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점령 종식, 한국군 철군 부시-블레어-노무현능 전범심판대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
6월 24일 김선일 씨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은 오랜 시간동안 격렬하게 파병을 철회하라는 요구로 싸워왔다. 그러나 파병은 강행되었다. 8월 28일 자이툰 부대의 본진 파병이 완료되었을 때, 종묘에 모인 파병반대 집회 대오에서는 “노무현을 심판하자”, “노무현은 전쟁 범죄자다” 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파병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당시, 구호를 외치면서 아픈 가슴을 쓸어내릴 도리밖에 없었지만, 더 이상 노무현 정권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명백한 전쟁범죄이며 이는 단죄되어야 한다는 그 사실! 대중적인 파병반대 집회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한 그 날, 그 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생각은 모두 다 이러했을 것이다.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은 그렇게 결코 가라앉을 수 없는 분노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8월 초 인권단체 평화권 모임의 몇 명의 활동가들은 개인의 명의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민중재판운동을 공개적으로 제안하였다. 1만 명의 기소 인을 조직하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블레어를 그리고 이 더러운 침략전쟁에 동참한 노무현 정권을 법정에 세울 것, 그리고 그들을 이 나라 사법부가 아니라 수많은 이 땅 민중들이 설립한 민중 법정에서 심판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 운동은 지난 몇 달간의 파병반대운동의 흐름들 속에서 지역과 현장 그 구석구석 자신의 삶 속에서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풀뿌리 민중 운동의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민중재판운동은 12월까지 1만 명의 기소인들을 모아서 그들의 다채롭고 진지한 평화행동들을 추동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을 무기삼아 이 나라 정권을 범죄자로 낙인찍고자 하는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몇 명의 활동가들이 선뜻 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길고 지난했던 지난 운동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분출되었던 그리고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진행되었던 풀뿌리 민중들의 행동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민중재판운동은 ‘발기인 총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9월 20일 7시,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50일 넘게 단식을 하며 전국을 순례한 한 성직자와 동화작가,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걱정하며 찾아온 사람들, 노동조합에서 이 운동을 한번 해보고자 모인 사람들, 평화를 노래하고자 하는 아마추어 예술인들, 집단적으로 결합한 사회단체 활동가들, 멀리 지역에서 이 곳을 물어물어 찾아온 시민들... 민중재판운동은 1만 명의 기소인 전원이 참가하는 ‘기소인 총회’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고 사업계획을 의결하는데, 이날 1만 명의 기소인 총회를 성사시킬 것을 최초로 결의한 기소인(발기인)들이 모여 ‘기소인 총회’를 발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300여명의 발기인들은 운동의 공식적인 시작을 선포하고 앞으로 두 달여 간의 시간 동안 민중재판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첫째, 9월 20일부터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기소를 위한 1만 기소인 운동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 둘째, 11월 말 자신이 속한 지역 및 부문에서 민중재판 발의를 위한 기소인 총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 셋째, 1만 기소인의 이름으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민중재판소를 설립하고 12월에 민중재판을 성사할 것!
민중재판운동,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1만 기소인의 운동
10월 현재까지 기소인은 523명이다. 1만 명의 기소인을 모으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더구나 이 운동이 현재 운동사회 내에서 그리 큰 파장을 그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1만이라는 목표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어떠어떠한 이유로 기소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기소이유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기소인으로 조직해야 한다. 기소인이 된다는 것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주변을 전쟁 종식과 철군에 대한 토론으로 채워나갈 것을 결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가진 기소인을 1만 명을 모으고자 한다. 기소인들은 11월 말에 그/녀들 스스로 대한민국 사법부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민중재판소’를 설립해야 한다. ‘지역, 부문별 총회’란, 통념상 엄격한 규약에 의해 규정받는 권위적인 회의 체계로 여겨지지만, 이는 유사하게 묶일 수 있는 기소인들이 다양하게 모여 민중재판소 설립에 대한 뜻을 모으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이며 특정한 형식적 규정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아니면 그냥 친목 모임에서 그동안 조직한 기소인들과 함께 반전과 관련한 토론회나 강연회를 개최하여 각자의 다양한 기소 이유서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든다던지, 아니면 직접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기소이유서들을 발표하고 기소인을 모집하는 운동을 벌인다던지 등등 다양한 형식이 ‘기소인 총회’로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내용은 기소인 누구누구의 이름으로 12월에 민중재판소를 설립한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일이다. 어떤 지역은 정식화된 강당에서 총회를 개최하면서, 어떤 이들은 어느 동네 길거리에서, 또 어떤 집단은 공장이나 학교 안에서 “전쟁범죄정권 노무현을 심판대에 세우자”는 동일한 의지를 선언할 것이다. 전국 곳곳,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모아져, 그 힘으로 ‘민중재판소’가 설립된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민중재판이 12월 8일부터 3일 동안 저녁 시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다양한 이들의 증언으로 부시·블레어·노무현의 전쟁범죄가 고발되고 1만명의 기소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이 진행될 것이다. 12월 11일 최종판결은 기소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평화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당신의 기소 이유서를 쓰자.
1만 기소인들이 자발적으로 평화행동을 발굴하고 이를 더욱 확장하는 역할이 민중재판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다양한 행동들이 가능하겠지만 이 중 ‘기소이유서(기소장) 쓰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노무현을 민중들이 세운 법정에 기소하는 일은 단지 몇 명 시민들의 서명만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기소인들이 각자의 기소이유서를 작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절감하고 있는 저들의 전쟁범죄 사실을 폭로한다. 노무현 정권의 전쟁범죄사실은 단지 국제법상 어느 어느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로 규정될 수 없다. 노동자의 삶에서, 여성의 삶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파병이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발언하는 것, 그 다양하고 절박한 자신의 기소이유들이 바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인터넷 상(gopeace. or. kr)이나 오프라인 상에서 기소인이 될 것을 신청하면 기소인 모두는 11월 말 민중재판소가 설립되는 시점까지 자신의 기소이유서를 작성할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주어진 시간동안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하여 전쟁과 파병에 대한 자신의 입장, 노무현 정권을 민중이 심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다. 모든 기소 이유서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12월 8일부터 진행될 재판에서 기소 자료로 소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참혹하고 야만적인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인권과 평화를 기치로 한 수많은 인민들의 반전평화운동뿐이다. 그러나 이 절박한 운동의 공간은 몇 몇 영향력 있는 반전운동단체들이 어딘가에서 갑자기 열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반전운동의 대중화, 급진화는 몇 명의 운동주체들의 의지로는 결코 만들어 질 수 없다. 수백만, 수천만 대중의 입에서 반전이 말해져야 한다. 그들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전평화”는 도도한 민중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민중재판운동은 바로 이 ‘당연한’ 원칙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민중재판운동이 처한 조건
9월 20일, 발기인 총회는 야외에서 집회와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지만 비가 많이 온 관계로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의도치 않게 ‘총회’라는 체계와 형식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는데 발기인의 의지와 결의를 모아내야 하는 행사를 어떤 회의체계를 빌어서 한다는 조금은 낯선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어떤 운동에 동의에 하는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업계획 및 각종 운동의 방식들을 결정하는 방식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총회’라는 자리를 의식적으로 만든 이유는 기존에 반전운동이 조직되는 일반적인 방식을 탈피해보자는 실행위원회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반전운동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운동들이 단체 및 부문의 대중조직들을 대상으로 조직되고 있고, 주요 사업계획의 경우, 단체나 조직의 대표들로 구성된 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와 같은 회의체계를 통해 승인된다.
이번 민중재판운동은, 어떤 운동단체들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참가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운동체계의 형식을 바꿔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다시 말해 대표자의 권위에 기대 운동에 힘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발언권과 의결권으로 그리고 최대한 개개인들을 조직함으로써 비로소 운동이 힘을 얻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상황은 쉽지 않다.
작년부터 시작하여 2004년의 절반을 훨씬 넘긴 시점까지 반전 대중운동을 주도해왔던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의 운동이 8월 이후 소강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 민중재판운동은 반전평화운동을 견결히 이어가는 운동의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제안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7, 8월 동안 형성된 국민행동의 운동방향을 둘러싼 쟁점이 갈등적으로 남아있던 상황에서 민중재판운동의 흐름 역시 당시의 운동주체들의 상황과 조건을 반영하며 협소하게 제안될 수밖에 없었다.파병반대 비상 국민행동 차원에서 민중재판운동을 어떤 수위로 받아들일 것인지의 논의가 계속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가운데,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대중조직들(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로 하여금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경로를 찾지 못하였다. 또한 당시 민중재판운동 실행위원회 내에서는 개인/단체 가입에 대한 논란이 채 정리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운동진영은 8월 파병강행 직후, 반전운동의 흐름을 민중재판운동으로 새롭게 재조직하여 투쟁을 견결히 이어나갈 수 있는 긴장감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실행위에서 논의한 결과, 민중재판 운동 가입은 단체에 기반을 두지 않는 개인들의 기소인 가입 방식으로 결정하였고, 이 운동을 독려하고자 하는 단체들은 후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택해졌다. 그러나 민중재판운동은 여전히 이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많은 단체들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운동사회 내에서 반전운동을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데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민중재판운동이 2004년 하반기 전개되고 있는 민중들의 투쟁(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등)과 연대하며 보다 확장되기 위해서는 기층 대중조직을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추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중재판운동은 한국사회의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풀뿌리 민중과 밀착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 방식을 발굴하고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운동사회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 운동의 방식을. 이렇듯 다시 새롭게 운동의 그릇을 만들어 가려는 민중재판운동주체들의 노력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의 방식이란 것은 기존의 운동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나 즉각적인 반정립의 문제가 아니다. 풀뿌리 민중의 삶의 현장과 보다 밀착된 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그 동안 공간을 찾지 못했던 이들에게 운동의 공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자칫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세운 어떤 조건들이 여타의 다른 운동주체들의 운동공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왜 민중재판운동인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전쟁범죄국가의 국민이 되었다. 민중재판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풀뿌리 민중들의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 했었다.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이 땅의 지배계급은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라는 정당성을 그들 스스로 파괴하였고 이 나라를 구성하는 입법부, 사법부 그 어디도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민중이 그 스스로의 평화를 발언할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때문에 이제 해야 할 일은 어찌 보면 너무도 명확하다. 저들의 파병이, 전쟁 참여가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규정하는 일이다. 민중의 평화, 민중의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죽어가고 있는 무고한 생명이 결코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이 땅의 민중들은 이라크 인들이 평화를 누릴 권리가 바로 자신의 삶의 권리와 동일한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울리고 있는 이라크 인들의 생존을 위한 절규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소 이유서를 쓰고 있는 한국의 민중들의 반전의 목소리이다. 노무현 정권이 파괴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것이다. 파병을 감행함으로써 이라크 민중의 생명을 짓밟았으며, 동일한 입장에서 파병철회를 요구한 이 나라 민중들의 목소리를 짓밟은 것이다. 이렇게 파괴된 민주주의를 민중 스스로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질문에 똑똑히 답해야 한다.
죽지 않고 살아갈 권리를 왜 빼앗기고 있는가? 부당한 죽음 앞에 평화를 말할 권리를 지금 누가 빼앗고 있는가?
2004년, 전범민중재판운동은 이 땅 풀뿌리 민중 하나하나의 목소리로 이에 답해 나갈 것이다. PSSP
6월 24일 김선일 씨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은 오랜 시간동안 격렬하게 파병을 철회하라는 요구로 싸워왔다. 그러나 파병은 강행되었다. 8월 28일 자이툰 부대의 본진 파병이 완료되었을 때, 종묘에 모인 파병반대 집회 대오에서는 “노무현을 심판하자”, “노무현은 전쟁 범죄자다” 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파병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당시, 구호를 외치면서 아픈 가슴을 쓸어내릴 도리밖에 없었지만, 더 이상 노무현 정권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명백한 전쟁범죄이며 이는 단죄되어야 한다는 그 사실! 대중적인 파병반대 집회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한 그 날, 그 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생각은 모두 다 이러했을 것이다.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은 그렇게 결코 가라앉을 수 없는 분노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8월 초 인권단체 평화권 모임의 몇 명의 활동가들은 개인의 명의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민중재판운동을 공개적으로 제안하였다. 1만 명의 기소 인을 조직하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블레어를 그리고 이 더러운 침략전쟁에 동참한 노무현 정권을 법정에 세울 것, 그리고 그들을 이 나라 사법부가 아니라 수많은 이 땅 민중들이 설립한 민중 법정에서 심판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 운동은 지난 몇 달간의 파병반대운동의 흐름들 속에서 지역과 현장 그 구석구석 자신의 삶 속에서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풀뿌리 민중 운동의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민중재판운동은 12월까지 1만 명의 기소인들을 모아서 그들의 다채롭고 진지한 평화행동들을 추동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을 무기삼아 이 나라 정권을 범죄자로 낙인찍고자 하는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몇 명의 활동가들이 선뜻 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길고 지난했던 지난 운동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분출되었던 그리고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진행되었던 풀뿌리 민중들의 행동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민중재판운동은 ‘발기인 총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9월 20일 7시,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50일 넘게 단식을 하며 전국을 순례한 한 성직자와 동화작가,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걱정하며 찾아온 사람들, 노동조합에서 이 운동을 한번 해보고자 모인 사람들, 평화를 노래하고자 하는 아마추어 예술인들, 집단적으로 결합한 사회단체 활동가들, 멀리 지역에서 이 곳을 물어물어 찾아온 시민들... 민중재판운동은 1만 명의 기소인 전원이 참가하는 ‘기소인 총회’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고 사업계획을 의결하는데, 이날 1만 명의 기소인 총회를 성사시킬 것을 최초로 결의한 기소인(발기인)들이 모여 ‘기소인 총회’를 발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300여명의 발기인들은 운동의 공식적인 시작을 선포하고 앞으로 두 달여 간의 시간 동안 민중재판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첫째, 9월 20일부터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기소를 위한 1만 기소인 운동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 둘째, 11월 말 자신이 속한 지역 및 부문에서 민중재판 발의를 위한 기소인 총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 셋째, 1만 기소인의 이름으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민중재판소를 설립하고 12월에 민중재판을 성사할 것!
민중재판운동,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1만 기소인의 운동
10월 현재까지 기소인은 523명이다. 1만 명의 기소인을 모으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더구나 이 운동이 현재 운동사회 내에서 그리 큰 파장을 그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1만이라는 목표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어떠어떠한 이유로 기소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기소이유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기소인으로 조직해야 한다. 기소인이 된다는 것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주변을 전쟁 종식과 철군에 대한 토론으로 채워나갈 것을 결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가진 기소인을 1만 명을 모으고자 한다. 기소인들은 11월 말에 그/녀들 스스로 대한민국 사법부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민중재판소’를 설립해야 한다. ‘지역, 부문별 총회’란, 통념상 엄격한 규약에 의해 규정받는 권위적인 회의 체계로 여겨지지만, 이는 유사하게 묶일 수 있는 기소인들이 다양하게 모여 민중재판소 설립에 대한 뜻을 모으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이며 특정한 형식적 규정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아니면 그냥 친목 모임에서 그동안 조직한 기소인들과 함께 반전과 관련한 토론회나 강연회를 개최하여 각자의 다양한 기소 이유서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든다던지, 아니면 직접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기소이유서들을 발표하고 기소인을 모집하는 운동을 벌인다던지 등등 다양한 형식이 ‘기소인 총회’로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내용은 기소인 누구누구의 이름으로 12월에 민중재판소를 설립한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일이다. 어떤 지역은 정식화된 강당에서 총회를 개최하면서, 어떤 이들은 어느 동네 길거리에서, 또 어떤 집단은 공장이나 학교 안에서 “전쟁범죄정권 노무현을 심판대에 세우자”는 동일한 의지를 선언할 것이다. 전국 곳곳,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모아져, 그 힘으로 ‘민중재판소’가 설립된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민중재판이 12월 8일부터 3일 동안 저녁 시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다양한 이들의 증언으로 부시·블레어·노무현의 전쟁범죄가 고발되고 1만명의 기소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이 진행될 것이다. 12월 11일 최종판결은 기소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평화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당신의 기소 이유서를 쓰자.
1만 기소인들이 자발적으로 평화행동을 발굴하고 이를 더욱 확장하는 역할이 민중재판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다양한 행동들이 가능하겠지만 이 중 ‘기소이유서(기소장) 쓰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노무현을 민중들이 세운 법정에 기소하는 일은 단지 몇 명 시민들의 서명만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기소인들이 각자의 기소이유서를 작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절감하고 있는 저들의 전쟁범죄 사실을 폭로한다. 노무현 정권의 전쟁범죄사실은 단지 국제법상 어느 어느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로 규정될 수 없다. 노동자의 삶에서, 여성의 삶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파병이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발언하는 것, 그 다양하고 절박한 자신의 기소이유들이 바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인터넷 상(gopeace. or. kr)이나 오프라인 상에서 기소인이 될 것을 신청하면 기소인 모두는 11월 말 민중재판소가 설립되는 시점까지 자신의 기소이유서를 작성할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주어진 시간동안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하여 전쟁과 파병에 대한 자신의 입장, 노무현 정권을 민중이 심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다. 모든 기소 이유서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12월 8일부터 진행될 재판에서 기소 자료로 소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참혹하고 야만적인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인권과 평화를 기치로 한 수많은 인민들의 반전평화운동뿐이다. 그러나 이 절박한 운동의 공간은 몇 몇 영향력 있는 반전운동단체들이 어딘가에서 갑자기 열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반전운동의 대중화, 급진화는 몇 명의 운동주체들의 의지로는 결코 만들어 질 수 없다. 수백만, 수천만 대중의 입에서 반전이 말해져야 한다. 그들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전평화”는 도도한 민중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민중재판운동은 바로 이 ‘당연한’ 원칙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민중재판운동이 처한 조건
9월 20일, 발기인 총회는 야외에서 집회와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지만 비가 많이 온 관계로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의도치 않게 ‘총회’라는 체계와 형식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는데 발기인의 의지와 결의를 모아내야 하는 행사를 어떤 회의체계를 빌어서 한다는 조금은 낯선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어떤 운동에 동의에 하는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업계획 및 각종 운동의 방식들을 결정하는 방식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총회’라는 자리를 의식적으로 만든 이유는 기존에 반전운동이 조직되는 일반적인 방식을 탈피해보자는 실행위원회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반전운동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운동들이 단체 및 부문의 대중조직들을 대상으로 조직되고 있고, 주요 사업계획의 경우, 단체나 조직의 대표들로 구성된 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와 같은 회의체계를 통해 승인된다.
이번 민중재판운동은, 어떤 운동단체들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참가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운동체계의 형식을 바꿔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다시 말해 대표자의 권위에 기대 운동에 힘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발언권과 의결권으로 그리고 최대한 개개인들을 조직함으로써 비로소 운동이 힘을 얻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상황은 쉽지 않다.
작년부터 시작하여 2004년의 절반을 훨씬 넘긴 시점까지 반전 대중운동을 주도해왔던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의 운동이 8월 이후 소강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 민중재판운동은 반전평화운동을 견결히 이어가는 운동의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제안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7, 8월 동안 형성된 국민행동의 운동방향을 둘러싼 쟁점이 갈등적으로 남아있던 상황에서 민중재판운동의 흐름 역시 당시의 운동주체들의 상황과 조건을 반영하며 협소하게 제안될 수밖에 없었다.파병반대 비상 국민행동 차원에서 민중재판운동을 어떤 수위로 받아들일 것인지의 논의가 계속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가운데,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대중조직들(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로 하여금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경로를 찾지 못하였다. 또한 당시 민중재판운동 실행위원회 내에서는 개인/단체 가입에 대한 논란이 채 정리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운동진영은 8월 파병강행 직후, 반전운동의 흐름을 민중재판운동으로 새롭게 재조직하여 투쟁을 견결히 이어나갈 수 있는 긴장감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실행위에서 논의한 결과, 민중재판 운동 가입은 단체에 기반을 두지 않는 개인들의 기소인 가입 방식으로 결정하였고, 이 운동을 독려하고자 하는 단체들은 후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택해졌다. 그러나 민중재판운동은 여전히 이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많은 단체들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운동사회 내에서 반전운동을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데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민중재판운동이 2004년 하반기 전개되고 있는 민중들의 투쟁(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등)과 연대하며 보다 확장되기 위해서는 기층 대중조직을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추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중재판운동은 한국사회의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풀뿌리 민중과 밀착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 방식을 발굴하고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운동사회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 운동의 방식을. 이렇듯 다시 새롭게 운동의 그릇을 만들어 가려는 민중재판운동주체들의 노력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의 방식이란 것은 기존의 운동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나 즉각적인 반정립의 문제가 아니다. 풀뿌리 민중의 삶의 현장과 보다 밀착된 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그 동안 공간을 찾지 못했던 이들에게 운동의 공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자칫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세운 어떤 조건들이 여타의 다른 운동주체들의 운동공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왜 민중재판운동인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전쟁범죄국가의 국민이 되었다. 민중재판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풀뿌리 민중들의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 했었다.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이 땅의 지배계급은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라는 정당성을 그들 스스로 파괴하였고 이 나라를 구성하는 입법부, 사법부 그 어디도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민중이 그 스스로의 평화를 발언할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때문에 이제 해야 할 일은 어찌 보면 너무도 명확하다. 저들의 파병이, 전쟁 참여가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규정하는 일이다. 민중의 평화, 민중의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죽어가고 있는 무고한 생명이 결코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이 땅의 민중들은 이라크 인들이 평화를 누릴 권리가 바로 자신의 삶의 권리와 동일한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울리고 있는 이라크 인들의 생존을 위한 절규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소 이유서를 쓰고 있는 한국의 민중들의 반전의 목소리이다. 노무현 정권이 파괴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것이다. 파병을 감행함으로써 이라크 민중의 생명을 짓밟았으며, 동일한 입장에서 파병철회를 요구한 이 나라 민중들의 목소리를 짓밟은 것이다. 이렇게 파괴된 민주주의를 민중 스스로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질문에 똑똑히 답해야 한다.
죽지 않고 살아갈 권리를 왜 빼앗기고 있는가? 부당한 죽음 앞에 평화를 말할 권리를 지금 누가 빼앗고 있는가?
2004년, 전범민중재판운동은 이 땅 풀뿌리 민중 하나하나의 목소리로 이에 답해 나갈 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