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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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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주곡 : US-VISIT 생체정보수집

윤현식 | 지문날인 반대연대
초국적 감시망의 설계 : ECHELON 그리고 US-VISIT
조지 오웰이 묘사했던 전체주의 사회-오세아니아-는 기계의 전지전능함만이 신뢰의 척도로 인정받는다. 그 사회에서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기초한 공동체는 거부된다. 오직 Big Brother로 상징되는 전체만이 지고의 선이 되며 개인은 실종된다. 모든 기록의 날조와 재구성을 통해 인간의 사상은 통제되고 기억까지 재구성된다. 이러한 전체주의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조장하는 동력은 바로 정보의 독점이다. 전체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남김없이 감시하고 관리함으로써 윈스턴 스미스는 Big Brother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감시와 통제는 조지 오웰의 상상력을 가뿐하게 초월한다. 조지 오웰의 상상력은 기껏해야 오세아니아의 국경선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의 Big Brother 미국은 국경이라는 인위적 경계선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60억 인류의 두개골 안쪽까지 점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전 지구를 아우르는 초국가적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우주공간을 돌고 있는 인공위성과 세계 각처에 설치된 에셜론(ECHELON) 감시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 통신의 90%를 도청하며, 전화와 팩스 등 각종 통신수단의 대부분을 감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1999년 영국 BBC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기 훨씬 이전부터 가동되고 있었으며,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수집해왔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통신정보절도행위에 더하여 이제 전 세계 인류의 개별적 신원정보를 수집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소위 US-VISIT라는 조치는 미국을 출입하는 모든 외국인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US-VISIT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출입국자에 대한 신원정보만을 수집하고 있지만 장기적 정책으로는 2005년부터 시행하려는 세계적 차원의 생체여권사용을 통해 미국에 출입하지 않는 외국인들의 신원정보까지도 광범위하게 수집하려 하고 있다. 이미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에 대해 올해 8월부터 한국인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발급받는 비자에 생체정보를 넣겠다고 하였으며, 현재 US-VISIT에 의해 생체정보수집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비자면제국의 국민에 대해서도 2005년까지 생체여권을 발급받지 않으면 출입국과정에서 생체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US-VISIT의 목적은 테러의 방지와 자국국민의 안전보장이다. US-VISIT를 통해 수집된 외국인의 생체정보는 테러범 및 국제범죄조직의 조직원을 색출하는데 사용되며,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상황을 임의로 확인하는데 이용된다고 한다. 또한 생체여권의 경우 기술표준의 확정을 통해 생체여권에 기재된 모든 개인정보는 데이터베이스의 공유를 통해 언제든지 확인될 수 있다. ECHELON으로 통신망을 장악한 미국은 감시의 범위를 아예 개인에게까지 확장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감시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원죄, 감시를 통한 원죄의 치유?
정보의 일방향적 독점이 권력관계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종속적 위계질서를 형성한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는 물론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정보의 독점을 통한 종속관계의 형성은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지배질서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60억 세계 인류의 개인정보가 미국정부로 집중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US-VISIT의 구축은 국가 간 종속관계의 정점에 미국을 올려놓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 그리고 미국 아닌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류는 자의와는 전혀 별개로 미국에 의해 구축되는 구조 안에 존재해야만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US-VISIT의 진의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테러를 방지하고 자국국민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자 생각했다면 먼저 왜 전 세계가 미국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부터 검토했어야 한다. 건국과정에서 저지른 원주민 학살의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건설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행해 온 제국주의적 만행에 대해서 스스로의 반성이 있어야 했다.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미국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더러운 전쟁’을 저질렀으며, 테러와 폭동을 사주하고 군부독재를 옹호하고 쿠데타를 지원했다. 무력 동원으로 외국의 정권을 전복한 일도 예사로 저질렀다. 자국 자본의 이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무고한 어린이들 머리 위로 폭탄을 퍼부었으며, 중동장악의 교두보인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삶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세계적인 반미적대감은 바로 미국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만행에 대해 인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적된 분노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고, 물리적 저항이 세계 각처에서 빈발하게 되었다. 이것을 미국은 테러라고 규정하였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 세계를 감시하는 감시망 구축을 설계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대응책이 아니다. 폭력에 의해 발생한 대응폭력을 감시로 억제하겠다는 발상은 논리적으로도 성립 불가능하다. 감시로 억누를 수 있는 범주의 분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정부가 이를 간과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감시로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발상을 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내부에서조차 US-VISIT가 테러를 방지하고 자국민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발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테러가 발생하는 양상에 의하면 US-VISIT가 설혹 예방에 일정정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할 수는 있으나 이미 발생한 테러에 대한 사후조치로는 거의 무용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한 감시망의 활성화를 위한 정보기관의 권력강화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이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자국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그토록 자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인권단체는 특히 이 조치가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 증대를 가져오고 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테러방지와 관련한 부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생체정보수집 자체는 외국인의 인권침해는 물론 자국민의 인권침해까지 유발하고 있다. 당장 브라질 정부가 브라질을 출입하는 미국인에 대해 똑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국민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무분별한 생체정보의 수집이 인권침해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국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다. 미국 내에서 생체정보의 수집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연방이나 주정부 차원에서 미국시민에 대한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목적의 일괄적인 생체정보수집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생체정보가 인간의 신원을 파악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서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한 번 유출되어 부당한 용도로 사용될 경우 정보주체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위해까지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비롯하여 국내에서 비등하는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가 굳이 생체정보수집을 내용으로 하는 US-VISIT를 실시하는 목적은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바, “테러의 방지와 자국국민들의 안전보장”이라는 목적과는 전혀 별개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배전략의 현실화 : 모든 인류의 복종을 위해
그들의 이해는 다른 것이 아니다. US-VISIT를 강제하는 미국정부의 근본적인 목적은 전 지구적 감시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자국의 이해를 세계에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구적 정착,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것, 바로 그것이다. 촘스키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미국이 이야기하는 ‘안보위협’은 바로 “미국 투자가들의 권리를 저해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더욱 적절하게 미국이 이야기하는 ‘실용주의’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세계인권백서를 발간하는 미국정부의 ‘인권’에 관한 기준은 철저하게 “실용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자국국민들의 “인권”을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보장하면서 “안보위협”을 제거하고자 US-VISIT를 시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실용주의”에 따라 자국이 원하는 대로 세계를 지배하고자하는 목적으로 “미국 투자가들의 권리를 저해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하는 것을 뜻하고 US-VISIT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이것인 것이다. 결국 “테러의 방지와 자국국민들의 안전보장”이라는 것은 미명에 불과하고, US-VISIT의 근본적인 목적은 미국의 세계지배, 미국식 자본의 세계경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완성하고자 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한편으로는 어린아이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트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류의 개인정보를 자신들의 관리체계 안에 포섭하겠다는 것이다.
9·11이 가져왔던 충격과 공포는 미국으로 하여금 소위 ‘악의 축’에 대한 징벌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악의 축’을 길러낸 ‘악의 제국’인 자신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자국민들의 고통을 이유로 본격적인 패권주의의 전개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 과정에서 세계 인류의 인권은 실종되고 군수산업과 석유재벌을 위시한 자국 자본의 이해가 ‘인권’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인류 개개인에게 강요되고 있다. US-VISIT는 그 시작일 뿐이며, 모든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인프라의 구축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이를 통해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이처럼 개인의 인권조차도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생체여권의 발급과 US-VISIT를 단순한 통관절차의 강화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게 수집된 개인정보는 언제 각각의 개인들에게 탄환이 되어 돌아갈지 모른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되었던 반정부인사들에 대한 살인과 폭행의 배후에는 미국이 제공한 수 천 명의 명단과 신상정보가 있었다. 그들이 수집하는 생체정보가 후일 어느 광포한 정권에 제공되어 인도네시아의 악몽을 재현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은 얼마든지 그런 일을 재현할 수 있는 국가이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미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적으로 구축하려는 개인생체정보수집체계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과 저항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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