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연합회 회장 이강택 회원을 만났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KBS본관에 위치한 PD연합회 사무실에서 이강택 회원을 만났습니다. 현재 PD연합회의 회장으로 활동하는 이강택 회원은 현재 선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사다큐를 제작하려고 준비 중인 이강택 회원은 그 동안 활동했던 것과 디지털 TV문제, 그리고 방송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Q. PD연합회를 소개해주세요.
A. PD연합회의 회원은 2500여명인데, KBS, EBS, MBC, SBS, 민방, 라디오 방송사 등 전국 지상파, 공중파에서 일하는 PD들이 회원 대상이예요.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는 사람 중 케이블, 위성, 외주 제작사의 PD는 제외하고 있구요. 그러니까 PD연합회는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자기정체성을 가졌다고 보면 될 겁니다.
주로 하는 일은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 도구였던 TV방송이 90년대 상업방송 출범으로 자본의 도구, 기득권 집단의 도구가 되었죠. 이에 반대하고 시민들에 의한 제대로 된 프로그램,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방송의 심의나 조·중·동의 여론몰이,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는 것을 1차적 역할로 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방송 구도의 문제'가 있는데, 외세, 권력 등 누군가의 돈벌이와 자신의 선전을 위해 방송이 사용되는 것을 막고 적절히 비판할 필요가 있거든요. 또, 방송의 공공성을 배가하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기도 해야하구요. 이를 위해 현재 정책 역량을 배가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Q.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소감 한 말씀
A. 사실 프로그램 제작부서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특히, KBS 자체 내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많은 조건을 바꿔냈거든요. 정권의 일방적인 사장임명을 저지해냈고, 새롭게 온 사장과 인사제도와 제작구조, 의사구조의 민주화를 위해 제시한 우리의 정책들이 관철된 상황이예요. 즉 인프라는 상당히 개선된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여건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가? 이런 개선된 인프라가 시민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사실, 자체적 역량의 문제와 한계로 인해 공간이 열려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의 정세를 단순히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로 볼 수 없고, 외세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자유주의와 수구세력 사이에서 '반(反)수구세력' 정도의 정파성을 띤 프로그램이 현재의 현실을 제대로 조망하고 있는 건가. 현실을 제대로 조망해내는 방향과 해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가. 이런 고민을 풀어갈 만한 컨텐츠를 마련하기 위해 프로그램 제작부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우선, 제대로 된 윈도우를 위해 시사프로그램 연구회를 만들 계획입니다. 마음이 무척 급한데...프로그램 만들 때는 사회전반의 문제에 밀착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언론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밀착도가 떨어진 것 같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해야죠.
Q. 사회진보연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2000년 여름 5월이었나, 6월이었나. 미국대선 끝나고 미국 관련 특집 "팍스 아메리카는 계속되는가" 5부작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자문 구하러 다니다가 김성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을 통해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당시 간부의 외압으로 프로그램은 연기되어 결국 방송은 못하게 되었는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멕시코 10년', 'IMF 이후 평가'를 주제로 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던 것도 모두 못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연합회 일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는 외압도 강했고 현업자 단체도 무력했던 상황이었죠. 그 때 전 제작 부서를 떠나 운영 부서로 옮겼고 직장을 옮기려는 계획까지 세우던 찰나였는데, 후배들이 만류하더군요. 그 때 생각했죠.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부끄럽기도 했고,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원 없이 싸워나 보고 떠나자'라는 결심이 섰어요. 원 없이 붙어보고 떠나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지막 승부라는 각오가 생기고 지금은 많은 것을 바꿔낸 상황이죠. 물론 아쉬운 것도 있는데, 주체를 준비하는데 소홀했다고 할까요? 주체역량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소위 그 동안의 언론(인)운동의 한계를 과감히 깨뜨려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주체의 준비와 기존 주체의 정화에서 아쉬움이 남죠. 많은 부분, 조·중·동과 싸우느라 역량이 소진된 측면도 많구요.
Q. 탄핵사태나 현재 파병국면을 다루는 TV와 신문의 태도가 무척 다른 것 같은데, 언론개혁에 대한 입장은
A. 방송은 친(親)노 매체, 신문은 반(反)노 매체라는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구도로는 '언론개혁'이란 말을 붙이기 힘들죠. 둘 다 개혁되어야 하니까요. 방송은 신문우선론을 펴는데 언론개혁이 이런 구도 속에서 어떤 진정성을 갖겠어요? '반(反)수구냐' 정도의 쟁점으로 한정될 수 없죠. 실제 이런 구도가 탄핵 때, 파병, BIT/FTA등의 문제들을 얘기할 수 없도록 만들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디지털 TV 논쟁은 근본적으로 공공성 실현보다 현재 구도에서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이예요. 하지만, 이건 특정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방송·신문이 어떻게 존재해야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있는 것이거든요. 언론개혁이라는 것이 어느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상황에서 언론운동하는 사람의 반성이 필요한거죠. 언론개혁 국민행동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자유주의자들의 대부분이 언론판을 장악한 상황인데 체질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구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개혁 국민행동에 민중운동단체가 명의만 빌려주고 있다는 것이 아쉽죠.
Q. 디지털 TV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은
A. 현재 '유럽식 디지털 TV냐, 미국식 디지털 TV냐' 라는 논쟁에서 미국식으로 타결된 상황이예요. 그런데 디지털 TV 도입문제가 왜 기술방식의 문제로 국한되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죠. "왜 필요하고 어떤 서비스를 하고 도대체 디지털 TV는 무엇이냐"는 것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되어야만 필요한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도입의 목적이 보다 분명해지겠죠. 그래야 이윤이 목적이냐, 시민에 대한 서비스문제냐가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용의 문제도 있습니다. 즉, 어떤 콘텐츠로 채워낼 것인가. TV수신기를 사야할 때, 누가 돈을 부담할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 TV는 언제 시행하고 언제까지 할 것인가. 아날로그는 누구의 비용으로 폐기되고 누구에게 배분될 것인가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어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상황이죠.
디지털 TV의 문제가 기술문제로 국한된 것은 지배세력의 이익 때문입니다. 물론 디지털 TV에 시민 측이 참여했다는 의의가 있을지 모르나, 의제설정과 합의의 과정이 지배세력에 의해 결정되었고, 부정확한 정보가 선전, 선동차원에서 이용되기도 했어요. 특히, 유럽식을 주장한 사람(기술인 연합회와 MBC, 방송협회 일부)이 미국식 디지털 TV의 문제를 공격할 때, 부정확한 정보가 근거로 동원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논의는 전반적으로 다뤄져야 할 부분을 가리는 효과를 낳았어요. 유럽식이 기술적 우위가 있고 단말기가 싸고 이동식이라 좋다는 것이 유럽식을 옹호한 사람들의 주장이었죠. 미국식은 수상기가 비싸고 고정식이라 소수를 위한 것이고 대미종속성과 밀실합의의 반영이라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이동식에 있어서 위성DMB는 SK가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즉, 이동수신 때 유료라는 것은 있는 자만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이며, 이 때 방송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일 뿐이죠. 현재 위성DMB에 많은 혜택이 주어지고 있어요. 신규고용의 효과가 있다는 선전으로 포장되어 힘을 얻고, 정부는 규제도 풀어주고 있어요. 이렇게 가서는 안됩니다. 기존 문화의 권리, 시민권(시청자의 권리)이 아니라 소비자, 산업의 원리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TV 논의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폭이 넒어져야 합니다. 방송현업단체들이 주도를 하고 일부시민단체가 결합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리된 담론도, 수준이 낮고 심지어 부정확하기도 하구요. 좀 더 논의의 폭을 넓히고 보다 쉽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해요. 현재 주도 단체의 대표성 역시 한정적인 것이 사실이구요.
Q. 방송시장 개방과 관련한 입장
A. 방송시장에서 자본은 이미 개방되어 있어서 현재 33%에서 50%까지 외국인투자지분이 확대되었습니다. 케이블의 경우, 외국채널이 그냥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개방은 아닌 것이 지상파가 외국인 지분제한과 외국프로그램 제한 규정에 묶여 있다는 부분입니다. 현재 방송법은 자국 프로그램 방영을 80% 이상으로 묶어놓고 있거든요.
현재 우리 방송이 시장개방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어요. 왜냐면 그동안 우리 프로그램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도 하고 외국 프로그램이 수입될 때 나라마다 언어, 정서적 차이로 시청률이 떨어지는 경향(문화적 할인, Cultural Discount)이 있는데 이런 근거로 낙관론을 펼치는 것이죠. 근거 없는 낙관론이라고 봐요. 또한 현재 방송시장 개방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서 빗장을 열어야 밖에서 이윤이 생기는 자들이 생겼다는 것이죠. 특히 SBS가 그렇습니다. 디지털TV 시대에는 제작비가 2배가 드는데, 한 방에 시청률을 독점하는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를 위한 돈을 확보하는 기회로 외국인 투자유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인 것이죠. 현재 SBS는 외자유치를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외국인이 방송국을 소유하게 되면, 사유화와 시장개방은 함께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SBS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구요. 모든 방송국은 이익의 5.5%를 방송발전기금으로 내야하는데, 외국인 소유주가 가만있을 턱이 없죠. 또, 방송 상업화가 가속화될 것입니다. 광고제도가 도하개발의제(DDA)에서는 합의의제로 잡힌 상태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매 프로그램마다 방송할 수 있는 광고가 제한되어 있는데 이것을 광고총량제로 바꾸려 들고 입습니다. 즉, 킬러 콘텐츠 앞에 광고가 몰리면서 광고수량, 액수에 제한이 사라지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방송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방송 프로그램의 종 다양성은 사라지고 상업화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죠.
현재 스크린 쿼터에 대한 쟁점도 방송시장 개방의 쟁점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시대, 문화적 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보게되면, 문화적인 할인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거죠. 결국 제작비들이지 않고 손쉽게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 국내 방송국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죠. 돈을 버는 목적이 프로그램 제작의 전부가 되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현재 케이블이나 지역민방은 이미 SBS의 네트워크로 전락한 상황에서 지역과 함께 하는 방송이라는 취지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더군다나 위성프로 채널10개가 생기는데, 이 채널이 외국 콘텐츠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할 것이라 더욱 위험한 상황이죠. 현재 공중파 전체 시청률이 10% 줄어들었고 그 시장을 이런 채널이 파고들고 있어요. 기업은 돈만 되면 방송을 만들 것이고, 정부는 기술만 되면 하게 해주고 있어요. 미디어란 무엇이고,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고, 누구에게 서비스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이 사라진 것이죠.
근데, 조·중·동의 경우, 시장개방 할 것을 찬성하고 있어요. 현재 인쇄매체의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방송매체를 병행할 수밖에 없거든요. 신문사로서는 사유화가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죠. 외세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구요. 미국은 5개의 그룹이 방송을 다 재편하고 있어요. 신문사, 재벌, SBS, 지역민방들의 이해관계는 그들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Q. 방송사 비정규직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A. 과거 우리 방송은 정권에 복종하면 경제적 이익은 자동적으로 뒷받침되었어요. 국가에 의한 독과점이었죠. 그 때는 광고도 넘쳐났고 배분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과잉투자가 됐고, 과잉설비, 과잉인력이 발생했죠. 이것이 IMF이후 구조조정 압력이 생기면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대한 불안한 전망 때문에 비정규직화 되었습니다. 작가를 비정규직으로 끌어내려 유지하는 시스템이 된 것이죠. 구조조정은 필요하나, 어떤 관점에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필요 없는 관료들이 아직 있어요. 또, 잘 나가던 시절 중복투자된 부분도 있구요. 새로운 기술을 지연시키는 부분도 있는데 공공연한 비밀이죠. 압력을 전가하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행정·고위관료·과잉투자된 기술관련 종사자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해요. 제대로 된 콘탠츠를 만들기 위한 제작관련 인력은 비정규직이 되어서는 안되죠. KBS의 경우, 500명의 고위관료를 200명으로 줄이고 300명을 직위를 낮춰 의사결정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어요. 지역 방송국의 경우 실제 유명무실했던 시스템을 바꿔 일반 국민들에게 필요한 지역미디어센터로 만들려고 하구요. 이 시대, 누가 저널리스트인가? 예전에는 기자였고, 현재는 시사프로그램 PD가 포함되고, 또 앞으로는 작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주체가 누구인가 재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언론도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해 그 범위를 넓혀야 하구요.
Q. 사회진보연대에 바라는 점
A. 기본적으로 사회진보연대의 회원으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회원이 된 것도 후배들이 열심히 고민하고 자기 좌표를 가지고 산다는 것에 감동해서였구요. 이후, 매체를 보고 공부하고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계기로 도움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민중운동 내에서의 사회진보연대의 위상과 역할에 상관없이 여전히 회원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 자체로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굳이 바라는 바를 얘기한다면, 이야기의 진도가 안나간다는 감도 있어요. 구체성의 결여도 보이구요. 좀 어렵겠지만, 좀 더 풍부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정세란 전면적인 것이니까요. 다차원적인 역량이 필요하기도 한데, 민중운동에 국한된 쟁점을 가지고 얘기하는 느낌도 있어요.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다 폭넓게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칠다는 기분이구요. 사실 무척 조심스러운데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대답해주신 이강택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PSSP
Q. PD연합회를 소개해주세요.
A. PD연합회의 회원은 2500여명인데, KBS, EBS, MBC, SBS, 민방, 라디오 방송사 등 전국 지상파, 공중파에서 일하는 PD들이 회원 대상이예요.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는 사람 중 케이블, 위성, 외주 제작사의 PD는 제외하고 있구요. 그러니까 PD연합회는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자기정체성을 가졌다고 보면 될 겁니다.
주로 하는 일은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 도구였던 TV방송이 90년대 상업방송 출범으로 자본의 도구, 기득권 집단의 도구가 되었죠. 이에 반대하고 시민들에 의한 제대로 된 프로그램,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방송의 심의나 조·중·동의 여론몰이,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는 것을 1차적 역할로 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방송 구도의 문제'가 있는데, 외세, 권력 등 누군가의 돈벌이와 자신의 선전을 위해 방송이 사용되는 것을 막고 적절히 비판할 필요가 있거든요. 또, 방송의 공공성을 배가하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기도 해야하구요. 이를 위해 현재 정책 역량을 배가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Q.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소감 한 말씀
A. 사실 프로그램 제작부서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특히, KBS 자체 내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많은 조건을 바꿔냈거든요. 정권의 일방적인 사장임명을 저지해냈고, 새롭게 온 사장과 인사제도와 제작구조, 의사구조의 민주화를 위해 제시한 우리의 정책들이 관철된 상황이예요. 즉 인프라는 상당히 개선된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여건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가? 이런 개선된 인프라가 시민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사실, 자체적 역량의 문제와 한계로 인해 공간이 열려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의 정세를 단순히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로 볼 수 없고, 외세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자유주의와 수구세력 사이에서 '반(反)수구세력' 정도의 정파성을 띤 프로그램이 현재의 현실을 제대로 조망하고 있는 건가. 현실을 제대로 조망해내는 방향과 해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가. 이런 고민을 풀어갈 만한 컨텐츠를 마련하기 위해 프로그램 제작부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우선, 제대로 된 윈도우를 위해 시사프로그램 연구회를 만들 계획입니다. 마음이 무척 급한데...프로그램 만들 때는 사회전반의 문제에 밀착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언론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밀착도가 떨어진 것 같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해야죠.
Q. 사회진보연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2000년 여름 5월이었나, 6월이었나. 미국대선 끝나고 미국 관련 특집 "팍스 아메리카는 계속되는가" 5부작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자문 구하러 다니다가 김성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을 통해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당시 간부의 외압으로 프로그램은 연기되어 결국 방송은 못하게 되었는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멕시코 10년', 'IMF 이후 평가'를 주제로 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던 것도 모두 못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연합회 일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는 외압도 강했고 현업자 단체도 무력했던 상황이었죠. 그 때 전 제작 부서를 떠나 운영 부서로 옮겼고 직장을 옮기려는 계획까지 세우던 찰나였는데, 후배들이 만류하더군요. 그 때 생각했죠.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부끄럽기도 했고,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원 없이 싸워나 보고 떠나자'라는 결심이 섰어요. 원 없이 붙어보고 떠나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지막 승부라는 각오가 생기고 지금은 많은 것을 바꿔낸 상황이죠. 물론 아쉬운 것도 있는데, 주체를 준비하는데 소홀했다고 할까요? 주체역량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소위 그 동안의 언론(인)운동의 한계를 과감히 깨뜨려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주체의 준비와 기존 주체의 정화에서 아쉬움이 남죠. 많은 부분, 조·중·동과 싸우느라 역량이 소진된 측면도 많구요.
Q. 탄핵사태나 현재 파병국면을 다루는 TV와 신문의 태도가 무척 다른 것 같은데, 언론개혁에 대한 입장은
A. 방송은 친(親)노 매체, 신문은 반(反)노 매체라는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구도로는 '언론개혁'이란 말을 붙이기 힘들죠. 둘 다 개혁되어야 하니까요. 방송은 신문우선론을 펴는데 언론개혁이 이런 구도 속에서 어떤 진정성을 갖겠어요? '반(反)수구냐' 정도의 쟁점으로 한정될 수 없죠. 실제 이런 구도가 탄핵 때, 파병, BIT/FTA등의 문제들을 얘기할 수 없도록 만들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디지털 TV 논쟁은 근본적으로 공공성 실현보다 현재 구도에서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이예요. 하지만, 이건 특정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방송·신문이 어떻게 존재해야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있는 것이거든요. 언론개혁이라는 것이 어느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상황에서 언론운동하는 사람의 반성이 필요한거죠. 언론개혁 국민행동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자유주의자들의 대부분이 언론판을 장악한 상황인데 체질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구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개혁 국민행동에 민중운동단체가 명의만 빌려주고 있다는 것이 아쉽죠.
Q. 디지털 TV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은
A. 현재 '유럽식 디지털 TV냐, 미국식 디지털 TV냐' 라는 논쟁에서 미국식으로 타결된 상황이예요. 그런데 디지털 TV 도입문제가 왜 기술방식의 문제로 국한되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죠. "왜 필요하고 어떤 서비스를 하고 도대체 디지털 TV는 무엇이냐"는 것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되어야만 필요한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도입의 목적이 보다 분명해지겠죠. 그래야 이윤이 목적이냐, 시민에 대한 서비스문제냐가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용의 문제도 있습니다. 즉, 어떤 콘텐츠로 채워낼 것인가. TV수신기를 사야할 때, 누가 돈을 부담할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 TV는 언제 시행하고 언제까지 할 것인가. 아날로그는 누구의 비용으로 폐기되고 누구에게 배분될 것인가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어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상황이죠.
디지털 TV의 문제가 기술문제로 국한된 것은 지배세력의 이익 때문입니다. 물론 디지털 TV에 시민 측이 참여했다는 의의가 있을지 모르나, 의제설정과 합의의 과정이 지배세력에 의해 결정되었고, 부정확한 정보가 선전, 선동차원에서 이용되기도 했어요. 특히, 유럽식을 주장한 사람(기술인 연합회와 MBC, 방송협회 일부)이 미국식 디지털 TV의 문제를 공격할 때, 부정확한 정보가 근거로 동원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논의는 전반적으로 다뤄져야 할 부분을 가리는 효과를 낳았어요. 유럽식이 기술적 우위가 있고 단말기가 싸고 이동식이라 좋다는 것이 유럽식을 옹호한 사람들의 주장이었죠. 미국식은 수상기가 비싸고 고정식이라 소수를 위한 것이고 대미종속성과 밀실합의의 반영이라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이동식에 있어서 위성DMB는 SK가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즉, 이동수신 때 유료라는 것은 있는 자만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이며, 이 때 방송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일 뿐이죠. 현재 위성DMB에 많은 혜택이 주어지고 있어요. 신규고용의 효과가 있다는 선전으로 포장되어 힘을 얻고, 정부는 규제도 풀어주고 있어요. 이렇게 가서는 안됩니다. 기존 문화의 권리, 시민권(시청자의 권리)이 아니라 소비자, 산업의 원리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TV 논의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폭이 넒어져야 합니다. 방송현업단체들이 주도를 하고 일부시민단체가 결합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리된 담론도, 수준이 낮고 심지어 부정확하기도 하구요. 좀 더 논의의 폭을 넓히고 보다 쉽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해요. 현재 주도 단체의 대표성 역시 한정적인 것이 사실이구요.
Q. 방송시장 개방과 관련한 입장
A. 방송시장에서 자본은 이미 개방되어 있어서 현재 33%에서 50%까지 외국인투자지분이 확대되었습니다. 케이블의 경우, 외국채널이 그냥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개방은 아닌 것이 지상파가 외국인 지분제한과 외국프로그램 제한 규정에 묶여 있다는 부분입니다. 현재 방송법은 자국 프로그램 방영을 80% 이상으로 묶어놓고 있거든요.
현재 우리 방송이 시장개방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어요. 왜냐면 그동안 우리 프로그램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도 하고 외국 프로그램이 수입될 때 나라마다 언어, 정서적 차이로 시청률이 떨어지는 경향(문화적 할인, Cultural Discount)이 있는데 이런 근거로 낙관론을 펼치는 것이죠. 근거 없는 낙관론이라고 봐요. 또한 현재 방송시장 개방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서 빗장을 열어야 밖에서 이윤이 생기는 자들이 생겼다는 것이죠. 특히 SBS가 그렇습니다. 디지털TV 시대에는 제작비가 2배가 드는데, 한 방에 시청률을 독점하는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를 위한 돈을 확보하는 기회로 외국인 투자유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인 것이죠. 현재 SBS는 외자유치를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외국인이 방송국을 소유하게 되면, 사유화와 시장개방은 함께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SBS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구요. 모든 방송국은 이익의 5.5%를 방송발전기금으로 내야하는데, 외국인 소유주가 가만있을 턱이 없죠. 또, 방송 상업화가 가속화될 것입니다. 광고제도가 도하개발의제(DDA)에서는 합의의제로 잡힌 상태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매 프로그램마다 방송할 수 있는 광고가 제한되어 있는데 이것을 광고총량제로 바꾸려 들고 입습니다. 즉, 킬러 콘텐츠 앞에 광고가 몰리면서 광고수량, 액수에 제한이 사라지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방송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방송 프로그램의 종 다양성은 사라지고 상업화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죠.
현재 스크린 쿼터에 대한 쟁점도 방송시장 개방의 쟁점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시대, 문화적 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많이 보게되면, 문화적인 할인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거죠. 결국 제작비들이지 않고 손쉽게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 국내 방송국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죠. 돈을 버는 목적이 프로그램 제작의 전부가 되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현재 케이블이나 지역민방은 이미 SBS의 네트워크로 전락한 상황에서 지역과 함께 하는 방송이라는 취지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더군다나 위성프로 채널10개가 생기는데, 이 채널이 외국 콘텐츠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할 것이라 더욱 위험한 상황이죠. 현재 공중파 전체 시청률이 10% 줄어들었고 그 시장을 이런 채널이 파고들고 있어요. 기업은 돈만 되면 방송을 만들 것이고, 정부는 기술만 되면 하게 해주고 있어요. 미디어란 무엇이고,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고, 누구에게 서비스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이 사라진 것이죠.
근데, 조·중·동의 경우, 시장개방 할 것을 찬성하고 있어요. 현재 인쇄매체의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방송매체를 병행할 수밖에 없거든요. 신문사로서는 사유화가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죠. 외세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구요. 미국은 5개의 그룹이 방송을 다 재편하고 있어요. 신문사, 재벌, SBS, 지역민방들의 이해관계는 그들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Q. 방송사 비정규직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A. 과거 우리 방송은 정권에 복종하면 경제적 이익은 자동적으로 뒷받침되었어요. 국가에 의한 독과점이었죠. 그 때는 광고도 넘쳐났고 배분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과잉투자가 됐고, 과잉설비, 과잉인력이 발생했죠. 이것이 IMF이후 구조조정 압력이 생기면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대한 불안한 전망 때문에 비정규직화 되었습니다. 작가를 비정규직으로 끌어내려 유지하는 시스템이 된 것이죠. 구조조정은 필요하나, 어떤 관점에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필요 없는 관료들이 아직 있어요. 또, 잘 나가던 시절 중복투자된 부분도 있구요. 새로운 기술을 지연시키는 부분도 있는데 공공연한 비밀이죠. 압력을 전가하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행정·고위관료·과잉투자된 기술관련 종사자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해요. 제대로 된 콘탠츠를 만들기 위한 제작관련 인력은 비정규직이 되어서는 안되죠. KBS의 경우, 500명의 고위관료를 200명으로 줄이고 300명을 직위를 낮춰 의사결정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어요. 지역 방송국의 경우 실제 유명무실했던 시스템을 바꿔 일반 국민들에게 필요한 지역미디어센터로 만들려고 하구요. 이 시대, 누가 저널리스트인가? 예전에는 기자였고, 현재는 시사프로그램 PD가 포함되고, 또 앞으로는 작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주체가 누구인가 재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언론도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해 그 범위를 넓혀야 하구요.
Q. 사회진보연대에 바라는 점
A. 기본적으로 사회진보연대의 회원으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회원이 된 것도 후배들이 열심히 고민하고 자기 좌표를 가지고 산다는 것에 감동해서였구요. 이후, 매체를 보고 공부하고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계기로 도움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민중운동 내에서의 사회진보연대의 위상과 역할에 상관없이 여전히 회원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 자체로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굳이 바라는 바를 얘기한다면, 이야기의 진도가 안나간다는 감도 있어요. 구체성의 결여도 보이구요. 좀 어렵겠지만, 좀 더 풍부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정세란 전면적인 것이니까요. 다차원적인 역량이 필요하기도 한데, 민중운동에 국한된 쟁점을 가지고 얘기하는 느낌도 있어요.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다 폭넓게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칠다는 기분이구요. 사실 무척 조심스러운데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대답해주신 이강택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