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4 여름. 187호
첨부파일
11_회원칼럼_이인화.pdf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다시 생각하며

이인화 | 인천지부 회원
 
 

2017년 봄 어느 날

공공운수노조 인천지역본부장직을 7년째 수행 중이었고 3년 임기가 끝나는 해였다. 마침 그해 말엔 총연맹을 비롯한 지역본부장 선거가 몰려있었고 각 단위 선거가 어떻게 될지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현장을 떠나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임기가 끝나면 국민연금 사무실로 복귀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생각하며 늘 그렇듯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에 출마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화들짝 놀라며 내가 어떻게 그런 중책을 맡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지역에서 조합원이 가장 많은 산별의 대표자를 오랫동안 하고 있고, 그 기간에 2배가 넘는 조직 확대를 이룬 경험, 수많은 교섭과 투쟁의 경험, 비정규직 조직화 경험을 겪은 사람이 지역의 대표자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나는 출마를 결심하고 선거 준비를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과 조직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힘을 모아 당선되었다.

선거를 준비할 때,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그리고 당선된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항상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도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으로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인천에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스스로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였다. 6년간 이 대답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고 노력해왔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6년의 임기를 끝내고 2024년 1월 2일에 국민연금공단 남인천지사로 출근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직을 끝내고 국민연금공단 직원의 역할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현장 조합원으로서 5개월을 지내며, 6년간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노력과 활동을 되돌아본다. 후회는 없지만 한 걸음 더 내디뎠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쉽사리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지면에 썼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다시 꺼내 든다. (편집자 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사회운동》 92호에 수록되어있다. 참고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의 한글제목이다.)
 

인천에서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위상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특정 지역에서 어느 조직의 위상을 가늠한다고 하면 여러 측면이 있을 것이다. 정치 권력, 자본, 구성원의 숫자와 결속력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민주노총은 사회를 바꾸고자 활동하는 조직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은 다수 노동자의 힘, 권리가 취약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성,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역동성과 같은 것들이 종합되어야 사회적 위상이 높다고 할 것이다. 

노동자 대표성의 측면에서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인천 노동자의 최대다수 조직이다. 그러나 120만 인천 전체 노동자 중 4만을 조직하고 있어 조직률 자체가 낮았기에 조직 확대가 필수적이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직접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산별 조직들이 조직화 사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상담소를 확대해 민주노총을 알리고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의 권리 구제에 힘썼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지방선거 요구안을 만들고 각 정당이 공약에 반영하도록 여론을 만들었다. 이는 향후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인천시의 정례적인 ‘노정협의’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더불어서 매년 지역에서 진행하는 최대 집회인 노동절 인천대회를 더 규모 있게 진행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이는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자부심과 관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천시와 인천에 있는 자본에게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힘을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기에 중요했다. 노동절 인천대회는 2018년 약 3500명 수준에서 2022년 8천 명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합원은 2018년 약 4만 명에서 2023년 5만 명을 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그렇게 양적, 질적으로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130만 인천 노동자 전체를 위해서 ‘인천시’를 바꾸자!

노동자의 권리, 산업 정책, 업종과 관련해 인천시에서 관장하는 제도들이 인천 노동자의 일자리 변화와 노동조건을 규정하기에 노동에 대한 관점이 있는 인천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인천시 양자의 노정협의를 인천시에 요구하고 관철하였다. 노정 협의 상견례를 진행하고 요구안을 전달하고 협의를 지속했다. 

노정협의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조직된 노동자의 요구가 아닌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의 요구를 중심으로 요구안을 만들고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다. 둘째는 노정협의를 통해서 인천시 공무원들이 노동에 대한 기본 개념을 갖게 하는 장기적인 목표였다. 

법적 용어인 ‘근로’의 개념만 가지고 있는 상대와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제껏 중앙행정부나 상급부서의 계획과 지침에 따라 일하면 됐었는데 왜 민주노총과 얘기해야 하는지부터 이해와 설득이 필요했다.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겨우 알아들을 만하면 인사이동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 번번이 되풀이되었다. 

그렇게 지난하게 진행해 온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인천시의 노정협의는 인천시 집행부가 바뀌어도 2023년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현재 인천본부는 민주노총의 지역본부 중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요구안을 가지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와의 노정협의로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지자체의 권한과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매년 협의를 진행하며 인천시 각 국과 각 과 공무원에게 쌓이는 노동에 대한 인식, 민주노총 인천본부에 대한 인식이 더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더불어서 권리가 취약한 미조직 노동자의 요구를 중심으로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조직 노동자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노력, 인천시 전체 노동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훈련은 민주노총 인천본부에 무형의 자산이 되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바뀌자!

민주노총은 고리타분하다. 민주노총은 폐쇄적이다.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월급에만 관심을 쏟는다. 민주노총은 과격하다. 민주노총은 …….
 
민주노총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합원 스스로가 민주노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면, 우리 스스로 조직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의 민주노총 간부들이 소속 산별노조를 넘어 다른 산별노조 간부들과 토론하고 교류해서 지역에서 연대감을 높이고 활기를 더하길 바랐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는 모이고 단결해야 하는 노동조합의 속성을 전면적으로 가로막고, 모이지 못해 교육받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조합원의 개인화를 급속히 가속하였다. 2021년 가을부터 코로나19로 이완된 조직력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청년사업을 통해 새로운 활동 간부를 만나고, 페미니즘 사업을 확장하여 지역본부 조직문화를 변화하는 데 마중물로 삼고자 하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쑥과 마늘의 100일

2024년 1월 2일 국민연금공단 남인천지사에 첫 출근을 했다. 얼추 12년 만의 현장 복귀였다. 다들 복귀해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해주었다. 물론 나 자신도 겁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업무를 모르는데 어떻게 민원전화를 받을지…. 젊은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그래 100일만 버텨보자!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민원전화 피하지 말고 직무교재 수시로 들춰보고 그래도 모르면 옆의 동료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100일만 버텨보자’고 생각하고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어느새 5개월이 지나버렸다.

3월 중순쯤 되었을 때 두 명의 동료가 “이제 전화를 안 하시네요? 업무에 적응하신 모양이죠?”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툭하면 모르는 업무를 물어보느라 전화를 했었는데, 이제는 전화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주위의 걱정과 달리, 무엇보다 내 걱정과 달리 너무도 빨리 국민연금공단 직원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 같다.
 

이렇게 빨리 적응해도 되는 건가?

2월 말쯤 되는 어느 날 문득,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으로서 고민하던 인천 전체 노동자, 민주노총, 민주노총 인천본부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기분 좋게 출근하고 좋은 동료들과 웃으며 하루를 지내면서, 약간 짜증나는 민원은 있지만 대인배의 마음으로 응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책임감의 무게를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고 너무도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도 빨리 변하는 건 배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책임감과 고민에 묻혀 살아가는 동지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조직이란? 대중이란?

위에 쓴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역할, 즉 조합원이 자랑스러워하는 민주노총에 대해 특별히 다른 방향이나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평조합원이 되어서 바라보는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멀어도 너무나 먼 느낌이다.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하는 사업과 역할은 현장 조합원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현장의 조합원(생활인)들은 사업장의 임금에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인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변화를 만들 힘을 축적할 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기구가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다. 

사회변화에 대해 현장 조합원과 간부들이 다시 얘기할 수 있는 공간과 방법은 무엇일까? 민주노총이 계획하고 집행하는 사업들에 대해 현장 조합원들이 같이하거나 의미를 공감하려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대중이고 내가 만나는 대중은 조합원이다.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다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생각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어떤 다리가 될 것인지를 그리고 실천해야겠다. ●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