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양극화의 주범은 누구인가?
사회양극화의 원인과 운동진영의 과제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해소’와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의 발족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아 양극화 문제를 부각시키며 유난을 떨고 있다. 양극화 해소 없이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주장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경제사회적 분열의 핵심요인은 양극화 문제"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집권 후반기 과제들을 발표했고, 열린우리당 역시 <양극화 해소 의원모임>을 만들어 구체적인 정책 개발에 나선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만큼 사회양극화의 심각성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줄곧 강조해 온 양극화 해소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두가 인정하듯 현재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해소되기는커녕 악화일로에 놓여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22일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가 발족했다. 국민연대는 양대노총과 참여연대, 전국민중연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 133개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는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적 연대기구이다. 국민연대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사회양극화로 진단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복지·교육·의료·여성 등 사회 전 부문에 걸친 국민적 연대운동이 필요하다고 제기하고 있다. 국민연대는 '양극화해소', '사회통합',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동시장의 양극화-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 최저임금제도 개선 △단계적 무상의료·교육 실현 △최저생활과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 실현-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국민연금제도 개혁 △조세정의 실현과 소득파악 개선-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실현, 부동산 실거래가 기준 과세 △공공·사회서비스 부문의 적극적 일자리 창출- 육아·간병·요양 △보육·주거의 공공성 실현-국공립 보육시설·임대주택 확충 등 7대 분야 21개 사회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올해 정기국회에서부터 '양극화해소와 사회통합을 위한 개혁통신' 발행, 릴레이 시국선언, 국민대토론회 개최, 기획여론조사,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로비활동, 1백만인 서명운동, 대규모 촛불문화제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소위 운동진영 내 ‘주류’가 포괄적인 정책의제를 제시하며 대거 참여하고 있는 국민연대는 여러 투쟁의 공간에서 입김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와 운동진영 양자 모두가 '사회양극화 해소'를 자신들의 당면 목표라고 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사회 통합'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장 속에서 양자가 공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을 의제로 형성하려는 것은 한국사회 위기의 폭발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적극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정부의 양극화 해소를 앞세운 사회 통합 이데올로기 공세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것은 이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이다. 국민연대의 발족은 그간 '희망제안 2005', '사회적 교섭', '무상의료·무상교육', '사회양극화 해소' 등으로 표현되어 온 운동진영 내 일정한 경향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연대는 핵심 정책기조가 참여정부의 캐치프레이즈와 적극 공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운동진영 내에 가시화되고 있는 이 예사롭지 않은 흐름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사회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이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흐름 속에서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가. 둘째, 사회양극화 해소가 운동진영의 당면 투쟁목표로 타당한 것인가. 셋째, 노무현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운동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사회양극화의 원인과 금융세계화의 본질 : 소수의 금융소득자를 위한 절대 다수의 궁핍화
‘사회양극화’로 명명되는 진단은 현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표피적 해석에 그치기 쉬운데, 이는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분석이 중간층의 유실이라는 측면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의 사회양극화 해소 방안이 종국에는 중간층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 재분배 정책이나 경기 부양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사회 위기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해석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소수의 금융소득자를 위한 절대 다수의 궁핍화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양극화에 대한 지배세력의 사회양극화 담론은 이러한 궁핍화 과정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 위기에 대한 근본적 진단으로서 절대 다수의 궁핍화 과정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다음의 네 가지 정도로 압축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주변국가의 항상적인 경제위기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적 변화를 담고 있다.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계에 조응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은 주식시장을 매개로 자유로운 금융시장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의 투자를 통해 금융적 축적을 추진한다. 이러한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발전전략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전망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다. 오히려 금융투자자들의 ‘단기주의’와 전 세계적인 금융적 불안정성에 의해 항상적으로 경제위기의 가능성에 노출될 뿐이다. 현 정부가 국가경제에 있어서 금융부문의 발전을 목표로 사회 전 부문의 세계표준화(글로벌 스탠다드)를 줄곧 추진해왔지만, 그것의 결과가 불안정성의 확대와 국부의 유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는 노동의 불안정화이다. 경제의 금융화는 비용절감을 통한 생산부문의 경쟁력 증진을 꾀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의 이른바 ‘신경영전략’에 따른 인원 감축·과잉 착취·유연화, 즉 노동의 불안정화가 발생한다. 또한 대량 실업으로 인한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조성이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노동자들 사이의 지속적인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노동의 불안정화는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어 있으며 노동자 실질소득의 감소,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의 양산,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조건 후퇴, 저임금 일자리로 인한 근로빈곤층의 대폭 증가 등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는 금융자산을 소유한 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다. 금융세계화 속에서 세계의 부와 소득은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금융세계화의 시대에 자본의 잉여는 중심부의 극소수 계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금융적 재편으로 금융투자와 법인기업을 통해 해외투자를 주도하는 몇몇 국가, 특히 미국으로 세계의 부, 즉 잉여는 집중된다. 거대 금융기업들이 존재하는 미국은 다른 국가의 금융기관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것이 반복되면서 금융자본이 미국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심화한다. 이에 반해 금융팽창의 수혜로부터 배제된 세계 다수의 민중들은 광범위한 빈곤층과 산업예비군을 형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제로 인한 극단적 불평등이다. 금융세계화는 끊임없이 배제되는 지역을 낳는다. 배제된 지역에서는 빈곤과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이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민족적·인종적 분쟁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는 중심국가와 주변국가의 불평등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자국 내, 지역 간 불평등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각각의 도시 내부의 불평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세계적으로 금융적 팽창의 중심이 되는 세계 도시(global city)의 네트워크가 출현하고 있으며, 도시 내부에서도 금리 생활자 층의 독자적인 '담장 도시'가 출현하고 있다.
사회양극화 해소가 당면 투쟁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 : 정부의 위기관리전략 아래 무기력한 정책대안운동
노무현 정부의 사회양극화 해소 주장에 진의가 있는지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양극화 해소’와 ‘개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각종 사회정책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복지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데, 그 내용은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방안’에 압축되어 있다. 사실 노무현정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이후 추진과제도 대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도입, 자활사업과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확대, 기초법 사각지대 해소, 창업 지원 등으로 선전되는 이러한 지원방안은 임금과 고용의 안정적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일자리의 질 향상에 대한 고려 없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빈곤층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층으로 강제 편입시키려는 현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사회적 약소자에 대해 국가와 자본이 가지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방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반기 추진과제로 언급한 ‘남성가장 단독 부양모델의 부부공동 부양모델로의 전환’ 역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전제로 한 보육정책을 통해 여성으로 하여금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는 측면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참여복지는 사회양극화 해소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이용해 금융세계화에 적합한 신축적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기만적인 위기관리전략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의 양극화 해소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과잉 선전했던 예로는 전시행정으로 판명된 ‘8.31 부동산 대책’이 있다. ‘토지 공개념’까지 들먹이며 서민들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가 큰 실망으로 되돌려준 이번 부동산 대책은 금융세계화에 포섭된 이상 무능력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노무현 정부의 현 주소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의 기만적인 위기관리 정책들을 대통령이나 정책 담당자들의 무지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 현 정부를 위기관리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계 속에서 한국이 처한 반주변부적 지위에서 연유한다.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자국 내 모든 부문을 초국적 자본의 금융투자에 적합하게 구조조정 함으로써 국가경제의 금융적 발전에 복무하는 것 외에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지금의 정책방향이 급선회하지 않는 이상, 금융세계화로의 적극적 편입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노무현 정부가 내놓는 어떠한 정책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으로 해결 불가능한 '사회양극화'라는 쟁점을 선점하는 것일까? 그것은 점증하는 사회적 위기의 징후들이 지배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700만 명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얼마 전의 언론 보도는 정부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간 정부가 파악하고 있던 규모보다 훨씬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궁핍화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 선 민중들의 불만이 비록 현재는 충분히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들 스스로의 집단적 실천과 정치적 조직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이는 지배세력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선점하며 사회 통합이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부는 절반이 넘는 집권기간 동안 허구적인 정치적 쟁점을 선점하여 정치적 이득을 챙겨왔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쟁점을 선점하는 것 외에 ‘사회적 합의’, 즉 ‘사회 통합’을 위해 NGO를 비롯한 민간조직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정부 내에 각 부처와는 별개로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어 있는 각종 위원회는 이와 같은 역할수행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예를 들어 복지 영역을 담당하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NGO를 비롯해 자활·사회복지 기관들을 정책수립과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일부 운동 조직은 종종 공익을 내세우며 위기의 표피적 현상을 관리하는 데 복무하기도 하는데, 위기의 원인은 건드리지 않은 채 정치·경제·사회 민주화를 표방하며 진행되는 법·제도 개선투쟁 및 개혁투쟁 등은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거나 관리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지배세력의 포섭전략과 정세에 따라 시민운동 진영에서 민중운동 진영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연대가 제시한 사회양극화 해소가 민중의 요구일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대다수 민중의 궁핍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궁핍화의 주요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反민중성과 현 정부의 위기관리전략을 적극 폭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사회 개혁과 정책 대안운동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민중의 궁핍화라는 근본적인 쟁점을 우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지배세력이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한국사회 발전전망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빈곤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았을 때,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 없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여러 정책 대안운동은 현실적으로 공허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초기의 문제의식은 사장된 채 현 정부의 위기관리전략에 공명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지배세력이 주창하는 사회 통합, 혹은 사회적 합의가 가지는 정세적 위험성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사회 통합은 배제된 자들의 규모가 늘어나고 원한의 깊이가 갈수록 깊어지는 현실에서 이들의 불만과 저항을 봉합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동원하기 위한 허구적 담론에 불과하다. 현 시기 투쟁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가 몇몇 세력의 정치적 타협, '단기적 위기관리' 중심의 절충과 타협, 그리고 정권교체에 의해 풀릴 수 없는 만성적·구조적 위기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진영의 과제 : 운동주체의 형성과 대안세계화 운동
최근 빈민운동단체 및 사회단체들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기초법 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며, 기초법 전면 개정 및 자활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빈곤인구가 800만명에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급자 확대나 급여인상의 내용이 거의 없는 기초법 개정안을 내놓고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운운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번 기초법 개정안은 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양극화 해소 로드맵’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의 허구적 위기관리전략과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한계를 폭로하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빈민 대중과 함께 투쟁하는 연대운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이다.
빈곤의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여성의 문제를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개혁투쟁으로 귀결시키는 운동은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사회 민주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활동'을 이중적으로 병행하는 전략의 일환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 전자의 문제의식은 점차 기각되고 후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운동의 각 영역을 포섭과 배제를 통해 관리하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한 원칙적 태도가 확고하지 못하다면, 개혁과 정책대안운동은 결국 방향성을 상실하면서 개량과 개선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운동진영이 빠질 위험의 결정판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빈곤은 주어진 하나의 현상이 아니며 배제되고 소외된 특정한 계층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비판의 대상은 사회 양극화 그 자체가 아니라, 앞에서 분석했듯 이것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가 어떻게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양산하고 심화하는가, 여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면서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나아가는 노동자운동·빈곤에 맞선 사회운동·여성운동의 연대의 강화를 꾀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아 양극화 문제를 부각시키며 유난을 떨고 있다. 양극화 해소 없이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주장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경제사회적 분열의 핵심요인은 양극화 문제"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집권 후반기 과제들을 발표했고, 열린우리당 역시 <양극화 해소 의원모임>을 만들어 구체적인 정책 개발에 나선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만큼 사회양극화의 심각성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줄곧 강조해 온 양극화 해소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두가 인정하듯 현재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해소되기는커녕 악화일로에 놓여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22일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가 발족했다. 국민연대는 양대노총과 참여연대, 전국민중연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 133개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는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적 연대기구이다. 국민연대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사회양극화로 진단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복지·교육·의료·여성 등 사회 전 부문에 걸친 국민적 연대운동이 필요하다고 제기하고 있다. 국민연대는 '양극화해소', '사회통합',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동시장의 양극화-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 최저임금제도 개선 △단계적 무상의료·교육 실현 △최저생활과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 실현-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국민연금제도 개혁 △조세정의 실현과 소득파악 개선-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실현, 부동산 실거래가 기준 과세 △공공·사회서비스 부문의 적극적 일자리 창출- 육아·간병·요양 △보육·주거의 공공성 실현-국공립 보육시설·임대주택 확충 등 7대 분야 21개 사회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올해 정기국회에서부터 '양극화해소와 사회통합을 위한 개혁통신' 발행, 릴레이 시국선언, 국민대토론회 개최, 기획여론조사,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로비활동, 1백만인 서명운동, 대규모 촛불문화제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소위 운동진영 내 ‘주류’가 포괄적인 정책의제를 제시하며 대거 참여하고 있는 국민연대는 여러 투쟁의 공간에서 입김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와 운동진영 양자 모두가 '사회양극화 해소'를 자신들의 당면 목표라고 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사회 통합'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장 속에서 양자가 공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을 의제로 형성하려는 것은 한국사회 위기의 폭발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적극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정부의 양극화 해소를 앞세운 사회 통합 이데올로기 공세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것은 이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이다. 국민연대의 발족은 그간 '희망제안 2005', '사회적 교섭', '무상의료·무상교육', '사회양극화 해소' 등으로 표현되어 온 운동진영 내 일정한 경향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연대는 핵심 정책기조가 참여정부의 캐치프레이즈와 적극 공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운동진영 내에 가시화되고 있는 이 예사롭지 않은 흐름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사회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이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흐름 속에서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가. 둘째, 사회양극화 해소가 운동진영의 당면 투쟁목표로 타당한 것인가. 셋째, 노무현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운동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사회양극화의 원인과 금융세계화의 본질 : 소수의 금융소득자를 위한 절대 다수의 궁핍화
‘사회양극화’로 명명되는 진단은 현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표피적 해석에 그치기 쉬운데, 이는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분석이 중간층의 유실이라는 측면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의 사회양극화 해소 방안이 종국에는 중간층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 재분배 정책이나 경기 부양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사회 위기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해석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소수의 금융소득자를 위한 절대 다수의 궁핍화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양극화에 대한 지배세력의 사회양극화 담론은 이러한 궁핍화 과정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 위기에 대한 근본적 진단으로서 절대 다수의 궁핍화 과정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다음의 네 가지 정도로 압축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주변국가의 항상적인 경제위기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적 변화를 담고 있다.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계에 조응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은 주식시장을 매개로 자유로운 금융시장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의 투자를 통해 금융적 축적을 추진한다. 이러한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발전전략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전망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다. 오히려 금융투자자들의 ‘단기주의’와 전 세계적인 금융적 불안정성에 의해 항상적으로 경제위기의 가능성에 노출될 뿐이다. 현 정부가 국가경제에 있어서 금융부문의 발전을 목표로 사회 전 부문의 세계표준화(글로벌 스탠다드)를 줄곧 추진해왔지만, 그것의 결과가 불안정성의 확대와 국부의 유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는 노동의 불안정화이다. 경제의 금융화는 비용절감을 통한 생산부문의 경쟁력 증진을 꾀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의 이른바 ‘신경영전략’에 따른 인원 감축·과잉 착취·유연화, 즉 노동의 불안정화가 발생한다. 또한 대량 실업으로 인한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조성이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노동자들 사이의 지속적인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노동의 불안정화는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어 있으며 노동자 실질소득의 감소,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의 양산,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조건 후퇴, 저임금 일자리로 인한 근로빈곤층의 대폭 증가 등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는 금융자산을 소유한 계층으로의 부의 집중이다. 금융세계화 속에서 세계의 부와 소득은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금융세계화의 시대에 자본의 잉여는 중심부의 극소수 계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금융적 재편으로 금융투자와 법인기업을 통해 해외투자를 주도하는 몇몇 국가, 특히 미국으로 세계의 부, 즉 잉여는 집중된다. 거대 금융기업들이 존재하는 미국은 다른 국가의 금융기관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것이 반복되면서 금융자본이 미국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심화한다. 이에 반해 금융팽창의 수혜로부터 배제된 세계 다수의 민중들은 광범위한 빈곤층과 산업예비군을 형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제로 인한 극단적 불평등이다. 금융세계화는 끊임없이 배제되는 지역을 낳는다. 배제된 지역에서는 빈곤과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이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민족적·인종적 분쟁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는 중심국가와 주변국가의 불평등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자국 내, 지역 간 불평등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각각의 도시 내부의 불평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세계적으로 금융적 팽창의 중심이 되는 세계 도시(global city)의 네트워크가 출현하고 있으며, 도시 내부에서도 금리 생활자 층의 독자적인 '담장 도시'가 출현하고 있다.
사회양극화 해소가 당면 투쟁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 : 정부의 위기관리전략 아래 무기력한 정책대안운동
노무현 정부의 사회양극화 해소 주장에 진의가 있는지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양극화 해소’와 ‘개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각종 사회정책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복지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데, 그 내용은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방안’에 압축되어 있다. 사실 노무현정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이후 추진과제도 대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도입, 자활사업과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확대, 기초법 사각지대 해소, 창업 지원 등으로 선전되는 이러한 지원방안은 임금과 고용의 안정적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일자리의 질 향상에 대한 고려 없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빈곤층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층으로 강제 편입시키려는 현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사회적 약소자에 대해 국가와 자본이 가지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방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반기 추진과제로 언급한 ‘남성가장 단독 부양모델의 부부공동 부양모델로의 전환’ 역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전제로 한 보육정책을 통해 여성으로 하여금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는 측면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참여복지는 사회양극화 해소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이용해 금융세계화에 적합한 신축적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기만적인 위기관리전략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의 양극화 해소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과잉 선전했던 예로는 전시행정으로 판명된 ‘8.31 부동산 대책’이 있다. ‘토지 공개념’까지 들먹이며 서민들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가 큰 실망으로 되돌려준 이번 부동산 대책은 금융세계화에 포섭된 이상 무능력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노무현 정부의 현 주소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의 기만적인 위기관리 정책들을 대통령이나 정책 담당자들의 무지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 현 정부를 위기관리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계 속에서 한국이 처한 반주변부적 지위에서 연유한다.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자국 내 모든 부문을 초국적 자본의 금융투자에 적합하게 구조조정 함으로써 국가경제의 금융적 발전에 복무하는 것 외에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지금의 정책방향이 급선회하지 않는 이상, 금융세계화로의 적극적 편입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노무현 정부가 내놓는 어떠한 정책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으로 해결 불가능한 '사회양극화'라는 쟁점을 선점하는 것일까? 그것은 점증하는 사회적 위기의 징후들이 지배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700만 명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얼마 전의 언론 보도는 정부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간 정부가 파악하고 있던 규모보다 훨씬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궁핍화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 선 민중들의 불만이 비록 현재는 충분히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들 스스로의 집단적 실천과 정치적 조직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이는 지배세력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선점하며 사회 통합이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부는 절반이 넘는 집권기간 동안 허구적인 정치적 쟁점을 선점하여 정치적 이득을 챙겨왔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쟁점을 선점하는 것 외에 ‘사회적 합의’, 즉 ‘사회 통합’을 위해 NGO를 비롯한 민간조직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정부 내에 각 부처와는 별개로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어 있는 각종 위원회는 이와 같은 역할수행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예를 들어 복지 영역을 담당하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NGO를 비롯해 자활·사회복지 기관들을 정책수립과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일부 운동 조직은 종종 공익을 내세우며 위기의 표피적 현상을 관리하는 데 복무하기도 하는데, 위기의 원인은 건드리지 않은 채 정치·경제·사회 민주화를 표방하며 진행되는 법·제도 개선투쟁 및 개혁투쟁 등은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거나 관리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지배세력의 포섭전략과 정세에 따라 시민운동 진영에서 민중운동 진영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연대가 제시한 사회양극화 해소가 민중의 요구일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대다수 민중의 궁핍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궁핍화의 주요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反민중성과 현 정부의 위기관리전략을 적극 폭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사회 개혁과 정책 대안운동은 금융세계화에 따른 민중의 궁핍화라는 근본적인 쟁점을 우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지배세력이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한국사회 발전전망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빈곤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았을 때,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 없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여러 정책 대안운동은 현실적으로 공허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초기의 문제의식은 사장된 채 현 정부의 위기관리전략에 공명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지배세력이 주창하는 사회 통합, 혹은 사회적 합의가 가지는 정세적 위험성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사회 통합은 배제된 자들의 규모가 늘어나고 원한의 깊이가 갈수록 깊어지는 현실에서 이들의 불만과 저항을 봉합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동원하기 위한 허구적 담론에 불과하다. 현 시기 투쟁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가 몇몇 세력의 정치적 타협, '단기적 위기관리' 중심의 절충과 타협, 그리고 정권교체에 의해 풀릴 수 없는 만성적·구조적 위기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진영의 과제 : 운동주체의 형성과 대안세계화 운동
최근 빈민운동단체 및 사회단체들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기초법 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며, 기초법 전면 개정 및 자활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빈곤인구가 800만명에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급자 확대나 급여인상의 내용이 거의 없는 기초법 개정안을 내놓고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운운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번 기초법 개정안은 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양극화 해소 로드맵’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의 허구적 위기관리전략과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한계를 폭로하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빈민 대중과 함께 투쟁하는 연대운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이다.
빈곤의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여성의 문제를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개혁투쟁으로 귀결시키는 운동은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사회 민주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활동'을 이중적으로 병행하는 전략의 일환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 전자의 문제의식은 점차 기각되고 후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운동의 각 영역을 포섭과 배제를 통해 관리하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한 원칙적 태도가 확고하지 못하다면, 개혁과 정책대안운동은 결국 방향성을 상실하면서 개량과 개선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운동진영이 빠질 위험의 결정판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빈곤은 주어진 하나의 현상이 아니며 배제되고 소외된 특정한 계층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비판의 대상은 사회 양극화 그 자체가 아니라, 앞에서 분석했듯 이것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가 어떻게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양산하고 심화하는가, 여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면서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나아가는 노동자운동·빈곤에 맞선 사회운동·여성운동의 연대의 강화를 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