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또 보알의 연극 메소드 (원제 : 욕망의 무지개)
가끔 집회나 문화제를 볼 때 상당한 갑갑함을 느낀다. 특히 민중들의 분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동안에 그럴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한 분노를 결집시켜 저항과 전복의 대오로 몰아쳐 가야할 집회나 문화제가 오히려 폭발하는 감정들을 억누르고 제어하는 듯 보일 때 그 갑갑함은 심해진다.
얼마 전 파병반대 집회에서도 같은 기분이었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해서 대열의 바깥쪽에 앉은 나는 무대보다는 대열 쪽을 보게 되었는데, 비가 오는 데에도 불구하고 빽빽하게 열을 맞추어 발언과 공연을 보고 있는 그 대열에서 갑갑함이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고 김선일 씨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충격과 분노와 불안함으로 거리에 모인 인파 앞에는 커다란 무대와 스크린이 있었고, 갖가지 공연과 발언들이 이어졌다. 무대 위의 공연이나 발언들이 운집해 있는 군중들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겠지만,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느낌들이 하나로 뭉쳐저 무대와 어우러지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소진되어 가는 듯이 보였다.
대열에 있는 동지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뒤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한 쪽 길가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보았더니, 기타, 바이올린, 만돌린에서부터 캐스터네츠(짝짝이), 막대기 두 개, 그것도 아닌 사람은 박수를 치거나 종이에 전쟁반대문구를 쓰며 자신들이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문화제 소리가 너무 커서 그들의 음악소리는 멀리 들리진 않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이 대열과 함께 파병을 반대하러 온 사람들이고 노무현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알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리고 일렬로 앉아 난타공연과 살풀이 공연을 열심히 보고 있는 저 대오는 과연 자신들의 분노와 공포와 두려움들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저 다른 이들에 의하여 감정들이 대리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 무뎌지거나 익숙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갑갑함도 거기에서 오는 것일까.
간단한 문제는 아닌지라 뭘 어쩌자는 건지 묻는 다면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지만, TV에서 가끔 나오는 퍼레이드 같은 광경을 쉽게 상상해 보게 된다. 다들 무엇 하나씩을 들고 나와서 자신이 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음을, 충분히 기쁘게 즐기고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그런 개개인의 감정들이 전체의 퍼레이드에 엄청난 에너지를 실어주는 장면 말이다. 우리가 그 보다 훨씬 절실하게 서게 되는 자리들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앞서 얘기했듯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광장을 만들어 준다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준비해 오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고(당장 나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익숙하지고 않고, 부담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난타나 살풀이 공연, 영상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그런 공연들을 이해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한 듯 하다. 비단 집회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교통하며 갈등들을 해결해 나가는 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중요해 보이고...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시작점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한 법. 나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제시하는 연극론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중요한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을 보알의 연출사와 저작 『아우구스또 보알의 연극 메소드』를 통해 소개해 본다.
보알은 1931년 브라질에서 태어나 미국의 대학에서 연극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1957년에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예술을 민족해방투쟁의 유의미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창설된 상파울로 원형극장에서 연출작업을 시작한다. 이 무렵의 그의 연극은 매우 선동적이었다고 하며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많은 역량을 투여했다. 그의 선동극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화려함이나 고도의 미학적인 기법들을 배격하고 원형의 무대에서 관객들과의 폭넓은 교감을 중시했던 원형극장의 지향과 무대의 정치적인 기능을 신뢰하는 자신의 이상에 따라 여러 지방-특히 농촌에서 많은 공연을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 그는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공연을 보고 감격한 한 농민이 함께 지주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하자고 한 것이다. 이것은 연극일 뿐이고 배우들은 총을 들 수 없다는 설명을 하면서 보알은 선동이 가지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관객들에게 주제와 사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지양하는 다른 방식의 연극 실험들을 시도한다.
당시 브라질의 정치적인 연극의 흐름을 선도하던 극작가/연출가들의 세미나 속에서 그는 공연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을 요구하는 극작/연출법을 개발한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브라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극의 요소를 융합해 유럽의 고전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브라질의 브레히트'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와 극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었던 그는 인물을 고정시키지 않고 장면에 따라 배우들을 재배치하고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이중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당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던 군부세력에 저항하는 연극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1년 브라질에서 추방된 그는, 이후 남미 각지를 순회하면서 연극적인 실험들을 계속하는데,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의 정치적인 이슈를 극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채 배우들이 일상에 침투해서 연기하고, 주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극 속으로 참여하는 '보이지 않는 연극'을 개발한다. 사람들은 배우들이 만든 극적인 공간에서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른 의견들과 대결하며 대안들을 모색해 나갔다. 연극의 공간이 상호적인 개입과 토론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연극에 대한 생각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파격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앞서 말한 극에서의 상황에 따른 역할 바꾸기와 관객이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열린 연극의 형식은 토론 연극이라는 장르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토론연극에서는 갈등적인 상황들을 배우가 연기하면 관객들이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 할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즉시 배우들에 의해 의견들이 형상화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다시 토론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갈등의 해결을 무대라는 공간에서 여러 방향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예행연습'의 장으로써 기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토론연극은 가끔 난관에 봉착하는데, 관객들의 주장이 배우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고, 그 중에는 극을 진행하는 것이 힘들 정도가 되는 때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전히 관객은 극에서 완전히 주체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개입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한계지점들이 그에게는 연극/무대라는 공간을 다시금 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이 탄생한다.
그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사고한다. 인간과 연극과의 관계, 무대와 관객, 배우와의 관계...그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무대라는 '미적 공간'에서는 모든 것들이 허용{{) '이곳은 식당이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순간 그 공간은 식당으로 합의된다.
}}되고 관객-배우는 그 공간을 이용해 자신에게 억압되어 있는 것들을 표현함으로써 억압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이겨내고 억압되지 않은 나, 해방된 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집단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성찰이 가능하다. 따라서 관객과 배우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미적공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교감하려는 관객-배우만이 존재하게 된다. 억압을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연극은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현실에 정면으로 대처하는 역동적인 그것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의 대표적인 기법인 '머리속의 경찰' 기법을 통해 그의 생각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각종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그중에는 법이나 처벌 같은 외적인 강제가 있는 한 편, 스스로가 자신을 억압하는 내적인 강제가 있는데, 이 기법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 내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먼저, 주인공은 그가 필요로 하는 배우들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즉흥극을 연기한다. 연출자는 극에 나타난 경찰의 이미지를 주인공과 관객들에게 물어보고 주인공이 동의하는 경찰의 이미지를 관객-배우 중에서 뽑아 정지된 이미지로 만든 다음 배치하게 한다. 이 때 자신에게 더욱 억압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가까이, 그렇지 않은 것은 멀리 놓는 식으로 그 배치가 의미를 지니도록 한다. 배치가 완료된 다음 주인공은 그 사이를 다니며 이미지들에 있는 자신의 기억을 말하게 한다. 다음에는 그 이미지들 사이로 즉흥극을 다시 해본다. 무대에는 억압의 이미지와 실제 인물들이 동시에 있게 되고 주인공은 그 둘과 동시에 대화를 한다. 극이 끝나면 원하는 사람들은 한명씩 무대에 나와 경찰들을 이기는 자신의 의견을 짧게 말한다(번개공청회). 경찰들을 무찌를 수 있는 제안들로 무장한 주인공은 이미지들과 하나씩 싸우고 그의 방식을 이해한 관객-배우가 나와 각각의 이미지의 항체가 된다. 항체들이 완성되면 경찰과 항체들의 싸움이 동시에 시작되고 주인공은 그 사이를 누비며 극에 개입하거나 싸움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대한 토론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얘기하는 것으로 하나의 극이 끝난다.
내가 보기에 이 기법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억압을 정말 다양한 위치에서 경험하게 된다. 현상적인 측면(즉흥극)에서 경찰들 각각으로 분리하고 각자와 대결하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실제와 이미지의 차이도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억압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해서도 약간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으며 후에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억압에 대항하는 자신의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정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욕망의 다양성을 일깨워주는 기법인 '욕망의 무지개' 등 여러 가지 기법들이 이론적인 배경과 풍부한 실제사례들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국내에 출간된 보알의 다른 저작들도 추천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압적인 극체계나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론의 한계에 대한 보알의 이론적 접근에 대해서는 민중연극론(원제 : The Theatre of the Oppressed)을,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법들과 이들을 사용하기 위한 훈련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배우와 일반인을 위한 연기훈련(원제 : Games for Actors and Non-actors)을 참고하라. 아쉽게도 모두 절판이 된 상태이긴 하지만.
}}, 얼핏 보면 극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심리극의 방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치료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집단적으로 표현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거기에 개입함으로 관객-배우 전체가 집단적으로 치유되고 또한 억압에 대해 저항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장으로써 기능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억압되어 있음, 분노하고 있음,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들이 표현될 때 교통할 수 있으며 해결이 가능하고, 또한 그런 과정이 집단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보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들의 요구를 극으로 만들어 입법의 과정에 반영하는 입법연극의 기법을 실험하고, 그를 위해서 국회에도 출마했다고 하는데, 97년에 우리나라에서 워크샵을 진행했던 이후로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에도 욕망의 무지개, 토론연극, 이미지연극 등의 기법을 사용하는 解라는 극단({{{{http://www.hae.or.kr
}}
}}/)이 있다. 참가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이긴 하지만 극단 解의 워크샵에 기회가 닿는 대로 참여해 볼 생각이다.
}}. 그의 시도들을 당장에 벌여나갈 수는 없겠지만 연극을 가장 적극적인 투쟁의 공간으로 사고하고 예술적 표현을 대중의 권리로 끊임없이 위치지우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은 오래도록 나에게 하나의 지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여러분이 나와 함께 있었고 난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치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꿈은 더 이상 날 겁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나였고 그래서 모든 것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파병반대 집회에서도 같은 기분이었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해서 대열의 바깥쪽에 앉은 나는 무대보다는 대열 쪽을 보게 되었는데, 비가 오는 데에도 불구하고 빽빽하게 열을 맞추어 발언과 공연을 보고 있는 그 대열에서 갑갑함이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고 김선일 씨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충격과 분노와 불안함으로 거리에 모인 인파 앞에는 커다란 무대와 스크린이 있었고, 갖가지 공연과 발언들이 이어졌다. 무대 위의 공연이나 발언들이 운집해 있는 군중들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겠지만,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느낌들이 하나로 뭉쳐저 무대와 어우러지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소진되어 가는 듯이 보였다.
대열에 있는 동지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뒤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한 쪽 길가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보았더니, 기타, 바이올린, 만돌린에서부터 캐스터네츠(짝짝이), 막대기 두 개, 그것도 아닌 사람은 박수를 치거나 종이에 전쟁반대문구를 쓰며 자신들이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문화제 소리가 너무 커서 그들의 음악소리는 멀리 들리진 않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이 대열과 함께 파병을 반대하러 온 사람들이고 노무현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알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리고 일렬로 앉아 난타공연과 살풀이 공연을 열심히 보고 있는 저 대오는 과연 자신들의 분노와 공포와 두려움들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저 다른 이들에 의하여 감정들이 대리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 무뎌지거나 익숙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갑갑함도 거기에서 오는 것일까.
간단한 문제는 아닌지라 뭘 어쩌자는 건지 묻는 다면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지만, TV에서 가끔 나오는 퍼레이드 같은 광경을 쉽게 상상해 보게 된다. 다들 무엇 하나씩을 들고 나와서 자신이 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음을, 충분히 기쁘게 즐기고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그런 개개인의 감정들이 전체의 퍼레이드에 엄청난 에너지를 실어주는 장면 말이다. 우리가 그 보다 훨씬 절실하게 서게 되는 자리들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앞서 얘기했듯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광장을 만들어 준다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준비해 오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고(당장 나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익숙하지고 않고, 부담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난타나 살풀이 공연, 영상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그런 공연들을 이해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한 듯 하다. 비단 집회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교통하며 갈등들을 해결해 나가는 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중요해 보이고...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시작점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한 법. 나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제시하는 연극론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중요한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을 보알의 연출사와 저작 『아우구스또 보알의 연극 메소드』를 통해 소개해 본다.
보알은 1931년 브라질에서 태어나 미국의 대학에서 연극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1957년에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예술을 민족해방투쟁의 유의미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창설된 상파울로 원형극장에서 연출작업을 시작한다. 이 무렵의 그의 연극은 매우 선동적이었다고 하며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많은 역량을 투여했다. 그의 선동극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화려함이나 고도의 미학적인 기법들을 배격하고 원형의 무대에서 관객들과의 폭넓은 교감을 중시했던 원형극장의 지향과 무대의 정치적인 기능을 신뢰하는 자신의 이상에 따라 여러 지방-특히 농촌에서 많은 공연을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 그는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공연을 보고 감격한 한 농민이 함께 지주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하자고 한 것이다. 이것은 연극일 뿐이고 배우들은 총을 들 수 없다는 설명을 하면서 보알은 선동이 가지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관객들에게 주제와 사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지양하는 다른 방식의 연극 실험들을 시도한다.
당시 브라질의 정치적인 연극의 흐름을 선도하던 극작가/연출가들의 세미나 속에서 그는 공연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을 요구하는 극작/연출법을 개발한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브라질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속극의 요소를 융합해 유럽의 고전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브라질의 브레히트'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와 극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었던 그는 인물을 고정시키지 않고 장면에 따라 배우들을 재배치하고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이중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당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던 군부세력에 저항하는 연극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1년 브라질에서 추방된 그는, 이후 남미 각지를 순회하면서 연극적인 실험들을 계속하는데,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의 정치적인 이슈를 극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채 배우들이 일상에 침투해서 연기하고, 주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극 속으로 참여하는 '보이지 않는 연극'을 개발한다. 사람들은 배우들이 만든 극적인 공간에서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른 의견들과 대결하며 대안들을 모색해 나갔다. 연극의 공간이 상호적인 개입과 토론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연극에 대한 생각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파격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앞서 말한 극에서의 상황에 따른 역할 바꾸기와 관객이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열린 연극의 형식은 토론 연극이라는 장르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토론연극에서는 갈등적인 상황들을 배우가 연기하면 관객들이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 할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즉시 배우들에 의해 의견들이 형상화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다시 토론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갈등의 해결을 무대라는 공간에서 여러 방향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예행연습'의 장으로써 기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토론연극은 가끔 난관에 봉착하는데, 관객들의 주장이 배우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고, 그 중에는 극을 진행하는 것이 힘들 정도가 되는 때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전히 관객은 극에서 완전히 주체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개입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한계지점들이 그에게는 연극/무대라는 공간을 다시금 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이 탄생한다.
그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사고한다. 인간과 연극과의 관계, 무대와 관객, 배우와의 관계...그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무대라는 '미적 공간'에서는 모든 것들이 허용{{) '이곳은 식당이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순간 그 공간은 식당으로 합의된다.
}}되고 관객-배우는 그 공간을 이용해 자신에게 억압되어 있는 것들을 표현함으로써 억압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이겨내고 억압되지 않은 나, 해방된 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집단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성찰이 가능하다. 따라서 관객과 배우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미적공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교감하려는 관객-배우만이 존재하게 된다. 억압을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연극은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현실에 정면으로 대처하는 역동적인 그것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의 대표적인 기법인 '머리속의 경찰' 기법을 통해 그의 생각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각종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그중에는 법이나 처벌 같은 외적인 강제가 있는 한 편, 스스로가 자신을 억압하는 내적인 강제가 있는데, 이 기법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 내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먼저, 주인공은 그가 필요로 하는 배우들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즉흥극을 연기한다. 연출자는 극에 나타난 경찰의 이미지를 주인공과 관객들에게 물어보고 주인공이 동의하는 경찰의 이미지를 관객-배우 중에서 뽑아 정지된 이미지로 만든 다음 배치하게 한다. 이 때 자신에게 더욱 억압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가까이, 그렇지 않은 것은 멀리 놓는 식으로 그 배치가 의미를 지니도록 한다. 배치가 완료된 다음 주인공은 그 사이를 다니며 이미지들에 있는 자신의 기억을 말하게 한다. 다음에는 그 이미지들 사이로 즉흥극을 다시 해본다. 무대에는 억압의 이미지와 실제 인물들이 동시에 있게 되고 주인공은 그 둘과 동시에 대화를 한다. 극이 끝나면 원하는 사람들은 한명씩 무대에 나와 경찰들을 이기는 자신의 의견을 짧게 말한다(번개공청회). 경찰들을 무찌를 수 있는 제안들로 무장한 주인공은 이미지들과 하나씩 싸우고 그의 방식을 이해한 관객-배우가 나와 각각의 이미지의 항체가 된다. 항체들이 완성되면 경찰과 항체들의 싸움이 동시에 시작되고 주인공은 그 사이를 누비며 극에 개입하거나 싸움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대한 토론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얘기하는 것으로 하나의 극이 끝난다.
내가 보기에 이 기법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억압을 정말 다양한 위치에서 경험하게 된다. 현상적인 측면(즉흥극)에서 경찰들 각각으로 분리하고 각자와 대결하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실제와 이미지의 차이도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억압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해서도 약간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으며 후에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억압에 대항하는 자신의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정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욕망의 다양성을 일깨워주는 기법인 '욕망의 무지개' 등 여러 가지 기법들이 이론적인 배경과 풍부한 실제사례들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국내에 출간된 보알의 다른 저작들도 추천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압적인 극체계나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론의 한계에 대한 보알의 이론적 접근에 대해서는 민중연극론(원제 : The Theatre of the Oppressed)을,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법들과 이들을 사용하기 위한 훈련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배우와 일반인을 위한 연기훈련(원제 : Games for Actors and Non-actors)을 참고하라. 아쉽게도 모두 절판이 된 상태이긴 하지만.
}}, 얼핏 보면 극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심리극의 방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치료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집단적으로 표현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거기에 개입함으로 관객-배우 전체가 집단적으로 치유되고 또한 억압에 대해 저항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장으로써 기능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억압되어 있음, 분노하고 있음,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들이 표현될 때 교통할 수 있으며 해결이 가능하고, 또한 그런 과정이 집단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보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들의 요구를 극으로 만들어 입법의 과정에 반영하는 입법연극의 기법을 실험하고, 그를 위해서 국회에도 출마했다고 하는데, 97년에 우리나라에서 워크샵을 진행했던 이후로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에도 욕망의 무지개, 토론연극, 이미지연극 등의 기법을 사용하는 解라는 극단({{{{http://www.hae.or.kr
}}
}}/)이 있다. 참가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이긴 하지만 극단 解의 워크샵에 기회가 닿는 대로 참여해 볼 생각이다.
}}. 그의 시도들을 당장에 벌여나갈 수는 없겠지만 연극을 가장 적극적인 투쟁의 공간으로 사고하고 예술적 표현을 대중의 권리로 끊임없이 위치지우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은 오래도록 나에게 하나의 지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여러분이 나와 함께 있었고 난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치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꿈은 더 이상 날 겁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나였고 그래서 모든 것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