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소송의 역사를 돌아보며
1. 들어가며
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과 나눈 대화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애커슨 회장이 80억 투자의 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자 박근혜 대통령이 ‘꼭 풀어나가겠다. 최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상대로 ‘딜’을 하는 모습 자체가 이목을 끈 측면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대체 통상임금이 뭐길래 80억 투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몰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법조계나 학계 정도에서 언급되던 통상임금 문제가 갑작스레 ‘사회적 이슈’가 된 순간이었다.

[그림] 2013년 한미 CEO 라운드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
당시 GM은 한국시장을 유지하는 2대 조건으로 엔저현상 해결과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내걸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13년 12월, 대법원은 모든 대법관이 모여 진행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란, 대법원 내 특정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소부(小部)라고 한다)에서 대법관 전원의 의견을 모아 판결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판결을 말한다) 당시 판결은 통상임금에 관한 종합적인 법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과 소송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대법원은 2024년에 다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며 기존의 판단을 번복하기에 이른다. 재계와 노동계가 대법원의 이런저런 판결에 울고 웃고 때로는 분노했음은 물론이다.
도대체 통상임금이 뭐길래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 대통령을 상대로 ‘딜’을 하려고 하고,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내려야 하며, 그마저도 10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기존 입장을 번복해야 했던 걸까. 이 글은 이와 같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하에서는 ▲ 통상임금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는지, ▲ 통상임금에 관한 법적인 쟁점은 무엇이 있었으며 관련한 법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고, ▲ 결론을 대신해 통상임금 소송의 역사를 보며 들었던 개인적인 소회를 덧붙여 보려고 한다. 주마간산 식이겠지만 통상임금 문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통상임금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는가?
1) 통상임금의 개념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에 등장하는 용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해고예고수당(제26조),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 수당(제56조), 연차 유급휴가 미사용 수당(제60조)의 산정 기준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야간 근로를 5시간 한 경우, 해당 근무시간에 대한 임금을 “야간 근로시간 × 통상임금(시급) × 1.5”로 계산해 받는다.
이와 같이 근로기준법은 통상임금의 기능은 정해 놓았지만 정작 통상임금의 정의, 즉 통상임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통상임금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있는 규정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관련 대통령령, 즉 근로기준법 시행령인데, 1982년 8월 13일 이래로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ㆍ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시간급금액ㆍ일급금액ㆍ주급금액ㆍ월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이라고 정하고 있다.
다만, 근로기준법에서 통상임금의 정의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고, 통상임금의 정의와 요건에 관해 하위 법령에 위임한 사실이 없음에도 시행령이 그 정의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행령의 정의 규정에 법규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설사 시행령의 정의를 따른다고 해도 그 정의가 추상적이다보니 시행령 규정만을 보아서는 실존하는 임금 항목 중에서 어디까지가 통상임금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통상임금의 의미와 요건은 판례를 통해 구체화 될 수밖에 없었다.
통상임금의 정의에 관한 대법원의 최초 판단은 1978년에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이란 (…) 실제 근무일수나 실제 수령한 임금에 구애됨이 없이 고정적이고 평균적인 일반임금 즉, 기본적인 임금과 이에 준하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의 1일 평균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 판시했다(대법원 1978. 10. 10. 선고 78다1372 판결). 다만 설시 내용에서도 드러나듯 아직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통상임금에 관한 기본공식은 1990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정립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이란 “근로의 양 및 질에 관계되는 근로의 대상으로서 실제 근무일수나 수령액에 구애됨이 없이 정기적·일률적으로 1임금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고정급임금”이라는 판단을 내놓았고(대법원 1990. 12. 26. 선고 다카12493 판결. 이하 ‘1990년 판결’이라고 한다), 해당 판결은 이후 한동안 대법원이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즉 통상임금의 의의를 정기적,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의 양(量) 및 질(質)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된 임금으로서, 실제 근무일수나 실제 수령한 임금에 구애됨이 없이 고정적이고 평균적으로 지급되는 일반임금으로서 지급 주기가 1임금상정기간(1개월)인 임금을 말하는 것으로 밝힌 것이다.
다만 이후 판례가 축적됨에 따라 통상임금의 의의와 요건은 계속해서 변화하는데, 구체적인 변화 과정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통상임금 법리 변천사’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2) 통상임금이 논란을 빚는 이유
통상임금을 둘러싼 다툼이 사회적으로 많이 주목받는 이유는 통상임금이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수당(이하 ‘연장근로수당 등’이라고 한다)의 산정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국가이다.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가 일상이었고, 따라서 임금에서 연장근로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요구를 하자 사용자들은 기본급은 낮게 유지한 채 이런저런 수당을 신설하여, 임금인상 요구에는 일정 부응하되 연장근로수당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통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통상임금의 범위가 넓어지면 이러한 구도가 유지될 수 없다. ‘각종 수당이 추가로 통상임금에 포함 → 통상임금(시급)의 증가 →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 가산수당 증가 → 임금 총액 및 퇴직금 증가’라는 흐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인정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총액 증가폭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던 임금이 많을수록, 그리고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시간이 길수록 커진다. (아래의 도식 참조) 한국과 같이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통상임금이 아닌 각종 수당을 신설해왔던 상황이라면 그 폭발력이 클 수밖에 없다.

3. 통상임금 법리 변천사
1) 과거 통상임금의 의의와 요건 그리고 임금이분설
앞서 언급하였듯 통상임금에 관한 기본공식을 정립한 것은 1990년 판결이다. 해당 판결에서 대법원은 통상임금이란 “근로의 양 및 질에 관계되는 근로의 대상으로서 실제 근무일수나 수령액에 구애됨이 없이 정기적·일률적으로 1임금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고정급임금”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낯선 표현이 있다. 바로 “1임금산정기간”이라는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임금을 ‘월급’으로 주기 때문에, 1임금산정기간은 1개월을 의미한다. 즉 매달 지급되는 임금이 아니라면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이와 같은 판단은 이른바 임금이분설에 기초한 것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근로계약이란 ▲ 근로자가 종업원으로서 지위를 설정하는 부분과 ▲ 근로자가 현실의 구체적인 노동을 행할 채무를 부담한다는 부분,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이중계약설). 그에 따라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 역시도 전자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생활보장적 임금과 후자에 대해 지급되는 교환적 임금으로 나뉜다고 보았다(임금이분설).
임금이분설에 따른다면 일반적으로 통상임금은 임금 중 교환적 임금으로 한정해야 하고, 생활보장적 임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앞선 판결에서 대법원이 1임금산정기간을 초과하여 지급되는 임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본 까닭도 해당 임금은 소정근로시간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기에 교환적 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임금이분설 폐기와 통상임금 법리의 변화
하지만 1990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이 유지해온 통상임금 법리에 큰 변화가 예고된다.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임금이분설을 폐기하고 임금일체설을 채택한 것이다(대법원 1995. 12. 21. 선고 94다26721 전원합의체 판결). 해당 사건은 삼척군 의료보험조합에서 시작되었다.
삼척군 의료보험조합 노동조합은 1989년 11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파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후 사용자가 파업 참가자들에게 정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자, 조합원들은 사용자를 상대로 정근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조합원들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일부승소하였는데, 당시 2심을 맡았던 춘천지방법원은 당시 대법원의 판례 법리였던 임금이분설에 입각해, 파업으로 인해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구체적으로 지급청구권을 갖지 못하는 임금의 범위는 임금 중 사실상 근로를 제공한 데 대하여 지급받는 교환적 부분에 국한될 뿐이고, 당시 문제가 되었던 정근수당은 근로자로서의 지위에 기하여 받는 생활보장적 부분에 해당하므로 사용자는 파업 참가자들에게 정근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춘천지방법원 1994. 4. 8. 선고 93나4131 판결).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년 6개월에 걸친 장고 끝에 대법원은 ▲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서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를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보수를 의미하므로, 현실의 근로 제공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근로자로서의 지위에 기해 발생한다는 이른바 생활보장적 임금이란 있을 수 없다며 임금일체설로 선회하였다. 그리고 ▲ 근로자의 근로 제공 의무 등의 주된 권리·의무가 정지되어 근로자가 근로 제공을 하지 아니한 쟁의행위 기간 동안에는 근로 제공 의무와 대가관계에 있는 근로자의 주된 권리로서의 임금청구권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여야 하고, 그 지급청구권이 발생하지 아니하는 임금의 범위가 임금 중 이른바 교환적 부분에 국한된다고 할 수 없다며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정근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보았다. 사용자 측의 숙원이었던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관철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해당 판결의 효과는 양면적이었다. 임금일체설로 인해 파업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에게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또 동시에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되는 단초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종래 생활보장적 부분이라고 판단되었던 금품도 이제는 임금일체설에 따라 모두 근로의 대가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임금의 모든 부분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해당 판결이 이루어질 당시 반대의견(임금이분설 유지)을 밝혔던 일부 대법관들은 “근로기준법 제19조가 일반적으로 평균임금이 통상임금보다는 다액이라는 전제 하에, 일정한 기간 동안의 모든 임금을 포함시켜 계산하는 평균임금과는 별도로, 현실로 제공하는 근로와 보다 밀접한 대응관계가 있는 통상임금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통상임금 제도의 존재를 임금이분설이 타당하다는 근거로 내세웠다. 이는 임금일체설의 채택이 통상임금 범위의 확대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짚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리하면,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가족수당, 주택수당 등과 같이 흔히 복리후생비라고 불리는 생활보장적 임금 그리고 상여금과 같이 1임금산정기간을 초과하여 지급되는 임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3)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가: 금아리무진 판결
1995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여파는 금세 나타났다. 이듬해인 1996년, 대법원은 “근로자에 대한 임금이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것이라도 그것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대법원 1996. 2. 9. 선고 94다19501 판결). 더 이상 ‘1임금산정기간’이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게 된 것이다.
다만 당시 대법원은 1개월을 초과하여 지급되는 임금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해당 사건에서 문제된 정기상여금은 실제의 근무성적에 따라 좌우되므로 고정적인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될 수 있다는 판단은 2012년이 되어서야 나타는데, 이른바 금아리무진 판결이 그것이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0다91046 판결).
금아리무진은 대구와 경주·포항·울산 등을 오고 가는 노선을 운영하는 시외버스 회사였다. 장거리 운행이 잦은 시외버스 운행 업무의 특성상 기사들의 연장근로시간은 적지 않았다. 때문에 회사는 연장근로수당을 줄일 목적으로 기본급을 매우 낮추고, 대신 낮은 기본급을 벌충하기 위해 분기별로 상여금을 지급했다. 즉 이들의 상여금은 (상여금에 대한 통상적인 사전적 정의인) ‘업적이나 공헌도에 따라 직원에게 주는 돈’이 아니었다. 상여금은 근무일수나 근무성적과는 관계없이 분기별로 꼬박꼬박 지급되었으며, 근속연수에 따라 늘어나기도 했다. (아래의 표 참조)

금아리무진의 노동자들은 회사가 제대로 계산해주지 않은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주휴수당 등을 받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다. 회사가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기본급 외에 근속수당과 상여금을 누락한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였다. 이에 1심 법원은 근속수당과 상여금이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보았으나 2심은 근속수당만이 통상임금이라고 보았다. 결국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약 1년 4개월의 고심 끝에 대법원이 결론을 내렸다. 금아리무진이 지급해온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 앞선 판례들에 따라 통상임금이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을 말하고, 실제의 근무성적에 따라 지급 여부 및 지급액이 달라지는 것과 같이 고정적인 임금이 아닌 것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뒤, ▲ 금아리무진이 지급해 온 정기상여금은 근로자의 실제 근무성적 등에 따라 지급 여부 및 지급액이 좌우되는 것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그 금액이 확정된 것이어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인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이 ‘모든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라고 선포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보았듯 금아리무진의 정기상여금은 사전적 의미의 상여금, 즉 업적이나 공헌도에 따라 직원에게 주는 돈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금아리무진 판결의 파장은 작지 않았다. 장시간 근로 체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본급을 낮추는 대신 이런저런 수당으로 모자란 임금을 벌충하는 관행이 금아리무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금아리무진 판결의 파장을 키운 또 하나의 원인이 있었으니, 바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산정지침」이었다. 대법원은 1995년 판결을 통해 1임금산정기간을 초과하여 지급되는 임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노동부는 2012년까지도 1임금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경우에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래의 박스 참조) 노동부와 법원의 견해 차이는 현장에 오해와 갈등을 불러왔다. 사용자들은 노동부의 지침을 믿고 임금체계 개편을 미루었고, 노동자들은 노동청을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며 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통상임금산정지침 [시행 2012. 9. 25.] [고용노동부예규 제47호, 2012. 9. 25., 일부개정]
제3조(산정기초임금) ① 통상임금의 산정기초가 되는 임금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소정근로시간(소정근로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법정근로시간, 이하 같다)에 대하여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기본급 임금과 정기적·일률적으로 1임금산정기간에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고정급 임금으로 한다.
하지만 이후 이어질 판결에 비하면 금아리무진 판결의 여파는 그나마 작은 것이었다. 이듬해, 통상임금 논쟁에 있어 매우 중요한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바로 갑을오토텍 판결이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94643 전원합의체 판결).
4) 통상임금 법리 논쟁의 일단락인가: 갑을오토텍 판결
(1) 사건의 개요와 쟁점
주식회사 갑을오토텍은 종전부터 단체협약을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하고 이에 따라 통상시급을 산출하여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 통상임금의 범위에 평소 근로자들이 회사로부터 받는 금품 중 설·추석 상여금, 하기휴가비, 김장보너스, 개인연금지원금, 단체보험료, 선물비, 생일자지원금, 회의식대, 부서단합대회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즉 노사가 합의로 상여금을 포함한 임금항목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었다.
따라서 갑을오토텍 사건에서의 논쟁은 두 축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통상임금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이 무엇인지, 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논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사가 본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임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였음에도, 근로자가 그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임금을 청구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였다.

(2) 통상임금의 개념요건: 소정근로의 대가·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우선 첫 번째 논쟁의 결론부터 살펴보자. 대법원은 각각의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며 통상임금의 의의를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인 소정근로(도급근로자의 경우에는 총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밝혔다. 갑을오토텍 판결은 통상임금의 요건을 ▲ 소정근로의 대가, ▲ 정기성, ▲ 일률성, ▲ 고정성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과거 대법원 판례를 통해서도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갑을오토텍 판결은 각각의 기준에 대해 이전의 판결들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며 관련 논쟁을 정리하고자 했다. 관련한 판시사항을 거칠게나마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정기성 요건과 관련해서는 1임금산정기간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이라도 일정 기간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포함됨을 재확인했다. 과거 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행정해석의 차이로 인해 1임금지급기간 이내에 지급되어야만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와 관련해 현장에 혼란이 남아있었는데, 이에 대해 1임금지급기를 초과하여 지급하는 임금이라도 통상임금에 포함할 수 있다는 기존 판결(대법원 1996. 2. 9. 선고94다19501 판결)의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이다.
둘째, 일률성 요건과 관련해서는 ▲ ‘모든 근로자’뿐만 아니라 ‘일정한 조건이나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도 일률적이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며 예를 들어 휴직자나 복직자, 징계대상자에게는 지급이 제한되어 있더라도 이는 해당 근로자의 개인적인 특수성이므로 일률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 일률성과 연관되는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은 작업내용이나 기술, 경력 등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와 관련된 조건이어야 하며, 부양가족이 있어야 지급되는 진정가족수당은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와 무관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와 달리 부양가족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부분인 부진정가족수당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통상임금에 물론 포함된다.
셋째, 고정성 요건과 관련해서는 ▲ 고정적인 임금이라 함은 ‘임금의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한 근로자가 그 다음 날 퇴직한다 하더라도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을 말하므로,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되어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임금은 고정성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 그러면서 여기서 말하는 조건은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 그 성취 여부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은 조건을 말하므로, 특정 경력을 구비하거나 일정 근속기간에 이를 것 등과 같이 위 시점에 그 성취 여부가 이미 확정되어 있는 기왕의 사실관계를 조건으로 부가하고 있는 경우에는 고정성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지급일 기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그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이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된다. 이러한 임금은 기왕에 근로를 제공했던 사람이라도 특정 시점에 재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급하지 아니하는 반면, 그 특정 시점에 재직하는 사람에게는 기왕의 근로 제공 내용을 묻지 아니하고 모두 이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와 같은 조건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면, 그 임금은 이른바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그 특정 시점이 도래하기 전에 퇴직하면 당해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여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그 지급조건이 성취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므로, 고정성도 결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통상임금을 지급하는 시점에 달성 여부를 확인하기 불분명한 조건, 예를 들면 ‘해당 임금을 지급하는 시기까지 재직하고 있을 것’이나 ‘1개월 중 근무일 수가 얼마 이상일 것’과 같은 조건이 붙어있다면 고정성을 결여하여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상여금을 비롯한 다양한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상세히 판단하였는데, 항목별로 그 판단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아래의 표와 같다.

(3) 통상임금 쟁송과 신의칙
두 번째 쟁점, 즉 노사가 본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임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였음에도 근로자가 그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 임금을 청구하는 것이 허용되는지에 대해,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에 국한해 사용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 대법원은 법률상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 해당 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무효지만, 근로자가 그 합의된 조건이 무효임을 주장하며 추가임금을 청구하는 것이 기업에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주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우리 법에는 강행규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강행규정이란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법을 말한다. 강행규정은 강제적으로 적용되므로 당사자가 자신의 의사로 강행규정을 위반하는 법률행위를 한 경우, 그 법률행위는 당연히 무효가 된다. 예를 들자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한다는 근로계약서에 근로자가 서명하더라도 사후적으로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최저임금법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신의성실의 원칙, 줄여서 신의칙이다. 신의칙이란 민법 제2조 제1항(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에 근거한 원칙으로,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인 일반규범이다.
과거부터 법원은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는 무효임이 원칙이지만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고,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보았고, 실제로 이러한 법리에 따라 노동쟁송 사건에서도 근로자 측의 강행법규 위반 무효 주장을 배척한 바 있었다. 즉 강행법규에 위반한 법률행위가 무효인 것은 맞지만 뒤늦게 과거의 법률행위가 무효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반하여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러한 사례는 어디까지나 예외에 불과했는데,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상여금 문제에 관해 신의칙을 꺼내 든 것이다. 당시 대법원의 논리를 다소 거칠게나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금의 인상은 기업이 생산·판매 활동 등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익에 기초하여 노동비용 부담능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노사간에 양해된 사항이다.
둘째,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인상 시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임금 인상 폭을 정하되, 그 임금 총액 속에 기본급과 정기상여금, 각종 수당,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되는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등의 법정수당까지도 그 규모를 예측하여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기본급, 정기상여금, 각종 수당 등과 통상임금에 기초하여 산정되는 각종 법정수당은 노사 간에 합의된 임금 총액의 범위 안에서 그 취지에 맞도록 각 임금 항목에 금액이 할당되고, 각각의 지급형태 및 지급시기 등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상호 견련관계가 있다.
셋째,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임금협상 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는 실무가 장기간 계속되어 왔고, 이러한 노사합의는 일반화되어 이미 관행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 상여금의 연원이 은혜적·포상적인 이윤배분이나 성과급에서 비롯된 점, ▲ 상여금이 성과급, 공로보상 또는 계속근로 장려 차원에서 지급되는 경우도 있고 그 지급형태나 지급조건 등이 다양하여 그 성질이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도 있는 점, ▲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이 1988년 1월 14일 제정된 이래 일관되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여 온 점, ▲ 금아리무진 판결 이전에는 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만 있었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없었던 점 등으로 인해 노사 양측 모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것이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넷째, 노사 양측이 임금협상 당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면, 결과적으로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되는 각종 법정수당을 포함한 임금 총액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도록 조치를 하여 기업의 부담능력 범위 내에서 노사합의를 이루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다섯째, 그럼에도 이러한 사정들은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사용자에게 정기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을 토대로 한 추가적인 법정수당 지급의무를 부과한다면, 사용자 측은 노사합의를 신뢰하여 이를 기초로 수지 균형을 맞추며 기업을 경영하여 오다가 예측하지 못하였던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근로자의 근로환경이나 근로조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재정적 파탄으로 인해 일자리의 터전을 상실할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따라서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앞서 본 임금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근로자 측에까지 피해가 미치게 되어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신의칙에 따른 추가 청구 제한을 정기상여금에 국한했다. 즉, 정기상여금을 제외한 다른 수당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 이를 반영해 통상임금을 재산정한 후 추가로 임금을 청구하더라도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정기상여금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본 것이다.
(4) 소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의 정의와 요건을 보다 분명히 하며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해당 판결로 통상임금에 관한 논쟁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노동계는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상당한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인데, 고정성 요건과 신의칙 적용 문제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 고정성과 관련하여 재직자 요건에 관한 비판과 ▲ 신의칙 적용에 대한 비판을 주로 살펴본다.
5) 갑을오토텍 판결의 후폭풍: 고정성 요건 및 신의칙에 대한 비판
(1) 고정성 요건에 대한 비판
갑을오토텍 판결과 관련해 가장 크게 제기되었던 비판 중 하나는 고정성, 그중에서도 재직자 요건 또는 최소재직일 요건 등에 관한 것이다. 학계에서 제기한 비판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직자 조건을 붙인 임금을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보게 되면,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는 현행 복리후생비의 일반적 지급 관행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복리후생비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이는 임금이분설을 취하던 시절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래의 불확실을 ‘지급조건으로 추가’하는 것을 노사 자유에 맡기고 그 조건 유무에 따라 통상임금성의 판단을 좌우하게 하는 것은 통상임금 규율을 회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통상임금 법리가 근본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
셋째, 재직자 조건에서 말하는 ‘퇴직’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일률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 휴직, 복직, 징계와 다르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재직 근로자에게 모두 지급한다는 것은 임금의 지급 요건 중 가장 고정적이고 확정적이라고 볼 수 있어, 재직자 조건은 전원합의체 판결 자체 법리와 모순된다.
넷째, 임금이분설이 폐기된 마당에 재직자 조건이 붙은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하는 것이 어려움에도 대법원은 무리하게 고정성 징표를 끌어들여 궁여지책으로 통상임금성을 부정하였다.
다섯째, 당사자가 임의로 추가적인 임금 지급 기준을 정하더라도 그것은 당사자의 의사에 불과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다시 법원의 통제가 필요하고, 법원은 근로자가 지급받는 금품이 임금이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객관적 성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재직자 기준은 근로의 성과에 관련된 기준이 아니고, 재직자 기준이 있어도 지급액은 고정되어 있고 지급기준도 오로지 재직이라는 단순(우연)한 사실로 설정되어 있어 변동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여섯째, 재직자나 일정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임금이라도 소정근로를 다 제공하면 받을 수 있도록 예정된 임금이므로 통상임금으로 보아야 한다.
(2) 신의칙 적용에 대한 비판
신의칙 적용과 관련해서도 비판 의견이 상당히 거세게 제기되었다. 일단 대법원 내에서 반대의견을 냈던 3인의 대법관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 그리고 거듭 살펴보아도 그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의 소수의견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의칙을 적용하여 실정법상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개별적인 사안의 특수성 때문에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당한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에 최후 수단으로, 그것도 법의 정신이나 입법자의 결단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고려해 볼 수 있는 방안에 불과하다. 신의칙은 강행규정에 앞설 수 없다. 신의칙의 적용을 통하여 임금청구권과 같은 법률상 강행규정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를 제약하려 시도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나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 정면으로 반한다. 근로기준법이 강행규정으로 근로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근로자나 사용자가 그 강행규정에 저촉되는 내용의 노사합의를 한 경우에, 신의칙을 내세워 사용자의 그릇된 신뢰를 권리자인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찾기에 우선할 수는 없다.
둘째, 근로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를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없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의 관행이 있다고 볼 근거가 없음은 물론이고, 만에 하나 그런 관행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근로자에 의하여 유발되었거나 그 주된 원인이 근로자에게 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근로자가 이를 무효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용자가 신뢰하였다는 전제 자체가 증명된 바 없지만, 그 ‘신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셋째, 근로자가 받았어야 할 임금을 예상외의 이익으로 취급하여 이를 되찾는 것을 정의와 형평관념에 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의관념에 반한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용자는 상여금도 그 성격에 따라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음을 알았다고 보이고, 사용자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선의(善意)라고 볼 수는 없다.
해당 쟁점에 관한 학계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 전원합의체 판결의 반대의견에 찬동하며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을 적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견해 ▲ 신의칙 적용 자체는 허용하더라도 그 적용을 엄격하게 제한하여야 한다는 견해 ▲ 신의칙의 적용폭을 상당 정도 허용하고자 하는 견해다. 다만 전반적으로는 신의칙 적용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관련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법률의 부지나 법인식상 착오가 있다고 하여 강행규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상 밖의 이익’을 논하는데, 이런 상황은 노사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근거로 삼아 법원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권리행사자가 제어할 수 없는 외생 변수로 자신의 신의성실성이 판가름난다면, 이는 심각한 법적 안정성 훼손이다.
둘째, 신의칙이라는 예외적 법리를 일반적 원리로 바꾸는 마술을 통해 변호사와 하급심 법관에게 가산임금 소송을 해결할 책임을 떠넘겼다.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장시간 근로 문제를 임금 문제로 치환시켜, 장시간 근로에 관한 노사의 담합구조를 사법적으로 묵인했다.
셋째, 근로관계에 관한 분쟁에 신의칙을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법원의 분쟁 해결을 지연시킬 뿐 아니라 노사 당사자들이 분쟁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넷째, 판례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음을 1990년대 이래 일관하여 판시하였음에도, 정부가 이를 무시한 채 행정지침을 개정하지 않음으로써 초래된 노사관계의 혼란은 일부라도 근로자에게 책임이 전가되서는 안 된다.
다섯째, 신의칙을 내세워 사용자가 의무이행을 거부할 수 있게 하였고, 기업 스스로 초래한 비정상적 통상임금의 관행을 용인하여 기업의 재정을 우선시하였다.
(3) 갑을오토텍 판결 이후의 논쟁과 법원 판결 추이
우선 신의칙 항변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존에 많이 제기된 비판 및 우려처럼 신의칙 항변은 오히려 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서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인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1심과 2심 단계에서는 판결이 많이 엇갈렸다. 각자의 사업장이 신의칙 항변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우인지 아닌지 불명확하다 보니 노동조합과 사용자 모두 법원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 되었다.
다만 대법원이 2019년 신영운수 판결과 2021년 현대중공업 판결을 통해 ▲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추가하며 신의칙 항변 인정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에 대한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자, 신의칙 항변 인정 여부를 둘러싼 혼란은 조금이나마 정리될 수 있었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5다217287 판결, 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16다7975 판결 참조).

(사진출처: 《동아일보》)
반면 고정성 요건에 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는 상여금에 재직에 관한 요건을 설정하여 통상임금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예를 들어, 사실상 기본급과 유사한 실질을 가지는 정기상여금에 상여금을 지급하는 시점이 되기 전에 퇴직하면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재직자 요건을 부가했다. 또한, 사실상 의미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의 최소재직일 요건, 예컨대 1월 중 n일 이상 근무해야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요건을 부가하여 정기상여금 전체를 통상임금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고정성 요건, 그중에서도 재직자 요건을 중심으로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일부 하급심 판결은 ‘재직자 요건’이나 ‘최소재직일 요건’이 부가된 임금 항목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러한 학계와 하급심의 흐름을 보며 대법원은 다시 고심에 빠졌다. 그리고 2024년, 새로운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기에 이른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뒤로 11년이 지난 뒤였다.
6) 대법원의 자기 정정: 고정성 요건의 폐기와 소급효 제한
2024년 12월, 대법원은 다시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개념요건을 재정립한다(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0다247190 판결, 2023다302838 판결, 이하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고 한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첫째, 고정성 요건의 폐기와 둘째, 소급효 제한이었다.
2024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한화생명보험 및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나왔다. 사건 개요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한화생명보험은 월 기준 급여의 850%를 상여금으로 지급하면서, 정기상여금(짝수 월), 설과 추석상여금, 하계상여금으로 나눠 연간 총 9회에 걸쳐 분할 지급했다. 그런데 상여금은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 지급되었고 지급일 이전에 퇴직한 직원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다. ▲ 현대자동차는 통상임금의 750%를 격월(각 100%), 설과 추석, 하기휴가(각 50%)에 분할해서 지급했는데, 해당 상여금은 지급일이 포함된 달에 15일 미만 근무한 자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다.
(1) 고정성 요건 폐기
우선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과 개념적 징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고정성과 통상임금 판단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었고, 학계와 실무에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정의한 고정성 개념을 비판하거나 이를 우회하여 통상임금성을 다른 각도에서 판단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의식과 축적된 논의를 바탕으로 통상임금을 근본적으로 고찰하여 ‘재직조건부 임금’의 통상임금성 문제를 넘어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 등 고정성이 문제되는 다른 임금 유형까지 정합성 있게 규율할 수 있는 통상임금 개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기준임금으로서 요청되는 통상임금의 본질과 기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통상임금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재정립 방향으로는 다음을 제시했다. 첫째, 통상임금은 법적 개념이므로 원칙적으로 법령상 정의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법령 부합성). 둘째 통상임금은 강행적 개념이므로 당사자가 법령상 통상임금의 범위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어야 한다(강행성). 셋째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개념이라야 한다(소정근로 가치 반영성). 넷째 통상임금은 사전에 명확하게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사전적 산정 가능성). 다섯째 통상임금 개념은 연장근로 등의 억제라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여야 한다(정책 부합성).
그리고 대법원은 ▲ 고정성 개념은 법령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정성이라는 징표를 더하는 것은 정당한 통상임금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으로써 부당하다는 점, ▲ 통상임금은 당사자가 그 의미나 범위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는 강행적 개념임에도 기존 법리에 따르면 당사자가 재직조건을 비롯한 각종 조건을 부가하여 통상임금의 범위를 쉽게 좌우할 수 있게 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 ▲ 무리하게 부가된 ‘재직자 요건’, ‘최소재직일 요건’에 따라 정기상여금 등 일부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면, ‘소정근로의 가치’라는 통상임금의 원래 정의에서 동떨어지게 된다는 점, ▲ 근로자의 재직 여부나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에서 근무일수의 충족 여부는 장래에 속한 일이므로 사전에 확정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러한 사정을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게되면 통상임금의 사전적 산정 가능성을 약화시키게 된다는 점, ▲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법령상 근거 없이 축소시켜 통상임금이 소정근로의 가치를 합당하게 평가한 단위 임금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며, 이로써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근거로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이 기존의 통상임금 판단지표인 고정성 개념을 폐기하고,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제시함으로써 통상임금의 범위와 개념요건은 훨씬 더 명확해졌다. 더 이상 재직자 요건이나 별 의미 없는 수준의 근무일수 조건을 덧붙여 본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이 아니게끔 만드는 꼼수는 허용될 수 없게 되었다.
(2) 소급효 제한
일반적으로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한 경우, 새롭게 제시된 판례 법리는 시점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고, 소멸시효가 문제되지 않는 한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법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면서 “이 사건은 변경되는 판례에 대한 신뢰보호의 필요성이 새로운 판례의 소급적 관철 필요성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법리(통상임금 고정성 요건 폐기, ‘재직자 요건’ 및 ‘최소재직일 요건’이 통상임금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음)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되고,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대법원이 새로운 법리의 효력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다고 본 것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가 노동현장에서 장기간에 걸쳐 사실상 통상임금에 관한 강행적 법질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져 왔고, 정부의 행정지도를 통하여 노사 간 협상과 합의의 토대를 이루었으며, 연장근로 등에 관한 법정수당, 평균임금의 산정, 임금 총액의 결정 등 수많은 파생적 법률관계의 기초가 된 상황에서 통상임금의 범위를 소급하여 확대하게 되면 이와 관련한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리하자면, 대법원은 ▲ ‘재직자 요건’이나 ‘최소재직일 요건’이 부가되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지급된 과거의 임금 지급분에 대해서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이유로 새롭게 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렵고, ▲ 예외적으로 이번 판결 선고 시점에 이미 ‘재직자 요건’이나 ‘최소재직일 요건’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들(판결문에서는 “병행사건”이라고 정의함)에 대해서만 새로운 법리의 소급효를 인정하며, ▲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이후의 임금 산정에 대해서는 새로운 법리를 적용하라고 밝힌 것이다.
(3) 소결: 통상임금 소송의 종결?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여 통상임금의 의의와 개념요건을 정비하였고, 그 과정에서 학계와 하급심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고정성 요건을 폐기함으로써 통상임금의 범위를 다시금 분명하게 설정했다. 결과적으로 통상임금의 산입 범위가 다시 넓어진 셈이다. ▲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고정성에 관한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관련 규정에 충실한 해석인 점, ▲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기준이 최대한 간명하면서도 명확해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 ▲ 기간 고정성 요건을 악용하여 별 의미도 없는 재직자 요건 혹은 최소재직일 요건을 설정하여 통상임금 관련 부담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 그럼으로써 연장근로 등의 억제라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더 충실해졌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법리는 상당히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판결의 소급효를 제한하는 부분은 다소 낯설고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법리적으로만 보았을 때는, 입법부도 아닌 사법부가 이렇게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거 신의칙 항변이 받아들여졌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입법이나 사회적 타협을 통한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나름의 결단을 한 것이라고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비록 10년 전의 판결이긴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어야 했으니 말이다. 소급효 제한 판단 부분이 앞으로 법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는 것일까? 또 다른 불씨를 남겨둔 측면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전망을 내놓는 것은 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만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대법관 만장일치로 내려졌다는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의 타당성이나 통상임금을 둘러싼 지속적인 갈등이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대법관들의 성향을 떠나서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제시된 법리가 향후 변경될 소지는 상당히 낮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4. 결론을 대신해: 통상임금 법리 변천사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짧지 않은 통상임금 법리 변천사를 주마간산 식으로 살펴봤다. 이를 돌아보며 느낀 개인적 소회를 간단하게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첫째로 짚고자 하는 부분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운동의 역할이다. 보통 굵직한 노동사건은 노동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불법파견 소송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KTX 비정규직 투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각종 정리해고 판결은 IMF 사태 이후 벌어진 각종 구조조정과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투쟁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반면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운동”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통상임금 소송의 귀추나 소송 결과가 기업의 인건비에 미치는 영향은 언론에서 꾸준히 다루어졌지만, 통상임금 문제에 관하여 노동운동에서 어떤 요구를 했으며,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크게 알려진 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 법률가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소송이라는 절차의 특성 ▲ 통상임금 논쟁 자체가 전문적이고 법리적인 영역이라는 점 ▲ 애당초 통상임금 문제가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노사 공동의 ‘오해’에서 기인하였던 점 ▲ 통상임금 소송은 결국 임금체계 개편 방안과 맞물리는 데,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운동이건 사용자 측이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운동적으로’ 접근해 보려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장시간 노동 축소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또한 통상임금 소송이 본연의 취지와는 별개로, 상여금 등 기타 임금 항목이 상대적으로 많은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벌리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은 노동운동 내에서도 있었고, 이에 대응하여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는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통상임금 재원을 토대로 노사공동 일자리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을 했었고, 부산지하철노조에서는 통상임금 소송을 통해 확보한 돈을 청년 신규 채용에 활용하자는 계획을 세워 실제 이행으로까지 나아간 적도 있었다.

[그림] 연대임금 조성을 제안하는 금속노조(왼쪽)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부산지하철노조(오른쪽)
하지만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입장 표명 정도에 그쳤을 뿐, 실제 개편을 위한 구체적인 시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연대기금 제안 역시 나름의 울림은 있었으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제안을 넘어서 더 많은 사업장으로 확대되거나, 더 오랜 기간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통상임금 소송은 대체로 개별 사업장 단위별로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는 다소 아쉬운 면이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가 일단락된 상황인만큼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노동운동의 입장은 무엇이었고, 노동운동이 통상임금 쟁점에 대해 대처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실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난점에 부닥쳤는지를 돌아보며 차분히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로 짚고자 하는 부분은 ‘사법부의 결단’이다. 사법부는 통상임금 문제로 인해 최소 2회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열어야 했고, 각 판결에서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단순히 통상임금의 개념요건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선 법리, 예를 들어 신의칙 항변 인정, 소급효 제한을 제시하였다. 신의칙 항변 수용의 경우 과연 이러한 견해가 타당한 것인지, 오히려 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많은 비판이 있었고, 소급효 제한 법리의 경우 사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입장을 떠나서, 이처럼 사법부가 낯선 법리를 제시하는 식으로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장시간 노동을 적극 활용해 온 한국의 자본과 정부, 기업 부담을 핑계로 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행정해석을 고집함으로써 문제를 키워 온 노동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시간 노동 체계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단체협약을 맺어 온 노동조합, 학계와 실무계를 만족시킬 만한 법리를 제때 제시하지 못했던 사법부, 통상임금 문제는 결국 입법을 통해 해결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리하지 못한 입법부 등, 임금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사법부의 ‘결단’이 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문제는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일단락되더라도, 앞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통상임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정치적 양극화까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앞으로 발생할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개선하려면 노동운동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그러한 노동운동을 지향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