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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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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집중분석-조성은.hwp

구조적 고착을 넘어 일상적인 현상으로 증폭되는 빈곤

조성은 | 회원,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신빈곤층, 노동빈곤층의 증가

“3개월 된 아이는 빽빽 울어대고, 실직한 남편은 지난달부터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은 절대 안 하려 했지만 굶어죽을 순 없었습니다.”(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할인매장에서 한우 쇠고기․분유․멸칫가루․우유 등 40여 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치다 적발된 한 주부)
“아무래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다른 가족들이 너무 불행해진데다, 끝없는 치료비 때문에 쌓인 빚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딸을 죽인 아버지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그냥 죄값을 치르게 해달라”(자신의 집에서 가정용 인공호흡기의 전원코드를 콘센트에서 뽑아 ‘불치병’을 앓던 딸의 생명을 포기한 한 가장)

보건복지민중연대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초생활보장법 연석회의’가 11월 24일부터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수급권 확대 등 빈곤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역광장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경기침체와 신용불량자 속출로 빈곤층이 확대되고 있지만 2001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낮은 예산과 엄격한 수급권자 제한 등으로 빈곤문제에 실질적 도움이 안되고 있다. 정부는 빈곤실태를 다시 파악해 수급권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최저생계비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간 연석회의의 투쟁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점점 더 밑바닥으로 떨어져 가는 민중들의 삶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그러나, 정쟁(政爭)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이 이 호소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느낌이 앞선다. 민중들의 삶의 질 하락에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한 정부와 자본은 여전히 더 많은 희생과 인내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가운데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들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기존의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중산층'의 범주에 포함돼 있었던 사람들도 새롭게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이른바 ‘신(新)빈곤층’이 급증하고 있으며,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계층이 전체 임금근로자의 절반을 넘어 이들이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계층은 이제 일부가 아닌 절대 다수에 가까운 숫자를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이란 결코 절대적인 수준으로 측정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빈곤이란 최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여기서 최저생활이란 사회일반 수준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소비를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는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누릴 수도 있고 국가나 사회에 의해 집합적으로 제공될 수도 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한 빈곤의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구성원들의 변화에 따라 빈곤의 기준을 변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인이 빈곤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인식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하는데, 사회의 경제적 성과를 고르게 분배하지 못할수록 다수의 상대적 박탈감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제공하는 정말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낮은 기준으로 빈곤을 고정시켜놓고 바라보려고 할 때에는 늘 현실의 심각한 문제는 희석되기 마련이다.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빈곤의 문제는 급격한 사회적 소비 수준의 증가와 이에 따르지 못하는 소득, 양자간의 격차를 메워주지 못하는 빈약한 사회적 급부(benefit)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전통적인(?) 빈곤층이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주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최근 늘어나고 '신빈곤층'은 현재 일을 하고 있거나 반복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항상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역설적으로 항상 일을 하고 있다. 동시에 사회적 부를 집중적으로 향유하는 계층이 선도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소비 패턴은 이들과 이들보다 조금 나은 형편의 민중들을 끊임없이 더 빈곤하게 만든다. 이들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각종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신용불량의 늪에 빠져든다. 높은 사교육비와 의료비 지출, 천정부지로 솟는 주택가격은 이들의 자녀들도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

무엇이 빈곤을 증가시키고 있는가

최근 증가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명백히 정부의 경제위기 극복 전략의 산물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가계부채 증가와 신용불량자 확대, 실질소득 감소 등의 구조적 문제점을 양산하는 경기부양책을 반복적으로 펼쳐온 결과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결과가 결합하여 지금의 심각한 빈곤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로 발생한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을 100조에 달하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넘기고, 2000년 하반기에 금융 경색으로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자 이번에는 50조원을 초과하는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가계부채 증가 허용,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행, 투기 조장 등으로 성장을 유지했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는 한국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섰지만 그에 따른 혜택은 소수로 편중되었고 다수는 내수진작을 위한 신용확대의 단맛에 신용불량과 부채 증가에 따른 만성적 가계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위기이후 우리 경제는 이른바 시장적 조정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그 비용은 격심한 고용변동과 경기변동으로 현재화되고 있고, 당연한 결과로서 분배구조는 계속적으로 악화된 결과이다. 소수로의 부의 집중, 다수의 빈곤화란 방향은 시장중심의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바라 할 수 있다.

“분배구조의 악화”

얼마 전 발표된 KDI의 “소득분배 국제비교를 통한 복지정책의 방향” 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불평등도는 가처분소득(시장소득에 정부 공적 이전소득을 합산한 뒤 여기에서 공적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장부담금과 소득세 등 직접세를 뺀 것)을 기준으로 30개 OECD국가들 중 대략 중간 정도였으나, 외환위기를 겪은 후인 2000년에는 멕시코, 러시아, 미국과 함께 소득분배 불평등도가 최상위권이 되었다. 지니계수가 96년 0.298에서 2000년 0.358로 훨씬 높아진 것이다. 이시기 상대적 빈곤율의 추이도 급증하는데 중위소득 40%이하의 가구를 상대적 빈곤층이라 할 때, 그 비율은 1996년은 7.7% 였으나 2000년에는 11.5%로 크게 증대한다. 절대빈곤선의 120%를 기준으로 삼아 절대빈곤계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차상위계층의 비율을 보면, 2000년의 경우 16.12%에 이른다. 열 가구 중 대략 세 가구가 빈곤선 120%수준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산까지 포함한다면 그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국민은행경제연구소가 지난해 7월 국내 1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금융자산 상위 20% 가구가 평균 2억1500만원을 보유한 반면 하위 20% 가구는 346만원에 불과해 격차가 무려 62배에 달했고, 한국개발연구원의 95년 연구에 따르면 당시 금융자산 지니계수는 0.656, 부동산 중 건물(주택 등)의 지니계수는 0.664, 토지는 0.900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보였다. 최근의 부동산 폭등을 염두에 둔다면 자산의 불평등은 거의 극한에 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소득의 불평등 현상 속에서 정부는 끊임없이 소비지출의 증가에 의한 내수진작을 꾀해왔고, 가계대출 확대,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 등 미래의 경제성장을 담보로 한 모험적인 소비지출 증가를 적극 사주해왔다. 이에 따라 총경제가 다소 회복되었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경제 회복의 혜택이 소수에 집중되자 다수의 민중들은 신용을 담보로 미리 당겨쓴 소비에 발목이 잡히게 되고, 가계부채의 증가는 이자지출의 증가로 이어져 가뜩이나 적어진 소득이 더 적어지게 된다. 은행, 신용카드사와 자산관리공사의 결제 대금 연체자 집계를 보면 신용불량자가 지난 10월말 현재 360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 중 신용카드 관련 개인 신용불량자는 지난 9월보다 7만8천996명(3.58%)이 늘어나 228만3천319명에 달했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근로빈곤층의 확대”

만성화된 실업과 비정규직화 되는 이른바 ‘근로빈곤층(working poor)’, 즉 일하면서도 가난한 가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외환위기이후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따라 실업율이 크게 증가하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임금격차가 심화되는 등 노동시장 내에 머무르면서도 최저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벽두에 터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자살을 비롯한 연이은 노동자들의 자살은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짓눌렸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려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일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이고, 날로 증가하는 청년실업과 장기실업의 증가는 앞으로 근로빈곤층이 더욱 고착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들 또한 새로이 취업을 한다 해도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취업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노동시장 진입으로도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충분하지 못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1천1백만 원 이하를 버는 저소득 일자리가 5백8만개에서 6백27만개로 23.3% 증가했다. 낮은 임금의 일자리가 불안정성을 수반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들 일자리로는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도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이다.

“사교육비, 주택값 상승이 생계를 압박”

또한 경제 회복기의 중상류층이 보여준 새로운 소비지출의 창조가 빈곤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고가의 사치품의 소비 증가, 고급 아파트 건설, 원정출산의 중간계층 확대 등 일부의 소비 지출은 남의 이야기라 여긴다 할지라도 사교육비의 증가와 사회보장비의 증가, 주택 값 상승 등은 저소득층 민중들의 삶을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월 소비지출의 56.6%가 자녀양육비로 사용되며 자녀 1인당 양육비는 월평균 75만1000원이었다. 특히 사교육비는 가구 소득별로 큰 편차를 보여 월소득 150만원 이하 가구가 9만9000원인데 비해 450만원 이상 가구는 55만300원이었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강남의 사교육비 지출이 가구당 100만원을 상회한다는 자료도 있는 것을 보면 실질적인 자녀 교육에서의 교육비 지출 편차는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비 지출의 과도한 상승은 일부 가구에서 소득 수준을 상회하는 부채에 의한 교육비 지출을 가져오고 이는 가계부채와 이자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가구의 생계를 위한 지출에 상당한 압박을 불러오고 있다. 다른 사람이 지출하는 만큼은 못되어도 최소한의 수준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래방 도우미로 나섰다는 주부들의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나오고 있는 실정인 것을 보면 상당수 가구들이 교육비의 압박으로 인해 실질적인 소비 지출의 수준에서 빈곤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남지역이 선도하는 주택값 상승은 이제 도를 넘어서 사회적 불만으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강남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에 대해 테러를 하겠다는 경고문이 보도된 바 있다. 전국적으로 주택을 소유한 가구가 50%에 지나지 않는 상태에서 다수가 여러 개의 주택을 소유하고 집값 상승을 부추긴 결과, 다수의 민중들은 평생을 벌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결국 생활에 기본적인 지출항목인 교육비, 주택값 등의 압박은 여타 필수적인 가계지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서 기본적인 소비지출조차 못하는 다수의 가구를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육비, 주택값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여타 생활상의 압박이 종합되어 건강보험료, 전기.수도세 등도 납부하지 못하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집단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보험료를 인상한 건강보험의 경우 지난 9월 말까지 전체 지역가입자 855만8천여 세대 중 19.8%인 169만9천여 세대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한 장기 체납자이고, 이에 따른 연체료는 총 1조3천62억 원에 이르고 있다. 1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한 가구는 440만여 세대(연체액은 1조1천690여 억 원)이며, 2년 이상 연체한 경우도 39만1천여 세대에 달했다. 의료보험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의원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들 중 상당수는 가계의 어려움으로 연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장 전기료․수도료를 내지 못해 단전․단수조치를 당하는 가정도 늘어나 지난 8월말 현재 광주․전남지역에서는 9만4천여 세대가 68억2천4백여 만원의 전기요금을 체납하고 있으며, 이중 연체정도가 심한 3만2천5백여 세대에서 강제로 전기가 끊겼다. 이와 같은 단전 세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2만6천1백여 세대에 비해 24.6%가 늘어난 수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말까지 생계형 자살자가 623명에 달했고, 자살원인 중 생계문제 비중이 3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다. 경기도가 19일 도의회에 제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의하면 지난 4월 조사 결과 도내 결식아동이 모두 267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올 1월 347명에 불과했던 노숙자 수가 23일 현재 561명으로 1.6배 늘었다. 이 수치는 IMF 당시의 374명보다 무려 1.5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제 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민중들이 느끼고 분노하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루 평균 4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이 현실은 분명 이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는 징표이다. 더욱이 빈곤은 지역적 갈등과 분노를 내재화하고, 한 세대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세대간 재생산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기초법연대회의는 우선적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대와 내실화를 요구로 내걸고 있다. 현재 생계의 즉각적인 위험에 처해있는 사각지대의 민중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하고 정당한 요구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대가 새로운 고착화되고 구조화되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국가가 이미 책임졌어야 할 기본적인 수준인 것인데 이것조차 요구해야 한다는 막막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현시기 빈곤의 문제는 앞서 서술한 바대로 외환위기 극복과정의 산물인 동시에 유연화된 노동시장의 결과물이다. 또한 날로 시장화되어가는 사회서비스 영역이 민중들의 삶을 억누른 결과이기도 한다. 이번 기초법연대회의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덧붙여 노동시장 유연화를 저지하고, 교육.의료.주택 등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들을 공공화.사회화하지 않고서는 빈곤의 고착화.세습화는 악화될 것이다.PSSP
주제어
경제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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