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982년 당신은 그 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가? 야간통행 금지가 해제되고, 중고생의 두발 및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지고, 장영자 사건이 일어난 해가 바로 1982년이란다. 하지만 내게 그 해는 또렷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만 기억된다. 프로야구가 개막한 해로 말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단지 동생과는 다른 팀을 응원하고 싶어서, 그리고 박철순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OB 베어스(지금은 두산 베어슨가?)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내내 MBC 청룡(지금의 LG 트윈스) 어린이 팬클럽이 되어 파란 잠바를 입고 다니던 바로 밑의 남동생과 서로 자신의 팀이 더 잘났다며 싸웠고, OB 베어스가 원년 우승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해 내내 꼴찌를 지킨 ‘삼미 슈퍼스타즈’를 가엾게 여겼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저렇게 맨날 지기만 하는 팀을 응원하는 아이들도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고, 1위가 될 팀을 응원했던 나의 선견지명(?)에 스스로 감탄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나는 이 책을 샀다. 이건 사실 요즘의 내게는 일탈적인 행동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나는 이른바 옛날 작가들이 간만에 내놓는 새로운 소설 외에는 소설책을 사본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소설들의 구태의연함과 재미없음에 질려 3회인가 이후론 다시는 <한겨레문학상> 소설은 사지 않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던 차였다(여기서 최근 우리 순수문학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출판계에서는 순수소설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인데, 내 생각에 이건 자업자득의 측면이 많다. 한때 자칭 타칭 소설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남들 다 욕하는 운동권 후일담 소설부터 2,30대 룸펜들의 권태로운 생활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소위 90년대 소설까지 ‘소설에 대한 애정’ 하나로 열심히 사보았던 나였지만, 이런 나마저도 21세기 들어서는 소설에서 나가 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최근의 소설은 문제의식은커녕 재미도 없고, 신선함도 없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 책을 보자마자 내가 산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라, 그래, 그런 팀이 있었지. 만년 꼴찌팀이었던 삼미…….
단언컨대 누구나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느낄 것이다. 이 책이 진짜 재미있다는 걸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순수문학’(‘순수‘가 뭔진 모르겠지만)의 지지자들은 박민규의 ‘평범하지 않은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재기발랄한 문체에 금방 매료되었다. 게다가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어 하는 말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인천에 산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인천을 연고지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가 탄생한다. 나는 열심히 응원하지만, 삼미는 번번이 패배한다. 같이 응원하던 녀석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어떤 녀석은 원래 고향이 대전이었다며 OB 팬이 되고, 또 다른 녀석은 자기 집은 인천보다는 서울에 가깝다며 MBC 팬이 된다. 나와 조성훈은 끝까지 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삼미는 갖가지 기록(프로야구 최저 승률, 프로야구 최다 연속 패배, 프로야구 최다 삼진 등등)을 쌓아올리다 고별전을 치르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삼미의 트라우마로 소속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어 공부에 전념,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하고 학벌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취직한다. 그렇게 ‘소속’이 ‘삶’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느끼며 바쁘게,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이혼을 당하고 설상가상 IMF로 실직까지 당한다. 그런 ‘나’의 앞에 사라졌던 옛 동지 조성훈이 나타난다.
요즘 잘 팔리는 책들은 단연 처세에 관한 것들이다. ‘10억 만들기’부터 ‘아침형 인간’까지. 이 책들이 말하는 건 한결 같다. 악착같이 일하고 모아라.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책들과 더불어 인기인 건 건강서들이다. 요가나, 스트레칭, 잘 먹고 잘사는 법 등. 이른바 웰빙의 시대라나. 이런 책들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초 단위로 쪼개서 자기개발을 하고, 건강을 돌보고,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10억을 모으면 무얼 할 건가? 왜 우리는 이렇게 늘 바쁘게 움직여도 늘 시간이 부족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문제제기도 바로 이것이다. 너,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데?
이건 단지 직장에 다니며 자기 집 하나 갖고,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는 소시민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뭔가 다른 삶의 비전을 가진 이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지나치게 바쁘지 않냐고,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지 않냐고, 당신에게 시간과 돈은 늘 부족하지 않냐고, 당신이 무얼하든 꼴찌는 되기 싫지 않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삶은 즐겁냐고.
물론 나도 이 질문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집을 가질 생각도 없고, 따라서 10억을 모을 꿈 같은 건 애시당초 꿔보지도 않았고, 웰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그럼에도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할 정도로 늘 바쁘고, 적어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1등이 되길 바라며, 솔직히 지금보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게 남들보다 시간이 좀더 생기고, 돈이 좀더 생겨도 그때의 나는 또 생각할 것이다. 내겐 ‘조금’의 시간과 돈이 더 필요하다고. 지금의 내게 정말 필요한 건 ‘조금’의 시간과 돈이 아니라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치기 힘든 공을 악착같이 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냥 치지 않고 보낸 뒤 ‘삼진’을 당하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이다. 삼진을 당한 뒤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 지금, 우리가 한번쯤 ‘호사스럽게’ 가져볼 만한 여유가 아닌가 싶다.
당신이 늘 바쁘다는 거 안다. 하지만 그런 당신께 잠시 시간을 내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어보라고 감히 권하고 싶다. PSSP
고백하건대, 나는 단지 동생과는 다른 팀을 응원하고 싶어서, 그리고 박철순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OB 베어스(지금은 두산 베어슨가?)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내내 MBC 청룡(지금의 LG 트윈스) 어린이 팬클럽이 되어 파란 잠바를 입고 다니던 바로 밑의 남동생과 서로 자신의 팀이 더 잘났다며 싸웠고, OB 베어스가 원년 우승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해 내내 꼴찌를 지킨 ‘삼미 슈퍼스타즈’를 가엾게 여겼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저렇게 맨날 지기만 하는 팀을 응원하는 아이들도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고, 1위가 될 팀을 응원했던 나의 선견지명(?)에 스스로 감탄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나는 이 책을 샀다. 이건 사실 요즘의 내게는 일탈적인 행동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나는 이른바 옛날 작가들이 간만에 내놓는 새로운 소설 외에는 소설책을 사본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소설들의 구태의연함과 재미없음에 질려 3회인가 이후론 다시는 <한겨레문학상> 소설은 사지 않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던 차였다(여기서 최근 우리 순수문학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출판계에서는 순수소설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인데, 내 생각에 이건 자업자득의 측면이 많다. 한때 자칭 타칭 소설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남들 다 욕하는 운동권 후일담 소설부터 2,30대 룸펜들의 권태로운 생활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소위 90년대 소설까지 ‘소설에 대한 애정’ 하나로 열심히 사보았던 나였지만, 이런 나마저도 21세기 들어서는 소설에서 나가 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최근의 소설은 문제의식은커녕 재미도 없고, 신선함도 없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 책을 보자마자 내가 산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라, 그래, 그런 팀이 있었지. 만년 꼴찌팀이었던 삼미…….
단언컨대 누구나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느낄 것이다. 이 책이 진짜 재미있다는 걸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순수문학’(‘순수‘가 뭔진 모르겠지만)의 지지자들은 박민규의 ‘평범하지 않은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재기발랄한 문체에 금방 매료되었다. 게다가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어 하는 말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인천에 산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인천을 연고지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가 탄생한다. 나는 열심히 응원하지만, 삼미는 번번이 패배한다. 같이 응원하던 녀석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어떤 녀석은 원래 고향이 대전이었다며 OB 팬이 되고, 또 다른 녀석은 자기 집은 인천보다는 서울에 가깝다며 MBC 팬이 된다. 나와 조성훈은 끝까지 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삼미는 갖가지 기록(프로야구 최저 승률, 프로야구 최다 연속 패배, 프로야구 최다 삼진 등등)을 쌓아올리다 고별전을 치르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삼미의 트라우마로 소속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어 공부에 전념,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하고 학벌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취직한다. 그렇게 ‘소속’이 ‘삶’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느끼며 바쁘게,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이혼을 당하고 설상가상 IMF로 실직까지 당한다. 그런 ‘나’의 앞에 사라졌던 옛 동지 조성훈이 나타난다.
요즘 잘 팔리는 책들은 단연 처세에 관한 것들이다. ‘10억 만들기’부터 ‘아침형 인간’까지. 이 책들이 말하는 건 한결 같다. 악착같이 일하고 모아라.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책들과 더불어 인기인 건 건강서들이다. 요가나, 스트레칭, 잘 먹고 잘사는 법 등. 이른바 웰빙의 시대라나. 이런 책들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초 단위로 쪼개서 자기개발을 하고, 건강을 돌보고,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10억을 모으면 무얼 할 건가? 왜 우리는 이렇게 늘 바쁘게 움직여도 늘 시간이 부족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문제제기도 바로 이것이다. 너,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데?
이건 단지 직장에 다니며 자기 집 하나 갖고,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는 소시민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뭔가 다른 삶의 비전을 가진 이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지나치게 바쁘지 않냐고,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지 않냐고, 당신에게 시간과 돈은 늘 부족하지 않냐고, 당신이 무얼하든 꼴찌는 되기 싫지 않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삶은 즐겁냐고.
물론 나도 이 질문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집을 가질 생각도 없고, 따라서 10억을 모을 꿈 같은 건 애시당초 꿔보지도 않았고, 웰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그럼에도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할 정도로 늘 바쁘고, 적어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1등이 되길 바라며, 솔직히 지금보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게 남들보다 시간이 좀더 생기고, 돈이 좀더 생겨도 그때의 나는 또 생각할 것이다. 내겐 ‘조금’의 시간과 돈이 더 필요하다고. 지금의 내게 정말 필요한 건 ‘조금’의 시간과 돈이 아니라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치기 힘든 공을 악착같이 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냥 치지 않고 보낸 뒤 ‘삼진’을 당하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이다. 삼진을 당한 뒤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 지금, 우리가 한번쯤 ‘호사스럽게’ 가져볼 만한 여유가 아닌가 싶다.
당신이 늘 바쁘다는 거 안다. 하지만 그런 당신께 잠시 시간을 내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어보라고 감히 권하고 싶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