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겨울 이야기
2003년 한국사회에는 목숨조차 앗아가는 절망적인 노동권 박탈과 민중 생존의 위기, 민주주의 파괴만이 있을 뿐이다. 노무현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변명 같은 말 저편에는 IMF 구제금융과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 이후 조금만 더 참아보자며 허리띠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이 땅의 민중들의 몸부림치는 고통스러운 절규가 있다. 노동귀족 운운하며 정규직도 비정규직화해야 그게 차별 없는 것이라고, 자주외교 운운할 땐 언제고 한미동맹을 위해 지체 없이 이라크 파병 감행하겠다고, NEIS 헌법 재판소 위헌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똥배짱으로 밀고 나가는 노무현 정권의 굳은 심지! ‘재신임’, ‘국민투표’ 어쩌구하면서 국민의 심판 받겠다고 하더니만 부안주민들의 ‘주민투표’ 요구에는 함구령.
우리에게 더 이상 기댈 것이 있는가. 서울역에 즐비한 농성 천막들,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정권에 대한 분노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전국노동자대회에 모여든 노동자들, 농민대회 농민들. 다시금 겨울을 맞이한 노란 잠바에 노란 깃발을 펄럭이며 ‘반핵민주광장’으로 집결하는 부안 주민들. 이국 땅에서 노동자임을 선언하며 단결과 연대로 강제추방의 두려움과 서러움에 맞서 “Stop Crack down"을 외치는 이주노동자들. 밥 한끼 먹는 일이 힘겹지만 휠체어 끌고 함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외치는 장애인 동지들. 어디 이뿐이랴. 곳곳에서 노동탄압 분쇄를 외치는 작은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 아무런 대책 없는 강제철거에 싸우는 청계천 노점상들과 상도동 철거지역 주민들...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이들과 얼마나 연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2003년 투쟁을 진행하고 이후 투쟁을 예비하고 있는가.
‘실업과 빈곤을 넘어서’ 라는 글이 눈에 띄는 유인물을 받아본 서울역 한 노숙자는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노숙 생활 9년째, 자신의 서러운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위안이 되서였을까. 쓰디쓴 약주 한 잔 걸치셨는지 울던 그 자리에 그는 자는 듯 쓰러져있었다. 하긴 술기운이 아니면 그 추운 바람을 서러움을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하루 일당 얼마를 주겠다고 용역업체가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겠지. 웬 일거리냐고, 몇 만원은 고사하고 단돈 5천 원이면 근처 1~2 평 남짓한 쪽방에서 하룻밤 차디찬 바람을 피해 몸을 누일 수도 있고,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든든히 배 채울 수도 있는데. 그래서 노숙자들은 용역업체가 쥐어주는 대로 몽둥이며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들고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청계천 노점상들을 향해 휘둘렀을 것이다.
실업자들 돈만 주면 전쟁 나갈 사람 많다고 말하는 정부 관계자의 망언,
청계천 노점상 철거에 동원된 서울역 노숙자들,
이러한 비극이 또 어디 있는가.
삶의 불안정함과 빈곤을 빌미로 저들은 우리를 우롱하는가.
자기도 왕년에는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했다던 어느 노숙자.
IMF에 졸지에 사업 말아먹고 목발 짚으며 거리로 나앉은지 몇 년.
그런데 장애인들 앞세워 이런 시위하면 안 된다고,
최저생계비 한 달에 100만원씩이라도 받자는 이야기냐고
그럼 누가 일을 하냐고 따져 묻는다.
아저씨처럼 지체 2급 장애인이 한 달에 30만원 하는 돈으로 살 수 있겠느냐고,
의료비는 어쩌며, 최소한 엄동설한 한겨울에 잠 잘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수급자인 장애인들이 스스로 외치지 않으면 누가 알아서 최저생계비 올려주냐고...
일하지 않고 편히 쉬고 싶어서 그들은 노숙을 택했는가.
몇 년 지난 낡은 자가용 한 대가 월수입으로 그대로 책정되어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현실, 자가용 바라보며 풀칠하라고, 죽을 힘 있으면 살아보라고 그들에게 돌팔매질 할 수 있는가.
동방예의지국 한국, 자녀는 소득의 15~40%는 부양비로 써야한다고... 지금 같은 시기에 교육비, 높은 집세에 먹고살기 힘든 자녀는 도리도 다하지 못하고, 수급권자인 부모는 실제 부양비에는 상관없이 생계급여만 떼일 뿐.
오늘도 휘황찬란한 고속철도 서울역사 앞에는 아직도 많은 노숙자들이 주거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 체 그들의 체온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아직도 볕도 나지 않는 지하 방 한 칸, 허름한 영구 임대 주택에서 월 3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내는 빈곤층이 있다.
노동해도 비정규직, 비공식 노동으로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난해지는 현실,
국민의 대다수가 빈곤 속에서 삶보다 죽음을 택하는 현실,
빈곤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2003년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 되어야한다.
‘산업연수생’-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
착실하게 일하면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릴 수 있고 동생의 학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왔다.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하지만...
그들은 회사의 사장님을 떠올리면 다 같이 비슷한 말을 떠올린다.
“개새끼, 십팔놈들”
더 많은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몇 푼 안 되는 월급이 아니라 언제나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욕설뿐이었다. 월급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 그들은 노동자가 될 수 없었다.
모진 욕설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고통받아야 했고 노조는커녕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떼이기가 다반사!
결국 그들은 불법체류자가 되고 결국 그들은 단속에 쫓겨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뿐만이 아니다.
경찰의 단속에 붙잡혀 외국인 보호소에 감금되어 있는, 추방될 운명에 놓인 그 모든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그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여기서 그들을 내모는 것은 바로 죽으라는 명령인 것이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화성에는 아직도 연쇄살인이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단속 때문에, 감금되었다가 추방되는 곳
죽음을 기다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곳.
누가 살인의 추억이라고 했던가.
이미 화석화된 기억이 아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망각을 거부하고 있다.
기억은 망각에 대한 투쟁의 역사다.
명동성당에 모인 죠비를, 호크를, 비제이를 기억하자.
그들은 다만, 이 땅에서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농성장에 모인 그들은 외치고 있다.
“Solidarity"
그들의 절박한 요구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묵도할 것인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손을 내밀 것인가
부안은 바퀴벌레 가득한 곳!
부안을 들어서는 톨게이트를 지났을 때,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추수가 끝난 들판과 새까만 바퀴벌레들...우리가 탄 버스 앞에 노란 반핵 깃발을 달고 있는 부안의 어느 택시는 트렁크까지 보여줘야 하는 검문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었다.
부안군 전체 7만, 인구 2만의 불과한 부안읍 내엔 경찰병력 75개 중대 8500여명이 상주하고 있다. 모든 관공서 앞엔 컨테이너까지 쌓아 전경이 지키고 있었고, 길을 걷다보면 골목골목에서 전경과 마주하게 된다. ‘경찰계엄상태’란 건 부안을 들어서는 순간 확인할 수 있다.
끌어안고 자도 안전한 핵폐기물?
위도는 아래로는 영광발전소로 위로는 새만금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바로 앞바다에서 잡던 고기를 이제 멀리까지 나가야 잡을 수 있다. 커지는 배 크기만큼 빚은 늘어갔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가난한 노인들이 위도를 지키고 있다. 지난 5월 대덕 원자력환경기술원의 설명회에선 이런 노인들에게 거액의 현금 보상을 제시하며 끌어안고 자도 안전한 것이 핵폐기물이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올 가을 수협과 농협에서는 부안에서 생산된 수산물과 농산물을 수매하지 않기로 했단다. 아직 핵폐기장이 들어선 것도 아닌데...
그 어디에서도 핵폐기장은 안됩니다.
부안 군민들은 부안 수협 앞을 ‘반핵민주광장’이라 부른다. 122일차 반핵촛불집회는 부안성당에서 진행되었다. 수협 앞 촛불집회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되는 7시가 되자, 노란 두건, 노란 잠바, 노란 머리띠를 두른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과 어린아이들이 몰려든다. 할머니들이 들고 다니는 ‘반핵보따리’에는 깔고 앉을 깔판, 태우다 만 촛불과 구겨진 종이컵이 들어있다. 집회는 생동감 그 자체였다. 앞에서 발언하는 사람과 집회 참석한 사람이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 민중연대의 대표자들도 그런 반응에 격양되어 발언을 했다. 부안 군민들이 원하는 것은 핵폐기장 백지화이다. 주민투표 실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군민들이 한발 물러서 양보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거부한 것은 바로 노무현 정부이다. 부안 군민들은 말한다. “지는 재신임 국민투표하자더니, 주민투표도 안돼야?!”
부탄가스를 들고 다니는 아이.
촛불집회 때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될까 한 아이가 부탄가스를 들고 다녔다. 위험하게 그걸 왜 들고 다니냐 했더니, 가지고 다니다 전경에게 던질꺼란다. 무서운 일이다. 무엇이 이 아이에게 이런 무서운 생각을 하게 했을까? 현재 부안군민은 300여명이 다치고, 400여명이 연행되었으며, 30명 구속, 70명 기소, 100명 즉심처리 되었다. 29일 밤 다시 찾은 반핵민주광장은 30일 언론들의 부안 배치 병력의 단계적 철수 보도를 무색하게 전경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노란색은 무차별 연행의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쇼핑 나온 가족을, 노란 잠바를 입은 어린 아이를 잡아가는 곳, 부안이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지역이기주의’는 소위 정치하는 자들의 꼬리표가 아닌가. 부안군민들은 촛불집회에서, 토론에서 진정한 대중의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그야말로 똑똑해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도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고 실천하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2003년 겨울, 우리는 반미-반전-반핵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게 애국이 아니라 효순이 미선이를 위해, 핵폐기장 반대, 파병반대를 위해 촛불을 밝혀드는 게 애국이요, 대~한민국을 외치는 게 단결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게 계급적 단결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해낸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영남․호남의 연대가 아니라 농민․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노점상, 그들과의 연대가 진정한 연대입니다.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진숙 지도위원 故 김주익 열사 추도사 중에서-
우리에게 더 이상 기댈 것이 있는가. 서울역에 즐비한 농성 천막들,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정권에 대한 분노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전국노동자대회에 모여든 노동자들, 농민대회 농민들. 다시금 겨울을 맞이한 노란 잠바에 노란 깃발을 펄럭이며 ‘반핵민주광장’으로 집결하는 부안 주민들. 이국 땅에서 노동자임을 선언하며 단결과 연대로 강제추방의 두려움과 서러움에 맞서 “Stop Crack down"을 외치는 이주노동자들. 밥 한끼 먹는 일이 힘겹지만 휠체어 끌고 함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외치는 장애인 동지들. 어디 이뿐이랴. 곳곳에서 노동탄압 분쇄를 외치는 작은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 아무런 대책 없는 강제철거에 싸우는 청계천 노점상들과 상도동 철거지역 주민들...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이들과 얼마나 연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2003년 투쟁을 진행하고 이후 투쟁을 예비하고 있는가.
‘실업과 빈곤을 넘어서’ 라는 글이 눈에 띄는 유인물을 받아본 서울역 한 노숙자는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노숙 생활 9년째, 자신의 서러운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위안이 되서였을까. 쓰디쓴 약주 한 잔 걸치셨는지 울던 그 자리에 그는 자는 듯 쓰러져있었다. 하긴 술기운이 아니면 그 추운 바람을 서러움을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하루 일당 얼마를 주겠다고 용역업체가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겠지. 웬 일거리냐고, 몇 만원은 고사하고 단돈 5천 원이면 근처 1~2 평 남짓한 쪽방에서 하룻밤 차디찬 바람을 피해 몸을 누일 수도 있고,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든든히 배 채울 수도 있는데. 그래서 노숙자들은 용역업체가 쥐어주는 대로 몽둥이며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들고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청계천 노점상들을 향해 휘둘렀을 것이다.
실업자들 돈만 주면 전쟁 나갈 사람 많다고 말하는 정부 관계자의 망언,
청계천 노점상 철거에 동원된 서울역 노숙자들,
이러한 비극이 또 어디 있는가.
삶의 불안정함과 빈곤을 빌미로 저들은 우리를 우롱하는가.
자기도 왕년에는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했다던 어느 노숙자.
IMF에 졸지에 사업 말아먹고 목발 짚으며 거리로 나앉은지 몇 년.
그런데 장애인들 앞세워 이런 시위하면 안 된다고,
최저생계비 한 달에 100만원씩이라도 받자는 이야기냐고
그럼 누가 일을 하냐고 따져 묻는다.
아저씨처럼 지체 2급 장애인이 한 달에 30만원 하는 돈으로 살 수 있겠느냐고,
의료비는 어쩌며, 최소한 엄동설한 한겨울에 잠 잘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수급자인 장애인들이 스스로 외치지 않으면 누가 알아서 최저생계비 올려주냐고...
일하지 않고 편히 쉬고 싶어서 그들은 노숙을 택했는가.
몇 년 지난 낡은 자가용 한 대가 월수입으로 그대로 책정되어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현실, 자가용 바라보며 풀칠하라고, 죽을 힘 있으면 살아보라고 그들에게 돌팔매질 할 수 있는가.
동방예의지국 한국, 자녀는 소득의 15~40%는 부양비로 써야한다고... 지금 같은 시기에 교육비, 높은 집세에 먹고살기 힘든 자녀는 도리도 다하지 못하고, 수급권자인 부모는 실제 부양비에는 상관없이 생계급여만 떼일 뿐.
오늘도 휘황찬란한 고속철도 서울역사 앞에는 아직도 많은 노숙자들이 주거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 체 그들의 체온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아직도 볕도 나지 않는 지하 방 한 칸, 허름한 영구 임대 주택에서 월 3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내는 빈곤층이 있다.
노동해도 비정규직, 비공식 노동으로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난해지는 현실,
국민의 대다수가 빈곤 속에서 삶보다 죽음을 택하는 현실,
빈곤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2003년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 되어야한다.
‘산업연수생’-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
착실하게 일하면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릴 수 있고 동생의 학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왔다.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하지만...
그들은 회사의 사장님을 떠올리면 다 같이 비슷한 말을 떠올린다.
“개새끼, 십팔놈들”
더 많은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몇 푼 안 되는 월급이 아니라 언제나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욕설뿐이었다. 월급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 그들은 노동자가 될 수 없었다.
모진 욕설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고통받아야 했고 노조는커녕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떼이기가 다반사!
결국 그들은 불법체류자가 되고 결국 그들은 단속에 쫓겨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뿐만이 아니다.
경찰의 단속에 붙잡혀 외국인 보호소에 감금되어 있는, 추방될 운명에 놓인 그 모든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그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여기서 그들을 내모는 것은 바로 죽으라는 명령인 것이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화성에는 아직도 연쇄살인이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단속 때문에, 감금되었다가 추방되는 곳
죽음을 기다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곳.
누가 살인의 추억이라고 했던가.
이미 화석화된 기억이 아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망각을 거부하고 있다.
기억은 망각에 대한 투쟁의 역사다.
명동성당에 모인 죠비를, 호크를, 비제이를 기억하자.
그들은 다만, 이 땅에서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농성장에 모인 그들은 외치고 있다.
“Solidarity"
그들의 절박한 요구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묵도할 것인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손을 내밀 것인가
부안은 바퀴벌레 가득한 곳!
부안을 들어서는 톨게이트를 지났을 때,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추수가 끝난 들판과 새까만 바퀴벌레들...우리가 탄 버스 앞에 노란 반핵 깃발을 달고 있는 부안의 어느 택시는 트렁크까지 보여줘야 하는 검문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었다.
부안군 전체 7만, 인구 2만의 불과한 부안읍 내엔 경찰병력 75개 중대 8500여명이 상주하고 있다. 모든 관공서 앞엔 컨테이너까지 쌓아 전경이 지키고 있었고, 길을 걷다보면 골목골목에서 전경과 마주하게 된다. ‘경찰계엄상태’란 건 부안을 들어서는 순간 확인할 수 있다.
끌어안고 자도 안전한 핵폐기물?
위도는 아래로는 영광발전소로 위로는 새만금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바로 앞바다에서 잡던 고기를 이제 멀리까지 나가야 잡을 수 있다. 커지는 배 크기만큼 빚은 늘어갔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가난한 노인들이 위도를 지키고 있다. 지난 5월 대덕 원자력환경기술원의 설명회에선 이런 노인들에게 거액의 현금 보상을 제시하며 끌어안고 자도 안전한 것이 핵폐기물이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올 가을 수협과 농협에서는 부안에서 생산된 수산물과 농산물을 수매하지 않기로 했단다. 아직 핵폐기장이 들어선 것도 아닌데...
그 어디에서도 핵폐기장은 안됩니다.
부안 군민들은 부안 수협 앞을 ‘반핵민주광장’이라 부른다. 122일차 반핵촛불집회는 부안성당에서 진행되었다. 수협 앞 촛불집회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되는 7시가 되자, 노란 두건, 노란 잠바, 노란 머리띠를 두른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과 어린아이들이 몰려든다. 할머니들이 들고 다니는 ‘반핵보따리’에는 깔고 앉을 깔판, 태우다 만 촛불과 구겨진 종이컵이 들어있다. 집회는 생동감 그 자체였다. 앞에서 발언하는 사람과 집회 참석한 사람이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 민중연대의 대표자들도 그런 반응에 격양되어 발언을 했다. 부안 군민들이 원하는 것은 핵폐기장 백지화이다. 주민투표 실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군민들이 한발 물러서 양보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거부한 것은 바로 노무현 정부이다. 부안 군민들은 말한다. “지는 재신임 국민투표하자더니, 주민투표도 안돼야?!”
부탄가스를 들고 다니는 아이.
촛불집회 때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될까 한 아이가 부탄가스를 들고 다녔다. 위험하게 그걸 왜 들고 다니냐 했더니, 가지고 다니다 전경에게 던질꺼란다. 무서운 일이다. 무엇이 이 아이에게 이런 무서운 생각을 하게 했을까? 현재 부안군민은 300여명이 다치고, 400여명이 연행되었으며, 30명 구속, 70명 기소, 100명 즉심처리 되었다. 29일 밤 다시 찾은 반핵민주광장은 30일 언론들의 부안 배치 병력의 단계적 철수 보도를 무색하게 전경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노란색은 무차별 연행의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쇼핑 나온 가족을, 노란 잠바를 입은 어린 아이를 잡아가는 곳, 부안이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지역이기주의’는 소위 정치하는 자들의 꼬리표가 아닌가. 부안군민들은 촛불집회에서, 토론에서 진정한 대중의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그야말로 똑똑해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도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고 실천하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2003년 겨울, 우리는 반미-반전-반핵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게 애국이 아니라 효순이 미선이를 위해, 핵폐기장 반대, 파병반대를 위해 촛불을 밝혀드는 게 애국이요, 대~한민국을 외치는 게 단결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게 계급적 단결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해낸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영남․호남의 연대가 아니라 농민․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노점상, 그들과의 연대가 진정한 연대입니다.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진숙 지도위원 故 김주익 열사 추도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