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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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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특집-이진숙.hwp

다른 세계를 향한 모색, 4회 세계사회포럼 평가

이진숙 | 인친지부 집행위원
지난 1월 16일에서 21일까지, 4회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두가지 맥락을 가진다. 하나는 5일간의 행사 그 자체와 그로부터 제기되는 쟁점들을 평가하고 해석해 내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4회까지 이르는 동안 세계사회포럼을 ‘둘러싸고’, 혹은 ‘매개하여’ 꾸준히 제기된 쟁점들이 4회를 거치면서 현재화된 양태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 양자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연속선에 놓여있는 쟁점들을 4회 세계사회포럼에서 어떻게 실제화하고 반영했는지를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한 반세계화운동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세계사회포럼을 위치 짓고 평가해야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이 글은 주되게 4회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의 평가에 중심이 실려 있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을 떠나 제3의 장소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드러난 이전과는 다른, 혹은 잠재되어 있던 쟁점들을 포함해서 평가할 것이다.
첫 번째는, 사회포럼에 대한 기초적 수준에서의 공동의 인식과 전제들에 대한 확인이다. 두번째는, 이번 사회포럼의 내용과 형식들을 평가함으로써,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으로 상징화된, 세계사회포럼의 고민이 진전 되었는가 하는 것이고, 반세계화운동에 대해 세계사회포럼이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문제이다. 세번째는, 세계사회포럼의 여러 차원의 쟁점들에 대한 것인데, 위상과 원칙, 전망을 둘러싼 고유한 쟁점, 인도개최에 따라 새롭게 드러난 지역적 고유성에 밀착된 운동들과의 교통과 연대의 문제, 페미니즘의 쟁점의 문제이다.


공동의 인식과 동의된 전제

이번 4회 세계사회포럼을 두고 대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상평’은 개최지가 아마도 절대빈곤으로 한눈에 인상지어지는 인도라는 점이다. 행사장 바로 인근도 예외가 아니었던, 어디를 가나 넘쳐났던 빈곤의 풍경과 마주 할 때 느꼈던 참혹함은 세계사회포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다. 여기에다 등록된 참가자들로만 행사장 출입을 통제했던 사실은 어떤 감정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지나치게 ‘인도적이었다’는 일각의 평가가 반영하듯이,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인도의 고유한 상황을 주제로 한 행사들이 상당수 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4개 카스트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 이른바 아웃 카스트(out caste)이고, 전체 인도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달릿(Dalits)’의 현실과 권리를 주제로 한 행사들이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자본의 세계화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다양한 민중의 기초적 권리들이 인도사회의 고유성과 결합되어 종교근본주의, 신분차별, 빈곤와 결합된 여성들의 현실, 그리고 아동노동의 문제 등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제기되었다. 사회포럼이 이렇듯 ‘인도적인’ 많은 문제들을 포함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도 민중들의 참가는 제한되었고, 정확하게는 ‘등록된 활동가’들에게만 개방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의 민중들과 괴리되었다는 점에서, 행사전반을 조직하고 관장한 인도조직위원회의 비민주적 조직 방침 등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체적인 평가 속에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어떤 공동의 인식과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특정한 주체나 유무형의 권위에 의해 사회포럼의 주제나 형식이 제한되고 규제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위원회나 개최국가 조직위원회와 같은 네트워킹과 행사의 조직을 위한 최소한의 구조만을 별도로 가질 뿐, 전체적으로 사회운동들 간의 수평적 교통을 옹호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 헌장(World Social Forum Charter of Principles)의 문제의식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덧붙여 사회포럼의 운동으로서의 자기규정은, 운동의 범주와 경계의 설정이 어떤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서가 아닌 운동스스로의 자기전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운동들, 권리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포럼의 기본정신은 보다 다양해진 주제와 형식들을 통해 잘 드러났다는 점이다. 또한 자본의 세계화로 고통 받는 전세계 민중들과의 연대와 민중의 보편적인 권리의 옹호라는 오늘날 사회운동의 기본적인 지향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확인하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반세계화운동에의 기여

세계사회포럼이 4회까지 이르는 동안 확대?성장을 거듭해온 것은 분명하다. 규모의 측면에서, 1회 당시 1만 5,000 여명 수준이었던 참가자 수와 500 여개 정도되는 세미나와 워크샵 등의 행사는 4회에 이르러 각각 10만 여명, 1,200여개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규모의 확대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으로 상징화된 세계사회포럼의 고민이 진전되었다는 것을 보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사회포럼은 주제 면에서 관성적이며,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또한 유사한 주제들이 중복되는 등, 전체적으로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조직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사회포럼의 주제선정과 조직화 과정이 보다 짜임새 있게 개선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직위원회 차원에서 제시된 이번 사회포럼의 주요의제는 제국주의적 세계화, 가부장제, 군사주의와 평화, 종교적 종파주의와 근본주의, 카스트와 인종차별주의 등이었다. 이로부터 □군사주의, 전쟁과 평화 □미디어, 정보, 지식과 문화 □민주주의, 생태적?경제적 안보 □지속 가능한 민주적 발전 □노동의 세계와 생산?사회적 재생산에서의 노동 □공공부문 그리고 사회보장 □소외, 차별, 존엄성, 권리와 평등 □카스트, 인종과 기타 출신 노동에 의한 배제 □종교, 문화 및 정체성 □가부장제, 젠더와 섹슈얼리티 등이 중심주제와 소주제로 제안되었다. 대부분의 행사들은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전체 행사가 1,200 여개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유사한 내용의 중복과 나열은 오히려 필연적이다. 또한 행사들은 대개가 일반적인 수준의 내용을 반복하거나 국가나 지역별 특수성의 지나친 강조에 치우쳤고, 이러한 문제는 전반적으로 저조한 행사 참여로 결과했다. 사회포럼 초기부터 대안의 구성차원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졌던 투기자본 이동의 통제방안, 제3세계 외채, 대안적 무역규범, 각종 자원들에 대한 소유의 문제 등의 주제 역시 관성화 되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많은 행사들이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현황을 개괄하고 보다 민주적, 민중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당위적 결론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사회포럼이 최초로 조직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 방편으로 토빈세 같은 구체적 방안을 제기해온 ATTAC과 같은, 사회포럼 내에서 대안적 정책과 담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운동으로 조직했던 조직들의 행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싶다.

이런 가운데 군사주의, 이라크 전쟁은 사회포럼의 가장 중심된 주제였으며, 행사장의 전체 분위기나 참가자들 간의 연대의식 전반을 관통하는 중심된 기조였다. 세미나, 워크샵 등의 반전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토론의 장 뿐 아니라, 캠페인과 시위, 그리고 반전총회 등의 공동행동의 결의를 모아내는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이라크 전쟁이 가지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정세적 중요성 만큼, 공통의 이슈에 대한 합의를 통해 공동의 실천이 기동적으로 조직된다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이며, 사회포럼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전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국제적 토론을 조직할 수 있는 의미있고 드문 기회가 ‘제국주의 반대’, ‘부시 반대’라는 슬로건의 홍수 속에서 ‘공동의 적을 확인했다’는 자족적 결론으로 대체된 것은 안타까운 문제이다. 이는 현재의 국제적 차원의 연대운동이 단일이슈 - 동원식 공동실천으로 정형화되고 있는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 일정한 편향으로 보인다. 현 시기 반전운동이 다양한 쟁점들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그 내연을 확장하고 실천의 형식, 내용적 다양성을 생산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다양한 쟁점들이 단일 이슈로 환원되고 구호와 슬로건, 대중동원식 투쟁전술의 절대화 경향이 나타났다. 일례로 KoPA를 중심으로 한국의 참가단들이 세미나와 사회운동 총회에서의 발언 등을 통해 제기했던 한반도 위기와 북핵문제의 본질, 그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호소할 때, 참가자들의 반응은 대단히 미온적이었다. 미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핵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군사주의적 쟁점들을 이라크 전쟁과 연결하여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렇듯 국제적인 연대운동이 단일이슈 - 동원식 공동실천으로 정형화되면서 제기되는 한계와 문제점은 반전운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반세계화운동의 경우, 지난 칸쿤 각료회의 무산의 배경이 이러한 쟁점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농업협정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각료회의 무산을 이끌어냈던 개도국의 다양한 의견그룹들의 경우 WTO와 WTO가 구축하려는 새로운 무역규범 그 자체에 대해 거부했다기 보다 민족국가의 이해에 철저히 근거했다. WTO반대 투쟁을 진행하는 주체들 일부에서 이들 개도국 의견그룹을 계속 지원해서 WTO 내에 ‘남반구연대‘와 같은 구조를 구축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결국 단일이슈를 중심으로 한 운동의 지나친 구조화는 모순의 원인을 근본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저해하고 그 결과, 보편적 요구를 형성하고 운동을 확대하는 방향이 아닌 개별적 이해의 우선시, 자기방어주의, 실용주의로 경도될 위험을 제기한다.

앞의 지적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사회포럼에서는 다른 쟁점과의 결합을 통해 운동의 확장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성과가 매우 중요한 곳에서, 의미있는 방식으로 생겨나기도 했다. 반세계화운동의 경우 WTO와 같은 국제기구들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의 경우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진행됨으로써 국제적 연대운동의 주요 축인 이 양자의 결합을 통한 운동의 확장은 지체되어 왔다. 세계화와 군사주의가 자본의 위기관리와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재구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공동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매우 실천적인 방식으로 그런 계기가 형성되었다. 3.20 국제반전공동행동을 보다 국제적이고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위한 많은 활동가들이 제안, 실천했다. 작년의 무산된 칸쿤 각료회의의 후속회담이 올해 말 홍콩에서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공동실천을 호소하는 반세계화운동 조직과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는데, 이 양자는 어찌보면 대단히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두 운동의 흐름을 결합하기 위해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한 몇몇 조직과 활동가들의 기여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회포럼의 주제와 내용들이 빈약하고 관성화되었다는 평가는 WTO, 금융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제, 제3세계 외채문제 등과 같은 세계화의 주요 고리들에 대한 대안의 형성이 구체적인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의 실천적 결합의 성과가 보여주듯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모여 토론과 교통을 통해 공동의 인식기반을 점진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공간으로서 사회포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한 사회포럼의 이러한 원리와 지향은 반세계화운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는 바, 여기서 반세계화운동에 대한 사회포럼의 역할과 기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의 쟁점과 과제

- 부상한 과제 : 지역적 고유성에 밀착된 사회운동과의 교통과 연대

브라질과 인도의 물리적 거리만큼, 이번 세계사회포럼은 여러 측면에서 여러모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노동조합, NGO, 사회운동단체 및 네트워크 등 세계적으로 일반화 되었고 브라질 개최 당시 주류였던 조직들과 다르게,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자조?자립 운동조직 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주체의 측면에서는 노동자, 농민, 사회운동 활동가 등 이미 반세계화 운동의 주요 주체로 형성되고 있는 이들 이외에 광부, 어부, 그리고 공동체 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여성과 종교세력 등의 참여로 보다 다양화되었다. 주제 면에서 전쟁과 투기자본, 외채, 공공서비스, 빈곤 등과 같은 반세계화 운동의 주요과제로 이미 제기되고 있는 것들 이외에 토지, 종자, 신분제도, 주택, 종교근본주의 문제 등이 참가 국가와 조직들의 고유한 상황과 결합되는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형식 면에서도 ‘두개의 포럼’이라는 표현과 같이 실내에서의 세미나, 워크샵을 압도할 만큼의 많은 캠페인, 퍼포먼스, 문화행사가 행사장 내의 거리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확연하게 눈에 보이는 변화들은 주되게 네팔, 방글라데시 등의 인근 아시아 지역 조직과 활동가들의 대규모 참가에 따른 것인데, 인도 개최로 인해 참가비용과 같은 물리적 측면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점이 가장 직접적인 배경일 것이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본다면, 현재까지의 반세계화운동 흐름에 상대적으로 결합력이 저조했고, 그만큼 운동의 현황이나 쟁점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의 운동들과 만나고 만남의 공간으로서 4회 세계사회포럼을 되돌아 본다면, 대륙이나 국가 차원의 지역적 고유성에 밀착되어 진행되는 운동들과의 교통과 연대라는 주요한 쟁점을 환기할 수 있다.

대규모 참가를 조직했던 아시아 지역 조직과 활동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신들의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 소농들의 권리, 지역공동체 문화의 보존, 여성억압의 문제 등을 향해 있었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들은 자립과 자조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공동체, 풀뿌리 운동이나, 비공식 노동을 보다 집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과 같은 시도들을 조직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위계적으로 구조화된 자본주의 세계체제 그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민족국가에 기반을 두는 현재의 운동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비동시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회포럼을 통해 제3세계나 저개발 국가에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오히려 주류적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과의 교통과 연대를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의 창출이 필요함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으로 언어문제와 같이 물리적 측면에서의 장애를 제거하고 소통의 기제를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종교와 사회문화적 차이, 지역적 고유성과 표현양식의 차이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이다. 이 밖에도 지식의 차이와 접근성의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이 제기되었다. 이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조건들은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서부터, 이런 지역적 고유성과 결합된 운동들의 지향과 원리들이 보다 보편화되기 위해, 그리고 공동의 운동노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포럼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것이 4회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남겨진 과제다.


- 세계사회포럼의 원칙과 위상, 전망을 둘러싼 쟁점

사회포럼이 조직인가 공간인가, 사회포럼 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정당과 무장조직 배제의 원칙이 사회포럼의 정신에 합당한 것인가, 또 이것이 현재의 반전반세계화운동의 현황 속에서 타당한 인식인가 등의 몇몇 쟁점은 사회포럼 조직 이후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번 포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쟁점은 결국 사회포럼의 전망과 반세계화운동 속에서 사회포럼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조직으로서 자신의 성격과 지향을 강조하는 것은 현재의 반세계화운동이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지향을 강화하고 보다 집중적인 투쟁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사회포럼이 이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재의 사회포럼은 지나치게 느슨하고 중심이 없는 구조이며, 국가의 역할에 대한 비판에 소극적인 NGO들의 광범위한 참가는 그러한 운동의 지향을 방해하고, 정당에 거부/배제적인 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물론 NGO들이 세계화의 폐해를 보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대리하여 수행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비판의 주요 요소이다. 또한 NGO들의 활동이 초민족기업들의 각종 재단의 후견에 힘입어 진행되고 있다. 다양성의 존중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NGO들이 실상은 유무형의 지원을 제공하는 후견인들에 의존하여 활동가와 대중의 역할을 소극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결국 대안적인 세계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운동의 원리와 지향을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논쟁의 정확한 장소가 어디여야 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포럼이 사회운동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대중운동의 우위를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것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사회운동들이 처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을 사고해야 한다. 사회주의 실험이 좌초된 이후 보편적인 운동의 이념들은 여전히 발견되지 못하고 있으며, 20세기 전반기의 주류적 운동이었던 노동운동의 코포러티즘으로의 수렴 그리고 이후 20세 후반 다양한 사회운동의 형성은 자본의 세계화로 모순이 심화되자 이에 민중운동이 대응한 결과이다. 즉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와 그 관리기제들이 현재의 사회운동을 형성하게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NGO들의 등장과 시민사회를 강조하는 운동경향의 확산 역시 이러한 현실의 원인이 아닌 결과이다. 따라서 현재의 사회운동은 세계화의 다양한 결과들만큼이나 민족국가 차원에서의 다양한 이슈와 과제들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운동을 조직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제주의적 지향을 스스로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확대해 나가는 문제야말로 관건적이다. 이는 사회운동들 간의 교통, 경험의 공유와 연대의 경험 창출의 과정 속에서만이 가능할 것인데, 여기서 다양한 운동들, 이슈들, 권리들이 스스로를 확장하는 전략과 동시에 상호 확장하기 위한 방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 정당들이 과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날의 정당들은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공동의 인식을 추동하고 상호교통의 경로를 제공하기 보다는, 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을 제시하고 특정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의 선거정치를 해서 오히려 사회운동들을 신자유주의에 적응하는 형태로 변모시키고, 대중과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이번 사회포럼에 국제농민조직인 비아캄페시나가 참여했던 방식이나 조직했던 활동들은 사회운동과 정당을 둘러싼 그러한 긴장을 잘 드러내 주었다. 세계사회포럼 행사장 맞은편에서는 사회포럼의 NGO 주도성, 정당과 무장조직 배제 원칙, 포드재단으로 부터의 재정지원 문제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인도 마오주의 계열의 운동세력이 주축이 되어 ‘뭄바이 레지스턴스 2004(Mumbai Resistance 2004)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두개의 행사’ 개최는 인도 농민조직들의 사회포럼참가에 있어서의 분열을 야기했는데, 자조직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정당들의 행보에 따라 농민조직들의 참가가 결정되었다. 또한 MR2004 내부에서도 정당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의견그룹이 형성되어 그에 따라 인도 농민조직들은 또다시 분할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비아캄페시나에도 반영되었고, 그를 조정, 소통시키기 위해 비아캄페시나의 지도부들은 정당들 간의, 농민조직들 간의, 정당과 농민 조직들 간의 토론을 제안, 조직했고 이를 통해 통합적인 흐름을 형성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사회포럼의 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정당과 무장조직 배제의 원칙이 특정 운동세력에 대한 참가 배제를 직접적으로 목적한다기 보다,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이미 충분히 분할되어 있는 현재의 운동의 조건 속에서 다양한 운동 들간의 분할을 극복하고 통합적인 흐름을 형성하는데 있어서의 대중운동의 건강한 역할과 기여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사회운동의 교통과 충돌을 통한 통합과 확장의 공간으로서의 사회포럼은 결국 운동(의 과정)으로서의 사회포럼이라는 방향성을 지시한다. 사회포럼을 조직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운동인 것인데, 이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이미 대륙별, 국가별 사회포럼이 활발하게 조직되고 있다. 여기서 그 무엇에 의해서도 사회포럼 전체의 대표성이 자임될 수 없다는 사회포럼 헌장의 규정을 준수하는 문제가 대두되지만, 운동으로서 사회포럼의 규정은 사회포럼에 대한 내외부의 비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운동과 과정으로서의 사회포럼이라면 굳이 일년에 한번, 실로 대규모로 개최되는 행사 자체가 특권화 될 필요도 없으며, 대륙별, 국가별 사회포럼과 같은 사회포럼의 정신을 실현하고 헌장을 준수하는 모든 행사들이 연속적인 사회포럼의 과정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포럼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실천 역시 배제적일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사회포럼에 대한 정당한 비판들이 보다 활성화되고, 운동의 과정 속에서 상호 전화의 계기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국제주의의 지향과 페미니즘의 쟁점

사회포럼 기간 동안 발생한 남아공 남성에 의한 강간 사건은 사회포럼의 헌장에 따라, 사회포럼, 또는 국제위원회나 인도조직위 차원,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공식적인’ 입장과 의견이 표명되지 못했다. 물론 세계여성행진에 속한 여성활동가의 국제위원회 평가회의에서 그에 대한 ‘매우 조심스러운’ 예외적 적용이 제안되기도 했다. 많은 여성운동조직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대한 발언과 행동의 필요성을 공감하였다. 이뿐 아니라 세계사회포럼 내 문화적 차이에 대한 몰이해, 타국가나 여성들에 대한 (성적)호기심, 혹은 지극히 의도된 차원에서의 크고 작은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렇듯 전세계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결집하는 사회포럼 내에서의 성폭력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일반적 의미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와 인종적 차이 등의 다차원적인 문제들이 결합되어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국제위원회 평가회의에서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지적, 해법을 마련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는데, 전반적인 논의 자체가 다차원적인 문제들의 결합이라는 문제의 성격을 사고하지 못하고, '사회포럼에 참가한 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 것인가‘라는 제한된 문제의식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좀더 구체적으로 진전되었다면 아마도 행사의 참가를 더욱 제한하고, 행사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물리적인 조치들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사회포럼과의 관계에 있어 페미니즘적 쟁점을 몇가지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여성의 권리를 비롯하여 페미니즘적 쟁점에 접근하는 방식인데, 이는 성폭력 사건에서 헌장의 예외적 적용을 인정(대표성을 띄는 방식의 입장표명), 국제위원회의나 조직위원회, 그리고 사회포럼 전체에 있어서 여성의 대표성을 실현시키는 방안 등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인 쟁점들과 연관된다. 여기서 여성들의 주체성과 자율성에 대한 사고가 필요할 것 같은데 여성의 권리는 다른 무엇에 의해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포럼 내의 여성의 권리를 반영하는 조치들에 대한 고민은, 무엇보다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적 문제의식들이 상호소통과 공동의 인식을 강화하여 그런 문제들에 대한 스스로의 해법을 집단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방향성과 조건의 문제로 접근해어야 한다. 여성의 권리가 스스로의 힘, 운동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는 이러한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은 사회포럼의 그것과 다른 무엇이 아니기도 하다. 다음으로 성폭력을 비롯한 세계사회포럼 공간 내에서의 여성의 권리들을 침해하는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해법을 지향해 갈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참가 여성들에 대한 보호조치로 제한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는 우선, 사회포럼을 통해 형성되고 있는 보편적인 유대와 우애가 성차의 문제와 결합되어 새로운 공동체의 윤리로 재구성될 것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여성의 고유한 권리, 그 권리의 목록들이 다양한 다른 권리들과 충돌하는 경우, 이를 지양하고 상호 권리의 확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개발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논의들 속에서 결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계사회포럼이 헌장을 통해 규정하고 지향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와 원리들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의 그것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여타의 보편적인 권리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성을 그 본질로 하는 여성권의 목록을 개발하고 확장하기 위한 페미니즘의 전략은 사회포럼의 지향과 원리들과 결합되어 양자 모두의 확대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반세계화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이 공동의 투쟁, 공동인식의 확대과정 속에서 국제주의적 지향을 형성하고 있다면, 이는 동시에 새로운 국제주의의 이념과 가치, 윤리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사회운동들 간의 수평적인 교통을 통해 가능하다면, 페미니즘이 여기에 어떠한 기여를 할 것인가, 이를 위해 여성운동의 보다 적극적인 결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새로운 국제주의의 형성에 있어 페미니즘에게 제기되는 과제이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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