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에게
잘 지내니? 오겡끼데스까.
추석은 어떻게 보냈니? 거기도 추석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네. 혼자 멀리 지낸 지 몇 년이 흘러서 익숙해졌니? 아니면 그래도 여기가 그립고 외롭고 그러니?
나는 울산에 내려갔다 왔어. 추석 전에 은근히 바빠서 울산 내려가면 잠 좀 자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엄마가 장염에 걸리셔서 가사노동을 좀 하고 왔어. 일이야 조금 더 할 수는 있는데, 추석 전날이 엄마 생신이거든. 그래서 내가 미역국을 끓였는데, 장염 때문에 그걸 못 드시고, 명절 음식도 하나도 못 드셨어. 엄마가 연휴 내내 혼자 죽을 드시니(엄마가 음식에 대한 유혹 때문에 우리랑 밥을 먹는 게 괴롭다고 계속 혼자 드시더라구…) 삼순이 말이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건 영혼을 나누는 거라던데, 안쓰러우면서도 되게 허전하더라. (삼순이는 얼마 전 29대 말, 3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여주인공이야. 아직도 드라마 보고 사냐구? 너도 한번 봐! 강추야!)
그리고 나 이사를 했어.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 짐을 못 풀어서 집이 엉망이야. 박스 더미를 헤치고 다니고, 옷을 입거나 뭐를 쓰려면 박스를 뒤져서 찾아야 해. 그러다 보니 씻거나, 뭘 해 먹거나, 출근 준비할 때, 꼭 남의 집에 와서 헤매는 거 같고, 더뎌. 벌써 한 달째 허둥지둥 살고 있다. 이런 생활 정말 싫어. 나의 에너지가 어딘가로 쓸데없이 줄줄 새는 느낌…
요즘 한국에서는 여기저기서 힘든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있고, 산재승인을 받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이 43일 동안 단식농성을 하고 있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 받는 설움이 그리고 분노가 해고의 두려움보다 커진 노동자들, 내 위에 두 명의 세 명의 사장을 먹여 살리느라 뼈골 휜 노동자들의 절규. 그리고 그 절박함을 어찌하지 못해 죽어야 했던 열사들. 어려운 싸움들인 만큼 고립되지 않게 모아내며 정부와 자본을 확 조여 갔으면 좋겠는데, 주변은 조용하기만 해.
그러고 보니 벌써 10월이다.
올해가 시작될 즈음, 사실 나는 두렵고 우울했어. 나이 서른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 그 때 또 다시 느꼈던 것은 사람이 가장 불안할 때는 뭔가를 '알 수 없을 때'라는 거. 그러나 내가 불안해하건 말건 시간은 잘도 가서 이제 올해도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네. 석 달이 남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야 할 거 같잖아? 하반기 들어서고 나서 아직 제대로 한 일도 없는데 말야.
내가 이메일에도 잠깐 썼지만, 9월로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에서의 상근활동을 정리하고 한 노조로 활동공간을 이전하게 돼. 사실 사는 집도 옮기고 활동공간도 옮기려는 시점이라 생활이 안정이 안 되는 거 같아. 어쨌든.
고작 사회운동 5년차에 이런 말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나의 활동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아. 학교 졸업하고 노조에서 2년 활동하다가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에서 3년 가까이 활동하다가 다시 또 다른 노조로 가게 되네.(뭐, 활동하면서 있었던 우여곡절, 사건, 사고야 말할 것도 없고…….) 한편으로는 한 곳에서 오래 있으면서 얻게 되는 깊이 있는 경험과 관록을 쌓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뭔가 나의 문제의식이 수렴점을 찾아가는 거 같아서 안도감도 들어.
처음에 노조에 갔을 때는 문화적 충격이었어. 내가 워낙 남자들 많은 곳에서 지냈잖아. 그런데 여성들만의 조직을 처음 경험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조직들과 비교하면서 '그래! 이거구나!'하는 생각을 했어. 여성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곳, 여성들이 맘껏 남성들을 욕할 수 있는 곳(^^;당시 나는 어리석게도 남성을 제외한 여성들만의 세상을 내심 바랬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에 있다는 자체에 좋아라 했어.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편히 지내는 것도 아니었고, 여성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조직이 곧 여성노동'운동'을 제대로 하는 조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어.
노조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며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나의 꿈은 다른 이유로 접어졌고 사회진보연대로 오면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지. 이 곳에 와서 내가 노조에서 목말라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어. 나는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자 했지만, 정말 왜 조직하고, 조직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어. (참 이상하지? 그 때는 지금보다 어려운 단어도 더 많이 쓰곤 했는데, 왜 그렇게 제대로 아는 건 없었을까? 아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니었던가봐.) 그리고 사회진보연대에서 그러한 고민을 해 나갔지만, 한편으로 노조가 가지고 있는 정치사상적인 취약점들을 보며 노조가 아닌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물론 노조 내의 반여성적인 문화와 관료적인 문화들 때문에 가까이 하기 싫은 면도 있었구. 그러나 나는 다시 노동자운동의 혁신이라는 것이 외부에서의 활동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활동하는 가운데 알게 되었어. 이런 게 정-반-합의 변증법인가?
요즘 나를 보면 많이 변한 거 같아.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변화를 겪고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 예전에는 그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너무 싫더라. 아니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싫더라.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 머리 속에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람들에게 연락도 안 하고, 되도록 사람들도 안 만나고 혼자 집에 있거나, 혼자 돌아다니곤 했어. 어떤 때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어.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지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어떤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로 지내지 못할 수도 있잖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 다양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나와 가까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와 멀 수도 있는데, 다양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쉽지 않았던 거야. 흔히들 사람관계가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는 잘 해야겠지.
늘 전화, 이메일로 먼저 연락해주는 거 고마워. 내가 한 마디만 해도 어떤 기분인지, 뭘 생각하는지 귀신같이 아는 네가 멀리 가고, 많이 허전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견딜 수 있어. 그래도 오늘같이 비도 오고, 집회도 갔다 오고 한 날에는 너랑 소주 한 잔 했으면 좋겠다. 따끈하고 칼칼한 콩나물 국물해서 말야. 담에 오면 꼭 한 잔 하자.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
2005. 9월의 마지막 날
지영
추석은 어떻게 보냈니? 거기도 추석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네. 혼자 멀리 지낸 지 몇 년이 흘러서 익숙해졌니? 아니면 그래도 여기가 그립고 외롭고 그러니?
나는 울산에 내려갔다 왔어. 추석 전에 은근히 바빠서 울산 내려가면 잠 좀 자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엄마가 장염에 걸리셔서 가사노동을 좀 하고 왔어. 일이야 조금 더 할 수는 있는데, 추석 전날이 엄마 생신이거든. 그래서 내가 미역국을 끓였는데, 장염 때문에 그걸 못 드시고, 명절 음식도 하나도 못 드셨어. 엄마가 연휴 내내 혼자 죽을 드시니(엄마가 음식에 대한 유혹 때문에 우리랑 밥을 먹는 게 괴롭다고 계속 혼자 드시더라구…) 삼순이 말이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건 영혼을 나누는 거라던데, 안쓰러우면서도 되게 허전하더라. (삼순이는 얼마 전 29대 말, 3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여주인공이야. 아직도 드라마 보고 사냐구? 너도 한번 봐! 강추야!)
그리고 나 이사를 했어.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 짐을 못 풀어서 집이 엉망이야. 박스 더미를 헤치고 다니고, 옷을 입거나 뭐를 쓰려면 박스를 뒤져서 찾아야 해. 그러다 보니 씻거나, 뭘 해 먹거나, 출근 준비할 때, 꼭 남의 집에 와서 헤매는 거 같고, 더뎌. 벌써 한 달째 허둥지둥 살고 있다. 이런 생활 정말 싫어. 나의 에너지가 어딘가로 쓸데없이 줄줄 새는 느낌…
요즘 한국에서는 여기저기서 힘든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있고, 산재승인을 받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이 43일 동안 단식농성을 하고 있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 받는 설움이 그리고 분노가 해고의 두려움보다 커진 노동자들, 내 위에 두 명의 세 명의 사장을 먹여 살리느라 뼈골 휜 노동자들의 절규. 그리고 그 절박함을 어찌하지 못해 죽어야 했던 열사들. 어려운 싸움들인 만큼 고립되지 않게 모아내며 정부와 자본을 확 조여 갔으면 좋겠는데, 주변은 조용하기만 해.
그러고 보니 벌써 10월이다.
올해가 시작될 즈음, 사실 나는 두렵고 우울했어. 나이 서른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 그 때 또 다시 느꼈던 것은 사람이 가장 불안할 때는 뭔가를 '알 수 없을 때'라는 거. 그러나 내가 불안해하건 말건 시간은 잘도 가서 이제 올해도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네. 석 달이 남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야 할 거 같잖아? 하반기 들어서고 나서 아직 제대로 한 일도 없는데 말야.
내가 이메일에도 잠깐 썼지만, 9월로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에서의 상근활동을 정리하고 한 노조로 활동공간을 이전하게 돼. 사실 사는 집도 옮기고 활동공간도 옮기려는 시점이라 생활이 안정이 안 되는 거 같아. 어쨌든.
고작 사회운동 5년차에 이런 말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나의 활동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아. 학교 졸업하고 노조에서 2년 활동하다가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에서 3년 가까이 활동하다가 다시 또 다른 노조로 가게 되네.(뭐, 활동하면서 있었던 우여곡절, 사건, 사고야 말할 것도 없고…….) 한편으로는 한 곳에서 오래 있으면서 얻게 되는 깊이 있는 경험과 관록을 쌓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뭔가 나의 문제의식이 수렴점을 찾아가는 거 같아서 안도감도 들어.
처음에 노조에 갔을 때는 문화적 충격이었어. 내가 워낙 남자들 많은 곳에서 지냈잖아. 그런데 여성들만의 조직을 처음 경험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조직들과 비교하면서 '그래! 이거구나!'하는 생각을 했어. 여성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곳, 여성들이 맘껏 남성들을 욕할 수 있는 곳(^^;당시 나는 어리석게도 남성을 제외한 여성들만의 세상을 내심 바랬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에 있다는 자체에 좋아라 했어.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편히 지내는 것도 아니었고, 여성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조직이 곧 여성노동'운동'을 제대로 하는 조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어.
노조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며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나의 꿈은 다른 이유로 접어졌고 사회진보연대로 오면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지. 이 곳에 와서 내가 노조에서 목말라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어. 나는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자 했지만, 정말 왜 조직하고, 조직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어. (참 이상하지? 그 때는 지금보다 어려운 단어도 더 많이 쓰곤 했는데, 왜 그렇게 제대로 아는 건 없었을까? 아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니었던가봐.) 그리고 사회진보연대에서 그러한 고민을 해 나갔지만, 한편으로 노조가 가지고 있는 정치사상적인 취약점들을 보며 노조가 아닌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물론 노조 내의 반여성적인 문화와 관료적인 문화들 때문에 가까이 하기 싫은 면도 있었구. 그러나 나는 다시 노동자운동의 혁신이라는 것이 외부에서의 활동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활동하는 가운데 알게 되었어. 이런 게 정-반-합의 변증법인가?
요즘 나를 보면 많이 변한 거 같아.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변화를 겪고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 예전에는 그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너무 싫더라. 아니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싫더라.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 머리 속에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람들에게 연락도 안 하고, 되도록 사람들도 안 만나고 혼자 집에 있거나, 혼자 돌아다니곤 했어. 어떤 때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어.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지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어떤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로 지내지 못할 수도 있잖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 다양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나와 가까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와 멀 수도 있는데, 다양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쉽지 않았던 거야. 흔히들 사람관계가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는 잘 해야겠지.
늘 전화, 이메일로 먼저 연락해주는 거 고마워. 내가 한 마디만 해도 어떤 기분인지, 뭘 생각하는지 귀신같이 아는 네가 멀리 가고, 많이 허전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견딜 수 있어. 그래도 오늘같이 비도 오고, 집회도 갔다 오고 한 날에는 너랑 소주 한 잔 했으면 좋겠다. 따끈하고 칼칼한 콩나물 국물해서 말야. 담에 오면 꼭 한 잔 하자.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
2005. 9월의 마지막 날
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