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3 봄. 182호
첨부파일
02_특집_좌담.pdf

2023년 노동조합운동 전망과 과제

사회진보연대 |
  • 일시    2월 19일(일) 사회진보연대 사무실
  • 사회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 참석자    김성영(민주노총 충북본부 조직국장), 박준도(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박준형(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교육국장), 소영호(건설노조 정책국장), 오기형(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
 
 
임필수    지난 2021년 봄호에 ‘문재인 정부 4년과 노동조합운동: 문재인 정부 4년,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회원좌담을 진행한 이후, 2년 만에 또 한 번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당시에는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무엇이 바뀌었나,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냐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좌담에서 화제가 된 주제를 중심으로 2021년 여름호에는 ‘노동조합,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라는 특집을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 총파업 요구안, 이대로 좋은가?」, 「2021 민주노총 임금요구안 비판」, 「산업전환 정책의 문제점과 노동조합의 역할」, 「기재부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 그 출발점부터 다시 생각해봐야」와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그 후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인데요, 대선 이후 집권 세력의 교체가 있었고 대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좌담에서는 지난 2년 동안 노동자운동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살펴보고, 최근 심상치 않은 노동자운동의 상황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해보면서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9년부터 많게는 20여 년까지 노동조합 경력이 쌓인 활동가들을 모셨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다들 어떻게 지내셨나요, 2년 전에 참석하셨던 두 분의 이야기부터 먼저 들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기형 부장께서는 지난 좌담에서 금속노조가 산업전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금속노조의 산업전환 대응, 공공운수노조의 지난 2년

오기형    산업전환에 대한 금속노조의 대응에 대해서 평가해봐야 할 텐데요,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협약화 경로인데, 산업전환협약이라는 통일 요구를 제기하고 사업장별로 교섭을 통해 풀어가는 노사 간의 프로그램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입법을 통한 법제화 경로였습니다. 세 번째로는 연성의 제도화, 즉 노정교섭과 같은 사회협약의 경로입니다. 마지막으로 투쟁이나 연대의 확장을 통한 사회 쟁점화 방식입니다.

첫 번째인 협약화의 경우는 어느 수준 이상으로 쟁취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협약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훈련되면서 산업전환에 대한 조직 내 인식을 통일하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실제 교섭이 진행된 단위조직의 조합원 비중으로 하면 80% 이상 달성이 되었는데요. 다만 정부와 지자체에 협의체 구성을 공동으로 요구한다는 조항을 원안 그대로 쟁취하지 못한 데를 제외하면 비율이 꽤 줄어듭니다. 

두 번째인 법제화는 크게 실패했습니다. 10만 입법 청원은 1만 5천 명밖에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금속노조가 정의당 강은미 의원하고 같이 작업해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법」을 발의했는데, 이에 대응해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전환고용지원법을 발의하여 세 법안이 병합심리 중이고 아직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국면에서 정의당 법안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이 쟁점을 만들지 못한다면,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법안으로 통과될 확률이 높겠죠. 그렇게 되면 노동조합의 개입경로가 없어지게 됩니다. 

사회협약을 맺을 수 있을 정도의 산업별, 업종별 협의체를 구성하려는 세 번째 경로는 사실 노동조합 스스로 요구가 분명치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집행부가 교체되면서 방향 설정에 차이가 있었고 그게 혼란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어요. 물론 노동중심 산업전환을 목표로 총파업을 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작년에 사회협약 또는 노정교섭의 측면에서는 거의 아무런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지요. 

사회 쟁점화의 측면에서, 금속노조가 기후위기 대응을 자기 사업으로 여기고 조직을 동원해 투쟁했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금속노조가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에 대해 발언하는 세력이라는 어필에는 성공한 편이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어서 연대를 확장하고 있냐고 했을 때는 아직 맹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임필수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사회협약의 측면에서는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는데, 집행부 교체라는 요인이 컸나요? 아니면 이러한 방식의 운동이 갖는 고유한 한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기형    후자 쪽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산업전환협약을 설계했던 집행부가 당선됐다고 해도 노동조합 패싱이라는 결과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금속노조의 문제 제기 이후에 정부가 이를 고려하여 일부 선택적으로 반영한 정책들이 발견됩니다. 반면에 금속노조의 문제 제기를 반영하지 않을 때 굳이 핑계를 달아 놓는 사례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금속노조의 다양한 문제 제기가 현실을 전혀 바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의미 있는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 정부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본 역시도 노동조합을 의미 있는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아요. 이 부분을 돌파하지 못했다면 집행부가 달랐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입니다. 

집행부의 문제도 있긴 했는데요, 실제로 사업을 추진했던 전 집행부의 경우에는 여러 연구자로 자문단을 구성하고 정부위원회나 정부부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다각도로 접근해 들어갔습니다. 금속노조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경로를 통해 반복해서 두드려 본 것이죠. 반면에 이번 집행부는 노동이 주도하는 산업전환, 노동이 중심이 되는 산업전환이라는 슬로건을 걸었는데 산업전환이라는 현상을 노동이 주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현실에서의 실현 경로는 잘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습니다. 금속노조가 노정교섭에 대한 프로세스를 밟아 가고 있는 단계도 아니면서 총파업으로 이를 돌파하는 투쟁을 시작한 것이죠. 현장에서는 경로가 불분명한 요구를 가지고 어떻게 총파업을 조직하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사회협약이라는 경로가 원래도 어려운 판이었던 게 더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이 집행부가 어려움을 심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임필수    산업전환과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 외에, 철강, 기계, 조선 등 금속노조의 다른 업종도 산업전환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나요?

오기형    산업전환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요. 동력을 전기로 전환하는 경우는 압도적으로 자동차와 산업기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조선에서도 전기동력을 시도할 수 있지만 쉽지 않아서 친환경연료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고려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양상은 산업 전반의 자동화입니다. 물론 디지털 전환은 최근에 급격하게 이뤄졌다기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추진되던 상황이었죠. 그러나 제조업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최근에 전환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임필수    산업전환에 대해서 해야 할 얘기가 무척 많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 기회에 글을 요청하거나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년 동안 어떤 활동을 전개했나요? 

박준형    지난 2년간 집행부에 일관된 흐름이 있다기보다는 시기별로 강조점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2021년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였는데, 그때까지는 그 전부터 노사 간의 쟁점이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에 후속하는 사업장별 투쟁을 지원하고 조직하는 활동을 주로 했지요. 2021년 말부터는 대선 대응을 준비하면서 정책요구안을 제시하고 공론화하는 사업들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 활동가가 사실상 이재명 후보가 집권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여요. 이 시기에 정책 요구들은 의도적인지 결과적인지 민주당과 공명하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재부 해체와 같은 요구입니다. 내용에 대한 정책적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이재명 후보는 재난지원금 쟁점을 중심으로 기재부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런 흐름을 활용하기도 하면서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기재부에 대한 공격, 해체 요구가 부각됩니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는 더는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확장재정에 대한 요구도 계속해 왔습니다. 공공부문 입장에서는 공공부문이나 공공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 있겠지만, 2022년에 접어들면서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확장재정이 타당한가라는 문제도 감안해야죠. 2021년까지는 코로나19도 안 끝나고 인플레이션 전이기 때문에 확장재정 요구를 공세적으로 했다고 이해한다면, 2022년 들어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도 유사한 기조를 이어갑니다. 다만 확장재정 요구를 그냥 하기는 곤란하다 보니 여러 공공 예산의 확충이라는 다소 우회적인 방식으로 제기합니다. 다만 이러한 요구의 근거로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공급측 문제이니 해결 방안도 가격통제와 같은 공급측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특정한 입장을 수용하지요. 확장재정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 요구와의 유사성은 여전한 상황이고요. 특히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나 공공운수노조가 경제정책에 대한 토론회에 주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을 섭외하면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정책을 수용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2022년에 결국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 해 중반부터는 공공운수노조가 민영화 이슈에 주목하면서 민영화 방지법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민영화 괴담을 유포하고 민영화 쟁점을 중심으로 대선 직후 대정부 전선을 형성하려는 시도를 보였거든요.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민영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만, 현시점에서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은 민영화라기보다는 일정한 수준의 지출 긴축과 구조조정 정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공공요금 인상도 억제하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지출을 억제하려는 의도도 있겠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공공운수노조가 민영화 이슈를 띄우면서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는 연대 전선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병원, 화물연대, 서울교통공사노조의 파업 돌입과 철도노조의 파업 준비처럼, 2022년 말에는 일련의 연쇄 파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장 쟁점들은 각각 달랐지만 시기를 집중하고 흐름을 만들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적 대응을 염두에 두고 조직했었습니다. 개별 노조의 집행부나 요구, 투쟁 각각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공공운수노조 집행부의 투쟁계획 구상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이를 정치 공세라고 인식하고 적대적인 입장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되고 탄압이 집중되었던 것이 작년 말까지의 상황이었습니다.
 

건설노조의 조직확대와 탄압, 충북본부의 활동과 지자체 노정교섭

임필수    소영호 국장께서는 저번 좌담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지난 2년간 건설노조의 특징적인 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소영호    우선 지난 2년간 조직 확대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2021년 5만 명 대 후반에서 2023년 2월 현재, 7만 5천 명으로 규모가 크게 늘었어요. 2020년 초반만 하더라도 건설 경기가 안 좋아질 거라는 얘기가 있었고, 실제 실업자 조합원도 증가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의 경기부양 때문에 건설 경기가 상승하였고, 토목건축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조직이 확대되었습니다. 게다가 ILO 핵심 협약이 2021년 4월에 국회에서 비준이 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고, 정부에서도 이를 지원하고 중재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당시 집행부에서 레미콘 직종 전략조직사업을 시작한 것도 조직 확대의 요인입니다. 

민주노총이 커지는 것만큼 다른 노조도 많이 생겨서 현재 건설노조가 55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역시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다른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서의 활동을 일탈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2021년 9월, 문재인 정부 말기에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TF>를 만들어서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채용절차법이나 공정거래법으로 노조활동을 규율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윤석열 정부 들어 심화하고 있고요. 

2021년 말에 대정부 투쟁과 총파업 투쟁을 핵심 모토로 하는 집행부가 당선되었습니다. 2022년 말에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집중적으로 조직했고, 다양한 법제도 개선 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 상경투쟁을 하며 국회와 정부를 압박하는 투쟁을 지속하였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법제도 개선 투쟁 역시 중요하지만, 건설현장의 고용 투쟁 등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요구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정책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 더 힘을 쏟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현재의 탄압이 이렇게 심해질 줄 몰랐고, 우리도 준비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임필수    건설안전특별법이 무엇인지 부연 설명을 해주시죠. 문재인 정부 때는 왜 처리가 안 되었던 것인가요?

소영호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건설현장에 특화된 내용의 법안은 아닌데,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현장과 관련한 여러 가지 조항을 종합한 법안입니다. 2020년 4월에 이천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건설노동자 38명이 사망했을 때 정부에서 추진했던 법안이고, 적정공사비나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 것과 발주처를 비롯한 원도급사, 하도급사 등 각 주체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는 점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동안 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해관계자가 많고 법안이 계속 수정되는 과정에서 지연되었던 것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정부가 바뀐 상황이고요.

임필수    마지막으로 충북지역본부 김성영 국장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총연맹, 지역본부의 최근 현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성영    총연맹에서는 7월 총파업을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상이 더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정부 투쟁 외에도 총연맹 차원의 요구가 분명해야 합니다. 2주 기간을 설정해두고 산별노조 별로 파업하자는 시기와 방식은 정했지만, 정작 총연맹이 어떤 요구를 가지고 어떻게 투쟁하겠다는 점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서요.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이 통과되었다고 하더라도 현 시기 전체 노동자의 요구로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 더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 파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이라는 슬로건도 요구 자체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실현 경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북지역본부는 중앙에서 투쟁을 계획하면 이를 조직하는 데 주력하며 활동했습니다. 이 외에 충북본부가 별도로 했던 사업으로, 작년에 새로운 도지사가 들어오고 나서 노정교섭을 내걸었던 것이 있습니다. 또한, 충북에서 민주노총이 선봉에 서서 투쟁을 조직해보자, 충북지역의 내셔널 센터로서 위상을 획득하자는 조직적인 목표를 가지고 민중대회를 세 차례 독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임필수    총연맹 핵심 사업을 지역에서 진행했고, 이외에도 지자체 노정교섭과 민중대회를 추진했다는 점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지역본부의 고유한 역할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항상 지역본부 운동에서 쟁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하나의 돌파구로서 지자체 노정교섭이나 이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 조직화 사업의 인프라 구축을 모색했던 것 같은데요. 충북지역에서 활동을 오래 하셨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지역본부 활동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성영    지자체 노정교섭의 목표가 과연 무엇이 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은 있습니다. 총연맹 노정교섭 요구처럼 노동시장을 조정하는 거시적인 요구를 하는 자리도 아니고, 사실상은 협소하거나 국지적인 노동복지, 처우개선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역본부가 이를 추진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역본부가 지역 노동조합 운동에서의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충북본부 같은 경우는 본부 중심으로 투쟁을 이끌어갔던 역사가 있었고요. 그러나 이제는 산별 지역조직들이 자리를 잡고 역량이 늘어나면서 자체적으로 교육과 투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투쟁 사업장이 생기면 본부에서 사람을 파견 보내서 투쟁을 지원하고,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조합원의 신뢰를 얻는 방식이었습니다. 투쟁이 끝난 이후에도 교육을 제안하고 그 사람들을 모아서 지역연대 사업에 참여하게 하는, 교육과 투쟁 그리고 연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던 것이죠. 단적으로 2010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지역본부 상근자 수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 산별이나 업종본부 상근자 수는 40명 정도 늘어났습니다. 

산별이 자기 완결적 구조를 가지고 지역본부가 하던 역할을 스스로 수행하면서, 지역본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투쟁본부일 수는 없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어떻게 계급 대표성을 가지고 갈 거냐고 했을 때, 노정교섭이나 노동정책 쪽으로 강조점이 이동한 거죠. 충북본부는 특히나 투쟁본부적인 성격이 강해서 지자체나 정부기관과의 사업이 투쟁 외에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임필수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현재 국민의힘 소속이던데요, 그전에는 노정교섭이 있었나요?

김성영    전임 이시종 도지사는 민주당인데 노동조합에 상당히 비협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시종 지사 시절에 충북본부 미비국에서 생활임금, 노동안전 조례 제정사업을 열심히 했었는데요, 실제 시민 발의를 성공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걸 끝까지 거부했던 사람이 바로 이시종 지사였습니다. 그렇다고 김영환 지사와 노정교섭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확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뭐가 나온 것은 아니어서요. 

최근에 의원 발의로 노동정책기본계획이 조례로 제정되었는데, 보통 5년마다 한 번씩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1년마다 한 번씩 계획을 내어야 하죠. 이런 프로세스가 시작하던 와중에 집행세력이 교체된 상황이라, 앞으로 교섭의 형태가 어떻게 이뤄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자체들은 대부분 노사민정의 형식으로 노동조합과 논의하려고 하는데, 민주노총은 노사민정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2021년~2022년 노동자운동 평가: 민주노총 요구안을 중심으로

임필수    총파업 투쟁에 얼마나 많은 조합원을 모았는가, 조직률은 얼마나 올랐는가 하는 외형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구조적인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지난 2년간의 노동자운동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임단협 교섭구조에 발전이 있었느냐, 정부 정책에 개입하기 위한 경로를 창출했느냐, 사회운동·정당과 연계성을 강화하고 주도력을 발휘했느냐, 이런 측면에서 각각 평가해 볼 때, 최근 노동자운동의 질적인 발전이 있었는지, 아니면 고착화된 패턴들을 유지 반복했던 것인지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노동위원장이 전체적인 흐름에 관해서 얘기해주시죠.

박준도    양경수 집행부 첫해인 2021년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요구의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민주노총이 재난 시기 노동자와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겠다는 의지는 담겨있었습니다. 일자리 국가 책임, 재난 생계소득 지급 등이 대표적이죠. 

그러다가 2022년은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이는 사업들이 제시됩니다. “차별 없는 노동권, 질 좋은 일자리 쟁취”를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폐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폐지, 산별교섭 제도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등을 하자고 제안하거든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2022년 7월 중앙위에서 이 계획은 수정됩니다. “생존권 투쟁을 체제전환운동으로 발전”시키고, “노동개악 저지 투쟁전선을 구축하면서 개혁 입법을 쟁취”하자는 것으로요. 

그리고 2023년 2월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반윤석열투쟁 전면화, 5월 20만 총궐기와 7월 총파업을 내걸고,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 등 노동기본권 쟁취와 함께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요구합니다. 갑자기 반정부, 정권 심판 투쟁을 전면화한 건데요, 의문인 건 왜 이렇게 요구가 비약하게 되었는가예요. 저는 이게 이번 양경수 집행부 평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요구가 정치적으로 발전하려면 배경과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계급대립의 정세가 격화되었다던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 고취되어 정치적 진출을 도모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던가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건설노조와 화물연대에 대한 탄압, 이른바 ‘노동개혁’의 공론화 같은 걸 단번에 계급대립의 격화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정치적, 계급적 단결이 고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민주노총 스스로도 그렇게 평가하고 있지 않아요. 이번 대의원대회 대선 평가만 보더라도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이 취약해졌다”, “민주노총의 (지지)후보 방침에도 현장 호응 부족 등으로 양당 중심의 선거현실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거든요. 또 2022년 하반기 생존권 투쟁을 체제전환운동으로 발전시키자고 한 것에 대해서도 “국정방향에 대해 저지, 반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건설-체제전환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그러면 임단투 과정에서 격차 축소와 함께 단결력을 제고하고 있는가, 의미 있는 시도라도 하고 있는가, 2022년 사업평가 어디에도 그런 대목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에 대항하는 최대조직으로서, 반윤석열 투쟁 전선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정치적으로 급발진한 건데요, 좋게 이야기하면 의지주의고, 나쁘게 말하면 모험주의입니다. 

오기형    지난 2년을 평가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부분은 2021년, 2022년이 문재인 정부 마지막 연차와 윤석열 정부 첫 연차였다는 겁니다. 전임 정부도 정책 집행의 동력이 떨어져 있었고, 윤석열 정부도 아직 집행의 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특히 두 번째 평가항목인 정부 정책의 개입 수준에서는 산업전환 대응도 그렇듯, 애초에 발전할 것 같은 느낌을 잘 못 받았습니다. 

아까 노조가 의미 있는 대화 파트너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는데, 정부 입장에서 보면 노조가 협의한 바를 집행할 수 있는 조정 능력이나 노조의 기획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이유겠죠. 전국적이거나 전 산업적이지 않더라도 지역 차원에서라도 의미 있는 모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면서 서로를 배제해가는 흐름을 역전시키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임필수    작년 대우조선해양에서 점거 투쟁이 있었던 후에, 조선산업 관련해서 협의체를 구성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금속노조는 참여하지 않았고, 협의체에서 이러저러한 결론이 나왔을 때 노조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그 후로도 조선산업상생협의회가 발족했는데, ‘상생’이라고 하지만 노조는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한 그림이 나왔습니다. 조선산업 협의체의 경우에도 왜 ‘의미 있는 모델’이 나오기 어려웠을까요. 

오기형    기본적으로 금속노조에 제안이 오지 않았어요. 회사는 금속노조가 들어오면 우리는 안 들어간다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원청과 하청이 자율적으로 논의해서 조정을 하는 방식으로 정부 기조가 잡혔었는데, 정부는 노조와 협의를 통해 푼다기보다 원하청 내부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자동차포럼이라고 하는 아주 낮은 수준의 노사정 협의체도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정기적으로 하던 것을 부정기적으로 하자는 식으로 입장을 틀었습니다.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태도가 변한 것이 있겠지만, 큰 흐름에서는 노조와 합의하는 구조는 어떤 정치세력도 못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부 입장에서는 노조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자본에 일정 정도 받을 것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조도 매번 대화에서 배제되면서 불신이 강화되어 내부적으로 무용론이나 실현불가능론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임상훈, 바카로의 연구에 나온 ‘약자들의 사회협약’ 개념에 따르면 정부는 더 이상 약자의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성영    박준도 노동위원장이 투쟁 요구가 비약되는 과정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총연맹 집행부가 어떠한 정치적 의도나 계획을 가지고 요구를 끌어올린 것 같지는 않아요. 현안 투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이 부각되었던 부분도 있고요.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요구안을 구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준도    기억하겠지만 노무현 정부 1년 차는 시작부터 열사 정국이었어요. 배달호 열사부터 김주익, 이용석, 곽재규 열사까지 죽음으로 손배가압류, 비정규직 문제에 항거하던 때였어요. 그해 11월 시청 광장에서 노동자들이 분노를 쏟아낼 때, 전국노동자대회 구호가 뭐였냐 하면 “비정규직 차별 철폐! 손배가압류 철폐! 노동운동탄압 분쇄! 이라크 파병 반대! 노무현 정권 규탄!”이었습니다. 정권 규탄이요. 2004년 노무현 정부 2년 차 때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의 대회 슬로도 “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차별 철폐! 파병 반대! 노무현 정부 규탄!”이었어요. 정권이 아니라 정책에 반대한 것이었어요. 위력적인 시위와 함께 정치 집회를 연 건, 노무현 정부 정책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하고, 변화와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지, 어떤 정치적 대안이 있는지 등을 토론하고,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탄핵의 경험이 있다는 걸 감안해도 정권 심판, 정권 퇴진을 너무 쉽게 꺼내 들고 있습니다. 노동 탄압만을 근거로 정권 심판, 정권 퇴진을 주장한다면, 원칙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항상 정권 퇴진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세를 분석할 이유가 없고, 동의와 설득이라는 행위도, 정치적 전망과 대안 같은 걸 고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노동 개악 저지”, “노동 탄압 분쇄”, “노조할 권리”를 주장하며, 민주노총이 노동자를 계급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기득권이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는 세력이며,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가 문제라는 게 환기되어야, 시민들에게 동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김성영    집행부가 ‘퇴진’ 요구를 내거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민주당 식의 퇴진집회하고는 선을 그으려는 것으로 보여요. 총파업의 두 번째 요구가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인데, 집행부가 이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무래도 민주노총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겁니다. 노조를 탄압하니까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현상을 보고서 사회적으로 노조가 고립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고, 따라서 시민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의도로 내건 슬로건 같습니다. 요구의 정합성을 떠나서요.

오기형    목표가 먼저 있고 그 요구를 쟁취하는 수단으로서 파업이나 투쟁이 배치되는 것이 수순인데, 지금은 파업 투쟁을 할 수 있는 요구를 어떻게 발견하고 찾아낼 것이냐는 전도된 방식으로 논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목표 달성의 경로가 무엇이냐는 생각이 주변화, 상대화됩니다. 따라서 너르게 포괄할 수 있는 요구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사실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도 원칙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박준형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이라는 요구도 기업별 교섭의 현실에서는 지불능력이 있는 독점기업, 수출 대기업에서의 임금인상으로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민주노총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면 임금격차는 더 확대되는 결과를 낳겠죠.
 

2021년~2022년 노동자운동 평가: 투쟁 목표에 대한 비판

소영호    총연맹 집행부는 총선까지 대규모 투쟁을 이어가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세 있게 대규모 총파업 투쟁을 진행했다는 것 자체가 집행부의 성과가 될 것이고, 건설노조 조합원도 많이 참석하겠죠. 그런데 산별 중앙에서도 민주노총의 문제의식이 공유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지역으로 갈수록 더 그럴 거고요. 지금도 민주노총 집회니까 나가는 거지 요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현재 건설노조 탄압의 강도가 너무 심하니,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윤석열 정권 규탄으로 생각하고 투쟁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집행부 입장에서는 대중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엄밀하게 정세적으로 적합한 의제를 개발하고 투쟁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큽니다. 관련해서 오랜 시간 투쟁을 해왔던 조직들이 있고, 이런 대중조직들이 힘을 받고 자신의 의제로 생각할 수 있도록 투쟁을 기획했어야 합니다. 이런 기획이 되지 않고 상층중심, 명망가 중심의 투쟁이 된 것이 아쉽습니다.

박준도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민플러스와의 인터뷰(2023.2.5.)에서 “다수세력은 집권전략을, 소수세력은 교두보 전략을 실현하는 민주진보 선거연합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진보대단결이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어요.

1월 5일 신년 정세토론회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야당 당대표에 대한 수사와 사법처리를 통해 야당의 분열과 무력화를 기도하고 있으며, 결정적 혐의를 확보하지 못한 조건에서 2023년에도 집요한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는데요,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검찰에 의한 야당 탄압이라는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야당과 공동 연합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내년 총선의 정치 구도를 한국진보연대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어요. (좌담회 직후인 2월 23일, 진보당은 “이재명 체포동의안 반대·쌍특검 즉각 도입”을 촉구하는 전국 동시다발 행동전을 진행하였다)

박준형    이번 집행부가 지난 김명환 집행부의 노사정 합의가 실패하면서 집권했다는 점을 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전 집행부의 노사정 협상은 여러 문제가 있었고 별도로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전 집행부는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집중을 두었다면, 이번 집행부는 이러한 전사가 있다 보니까 정부에 대한 개입을 일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구안이 실질적인 정책적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정부에 유능하게 개입할 수 있는 매개라기보다는 투쟁 동원을 위한 구호로 제시되는 측면이 많아요. 이렇게 협의 자체가 불가능한 요구를 제시하는 것은 총파업을 포함한 투쟁 조직화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집권 초반에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과 협상을 벌이긴 했죠.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고, 대우조선해양 투쟁도 이후에 노동조합을 협의체에서 배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대책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는데, 하반기 들어서 기조가 바뀌었어요. 정부에서는 특히 이번 민주노총 집행부와는 협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폐기한 것으로 보이고,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역시 요구의 실현보다 대정부 투쟁 자체에 공력을 쏟았습니다. 정부는 노조와 대립적 관계를 가졌을 때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민주노총도 대결적인 분위기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을 보면, 한국사회의 노동정책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관계는 어떻게 바꿀 것이고, 법제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민주노총도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별로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산별교섭을 촉진하려고 노력했냐고 자문했을 때도 사실 거의 할 말이 없지요. 민주노총이 전태일 3법 투쟁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고 그 중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미 제정되었지만, 노조법 개정과 5인 미만 사업장의 근기법 적용은 이번 집행부가 뭔가 특별히 해보려고 노력했던 점은 없고요. 노조법 개정도 대우조선해양 투쟁이 이슈화가 되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사후적으로 주목한 것이지 작년에 주요 투쟁과제로 기획된 적이 없지요. 내용적 방향을 떠나서라도, 2년간 총연맹이 노동시장 제도라거나 노사관계를 변화시키는 유의미한 주체로서 활동을 못 했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오히려 노동자운동이 쇠퇴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필수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노동자운동의 행동 방식이 민주당 정부·여당에 대한 기대와 의존을 전제로 삼는 식으로 변화한 듯합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강경한 레토릭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이는 민주노총이 ‘최대요구’를 제시하고 압력을 가하면, 정부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수용해서 정책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은 정책의 정당성, 정합성에 대해 깊이 따질 필요가 없고, 전국적인 노사, 노사정 테이블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여론화나 합의 도출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죠. 그런 것들은 정부가 알아서 해야 할 몫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런 활동방식이 고착화된다면, 결국 민주노총의 활동에 깔린 숨어있는 제일 목표는 민주당의 집권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선거법 개정 지원으로 의회 내 의석수를 늘릴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어쨌든 현재 민주노총이 윤석열 정부를 반노동, 반노조 정부라고 강하게 공격하는 이면에는 민주당 정부가 그래도 친노동, 친노조 정부라는 것을 암암리에 전제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정책의 정당성, 정합성이 기본적인 동력이 되어서 자율적인 힘으로 사회적 동의를 확대해가는 경로보다는, 민주당 ‘친노동’ 정부를 세우고 최대요구를 내걸면서 정부에 최대 압력을 가한다는 활동방식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실천 경로가 된 듯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노사법치주의’

임필수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내부적인 상황을 살펴보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는 정세적인 상황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하는데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노조에 대한 대응 기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기존에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권고했던 안들은 주로 ‘노동규범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시간 신축화와 임금체계 개편이 중심이었다고 하면, 최근 들어서는 ‘노사법치주의’ 확립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치주의란, 실정법에 대한 준수 의무 강조와 법 위반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겠죠. 이런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그 동기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얘기를 나눠봅시다.

박준형    앞서 얘기한 것처럼, 확실히 정부는 작년 하반기를 거치면서 노동개혁 추진과정에서 노동조합과 협의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것 같아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제출한 내용 중 법 개정 관련 사항은 올해 내에 추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올해는 분위기 띄우고 내년 총선 이후에 실제 추진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현재 제시되는 노동개혁 의제들, 예를 들어, 노사관계의 측면, 노동시간, 임금체계와 같은 의제들을 하나씩 부각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고, 회계 투명성 관련해서는 양 노총 모두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대정부 투쟁을 하고자 할 때 여론의 지지를 약화하는 방식으로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올해보다는 내년에 실제로 쟁점이 부각될 거예요. 집권 중반기의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하지 못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대야소 국면으로 전환된다면, 법안이 실제 추진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올해는 본판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나 노동계에서도 노동개혁 의제에 대한 정책적 입장을 확립하고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책적 대안에 관해서는 토론도 진행되지 않고 있고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따라서 올해 총파업 투쟁에 조직력을 집중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오기형    저는 ‘노사’법치주의라고 얘기하면 법치의 성격이 굉장히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통상 법치주의라고 할 때 합법성에 따른 통치라는 영역에서의 법치가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로 정의나 합목적성, 즉 법이 담고 있는 가치를 실제 어떻게 형상화하는지에 대한 측면이 있다고 봐요. 이런 경우에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권력의 통제나 자제를 포함하는 것이죠.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라는 측면에서요. 그런데 이런 실질적인 법치가 신뢰받을 수 있게 수용되냐 했을 때,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법치가 자제를 포함한다는 면은, 특히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노사의 영역에 치고 들어오는 것과 어울리지 않거든요. 노사법치주의라는 말의 내포 안에 충돌이 있어 보입니다.

다뤄야 할 현실과 법이 괴리될 수 있는데, 이때 현실이 변화했기 때문에 법을 바꾸어서 현실에 맞춰가는 경우가 있고, 현실이 문제여서 현실을 법에 맞춰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요. 후자로만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근로시간 면제제도나 창구단일화라는 현행법들을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집행하고자 한다면, 자의적이고 선택적인 법 집행이라는 불신을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요. 물론, 노사 자율의 영역 중에 실제 문제가 있어서 현대화해야 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정부도 신호를 주고, 자율적으로 개선하거나 내부의 반성과 숙고를 거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곧바로 과태료를 물리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임필수    기본적으로 자율에 따른 노사 간 규범의 확립이 한국에서 실제로 형성되는 과정이 없었고, 그래서 사측도 노측도 다 법과 국가를 통해서 상대를 강제하려는 경향이 공히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래서 어떤 정부가 되느냐에 대해서 서로 민감하게 생각을 하게 되고, 누구나 자신과 가깝다고 상상하는 정부가 집권해서 노사관계를 관리하는 데 직간접적인 힘을 행사하도록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가면서 갈등 구조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기형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 활동 영역에는 법의 문제가 있으니 법을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지 논의가 열려야 해요. 그 논의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조정하는 장이 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동조합도 “노사법치주의를 규탄한다” 일변도로 접근하기보다는, 실제 현실과 법이 괴리되어있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제기를 하면서 쟁점을 좀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냐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조합 국고보조금·회계 투명성 논란

임필수    다음으로 노동조합이 국고보조금을 받는 것이나 회계 투명성과 관련한 쟁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특히, 지방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김성영    일부 지역에서 총연맹 지침을 넘어서 받는 사례가 꽤 있습니다. 각 지역본부나 지부 중에는 이미 다양한 명목으로 보조금을 받는 데가 많습니다. 많은 지역본부가 중간지원조직들을 이미 수탁하고 있으니 차라리 이를 양성화하자는 취지의 안건에는, 재작년에 충북본부가 문제 제기했습니다. 안건의 취지가 사실상 현실을 방치하고 확대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죠. 이러다가는 노조가 지자체에 사실상 종속된다는 문제가 생기는데, 실제로 이번에 지방정부가 바뀌어서 국고지원금으로 운용되는 곳들이 문을 닫거나 사람이 잘리는 일이 발생했죠. 독립적으로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정치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현재 규약상 지역본부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건물과 건물 관리하는 비용 정도인데, 처음에 제정될 당시에도 하나씩 받기 시작하면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고 경고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이죠.

전체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지자체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데, 노동조합이 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방향이 맞냐는 생각이 있어요. 비정규직센터 같은 경우도 사업비가 부족할 수는 있어도 자주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센터를 구축하는 초기에 받는 것을 넘어서 정부 지원으로 계속해서 운영되는 것이 맞는가 싶습니다. 자신의 역량을 갖추어가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고요. 

오기형    지원받는 사업의 실태가 궁금합니다. 하고자 하는 사업기획과 구상이 집행 가능한 정책 수준으로 이미 있는 상태에서 이를 집행하기 위해 재정 지원을 받는 건가요?

김성영    서울시를 중심으로 노동정책기본조례가 통과되면서 연구사업을 통해 정책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진행되는 사업처럼, 비정규직센터의 경우에 그런 사업이 종종 있긴 합니다. 그런데 건물이나 상담소를 제외한 사업들도 있는데, 그 중에는 없애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제천단양지부에 처음 갔을 때 지역 노사민정에서 체육대회 사업지원을 받고 있었고 그걸 몇 년에 걸쳐서 없앴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공공근로 같은 형식으로 받는 인건비 보조도 있었습니다. 노동정책 연구라던가, 비정규직센터 같은 경우는 비교적 건강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지원받는 사업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닌 경우도 많고요. 

박준형    노동조합이 꼭 받을 필요가 없고 자주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지요. 지금 논란에서도 굳이 국고보조금으로 해야 할 사업이 아니어도 지원받아서 꼬투리 잡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렇다고 아예 국고보조금을 거부할 것이냐고 했을 때, 일률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중간지원조직 같은 상담센터는 보조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는데, 만약 받았을 경우에는 회계를 공개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요.

지금 쟁점은 노조가 조합비 회계까지도 공개해야 하는가, 외부인의 감사를 받을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일정 규모 이상의 노조나 연합단체에서는 도입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컨대, 상장기업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회사나 유한회사 같은 경우에는 외부감사를 하고 기업공시를 하는데, 노조는 왜 안 하냐는 논리가 있어요. 이를 가지고 노조 탄압이라고만 대응하면 정세적으로 노동조합이 찔리는 것이 있으니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대중적인 의구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반대 투쟁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좋은 대응일지 의문입니다. 민주노총 산하의 대다수 조직이 이미 투명하게 회계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는 한국노총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외부감사를 먼저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영    말씀처럼 국고보조금 관련한 회계는 이미 투명하게 보고하고 영수증도 첨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조합비에 관한 회계자료 제출에 대해서는 반대해요. 노동조합이 회계자료를 자율적으로 공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소영호    저도 외부 회계감사는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투명성 여부를 떠나서, 노동조합에서 이뤄지는 투쟁과 관련된 지출도 있는데 사용 내역이 모두 공개되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조 운영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것 같아요. 회계 투명성의 경우 산별 중앙이나 지역본부 차원에서야 회계가 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보는데, 지회 등 하부조직으로 갈수록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물론 내부적으로 자정하고 회계를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박준도    미조직 사업을 할 때, 간혹 외부감사를 받기 곤란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조차도 영수증 처리는 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공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전문적으로 회계 감사받을 수 있는 내부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금속노조는 노조 중앙의 감사들이 상당한 회계감사 역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회계 시스템을 잘 구축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고, 지부나 지회는 물론 다른 노조의 감사들도 훈련시키며 노조 전체의 회계 투명성을 높여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기보다는 체계를 잘 잡고, 교육하고 훈련하며 역량을 쌓아나갈 필요가 있어요. 

노동조합의 국고보조금 수령에 대해 저도 원칙적으로 반대합니다. 민주노총도 건물 관리비 말고는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는데요, 현실은 대다수 지역본부, 지역지부가 이 원칙과 달리 국고보조금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어요. 게다가 박준형 국장 말대로 굳이 이것까지 받아야할까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현실은 받을 수 있으면 모든 걸 다 받으려는, 국고보조금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보조금 감사를 매개로 시민운동에 대한 도덕성 공격”을 정권의 탄압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국고보조금에 ‘중독’된 현실을 방증하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칙적 반대가 도리어 중독된 현실을 묵인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예 관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노동조합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관리 주체나 회계 가이드를 세우고, 연구·조사사업 같은 특정 부문으로만 한정한다든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쨌든 최근 서울본부 유관 중간 조직도 서울시 보조금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이참에 서울시 보조금은 삭감된 수준을 최대치로 생각하고, 나머지는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몇몇 활동가에게 건넨 적이 있어요. 현재 상황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세훈보다 박원순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될 거고 결국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귀결될 거라는 취지로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어요.

김성영    저는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운영 주체가 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국가의 책무이고 필요한 정책이라고 한다면, 지자체가 실행 주체가 되면 되는데 왜 우리가 쥐고 있어야 하냐는 문제의식입니다. 물론 제대로 운영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운영위원으로 참석할 수는 있겠지만요. 

박준형    회계 투명성 문제가 불거진 맥락은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단체가 자정 능력이 있냐는 점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인 계기가 정의기억연대 사건입니다. 최근에 한국노총 건설노조 비리 사건도 그렇고, 자정이 안 된다고 보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부각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노동조합 탄압 용도라고 보기보다 일련의 맥락을 살피면서 실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필수    이 주제에 대해서는 참가자마다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조 자체적으로 회계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참가자 모두 동의하시는 듯합니다. 그런데 일정 규모 이상의 노동조합의 경우에, 회계자료 공개나 외부감사를 굳이 거부할 것이 있냐는 의견과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노동조합이 회계 문제에 더 엄격히 접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으니,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건설노조 탄압

임필수    현재 정부의 공세가 건설노조에 집중되고 있는데요.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이나 건설노조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응계획이 있는지, 건설노조 활동가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소영호    건설노조 같은 경우는 2003년, 2008년, 2015년에 지속해서 탄압받았어요. 결국에는 노동조합의 고용 요구가 정당하냐가 쟁점이에요. 지금까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은 형법으로 규율해왔는데, 최근 탄압의 특징은 채용절차법이나 공정거래법을 이용해서 규율한다는 점입니다. 

건설기계 특수고용노동자에 관해 얘기하자면, 그래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노동자성 보호가 주된 기조였는데, 현재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사업자로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자본 측에서 노무관리를 회피하기 위해서 건설기계 노동자를 사업자로 만들어왔던 역사가 있었는데, 이번 정부는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미래노동시장위원회에서도 특수고용 내용은 빠져있어요. 그 대신 이번에 ‘화물운송시장 정상화방안’이 나온 것처럼, 개별적인 보호 대책은 조금씩 발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표준운임제 위원회에 화주의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자본의 입장을 더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는 탄압하더라도 “정당한 노조 활동은 인정하지만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하겠다”라는 멘트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멘트도 없죠. 오히려 국토부 장관이 범죄집단, 조폭집단이란 식으로 건설노조를 범죄자 취급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건설노조의 활동방식 자체를 문제시하면서 아예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을 제외한 한국노총이나 지역에 난립했던 노조들이 현재 활동을 못 하고 사라지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입니다.

현재와 같은 국면에서 건설산업의 특성이나 고용관계의 특수성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생긴 점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채용절차법으로 처벌하겠다고 하면, 시민들은 건설노조가 어디 회사에 직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요구를 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아니라 몇 달 정도 건설현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구조이죠. 제 생각에는 현재의 탄압은 건설이나 화물과 같이 비정형적이고 실제로 사업자 성격도 일부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한 조직들이 최근에 계속 사회적 이슈도 되어 왔고 투쟁도 벌어졌기 때문에, 이런 약한 노조들을 건드리면서 정부가 노동개혁에 대해 당위성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합니다.

임필수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에서 지금까지의 관행이든, 뭐든 지나쳤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부분은 없는 것인지 궁금한데요. 예를 들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고려하지 못하거나 챙기지 못한 부분들이 있으니 바꾸도록 노력하겠다, 그렇지만 정부도 이런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은 과하다, 이는 건설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처사다”는 논리구조를 쓸 수 있을 테고요.

소영호    건설노조에서 2월 27일에 기자 간담회를 진행할 겁니다. 우리의 입장을 얘기하기에 앞서서, 기존에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분명 건설노조의 이미지가 나빴던 부분들이 있고, 건설노조가 그러한 개선까지 이끌지 못한 부분은 유감이라고 얘기하고자 해요. 개인적으로는 건설노조의 활동 역시 모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여론의 질타를 받을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탄압의 양상에는 건설현장의 생산성 문제도 연관되어 있어요. 기존의 도급구조에서는 물량에 따라서 돈을 받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하려고 안전을 무시하는 작업도 하고, 그 과정에서 품질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하도급사랑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는 직고용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원이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일당을 받게 되니까, 일부 현장에서는 너무 물량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어요. 일정 정도의 생산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과, 반대로 노동조합이 자본의 생산성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논쟁하고 있습니다. 

한편 건설현장의 생산성을 보장하며 건설기능인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직종의 건설노동자가 모두 단일한 고용구조나 임금체계를 가질 수는 없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탄압 상황에서 기능과 생산성에 대해 노동조합이 담보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필수    건설노조 조합원의 노동이 어느 정도 생산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면서, 회사가 안정적으로 고용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만들겠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되나요? 

소영호    그렇죠. 지금도 어떤 직종에서는 노조에 소속된 인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수급이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건설노조를 탄압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지속해요. 특히 장비 쪽에서요. 노동조합도 매번 기능에 대해서 강조해왔고 국고보조금으로 취업훈련센터를 받아오기도 했는데, 기능과 생산성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죠. 물론 노동조합이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한 작업을 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합의할 수 있는 선이 있어야 하고, 노사관계가 단단해져야 탄압이 들어와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준도    노동시장 조직화라는 면에서 임시일용직 노동자가 대부분인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고용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불가피성을 저는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것의 부작용이에요. 알다시피 한국노총을 포함해서, 건설 현장의 여러 노조는 과거에 없었던 조직이거나 고용시장에서 경쟁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 투쟁의 부정적 측면을 모방해서 성장한 겁니다. 조합원 우선 채용, 한국노총 조합원 배제, 이주노동자 배제 등등의 고용 전략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극대화되고, 이에 대한 반발, 반작용이 결합되면서요. 좀 전에 소영호 국장이 소개한 것은 이런 점들을 개선하려는 시도 중 일환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이런 노력들을 가시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오기형    유감이든 성찰이든, 진심이 드러나려면 집행 계획이 구체화되어야 할 텐데요. 엄청난 계획이라기보다는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수준으로, 내부에서의 점검계획과 계획수립을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멘트들이 있어야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소영호    2007년 전국건설노동조합으로 통합이 되기 전에 20년 정도의 전사가 있어요.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일용직 노동조합들과 직종별 노동조합들이 통합하여 건설노조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조직화 방식, 이주노동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견해와 쟁점이 다양해요. 따라서 구체적인 부분까지 당장 합의를 만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논의와 연구를 해나가는 실정이고, 탄압이 지속되는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일정 정도 합의에 이를 거예요. 합의된 내용들을 조합원까지 너르게 공유하고, 외부에도 건설노조의 입장을 알리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레미콘 타설 공정이 최근에 건설노조로 많이 조직되었는데, 이 때문에 정부에서 탄압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긴 합니다. 레미콘을 세우면 공사가 다 멈추거든요. 우리가 이 힘을 너무 남발한 측면도 있어요. 공정에서 조직된 힘을 어떤 방식으로 잘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지요. 

장기적으로는 이주노동자도 조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별 이동 단위를 현장 단위에서 업체 단위로 바꾸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좀 더 유연하게 활용하고, 내국인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을 약화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취해왔던 전략과 방식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조직 자체가 존속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요.

김성영    정부가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방식은 이상해요. 진짜 노사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싶다면 건설사 문제도 고려해야 하죠. 건설사 역시 빨리 건물을 올리고 싶어서 불법적인 일들을 남용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건설노조에서 화물연대 동조파업을 실제로 성사하면서 정부의 눈 밖에 난 측면도 있죠. 토목건축 노동자를 대거 조직한 이후로는 건설노조가 민주노총 집회 대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임필수    건설노조 탄압에 대한 대응은 단기적 대응과 중장기적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노조법 2, 3조 개정

임필수    노조법 2, 3조 개정이 최근 이슈로 떠올랐는데, 논의할 바가 크게 두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최근에 환노위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두 번째로 이 프로세스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숙원 과제가 담겨있기 때문에 성과로 보고 이어가야 하는 측면이 있겠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최근에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이나 방송법 등등 각종 법안을 직회부나 패스트트랙으로 태우려고 하고 있고, 노조법 개정안도 직회부를 검토 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문제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민주당의 시도에 상당히 정략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측에서는, 예를 들어 방송법의 경우, 그렇게 필요한 법안이라면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지 그랬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민주당의 드라이브는 법안의 실현 그 자체보다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거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강력하게 반발하는 흐름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이재명 대표의 방탄이든, 내년도 총선에서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는 흐름이든 간에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정략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이렇게 양면적 측면이 있는데, 운동 진영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가 매우 복잡한 문제로 떠올랐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환노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기형    노조법 2조 2항은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서 의미 있는 진전이에요. ILO 핵심협약에 비준하면서 새롭게 열린 국면에 노동조합의 대응이 무능했고 활동을 잘 기획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반성하면서 2조 2항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을 잘 기획하는 것이 중요해요. 다만, 또 한동안 노동위와 법원으로 달려가는 국면이 생길 것인데, 초반에 중요한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은 필요하지만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형태에만 매몰되면 안 되고 다른 운동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입법이 되면 발생하게 될 곤란이 좀 있긴 하죠. 원청은 산하에 있는 하청들, 계열사들과 전부 교섭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창구단일화를 할 것인가, 개별교섭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와 같은 내부에서 생길 쟁점에 대해서 빠르게 대비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조 5항의 경우, 큰 변화가 생긴다기보다는 해고자나 체불임금 문제와 관련해서 기존에 쟁취했던 요구의 집행에 근거가 좀 더 분명하게 생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소영호    2조 1항에 “노조를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해 근로자의 개념을 확대하고자 했던 부분은 이번 개정안에는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법 전문가 중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라는 현재 있는 노조법 2조 1항 내용이 더 포괄적이고 낫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어요. 

최근에 택배, 대리운전 기사, 방과 후 교사, 학습지 교사와 관련해서 전향적인 판결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노조법 2조 근로자 정의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합 활동은 인정할 수 있다는 근거예요. 특수고용노동자의 단체협약이나 노동조합 활동을 정부나 지자체가 중재해준 사례도 있고요.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나 정부의 기조에 따라서 기존 판례의 입장이나 행정기관의 입장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지요. 기존에 특수고용노동자의 주된 목표였던 노조법 2조 개정을 넘어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목표와 투쟁방식을 새롭게 정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임필수    근로자 개념 확대가 이번에 법안 개정에는 빠졌지만, 지금까지 법원 판례로 현실화되는 부분도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현대차 같은 경우 다수의 하청이 존재할 텐데요,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박준형    노조법이 개정되더라도 창구단일화 같은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법안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보긴 하지만, 특히 2조 2항 같은 경우에는 실제 의미가 있으려면 산별교섭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정책이 같이 나와야죠. 

원청과 하청의 여러 사업장이 교섭권이 있다고 했을 때, 하청노조 하나와 원청사업장 하나가 교섭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다수의 기업을 포괄하는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하는 것인가라는 쟁점도 생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원청에 기업별 노사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하청과의 교섭도 기업별 노사관계의 또 다른 버전이 될 수 있어요. 따라서 이에 대한 해법은 다수의 원하청 노사가 모두 참여하는 산별교섭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인 노사관계 구상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노총이 그런 구상 없이 접근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박준도    2005년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 당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사이에서 대리교섭, 독자교섭과 같은 문제로 진통을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공동 결정, 공동 투쟁, 공동 책임’이라는 3대 원칙 아래 원하청 연대회의를 구성해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시키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및 정규직 전환을 위한 특별 교섭을 요구하며 ‘대리’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비정규직 지회는 원하청 연대회의의 3대 원칙이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성을 침해한다며 반발했고요.

2006년에는 반대로 비정규직 노조가 ‘독자 임단투’와 함께 ‘현대차와 직접교섭’을 요구했습니다. 정규직 노조에게는 비정규직 관련 요구를 삭제해달라고까지 하면서요. 대리교섭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독자적으로 투쟁한 거에요.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된다 해도, 당시처럼 교섭권을 둘러싸고 대리교섭을 주장하는 정규직 노조와 독자교섭을 주장하는 사내하청 노조의 갈등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임필수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한다”라는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성영    결국 사법부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에 달렸어요. 이전에도 사법부가 어떤 경우에는 노동자성을 가진다고 판결을 했던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번 노조법 개정안을 통해 그것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단순히 하청이 원청에 납기 대금을 받는다고 해서 실질적인 지배관계로 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기형    저도 실질적으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는 영역과 크게 차이가 없을 거라고 봐요. 대법원에서 실질적 지배력 법리를 설시(說示)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전제에서도 노사 양측이 끊임없이 논란을 벌였던 것입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이라는 문구가 법에 들어온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다만 사용자의 책임이 교섭 책임까지 포괄하는 건지, 부당노동행위 책임에 국한되는 것인지, 노동안전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만 교섭책임을 지는지 등 지루하게 반복해 왔던 해석들이 앞으로는 좀 더 전향적으로 이뤄질 수는 있겠습니다. 실제 원청에 납품은 하지만 중간에 노무관리를 하는 독립적인 사용자가 끼어 있을 때, 실질적인 지배력이 단절되는 식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원청책임성이 전면적으로 적용돼서 대혼란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아요. 

박준형    실제로 노조법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 민주당은 정의당이 이재명 체포동의안 반대투표, 적어도 김건희 특검에 찬성하도록 압박하는 용도로 접근해요. 이재명 대표가 내일 국회 앞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농성장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본인의 체포동의안이 발의되자 농성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일 텐데요. 민주당은 노조법 개정안을 정의당이 이재명 체포결의안에 반대로 투표하도록, 적어도 김건희 특검에 찬성하도록 압박하는 용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환노위에서 강행 처리해서 법사위를 패스하고 본회의 직회부로 상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결국 윤 대통령 거부권을 예상하고 강행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법안이지만, 민주당의 대정부 투쟁에 지지 세력을 동원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라 이 법안의 운명이 참 어처구니없이 기구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임필수    노조법 개정은 노조의 숙원 과제이지만, 민주당의 정략적 의도와도 연관된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노조법 개정 그 자체만 보더라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새롭게 떠오른다는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법이 개정되더라도 원하청 교섭질서를 어떻게 새롭게 구축할 것이냐는 문제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고, 노동조합 운동이 과거의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통해 미리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전망과 노동자운동의 과제

임필수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에 노동조합이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고 활동해야 할까요. 

박준도    2008, 2009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사항은 적극적인 실업 대책의 수립, 비정규직 차별 해소, 적극적인 해고 회피 노력, 최저임금 인상이었습니다. 당시와 비견될 만큼 지금 경기침체가 심각한데요, 인플레이션까지 엎친 데 덮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내세운 요구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이에요. 

그런데 “모든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경제성장기에나 가능한 요구입니다. 경기침체, 저성장시대에는 일부 성장 부문과 그에 속한 대기업,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만 임금인상이 가능하지, 정체된 부문과 중소사업장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작년 한 해,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IT·금융 대기업과 완성차 사업장 등은 막대한 성과급 잔치를 했습니다. 이익이 이들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는 격차가 더 커집니다.

격차가 문제면 상향평준화 방식의 격차 축소를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들 하는데, 성장 부문의 재벌 대기업이 8% 인상하고, 중견기업은 9% 인상하고, 중소기업은 10% 인상하는 건 현실 어디에도 없습니다. 임금인상을 조정하고 협의할 수 있는 기구와 장치가 없는 한 “모든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대기업, 대공장, 조직된 노동자의 임금인상으로 그칠 뿐입니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공단 노동자도 알고 있고,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도 알고 있습니다. 시민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저성장시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소득 보전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득 보전, 불완전 취업에 따른 소득 보전 방법들이요.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실업 대책들도 마련되어야 해요. 또 이런 게 실현 가능하려면 이를 협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해요. 그런데 올해 사업계획에서는 관련 대책이나 요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박준형    민주노총이 총파업의 시기를 7월로 설정한 이유가, 정부에 대한 대중적인 분노가 이 시기쯤 올라올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거든요. 노사관계 법제도가 어떤 시간표로 개악된다거나, 그래서 그 시기에 투쟁을 집중해야 한다는 방식의 진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특정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성과를 실현하기 위한 총파업이라기보다는 반윤석열 전선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해 보입니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사업계획의 소제목도 그렇게 되어 있고요. 그러다 보니 요구안이 추상적인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시장에 대한 면밀한 조사나 문제해결에 필요한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실현할 구상이 취약하니 구체적인 요구가 없는 것이죠. 결국 그 이유는 2015~2016년 당시 정세를 반복하려는 목표 때문으로 보입니다. 2015년 4월 한상균 집행부의 총파업도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거든요. 당시에도 특정한 노사관계 정책이 추진되고 있어서 파업했다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일으키자는 목적이 컸습니다. 2015년 후반기에 총궐기를 진행하고,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기고, 2016년 연말의 퇴진투쟁까지 갔던 일정표를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상황과 지금이 같지 않아요. 2016년에는 여권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텐데요. 물론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지금은 야권이 이재명 리스크 때문에 분열될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의지만으로 7월 총파업이 배치되는 것 같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영호    기본적으로 사업을 구상하는 방식에서 의지나 정치투쟁이 중심이 되고, 경제 정세는 크게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성영    윤석열 정부의 민주노총 탄압이 실제 있는 상황에서 대정부 투쟁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하지만 대정부 투쟁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전체 노동자를 아우를 수 있는 요구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경제정세에 입각해 사업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기형    실질임금의 대폭인상이 경제침체기에는 고용 축소를 불러일으키는, 즉 임금과 고용의 대체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해고와 무관하게 생계를 잃는 분들에 대한 소득보장이나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국면에서 임금인상 요구만을 제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총연맹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회의감이 늘어가는 것이 사실인데요. 내셔널센터로서 국가 차원에서 노동시장, 노사관계를 어떻게 형성해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임필수    지금까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토론을 더 깊이 진행해야 할 주제나 쟁점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발언을 듣고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윤석열 정부 시기 노동조합운동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부나 자기 결의가 있나요? 

박준도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안, 2008~2009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안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는데요. 올해 민주노총 요구안을 보면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 민주노총의 요구와 투쟁계획은 문제가 많습니다. 이러다가 민주노총이 내파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까지 들어요. 

뜻있는 활동가들부터 노동자 내부의 격차 축소와 함께 계급적 단결을 고취할 수 있는 계획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탄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반보수 선동을 일삼는 민주당의 인민주의적 행태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운동을 혁신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결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수행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저도 의문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이 좁은 길을 헤쳐 나가야 미래가 있습니다.

오기형    노사관계, 노동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부 역할을 긍정적으로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금속노조에서 전개되는 양상과 관련해서 전면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지는 않아요. 정부가 노조에 큰 무기 하나를 휘두르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자잘하게 치고 들어올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정리해고를 일반적으로 강화한다고 하면 전면전이 되는데, 실제 계획을 보면 노사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쟁점을 가지고 타격하는 방식이 예상되거든요. 보드리야르 식으로 얘기하면 늑대가 아니라 들쥐 같은 형태입니다. 총연맹이 전면전을 예상하며 7월에 총노동의 반정부 전선을 긋겠다고 계획을 수립했지만 맘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제기한 쟁점들이 사업장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정부가 특정 사업장을 목표로 타임오프를 문제 삼거나, 특정 사업장의 징계 의결을 문제 삼거나 할 수 있습니다. 우선채용 조항과 관련해서도, 이미 사문화되어있고 노조에서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다음 단체협약 때 수정하겠다고 통보하고 있는데도, 노동위에서 관련 절차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별 사업장마다 정밀타격을 하게 될 때, 노동조합이 사업장 갈등에 매몰되어 전선이 분산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어는 필요하지만 방어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쟁점이 빨려들어 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대비해야 할 것들을 챙기면서 단결의 토대를 잘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금속노조는 5, 7월 총파업을 강조하는 계획을 내고 있으니 최대한 그 과정에서 내부에 필요한 문제 제기나 토론을 해 나가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부의 공격과 그에 대한 노조의 방어가 특징인 국면에서는 정책의 영역이 축소될 거라는 우려가 있어요. 

박준형    윤석열 정부가 총선 전에 국회를 경유해야 하는 쟁점이나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쟁점은 자제할 것으로 보여요. 즉,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들은 어차피 통과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21대 국회에서 당장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금개혁도 구조개혁으로 바꿔서 속도 조절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노동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에 대해서 정부와 방향과 입장은 다르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주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와 장기저성장 상황을 맞아, 앞으로 한국사회가 발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 방향이든, 시급한 개혁이 필요한 영역임은 분명하니까요.

올해를 잘 준비해야 총선 이후에 노동개혁이 본격화가 되는 동안 대응을 잘할 수 있을 텐데, 본판에서 반대투쟁으로 일관하고 대안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우려가 됩니다. 원래 정권 후반기에는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이지만, 정작 올해 대응을 잘하지 못하는 후과로 윤석열 정부 후반기에도 민주노총이 사회적 영향력을 더욱 상실할 우려가 큰 것 같습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보면서 노동운동의 이후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두더지가 땅굴을 파는 심정으로 각급 현장에서 여러 준비를 착실히 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소영호    정부가 가장 문제적이고 위협적인 활동을 하는 곳을 타격한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건설노조 조직이 급속히 커오며 내부적인 쟁점과 갈등도 많았는데, 현재의 탄압을 여러 문제점과 쟁점을 해소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건설 경기도 위기여서 지금과 같은 동원 방식을 지속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당연시 여겼던 활동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조합원이 노조에 자긍심을 갖고 노조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히려 노조 탄압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살릴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김성영    7월 총파업 이후를 전망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회에 국회의원이 없어서 제한적이었다라고 파업을 평가하고, 이후 총선 대응으로 민주노총의 투쟁과 조직력을 수렴해 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방침도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혁신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이참에 내부를 혁신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흐름이 힘을 얻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투쟁을 배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와중에 혁신도 해야 하니 정말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혁신은 장기적인 계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임필수    정부와 노동조합 간의 대결적 분위기가 강화될수록, 노동조합 내부의 혁신이라는 문제는 제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혁신을 위한 노력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가 더욱 절실하다는 점이 이번 좌담회의 핵심적인 메시지로 독자에게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모두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
 
 
 
 
주제어
노동 노조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