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4 겨울. 189호
첨부파일
05_특집_이아림.pdf

한국경제 전망과 제약 조건

낮은 잠재성장률, 막대한 부채, 한계에 처한 수출 대기업

이아림 | 정책교육국장
사회진보연대가 그간 전망했듯,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해 이전과 같은 성장 흐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 시기 이뤄진 제로금리와 수량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출구전략을 시작하는 시기가 상당히 늦어지자 사실상 2차 대불황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2017년 미중 간 무역전쟁이 개시되며 세계경제는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급기야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세계는 다시 이례적인 완화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결국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그 후 세계는 경제주체의 고통을 수반하는 강제조정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요컨대, 세계 경제는 2010년대 중후반 반도체 호황기를 제외하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경제구조의 특성상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한국경제는 코로나19 위기를 기점으로 초저성장이 고착했다. 3%대의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고, 성장률과 잠재성장률 모두 2%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2024년 3분기 성장률이 0.1%가 나오면서 ‘상저하고’라는 말은 쏙 들어갔고, 모든 기관에서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수정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부정적 전망이 더욱 강해졌다. 이번 글에서는 2025년 경제 상황이 어떨 것인지를 살펴보고,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한국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따져본다. 

다음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경제가 처한 객관적 현실이 어떠한가를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조건은 아무리 잘해봐야 2%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다. 다시 말해, 한 해마다의 단기적 경제 전망보다는, 한국 경제가 어떤 구조적 제약을 마주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이를 잠재성장률, 부채, 수출 대기업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1. 2024년보다 더 안 좋아질 2025년

 
국제통화기금(IMF)이 11월 말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2.2%, 내년 2.0%로 전망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올해 2.5%, 내년 2.2%로 전망했는데,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로 낮추고, 한국은행(한은)이 지난 8월 전망치 2.1%에서 최근 11월 전망치를 1.9%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행은 성장률을 1%대로 낮춘 이유를 “내수는 소비를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가겠지만, 수출 증가세가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더해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를 점할 상황까지는 예상치 못했으며, 올해 3분기 때 수출 증가세가 낮아진 것이 일시적인 요인이 아니라 중국과의 경쟁 등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 부진한 내수,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까?

내수는 민간소비와 총고정자본형성의 합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경상수지와 정부지출을 제외한 부분을 뜻한다. 한국은행과 KDI는 금리 인하를 반영하여 올해에 비해 내년에는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내수가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수출기업의 부진과 민간의 부채 상환부담으로 인해 그 회복 속도는 느릴 것으로 본다. 

설비투자의 경우 금리 인하로 자본조달이 좀 더 쉬워지기에, 투자심리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몇 가지 난관이 있다. 첫째,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중소기업의 설비투자는 곧장 확대되지 않을 수 있다. 2024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5.8%가 이자 부담이 줄어들 경우 가장 먼저 취할 조치로 “부채상환 등 재무구조 건전화”를 꼽았다. 둘째,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통상마찰을 줄이기 위해서 미국 현지 직접투자를 확대하고 우회 진출 경로 확보에 주력할수록 국내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 셋째,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중국의 저가 상품 공급이 확대돼 수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수출뿐만 아니라 설비투자 역시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 

건설투자의 경우 2025년에도 부진할 예정이다. 연초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가시화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서 드러났듯 건설업의 부진은 심각하다. 주택 건설 인허가가 감소하는 추세고 착공이 들어간 곳도 대폭 줄었다. 게다가 악성 미분양이 증가하고 있고 내년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예산도 축소된 상황이다. 이에 건설경기가 IMF 경제위기 때보다 심한 수준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으며, 올해 9월까지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사가 357개로 전년동기대비 21.42% 늘었다. 
 

민간소비 부진에 관해 좀 더 살펴보자. 민간소비가 2025년 들어 소폭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추세선에서 이탈한 것은 분명하다. [그림2]를 보면, 현재 민간소비는 코로나19 이전 추세에서 이탈한 것을 넘어, 금리 인상 이전의 예상추세에도 미달한 실정이다. 소비 악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업종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이며, 관련 업종 종사자인 판매직 감소 폭이 코로나19 시기에 버금갈 정도다. 요컨대, 코로나19로 타격받은 내수 서비스업이 다시 과거 추세로 회복하지 못한 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주저앉아버린 형국이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민간소비 위축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간소비 위축이 유독 심각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금리상승 손해층과 이득층을 나눴을 때, 손해층이 이득층에 비해 소비성향이 훨씬 높다. 즉, 소비 여력이 있는 3~40대 중산층이 대출로 주택을 구매해 ‘금리상승 손해층’인 경우가 많아 소비 위축이 강해진 것이다. (금리민감 자산보다 금리민감 부채를 더 많이 소유하고 유동성자산보다 비유동성자산이 많은 ‘금리상승 손해층’은 금리가 상승했을 때 손해를 본다. 반대의 경우는 ‘금리상승 이득층’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국내 주택담보대출에서 변동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체감 금리 상승 폭이 주요국에 비해 컸다. 2022년 4분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에서 그 비중은 한국이 65.1%, 스웨덴 51.0%, 덴마크 35.8%, 영국 13.1%, 미국 6.1%다.

이에 더해, 민간소비 부진은 지난 20년간 이어진 고질적인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첫째, 잠재성장률이 2% 내외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민간소비가 기본적으로 둔화할 수밖에 없으며, 둘째, GDP 대비 민간소비와 정부소비를 합한 총소비 비중은 대체로 동일한 상황에서 정부소비 비중이 지속해 확대되면서 민간소비 비중이 줄었고, 셋째, 소비재의 가격이 투자재나 수출품의 가격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실질 민간소비가 축소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 시점에서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1%대 중반 정도가 실질민간소비의 추세적 증가율이다. 

그러므로 2025년 이후 금리 인하 국면에서 내수가 곧바로 회복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낙관적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지만 이미 물가수준 자체가 높아 소비회복이 좀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다, 금리 인하조차도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2) 금리 인하, 순조롭게 될까?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기준금리를 3.25%로 인하했다. 2023년 초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한 이후, 2년 가까이 유지하던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이어서 지난 11월에도 금리를 인하해 현재 기준금리는 3%가 되었다. 3개월 내 추가 인하는 없다고 예고했음도 불구하고, 예상을 깨고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금리 인하가 시작되었으니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3고 현상’은 곧 끝나는 것일까? 안심하긴 이르다. 

우선 금리 인상의 이유였던 인플레이션은 목표치에 수렴한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률은 지난 10월 중 전년동월대비 1.3%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2025년도 역시 1.9%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미국보다 금리를 훨씬 덜 올린 터라 한국의 금리 인하 강도는 미국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기에 올해는 더는 금리 인하를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게다가 미 대선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고 환율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금리를 인하하기에 더욱 곤란한 조건이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물가를 자극해 물가 인상 요인이 되며, 금리를 내리면 자본 유출로 환율이 오르는 경향이 있기에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는 것은 경제 상황을 그만큼 심각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11월 28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성장과 외환시장 안정 간의 상충 관계에 있어서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요컨대,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확대되면 금리 인하 기조는 언제든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트럼프 정책으로 인해, 다시 고금리 정책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트럼프 당선인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독립성 제한’을 지렛대 삼아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수출 활성화를 위해 약달러를 추구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다. 금융시장은 트럼프의 정책이 고금리·강달러를 야기할 것임을 고려해 반응했다. 

트럼프 정책대로 감세를 관세로 감당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공약을 지키고자 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많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국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유동성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이민 제한과 대중 관세 인상은 각각 임금 및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의 불확실성,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글로벌 교역 감소로 인해 안전자산인 달러가 선호되어 달러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강달러 현상이 계속되면 원·달러 환율은 상승할 것이고 한국의 금리 인하는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2. 다시 돌아온 트럼프 행정부,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이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통화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수출 경제로 먹고사는 한국에 불리한 통상환경이 조성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성장률이 수정된 가장 큰 이유도 트럼프 등장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수출 둔화 전망이 원인이었다. 물론 산업에 따라 체감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미국이 화석연료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게 되면 LNG선의 수요 확대 등 조선업이 얻는 이익은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수출의 양대 산맥인 반도체와 자동차 부문을 중심으로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당선이 금융시장에 주는 파급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당선 직후 한국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급속히 빠지고 미국 증시에 돈이 몰리거나, 비트코인 시장 규모가 다시 확대되면서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1) 앞뒤 안 가리는 트럼프식 관세전쟁

트럼프와 해리스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중 무역전쟁은 격화될 수 있었다. 바이든과 해리스는 동맹과 보조를 맞춰 정교한 압박을 추구한다면, 트럼프는 대대적인 관세전쟁을 치르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전장을 더욱 확대하려고 한다. “관세는 사전(辭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트럼프는 당선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중국에는 추가로 10%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서 무관세를 약속했던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겉으로는 이민과 마약 대응을 내세웠지만, 중국이 멕시코를 우회 수출 통로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속내다. 이에, 미국 시장을 노리고 멕시코에 진출한 현대차그룹과 그 협력사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무역적자 규모가 멕시코 다음으로 큰 베트남, 그리고 경제권 전체로는 무역적자 규모가 중국과 비슷한 EU가 트럼프의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베트남은 예전 중국처럼 한국산 중간재를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산업 구조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한국 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체결한 협정조차 쉽게 무시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무사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한국에 세이프가드 발동(긴급 수입제한 조치), 세탁기·철강제품 관세 부과, FTA재협상 요구 등 통상압력을 가했다. 한편,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작년에는 444억 달러, 올해도 5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계획이라 트럼프 1기보다 더 강한 통상압력을 받을 것이다. 완성차의 미국 수출 비중은 최근 5년간 상승세다. 2023년 완성차의 미국 수출 비중은 45.5%, 전기차는 35.0%로 높은 수준이다. 무관세로 지금껏 큰 혜택을 입었던 한국 자동차 산업이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관세 공약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경제가 얼마큼 타격 받을지를 여러 기관이 예측한 자료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성장률이 1.1%P 하락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한국에 반사이익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중국산 대체 수요로 한국이 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배터리·반도체·철강 등 현재 한국의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은 이미 미국 수입시장 내 중국 비중이 낮은 상황이라 그 영향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은 글로벌 생산설비의 15~20%가 중국에 있어 여전히 중국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운영에 따른 위험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고 내수침체가 지속하면, 중국이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국에 초저가 수출 공세를 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줄 것이다. 즉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은 없거나 있어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2) 자동차·반도체 산업, 보조금 물 건너가나?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지우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유세 과정에서 “부유한 기업들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급한 꼴”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와 반도체법의 보조금을 정조준했다. 트럼프는 보조금 대신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기업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공장을 설립하러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근보다 채찍이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다. 

물론 대다수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전면 백지화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해 타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은 조지아·미시간·오하이오는 공화당 지지가 강한 공업지역이다. 또한,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은 초당적 지지가 있는 사안이다. 다만 행정부의 재량권이 커서, 보조금 지급조건을 까다롭게 하거나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방식으로 IRA를 실질적으로 무효화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한국은 IRA 시행 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이 발표한 투자 프로젝트는 총 37개로 투자 규모는 해외 기업이나 미 주정부와의 합작 투자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도 198억 4320만 달러에 달한다. 물론 미 대선이 다가오면서 불확실성이 커져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중단되었다고 해도, 이미 매몰 비용이 상당하다. 게다가 보조금 지급이 까다로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의 중요한 투자 목적 중 하나였던 통상마찰 회피를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큰 문제다.
 

3) 금융시장 리스크를 키우는 트럼프 트레이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과 함께 한국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그동안 잠잠했던 코인 시장에 자금이 몰렸다. 트럼프 정책에 따라 이익을 볼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끼친 효과다. (물론 주가가 하락한 것은 트럼프 효과 때문만은 아니고,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 실적이 예상보다 낮았던 것도 한몫했다.) 

트럼프 트레이드는 고위험 투자에 몰두하는 개인투자자의 세태를 부채질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주식소유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상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국내 주식시장은 개인투자자 비율이 비상식적으로 높고, 그중에서도 단기 시세차익을 노려 하루 안에 주식을 사고파는 당일 매매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빠르게 하락한 것도 개인투자자가 미국 주식시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트레이드에 힘입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이 11월 14일 현재 처음으로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넘었다. 2022년 말만 해도 440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2년도 안 돼서 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코인 시장의 부활이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비트코인 2024년 콘퍼런스에 참석해 자신이 집권하면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지정해 비축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고, 얼마 뒤 “미국을 가상 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미국 공화당의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은 스테이블코인을 보급해서 미국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전 세계적으로 코인 시장에 자금이 다시 몰렸고, 그에 한국인이 가장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하루 거래대금이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추월하는 일도 벌어졌다. 미국 성인 중에 5~10%가 코인을 보유하고 있어 트럼프의 공약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 성인의 코인 보유 비율이 20%가 족히 넘는다.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코인거래 이용자가 778만 명인데, 트럼프 당선 이후 이보다 더 급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블록체인 암호화폐는 결국 대응하는 가치 실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각종 금융상품 중에서 가장 변동성이 높으며 본질적으로 다단계 금융사기에 가깝다. 따라서 우연한 계기로 금융시스템 전반에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개인투자자의 투기적 행태는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트럼프 당선을 매개로 더욱 활개 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여야가 합심해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결정했는데, 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을 추수하는 정치권도 이런 세태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2025년 경제 정세를 좌우할 트럼프의 귀환은 분명 외부적 요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외부적 요인에 대응할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다. 지금부터는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세 가지 제약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3. 잠재성장률 하락: 초고령화·초저성장 사회라는 예견된 미래

 
2024년 이례적으로 한국은행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물론 전세계가 고물가·고금리에 신음했기에 중앙은행의 동향에 주목하는 게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별도의 맥락이 있었는데, 최근 한국은행이 논란이 될 각종 이슈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농산물 수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한국은행 보고서를 농축산부 장관이 직접 반박하는 일도 있었고, 돌봄서비스업에 이주노동자 유입을 확대하자는 보고서에 대해서는 즉각 폐기를 주장하는 기자회견도 개최되었다. 이 글에서는 한은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 행보를 하는 ‘이유’를 환기하고자 한다.

이창용 총재는 한국은행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시끄러운 연구’를 통해 “통화정책뿐 아니라 구조개혁과 관련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 잠재성장률이 몇십 년 뒤에는 거의 0% 수준으로 날아갈 그럴 위험”에 처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즉,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만큼 한국경제가 위기에 봉착했으며 이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널리 확산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한국경제의 이러한 장기침체의 상황을 마르크스의 구조적 위기론 관점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임필수, 「장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쟁점으로 살펴본 세계경제」,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2년 겨울호.)
 

1) 현황: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잠재성장률

한국이 2025년부터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저성장 사회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이제 다시는 성장률이 3~5% 정도 유지되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투입해 물가 상승 없이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이자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잠재성장률이 한국의 경우 곧 1%대로 내려갈 예정이다. 
 

잠재성장률은 기본적으로 생산함수를 통해 추정한다. 생산함수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를 투입해 국민소득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한편, 자본과 노동을 제외하고 성장률에 기여하는 부분을 총요소생산성이라 부른다. 동일한 고정자본과 노동을 투입해도 국민소득이 더 높은 나라가 있는데, 이는 총요소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총요소생산성은 보통 GDP에서 생산요소(자본, 노동) 기여분을 차감하여 그 추세를 계산한다. 즉, 총요소생산성은 사후적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매우 가파르게 떨어지는 중이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처럼, 급격하게 초저성장으로 진입한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주요국의 장기 1인당 잠재성장률을 추정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은 2000~2007년 연간 3.8%에서 2007~2020년 2.8%, 2020~30년 1.9%, 2030~60년 0.8%로 급속히 떨어진다. 2020~30년까지는 OECD 평균인 1.3%보다 높지만, 2030~60년에는 OECD 평균인 1.1%와 G20 평균인 1.0%를 밑돌면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가 된다. 이는 각각 1.0%와 1.1%로 추정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한국경제 성장률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생산 요소별 장기 추이를 살펴보자. 1990년대 경제성장률 하락이 노동 투입 증가세 둔화에 기인했다면, 2000년대에는 자본투자 부진이 성장률 하락을 주도했다. 그런데 2010년대에는 생산성 증가세 둔화가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증가세가 둔화한다는 것은 아무리 자본과 노동력을 투입해도 성장이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생산성 증가세 둔화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 하락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2000년만 해도 2%씩 늘었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22년 0.8%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19 위기가 잠재성장률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위기가 포함된 2019~20년 중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2.2% 내외로, 기존 추정치였던 2.5~2.6%에 비해 0.3~0.4%P가량 낮아졌다. 코로나19 충격은 공급망 약화, 재택근무 확대에 따른 조정비용 증가, 서비스업 생산능력 저하 및 자원배분 비효율성 증대 등 총요소생산성 저하 경로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온라인 수업 확대에 따른 육아부담 증가, 대면서비스업 폐업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크게 하락하면서 노동 투입이 감소했고, 고령층의 비자발적 실업이 증가한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다. 엔데믹 시기 추세선을 다시 회복한 노동 투입과 달리, 생산성은 다시 회복하지 못하면서 잠재성장률을 더욱 낮춘 것으로 보인다. 


2) 전망: 예견된 미래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다는 말은 1%대 경제성장률이 일상이 된다는 의미다. 그간 한국경제는 외환위기에 필적하는 경제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2년 연속 1%대 경제성장률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본 전례가 없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이 1%대 성장률조차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7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고 노동시간 역시 감소하는 추세에서, 고용률의 획기적인 제고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노동 투입의 하락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노동 투입을 추산하는 방식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노동의 잠재성장률 기여도는 이미 마이너스이거나 곧 마이너스대로 진입한다. 즉, 노동은 단순재생산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성장에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자본 투입의 경우 이윤율 하락과 함께 투자 증가율이 꾸준히 낮아지고 있으며 2040년대에는 그 증가율이 1%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향후 경제성장은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 전문가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책으로 구조개혁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저생산성은 세계적 기조로 선진국 역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모두 낮다. 총요소생산성을 국제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 역시 한국과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에서 추산한 그래프를 보면(그림6), 심지어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 성공하더라도 극적 반전을 꾀하기 어렵다. 게다가 구조개혁은 정치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작을 뿐만 아니라, 개혁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도 존재한다. 바로 부채 문제다. 
 
 

4. 부채 삼중고에 빠진 한국경제

 
한국경제의 세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의 총부채 규모는 2023년 2분기 기준으로 GDP 대비 273.1%에 달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이 전년동기대비 상승한 나라다. 즉,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부채가 증가한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고금리 시기에도 그 규모를 축소하지 못했다. 막대한 규모의 부채는 경제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하며, 급작스러운 위기가 닥쳤을 때 쉽게 경제 전반을 흔들 수 있다.
 

1) 통화정책 전환의 발목을 잡은 가계부채

8월 24일 “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왔다”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파월 의장의 발언을 기점으로 금리 인하의 막이 올랐고, 9월 18일 연준은 기준금리를 0.5%P 인하했다. (물론 이 역시도 기존 예상보다 훨씬 늦어진 것이다.) 이에 한국은행 역시 10월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인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24년 2~3분기부터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근접함에 따라,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또한, 하반기 들어 ‘상저하고’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수 부진이 여전한 가운데 수출 역시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한은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조성됐다. 2024년 6월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통화정책을 유연히 가져가야 한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7월에는 “금리는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언급이 있었으며, KDI 역시 8월에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8월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한은은 금리를 동결했고, 이에 대해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아쉽다”는 의견 표명을 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막대한 가계부채였다.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거의 1천 9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2년 4분기부터 관련 통계를 공표한 이래로 역대 최대치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도입 시기가 미뤄짐에 따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다시 증가세로 전환하는 시점에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경우 간신히 축소하고 있는 가계부채가 다시 확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간 한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섣부른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총재가 직접 기준금리가 예전 0.5% 수준으로 빠르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므로 “영끌했을 때 부담이 적을 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강하게 경고를 하기도 했다. 한은 입장에선 내수부진에 대응해 성급하게 금리를 인하했다간 가계부채가 더 확대될 수 있고, 부채가 확대되면 금융위기에 취약해지기에 쉽사리 금리를 낮출 수 없었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 통화정책의 양대 목표인 연준과 달리, 한국은행의 경우 물가안정이 일차 목표이며 2011년 한국은행법 개정 이후 금융안정 책무를 명시적으로 부여받았다.)

IMF가 2023년에 발표한 『2023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나라 중에서 코로나19 이전 기준인 2019년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상승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그림7 위). 게다가,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DSR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그림7 아래). 게다가 연체율도 2022년 2분기 말 0.56%에서 2024년 1분기 말 0.98%로 상승했다. 특히, 소득 하위 30%에 속하거나 3개 이상 금융기관에 채무가 있는 다중 채무자(취약차주)의 경우 연체율이 2024년 1분기 말 현재 9.97%에 이른다.
 

이렇게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가 확대한 원인으로는 보통 세 가지가 지적된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에서 높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기대하며 가계대출을 대폭 늘렸고, 이후 은행 대출에서 가계대출 비중은 기업대출 비중을 항상 상회했다. 둘째, 한국의 경우 대출 관행이 주요국에 비해 완화적이다. 대부분의 대출이 DSR에 포함되는 주요국과는 달리, 한국은 전세자금이나 중도금 대출 등 상당수의 대출이 DSR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셋째,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었고, 전세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정책대출과 집값 상승의 악순환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공적보증은 2015년 229조에서 2023년 701조로 증가했고, 공적보증 중에서도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같은 기간 35.8%에서 65.9%로 상승했다.

나아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가격상승은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우선 높은 담보자산 가치를 보유한 고소득층이 더 많은 부채를 통해 순자산을 증가시킴에 따라 자산 불평등이 확대된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에 대해 대출을 촉진하려는 정치적 압력이 발생하여 가계부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가계부채의 상승은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낳는다. 국내은행의 업종별 대출자산 비중을 보면 부동산과 임대업에 대한 대출 비중이 2012년 8%에서 2019년 12%로 늘어났지만, 제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은 동 기간 중 23%에서 19%로 줄었다. 

또한, 가계부채의 경제위기 위험성을 계랑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GDP 대비 80%를 넘는 시점부터는 경기침체 가능성을 단기적으로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과거 50년간 34개국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성 증대가 동반되지 않은 민간신용 증가는 궁극적으로 위기를 유발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직전과 미국의 2007년 금융위기 직전 모두 급속하게 가계부채가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 GDP 대비 70%, 미국의 경우 GDP 100%가 고점이었다. 현재 GDP 대비 100%가 넘는 가계부채 규모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2) 고금리 시기에도 늘어나기만 한 기업부채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작년 2분기 말 기준 124.0%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 최고비율 113.7%를 넘는 수치다. 결정적 분기점은 역시 코로나19인데, 2010~19년 동안 연평균 4.8%씩 증가하던 부채가 코로나19 위기를 경유하며 2020~23년 동안 연평균 9.3%씩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19 기간 중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 상승의 상당 부분을 기업부채가 이끌었다. 2023년 말 현재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25.3%로, 2019년 말에 비해 29.0%P 증가했다. 이 중 기업부채가 23.9%P, 가계부채가 5.1%P 상승했다. 한국의 민간부채 비율은 신흥국 평균 152.1%는 물론 선진국 평균 160.1%도 크게 상회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종료 후 시작된 고금리 상황에서 대부분 나라의 기업부채 증가세가 주춤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은 오히려 증가세가 지속됐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스럽다. 부채의 질 역시 악화했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금리 수준이 높고 금리변동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 비은행권·중소기업·단기대출이 확대됐다. 우선, 전체 기업대출에서 비은행권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말 25.7%에서 2023년 3분기 말 32.3%로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의 기업대출이 2019년 말 대비 2023년 3분기 말 현재 140.9%로 대폭 증가해 비은행권 기업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상호금융의 기업대출 증가에는 부동산 PF 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9년 말 이후 대기업 대출보다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세가 더 높았다. 대기업은 대부분 은행권 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났지만, 중소기업은 비은행권 대출이 전체 대출 증가 규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부채의 질이 더욱 악화했다. 게다가 2023년 3/4분기 말 현재, 만기가 1년 이내로 남은 단기대출이 은행권 기업대출의 67.0%를 차지한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단기대출 비중 역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훨씬 크다. 이에 따라 연체율도 상승하는 추세다. [그림9]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소기업·개인사업자와 비은행권 대출에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기업부채가 악화하고 있다면 부채의 악순환이 초래되어 경제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은 없을까? 몇 가지 지표를 통해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이자보상배율을 살펴보자.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이면 번 돈으로 이자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는 의미인데, 심지어 1 미만인 위험기업의 차입금이 총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상반기 기준 57.4%다(외환위기 당시 67.8%). 

다음으로 차입금상환배율을 살펴보자. ‘총차입금’을 ‘세금이나 이자 및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으로 나눈 차입금상환배율이 5~6배를 넘어서는 경우 상환능력에 비해 차입금 규모가 과다한 것으로 평가하는데, 6배를 초과하는 기업의 차입금이 총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상반기 기준 50.5%다(외환위기 당시 62.0%). 

물론 현금흐름(flow)이 아니라 자본 규모(stock)로 봤을 때는 현재 상황이 외환위기에 비해 심각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익을 못 내고 있지만 그래도 그동안 벌어놓은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경우 취약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취약기업의 차입금이 총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외환위기 당시에는 84.3%였던 반면, 2023년 상반기에는 35.8%다.

최근 기업부채 증가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PF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 전체 대출 증가 규모의 약 40% 정도를 부동산업과 건설업이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PF의 경우 현재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황이며, 현재로선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부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부동산 PF 외에도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했을 경우 경제가 쉽게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허약체질이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요컨대, 가계부채와 함께 기업부채 역시 한국경제에 큰 제약 조건으로 기능하고 있다.
 

3) 급속한 정부부채 증가로 인한 제약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과 달리, 정부부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규모가 선진국과 비교해 그리 크지 않으니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축통화국과 한국을 비교해선 곤란하다. 어떤 나라도 원화를 안전자산으로 여기거나 국부(國富)로 보유하지 않는다. 국채 수요 규모의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게다가 부채의 절대 규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채의 증가 속도다. 만약 부채증가율이 명목 GDP 성장률보다 높다면,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수입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른 사실상의 ‘폰지 재정’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부부채를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며 한국의 국가채무(D1)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는데, 국가채무 연평균 증가율이 10.1%에 달해 명목 GDP 연평균 성장률 3.67%를 크게 웃돌았다. 

2017년 GDP 대비 정부부채(D2) 비율 역시 5년 만에 40.1%에서 54.1%로 14%P 높아졌다. 같은 기간 IMF가 분류하는 선진국 35개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5.5%P 증가했으니, 한국의 부채 증가 속도가 선진국의 2.5배 가량 빨랐다는 의미다. 선진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2020년 정점을 찍은 후 2021년, 2022년에 다소 하락한 데 반해, 한국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기업부채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시기 확대한 부채 규모를 고금리 시기에 조금도 조정하지 못한 것이다. 인구구조가 전환되는 상황에서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GDP 대비 국가채무(D1) 비율이 2040년이 되면 100.7%, 2060년이 되면 161.0%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부채의 질적 하락도 우려된다. 국가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금융성 채무는 융자금, 외화자산 등 대응 자산이 존재하여 이를 기반으로 발생한 채무를 나타내며, 대응 자산이 있으니 유사시 별도의 재원 조성 없이도 상환할 수 있다. 반면 적자성 채무는 대응 자산이 없고 상환할 때 조세수입 등 별도의 재원 조성이 필요한 채무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산가치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금융성 채무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적자성 채무의 비중이 높아지면 국가채무가 질적으로 악화했다고 판단한다. 한국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적자성 채무의 비중이 49.2%에서 61.6%로 총 12.4%P 증가했다는 점에서, 국가부채의 질적 하락이 눈에 띈다. 

게다가 암묵적인 지급보증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장에서 평가되는 공공부문 부채(D3)로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그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한국의 비금융 공기업 부채 규모는 GDP 대비 20%가 넘어, 33개 비교 대상국의 평균(12.8%)보다 크게 높고, 공공부문 부채가 극히 높은 일본(17.2%)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나아가, 최근 10년간 크게 확대한 정책금융, 즉, 산업은행, 주택도시공사 등 사실상 정부의 정책을 대행하는 금융공기업에서 발생하는 부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금융공기업 부채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금융공기업의 부채가 ‘공공부문 부채’(D3)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금융기관의 특성상 부채 규모가 비금융기관보다 높은 경향이 있고, 이를 일반적인 정부나 비금융기관의 부채와 동등한 선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물론 금융공기업의 부채는 보수적으로 담보 가치를 인정하기에 정부의 부담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그중 일부만 국가 부담으로 전이되더라도 재정에 부담이 가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2년째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지난해 세수 결손 규모가 역대 최대인 56조 4천억 원이었고, 올해도 29조 6천억 원의 세수 펑크가 예상된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중심으로 세수가 대폭 줄었는데, 2022년 103.6조가 걷혔던 법인세가 2023년 80.4조(예산 105조), 2022년 128.7조가 걷혔던 소득세가 2023년 115.8조(예산 131.9조) 걷히면서 2023년 세수 결손 규모가 커졌다. 올해 역시 법인세와 소득세가 예상보다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데, 법인세가 63.2조(예산 77.7조)가 걷힐 것으로 보이며 소득세는 117.4조(예산 125.8조)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수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가계처럼 곧바로 지출을 줄이긴 어렵다. 결국 기금을 끌어 쓰는 것도 한계에 봉착할 것인데, 그러면 추가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방대해진 국채 규모를 추가로 늘리는 데는 제약이 존재한다. 우선 고금리로 인해 이자 부담이 증가했다. 2020년 국고채 평균 조달 금리가 1.38%인데 반해, 2023년은 3.57%에 이른다. 또한, 총발행량 중 차환 발행 비중이 증가하는 한편, 순발행 비중은 2020년 66.1%, 2021년 66.8%, 2022년 57.7%, 2023년 37.1%, 2024년 31.5%로 감소하고 있다.

차환 발행은 채권 만기가 다 돼서 갚아야 하거나 조기상환을 위해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돌려막기다. 개인에 비유하자면, 월급은 계속 줄어드는데 이미 빚이 많은 상태에서 돌려막기를 위해 추가로 빌리는 데에도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5. 수출 대기업은 한계에 도달 중

 

1) 수출로 먹고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가 한계에 봉착했다. 한국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보았다. 이는 수입 원자재 가격상승이라는 일시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한국의 수출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국의 수출은 2017년을 정점으로 하여, 이후 성장세가 주요국 수출 성장세를 밑돌며 정체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수출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의 추이를 봤을 때 지금까지 무역흑자에 크게 기여했던 휴대폰·디스플레이·선박·자동차 수출이 상당 기간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휴대폰·디스플레이 수출은 생산기지 해외 이전, 중국업체와의 경쟁으로 감소하고 있고, 선박은 과거의 공급과잉 여파가 이어졌으며, 자동차도 해외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정체 흐름을 보였다. 
 
그런 와중에 반도체 수출만이 2010년대 중반 이후 크게 확대하면서 한국경제에 일종의 착시효과를 냈다. 최근의 수출 회복세 역시 반도체가 견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가 그리 밝지 못하다. (이는 아래서 자세히 살펴본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생산과정에서 투입되는 중간재 중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재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출이 확대되더라도 순수출 증대 효과가 줄어든다. 또한, 한국은 고가의 반도체 제조장비 같은 자본재를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처지기에 이 역시도 순수출 증가를 제약한다.

한국의 수출을 제약하는 외적 요인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과의 경쟁이다. 이렇게 국내 수출입 구조가 변화하는 와중에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자급률도 올라, 앞으로 대중 수출이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중국 수입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2000년 이래로 꾸준히 축소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선통신기기, 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업체의 기술력 향상과 저가 전략으로 인해, 2021년 수출금액이 2015년 대비 무선통신기기는 40%, 디스플레이는 26%까지 축소했다. 중국의 기술 발전으로 한국의 중국산 중간재 수입도 증가하면서 2023년부터는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실제로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으로 철강 대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포스코는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39.8% 감소했으며, 수익성 개선을 위해 포항제철소의 몇몇 공장을 폐쇄했다. 현대제철 역시 같은 이유로 공장 폐쇄를 추진 중이다. 자동차 수출의 경우 철강 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중국의 공격적인 전기차 시장 장악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전기차 판매량이 올해 상반기 17.6%P 감소했으나, 하이브리드차의 약진으로 전기차 수출 부진을 보완해 올해 1~3분기 판매량이 2.2%P 감소에 그쳤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인데, 이미 유럽, 아세안에서 중국 전기차 수출이 급격히 늘어난 상태다. 

이외에, 미국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는 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려는 추세다. 또한, 최근 엔저의 장기화로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제품, 자동차·부품, 선박, 반도체 등 한국 5대 수출품목 모두 상대적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이처럼, 첨단 IT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 수출산업이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대외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2) 삼성전자 위기론

2024년 10월 기준 월별 수출액의 21.8%를 차지하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약 80~90%의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요즘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는 한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일례로 2019년 삼성전자가 납부한 법인세가 그해 정부 법인세수의 14.6%를 차지했다. 최근 2년간 세수 부족은 삼성전자가 부진한 탓도 크다. 반도체 착시 현상이 걷히자, 한국 수출기업의 취약함이 드러난 셈이다.

사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선두를 달릴 수 있었던 비법은 간단했다. 1980년대 실리콘밸리는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의 국제적 경쟁에 맞서기 위해 훨씬 더 저렴한 공급원을 찾아내는 동시에 미국의 연구개발 노력을 범용 D램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에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만든 칩의 조립과 패키징을 아웃소싱하고 있던 한국이 그 적임자가 되었다. 삼성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거대 자금을 투여해 시장을 장악했다. 막대한 고정자본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생산에서 시장을 독식하는 데에는 대규모 자금 조달이 쉬운 재벌구조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상황은 삼성전자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 1980년대의 양상과 똑같다. D램을 대량 생산하는 삼성의 자리를 중국이 꿰차려 하는 가운데, 삼성이 기술력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며 대만의 TSMC가 범용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첨단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에 힘입어 범용 메모리 반도체를 반값에 판매하는 덤핑전략으로 전세계 D램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를 전량 수입하던 중국 전자 업계가 자국 회사의 반도체를 쓰기 시작하면서 삼성의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에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의 사업성을 우려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박차를 가하며 TSMC와의 위탁 생산(파운드리)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기술력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는 미세공정으로 갈수록 기술개발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과거에는 삼성과 TSMC도 비슷한 공정 수율(생산품 대비 정상품의 비율)을 보였지만, 이제는 격차가 10% 이상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미중갈등과 디커플링에 취약하다. 삼성전자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선진국에서 장비용 부품을 수입하여 반도체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그렇게 생산한 반도체를 중국에서 후공정을 거쳐 판매해 왔다. 반도체 장비와 부품은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편, 생산할 반도체를 수출할 시장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향후에 2017년과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호황기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삼성전자가 그 호황을 누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3) 재벌체제의 결함 때문

삼성전자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문가들은 반도체 고객인 설계업체(팹리스)와 경쟁하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할 것을 권고한다. 완제품도 제조하는 삼성에 위탁 생산을 맡기면 자신의 기술이 삼성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고객사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TSMC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의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면서다. 따라서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에 더해 직접 설계까지 하는 삼성전자의 사업구조로는 전망이 어둡다는 얘기다. 게다가 투자가 분산되니 기술격차는 계속 벌어지게 된다. 파운드리만 전문적으로 하는 TSMC는 매년 약 4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체 투자액 48조 원 중에서 약 25~30조 원을 메모리반도체에, 약 15~20조 원을 파운드리에 투자했다.

하지만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그룹 내 총수일가의 지배구조를 확고히 하는 것이 제1 목표인 재벌기업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실제 분사에 관한 얘기가 안팎으로 들려오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사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처럼 지배력 확보를 위해 비효율적인 사업구조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재벌체제의 가장 큰 결함이다. 그 결과 수익성이 무시된다. 실제 스마트폰의 경우, 삼성전자 매출액이 애플의 5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고 영업이익률도 3배나 차이 난다. 반도체 사업에서도, TSMC가 삼성전자보다 매출액도 크고 2023년 기준으로 영업이익률은 세 배나 높다. 2024년에는 이러한 격차가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겉으로 보기에는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경쟁기업과 1, 2위를 다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수익률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삼성을 정점으로 하는 수출 대기업이 한계에 봉착한 현 상황은 한국경제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나 재벌체제는 소수의 총수 일가가 초래한 위험을 주주와 노동자, 나아가 IMF 외환위기 때처럼 국가 경제의 시스템적 위험으로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제구조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6. 나가며: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사회운동이 경제정세를 전망하는 이유는 결국 객관적 현실이 어떠한지를 직시하기 위해서다. 위에서 살펴본 한국경제의 제약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껏 한국경제 구조가 걸어왔던 길이 누적된 결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인구구조가 변화하면 잠재성장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며, 정부부채가 증가하고 각종 복지제도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분노는 어떻게 귀결될까? 미국에서 고물가로 인한 대중의 공분은 트럼프주의에 불을 지폈다. 그 저변에는 세계화의 여파로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던 인민의 설움이 있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성장이 멈추고 생활 수준의 하락이 시작되면 대중의 분노가 어디선가 분출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문제의 원인을 누군가의 음모나 탓으로 돌리며 그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면 사태는 더욱 악화할 것이다.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객관적 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운동은 정치권의 인기영합적인 정책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경제의 객관적 제약 조건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리고 대중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분노를 더 나은 사회를 조직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 ●
 
 
주제어
경제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