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46호
아버지의 바다
아버지의 바다-향기로운 포토에세이1
김연용 사진과 글, 휴먼&북스
나는 학원강사다. 매일 2시 반까지 출근하며(토요일 1시 40분까지) 퇴근은 11시 ~ 12시 사이에 한다. 수업은 5시 40분부터 시작해서 매일 7~8Time(1Time = 40분)을 뛰고 있으며 기껏해야 쉬는 시간은 사이사이 5분. 담임반은 전반, 후반 각각 1반씩 맡고 있고, 애들은 한 반에 20명 안팎이다. 그러니 내가 맡는 아이들은 총 40명이며, 걷어야 하는 갖가지 안내문에 성적표에 학생상담에 전화상담에.... 이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또 기말고사기간이다. 흐흐흐흐 그러면 보충수업에 일요일수업에 쉴 수도 없다. 학원강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학원원장과 같은 사업주 개념이다. 남들 쉬는 빨간 날.. 우린 못 쉰다. 아이들이 퇴원이라도 할라치면 교무회의 시간에 불호령을 듣는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 내가 사랑하지 않은 아이는 지금까지 총 15명이고, 아이 당 5만원씩 깎였다.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다녔으니 기껏해야 9개월 차라고 말할지 몰라도 9개월이나 됐는데 일이 손에 안 감긴다. 좀 편해질 만도 한데 그게 안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 선생들 다 그렇단다. 그럼 우리 학원이 문젠가? 그렇단다. 우리 동네에서 가지 말아야 하는 학원에 꼽혀 학강모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학원이란다. 떠나버려야지. 3개월 남았다. 3개월~~!!!!!
그런데 어디로 떠나나.. 어디로?
1. 탁 트인 바다와 개 세 마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항상 떠올리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다‘
인줄 안다. 개인적으로 산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허구헌날 밤 12시까지 형광등 밑에서 갇혀서 규칙적인 일상을 제대로 맛 보다보니 탁 트인 바다가 주는 시원함이 그렇게나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시원한 바닷물에 달궈진 머리를 처억 하니 담그면 ‘치익’ 소리가 나면서 김이 날거야. 게다가 세 마리 개가 입구에서 반겨주고 있지 않은가..! 어쩜 우리 집 개들하고 숫자도 꼭 같은지.. 날 반겨주는 그 곳의 이름은 ‘선재도’. 서해의 작은 섬이다.
2. 아버지. 눈 먼 어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고향》 중 73p
대장장이였고, 목수였고, 운전사이자 뻥튀기 아저씨이기도 했던 김연용 씨의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9년 전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몇 달간의 방황 끝에 바다로 발길을 돌린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집에서 10리나 되는 갯벌을 향해 걸어간다. 시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마에 닿는 햇볕과 두 뺨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집과 어장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 곳은 펄떡이는 우럭과 놀래미가 그를 기다리고 있으며 광주리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쏠쏠한 살림밑천이 되어 준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했고 그렇게 자기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쓸모없는 눈 먼 늙은이로 주저앉아 버린다는 건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바다로 향하면서 희망을 건져 올렸을 게다.
그런데. 그 길은 갯벌 위의 길이다. 오늘 갔던 그 길이 내일 있으리란 법이 없다. 오전에 갔던 길이 오후가 되면 사라져 버린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아버지는 그렇게 바다를 고집하면서 ‘사는 법’을 깨우쳐 갔다.
3. 발자국
아무도 내 발자국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내 의지로 발을 떼었을 때,
그 때라야 비로소...
내 발자국이 새겨지는 것이다.
-69p
그가 고집하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냥 바다였을 것이다. 발자국을 남겨두지 않는 고집스런 길은 처음엔 혼자만의 것이다. 그런데 길은 사람을 끌어들여 또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자기만의 어장을 만들고자 살을 에는 바람과 파도에 맞서는 그의 길에 아들이, 부인이 함께 걸어가고자 생명줄을 만들고, 스피커를 준비한다.
혼자 떠나는 길이 처음부터 희망이 되어 주었을 리가 없다. 처음엔 불확실한 동경과 무지가 용기가 되어 떠났을 테고, 그 다음엔 경험이 주는 두려움에 심장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주는 의심과 편견, 불안 속에서 좌절도 겪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길을 나섰고, 그의 발자국은 선재도를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어냈다.
3개월만 있으면 난 다시 떠날 거다.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학원은 내가 가려던 도중(道中)에 잠시 쉬었던 정거장일 뿐이었고 그 정거장을 떠나려면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에게 바다는 목적이 아닌 도중의 정거장이었고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바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언가’였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가고자 했던 길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쉬어보려고 갔던 선재도에서 생의 전장(戰場)을 봐 버렸다. PSSP
김연용 사진과 글, 휴먼&북스
나는 학원강사다. 매일 2시 반까지 출근하며(토요일 1시 40분까지) 퇴근은 11시 ~ 12시 사이에 한다. 수업은 5시 40분부터 시작해서 매일 7~8Time(1Time = 40분)을 뛰고 있으며 기껏해야 쉬는 시간은 사이사이 5분. 담임반은 전반, 후반 각각 1반씩 맡고 있고, 애들은 한 반에 20명 안팎이다. 그러니 내가 맡는 아이들은 총 40명이며, 걷어야 하는 갖가지 안내문에 성적표에 학생상담에 전화상담에.... 이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또 기말고사기간이다. 흐흐흐흐 그러면 보충수업에 일요일수업에 쉴 수도 없다. 학원강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학원원장과 같은 사업주 개념이다. 남들 쉬는 빨간 날.. 우린 못 쉰다. 아이들이 퇴원이라도 할라치면 교무회의 시간에 불호령을 듣는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 내가 사랑하지 않은 아이는 지금까지 총 15명이고, 아이 당 5만원씩 깎였다.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다녔으니 기껏해야 9개월 차라고 말할지 몰라도 9개월이나 됐는데 일이 손에 안 감긴다. 좀 편해질 만도 한데 그게 안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 선생들 다 그렇단다. 그럼 우리 학원이 문젠가? 그렇단다. 우리 동네에서 가지 말아야 하는 학원에 꼽혀 학강모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학원이란다. 떠나버려야지. 3개월 남았다. 3개월~~!!!!!
그런데 어디로 떠나나.. 어디로?
1. 탁 트인 바다와 개 세 마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항상 떠올리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다‘
인줄 안다. 개인적으로 산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허구헌날 밤 12시까지 형광등 밑에서 갇혀서 규칙적인 일상을 제대로 맛 보다보니 탁 트인 바다가 주는 시원함이 그렇게나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시원한 바닷물에 달궈진 머리를 처억 하니 담그면 ‘치익’ 소리가 나면서 김이 날거야. 게다가 세 마리 개가 입구에서 반겨주고 있지 않은가..! 어쩜 우리 집 개들하고 숫자도 꼭 같은지.. 날 반겨주는 그 곳의 이름은 ‘선재도’. 서해의 작은 섬이다.
2. 아버지. 눈 먼 어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고향》 중 73p
대장장이였고, 목수였고, 운전사이자 뻥튀기 아저씨이기도 했던 김연용 씨의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9년 전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몇 달간의 방황 끝에 바다로 발길을 돌린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집에서 10리나 되는 갯벌을 향해 걸어간다. 시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마에 닿는 햇볕과 두 뺨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집과 어장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 곳은 펄떡이는 우럭과 놀래미가 그를 기다리고 있으며 광주리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쏠쏠한 살림밑천이 되어 준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했고 그렇게 자기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쓸모없는 눈 먼 늙은이로 주저앉아 버린다는 건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바다로 향하면서 희망을 건져 올렸을 게다.
그런데. 그 길은 갯벌 위의 길이다. 오늘 갔던 그 길이 내일 있으리란 법이 없다. 오전에 갔던 길이 오후가 되면 사라져 버린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아버지는 그렇게 바다를 고집하면서 ‘사는 법’을 깨우쳐 갔다.
3. 발자국
아무도 내 발자국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내 의지로 발을 떼었을 때,
그 때라야 비로소...
내 발자국이 새겨지는 것이다.
-69p
그가 고집하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냥 바다였을 것이다. 발자국을 남겨두지 않는 고집스런 길은 처음엔 혼자만의 것이다. 그런데 길은 사람을 끌어들여 또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자기만의 어장을 만들고자 살을 에는 바람과 파도에 맞서는 그의 길에 아들이, 부인이 함께 걸어가고자 생명줄을 만들고, 스피커를 준비한다.
혼자 떠나는 길이 처음부터 희망이 되어 주었을 리가 없다. 처음엔 불확실한 동경과 무지가 용기가 되어 떠났을 테고, 그 다음엔 경험이 주는 두려움에 심장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주는 의심과 편견, 불안 속에서 좌절도 겪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길을 나섰고, 그의 발자국은 선재도를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어냈다.
3개월만 있으면 난 다시 떠날 거다.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학원은 내가 가려던 도중(道中)에 잠시 쉬었던 정거장일 뿐이었고 그 정거장을 떠나려면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에게 바다는 목적이 아닌 도중의 정거장이었고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바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언가’였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가고자 했던 길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쉬어보려고 갔던 선재도에서 생의 전장(戰場)을 봐 버렸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