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양극화에서 정치내전으로 가는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12월 4일 비상계엄 해제,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후 석 달의 시간이 지났다. 탄핵소추안 의결 후 사회진보연대는 12월 19일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사법의 시간, 그럼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질문으로 던지고자 했다.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가 진행할 것이고, 내란죄 수사와 기소, 판결도 사법기관이 맡을 것이니 ‘정치’는 이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물으며, ‘개헌’이라는 과제를 제시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1월 22일, 우리는 역시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왜 정치의 시간은 오지 않는가’라고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해 12월, 우리의 화두가 ‘어떻게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나,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였다면, 이제는 그 화두가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어째서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더욱 극심해지는가’로 전환된 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호 특집 제목을 ‘계엄·탄핵 정세와 극단주의 정치의 부상’으로 잡았다. 탄핵소추 이후 오히려 점점 더 격렬해진 탄핵 반대 집회와 찬성 집회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러한 극단적 정치양극화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유별난 특징이 아니고 어떤 구조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되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정성진의 「격화하는 광장의 충돌, 극단주의의 부상: 탄핵 찬성·반대 집회 분석」은 12.3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 극단주의의 확산과 내전 발발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를 막기 위한 사회운동의 방향을 제시한다. 필자는 지난 한 달간 탄핵 찬성/반대 집회를 참여관찰하면서 현장에서 분노와 증오의 언어가 가득한 현실을 확인했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현재의 대결 상황이 마무리되기는커녕,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탄핵 반대 집회는 반공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함으로써, 과거 독재정권을 긍정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한다. 탄핵 찬성 집회는 항일·민주화 투쟁 서사를 바탕으로 탄핵심판과 상관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수괴’로 확정하고, ‘내란세력·극우세력’이 완전히 제거된 ‘자주국가 민주정부’를 요구한다. 양측 집회는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역사전쟁’의 구도를 공유하며, 우리가 생존하려면 상대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법 위에 ‘국민’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실력 행사로 판결을 압박하고 있다. 필자는 우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판결에 양측이 승복해야 하며,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도록 감정을 진정시켜 대화가 가능한 상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역사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투쟁’ 중심의 역사관을 깨고 경제학과 헌정주의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설명하는 제3의 역사관을 정립해야 하며, 헌정주의 관점에서 극단주의와 내전을 부추기며 내부 비판을 억압하는 양극화된 ‘파벌’과 이를 이용하는 ‘사업가’를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12.3 계엄 사태조차 사소한 사건으로 여겨질 만큼 더 심각한 폭력을 수반한 내전이 일상화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며,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임지섭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패하는가: ‘헌정주의 없는 헌법’의 관점에서 본 대만과 한국 헌정사 비교」는 ‘헌정주의 없는 헌법’이라는 관점에서 대만과 한국의 헌정사를 비교한다. 한국과 대만은 20세기 후반 민주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점차 민주정의 위기가 심화하는 사례로도 평가된다. 필자는 이러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실패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많은 부분 중첩되면서도 분명히 구별되는 ‘헌정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가 ‘인민주권을 바탕으로 인민의 자기통치와 자기결정에 따라 정치를 행하는’ 것에 주목하는 사상이자 제도라면, 헌정주의는 ‘헌법과 그에 따른 실제 정치과정이 주권자의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제어하고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주목하는 사상이자 제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만과 한국은 정치적 자유와 직접선거의 확대를 중심으로 민주화에 성공하며 헌법을 개정했지만, 헌정주의에 대한 정치엘리트와 시민사회의 확고한 이해와 실천은 미약했다는 문제가 있다. 필자는 양국의 통치구조, 즉 대만의 총통제와 한국의 대통령중심제에서 이러한 ‘헌정주의 없는 헌법’이라는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양국의 대통령중심제라는 통치구조의 결함이 정치양극화를 극단화하고 헌정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의 지배를 침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201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한편에서는 권위독재정이 발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민주권을 절대화하는 좌우 양극단의 인민주의적 대중운동이 발호하는 최근 정세에서, 헌정주의가 결여된 민주정이 갖는 위험성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 민주주의와 헌정의 위기가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오늘날, 사회운동이야말로 정치양극화의 한 축을 자임하거나 체제의 반대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헌정의 의미를 숙고하며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토대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집의 마지막으로, 임필수의 「2024년 계엄·탄핵 정세 평가: 계엄·탄핵을 거치며 어째서 정치양극화는 더욱 격화되는가」를 싣는다. 필자는 지난 겨울호에 실린 「사법의 시간, 그렇다면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17~18년 왜 개헌에 실패했는가 되돌아보아야 한다」에서 어떻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나, 이런 사태가 재연되는 일을 막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2024년 한국정치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계엄·탄핵 정세를 되짚어본다. 비상계엄 이전까지 상황을 보면, 이미 ‘정치내전’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야대결이 극단화되고, 이는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 즉 헌법기관 간 충돌이란 양상을 띠었다. 야당은 대선결과를 정치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은 총선을 두고 부정선거라 의심하는 ‘선거불복의 정치문화’가 한국정치를 지배했다. 이는 저강도이지만 만성적인 헌정위기라 칭할 수 있을 상황을 낳았다. 따라서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은 만성적 헌정위기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과정이어야 했다. 그러나 탄핵심판을 앞둔 지금, 우리는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의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해서 사태가 이렇게 흘러왔나. 여당은 자신의 사활에 당의 명운을 던지라는 윤 대통령 요구에 빨려 들어갔고, 이 고리를 끊으려는 비주류를 지도부에서 몰아냈다. 야당은 상대방을 ‘내란공모세력’으로 규정하며 깨끗이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결국 계엄사태 이전부터 지속된 극한의 정치적 대결이 계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정치양극화와 정치내전은 ‘진보정치’든, ‘중도결집’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간에, 어떤 제3의 정치세력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달리 말하면 사실 ‘단극’을 지향하는 정치라는 점에서, 어떤 탈출구가 나타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경향을 산출한다. 필자는 한국사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와 내란죄 기소 이후 도리어 거대한 위험에 놓여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정세초점으로는 트럼프 취임 이후 세계정세를 다루는 김진영의 「트럼프 취임 한 달, 세계에 미친 영향: 트럼프의 미국, 미국이 설계한 전후 국제질서를 무너뜨릴 것인가」를 싣는다. 필자는 신임 트럼프 행정부가 전후 미국 헤게모니의 핵심인 자유무역과 ‘규칙 기반의 세계질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스스로 공격하는 현황을 소개한다. 그로 인해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수정주의로 위기에 빠진 전후 국제질서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고 평가한다. 먼저,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각국의 반발과 상응 조치를 촉발하고 있다. ‘관세 폭탄’ 선언이 일으킨 불확실성과 불신만으로도 세계 자유무역 질서가 크게 교란된다. 이는 경제지표가 보여주듯 미국 경제에도 부담이 되며, 오히려 중국에 이득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이나 우크라이나와 같은 약소국 민중의 권리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을 통해 국제사회가 합의해온 규범과 기존 해법을 무시했다. 그런데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최근에는 트럼프주의의 영향력이 대중문화와 청년층 안에서 확대되고, 주요 노동조합 중 일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가까워지는 모습이 관측된다. 이는 전후 미국 사회의 초당적 합의였던 자유주의가 약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 J. D. 밴스 부통령과 같은 젊은 트럼프주의자들은 트럼프주의를 급진화하여 미국의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 즉 가족과 종교, 전통이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개인과 자본의 자유에 우선하는 사회를 이룰 것까지 주장하고 있다.
쟁점분석으로는 김훈녕의 「통상임금 소송의 역사를 돌아보며」를 담았다. 2024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에 관한 판결을 내리며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 필자는 통상임금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본 후, 통상임금을 둘러싼 판결의 추이와 판결에 담긴 법리의 변화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최근 판결에 담긴 중대한 변화가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오랫동안 이어진 상황을 되돌아보며, 한국 사회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오랜 시간 장시간 노동을 적극 활용해 온 한국의 자본과 정부, 기업 부담을 핑계로 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행정해석을 고집함으로써 문제를 키워 온 노동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시간 노동 체계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단체협약을 맺어 온 노동조합, 통상임금 문제는 결국 입법을 통해 해결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리하지 못한 입법부, 학계와 실무계를 만족시킬 만한 법리를 제때 제시하지 못했던 사법부 등등. 필자는 노동조합도 대체로 사업장별로 통상임금 소송을 이어갔다며, 장시간노동을 억제하고, 소송의 결과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따져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책소개’로 싣는 김영진의 「혁명의 ‘문명화’를 위하여: 18세기 영국 계몽주의의 이야기」는 로이 포터의 『근대세계의 창조: 영국 계몽주의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계몽주의의 서사와 구별되는 영국 계몽주의 고유의 역사를 설명한다. 포터에 따르면, 영국 계몽주의는 내전 재발을 막으려는 지식인들 사이의 합의와 상업사회의 발달을 배경으로 한다. 상업사회는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에 의해 이론화되었다. 그들은 이론적 역사를 바탕으로 상업사회가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18세기 후반 영국 계몽주의는 상업발달에 소외된 자들과 프랑스혁명의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포터는 그러한 도전이 곧 계몽주의가 자유주의로 변화하는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포터는 이런 영국 계몽주의의 특징을 세속적으로 개혁질서를 구체화한 점과 개인주의에 근거한 자기 완결성을 실현한 것으로 정리한다. 필자는 영국 계몽주의의 특징이 오늘날 현대사회의 기초인 ‘현대성’임을 지적한다. 동시에 이런 ‘현대성’이 오늘날의 내전적 정치문화 속에서 위협받고 있음을 우려하며, 영국 계몽주의의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원칼럼’으로는 홍현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고은영의 「의정 갈등 1년을 돌아보며」를 담았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글을 보내준 두 회원께 감사드린다.
이번 호 편집을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윤 대통령 탄핵소추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일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번 호가 향후 전개될 극히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처하기 위한 기본적 관점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2025년 3월 17일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