 조건을 무시하고 장미빛 미래를 꾸며내는 것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선의를 앞세워 책임성이 결여된 길로 국민을 이끌겠다는 셈이라면 그로 인한 혼란과 갈등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될 터인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초등돌봄교실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대혼란과 같은 일을 다시 겪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편 노인과 환자, 장애인, 학령기 아동과 영유아에 대한 각각의 돌봄 제도를 질적으로 개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수준이 아니라, ‘돌봄 국가책임제’와 같이 돌봄서비스를 전면 확충하는 데에는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 시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을 위해 국민적 합의와 사회보험제도 개편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쳤던 것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전격적인 도입에도 불구하고 노인돌봄제도의 공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더불어 상기해보자. 

그런데 이재명 후보의 ‘돌봄 국가책임제’ 공약에서 재원 마련 계획이라든지 제도운영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돌봄의 국가책임을 강화한다는 공약이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공약처럼 정부의 예산 규모를 과감하게 확대하겠다는 것에 그친다면 심히 우려스럽다. 인구감소와 저성장이라는 정세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 정책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민의 삶을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OECD 추산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중으로, 기술혁신 둔화와 저출산·고령화가 초래하는 인구구성의 문제는 저성장 상태의 반등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가부채의 증가속도는 경제전망을 고려해 적절히 관리되어야 하는데,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경제성장’을 위해 공공부문을 확대하고 국가재정을 증대한다는 주장이 과연 미래세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일 것일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감소와 저성장이라는 정세를 진중하게 사고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부문 확대 및 돌봄서비스 확충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국민소득 및 인구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결정되어야 한다. 막대한 국가재정의 지속적 투입 없이는 운영이 가능하지 않은 복지사업이 선거 시기마다 경쟁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전달이 효율적이고 정책효과가 높은 돌봄 제도가 자리 잡도록 하는 규범과 체계 마련이 모색되어야 한다.


사회운동의 역할과 과제

 
이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관점의 변화를 전제로 위드코로나 시기 아동돌봄 관련 사회운동의 역할과 과제를 제시해본다.
 
첫째, 초등돌봄교실의 적절한 규모 확충과 질적 강화를 도모하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9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노동자 중 연간 4만 명이 넘는 경력단절 여성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20년 기준). 범정부 온종일돌봄 수요조사(2021년) 결과 확인된 돌봄 필요 인원은 47.4만 명으로, 현재 초등돌봄교실 이용 인원 25.6만 명 외에 약 20만 여명의 아동에게 돌봄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셈으로 조사되었다. 구체적인 규모와 서비스 제공 방식 등은 조사와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학령기 아동에 대한 돌봄서비스 확충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무상보육 및 초등돌봄교실 시행과 더불어 꼬였던 문제들을 앞서 짚었듯이 서비스의 양적 확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돌봄과 교육의 상호보완성,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돌봄서비스로의 관점의 전환을 통한 질적 도약이 절실하다. 이 과정에서 학령기 아동 돌봄의 바람직한 제도화에 대해 교육주체 간 건설적 토론의 계기가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하겠다.

돌봄전담사 노동조건 개선도 관건적이다. 하루 6시간 미만 시간제로 종사하는 돌봄전담사가 다수(56.4%)인 현실 개선이 급선무이다.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운영 개선 방안」을 따라 각 시·도교육청이 돌봄전담사가 돌봄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관련하여 8월 교육부 권고안 발표 이후 진행된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지역별 교육청 간의 협상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소식이다. 돌봄은 교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봄전담사 적정 근무시간 확보 반대를 고수하기보다는, 양질의 돌봄이 아동에게 중요한 교육적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고려한 전향적 태도가 위드코로나 시기에 걸맞은 교육 당국의 모습이겠다. 돌봄전담사가 안정적 노동조건 속에서 제도 운영에 대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로서 거듭날 때, 초등돌봄서비스 제도의 발전적 개선이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둘째, 노동자들의 참여로 아동돌봄 제도를 폭넓게 개선하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 시기 아이들의 학습 결손과 돌봄 공백 문제 대응에 있어, 노동자 간 협력이 아닌 갈등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과정을 앞서 평가했다. 초등돌봄서비스 법·제도 개선은 여전히 얽히고설킨 쟁점이 존재하기에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만 돌봄교실 법제화 관련하여 당사자의 이해관계 중심의 갈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노동조합이 사회적 목소리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지난 과정의 교훈으로 남아있다. 

돌봄전담사가 조직된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이 지역과 직종을 넘어선 노동자 단결을 도모하고 차별에서 평등으로, 학교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는다고 했을 때, 학교 안팎의 전체 아동 돌봄 제도를 사고할 필요가 있다.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통합적인 서비스가 연속적으로 제공되도록 하는 제도개선을 노동조합이 선도하자. 학교 담벼락 안의 초등돌봄교실에 국한되는 요구가 아닌, 학교 밖 지역사회 돌봄노동자까지 대표할 수 있는 보편적 요구를 개발하도록 하자. 초등 학령기 아동에게 보편적 돌봄을 제공하는 동일직종 노동자 간의 연대와 단결로 아동돌봄 제도를 폭넓게 개선해 나가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과 교직원 노조뿐만 아니라 총연맹-지역본부 및 산별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돌봄전담사를 제외하고는 취학 전후 아동 돌봄 노동자들의 실태 파악조차 미흡한 현실이다. 학령기 아동 돌봄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황 및 요구를 너르게 조사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장기 제도개선방안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내 가용 공간이 있는 학교 또는 외부 시설을 활용한 ‘거점 돌봄기관’을 시범 운영하여 지역 내 돌봄 수요에 기반한 새로운 운영 모형을 마련한다”는 교육부의 이후 계획에 유능하게 대응하는 주체적 역량을 조직하자. 노동자들의 참여로 위드코로나 시기 아동돌봄 문제를 대응해 나가는 데에 있어 인구감소와 저성장이라는 정세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여성의 권리로서의 돌봄과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동시에 요구하자.

작년 돌봄전담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최초의 전국적 파업으로 초등돌봄을 둘러싼 쟁점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었다. 돌봄전담사 파업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전담했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그러나 워낙 열악하고 불안정했던 노동조건은 주체들의 투쟁을 처우개선 및 고용보장이라는 방어적 요구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보육·돌봄 정책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목표로 양적 확대되었던 지난 역사는 초등돌봄을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직접 돌보는 최상을 대신하는 차선’ 정도로 위치 지우게 했다. 

코로나19로 돌봄이 사회적 화두가 된 시기에 여성의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돌봄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자. 여성이 재생산 의무를 다한 것에 대한 경제적 보상 차원이 아니라, 재생산 전반에 대한 여성의 자율적 권한을 보장하는 제도로서의 돌봄이 새롭게 논쟁의 중심이 되어야 하겠다. 돌봄이 여성의 권리로 접근될 때 초등돌봄 문제는 임시방편적인 사업이 아닌 새로운 규범과 체계로 위상이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노동에 대한 권리와 시민적 활동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혹은 낳지 않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차이가 차별이 되고 차별이 혐오로 발전하는 시대, 인류가 초래한 감염병 위기 시대와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위기 속에서도 문명의 지평선을 사고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문제라고 하겠다.

돌봄노동자의 요구는 초등돌봄 정책의 합리성을 강화해나가는 운영자이자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최전방에서 일구어나가는 주체의 목소리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올해 하반기 시작한 시·도 교육청과의 협상을 승리로 이끌고 투쟁의 결실을 교두보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이후 운동을 긴 호흡으로 준비하자. 처우개선과 정규직 따라잡기를 넘어서,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노동에 대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방향 전환을 모색해보자.  

11월 4주 차, 청소년·어린이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성인 확진자 수를 넘어섰다. ‘의료’와 ‘돌봄’의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는 위드코로나 시기에, 사회운동이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고 노동자가 새로운 세상을 책임지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자. 본 글에서 다루지 못한 과제와 부족한 부분은 향후 지속적인 토론으로 채워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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