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역, 『스피노자와 정치』, 이제이북스, 2005
약간의 소개
1.
대다수 사람들에게 스피노자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철학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피노자의 철학적 개념과 범주는 17세기의 철학적 지반1)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또한 그의 철학적 문제설정은 유사한 개념과 범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대다수 철학과도 구별된다. 그 결과 스피노자의 철학의 우리에게 이중의 노력, 즉 17세기 철학의 일반적 관심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스피노자의 이례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요구한다.
현대정치의 기원에서 그 기초를 확립한 이른바 사회계약설 또는 '자연권' 사상에 관한 이해2)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실마리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독특한 유물론의 전통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의 거울에 마르크스를 비추어 보는 동시에 마르크스의 거울에 스피노자를 비추어 보는 작업이다(이른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
1960-70년대 이후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심이 상당부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접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3) 에띠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도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훌륭한 해설서인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와 공백, 나아가 전화와 일반화라는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철학과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2.
발리바르는 그의 스승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저작이 없는 철학자'다. 그는 철학에서의 유물론적 전통이 자기 완결적 철학체계―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완성―의 확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의 한계와 아포리아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그는 언제나 특정한 정세―정세는 정치와 철학의 해후의 조건이다― 속에서 그것에 대한 개입으로서 유물론적인 철학적 실천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철학적 작업에서 두 권의 교육학적 해설서는 예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마르크스의 철학}(1993)이고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와 정치}(1985)다. 두 저서는 유사한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의 정치}도 먼저 스피노자의 입장을 역사와 정세 속에 위치시키고(1장), 그 다음에 시기적 순서에 따라 문제설정의 변화와 단절을 분석하면서 저작들(2장의 {신학-정치론}, 3장의 {정치론}, 4장의 {윤리학})이 재해석된다.4)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우 그의 철학이 문제가 되는 반면, 스피노자의 경우는 그의 정치가 문제가 된다. 즉, 마르크스의 '역사과학'에서 유물론적 철학의 실천을 검출할 수 있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독특한 정치를 검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 해석에서 독자적 위치로 귀결된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포함하여 모든) 철학은 궁극적으로 정치(공동체)에 개입해서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이다.5) 스피노자 해석에서 오랜 논쟁으로 남아 있던 형이상학과 인간학, 그리고 정치와 윤리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6)
3.
스피노자의 철학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는 오랜 이론적 공백으로서 '이데올로기'에 관한 대안적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7) 여기서 정치와 대중,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부각된다. 특히 사회운동이 언제나 '대중운동'을 지향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세계화라는 조건에서 국가와 당, 그리고 대중운동의 모순을 새롭게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제기되는 대중과 민주주의의 문제는 특별한 주목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대중이라는 문제 또는 역사에서 대중의 결정적 역할이라는 문제는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공통적인 이론적·철학적 대상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가 대중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 내에서 특수한 형태의 모순을 발견한다면, 스피노자는 대중의 심리적·정신적 조건들 연구하고 그 내에서 특수한 형태의 모순을 발견한다.8)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대중은 일종의 선(先)주체적 범주로서 정치를 사고하는 데 필수적인 역동적 질료를 이룬다. 대중의 역동성은 그 고유한 모순에서 비롯되는데, 발리바르는 이를 대중들(masses)의 양면성 또는 양가성(ambivalence)이라고 지칭한다.
대중―지배자와 피지배자, 대표자와 피대표자 모두를 포괄하는―의 능동성과 수동성, 정념적 동일화에 따른 예속의 경향과 이성적 교통에 따른 (자기)해방의 경향에 대한 동시적 이해는 대중의 '가상(상상)의 생산성'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여타의 스피노자 해석과 쟁점을 형성한다.9) 이러한 관점은 역사와 정치에서 대중의 민주주의적 운동뿐만 아니라 대중의 '도착'―예컨대, 파시즘이나 인민주의(populism)의 사례에서 드러나는―도 동시에 설명한다. 대중의 역능은 결코 선험적으로 보증되지 않는다.
대중의 양가성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스피노자에게서 민주주의는 일련의 기관들이나 법률적 장치와 같은 정태적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기존의 교통관계를 변형시켜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려는 집합적 노력의 과정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과정, 즉 공통의 인식에 기초해서 공동의 봉기적 권리를 확립하고 요구하는 일련의 과정, 민주화의 영속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도 문제는 언제나 대중의 내적 조건으로 귀결된다. 대중들 내부에서 대중들 스스로 극단적 폭력에 대응하고 집합적 인식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강화한다는 정치적 전망은 오늘의 사회운동에게 풍부한 통찰을 제공해 줄 것이다.
1) 발리바르는 17세기의 철학과 '현대철학' 사이에는 거대한 단절이 존재하며, 17세기의 철학자들―데카르트를 포함하여―은 '주체의 철학자'가 아니라 '실체의 철학자'라고 주장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로크의 (정치)철학 내에서 현대철학으로의 결정적 단절을 발견한다. tienne Balibar, "What Is 'Man' in Seventeenth-Century Philosophy? Subject, Individual, Citizen", in Janet Coleman, ed., The Individual in Political Theory and Practice, Clarendon Press, 1996. 그는 혁명 또는 봉기와 철학 또는 철학적 개념의 탄생 및 변형이라는 연구주제를 발전시키면서 봉기에 내장된 공산주의적 요소―이른바 평등-자유 명제―에 대한 대응으로 관념론적 철학의 개념과 범주들이 변형·발전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분석에서 도출된 부르주아 공산주의의 요소, 즉 평등-자유 명제를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정에서 수평파와 공유파(Diggers)의 봉기에도 적용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철학적 대응으로 칸트가 주체(Subjekt) 개념을 발전시켰다면, 영국 혁명에 대한 철학적 대응으로 로크는 양심(conscience)과 구별되는 의식(consciousness) 개념을 발전시켰다. 혁명과 '공산주의'의 계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tienne Balibar, "Quel communisme apr s le communism?", in Eustache Kouvelakis, dir., Marx 2000, PUF, 2000 (국역: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 2002에 수록). 그리고 '의식' 개념의 발견에 이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tienne Balibar, "A Note on 'Consciousness/Conscience' in the Ethics", Studia Spinozana, Vol. 8., 1992. 본문으로
2) 이 경우 홉즈, 로크, 루소의 정치·사회사상과 스피노자의 철학을 대조시킴으로써 그의 독창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현대정치의 기초를 이루는 '자연적 권리'의 구체적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홉즈와 로크의 사회철학을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 멕퍼슨의 작업은 자연권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Macpherson, C. B., The Political Theory of Possessive Individualism: Hobbes to Locke,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국역: 박영사, 1990). 그러나 스피노자에 대한 발리바르의 해석은 홉즈와 로크의 '소유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3)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스피노자 철학의 수용―종종은 왜곡된 형태의―과 프랑스 내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출현, 그리고 여기서 알튀세르의 역할 등에 관해서는 Andre Tosel, "La Marxisme au miroir de Spinoza", Du mat rialisme de spinoza, Kim , 1994(국역: "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맑스주의", 트랜스 토리아, 2005, 상반기)를 참조할 수 있다. 특히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정치를 결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에 대해서는 Andre Tosel, "La philosophie politique au miroir de Spinoza", Y a-t-il une pens e unique en philosophie politique?, PUF, 2000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스피노자와 정치}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발리바르의 저작을 완역한 것이고, 2부는 스피노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번역자의 해제와 용어해설이 추가된다. 본문으로
5) 그런 면에서 '정치철학'은 다만 학제적 구분에 불과할 뿐이며, 철학의 모든 개념과 범주는 고유한 의미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 '정치'는 결코 일의적이지 않다. 발리바르는 현대의 정치관념을 자율성과 타율성, 그리고 타율성의 타율성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의 정치 관념을 비교하는 글에서 잘 드러난다. 본문으로
6) 자세한 것은 번역자의 해설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와 공백에 대해서는 tienn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in Marxism" in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Routledge, 1994. (국역: "이데올로기의 동요", 서관모 편역, {역사유물론의 전화}, 민맥, 1993)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데올로기 개념의 재구성에 대해서는 The Philosophy of Marx, Verso, 1995. (국역: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문화과학, 1995에 수록)의 3장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8) tienne Balibar, "Preface",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Routledge, 1994. 동일한 내용이 {스피노자의 정치} 2부에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에서도 발견된다. 본문으로
9) 대중의 가상의 생산성은 사실 공포, 즉 주권적 권력 앞에선 대중의 공포인 동시에 대중에 대한 주권적 권력의 공포의 생산성이다. Andre Tosel, "La philosophie politique au miroir de Spinoza", Y a-t-il une pens e unique en philosophie politique?, PUF, 2000. 본문으로
대다수 사람들에게 스피노자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철학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피노자의 철학적 개념과 범주는 17세기의 철학적 지반1)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또한 그의 철학적 문제설정은 유사한 개념과 범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대다수 철학과도 구별된다. 그 결과 스피노자의 철학의 우리에게 이중의 노력, 즉 17세기 철학의 일반적 관심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스피노자의 이례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요구한다.
현대정치의 기원에서 그 기초를 확립한 이른바 사회계약설 또는 '자연권' 사상에 관한 이해2)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실마리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독특한 유물론의 전통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의 거울에 마르크스를 비추어 보는 동시에 마르크스의 거울에 스피노자를 비추어 보는 작업이다(이른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
1960-70년대 이후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심이 상당부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접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3) 에띠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도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훌륭한 해설서인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와 공백, 나아가 전화와 일반화라는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철학과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2.
발리바르는 그의 스승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저작이 없는 철학자'다. 그는 철학에서의 유물론적 전통이 자기 완결적 철학체계―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완성―의 확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의 한계와 아포리아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그는 언제나 특정한 정세―정세는 정치와 철학의 해후의 조건이다― 속에서 그것에 대한 개입으로서 유물론적인 철학적 실천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철학적 작업에서 두 권의 교육학적 해설서는 예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마르크스의 철학}(1993)이고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와 정치}(1985)다. 두 저서는 유사한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의 정치}도 먼저 스피노자의 입장을 역사와 정세 속에 위치시키고(1장), 그 다음에 시기적 순서에 따라 문제설정의 변화와 단절을 분석하면서 저작들(2장의 {신학-정치론}, 3장의 {정치론}, 4장의 {윤리학})이 재해석된다.4)
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우 그의 철학이 문제가 되는 반면, 스피노자의 경우는 그의 정치가 문제가 된다. 즉, 마르크스의 '역사과학'에서 유물론적 철학의 실천을 검출할 수 있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독특한 정치를 검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스피노자 해석에서 독자적 위치로 귀결된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포함하여 모든) 철학은 궁극적으로 정치(공동체)에 개입해서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이다.5) 스피노자 해석에서 오랜 논쟁으로 남아 있던 형이상학과 인간학, 그리고 정치와 윤리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6)
3.
스피노자의 철학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는 오랜 이론적 공백으로서 '이데올로기'에 관한 대안적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7) 여기서 정치와 대중,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부각된다. 특히 사회운동이 언제나 '대중운동'을 지향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세계화라는 조건에서 국가와 당, 그리고 대중운동의 모순을 새롭게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제기되는 대중과 민주주의의 문제는 특별한 주목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대중이라는 문제 또는 역사에서 대중의 결정적 역할이라는 문제는 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공통적인 이론적·철학적 대상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가 대중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 내에서 특수한 형태의 모순을 발견한다면, 스피노자는 대중의 심리적·정신적 조건들 연구하고 그 내에서 특수한 형태의 모순을 발견한다.8)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대중은 일종의 선(先)주체적 범주로서 정치를 사고하는 데 필수적인 역동적 질료를 이룬다. 대중의 역동성은 그 고유한 모순에서 비롯되는데, 발리바르는 이를 대중들(masses)의 양면성 또는 양가성(ambivalence)이라고 지칭한다.
대중―지배자와 피지배자, 대표자와 피대표자 모두를 포괄하는―의 능동성과 수동성, 정념적 동일화에 따른 예속의 경향과 이성적 교통에 따른 (자기)해방의 경향에 대한 동시적 이해는 대중의 '가상(상상)의 생산성'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여타의 스피노자 해석과 쟁점을 형성한다.9) 이러한 관점은 역사와 정치에서 대중의 민주주의적 운동뿐만 아니라 대중의 '도착'―예컨대, 파시즘이나 인민주의(populism)의 사례에서 드러나는―도 동시에 설명한다. 대중의 역능은 결코 선험적으로 보증되지 않는다.
대중의 양가성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스피노자에게서 민주주의는 일련의 기관들이나 법률적 장치와 같은 정태적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기존의 교통관계를 변형시켜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려는 집합적 노력의 과정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과정, 즉 공통의 인식에 기초해서 공동의 봉기적 권리를 확립하고 요구하는 일련의 과정, 민주화의 영속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도 문제는 언제나 대중의 내적 조건으로 귀결된다. 대중들 내부에서 대중들 스스로 극단적 폭력에 대응하고 집합적 인식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강화한다는 정치적 전망은 오늘의 사회운동에게 풍부한 통찰을 제공해 줄 것이다.
1) 발리바르는 17세기의 철학과 '현대철학' 사이에는 거대한 단절이 존재하며, 17세기의 철학자들―데카르트를 포함하여―은 '주체의 철학자'가 아니라 '실체의 철학자'라고 주장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로크의 (정치)철학 내에서 현대철학으로의 결정적 단절을 발견한다. tienne Balibar, "What Is 'Man' in Seventeenth-Century Philosophy? Subject, Individual, Citizen", in Janet Coleman, ed., The Individual in Political Theory and Practice, Clarendon Press, 1996. 그는 혁명 또는 봉기와 철학 또는 철학적 개념의 탄생 및 변형이라는 연구주제를 발전시키면서 봉기에 내장된 공산주의적 요소―이른바 평등-자유 명제―에 대한 대응으로 관념론적 철학의 개념과 범주들이 변형·발전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분석에서 도출된 부르주아 공산주의의 요소, 즉 평등-자유 명제를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정에서 수평파와 공유파(Diggers)의 봉기에도 적용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철학적 대응으로 칸트가 주체(Subjekt) 개념을 발전시켰다면, 영국 혁명에 대한 철학적 대응으로 로크는 양심(conscience)과 구별되는 의식(consciousness) 개념을 발전시켰다. 혁명과 '공산주의'의 계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tienne Balibar, "Quel communisme apr s le communism?", in Eustache Kouvelakis, dir., Marx 2000, PUF, 2000 (국역: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 2002에 수록). 그리고 '의식' 개념의 발견에 이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tienne Balibar, "A Note on 'Consciousness/Conscience' in the Ethics", Studia Spinozana, Vol. 8., 1992. 본문으로
2) 이 경우 홉즈, 로크, 루소의 정치·사회사상과 스피노자의 철학을 대조시킴으로써 그의 독창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현대정치의 기초를 이루는 '자연적 권리'의 구체적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홉즈와 로크의 사회철학을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 멕퍼슨의 작업은 자연권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Macpherson, C. B., The Political Theory of Possessive Individualism: Hobbes to Locke,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국역: 박영사, 1990). 그러나 스피노자에 대한 발리바르의 해석은 홉즈와 로크의 '소유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3)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스피노자 철학의 수용―종종은 왜곡된 형태의―과 프랑스 내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출현, 그리고 여기서 알튀세르의 역할 등에 관해서는 Andre Tosel, "La Marxisme au miroir de Spinoza", Du mat rialisme de spinoza, Kim , 1994(국역: "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맑스주의", 트랜스 토리아, 2005, 상반기)를 참조할 수 있다. 특히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정치를 결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에 대해서는 Andre Tosel, "La philosophie politique au miroir de Spinoza", Y a-t-il une pens e unique en philosophie politique?, PUF, 2000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스피노자와 정치}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발리바르의 저작을 완역한 것이고, 2부는 스피노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번역자의 해제와 용어해설이 추가된다. 본문으로
5) 그런 면에서 '정치철학'은 다만 학제적 구분에 불과할 뿐이며, 철학의 모든 개념과 범주는 고유한 의미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 '정치'는 결코 일의적이지 않다. 발리바르는 현대의 정치관념을 자율성과 타율성, 그리고 타율성의 타율성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의 정치 관념을 비교하는 글에서 잘 드러난다. 본문으로
6) 자세한 것은 번역자의 해설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와 공백에 대해서는 tienne Balibar, "The Vacillation of Ideology in Marxism" in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Routledge, 1994. (국역: "이데올로기의 동요", 서관모 편역, {역사유물론의 전화}, 민맥, 1993)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데올로기 개념의 재구성에 대해서는 The Philosophy of Marx, Verso, 1995. (국역: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문화과학, 1995에 수록)의 3장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8) tienne Balibar, "Preface",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Routledge, 1994. 동일한 내용이 {스피노자의 정치} 2부에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에서도 발견된다. 본문으로
9) 대중의 가상의 생산성은 사실 공포, 즉 주권적 권력 앞에선 대중의 공포인 동시에 대중에 대한 주권적 권력의 공포의 생산성이다. Andre Tosel, "La philosophie politique au miroir de Spinoza", Y a-t-il une pens e unique en philosophie politique?, PUF, 200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