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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도전

권혁무 | 노동차장
온 나라를 극단의 혼돈 속으로 몰아 넣었던 탄핵과 총선 시기가 마무리되었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는 탄핵이 모든 정치적 쟁점들을 묻어 버린 채 오로지 탄핵 지지와 반대의 목소리만으로 반분되어 진행된, 노무현이 연출한 거대한 정치적 쇼에 불과하였고, 여기에 말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렇다치고, 민주노동당과 민중 운동 진영마저 여기에 농락당한 우리의 슬픈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선거였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과거에 비해 절대적으로 안정적인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다 망해가던 집안을 다시 살려내며 과거의 영광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회 권력의 상당 부분을 유지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축하는 분위기이다. 언론은 언론대로 과거 3김 이래로 지속되어 오던 지역주의 구도가 몰락하며 새로운 정치 지형의 변화 가능성을 열었다며, 열린우리당의 영남에서의 나름의 선전과 한나라당의 영남 싹쓸이와 민주당의 호남에서의 몰락을 비교하며 노골적으로 열린우리당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보자. 정말로 지역주의 구도가 깨졌다고 말할 수 있나? 열린우리당의 지역주의 청산 구호가 정말 지역주의를 청산하자는 것이었던가? 그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자민련으로 나뉘어 따로따로 몰아주던 몰표를 이제 나뉘지 말고 모두 자기에게 몰아달라는 거지, 거기에 어디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고단한 민중의 삶에 대한 일말의 고민이라도 있었던가? 자본의 위기와 민중의 삶의 파괴에 대한 어떠한 해법과 고민도 없이,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념이나 최소한의 정책적 제시도 없이, 무조건 “싹쓸이는 안됩니다“라고 외치는 단순한 선거 전략으로 영남의 표심을 일부 끌어들이고, 민주당이 차지하던 호남 맹주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이미 몰락한 자민련을 몰아내고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심으로 충청권마저 거머쥔 것이 진정 지역주의 구도의 타파란 말인가?
기억하라! 지금의 표심이 계속 열린우리당에게 향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그들은 자기 지역의 이익을 대변해 줄 마땅한 정치 세력이 등장하면 언제라도 그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남한의 지역주의는 타파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지역의 이익을 대변해 줄 마땅한 지주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며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고, 그동안 입에 발린 소리로라도 떠들어대던 정치개혁 구호마저 막상 총선에 접어들어선 실종되었기에, 이번 총선 결과는 노무현과 개혁 세력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다만 단기적인 이익을 취한 자가 있다면. 탄핵에 반대한 국민들의 순진한 진심을 자신에 대한 재신임으로 바꿔치기 한 노무현과, 그에 편승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킨 몇몇 차기 대권 주자들뿐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 지형은 뭐라 딱히 한가지 논점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야말로 난장판인 것이다.
그런데 민중 진영에선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사후적으로 평가하기에 바쁘다. 선거 시기 민중 진영의 독자적이고 통일적인 전략과 전술을 창출해 내지 못하고 무능하기 그지없었던 스스로의 문제는 진단하지 못한 채, 마치 3자적 입장에서 분석과 평가만이 난무한다.
다양한 분석과 평가 속에서 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신자유주의 심판의 대중적 투쟁을 고민하고 조직화하지 못한 채, 오히려 노무현의 대중 동원에 이용당하여 탄핵 반대의 촛불 속에 민중의 의제들을 묻어버린, 민중 진영 다수파의 자기 합리적인 총선 평가의 목소리다. 탄핵 반대 촛불의 공간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승리를 이끌어냈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민주노동당의 현상적인 다소의 성과를 이렇게 사후적으로 자신들의 성과로 바꿔치기 해내는 작태는 어찌도 그리 노무현을 빼닮았을까? 민주노동당의 몇 석의 의석 확보가 탄핵 정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일부 대중들의 심각한 방황 속에 얻어진 어부지리적 성격이 강한 성과이지, 민주노동당이나 민중 진영의 목적의식적인 대중 조직화의 성과였단 말인가? 제발 이젠 그런 운동하지 말자.
또한 현상적인 성과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시기, 그리고 현실화된 지금, 민주노동당의 태도는 나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평범하게 살던 시기에 나는, 대중 공간 속에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대중과 분리되는 모습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대중을 정치의 중심에 세우지 못하고 상대화시킬 수도 있는 당 운동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런 우려보다는 진보 정치의 불씨를 지키려는 희망으로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던졌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말았다. 대중 공간 속에서 다양한 정치적 의제들을 대중에게 던지며 대중과 함께 때로는 대중을 선도하며 대중 정치 투쟁을 조직화하길 바랬건만, 오히려 대중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당의 모습은 내가 기대한 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의회 진출의 성공 가능성이 보이자 독자적인 정치 조직화로 대중을 이끌지 못하고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활동에만 몰두하는 당의 모습은, 결코 대중의 신뢰와 대중에 대한 지도를 기대할 수 없다. 대중의 당에 대한 신뢰와 그에 기반한 당의 대중에 대한 지도는 다양한 사회 운동적 지형과 정치 투쟁 속에서 강화되는 것이지, 의회에 몇 석 얻어 제도권에 안정적으로 안착한다하여 획득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당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정치적 의제들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낼 대중적 정치 소통의 구조로서의 당이지, 좋은 빽이 되어 우리의 몇 가지 현실적 요구들을 제도권 내의 수용이라는 좁은 구도 속에 가둬 놓을 이익 실현의 장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범좌파 진영의 무능력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관대한 것은 또한 결코 아니다. 입장의 옳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진보연대의 대중적 토대의 취약함과 정치력의 무능함에 대해 많은 회의와 비판적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미 많은 내부적 기회 속에서 그러한 문제 제기를 수행하였기에 이 글에서는 생략하는 것이며, 또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스로도 이게 옳은 전술인지조차 헷갈리며 행동하는 오류를 범하느니 차라리 본인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는 지적도 모든 운동 세력에게 함께 덧붙이고자 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결코 자유주의 세력의 승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이념과 정책을 대중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아니고, 새롭게 지역주의를 변형시켜 내면서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다수를 얻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다수를 얻은 세력이 그들이기에 그들의 이념과 정책이 승리한 것이라는 논리는 다분히 억지이다. 대중은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롭게 운동을 시작해야한다. 우리의 역량을 결집하여 대중에게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알리고 폭로해 내며, 그들을 심판해 내도록 대중에게 촉구해야한다. 이제 제발 엉뚱한 곳에 가서 우리의 힘을 분산시키며 낭비하지 말고 우리의 역량을 한 곳에 모아 민중적 관점에서 사업과 투쟁을 전개하자. 우리의 힘은 결코 저들이 얕잡아볼 만큼 약하지 않으니,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여 엉뚱한 놈 좋은 일 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자. 나는 이번 탄핵과 총선의 시기에 민중 진영의 대응이 실패한 것을 보며, 민중의 곁을 떠나 이제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지배 계급 속에 귀화되어 버린 80년대 학번들의 얼굴이 계속 오버랩 되었다. 나는 엄중히 충고하고 싶다.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피맺힌 절규의 자기 비판부터 수행하자. 그런 과정없이 제각각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나서 “이제 우리 다시 모이자” 하는 식으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자.
자!! 이제 한 길이다. 민중 세력 총단결로 신자유주의 심판과 민중의 권력 쟁취의 한길로 흐트러짐없이 총진군하자!!

껄껄껄껄!!! 아~ 속 시원하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부족한 글쓰기 재주와 빈약한 이론적 소양 때문에 망설이고 못하던 말들을, 누구 눈치보지 않고 맘대로 지껄였더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도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 회원님들은 이렇게 거칠게 글을 쓰는 이 사람이 누굴까 궁금하실 터이니, 이제부턴 원래의 점잖은 본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부드럽게 글을 이어가야겠도다.

먼저 저를 아는 회원님들보다 모르는 회원님들이 많을 것이므로 간단히 저에 대해 소개부터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름은 권혁무, 1966년 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39살 먹은, 조금 늙은 80년대 학번의 아저씨올시다. 결혼하여 예쁜 딸아이도 있는 그야말로 평범한 30대 후반이지요. (절대로 아직은 40대 아님. 생일이 늦은 관계로 서양 나이로는 37이기에 앞으로도 3년 동안은 계속 30대로 머물러 있을 수 있음.)
그런 제가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 대형사고를 쳤지요. 다시 운동에 복무하겠다며 사회진보연대에서 상근을 시작한 거랍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심지어는 사회진보연대 내에서도 약간의 호기심과 의구심과 우려의 눈빛으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저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를 굳건히 하고 흔들림없는 전진을 해야겠지만, 주위의 시선과 아직은 어색한 내 자신의 마음 때문에, 조금은 부담되고 가끔씩 뻘줌할 때도 있답니다.
제가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사회진보연대라는 하나의 공간 속에 있기까지에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번민과 갈등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최종적으로는 저의 의지와 결연한 실천으로 난관들을 헤쳐가야겠지만, 뒤늦게 다시 운동의 대열에 합류한 선배이자 후배인 저에게 갈월동 동지들의 애정과 배려 또한 기대하는 것이, 유약한 저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사후적으로 역사에서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우리의 노선과 실천 방향이 운동을 갉아먹고 실패로 이끈 운동이 아니라 승리로 이끈 역사로 기록되어지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계속 운동을 해왔던 것도 아니고 지금 이 나이에 다시 운동을 해보겠노라고 나선 나로서는, 그것도 과거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해보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나의 입장에서는, 비록 소아병적 발상으로 비판받을지라도, 더욱 절실한 심정입니다.)
지난 여름, 사회진보연대를 처음 방문할 때가 생각납니다. 생활에 묻혀 일상에 쫓기며 소시민의 삶을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한 불만과 운동에 대한 초조함이 나를 괴롭히던 때에, 사회진보연대를 알게 되어 큰 기쁨이었고, 무턱대고 활동가 학교에 참가하였습니다. 자료집을 읽고 하룻밤 토론을 경청하며, 우리 운동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부족한 저의 사정으로 3일의 일정을 모두 함께 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또 한 달 여의 시간의 흐름.....
다시 사회진보연대의 문을 두드리며, 처음 갈월동 사무실을 찾아 올 때의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 호성희 동지를 만나 나의 뜻을 전달할 때,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많이 막막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말로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며, 사실 잘 한 일인지 어떤지 이런저런 생각에 감정은 어수선하였습니다. 다시 며칠 후, 이현대 동지와 소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여러 얘기를 하며 나의 문제를 의논하였고, 동지들의 환대 속에 시작한 사회진보연대와의 생활!! (여러분들이 저를 환영해 주신 거 맞죠? 나만의 착각 절대로 아니죠?) 많이 어색하고 또 그만큼 즐겁고, 하루하루 사무실에 출근하며 지난 세월의 공백을 확인하고, 나의 과거를 회고하며 미래를 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아마도 저의 결의가 굳건하지 못했나 봅니다. 구체적인 사업들과 결합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내며, 동지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또다시 여러분의 곁을 떠나 혼자 방황해야 했습니다.
가족으로 인한 동요와 저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지들과 함께 하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오늘 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동지들의 앞에 나섭니다.
단지 약간의 학생 운동 경험 외에는 사회 운동의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 운동의 대열로 합류하려 합니다. 과연 현실 운동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을지 제 자신 스스로 염려되지 않는 것이 아니나, 오히려 늦은 시작에 누구보다 열정적일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짧은 학생 운동의 경험을 갖고 사회에 나가 개인적인 물질적인 삶에 빠져있던 그동안의 삶에서도, 민중에 대한 애정과 운동에 대한 열정만은 잃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을 지속했으나, 그러나 풀리지 않은 채 계속 저를 고통스럽게 한 건 제가 사회의 진보와 역사의 발전에 아무런 힘도 보태지 못한다는 사실이었고, 점점 더 현실 사회에서 변혁의 힘을 잃어가고 있는 민중 운동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동안 홀로 겪어야 했던 수많았던 고민과 방황의 세월을, 이제 동지들과 함께 운동의 전진과 승리를 위한 작은 힘으로 변화시켜 내며 희망의 함성으로 바꾸어 내겠습니다.
저는 지금껏 저의 인생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살고 싶은 방향과 실제 살아온 인생이 달라 많은 번민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제가 다소 늦은 듯한 나이에 사회 운동에 헌신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결의하며, 사상의 불철저함, 사회진보연대 운동에 대한 이해의 부족,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의 불철저함, 여성 문제에 대한 실천의 불철저함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동지들이 저의 부족함을 메꿔주리라 희망합니다. 저 자신 스스로의 노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루하루의 생존이 위협받는 노동 대중의 하나로서, 매 순간 동요하며 흔들릴 수 있음을 고백하며, 그 때마다 동지들이 붙잡아 주고 격려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 땅의 민중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동지애로, 사회의 변혁과 참 민중 세상의 쟁취를 위한 기나긴 투쟁의 길에 동지들과 함께 할 것을, 힘차게 그러나 조용~히 결의합니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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