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로에서 부르키나 파소까지, 빈곤과 폭력에 맞선 전 세계 여성들의 행진
류미경 정책편집부장
현재 여성부와 주요 여성단체들이 여성발전의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는 '성주류화'가 본격적으로 제출되었던 4차 북경여성대회가 열린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각 국 정부와 유엔의 행동방안을 담은 '북경행동강령'을 함께 발표했다. 이에 따라 얼마 전 3월 초 뉴욕에서 열린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49차 총회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각 국 정부가 행동강령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회의에 참석하여 그 동안 북경행동강령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장치들을 꾸준히 마련하고 실행했다고 밝혔다. 여성부 신설을 비롯하여 여성의 공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마련해온 결과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했다. 여성 취업자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는 통계수치는 정부의 이러한 주장을 증명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현실은 전체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이고 노조가입률은 5.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대다수의 여성들이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가 할당되었을 뿐임을 보여준다. 정부는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부족한 가계비용을 보충하는 역할에 더해 출산, 양육을 비롯한 재생산 노동 대한 의무를 가중하며 여성들의 이중적인 고통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높아졌다'는 주장 뒤에는 이러한 여성들의 현실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가 행동에 나서고 여성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여성행진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여성행진의 기원과 2000년 행진
북경 여성대회가 열리기 전 1995년 4월, 캐나다에서는 퀘벡여성연맹의 주최로 “빵과 장미를 위한 여성 행진”이 열렸다. 850여 명의 여성들이 빈곤 제거를 위한 분명한 조처를 요구하는 행진을 10일 동안 진행했다.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모인 여성들은 이 행진을 전 세계적인 행진으로 확대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후 1998년 10월 몬트리올에서 회의를 열어 빈곤 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를 행진의 주제로 채택하고 이에 관한 17가지 요구목록을 작성하고, 2000년에 전 세계적인 행진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8일(세계여성의 날)부터 10월 17일(세계 빈곤철폐의 날)까지, 전 세계의 여성들은 빈곤 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라는 두 가지의 보편적인 요구와 함께, 각 대륙별로 독자적인 요구를 제출하며 릴레이 행진을 진행했다. 남미에서는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구조조정과 외채경감 프로그램 반대, 거주지, 일자리를 얻기 위한 훈련, 토지에 대한 접근권, 낙태의 비범죄화, 미국의 군사적 개입 반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철회등을 요구로 내걸었다. 아시아에서는 성매매와 빈곤이 중요한 화두였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물에 대한 접근권, 거주지에 대한 권리, 전기 공급, 여성들의 문맹 퇴치, 안전한 출산을 위한 지역 의료시설 확보, AIDS 등 질병에 관한 정보 보급,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 식량 안전의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유럽에서는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해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해오면서 생기는 문제들로 마약 거래 및 여성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신매매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또한 직업에서의 성적 차별 철폐, 낙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극우 카톨릭 조직들의 종교 근본주의 반대, 레즈비언 여성들의 권리 등이 함께 제기되었다. 아랍지역에서는 강간, 성폭력, 고문과 살인을 불러일으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비롯한 수많은 분쟁을 중단할 것과,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하고, 여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민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진행된 2000년 행진은 인종과 문화, 국경을 뛰어넘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2001년 10월에 몬트리올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2000년의 행진의 유효성을 확인하며 이러한 전 세계적인 차원의 운동을 더욱 강화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여성운동들 간의 상시적인 네트워크인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 결성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은 미주, 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각 지역에서 161개국에서 전국 규모, 혹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6000개 이상의 여성운동 조직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세계사회포럼이 시작될 때부터 적극 결합해왔고,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결성된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의 활동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한 두 가지의 중요한 과제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투쟁을 제시해왔는데, 빈곤과 폭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대안세계화 운동에 여성들의 요구를 결합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부르키나 파소까지,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과 연대 퀼트
세계여성행진은 이 네트워크가 결성되는 데 단초가 되었던 북경여성행진이 열린 지 10년이 지난 올 해 지구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행진을 다시 한번 진행한다. 올해의 행진 역시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작해서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된다. 세계여성행진의 설명에 따르면 부르키나 파소가 행진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선정된 이유는 이 나라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여성들이 가정폭력 및 강간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폭력(강제결혼, 조혼, 수혼(남편이 사망하면 시동생과 재혼하는 제도), 성기절단 등)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세계여성행진 총회에서 채택된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이 올해의 행진을 조직하는 데 근간이 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에서 헌장의 전문을 볼 수 있다). 이 헌장은 억압과 착취, 배제와 불관용이 철폐되고 모든 이의 완전성, 다양성, 권리와 자유가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그리고 평등, 자유, 연대, 정의, 평화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데 있어 필수적인 가치로 제시하고 있으며 각각에 관한 서른한 가지의 세부항목을 함께 제출하고 있다. 이 헌장에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소수가 절대 다수의 여성과 남성을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인류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근원이며, 각각이 서로를 강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또한 이 두 체계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여성혐오, 외국인혐오, 동성애혐오, 식민주의, 제국주의, 노예제와 강제 노동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상호 작용하며, "여성들과 남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지각색의 근본주의를 양산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여성과 남성, 지구상의 모든 억압받는 개인 혹은 집단이 평등, 평화, 자유, 연대, 정의에 기초하여 관계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변혁하고 사회 구조를 급진적으로 바꾸어낼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이 행진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헌장에 담긴 가치에 관한 토론을 조직하며, 이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와 더불어 국경을 초월한 여성들 간의 연대를 상징하는 패치워크를 제작한다. 각 나라마다 이 헌장에 담긴 가치와 각 국의 독자적인 요구를 상징하는 퀼트를 하나씩 제작하고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이를 이어 붙여 거대한 패치워크로 만드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 패치워크는 행진 경로를 따라 브라질에서 출발해서 행진이 마무리되는 부르키나 파소에서 완성된다. 행진이 마무리되는 10월 17일에는 각 나라마다 현지 시간으로 정오에 맞추어 연대행동을 진행한다. 이 연대 행동은 지구를 한 바퀴 돌며 24시간 지속되는 것이다.
지난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사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집회로 2005년 행진이 시작되어 4월 25일 현재 헌장과 퀼트는 멕시코까지 전달되었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아이티, 쿠바, 온두라스, 엘 살바도르 각 지에서 원주민, 농민 등 수 많은 여성들이 모여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폐절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토론했고, 국경 근방에서 만나 헌장과 퀼트를 전달하며 서로의 연대감을 확인했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헌장에 담긴 가치와 함께 각 국의 독자적인 요구를 제출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안전한 상태에서 자유롭고 접근 가능한 낙태의 권리"가 요구로 제출되었다. 또한 헌장에 담긴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이주의 불법화 및 폭력을 동반하는 자유무역협정, 미국에 의한 군사적 개입 및 경제 봉쇄를 규탄하는 활동도 동시에 진행했다. 앞으로 헌장과 퀼트는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유럽으로 전달되어 오는 5월 말에는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집회가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열린다. 그 뒤 동유럽과 호주, 일본을 거쳐 7월 3일에는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다시 동남아시아 각지를 거쳐 중동으로 넘어간 후 9월 1일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공동행동이 진행된다. 헌장과 퀼트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돈 다음 10월 17일 부르키나 파소에서 행진을 마무리하는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확산하는 계기로
현재 진행 중인 세계여성행진은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부과되는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 강화에 맞서, 그리고 각 지역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을 둔 다양한 억압에 맞서 전 세계의 여성들이 단결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를 계기로 하여 국내에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를 모아내고 확산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이 행진에 동참하는 전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여성의 의무와 책임 강화, 이주여성, 성매매 여성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현실, 전쟁이 동반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강화 및 성차별 이데올로기의 공고화 등 신자유주의와 전쟁이 여성들에게 부과한 현실에 맞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요구를 집단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참고자료> 2005년 세계여성행진 진행 상황
브라질에서 부르키나 파소까지, 여성들의 행진은 계속된다.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40,000 명의 여성들이 참여한 가운데 행진 시작. 캐나다, 퀘벡, 카메룬, 콩고, 부르키나 파소 등에서 온 대표단도 함께 참석.
3월 12일- 국경 지역인 브라질 히우 그랑지 두 술 주의 포르투 샤비에르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 나라 여성들 4,000 여 명이 모여 함께 집회 진행
3월 13일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에서 헌장 낭독 및 시낭송, 음악공연, 연극 공연 진행. 아르헨티나 곳곳으로 이동.
3월 15일 -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여성들이 만나 헌장 전달.
3.19. 페루로 넘어감. 볼리비아 여성들과 페루 여성들이 양국 국경 근방 티티카카호에 있는(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다리 위에서 만남. 데스아구아데로 시청에서 헌장을 넘겨 주는 행사 진행. 22일 리마에서 집회. 퀼트 제작 경연대회 진행.
3. 22. 에쿠아도르 원주민 여성들이 볼리비아에서 온 헌장 넘겨받음. 국경 지역에 있는 다리를 세 시간동안 점거하며 헌장에 담긴 가치와 자신들의 신념이 동일함을 표현
4.1~6 콜롬비아, 전쟁 반대 시위 개최
4.7~4.9: 아이티 힐마 베니테스라는 콜롬비아 여성이 헌장을 아이티로 넘겨줌. 여성권 쟁취를 위한 전국 협의회(CONAP), 헌장을 정부 대표단(여성부장관, 법무부장관, 문화부장관, 보건부장관)에 전달
4.10~4.12: 쿠바 전국 여성 연맹, 수도인 아바나 및 전국 각지에서 헌장의 의의를 토론하는 행사 진행. 쿠바 여성들은 이 여성헌장이 정의를 쟁취하고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데 매우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음.
4.13~4.16 온두라스
4.17~4.20 엘살바도르 : 온두라스-엘살바도르 접경지역 아마티요에서 온두라스 여성들이 헌장을 엘살바도르 여성들에게 넘겨주고 빈곤과 폭력에 반대하는 상징의식을 공동으로 진행. 헌장을 활용하여 이주불법화, 폭력을 동반하는 자유무역협정(나프타, 프에블로 파나마 플랜 등)의 효과를 비판하는 활동을 산살바도르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전개. PSSP
현재 여성부와 주요 여성단체들이 여성발전의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는 '성주류화'가 본격적으로 제출되었던 4차 북경여성대회가 열린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각 국 정부와 유엔의 행동방안을 담은 '북경행동강령'을 함께 발표했다. 이에 따라 얼마 전 3월 초 뉴욕에서 열린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49차 총회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각 국 정부가 행동강령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회의에 참석하여 그 동안 북경행동강령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장치들을 꾸준히 마련하고 실행했다고 밝혔다. 여성부 신설을 비롯하여 여성의 공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마련해온 결과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했다. 여성 취업자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는 통계수치는 정부의 이러한 주장을 증명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현실은 전체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이고 노조가입률은 5.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대다수의 여성들이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가 할당되었을 뿐임을 보여준다. 정부는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부족한 가계비용을 보충하는 역할에 더해 출산, 양육을 비롯한 재생산 노동 대한 의무를 가중하며 여성들의 이중적인 고통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높아졌다'는 주장 뒤에는 이러한 여성들의 현실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가 행동에 나서고 여성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여성행진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여성행진의 기원과 2000년 행진
북경 여성대회가 열리기 전 1995년 4월, 캐나다에서는 퀘벡여성연맹의 주최로 “빵과 장미를 위한 여성 행진”이 열렸다. 850여 명의 여성들이 빈곤 제거를 위한 분명한 조처를 요구하는 행진을 10일 동안 진행했다.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모인 여성들은 이 행진을 전 세계적인 행진으로 확대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후 1998년 10월 몬트리올에서 회의를 열어 빈곤 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를 행진의 주제로 채택하고 이에 관한 17가지 요구목록을 작성하고, 2000년에 전 세계적인 행진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8일(세계여성의 날)부터 10월 17일(세계 빈곤철폐의 날)까지, 전 세계의 여성들은 빈곤 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라는 두 가지의 보편적인 요구와 함께, 각 대륙별로 독자적인 요구를 제출하며 릴레이 행진을 진행했다. 남미에서는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구조조정과 외채경감 프로그램 반대, 거주지, 일자리를 얻기 위한 훈련, 토지에 대한 접근권, 낙태의 비범죄화, 미국의 군사적 개입 반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철회등을 요구로 내걸었다. 아시아에서는 성매매와 빈곤이 중요한 화두였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물에 대한 접근권, 거주지에 대한 권리, 전기 공급, 여성들의 문맹 퇴치, 안전한 출산을 위한 지역 의료시설 확보, AIDS 등 질병에 관한 정보 보급,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 식량 안전의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유럽에서는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해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해오면서 생기는 문제들로 마약 거래 및 여성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신매매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또한 직업에서의 성적 차별 철폐, 낙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극우 카톨릭 조직들의 종교 근본주의 반대, 레즈비언 여성들의 권리 등이 함께 제기되었다. 아랍지역에서는 강간, 성폭력, 고문과 살인을 불러일으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비롯한 수많은 분쟁을 중단할 것과,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하고, 여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민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진행된 2000년 행진은 인종과 문화, 국경을 뛰어넘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2001년 10월에 몬트리올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2000년의 행진의 유효성을 확인하며 이러한 전 세계적인 차원의 운동을 더욱 강화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여성운동들 간의 상시적인 네트워크인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 결성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은 미주, 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각 지역에서 161개국에서 전국 규모, 혹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6000개 이상의 여성운동 조직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세계사회포럼이 시작될 때부터 적극 결합해왔고,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결성된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의 활동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한 두 가지의 중요한 과제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투쟁을 제시해왔는데, 빈곤과 폭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대안세계화 운동에 여성들의 요구를 결합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부르키나 파소까지,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과 연대 퀼트
세계여성행진은 이 네트워크가 결성되는 데 단초가 되었던 북경여성행진이 열린 지 10년이 지난 올 해 지구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행진을 다시 한번 진행한다. 올해의 행진 역시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작해서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된다. 세계여성행진의 설명에 따르면 부르키나 파소가 행진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선정된 이유는 이 나라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여성들이 가정폭력 및 강간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폭력(강제결혼, 조혼, 수혼(남편이 사망하면 시동생과 재혼하는 제도), 성기절단 등)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세계여성행진 총회에서 채택된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이 올해의 행진을 조직하는 데 근간이 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에서 헌장의 전문을 볼 수 있다). 이 헌장은 억압과 착취, 배제와 불관용이 철폐되고 모든 이의 완전성, 다양성, 권리와 자유가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그리고 평등, 자유, 연대, 정의, 평화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데 있어 필수적인 가치로 제시하고 있으며 각각에 관한 서른한 가지의 세부항목을 함께 제출하고 있다. 이 헌장에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소수가 절대 다수의 여성과 남성을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인류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근원이며, 각각이 서로를 강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또한 이 두 체계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여성혐오, 외국인혐오, 동성애혐오, 식민주의, 제국주의, 노예제와 강제 노동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상호 작용하며, "여성들과 남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지각색의 근본주의를 양산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여성과 남성, 지구상의 모든 억압받는 개인 혹은 집단이 평등, 평화, 자유, 연대, 정의에 기초하여 관계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변혁하고 사회 구조를 급진적으로 바꾸어낼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이 행진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헌장에 담긴 가치에 관한 토론을 조직하며, 이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와 더불어 국경을 초월한 여성들 간의 연대를 상징하는 패치워크를 제작한다. 각 나라마다 이 헌장에 담긴 가치와 각 국의 독자적인 요구를 상징하는 퀼트를 하나씩 제작하고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이를 이어 붙여 거대한 패치워크로 만드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 패치워크는 행진 경로를 따라 브라질에서 출발해서 행진이 마무리되는 부르키나 파소에서 완성된다. 행진이 마무리되는 10월 17일에는 각 나라마다 현지 시간으로 정오에 맞추어 연대행동을 진행한다. 이 연대 행동은 지구를 한 바퀴 돌며 24시간 지속되는 것이다.
지난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사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집회로 2005년 행진이 시작되어 4월 25일 현재 헌장과 퀼트는 멕시코까지 전달되었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아이티, 쿠바, 온두라스, 엘 살바도르 각 지에서 원주민, 농민 등 수 많은 여성들이 모여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폐절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토론했고, 국경 근방에서 만나 헌장과 퀼트를 전달하며 서로의 연대감을 확인했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헌장에 담긴 가치와 함께 각 국의 독자적인 요구를 제출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안전한 상태에서 자유롭고 접근 가능한 낙태의 권리"가 요구로 제출되었다. 또한 헌장에 담긴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이주의 불법화 및 폭력을 동반하는 자유무역협정, 미국에 의한 군사적 개입 및 경제 봉쇄를 규탄하는 활동도 동시에 진행했다. 앞으로 헌장과 퀼트는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유럽으로 전달되어 오는 5월 말에는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집회가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열린다. 그 뒤 동유럽과 호주, 일본을 거쳐 7월 3일에는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다시 동남아시아 각지를 거쳐 중동으로 넘어간 후 9월 1일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공동행동이 진행된다. 헌장과 퀼트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돈 다음 10월 17일 부르키나 파소에서 행진을 마무리하는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확산하는 계기로
현재 진행 중인 세계여성행진은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부과되는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 강화에 맞서, 그리고 각 지역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을 둔 다양한 억압에 맞서 전 세계의 여성들이 단결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를 계기로 하여 국내에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를 모아내고 확산하는 행동을 조직하고 이 행진에 동참하는 전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여성의 의무와 책임 강화, 이주여성, 성매매 여성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현실, 전쟁이 동반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강화 및 성차별 이데올로기의 공고화 등 신자유주의와 전쟁이 여성들에게 부과한 현실에 맞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요구를 집단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참고자료> 2005년 세계여성행진 진행 상황
브라질에서 부르키나 파소까지, 여성들의 행진은 계속된다.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40,000 명의 여성들이 참여한 가운데 행진 시작. 캐나다, 퀘벡, 카메룬, 콩고, 부르키나 파소 등에서 온 대표단도 함께 참석.
3월 12일- 국경 지역인 브라질 히우 그랑지 두 술 주의 포르투 샤비에르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 나라 여성들 4,000 여 명이 모여 함께 집회 진행
3월 13일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에서 헌장 낭독 및 시낭송, 음악공연, 연극 공연 진행. 아르헨티나 곳곳으로 이동.
3월 15일 -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여성들이 만나 헌장 전달.
3.19. 페루로 넘어감. 볼리비아 여성들과 페루 여성들이 양국 국경 근방 티티카카호에 있는(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다리 위에서 만남. 데스아구아데로 시청에서 헌장을 넘겨 주는 행사 진행. 22일 리마에서 집회. 퀼트 제작 경연대회 진행.
3. 22. 에쿠아도르 원주민 여성들이 볼리비아에서 온 헌장 넘겨받음. 국경 지역에 있는 다리를 세 시간동안 점거하며 헌장에 담긴 가치와 자신들의 신념이 동일함을 표현
4.1~6 콜롬비아, 전쟁 반대 시위 개최
4.7~4.9: 아이티 힐마 베니테스라는 콜롬비아 여성이 헌장을 아이티로 넘겨줌. 여성권 쟁취를 위한 전국 협의회(CONAP), 헌장을 정부 대표단(여성부장관, 법무부장관, 문화부장관, 보건부장관)에 전달
4.10~4.12: 쿠바 전국 여성 연맹, 수도인 아바나 및 전국 각지에서 헌장의 의의를 토론하는 행사 진행. 쿠바 여성들은 이 여성헌장이 정의를 쟁취하고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데 매우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음.
4.13~4.16 온두라스
4.17~4.20 엘살바도르 : 온두라스-엘살바도르 접경지역 아마티요에서 온두라스 여성들이 헌장을 엘살바도르 여성들에게 넘겨주고 빈곤과 폭력에 반대하는 상징의식을 공동으로 진행. 헌장을 활용하여 이주불법화, 폭력을 동반하는 자유무역협정(나프타, 프에블로 파나마 플랜 등)의 효과를 비판하는 활동을 산살바도르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전개.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