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화된 노동유연화-노동통제 전략,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비판
IMF 외환위기 당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실업의 문제는 정부의 실업대책 마련 이후 실업률의 감소와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시 쏟아져 나온 실업자 층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실업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주 노동시간 1시간 이상이면 취업자로 간주되고, 실망실업자(일자리가 없어 아예 취업을 단념)는 통계에서 누락되는 숫자놀음에 증발해버린 실업자 층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2004년 들어 다시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3.4%, 청년실업률은 8.9%에 육박한다. 실업률 통계자료의 특징은 신규실업자의 급증과 청년실업, 여성, 고령자 층 실업률의 급증과, 구직기간이 짧은 실업자의 높은 비중으로 요약된다.{{ 청년 실업률 -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경제활동인구; 2003년 8.9%로 전년대비 0.9%증가,
여성 실업률 - 2003년 3.1%로 전년대비 0.6%증가,
고령자층 실업률 - 55세 이상 64세 이하의 경제활동인구; 2003년 2.4%로 전년대비 0.3% 증가
구직기간 3개월, 6개월, 9개월, 12개월 이상으로 분류했을 때, 구직기간 3개월 미만인 실업자수는 49만명으로 전체 구직자의 63% 이상을 차지, 이러한 단기구직자는 98-99년 최정점에 달했다가 이후 감소세 지속되다 2003년 다시 급증)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 이를 통해 정부는 고임금 구조로 인한 신규고용창출 여력이 부족한 상황을 지적하고, 여성과 고령자 층, 장애인 등의 잠재적 인력의 활동방안이 시급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현재 실업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소득으로 인한 단기 취업과 실업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양상으로 해석된다. 강제퇴출 노동자가 급증하고 부부 맞벌이가 필수적이며 심지어 온 가족이 일터로 나서야 빈곤을 겨우 벗어나는 현실 속에서, 여성, 고령자층, 장애인 등의 주변 노동력이 대거 실업-반실업 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실업률이 잠시 주춤했던 것은 산업자본의 자태변환이 동반한 불안정한 일자리 구조 속으로 노동자들이 대거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실업-반(半)실업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소비시장 활성화와 고용창출의 조절문제를 남한사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해왔으며, 지금의 실업률 확대, 내수침체-소비위축 등의 위기 상황이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운동의 자태변환과 그것이 유발한 고용구조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실업의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8일 '노사정위원회'가 내놓은 '일자리 만들기 사회 협약'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권의 노동정책의 방향성을 극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 속에서의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모순
정부는 2004년 경제운영계획에서 일자리 창출을 최대화두로 제시하며 기업에 대한 투자확대와 서비스산업에 대한 지원확대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동시에 재계는 대기업 임금동결과 안정적 노사관계 구축,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한 칠레 FTA비준 등을 촉구했고, 이는 결국, 지난 2월 8일 노사정위원회의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자리 협약 안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약이 아니다. 외자유치, 신규투자 활성화를 위한 노사관계의 변화라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2003년 9월 노동부)의 연장선상에서 비정규직 전면 확대와 임금동결, 노동조합 무력화를 실질화하기 위한 방안일 따름이다. 애초부터 노무현정부에게 일자리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생의 문제'로 설정되지 않았으며, 일자리 문제 해결의 구호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마무리 단계인 노동 유연화 전략의 완성을 포장하는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해 남한 사회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정착과 철수를 보장하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국가(BUY KOREA!)로의 체질개선에 착수하였다. 이제 노무현 정부에게는 각종 개방화, 자유화 조치의 체결을 앞당기고 외자유치를 실제로 해내는 문제, 즉, 금융화된 남한사회를 성장의 국면으로 끌어올리는 과제가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 성장의 과제 앞에 정부가 붙이는 수사는 '고용 없는'이다. KDI를 비롯한 경제연구원들은 일제히 2004년 경제성장률을 5% 이상으로 전망하며 '고용 없는 성장'을 예고했다. 이들은 경제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원인을 기업이 성장을 위한 생산성 증대를 비용(임금) 절감에서 꾀한다는 것으로 지적하고, 한국사회의 고임금 구조로 인해 제조업 공장이 해외로 떠나간다며 '산업공동화' 현상을 우려했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의 다른 표현은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이다. (산업)자본은 이윤율의 저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물질적 팽창보다는 고도금융을 통한 잉여가치의 분배기술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로 산업자본은 세계적 수준에서 강제되는 금융자유화와 탈규제에 의해 가능해진 금융설계기법 덕분에, 고용을 새로 창출하는 신규투자를 행하지 않고도 국가경계를 넘어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기대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그리고 기관투자자들은 주식차익, 배당금을 노리고 고용파괴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한다. 또한, 생산기술과 노동통제 전략은 노동 절약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IT산업의 증대, 기술 혁신으로 인한 고용축소와 금융거래 등의 산업을 뒷받침하는 서비스분야의 확대(하인노동)는 저임금과 일자리의 불안정함을 불러온다. 이 고용 파괴적인 구조조정은 파견, 하청, 계약·임시직 등 각종 비정규직의 확대와 산업연수생 제도 등 각종 변형근로의 형태 등을 개발하여 노동에 대한 관리, 통제를 확장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금융화가 남한 사회에서 내수침체, 소비시장의 위축이라는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자, 정부는 국내신규투자 확장을 통한 소비시장의 활성화를 과제로 삼게 된다. 김대중 정부가 카드 발행 확대, 벤처 육성 등으로 소비시장을 활성화하고 투자심리를 자극하여 금융자본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거품 붕괴 이후 결과로서 신용불량자 대거 양산, 투자 심리의 위축 등이 드러나는 현재의 조건을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가 내린 답은 국내신규투자 활성화와, 사실상 반(半)실업 상태에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 전반의 환상을 작동시켜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서 신규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아직 덜' 유연한 노동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자살과 분신으로 항거할 만큼 강력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원천 봉쇄해나가는 한편, 실업구제책인양 불안정한 일자리를 베풀고 정규직으로의 진입에 대한 환상을 유포는 가운데, 카드규제를 완화하는 등,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는 시책을 펼칠 것이다.
2004년 7월부터 전면 실시되는 주5일제 도입에 앞서 서둘러 체결된 '일자리 협약'은 결국 노동 유연화의 법제화, 노동자투쟁에 대한 판정승으로 점철된 수많은 국가들의 선례를 따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룩하겠다는 고용 파괴적인 안이며,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지금껏 추진되었던 구조조정을 완성하고자 하는 노골적 의도를 드러내는 안인 것이다.
'일자리' 통제의 일자리 협약
일자리 협약안의 출발점은, '남한 경제의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의 마련'에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협약안은 전문에서 내수부진, 투자감소 등의 어려운 조건과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감소하는 상황, 산업공동화와 노동시장 양극화, 청년실업 증가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협약을 체결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언뜻, 이는 고용창출이 어려운 경제적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협약안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한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기업에 대한 조세 및 금융지원으로 기업활동을 지원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일자리 만들기 및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부문에 대해 향후 2년 간 임금안정에 협력하고, 경영계는 투자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정부는 기업규제 완화 및 사회 안전망 확충에 노력한다는 것이 일자리 협약의 주된 내용이다.
협약안은 일자리창출이라는 구호와는 상호모순되는 명제들로부터 이루어져있다.
첫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는 조항의 내용은,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기업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현재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건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조세 및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업투자의 활성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인력 운용의 효율화와 유연성의 확대'이다.
고용 없는 성장의 원인으로 기업들의 비용절감을 위한 고용의 축소를 스스로 지적한 바 있는 상황에서, 기업투자 핵심제한요소를 노동의 경직성으로 보는 것은, 일자리의 실질적 창출에 정부는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원스톱(one-stop)서비스 등의 각종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은, 고용의무, 관세 등의 의무 등을 책임지지 않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단기적 투기를 보장하고 그로 인한 고용-경제구조의 혼란을 확장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둘째, 고용안정과 격차완화를 통해 성장기반을 확충한다는 조항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동결과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통한 제도화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업에게는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비정규직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않는 등의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을 '적당히' 기울이라고 권고하는 대신, 노동계는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부문에 대해서 향후 2년 간 임금안정에 협력하라는 식이다. 이러한 모호한 규정은 향후 성장론에 입각한 기업의 입장을 철저히 옹호하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과 저소득근로자에 관한 문제를 기업-고용의 차원에서 언급하지 않고, 정부의 사회 안전망 확충(자활근로, 직업훈련, 취업지원사업 강화)으로 치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해결의 근본방향을 빗겨가는 것이다.
셋째, 취업애로계층에 대한 일자리 만들기 시책을 강화한다는 조항에서 공공, 복지 ,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확대 방침을 밝혔으나, 이는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허구적 실업대책(공공근로 확대, 벤처 육성)과 같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청년, 여성, 고령자 층에 대한 취업지원과 교육확대 또한 근본적인 실업대책이라 할 수 없으며 특히, 임금 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층 고용확대는 정규직 임금노동자를 발목 잡는 빌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넷째, 일자리 만들기를 지원하기 위하여 노사관계 안정에 노력한다는 조항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투명경영을 통한 노사동반자 관계 정립보다는,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이라는 노사문화의 정착이라는 지점이다. 앞서의 조항을 준수하는 것이 대화와 타협의 전제라고 했을 때,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그 자체로 원칙을 거스르는 엄격한 법 집행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다섯째, 이 사회협약을 현실화하기 위해 단체협약에 충실히 반영하고 입법한다는 것은 이 협약을 그 자체로 노사간의 대화의 전제이자 상호평가의 준거로 삼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노동자들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파업 투쟁을 벌이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쯤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제출한 일자리 협약안은 결코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으며, 기업투자제한, 외자유치를 가로막는 노동자들의 임금구조를 개혁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저항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님이 확인된다.
협약안의 체결 이후, 재계와 언론은, 일자리협약에 제시된 임금 피크제 도입의 기준과 기업투자환경 조성의 기준과 구체적 대책이 분명하지 않다며, 실효성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협약안 체결에 합의한 한국노총은, 협약의 확실한 실천을 요구하며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협약안의 실효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이러한 입장들은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는 식의 발언을 지지하고, 파견근로의 영역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장려하고, 향후 구체적 법안 수립의 과정에서 임금삭감의 수치와 임금 피크제 도입 기준 등에 대한 논쟁의 근거가 될 따름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과정이 삭제된 채 졸속적으로 추진된 이 안은 구체적인 노동의 조건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있는 정규직 임금억제정책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그러나 만약,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구조마련, 노사정간 의무의 성실한 이행이라는 운동의 형태를 우선시하여 정부와의 협의테이블에서 일자리협약의 조언자, 조력자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하위파트너로서 자신을 위치 짓는다면, 노동의 권리를 협상테이블에 가두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현재의 실업의 근본원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의 실업의 문제라는 인식 틀을 수용한 채, 요구적 수준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언급과, 고용친화를 주장한다면 성장을 저해하는 안티 세력으로 전락하거나, 비정규직의 수치, 고용친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사-정의 숫자놀음에 놀아나는 수세적인 타협의 길 즉, 노동운동의 후퇴라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정부의 노동 유연화와 노동통제 전략, 일자리 협약안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필요하다.
기업의 신규투자 감소는 비싼 노동력, 즉 성장에 협력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의해 발생하였는가?, 정규직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으며 자리를 꿰차고 노동귀족 행세를 하는 집단 이기주의 세력이기 때문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움 속에서 비참하게 노동하는가?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 협약에 대한 태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무엇으로 마련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끄는 노동통제의 전략에 대해 한치라도 동조와 타협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임금,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상황-반실업 상태에 노출되어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분노와 불만마저 갈갈이 해체당하는 실업-반실업 노동자의 확대방안에 대해 기존의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하며, 위계화로 분화된 대중운동은 무엇을 쟁점으로 연대를 확장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모색되어야 한다. PSSP
2004년 들어 다시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3.4%, 청년실업률은 8.9%에 육박한다. 실업률 통계자료의 특징은 신규실업자의 급증과 청년실업, 여성, 고령자 층 실업률의 급증과, 구직기간이 짧은 실업자의 높은 비중으로 요약된다.{{ 청년 실업률 -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경제활동인구; 2003년 8.9%로 전년대비 0.9%증가,
여성 실업률 - 2003년 3.1%로 전년대비 0.6%증가,
고령자층 실업률 - 55세 이상 64세 이하의 경제활동인구; 2003년 2.4%로 전년대비 0.3% 증가
구직기간 3개월, 6개월, 9개월, 12개월 이상으로 분류했을 때, 구직기간 3개월 미만인 실업자수는 49만명으로 전체 구직자의 63% 이상을 차지, 이러한 단기구직자는 98-99년 최정점에 달했다가 이후 감소세 지속되다 2003년 다시 급증)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 이를 통해 정부는 고임금 구조로 인한 신규고용창출 여력이 부족한 상황을 지적하고, 여성과 고령자 층, 장애인 등의 잠재적 인력의 활동방안이 시급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현재 실업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소득으로 인한 단기 취업과 실업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양상으로 해석된다. 강제퇴출 노동자가 급증하고 부부 맞벌이가 필수적이며 심지어 온 가족이 일터로 나서야 빈곤을 겨우 벗어나는 현실 속에서, 여성, 고령자층, 장애인 등의 주변 노동력이 대거 실업-반실업 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실업률이 잠시 주춤했던 것은 산업자본의 자태변환이 동반한 불안정한 일자리 구조 속으로 노동자들이 대거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실업-반(半)실업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소비시장 활성화와 고용창출의 조절문제를 남한사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해왔으며, 지금의 실업률 확대, 내수침체-소비위축 등의 위기 상황이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운동의 자태변환과 그것이 유발한 고용구조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실업의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8일 '노사정위원회'가 내놓은 '일자리 만들기 사회 협약'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권의 노동정책의 방향성을 극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 속에서의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모순
정부는 2004년 경제운영계획에서 일자리 창출을 최대화두로 제시하며 기업에 대한 투자확대와 서비스산업에 대한 지원확대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동시에 재계는 대기업 임금동결과 안정적 노사관계 구축,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한 칠레 FTA비준 등을 촉구했고, 이는 결국, 지난 2월 8일 노사정위원회의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자리 협약 안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약이 아니다. 외자유치, 신규투자 활성화를 위한 노사관계의 변화라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2003년 9월 노동부)의 연장선상에서 비정규직 전면 확대와 임금동결, 노동조합 무력화를 실질화하기 위한 방안일 따름이다. 애초부터 노무현정부에게 일자리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생의 문제'로 설정되지 않았으며, 일자리 문제 해결의 구호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마무리 단계인 노동 유연화 전략의 완성을 포장하는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해 남한 사회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정착과 철수를 보장하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국가(BUY KOREA!)로의 체질개선에 착수하였다. 이제 노무현 정부에게는 각종 개방화, 자유화 조치의 체결을 앞당기고 외자유치를 실제로 해내는 문제, 즉, 금융화된 남한사회를 성장의 국면으로 끌어올리는 과제가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 성장의 과제 앞에 정부가 붙이는 수사는 '고용 없는'이다. KDI를 비롯한 경제연구원들은 일제히 2004년 경제성장률을 5% 이상으로 전망하며 '고용 없는 성장'을 예고했다. 이들은 경제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원인을 기업이 성장을 위한 생산성 증대를 비용(임금) 절감에서 꾀한다는 것으로 지적하고, 한국사회의 고임금 구조로 인해 제조업 공장이 해외로 떠나간다며 '산업공동화' 현상을 우려했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의 다른 표현은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이다. (산업)자본은 이윤율의 저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물질적 팽창보다는 고도금융을 통한 잉여가치의 분배기술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로 산업자본은 세계적 수준에서 강제되는 금융자유화와 탈규제에 의해 가능해진 금융설계기법 덕분에, 고용을 새로 창출하는 신규투자를 행하지 않고도 국가경계를 넘어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기대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그리고 기관투자자들은 주식차익, 배당금을 노리고 고용파괴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한다. 또한, 생산기술과 노동통제 전략은 노동 절약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IT산업의 증대, 기술 혁신으로 인한 고용축소와 금융거래 등의 산업을 뒷받침하는 서비스분야의 확대(하인노동)는 저임금과 일자리의 불안정함을 불러온다. 이 고용 파괴적인 구조조정은 파견, 하청, 계약·임시직 등 각종 비정규직의 확대와 산업연수생 제도 등 각종 변형근로의 형태 등을 개발하여 노동에 대한 관리, 통제를 확장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금융화가 남한 사회에서 내수침체, 소비시장의 위축이라는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자, 정부는 국내신규투자 확장을 통한 소비시장의 활성화를 과제로 삼게 된다. 김대중 정부가 카드 발행 확대, 벤처 육성 등으로 소비시장을 활성화하고 투자심리를 자극하여 금융자본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거품 붕괴 이후 결과로서 신용불량자 대거 양산, 투자 심리의 위축 등이 드러나는 현재의 조건을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가 내린 답은 국내신규투자 활성화와, 사실상 반(半)실업 상태에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 전반의 환상을 작동시켜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서 신규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아직 덜' 유연한 노동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자살과 분신으로 항거할 만큼 강력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원천 봉쇄해나가는 한편, 실업구제책인양 불안정한 일자리를 베풀고 정규직으로의 진입에 대한 환상을 유포는 가운데, 카드규제를 완화하는 등,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는 시책을 펼칠 것이다.
2004년 7월부터 전면 실시되는 주5일제 도입에 앞서 서둘러 체결된 '일자리 협약'은 결국 노동 유연화의 법제화, 노동자투쟁에 대한 판정승으로 점철된 수많은 국가들의 선례를 따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룩하겠다는 고용 파괴적인 안이며,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지금껏 추진되었던 구조조정을 완성하고자 하는 노골적 의도를 드러내는 안인 것이다.
'일자리' 통제의 일자리 협약
일자리 협약안의 출발점은, '남한 경제의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의 마련'에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협약안은 전문에서 내수부진, 투자감소 등의 어려운 조건과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감소하는 상황, 산업공동화와 노동시장 양극화, 청년실업 증가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협약을 체결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언뜻, 이는 고용창출이 어려운 경제적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협약안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한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기업에 대한 조세 및 금융지원으로 기업활동을 지원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일자리 만들기 및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부문에 대해 향후 2년 간 임금안정에 협력하고, 경영계는 투자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정부는 기업규제 완화 및 사회 안전망 확충에 노력한다는 것이 일자리 협약의 주된 내용이다.
협약안은 일자리창출이라는 구호와는 상호모순되는 명제들로부터 이루어져있다.
첫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는 조항의 내용은,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기업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현재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건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조세 및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업투자의 활성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인력 운용의 효율화와 유연성의 확대'이다.
고용 없는 성장의 원인으로 기업들의 비용절감을 위한 고용의 축소를 스스로 지적한 바 있는 상황에서, 기업투자 핵심제한요소를 노동의 경직성으로 보는 것은, 일자리의 실질적 창출에 정부는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원스톱(one-stop)서비스 등의 각종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은, 고용의무, 관세 등의 의무 등을 책임지지 않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단기적 투기를 보장하고 그로 인한 고용-경제구조의 혼란을 확장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둘째, 고용안정과 격차완화를 통해 성장기반을 확충한다는 조항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동결과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통한 제도화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업에게는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비정규직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않는 등의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을 '적당히' 기울이라고 권고하는 대신, 노동계는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부문에 대해서 향후 2년 간 임금안정에 협력하라는 식이다. 이러한 모호한 규정은 향후 성장론에 입각한 기업의 입장을 철저히 옹호하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과 저소득근로자에 관한 문제를 기업-고용의 차원에서 언급하지 않고, 정부의 사회 안전망 확충(자활근로, 직업훈련, 취업지원사업 강화)으로 치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해결의 근본방향을 빗겨가는 것이다.
셋째, 취업애로계층에 대한 일자리 만들기 시책을 강화한다는 조항에서 공공, 복지 ,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확대 방침을 밝혔으나, 이는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허구적 실업대책(공공근로 확대, 벤처 육성)과 같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청년, 여성, 고령자 층에 대한 취업지원과 교육확대 또한 근본적인 실업대책이라 할 수 없으며 특히, 임금 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층 고용확대는 정규직 임금노동자를 발목 잡는 빌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넷째, 일자리 만들기를 지원하기 위하여 노사관계 안정에 노력한다는 조항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투명경영을 통한 노사동반자 관계 정립보다는,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이라는 노사문화의 정착이라는 지점이다. 앞서의 조항을 준수하는 것이 대화와 타협의 전제라고 했을 때,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그 자체로 원칙을 거스르는 엄격한 법 집행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다섯째, 이 사회협약을 현실화하기 위해 단체협약에 충실히 반영하고 입법한다는 것은 이 협약을 그 자체로 노사간의 대화의 전제이자 상호평가의 준거로 삼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노동자들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파업 투쟁을 벌이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쯤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제출한 일자리 협약안은 결코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으며, 기업투자제한, 외자유치를 가로막는 노동자들의 임금구조를 개혁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저항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님이 확인된다.
협약안의 체결 이후, 재계와 언론은, 일자리협약에 제시된 임금 피크제 도입의 기준과 기업투자환경 조성의 기준과 구체적 대책이 분명하지 않다며, 실효성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협약안 체결에 합의한 한국노총은, 협약의 확실한 실천을 요구하며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협약안의 실효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이러한 입장들은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는 식의 발언을 지지하고, 파견근로의 영역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장려하고, 향후 구체적 법안 수립의 과정에서 임금삭감의 수치와 임금 피크제 도입 기준 등에 대한 논쟁의 근거가 될 따름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과정이 삭제된 채 졸속적으로 추진된 이 안은 구체적인 노동의 조건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있는 정규직 임금억제정책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그러나 만약,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구조마련, 노사정간 의무의 성실한 이행이라는 운동의 형태를 우선시하여 정부와의 협의테이블에서 일자리협약의 조언자, 조력자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하위파트너로서 자신을 위치 짓는다면, 노동의 권리를 협상테이블에 가두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현재의 실업의 근본원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의 실업의 문제라는 인식 틀을 수용한 채, 요구적 수준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언급과, 고용친화를 주장한다면 성장을 저해하는 안티 세력으로 전락하거나, 비정규직의 수치, 고용친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사-정의 숫자놀음에 놀아나는 수세적인 타협의 길 즉, 노동운동의 후퇴라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정부의 노동 유연화와 노동통제 전략, 일자리 협약안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필요하다.
기업의 신규투자 감소는 비싼 노동력, 즉 성장에 협력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의해 발생하였는가?, 정규직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으며 자리를 꿰차고 노동귀족 행세를 하는 집단 이기주의 세력이기 때문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움 속에서 비참하게 노동하는가?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 협약에 대한 태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무엇으로 마련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끄는 노동통제의 전략에 대해 한치라도 동조와 타협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임금,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상황-반실업 상태에 노출되어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분노와 불만마저 갈갈이 해체당하는 실업-반실업 노동자의 확대방안에 대해 기존의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하며, 위계화로 분화된 대중운동은 무엇을 쟁점으로 연대를 확장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모색되어야 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