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침해한 몸에 대한 권리
‘파병반대하지 말고 살이나 빼라’
얼마 전 파병반대집회에서 무리 지어 있던 전경 중 한 명이 나에게 내뱉은 말이다. 정리집회를 하기 위해 열린시민공원으로 이동하던 중 대오 끝머리에서 가던 나는 먼저 간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전경들 앞을 지나갈 때는 혼자였고, 전경 한 명이 나와 그들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옆의 누군가가 키득대는 웃음도 들렸다. 순간 나는 흠칫 놀랐고 공포스러웠지만,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계속 걸었다. 다섯 발자국 정도 더 걷는 몇 초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어떻게 하지? 그냥 갈까? 가서 따질까?” 몇 초간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몸을 돌려 그들 앞으로 가서 거세게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모였고 나는 전경들이 나에게 한 그 말 “파병반대하지 말고 살이나 빼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며 내가 싸우고 있는 이유를 말해야 했다. 사람들이 함께 사과를 요구했고 그 부대의 책임자인 듯한 사람까지 와서 더욱 소란스러워졌을 때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결국 사과를 받고 돌아섰다.
도대체 내가 '파병을 반대하는 것'과 '살을 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전혀 관계없을 듯한 두 가지. 하지만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나를 매우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고, 그런 내가 다시 파병반대집회에 나오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집회에서 자주 일어난다. 전경들 앞을 여성이 혼자 지나갈 때 모멸감을 주기 위한 말 한마디 던지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제대로 대처할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저 모른척하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분노하는 것뿐이다. 분노가 좌절이 되기도 하고, 몸을 향한 폭력은 치유되지 않는 정신의 상처로 오랫동안 남기도 한다. 그들의 목적대로 시위에 나온 여성들은 무력해진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내 주위의 여성들은 나에게 용감하다(?)고 말했다. 그래, 우리에겐 이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공교롭게도 그 날 집회에서 전날(8월3일) 있었던 1078중대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화가 나고 불쾌했었는데, 아마도 그 분노가 나를 용감하게 해주었나보다.
성폭력,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달아나듯 떠났던 8월 3일, 청와대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던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한 상황에서 성폭력이 발생했다. 전경들이 방패 틈 사이로 손을 뻗어 한 여성의 엉덩이를 꼬집었던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성폭력은 계속되었다. 피해자는 항의했고 함께 있던 집회참가자들은 용의자를 수사하라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요구했지만 중대책임자는 중대원 전체와 함께 도망쳐 버렸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형사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112에 신고하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112로 신고한 후 달려온 파출소 소장은 피해자 중심주의의 기본적 원칙도 모른 채 피해자를 나오라고 하며 사건해결의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들과 맞닥뜨려야 했는데, 공권력의 범죄를 공권력에 기대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시위현장에서 발생하는 공권력의 성폭력은 법을 집행한다는 미명 하에 자행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행동하게 된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개인의 욕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집회대오에 대한 기선제압을 위해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즉 성폭력은 여성들을 위협해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고 시위자체를 방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호소할 곳도 처벌할 곳도 없는 공권력의 성폭력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점 중 또 하나는 그 해결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은 또 다시 그들에 의해 규명이 가로 막혔고, 해결의 어떠한 의지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경찰이 도망가고 학생들이 뒤를 쫓는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성폭력 신고를 받고 온 또 다른 경찰은 용의자가 있는 부대가 퇴각하는 것을 방치했다. 학생들은 법적인 해결보다는 1078중대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를 원했지만, 1078중대는 끝내 ‘그런 사실이 없으니 사과 할 일도 없다’고 했다. 이에 학생들은 이 사건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한 상태이다.
몸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
이 사건이 공개되고 동영상이 올려졌던 진보넷 독자의견란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글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 게시판을 폐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성폭력과 싸우는 일은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공권력이 자행하는 성폭력은 그들이 방패로 내리찍고 군화발로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치유하기 힘든 상처들을 내지만 피해자는 그 어디에도 호소하기 힘들며 가해자는 국가, 법 등의 이름으로 어떠한 죄책감과 처벌도 없이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1078중대 사건은 일상적으로 존재해왔던 공권력의 성폭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시민의 몸에 대한 권리를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알려내고, 드러내기 힘들어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집단적으로 제기,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PSSP
얼마 전 파병반대집회에서 무리 지어 있던 전경 중 한 명이 나에게 내뱉은 말이다. 정리집회를 하기 위해 열린시민공원으로 이동하던 중 대오 끝머리에서 가던 나는 먼저 간 사람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전경들 앞을 지나갈 때는 혼자였고, 전경 한 명이 나와 그들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옆의 누군가가 키득대는 웃음도 들렸다. 순간 나는 흠칫 놀랐고 공포스러웠지만,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계속 걸었다. 다섯 발자국 정도 더 걷는 몇 초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어떻게 하지? 그냥 갈까? 가서 따질까?” 몇 초간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몸을 돌려 그들 앞으로 가서 거세게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모였고 나는 전경들이 나에게 한 그 말 “파병반대하지 말고 살이나 빼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며 내가 싸우고 있는 이유를 말해야 했다. 사람들이 함께 사과를 요구했고 그 부대의 책임자인 듯한 사람까지 와서 더욱 소란스러워졌을 때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결국 사과를 받고 돌아섰다.
도대체 내가 '파병을 반대하는 것'과 '살을 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전혀 관계없을 듯한 두 가지. 하지만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나를 매우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고, 그런 내가 다시 파병반대집회에 나오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집회에서 자주 일어난다. 전경들 앞을 여성이 혼자 지나갈 때 모멸감을 주기 위한 말 한마디 던지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제대로 대처할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저 모른척하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분노하는 것뿐이다. 분노가 좌절이 되기도 하고, 몸을 향한 폭력은 치유되지 않는 정신의 상처로 오랫동안 남기도 한다. 그들의 목적대로 시위에 나온 여성들은 무력해진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내 주위의 여성들은 나에게 용감하다(?)고 말했다. 그래, 우리에겐 이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공교롭게도 그 날 집회에서 전날(8월3일) 있었던 1078중대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화가 나고 불쾌했었는데, 아마도 그 분노가 나를 용감하게 해주었나보다.
성폭력,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달아나듯 떠났던 8월 3일, 청와대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던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한 상황에서 성폭력이 발생했다. 전경들이 방패 틈 사이로 손을 뻗어 한 여성의 엉덩이를 꼬집었던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성폭력은 계속되었다. 피해자는 항의했고 함께 있던 집회참가자들은 용의자를 수사하라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요구했지만 중대책임자는 중대원 전체와 함께 도망쳐 버렸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형사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112에 신고하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112로 신고한 후 달려온 파출소 소장은 피해자 중심주의의 기본적 원칙도 모른 채 피해자를 나오라고 하며 사건해결의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들과 맞닥뜨려야 했는데, 공권력의 범죄를 공권력에 기대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시위현장에서 발생하는 공권력의 성폭력은 법을 집행한다는 미명 하에 자행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행동하게 된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개인의 욕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집회대오에 대한 기선제압을 위해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즉 성폭력은 여성들을 위협해 시위대를 무력화시키고 시위자체를 방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호소할 곳도 처벌할 곳도 없는 공권력의 성폭력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의 문제점 중 또 하나는 그 해결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은 또 다시 그들에 의해 규명이 가로 막혔고, 해결의 어떠한 의지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경찰이 도망가고 학생들이 뒤를 쫓는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성폭력 신고를 받고 온 또 다른 경찰은 용의자가 있는 부대가 퇴각하는 것을 방치했다. 학생들은 법적인 해결보다는 1078중대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를 원했지만, 1078중대는 끝내 ‘그런 사실이 없으니 사과 할 일도 없다’고 했다. 이에 학생들은 이 사건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한 상태이다.
몸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
이 사건이 공개되고 동영상이 올려졌던 진보넷 독자의견란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글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 게시판을 폐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성폭력과 싸우는 일은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공권력이 자행하는 성폭력은 그들이 방패로 내리찍고 군화발로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치유하기 힘든 상처들을 내지만 피해자는 그 어디에도 호소하기 힘들며 가해자는 국가, 법 등의 이름으로 어떠한 죄책감과 처벌도 없이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1078중대 사건은 일상적으로 존재해왔던 공권력의 성폭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시민의 몸에 대한 권리를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알려내고, 드러내기 힘들어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집단적으로 제기,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