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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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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운동 재편,어떻게 볼 것인가?

이창근 | 운영위원
“국제자유노련(ICFTU) 사무총장인, 가이 라이더(Guy Ryder)는 지난 6월 23일~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120차 ICFTU 집행위원회에서 국제자유노련(ICFTU)과 세계노동총연맹(WCL)의 통합에 대한 입장과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국제노동운동의 통합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다. 2)통합 논의가 ICFTU가 해야 할 본연의 다른 활동들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 3)ICFTU의 원칙과 가치(principles and values)가 통합 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 4)통합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이 예견되지만 세계단위의 통합이 국가단위 통합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다. 5)통합에 따른 정체성(identity) 문제가 있을 것이다. 6)ICFTU와 WCL 어디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당수의 미가맹 노동조합들이 통합세계노동조합총연맹에 가입하게 될 것이다. 7)국제산별연맹(GUF)과 지역기구에 통합에 따른 어려움이 예상된다. 8)통합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세계노동운동 통합 현실로’에서 인용,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김성진-

국제노동운동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종전 이후 반공주의 노선에 기반해 세계노동운동의 주류적 흐름을 대변해온 국제자유노련(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ICFTU)과 기독교계 노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세계노동총연맹(World Confederation of Labor: WCL)의 통합이 현실 일정에 올랐다. ICFTU의 조합원수는 현재 1억 5천 1백만 명이며, WCL은 수치의 진실성을 믿기 어렵긴 하지만 약 2천 6백만 명 정도이다. 이들은 2006년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의 출범을 목표로 통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양대 국제노동조직의 통합과 이를 통한 새로운 세계통합노총 건설은, 절차상 관료주의적·비민주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회원 조직들의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 투명하고 공개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고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중요하게는 국제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정한 사고와 실천을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현재 국제노동운동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금융 세계화와 노동 유연화에 맞선 대응 전략과 실천의 빈곤함에 있다. 즉 “자본이 무역과 생산의 영역에서 금융거래와 투기로 전환되는” 과정, 그에 따른 부와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남북 불평등의 심화, 남북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및 삶의 질 악화에 대한 무능력한 대응이 현재 국제노동운동 위기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국제노동운동은 이러한 근본 원인에 맞선 전략과 전술의 혁신, 이를 통한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국제노동운동의 주류적 흐름인 ICFTU는 그동안 북반구 노동자를 대변해왔으며 또한 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인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ICFTU는 ‘노동조합 권리, 인권, 환경권’ 등을 존중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또한 ICFTU는 ‘남반구 노동기준의 향상’이 WTO 협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진정으로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요구였다기 보다는 북반구 노동자들의 잘못된 가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북반구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및 삶의 질 악화가 “그들보다 아래에 있는 다른 국가들-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하여 자국의 산업을 유지하려는-로 인해” 심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기준과 환경기준의 향상을 통하여 자국 생산품을 보호하거나, 또는 적어도 개발도상국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제3세계와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도모”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개선, 임금 향상은 ‘국제적 차원의 보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업 활동이 재배치된 특정 국가에서 태동한 강력하고도 전투적인 노동계급의 투쟁이 주요한 요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ICFTU의 주장은 고용과 임금에 있어서 ‘자기 방어’에 급급한 북반구 노동자들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이며, 국제적인 사회운동진영의 광범위한 저항과 투쟁으로 ‘정당성 위기’에 빠진 WTO 체제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었다.
OECD에서 논의되었던 다자간투자협정(MAI)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TUAC)의 태도는 더욱 분명한 형태로 북반구 주도 국제노동조직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당시 다자간투자협정은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반면, 노동권, 환경권, 인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자본의 금융투기적 축적 경향을 촉진시키고, 경제주권을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는 광범위한 투자 자유화를 동의해주고, 대신 고작해야 노동 및 환경권 존중이라는 문구를 다자간투자협정 전문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ICFTU를 위시한 주류적 국제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 대안적인 세계질서의 모색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존 세계질서 내에서 북반구 노동자들만의 특별한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활동해왔다. 즉 ICFTU는 “자국이 자본유치를 위한 상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자국 정부를 지지”한 북반구 조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책들을 펼쳐왔다. 이러한 ICFTU 정책들은 북반구 정부 그리고 WTO,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과의 ‘협의와 로비’를 통해 추진되어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효과는 당연하게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할 능력이 있는 국가들과 그렇지 못한 주변부 국가들 사이에서 차별적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자유무역, 투자 자유화, 산업활동 재배치 등 다양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슈를 다룰 때, ICFTU의 주장처럼 “핵심노동기준 존중”만을 요구하는 것은 특히 남반구 노동자들에게 대단히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이 남북 불평등과 분할, 남북 노동자들의 노동, 생활 조건 악화, 자본의 금융, 투기로의 전환과 고용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면, 특히 북반구 노동자들에 비해 근본적으로 부와 자원 분배에 있어서 약자인 남반구 노동자들에게 ‘신자유주의 과정’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면서, 단결권과 단체협상권 등의 보장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ICFTU와 북반구 노동자들은 왜 남반구 노동조합 의제에는 신자유주의 반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 모색, 고용과 소득 창출 등이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비록 현재 ICFTU-WCL 통합 과정이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이데올로기 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계노동운동의 주류를 자임해왔던 ICFTU를 비롯한 북반구 주도의 국제노동조직의 역사적 실천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새롭게 탄생할 거대한 통합세계노총은 오히려 북반구 노동자들의 ‘자기 방어’적 실천을 강화하고, 남반구/북반구 노동자들간의 위계와 분할을 더욱 심화시키며, 남북 노동자들의 진정한 ‘단결’을 위한 사고와 실천을 지연시킬 것이다. 나아가 더욱 비대해진 통합세계노총의 관료주의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늘어난 조합원 수를 기반으로 한 ‘로비’ 전략에의 의존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ICFTU-WCL 통합 과정이 국제노동운동의 당면 과제에 대한 포괄적이며 민주적인 토론을 동반하지 않음으로서, 주류 국제노동운동에 의한 진보적·민주적·자주적 노동운동의 소외와 배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는 점도 문제이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항상적으로 요구되지만, 이는 명백한 비전과 목표, 구체적 실천을 동반하지 않으면 오히려 운동의 발전에 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잇는 ICFTU-WCL 통합 논의는 1)ICFTU의 북반구 편향적 정책과 실천에 대한 평가, 2)남북 노동자들간의 분할과 위계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인식지반 확대, 3)노동계급을 넘어 국제적인 반전/반세계화 사회운동 진영과의 포괄적인 동맹관계 형성을 위한 계획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제들이 논의되지 않는 통합 과정은 국제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사고와 실천을 지연시킬 뿐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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