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설
지난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충북대학교에서는 진보적장애운동연대체(약칭 진장연)의 건설을 구체화하기 위한 ‘전국 장애운동 활동가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수련회에서는 진장연 건설의 배경과 목적, 진장연의 구체적 형태와 강령 및 규약, 진장연의 사업 계획과 전망이라는 3개 주제에 걸쳐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참가자 전원의 직접투표에 의해 연대체의 명칭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확정하고, 전국대표자회의를 통해 준비위원회의 구성을 결의하였다. 2004년 7월에 있었던 ‘진보적장애운동연대체건설을 위한 장애운동 활동가 수련회’를 통해 처음 공식화되었던 진장연 건설이라는 과제가 일 년 여 간의 논의 과정을 거쳐, 이제 본격적인 건설 일정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진장연 건설이라는 과제가 제기된 배경과 의의를 정리하고,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을 중심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고민해가야 할 과제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진보적장애운동연대체 건설이 제기된 배경
2001년부터 시작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 그리고 보다 확장된 틀 속에서 2002년부터 진행된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의 활동은 침체되어 있던 장애민중운동을 활성화하는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일정한 성과 역시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장애인이동권연대나 그 이후 구성된 다양한 권리별·사안별 연대체의 경우 기본적으로 단일 사안만을 다루는 공대위의 성격으로 인하여, 그리고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하는 한시적 투쟁체의 위상 때문에 장애인 문제 전반에 대해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현장 투쟁에 함께 하고자 하는 각 단위들은 사안에 따라 여러 개의 공대위에 참여하며 중복적인 논의 구조에 참여해야 했으며, 이는 더욱 중장기적인 운동의 전망을 만들어내는 데도 일정한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전체 사회운동과의 관계에서 이미 이동권이라는 사안을 넘어 진보적 장애운동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일정 정도 그러한 역할을 담보하게 되지만, 조직의 형식이 갖는 한계로 인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기에도 일정한 어려움이 존재했다. 더불어 충북, 경남, 광주지역의 경우 이미 각 사안에 따른 연대체가 아닌 통합적인 연대의 틀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각 지역 연대체 간에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조직의 틀을 고민하였다. 결국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기존의 사안별 연대체를 넘어, 새로운 진장연 건설이라는 과제를 추진하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설의 목적과 의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설의 목적과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첫째는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협)의 소멸로 맥이 끊어진 진보적 현장투쟁 조직의 복원이다. 한국 사회의 진보적 장애운동은 1980년대 후반 전반적인 사회변혁운동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적 흐름의 영향을 받은 청년 모임이 결성되면서 씨앗을 뿌리게 된다. 1986년 9월 창립된 ‘울림터’는 장애인운동을 제도 내의 문제 외에 변혁운동으로서 고민하기 시작한 최초의 조직이었다고 평가되며, 이러한 흐름은 이후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장청)와 전장협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전장협이 98년 말 한국DPI로 흡수 통합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장애운동의 대중투쟁을 이끌어갈 구심이 상실되었다. 결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건설은 이러한 현장투쟁 조직의 계승과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보수화되어가는 전체 장애계의 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대안세력의 구축이다. 현재 장애인계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라는 거대 사단법인 조직이 그 흐름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등이 포함되어 있는 한국장총에 대하여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한국DPI,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중심이 된 장총련은 당사자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별 정립하고 있지만, 양쪽 다 근본적으로 이익단체로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대정부 정책파트너와 장애인계에 대한 대표성 확보와 예산 지원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올해 장애인교육권연대의 경북도청 점거투쟁 중 있었던 관변장애인단체들의 농성해제 요구와 물리력의 동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자신의 기득권과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전체 장애민중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고자하는 단위들이 독자적인 대안세력으로 뭉치지 않는다면 장애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러한 대안세력의 구체화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셋째는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현장투쟁의 전국화다. 진장연은 새롭게 확정된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전국조직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치열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은 이후 자발적인 지역 모임을 구성하도록 추동하는 한 계기가 되었으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활동과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전국화와 맞물리면서 자체적인 지역 연대체의 건설까지 이루어내고 있다. 새롭게 건설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러한 흐름들을 연결하고 확장하여, 단지 서울만이 아닌 한국 사회 전역에서 장애인 대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의 쟁점이 되었던 지점과 향후 과제
개별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단일 조직인가, 기존 연대체간의 네트인가: 새로운 통합적 논의 구조의 정비와 조직력 강화를 통한 정세적 실천력의 담보
진장연의 건설 논의 과정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쟁점은 전국 조직의 기본적 형태에 관한 문제, 즉 개별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하는 단일 조직으로 갈 것인가, 기존의 사안별·지역별 연대체간의 네트워크 형태로 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러한 논쟁은 이미 통합적인 연대체를 꾸리고 있는 지역의 연대체보다는 다양한 공대위가 존재하는 서울지역과 이미 전국적 연대체를 지향하고 있는 장애인교육권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사안별 연대체는 목적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거나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해산하게 되므로, 연대체간의 네트워크라는 형태는 ‘상설적 연대 투쟁체’라는 진장연 위상과 충돌하며 끊임없는 불안정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문제, 그리고 대다수의 공대위에는 기존의 관변화된 법인 단체 역시 일정한 제한 없이 가입되어 있어 ‘보수화된 거대 법인 단체와 차별성을 갖는 진보적 블록’이라는 진장연의 정체성 역시 모호해 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져 개별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하는 단일 조직의 형태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현재적 조건들과 문제들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다원화되어 있는 소통과 논의의 구조를 어떻게 원활하게 통합시켜 낼 것인가, 그리고 각 개별 단위들이 주력하고 있는 사안 이외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정세적인 통합적 실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이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 할 것이다.
장애운동에 있어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적 장애운동의 정체성과 내용에 대한 합의의 확산
진장연이라는 화두와 관련하여 당연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질문은 장애의 영역에 있어 ‘진보’의 구체적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2004년의 활동가 수련회에서 일정한 내용이 정리된 형태로 제시되었고 ‘기초 논의와 소통 모임’이 구성되어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개별 단위 내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제대로 확산되거나 논의되지 못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장애여성운동 단위를 중심으로는 장애의 문제를 자본의 논리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제출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얘기하는 진보라는 것이 단지 보수·관변에 대한 반정립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는 지난 몇 년 동안 현장 투쟁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활동의 양태와 더불어, 진보적 장애운동에 대한 담론의 생산 자체가 빈약했던 것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명확한 이념적 근거를 기준으로 구성되는 활동가 조직이라기보다는 현장 투쟁을 위한 대중 조직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지니지만, 경향적으로라도 일정한 동질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인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자료와 내용을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경로의 교육 사업의 배치가 필요하다.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우리 내부를 향한 투쟁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내부의 민주주의 확보, 장애가 충분히 고려되는 활동양식의 구축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또 다른 문제 중의 하나는 우리 내부의 평등한 소통과 민주주의의 문제, 그리고 중증장애인이 운동 공간 안에서도 장애로 인한 소외를 경험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투쟁의 일정 등을 이유로 개별 단위까지 충분한 정보가 소통되지 못하는 문제,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반성, 조직이 보다 거대화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관료주의의 문제, 다소간 과격한 투쟁 전술 및 공권력과의 충돌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는 중증장애여성의 문제, 언어장애를 지닌 장애인이 회의 과정에서 원활히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중증장애인 활동가가 암묵적인 능력주의·학력주의에 의해 소외감을 느끼는 문제 등. 이러한 부분들은 지속적인 논의 과정 속에서 그 문제의식이 일정하게 공유되었고 강령(안) 속에도 녹아들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문제의식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어떠한 실천이 이루어지는지에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기제 및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과 더불어, 운동 내부의 주체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나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혁신이 요구된다.
진보적 장애운동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물적 기반 형성과 활동가 층의 확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게 제기되는 또 다른 과제는 ‘장애운동 전반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전국조직’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집행력과 사업능력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현재와 같은 소수의 상근인력만으로는 다양한 영역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투쟁들을 모두 받아 안기에도 일정한 한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교육 사업 및 기관지 제작사업과 지역 단위 조직 사업을 위해서도 집행력의 확장과 안정화가 요구되고 있다. 서울 이외의 각 지역 연대체의 경우 안정적인 사무실과 제대로 된 상근인력을 갖추고 있는 곳조차 거의 전무한 상황이어서, 일정한 물적 토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고민과 노력이 함께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진장연은 10월 말경을 전후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의 출범식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후 준비위원회 내에서의 논의 과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빠르면 내년 420투쟁의 시기에 본 조직 출범까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준비위원회의 공식 출범과 본 조직 건설의 과정에서 더 많은 단위들을 아우르기 위한 소통과 노력이 이루어 질 것이다.
2001년 이후 장애운동은 전투적인 현장 대중 투쟁을 통해 진보운동 진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내었지만, 여전히 그 연대는 투쟁 사업에 대한 일회성 참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운동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공유되고 그 속에서 진보운동 진영과의 연대가 더욱 유기적인 수준에서 이루어 질 때만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장애운동은 보다 강고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출범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그러한 내적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틀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진보연대와 『사회운동』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본다.
진보적장애운동연대체 건설이 제기된 배경
2001년부터 시작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 그리고 보다 확장된 틀 속에서 2002년부터 진행된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의 활동은 침체되어 있던 장애민중운동을 활성화하는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일정한 성과 역시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장애인이동권연대나 그 이후 구성된 다양한 권리별·사안별 연대체의 경우 기본적으로 단일 사안만을 다루는 공대위의 성격으로 인하여, 그리고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하는 한시적 투쟁체의 위상 때문에 장애인 문제 전반에 대해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현장 투쟁에 함께 하고자 하는 각 단위들은 사안에 따라 여러 개의 공대위에 참여하며 중복적인 논의 구조에 참여해야 했으며, 이는 더욱 중장기적인 운동의 전망을 만들어내는 데도 일정한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전체 사회운동과의 관계에서 이미 이동권이라는 사안을 넘어 진보적 장애운동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일정 정도 그러한 역할을 담보하게 되지만, 조직의 형식이 갖는 한계로 인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기에도 일정한 어려움이 존재했다. 더불어 충북, 경남, 광주지역의 경우 이미 각 사안에 따른 연대체가 아닌 통합적인 연대의 틀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각 지역 연대체 간에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조직의 틀을 고민하였다. 결국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기존의 사안별 연대체를 넘어, 새로운 진장연 건설이라는 과제를 추진하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설의 목적과 의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설의 목적과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첫째는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협)의 소멸로 맥이 끊어진 진보적 현장투쟁 조직의 복원이다. 한국 사회의 진보적 장애운동은 1980년대 후반 전반적인 사회변혁운동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적 흐름의 영향을 받은 청년 모임이 결성되면서 씨앗을 뿌리게 된다. 1986년 9월 창립된 ‘울림터’는 장애인운동을 제도 내의 문제 외에 변혁운동으로서 고민하기 시작한 최초의 조직이었다고 평가되며, 이러한 흐름은 이후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장청)와 전장협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전장협이 98년 말 한국DPI로 흡수 통합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장애운동의 대중투쟁을 이끌어갈 구심이 상실되었다. 결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건설은 이러한 현장투쟁 조직의 계승과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보수화되어가는 전체 장애계의 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대안세력의 구축이다. 현재 장애인계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라는 거대 사단법인 조직이 그 흐름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등이 포함되어 있는 한국장총에 대하여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한국DPI,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중심이 된 장총련은 당사자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별 정립하고 있지만, 양쪽 다 근본적으로 이익단체로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대정부 정책파트너와 장애인계에 대한 대표성 확보와 예산 지원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올해 장애인교육권연대의 경북도청 점거투쟁 중 있었던 관변장애인단체들의 농성해제 요구와 물리력의 동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자신의 기득권과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전체 장애민중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고자하는 단위들이 독자적인 대안세력으로 뭉치지 않는다면 장애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러한 대안세력의 구체화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셋째는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현장투쟁의 전국화다. 진장연은 새롭게 확정된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전국조직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치열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은 이후 자발적인 지역 모임을 구성하도록 추동하는 한 계기가 되었으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활동과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전국화와 맞물리면서 자체적인 지역 연대체의 건설까지 이루어내고 있다. 새롭게 건설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러한 흐름들을 연결하고 확장하여, 단지 서울만이 아닌 한국 사회 전역에서 장애인 대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의 쟁점이 되었던 지점과 향후 과제
개별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단일 조직인가, 기존 연대체간의 네트인가: 새로운 통합적 논의 구조의 정비와 조직력 강화를 통한 정세적 실천력의 담보
진장연의 건설 논의 과정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쟁점은 전국 조직의 기본적 형태에 관한 문제, 즉 개별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하는 단일 조직으로 갈 것인가, 기존의 사안별·지역별 연대체간의 네트워크 형태로 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러한 논쟁은 이미 통합적인 연대체를 꾸리고 있는 지역의 연대체보다는 다양한 공대위가 존재하는 서울지역과 이미 전국적 연대체를 지향하고 있는 장애인교육권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사안별 연대체는 목적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거나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해산하게 되므로, 연대체간의 네트워크라는 형태는 ‘상설적 연대 투쟁체’라는 진장연 위상과 충돌하며 끊임없는 불안정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문제, 그리고 대다수의 공대위에는 기존의 관변화된 법인 단체 역시 일정한 제한 없이 가입되어 있어 ‘보수화된 거대 법인 단체와 차별성을 갖는 진보적 블록’이라는 진장연의 정체성 역시 모호해 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져 개별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하는 단일 조직의 형태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현재적 조건들과 문제들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다원화되어 있는 소통과 논의의 구조를 어떻게 원활하게 통합시켜 낼 것인가, 그리고 각 개별 단위들이 주력하고 있는 사안 이외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정세적인 통합적 실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이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 할 것이다.
장애운동에 있어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적 장애운동의 정체성과 내용에 대한 합의의 확산
진장연이라는 화두와 관련하여 당연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질문은 장애의 영역에 있어 ‘진보’의 구체적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2004년의 활동가 수련회에서 일정한 내용이 정리된 형태로 제시되었고 ‘기초 논의와 소통 모임’이 구성되어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개별 단위 내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제대로 확산되거나 논의되지 못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장애여성운동 단위를 중심으로는 장애의 문제를 자본의 논리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제출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얘기하는 진보라는 것이 단지 보수·관변에 대한 반정립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는 지난 몇 년 동안 현장 투쟁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활동의 양태와 더불어, 진보적 장애운동에 대한 담론의 생산 자체가 빈약했던 것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명확한 이념적 근거를 기준으로 구성되는 활동가 조직이라기보다는 현장 투쟁을 위한 대중 조직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지니지만, 경향적으로라도 일정한 동질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인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자료와 내용을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경로의 교육 사업의 배치가 필요하다.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우리 내부를 향한 투쟁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내부의 민주주의 확보, 장애가 충분히 고려되는 활동양식의 구축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또 다른 문제 중의 하나는 우리 내부의 평등한 소통과 민주주의의 문제, 그리고 중증장애인이 운동 공간 안에서도 장애로 인한 소외를 경험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투쟁의 일정 등을 이유로 개별 단위까지 충분한 정보가 소통되지 못하는 문제,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반성, 조직이 보다 거대화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관료주의의 문제, 다소간 과격한 투쟁 전술 및 공권력과의 충돌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는 중증장애여성의 문제, 언어장애를 지닌 장애인이 회의 과정에서 원활히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중증장애인 활동가가 암묵적인 능력주의·학력주의에 의해 소외감을 느끼는 문제 등. 이러한 부분들은 지속적인 논의 과정 속에서 그 문제의식이 일정하게 공유되었고 강령(안) 속에도 녹아들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문제의식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어떠한 실천이 이루어지는지에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기제 및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과 더불어, 운동 내부의 주체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나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혁신이 요구된다.
진보적 장애운동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물적 기반 형성과 활동가 층의 확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게 제기되는 또 다른 과제는 ‘장애운동 전반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전국조직’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집행력과 사업능력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현재와 같은 소수의 상근인력만으로는 다양한 영역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투쟁들을 모두 받아 안기에도 일정한 한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교육 사업 및 기관지 제작사업과 지역 단위 조직 사업을 위해서도 집행력의 확장과 안정화가 요구되고 있다. 서울 이외의 각 지역 연대체의 경우 안정적인 사무실과 제대로 된 상근인력을 갖추고 있는 곳조차 거의 전무한 상황이어서, 일정한 물적 토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고민과 노력이 함께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진장연은 10월 말경을 전후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의 출범식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후 준비위원회 내에서의 논의 과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빠르면 내년 420투쟁의 시기에 본 조직 출범까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준비위원회의 공식 출범과 본 조직 건설의 과정에서 더 많은 단위들을 아우르기 위한 소통과 노력이 이루어 질 것이다.
2001년 이후 장애운동은 전투적인 현장 대중 투쟁을 통해 진보운동 진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내었지만, 여전히 그 연대는 투쟁 사업에 대한 일회성 참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운동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공유되고 그 속에서 진보운동 진영과의 연대가 더욱 유기적인 수준에서 이루어 질 때만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장애운동은 보다 강고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출범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그러한 내적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틀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진보연대와 『사회운동』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본다.
- 덧붙이는 말
* 필자 소개 1974년에 태어났고 단국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발생한 에바다 사태를 접하면서 장애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1년부터 노들장애인야학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이동권연대투쟁에 함께 하였고, 현재 노들장애인야학 운영 위원이자 장애인이동권연대 정책교육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mail : phare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