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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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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국제행동의 날, 워싱턴에 가다

이덕희 |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워싱턴에서 시위가 있다고!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란 느낌이 누군가를 얼마나 주눅들게 하는지, 사실 나는 몰랐다. 지방 연구소로 내려간 선배들에게 서울이 싫어요, 얘기할라치면, "그래도 서울은..." 하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여기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그들이 흐렸던 뒷말이 무엇이었던지 조금 이해할 듯 싶었다. 시애틀의 시위 장면을 보면서도, '비행기로 다섯시간, 돈으로는 오 백불', 하면서 '기말고사 기간이라서 얼마나 다행이냐, 핑계거리라도 있으니' 했다.

같은 미국에 있으면서도 공중파를 통해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고 인터넷방송을 통해야 사실을 조금씩 조합할 수 있었다. 첫 학기라는 강박에다가 왠지 얌전하게 지내야 할 것 같은 자기 통제가 작동을 했던 모양인데, 이번에는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전단 하나가 2월부터 마음을 흔들었다. 워싱턴에서 시위가 있다고! 자동차로 5시간, 진짜 가깝구나! 게다가 한번 가본 길, 핑계도 없고, 좋다!

이 동네가 그리 싫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학교 앞에 근방의 좌파들이 모이는 서점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신림동 녹두거리의 '그날이오면'처럼 여러 사람이 공동출자한 조합이고 월급을 받는 메니저 한명과 시간을 정해 돌아가며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자들이 운영을 한다. 운영위원회는 선거로 뽑는데, 중학생부터 50대 아저씨까지 다양하다. 일요일 점심 때 유기농제품으로 만든 식사를 만들어 시내 한폭판에서 홈리스들하고 같이 어울려 먹는데, 홈리스를 점차 도시 외곽으로 옮기려는 시정책에 맞서는 간접적인 시위이다. 월요일마다 인디영화상영도 하고 한달에 한번 언더그라운드 시인들을 초청해서 시낭송의 밤도 하고...

어쨌든 이 서점도 지난번 시에틀 때에는 토론회 한번 하는 걸로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거리가 거리인지라, 그리고 시에틀에서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워싱턴 출정'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쳤다. 집단적인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전지구적 정의를 지키자는 것이 기본 슬로건이었다. 시에틀에서의 활동을 찍은 비디오를 같이 보면서 행동지침을 공유하고 경찰의 진압에 대응방법도 설명했다.
나 또한 서점의 회원이기는 하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이들의 행사에 참여해본 적은 없어서 한참 고민을 했다. 일단 일정이 약간 맘에 걸렸다.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화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것도 문제고 이 나이에(!) 버스 타고 왕복 10시간 버스라... 결국 나는 관광객의 신분으로 워싱턴에 가기로 작정했다. 당장 비행기표를 사고, 워싱턴 근교에 살고 있는 후배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숙박와 교통편 제공을 부탁했다. 마침 서울에서 한 선배가 직접 날아온다고 하기에, 겸사 겸사.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떻게 알았는지 워싱턴 현지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협박성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자, 여러분은 이렇게 해서 나의 글을 읽고 있다.


제3세계노동자, 여성, 아동의 소외 뒤에는 자본의 움직임이!

지난 학기부터 미국 몇몇 대학과 이 학교(노쓰 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경제정의를 위한 학생들' 모임이 투쟁을 해온 사안은, 소위 sweatshop, 그러니까 저임금 노동착취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업체와 대학간의 계약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이들 업체들이 제3세계에서 운영하는 공장이 노동자들에게 터무니 없이 낮은 임금을 주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한다거나 쇠사슬로 재봉틀에 묶어 놓는다든지 구타를 하는 등의 잔혹행위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작년에는 나이키가 이들의 구체적인 공격대상이 되었던지, 나이키가 자기 홈페이지에 전세계의 공장위치를 발표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걸 들으면서, 우리나라 공장이 동남아시아로 진출해서 그곳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으나, 어설픈 민족의식을 버리고 국제주의자의 자세를 갖추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어떤 학교에서는 총장실 점거도 하였고 단식농성도 하였다. 이 학교는 기존 업체와의 계약을 고수하면서 그렇지 않은 업체와도 계약을 맺어서 학생들의 항의를 무마하였는데 아직도 투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번 워싱턴 시위를 주도한 수백개의 조직중에 하나인 미국대학연합은 바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국제금융기구와 세계은행은 차관을 주는 대신 구조조정정책을 강요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고실업 저임금을 유지하여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인터넷에 소개한 아주 간단한 기초교양자료에는 '국제금융기구에 반대하는 열가지 이유'가 아주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여성들이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열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정부의 긴축정책과 고실업 저임금으로 가계의 기본적인 생계가 곤란에 처하게 되고 특히 교육과 보건의료 부문의 민영화로 인해 돈이 없는 노동계급, 그중에서도 여성이 소외되기 쉽상이라는 것이다. 텔레비젼 드라마에 흔히 나오듯 아들은 대학에 보내도 딸은 고등학교만 나온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일찌감치 돈을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태야 한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턱없이 내려가고 이 때문에 매매춘에 이끌리거나 노예같은 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97년 이래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일이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작년 현대자동자투쟁이 아직도 여전히 논쟁이 되는 모양이던데,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입장말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노동자'는 억센 팔뚝에 무거운 금속성 작업도구를 들고 있는 남성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는지. 노동자 대회 포스터 사건이며, 최근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에서의 성폭력사건이며... 여러 가지가 스치고 지나갔다. 민주노총 사회개혁안 10대 요구사항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가, 아! 기억이 가물거린다...

또 이 자료에서는 어린이를 강조하는데, 사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려 했던 깊은 뜻은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정책 때문에 각국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축소 내지 민영화하고 빈곤층에 대한 보조금을 줄임에 따라 어린이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태국의 매매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태국뿐만 아니라 근처의 여러나라에서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들이 가계를 돕기 위해 매매춘업소로 몰려들고 결국은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2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마감하기도 한다는 사실의 뒷켠에는 바로 이런 국제적 자본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보수주의의 차이

워싱턴에서 30분쯤 떨어진 버지니아주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한 14일 금요일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시내에 들어간 토요일에도 줄곳 비가 내렸다. 시내를 한바퀴 돌았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조용했다. 이미 조지워싱턴 대학이나 시내의 사무실들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휴교나 휴무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박물관과 백악관 근처의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보였다.

관광버스의 일종인 트롤리 운전수는 구제금융기구 건물을 지나치면서 일요일에 큰 시위가 바로 이 앞에서 벌어진다고 안내를 했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의 워싱턴은 경찰의 오토바이 소리를 빼고는 조용하기만 했다. 도심을 약간 벗어난 곳에서는 워싱턴 내의 고등학생 동성연애자조직이 중심이 된 "Proud day"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번 시위랑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보였다.

점심 나절, 서울에서 온 선배를 만났다. 다른 조직에서 파견된 동지도 같이 왔는데, 한국에 있을 때에도 시위현장에서나 만나던 선배를 멀리 미국에서 만나면 무척 반가울 것 같았는데, 뜻밖에 덤덤하기만 했다. 마치 엊그제 헤어졌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인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점심을 먹으며 중앙지도부 소식을 물어보니 토요일 오전에 소방관을 앞세운 경찰이 중앙본부 사무실에 들어와서 두명을 체포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다 해산시켰단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온 공식적인 일정 외에는 다른 일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시애틀과는 달리 다른 행사가 별로 많지 않고 주로 언론을 통한 홍보활동이 대부분이고 일요일 백악관 앞에서 시작되는 행진이 집중점이라고 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이 시위현장에서 붙잡힌 경우 곧바로 추방에 10년간 미국 입국 금지가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나.
일요일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산 탓에 토요일 오후에 뭔가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전에 백악관 앞에 가면 워싱턴의 '한청협'에서 동원한 풍물패가 나올 것이라는 말에 상당히 기대를 하고 친구집으로 향했다. 가던 도중 만난 일부의 사람들을 보니 마크가 찍힌 모자를 쓰고 조끼를 입은 것으로 보아 미국노총(AFL-CIO) 차원의 집회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피켓을 보니 '정부는 미국을 중국에 팔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시에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노총은 미국정부가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동일한 노동기준을 무역과 연관시켜 자기들의 지위를 보장해줄 것을 주장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미국에서 파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은 중국산 아니면 태국산이다. 물건이 조잡하긴 하지만 값이 싸니까 특히나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러니 중국한테 미국 팔지 말라는 얘기가 나올만도 한데, '경제정의를 위한 학생들' 모임을 비난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이 바로 '미국이 물건 사주니까 그 나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거 아니냐, 오히려 미국한테 감사해야 한다' 는 것이고 보면, 노동자조합에 가입해 있는 노동자들의 입장이 그들 보수주의자와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 미국에는 시간제노동으로 살아가는 노동계급이 너무 광범위해서져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수입을 보장받는 직업을 의미하는 것 같다.


미국시민이 미국자본과 정권에 반대하기란

일요일 아침 백악관 시위에는 참여하지 못했는데, 나와 합류하기 위해서 시카고에서 온 친구의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이었던 것을 뒤늦게 확인한 탓이다. 나랑 출발하는 공항이 다른 관계로 (참고로 워싱턴주변에는 공항이 세 개다), 1년만의 상봉을 허둥지둥 마감하고 돌아서 다시 내가 출발하는 공항까지 1시간 30분을 달려가야 했다. 선배랑 만나기로 약속을 하긴 했지만, 아쉬움은 그냥 아쉬움일뿐. 중간에 지나친 조지타운이며 포토맥강 주변의 거리는 여전히 쇼핑과 햇볕즐기기에 몰두한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어디서나 시위현장에서 한 골목만 지나치면 일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월요일이 되자 학교신문에서는 워싱턴의 시위를 꽤나 크게 다루었다. 이 시위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주장한 것은 크게 세가지인데 부채국의 빚을 탕감하라,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채택하라, 교육과 보건의료예산삭감을 중지하라 등이었다. 학교의 7개 단체가 연합해서 가진 기자회견을 보니 시위 기간동안 체포된 1,300여명에 이 학교 학생 6명을 포함되었고 경찰의 잔혹행위가 상당히 심했던 모양이다. 나한테는 상당히 익숙한 최루가스라든지 스프레이가 시에틀에 이어 등장했고 어떤 사람들은 경찰봉에 두들겨 맞기도 했단다.

24시간 이상 구숙되어 있는 동안 제대로 식사 공급을 받지 못했다든지, 화장실 사용을 거부당했다든지 하는 일이 '인권' 앞세우는 미국에서도 벌어진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법과 현실은 다른 거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든 상황이 나빠지면 '미국시민'도 제3세계민중이 경험하는 폭력과 몰인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약간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24일 월요일에는 워싱턴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평가를 하고 뒷풀이도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소감들을 털어놓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겠지만, 미국 '시민'이 제3세계 민중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의 중심에 놓인 미국 자본과 정권에 반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한국 군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참회와 사죄를 한다거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 자본가의 착취를 규탄한다든지 하는 일이 논리적으로는 쉽게 가능하지만 감성적으로 구체화되기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조지워싱턴 대학 앞의 한 fraternity 창문에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걸개가 걸리고 그 대학 학생들 몇몇은 시위대를 향해 야유를 해댔다는 뉴스도 있었다.


민중들의 투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실 4월 내내 미국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워싱턴에서 벌어진 시위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오던 중 어머니를 잃은 엘리언 곤잘레스라는 어린 소년의 본국 귀환문제로 워싱턴내의 고위층까지 움직이고 플로리다에서는 연일 소년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둥,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둥, 시위대가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CNN은 물론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미국공공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마저도 뉴스시간마다 플로리다의 특파원을 연결해댔다.

'자유'와 '풍요'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온 소년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라는 주장과 소년의 아버지가 있는 쿠바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플로디라주법원과 연방정부의 엇갈린 판결을 뒷받침하는 논리인 모양이다. 한 소년의 운명을 둘러싼 호들갑을 보면서, 도대체 왜 쿠바국민인 그 소년의 거취를 미국정부가 결정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플로리다에 사는 소년의 친척들에게는 조카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이 사건은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금융기구와 세계은행의 회의가 미국민중은 물론 전세계민중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그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시위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미국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한 언론에 교묘하게 이용당했을 뿐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카스트로를 다시 한번 비웃고 미국의 우월함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때마침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 1주년을 맞아 총기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국제적 정의와 연대는 가장 '미국적인' 문제들에 묻히고 말았다. 신문인터뷰에 실린 어떤 학생의 말대로 자본주의는 자연스러운 미국식 그 자체인지, 자본주의야말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시위 자체를 허용하는 힘인 것인지...

자본과 군대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라야 진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거라고, 직업, 교육, 주택, 보건의료, 그리고 깨끗한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지난 2월에 읽었던 편지지 한 장 크기의 유인물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번 시위가 시에틀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일단 회의를 새벽 6시 30분으로 옮겨서 진행했다고 하니 회의 자체를 무산시켰던 시에틀의 성공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주도했던 미국내 세력들은 조만간 다가올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선거를 위한 전당대회에서도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시위를 조직할 것이라고 하고, 국제연대의 흐름은 다음번 국제회의가 열리는 체코의 프라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하니, 워싱턴 시위의 성패를 그리 쉽게 판단할 것은 아닌 모양이다. 민중이 자기 미래를 결정하게 될 때까지 이런 투쟁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거의 일년간 '제 무덤 판' 것을 후회하며 이념적 외로움(ideological loneliness)에 시달리던 나에게 이번 워싱턴 '관광'은 큰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공부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이니 놀러다닌다고 욕할 사람도 없고...

국제금융기구와 세계은행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이번 회의결과에 영향을 상당히 받을 것이라고들 하던데. 97년처럼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후회를 하는 일은 다시 없겠지. 올 겨울엔 프라하에 다시 가볼까나. 그땐 관광객말고 시위대에 끼어야 할텐데...

국제금융기구 대변인은 4월 19일 수요일 제3세계 정부의 사회보장 축소와 국제금융기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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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보건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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