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라틴아메리카는 혁명중이다.

제8회 서울노동영화제 소개

이정일 |
이제껏 이 칼럼에서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먼 길을 돌아 남한의 영화 운동의 맥을 짚어보려는 시도를 기획했다. 이를 계속 진행하기 전에 라틴아메리카 변혁운동의 현재와 더불어 우리 노동운동의 상황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서울 노동 영화제이다. 이번 노동영화제에서는 특별 섹션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다루고 있다.
지금 이 시간 가장 역동적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민중들은 중남미인들이다. 여기저기에서 낡은 정부들을 쓰러뜨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힘으로 막아내고 사유화된 공장들을 점거하고 군사 쿠데타를 되돌리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곳은 아마도 베네수엘라일 것이다. 베네수엘라를 이끌고 있는 우고 차베스는 그야 말로 혁명의 상징이다. 이야기는 그가 쿠데타를 준비하다 실패로 돌아간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베네수엘라에서는 민주행동당(AD, Accion Democratica)과 코페이당(Copei)이 번갈아 집권하고 있었다. 이 둘 사이의 정권 교체는 절차상 민주적인 것이었지만 이들은 몇 개의 기득권 가문으로 이루어진 정당들로 양쪽 다 석유 수출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부를 나누어갖는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던 그룹이었다. 결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실업률은 25%에 달하며 2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길거리에서 구걸로 먹고 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군 특수 부대 출신의 차베스는 이러한 부패한 정권을 뒤집으려다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엄청난 시위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정부는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적인 절차로 당선된다. 당선 후 차베스는 마치 사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던 국영 석유회사들을 전면적으로 개혁한다. 이 개혁은 말 그대로 기득권자들의 부를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기득권자들은 화가 났고 그를 몰아내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들이 생각해낸 정치 공작은 이런 것이었다. 우선 이 나라의 TV는 대부분이 이 기득권들의 소유라는 것을 기억해두자. 이들은 반 차베스 시위대를 조직해 대통령 궁으로 행진해 나가도록 했다. 반차베스 행렬이 많아지자 차베스 지지자들도 대통령 궁을 에워싸기 시작했고 언제라도 두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시위대 사이가 거의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10여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보수 TV들은 즉각 차베스 지지자들이 총을 쏘는 장면을 방송하기 시작했고 곧장 군대가 이에 개입해 대통령 궁은 순식간에 탱크로 둘러싸였다. 대통령 궁 폭격 시한을 몇 분여 앞두고 차베스는 연행되기는 하겠지만 대통령직 사임은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이 발표는 방송에 나가지 못했고 반 차베스 인사들은 즉각 대통령 궁을 접수하고 새 내각과 새 대통령을 임명하고 국회와 헌법 재판소를 해산한다.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다음날 쿠데타의 주역들은 자신들의 TV에 나와 자랑스레 자신들이 어떻게 저격수들을 동원해 시위대들에게 총을 쏘도록 지시했는지 스스로 폭로한다. 한편 탱크에 놀라 흩어졌던 차베스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 사실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곧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통령 궁을 둘러쌌다. 그리고 대통령 궁 안에서는 차베스를 지지하고 있던 대통령 궁 경비대들이 반차베스 내각을 체포하고 단 하나 밖에 없는 국영 채널을 통해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방송한다. 부통령이 그때까지 차베스를 구금하고 있던 군 장성에게 전화를 하고 결국 군의 지지를 얻게 되면서 차베스는 자신의 대통령 궁으로 돌아온다. 여기까지가 작년 노동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가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후 차베스는 탄핵을 당했다가 또 다시 민중의 지지로 되돌아왔고, 기득권들은 석유 회사를 폐업하는 등 강경히 맞서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미디어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보수 TV와 맞서 싸우기 위해 국영 채널을 활용하고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배포했다. 이러한 미디어 활동가들의 활동들을 이번 제9회 노동 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영화제 해외작품 부분 '혁명은 진행 중 : 라틴 아메리카' 섹션의 두 편의 영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베네수엘라>와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직접 다룬 두 편의 영화이다. 진행 중인 혁명의 열기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영화로는 '사유화의 종말' 섹션의 <갈증>과 '전 세계 노동자의 삶과 투쟁' 섹션의 <이과쥬 이펙트>가 주목할 만하다. <갈증>은 볼리비아의 물 사유화 반대 운동을 다루고 있으며 <이과쥬 이펙트>는 스페인 국영 통신회사의 해고 노동자 투쟁을 다루고 있다. 또한 켄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영화의 메이킹 필름에 해당하는 <켄과 로자>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반세계화 운동의 기수인 나오미 클라인이 작가 겸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이번 영화제의 모토이기도 하다.
국내 작품으로는 비정규직문제를 다룬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과 이주 노동자 투쟁을 다룬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등의 작품들이 있다. 국내작품들 중 특히 주목받는 작품은 부안 주민들이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하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2월 14일 부안 군민 주인 되는 날>과 카메라를 든 노동자 워크숍 수강생들이 직접 만들어낸 영상물인 <카메라를 든 노동자>이다. 이 작품들은 전문적인 영상 활동가가 아니라 자체적인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작된 영상물이라는 의미가 크다.
영화제는 11월 16일부터 21일 까지 안국동에 위치한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영화제나 영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http://www.lnp89.org/8th에서 확인 할 수 있다. PSSP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