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3 봄. 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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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한국 정치의 영속적 위기」 독자에게

김성균 | 정책교육국장
1. 최근 여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여권의 중진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당무 개입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대통령실과 의회의 권력 분점은 요원해 보입니다. 여권도 한국 정치의 난맥에 매우 큰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현 여권이 져야 할 책임이 막중합니다. 실질적으로 행정부를 운영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지난 정권에서도 그랬다는 식으로 무마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난 정부보다 더 나은 정부가 되겠다고 자기 입으로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윤석열 대통령도 선거기간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여러 번 강조했지만, 이번 선거는 대통령과 정당·의회의 관계가 이전 정부들과 거의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준석에 이어,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까지, 대통령과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거리가 있는 당 대표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대통령실이 당무에 개입하는 행태는 과거 대통령이 당 총재를 맡고 공천권을 휘둘렀던 단핵(單核)정당 시절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초 윤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이슈를 띄우기도 하면서 정치개혁을 주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대통령 측이 당무에 개입하는 바로 그 방식 자체가 정치개혁에 역행한다는 것이지요.
 
또 여당의 내홍은 사실상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당정치의 미성숙을 잘 보여줍니다. 공직은 사회구성원의 공익을 추구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공직에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는 것이 정당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채우면서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공천에 대한 당 지도부의 절대적인 권한을 내려놓고 민주적인 공천제도를 안착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게, 한국 정치의 난맥을 해소하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한편, 최근 민주당에서 나타나고 있는 흐름도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비리에 관한 검찰수사가 점차 기소 단계에 이르게 되자,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방탄 모드’에 점점 더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행태에 대해서는 《사회운동포커스》에 실린 글, 「이재명 대표 리스크는 한국 정치의 리스크다」(2023.1.11.)를 통해서, 이미 우리는 분명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당 차원에서는 장외집회를 이어 나가는 강수를 거듭하고, 여기에 호응해 이재명 대표의 극성 지지자들(이른바 ‘개딸’)은 이재명 대표 수호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반대보다 찬성이 더 많은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극성 지지자들은 이른바 ‘배신자 색출’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재명 대표 측에 커다란 충격을 준 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재명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전보다 더 공공연하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가 당 대표직을 고수하면서 당을 동원하려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실권을 잃으면 그를 지켜주던 벽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혹여나 이재명 대표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이를 부정하려는 수순이 아닐까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례를 보면 아예 불가능한 전망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사회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사회의 기준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면,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그르다는 식의 정치 양극화가 심화할 것입니다. 또한 그에 따라 정치는 사라지고 파당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사회운동을 펼쳐 나가기에 과연 유리한 조건인지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정치 양극화의 기제로서 한국에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다면 다른 곳에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를 비교해 본다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 양극화의 의미와 개선점을 뚜렷하게 정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유럽의 사례를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양당 체계에 속해 있는 거대정당의 정치인들이 점차 극단화되고, 이들이 대중을 동원해 사회 전반의 정치 양극화가 촉진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중도우파(보수당, 기민당 등등)–중도좌파(사민당, 노동당 등등)로 구성된 정당체계 그 자체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정당이 쇠퇴하는 가운데 기존 정당체계에서 포괄하지 못했던 의제나 유권자에 집중하는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대체로 극단적인 성향을 띱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유럽의 ‘우파’ 인민주의는 주로 유럽통합과 이민정책을 둘러싸고 쟁점을 형성합니다. 즉 유럽에서는 정당체계의 위기와 정치 양극화가 동반된다는 말입니다. 

우선 소련 붕괴 후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을 겪은 중·동유럽의 경우 2010년까지는 대체로 신속히 서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서유럽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불만이 점증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조건을 배경으로 2010년대에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인민주의 정당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헝가리를 볼 수 있겠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인민주의 정당이 집권한 뒤 그들에 유리하게 민주주의의 제도를 변형시켰습니다.

현재 헝가리의 집권당 피데스(청년민주동맹)는 1988년 리버럴 노선을 지향하는 당으로 출발했지만 1994년 선거 패배를 계기로 민족주의, 보수주의로 노선을 대폭 전환합니다. 피데스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였습니다. 기존 집권 세력이던 헝가리 사회당은 금융위기 대응에 있어 무력했고, 그 와중에 부패와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진보진영 전체가 함께 몰락해버립니다. 이 틈을 타고 피데스가 1당으로 등극하고, 피데스와 더불어 세를 키운 세력이 “욥빅”이라는 극우세력입니다. 욥빅은 반이민, 인접국 내 헝가리계 소수민족에 대한 지원 강화, 헝가리 청년들의 서유럽 국가로의 이주 반대 등 급진적인 민족주의적 강령을 내세우는데요, 피데스는 이들과 경쟁하면서도 사실상 이런 정책을 흡수해 극우적 성향까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2010년 선거에서 1당으로 등극한 피데스는 2022년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집권 기간, 피데스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민주주의의 제도를 변형합니다. 먼저 피데스의 수장이자 총리인 오르반은 자신이 이끄는 정부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설명합니다. 대체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공정한 선거 이외에도 법의 지배, 권력분립, 언론의 자유, 재산권을 보장한다고 할 때,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선거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지칭합니다. 오르반은 이런 기조 아래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매체를 폐간하고 미디어 위원회 멤버 전원을 친정부 인사로 구성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하고 친여인사로 재판관을 임명했습니다. 또 피데스에 유리하게 선거법과 선거 규칙을 고쳤고, 심판이라 할 수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에도 친여 인사를 배치해 피데스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습니다. (선거법 개정은 2차 결선투표제를 단일투표제, 다수대표제로 고치고 재외 헝가리인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확실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피데스에 유리했습니다.) 이런 조건이 있었기에 2022년 선거에서 여론조사상 지지율은 여권이 뒤졌음에도 막상 선거 결과는 피데스가 199석 중 135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집권세력이 집권 후 제도를 수정해 자신의 권한을 강화한 또 다른 사례로 튀르키예가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원내각제하에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 3연임을 한 뒤, 개헌을 단행해 정체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통령은 제왕적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위인사(장관, 판검사위원회 일부 인원) 임명권, 의회해산권, 행정명령 발표권, 비상사태 선포권, 예산 제안권 등등.

그런데 개헌 과정에서 튀르키예 사회는 헌법 수정에 찬성한 사람들(주로는 교육 수준이 낮고 지방에 거주하는 유권자)과 반대한 사람들(주로는 교육 수준이 높고 도시 중심지에 거주하는 유권자)로 양분되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대자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칭하면서 ‘우리’와 ‘그들’을 나눠 공격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더군다나 2016년에 발생한 쿠데타 진압 이후, 국가 안정을 명분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사회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여권의 정치적 입지가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야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며 통제를 풀었는데요. 그만큼 정권이 안정화되었다는 의미로, 다음 대선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연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다만 지난 2월,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잠시 흔들렸는데요, 최근에는 정부의 생활안정화 대책으로 지지율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5월에 치러질 예정인 대선을 그대로 강행한다고 합니다. 지지율 회복에도 선거운동이 쉽지는 않으리라 전망되는 가운데, 이변이 일어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선을 돌려 지난 1월에 이슈가 됐던 브라질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브라질의 정치제도는 브라질 정치 양극화의 핵심 기제가 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정치제도는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 다당제, 개방형 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얽혀 있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다당제 아래서 개방형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해, 1988년 민주화 이후 특정 정당이 한 번도 다수당을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개방형 명부제는 유권자가 정당과 인물 모두에 투표하는 방식인데요,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정당에서 명부를 작성하는 폐쇄형보다는 후보 개인의 인지도가 선거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2022년 치러진 국가 의회 선거에서도 전체 513석의 하원의원 가운데 1위 정당은 99석을 얻은 자유당이었습니다. 

이렇게 정당이 파편화되어 있기에 매번 선거 이후 연립을 구성해야만 행정부의 정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습니다.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한 선거 시스템인 데다 연립을 구성해야 하는 행정부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행정부에서는 이른바 포크 배럴(Pork Barrel)이라는, 지역구의 선심성 사업을 위해 정부의 예산을 남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말 손쉽게 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브라질은 남미국가 중에서도 항상 민주주의, 의회, 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편에 속하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원으로서는 정부와 연줄을 만들어 정부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직결되므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브라질의 대통령 역시 한국에서처럼 그 권한이 막강합니다. (긴급법안요구권, 긴급명령권, 예산권 등등.) 본 글에서 지적했던, 제왕적 대통령에 매달려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양극화가 브라질에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브라질에서는 미국과 유사하게 문화적 요인을 둘러싼 대립도 갈등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의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던 석유산업이 2010년대 들어 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해 브라질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호세프 정부는 대중교통비 인상을 단행했는데, 이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시위에도 불구하고 호세프는 2014년 선거에서 재선됐습니다. 호세프 정권은 노동자당 정권이었음에도 경제위기에 대응해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펼칩니다. 정부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가운데 터진 부패 스캔들로, 호세프 대통령은 결국 탄핵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노동자당의 우경화에도 여전히 노동자당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이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부패한 의원들의 야합에 따른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 인식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탄핵은 제도적 쿠데타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에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것인데요, 보우소나루가 집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중산층과 복음주의 교회의 문화전쟁을 꼽습니다. 중산층이 노동자당 정부의 빈곤층 우선 정책으로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는 데에 대한 분노를 노동자당의 페미니즘 정책, 동성결혼과 같은 정책에 대한 반발로 표출했다는 것입니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정치가 오직 소수만을 위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브라질 국민의 90%가 그렇다고 답했고, 정치가 국민 전체를 위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지 7%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복음주의 교회는 동성애, 동성결혼, 낙태, 마약 합법화 반대와 같은 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정직 대 부정직의 프레임을 만들어 우파 연합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이렇듯 탄핵이 제도적 쿠데타일 뿐이라는 노동자당 지지층과 노동자당에 반대하는 문화전쟁을 벌인 우파 연합의 대립은 지난 1월 8일, 극단적 사태를 촉발합니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한 것인데요, 시위 참가자들은 급기야 대법원, 국가 의회, 대통령궁과 같은 정부 주요 시설을 불법으로 침입, 점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는 2022년 10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후보가 역대 최소 표차인 1.8%포인트 차이(50.9% 대 49.1%)로 패배한 후 이 선거에 불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브라질의 정치 양극화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서유럽에 속한 국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프랑스의 경우, 극우정당으로 알려진 국민연합이 노동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이 집권을 위해 중도화, 탈계급화하고, 공산당이 군소정당으로 몰락하는 가운데, 극우정당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의 박탈감과 사회에 만연한 이슬람 혐오에 기초한 의제들을 정치적으로 부각하면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최근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과 총선에서도 드러납니다. 2022년 4월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58%의 득표로, 41%를 득표한 국민연합의 마린 르 펜 후보를 17% 포인트 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5년 전 선거에서 두 후보 간 격차가 32% 포인트였음을 고려하면 그 차이가 상당히 줄어든 모습입니다. 게다가 두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는 이런 구도가 더욱 극명해지는데,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은 단독 과반을 상실했고,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연합과 국민연합이 각각 2, 3위로 약진했습니다. 멜랑숑과 르 펜은 모두 유럽연합에 비판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국민연합은 국경·이민 통제의 주권을 유럽연합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일도 유사하게 유럽통합과 이민문제를 둘러싸고 ‘독일을 위한 대안’(AfD, 대안당)이라는 극단주의 정당이 등장했습니다. 전후 독일은 파시즘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극단주의 정당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2013년 등장한 대안당은 유로존 위기와 난민유입을 계기로 성장해 2017년에는 13%의 득표를 기록하여 제3당에 등극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최근 치러진 2022년 총선에서는 여러 논란으로 세가 위축되어 제5당이 되었습니다.) 한편 독일사민당의 중도화 경향에 실망해 이탈한 좌파성향의 지지자들은 좌파당으로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유럽에서는 정당체계 자체가 위기에 빠지면서 그 틈을 새로운 극단주의 정당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위기 대응에 무력한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이민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커진 현실을 배경으로 합니다. 헝가리에서는 집권에 성공한 인민주의 정당이 자신들의 영속적인 재집권을 위한 제도 변형에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경우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미의 브라질도 마찬가지로 정치 양극화가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문화전쟁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브라질의 혼란스러운 정치제도 역시 정치 양극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부예산을 대놓고 거래한다는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극단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살펴본 서유럽도 정당정치의 불안정을 틈타 극단주의 정당이 등장했으나, 프랑스는 중도 우파라 할 수 있는 마크롱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하고 있고, 독일의 경우 AfD가 2017년 선거에서 약진하기는 했으나, 2021년 총선에서는 세가 위축된 모양새입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서유럽에서는 극단주의 정당이 최소한 아직은 어느 정도 제어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고 후견인을 중심으로 정렬해 권력의 상층을 향해 돌진하는 정치문화를 가진 한국에 각각의 사례는 시사점을 줍니다. 먼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브라질의 사례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노골화되었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사례에서는 보스 중심의 하향식 정치문화가 익숙한 한국 정치문화에 시사점을 주는데요, 대통령제가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좀 더 친화적인 제도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유럽의 사례에서는 정치문화가 얼마나 성숙해있느냐에 따른 서유럽과 중·동유럽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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