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운동의 이해와 과학화
성노동운동 행동일지
[2004년]
9. 23 서울 ‘미아리 텍사스’에서 성노동자 등 500여 명 생계보장 및 유예기간 요구 시위
9. 24 대구지역 집창촌 `자갈마당' 성노동자 등 200여 명 단속유예 요구 시위
10. 1 미아리, 평택, 인천 숭의동 성노동자 등 280여 명 인천에서 생존권 투쟁 연대 시위
10. 5 부산 `완월동' 성노동자 등 600여 명 경찰 단속에 항의 생존권 보장 촉구집회
10. 7 서울, 부산, 대구, 강원 등 전국 12개 지역 성노동자 등 3,000여 명 국회 앞 시위
10. 11 평택에서 청량리, 용산, 영등포, 수원, 인천 등 6개 지역 성노동자 등 400여 명이 평택 성노동자 150여명과 함께 성매매특별법(이하 성특법) 폐지 촉구 연대 시위
10. 18 부산 '완월동' 성노동자 600여 명 부산 충무동에서 생존권 보장 촉구 가두시위
10. 19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전국 17개 지역 성노동자 등 3천여 명 성특법 철폐와 생존권 보장, 공창제 요구 연대 시위, 성노동자 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항의 방문
11. 1 <한터여성종사자연맹>(이하 한여연) 성노동자 대표 20여 명 '생존권 보장 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돌입(총 73일간 릴레이 단식)
11. 1 부산 완월동 성노동자 180여 명 이틀 연속 생존권보장 촉구 촛불시위
11. 3 미아리 성노동자 임원 6명 성특법 찬성하는 민주노동당 입장에 반박 성명서 지참, 민주노동당 항의 방문 및 열린우리당 당사 앞 피켓 시위
11. 7 청량리에서 성노동자 등 100여 명 성특법 철폐와 생존권 보장 요구 시위
11. 11 한여연 소속 성노동자 2천여 명 여의도 국회 앞에서 생존권 투쟁, 삭발 촛불 시위
11. 12 성노동자 대표 성특법 관련 국회 항의방문,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과 간담회
11. 18 용산역 사거리에서 성노동자 50여 명이 강력한 단속에 항의하며 생존권 투쟁
12. 6 미아리와 청량리, 경기도 평택, 수원 등지의 성매매 여성 30여 명 자발적 성노동자를 처벌토록 한 성특법 폐지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소복' 농성 투쟁
[2005년]
1. 12 한여연 성노동자 대표 유예기간 연장 청원서 청와대에 제출
3. 5 성노동자 임원진 3명, 여성단체 주최 ‘여성노동자 차별철폐 거리행진’ 여의도 집회 기습 참가시위. "여성 성노동자도 여성노동자다. 여성 성노동자 죽이는 여성계는 각성 하라!" 라는 제하의 <전국 성노동자 준비위 한여연(이하 전국성노위)> 출범사를 행사 참가자들에게 배포
4. 12 성노동자 대표 2명, ‘서울여성영화제 국제포럼 2005'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 참가, 대만 성매매여성조합 대표를 비롯 태국, 인도 등 아시아의 성매매관련 인사들, 비디 오 액티비스트들과 함께 성매매 주제로 토론
5. 3 서울 미아리 텍사스 성노동자 등 500여 명 집창촌 한가운데서 경찰 단속에 항의, 생존권 보장 촉구 집회 개최
5. 25 전국성노위는 다음(Daum) 카페에 성노동운동 사이버 팀을 꾸리고 공식 활동에 돌입. 성명전 준비 개시
5. 30 전국성노위 성명 발표, 이른바 '성매매피해여성'을 돕는다면서, 실제로는 여성단체의 생색내기에 불과한 '부산 완월동 문화축제'를 준비한 부산 성매매피해여성 지원상담소 <살림>을 규탄.
6. 9 전국성노위 성명 발표,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측에 성매매(sex trafficking)를 ‘성노동자의 의사에 반(反)하는 강제적 성매매’로 수정하고 '자발적 성노동(sex working)은 무관함' 이라는 단서를 첨부하라고 요구
6. 10 평택 성노동자 등 200여 명 야간시위, '성노동자도 노동자다' 구호 외치며 가두행진, 무자비한 단속 항의 차 평택경찰서 앞 농성 투쟁, 성노동자 대표 평택경찰서장 면담
6. 19 전국성노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에게 14개항의 공개질의서 보내고 답변을 요구함(최순영 의원은 성매매를 장기밀매와 인신매매에 비교한 바 있음)
6. 20 성노동자 대표진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 발표. 성특법 문제점 지적, 성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해 비범죄주의 주장. 성매매 금지주의 채택에 영향을 끼친 권력에 진입한 급진주의와 일부 자유주의 여성주의자들 비판, 문화주의 및 사회주의 그리고 마르크스 페미니즘 여성주의자들까지 고른 발언권을 갖고 국제적인 수준에서 성노동 문제를 공론화 해줄 것을 요구함
6. 29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야외 광장(대관취소로)에서 성노동자와 성산업인 2천여 명 모여 ‘성노동자의 날’ 행사를 갖고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이하 전성노련) 공식 출범함.
7. 3 전성노련 세계여성행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에 참가 발언. 8년 전 대만의 천수이벤 총통이 정권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시민 중산층의 표를 모으기 위해 공창제 폐지한 것과 여성계 일부 및 현 정권이 개혁정권 이미지를 앞세우기 위해 성특법 강행한 것을 비교 설명, 성노동자 운동은 빈민운동이며 사회변혁운동, 사회적 오명에 시달려온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 않겠다는 인간선언이라고 주장
7. 12 전성노련 성명 발표, 「광양시 다방 자살여성 김양 관련, 상담소 등 여성단체에 책임 묻는다」 성명에서 음성적인 다방업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두고, <광양 성매매피해여성공동대책위>에서 '성매매 업소'라고 막연하게 지칭, 집창촌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 있음을 지적 시정 요구(모든 성매매 관련사고가 집창촌 폐쇄 구실로 악용됨을 우려)
7. 13 전성노련, 성노동자의 노동자성에 대해 양대 노총과 <노동자의힘>, <서울여성노조>를 상대로 공개질의, 헌법상 노동권은 직업선택의 자유와 생존권적 기본권으로서의 ‘적극적인 의미의 노동권’을 인정한 것이므로 성노동자의 노동자성 또한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노동단체들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함(<노동자의 힘>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음)
7. 22 전성노련 성명 발표, 「성매매 합법화 운동을 우려한다」 제하의 사회당 논평(대변인 이영기)에 「사회당은 성노동 비난말고 신자유주의 공격하라」고 반박
8. 15 전성노련, 「대전에는 집창촌이 없다」 성명에서 정신장애 여성을 성매매 목적으로 인신매매(혐의)한 사건과 관련하여 음성 성매매 분야 사고를 '집창촌'이라고 언론 보도한 데 대한 왜곡 편파보도 시정요구
8. 27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 출범선언문 발표, 성노동자들과 성산업인들의 개인차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노동운동의 전망과 활성화를 위해 전성노련을 탈퇴하고 민성노련을 출범시킨 배경을 밝힘
9. 6 민성노련 노조구성, 민주성산업인연대와 단체협약 체결, 근로시간 및 휴일 등 명문화, 민성노련 겸 성노동자 상담소 사무실 개소식(참가단체 :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사회 진보연대, 노동자의힘 여성활동가모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 성노동운동민중연대)
9. 8 민성노련, 「여성가족부는 자활시범지역 확대를 즉각 중지하라」 성명 발표, 기존 자활시범지역인 부산 완월동과 인천 숭의동 경우, 해당업소에 일하던 성노동자들이 음성분야 등 타 업소로 이동하는 등 사업시행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성과가 없음에도 '탈업소'를 목적으로 시범지역을 계속 확대하는 것은 자활과 무관하며 혈세낭비일 뿐이라고 규탄.
9. 23 토론회 ‘성매매방지법 1년 평가와 성노동자운동의 방향과 전망’(고려대)에서 민성노련대표 발제(토론회 공동주최 : 민주성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 노동자의힘 여성활동가모임)
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인권향상
우리 성노동자들은 그간 치열했던 생존권 투쟁을 통해 인간으로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정체성을 가지고 주체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고, 이를 위해 좀 더 견고한 조직을 필요로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일하는 자' 즉 성노동자로 자신을 규정했다. 이는 우리들이 사회적으로 당당하게 커밍아웃한 것과 같다.
우리들이 집회 때 마스크를 쓰는 건 부모형제를 고려한 것이지 결코 수치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성노동자들의 인권향상은 투쟁단위(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민성노련의 경우 성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에 힘입어 성산업인들과의 관계도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했고, 6․10 시위 당시 경찰서장과의 대화도 상당히 정중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예전 단속에서 종종 있어왔던 쌍욕과 삿대질, 업신여기는 눈빛 등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변화다. 단체협상에서도 성산업인들과 평등한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했다.
전성노련 탈퇴와 민성노련의 요구(강령)
우리는 전성노련을 주도했지만 '전국'이란 이름에 갇혀, 시각이 다른 세력들로 인해 상황에 따른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또한 대표성 논란에 휘말렸으며, 이런 구조로는 성노동자 운동 전망을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고 여겨 탈퇴해 민성노련을 출범시켰다. 우리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성명전' 같은 방식으로 제때 사회적 의사표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성노동 운동 연대단체들과의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면 보다 견고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민주성노동자연대 노동조합 12대 강령
성노동자는 대한민국의 주권자이며 시민권자다. 또한 성노동자는 노동자이며 비정규직이다.
따라서 민주성노동자연대 노동조합은 성매매 특별법 등으로 인해 억압받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12대 강령을 정하고 이를 실천한다.
[ 강 령 ]
1. 성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투쟁한다
2.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해 투쟁한다
3. 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인권유린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한다
4. 성노동자들이 질병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건강권 쟁취를 위해 투쟁한다
5. 고객인 남성을 성매매 특별법에 의거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
6. 성노동자와 정직한 성산업인간의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7. 인신매매, 감금, 폭행 등이 개입된 범죄적인 성매매 행위에 절대 반대한다
8. 성노동과 탈 성노동에 관한 것은 성노동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9. 성노동자를 억압하는 반인권 악법 '성매매 특별법' 폐지를 위해 투쟁한다
10. 민주적인 성노동자들의 전국적 조직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11. 성노동운동의 대의와 취지에 공감하는 제 민주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한다
12. 한국사회의 급진적 여성주의를 개혁한다.
우리는 강령을 통해 명실상부한 성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을 하고자 한다. 성특법에서는 기존의 ‘윤락행위’ 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성매매’라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차피 성매매를 해야만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우리 성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수 없다. 우리 성노동자들에겐 진실이 필요할 뿐 언어만의 성찬을 원하지 않는다. 성매매피해여성이란 말은 이를 수용하고 싶은 여성들에게만 적용하면 될 것이다. 부득이한 경제적 조건에서 스스로 ‘성적 서비스업’을 선택한 다수 여성들에게는 국제사회에서 무리 없이 통용되는 ‘성노동’, ‘성노동자’란 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피해여성이란 말은 우리들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로서 권리선언을 하고 조직화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강령은 전성노련 당시 10대 강령에 '급진적 여성주의'를 추가했다. 우리는 성매매특별법 추진세력으로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성노동자가 아닌 성매매피해여성으로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성특법에 대한 모순이 불거지자 문제점에 대한 공론화를 회피한 채 오히려 시범지역이란 이름으로 성노동자들을 말살하는 정책으로 나오고 있다.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의 ‘여성해방’ 이론은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있지만, 빈부양극화와 관련한 사회구조를 배제한 채 남녀구도로 몰아가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본다. 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한 성노동자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보며 그들이 개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성단체들도 모순적이다. 막상 성노동에 관한 논의에 들어오면 '어렵다', '혼란스럽다'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여성부 시범지역 사업 등에서 ‘일거리’(상담소 등)를 맡으려고 줄을 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정부건 민간단체건 사안에 문제가 보이면 일단 정책 집행을 보류해야 하는데, 책정된 예산이라고 잘못된 사업에 무조건 혈세를 낭비하는 일은 큰 잘못이다.
성판매자, 성구매자와 알선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성판매자인 성노동자들이 이 땅의 시민이며 주권자라면 알선자인 성산업인과 구매자인 고객들 또한 그러해야 마땅하다. 비합법적인 업에 종사한다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단정해서 그들을 논외로 한다면 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오명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정직한 성산업인이란 민성노련 12대 강령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즉 그들은 성노동자들과 민주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기존의 구습에 젖은 업주들과는 달리 ‘성노동자’들의 삶의 질곡을 이해하고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성노동자 운동의 시발점에서 정직한 성산업인들의 자발적 협조는 매우 중요했다.
정직한 성산업인들은 그동안 성산업인들 간의 지역별 개인별 차이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한 사람들로서 시대의 흐름을 읽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재까지 성노동자 운동을 측근에서 지원해온 거의 유일한 세력이다. 이는 일반적인 의미의 '업주들의 사주'와 명백히 다른 의미다. ‘사주’란 말을 굳이 사용하자면, ‘성노동 운동’이 ‘성산업인’들을 사주한 것이다.
성산업인에게 내리는 처벌은 기실 성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과 같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일정한 영업장소와 주거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결국 음성 성매매 시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골간은 사유재산제이다. 따라서 정직한 업주가 자신의 사유재산을 투자해 성노동자들과 협업하고 분배가 합리적이라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성노동자에 비해 더욱 열악한 법적 환경에 놓여있는 성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우리를 더욱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몰아간다. 성 구매자들은 처벌을 각오하고 우리를 만나는 것에 대해 매우 불공평해하는 까닭에 때로는 성노동자들을 적대시할 가능성이 높으며 결과적으로 강도 높은 성노동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성노동자들의 성적 서비스업은 결코 어떤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만약 어느 성노동자로 인해 어느 가정이 붕괴된다면 그 가정은 이미 해체되어 마땅한 수준의 가정일 것이다. 기존의 가족제도는 사유제산제에 근거하며, 경제가 악화되면 될수록 가정은 해체되며, 결혼시장에의 진입이 점차 어려워진다. 성인 남성의 미혼인구 비율이 무려 42%가 넘고 있음은 한국 사회 결혼시장의 슬픈 현주소다. 우리는 성욕이 식욕처럼 성(젠더)을 넘어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해결 방식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 필요하다고 보며 성노동은 그 연장선상에서 신중하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성판매(성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신라시대 ‘미실’은 진흥왕, 진평왕 등 8명의 남성을 색공으로 지배했다. 그녀의 색공은 요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고위층 미인계며, 서민층에 오면 성노동이 된다. 같은 행위라도 권력이 되면 칭송받고 베스트셀러로 날개를 달지만, 서민들에게 오면 오명과 낙인을 찍는 이중성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성노동자 운동에서 노사문제는 특수한 영업형태로 인해 일반 노동운동에서의 노사문제와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민성노련은 단체협상을 통해 양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있다. 이는 일정 정도 성산업인들과의 긴장관계를 동반하기도 하는 사항이지만 슬기롭게 해결해나가고 있다. 단체협약에서 민성노련은 타 지역과의 연대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여 세부사항에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는 성노동운동 진영의 대동단결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조치다.
노사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성특법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성특법을 포함하여 소위 집창촌 폐쇄법안(성매매 집결지 폐쇄 및 정비에 관한 법률) 등 다가오는 성노동자 말살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체 성노동자와 성산업인들의 단결이 필요하다. 민성노련은 성노동자 운동의 전망을 위해 앞장서고 있지만, 여타 성노동 운동 진영을 배제하려는 뜻은 없다.
성노동자 조직은 ‘선불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다시함께센터> 자료 상담 내용 중 선불금과 관련된 빚 문제가 43.5%로 가장 많은 것도 성특법 이후 성거래 여성들의 경제 환경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선불금 무효화 조항의 영향으로 집창촌 내 선불금은 성노동자 중 28%(한국인권뉴스 경기 모 집창촌 5,28 조사)만 해당될 정도로 현저하게 감소했지만, 음성 성매매 분야인 룸살롱 등은 이보다 훨씬 많은 1천5백만 원에서 3천만 원 정도의 선불금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불금이란 용어는 여성권력계가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측면이 있어, 민성노련에 속한 집창촌의 경우 ‘가불금’이란 용어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민성노련 소속 성노동자들 중 본인의 필요에 의해 가져간 ‘가불금’이 있는 사람들은 성산업인들(민주성산업인연대)과의 단체협약에서 ‘일’이나 ‘여타방식’으로 변제할 것에 동의했다. 참고로 우리가 아는 집창촌에서는 ‘선불금’에 대한 ‘이자’가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성노동자 조직이 선불금에 개입 조정한 사례가 있다. 한 여성이 일할 것을 빌미로 성산업인에게 1,200만원을 가불한 다음 경찰에 신고해서 탕감을 요구한 일이 발생했다. 소식을 접한 성노동자 임원진은 그 여성과 성산업인 사이에 중재를 서서 아무런 조건 없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말썽을 꺼려한 성산업인이 채권을 포기한 것이다. 최근의 사례로 성노동 경험이 없는 초보자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성산업인으로부터 380만원을 빌려 성형수술비로 사용했다. 초보인 만큼 성산업인은 불안했고 본인이 마음 내킬 때 일하라고 지켜만 봤다. 그러나 곧 그녀 소재를 알게 된 남자 친구가 신고하겠다고 나왔고, 이를 접한 민성노련 상담소는 중재에 나서 그녀를 집으로 보냈다. 수술비는 그의 어머니가 대신 상환했다.
그럼 현행 성특법 선불금 무효화 조항에 의거 성노동자들은 언제든지 돈을 갚지 않고 떠날 수가 있는데 왜 남아 있는 것인가. 성노동자들은 돈을 당장 떼먹는 게 능사가 아니라, 가족부양을 비롯한 생계유지에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일정한 수입이 필요한 까닭에 ‘성노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환 방식은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중 일부를 분납하여 지불한다.
선불금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한 여성이 성거래 현장에 오기까지는 수년전 같으면 극빈 가정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채무의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오곤 했었다. 지금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그녀들의 극한적 경제상황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우리사회 어디에도 없다. 선불금은 빈부의 양극화가 불러온 이 사회의 단면이다. 사회구조를 논하지 않고 ‘선불금’을 족쇄처럼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만약 여성권력계가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빚에 몰린 위기의 여성들이 성거래 현장에 들어오기 전에 ‘무이자로 거액을 빌려주는 것’이 여성들의 성거래 유입을 방지하는 우선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여성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불금’을 약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전에서 빌려오는 것을 허락한다면, 심청전을 예로 들고 싶다. 우리 성노동자들의 삶은 늙으신 눈먼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3백석(요즘 시가로 약1억5천만 원)에 몸을 팔아 임당수에 뛰어든 것과 닮은 데가 많다. 공양미는 오늘날 선불금과 같다. 성노동자들 83%가 가족의 병수발을 들며 생계를 돌본다. 다수 성노동자들은 임당수에 뛰어드는 대신 성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성노동자 운동의 애로사항 그리고 연대 네트워크운동에 바라는 점
우리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성노동자 운동이 벌어진 인도의 13년과 대만의 8년이 한국에서는 불과 지난 1년으로 압축된 느낌이다. 성노동자 운동은 각 지역별 특성에 따라 많은 차이점과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우리가 지난 6월 29일 성노동자의 날 집회를 할 때 몇몇 지역에서는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유는 해당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그 지역의 성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하면 무자비한 ‘단속’이 집행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에 급급한 성노동자들에게 ‘단속’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성노동자 운동에는 무엇보다 성노동자들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죽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라는 신세한탄 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면, 우리들은 사회로부터 불쌍한 매춘부로만 취급당한다.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이주민 성노동자들에게서도 보듯 ‘성노동’이라는 힘든 현실이 국내 및 국제사회의 극심한 빈부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주눅 들지 않고 우리들의 인간선언과 요구를 관철시킬 ‘성노동자 운동’에 매진할 수 있다. 우리에겐 이에 합당한 프로그램(민성노련 노조 상담소)을 내부적으로 준비 중이다.
우리는 성노동자 운동에 지지와 연대를 표명한 제 사회단체들이 현 시기 한국에서 성노동 운동의 전망을 제시하려는 민성노련이 국제적 연대조직의 일원으로 공동 투쟁하는데 도움주기를 기대한다. 어느 나라나 성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은 공통점이 많기에 동지가 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대만의 코스와스(Collective of Sex Workers and Supporters, COSWAS, 성노동자 후원자 조합)와 인도 성노동자 공동체 두르바 위원회(DMSC: Durbar Manila Samanwaya Committee), 영국 국제성노동자조합(The International Union of Sex Workers, IUSW), 미국 코요테(Call Off Your Old Tired Ethics, COYOTE, 미국여성매춘부단체)와 같은 단체들이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상시 가동할 수 있는 공동대책위원회(가칭성노동권쟁취공대위) 같은 논의구조가 있어 정기적으로 의견교류와 행동통일을 기했으면 좋겠다.
성노동자들의 자활과 여성가족부의 실체
부산 완월동과 인천 숭의동 집창촌 시범 자활사업 결과, 올 4월까지 완월동 여성의 36%, 숭의동 여성의 31%가 업소를 떠났으며(여성부 집계), 남아 있는 성노동자들 또한 절반 정도가 바뀐 것으로 우리는 파악하고 있다. 이는 성특법 하에서도 신규 유입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로 성특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반증이다.
반면 성노동자들의 자활과 무관하게 부산, 인천 시범지역에서의 여성계 의도는 관철됐다. 긴급생계비 40만 원을 수령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일부 여성들과 여성단체(상담소)측의 유착관계가 형성됐다. 상담소에서 돈을 받으면서 동시에 영업을 하는 까닭에 일종의 미안한 마음상태에서 심리적인 위계상황이 벌어지고 더욱이 영업도 부진해 그곳을 떠났다.
긴급한 것은 이른바 성매매 집결지 자활지원사업 실시지역 확산에 따른 대응전략이다. 여성가족부는 금년 중 10개소까지 시범지역을 확산한다면서, 이미 기존의 부산, 인천 외 4개 지역(경기도 파주 연풍리와 대능리 일원(일명 용주골), 성남 중동, 서울 용산역 앞, 부산 범전동 집결지)을 임의로 선정한 바 있다. 시범지역 사업이 기존 부산 완월동과 인천 숭의동 집창촌에서는 형식적이나마 여성단체(여연)와 협상의 모습을 갖추었다면, 이제 여성권력계는 공권력을 등에 업고 일방적인 몰아붙이기 식으로 나오고 있다. 시범사업 후 성노동자 운동이 활발했던 부산 ‘해어화’ 조직이 와해된 것을 감안한다면 성노동 운동 진영의 대응전술 또한 치밀해야 할 것이다.
자활프로그램은 애초에 없었다. 형식상으로만 존재한 것이다. 1인당 760만 원정도 예산(의료비, 여성단체 활동비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480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으로 자활시킨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들의 가족을 책임질만한 공적 프로그램이 전혀 없는 여성권력계가 성노동자들 개개인만 특별히 구출(?)해 줄 것 같은 프로그램으로 회유하는 것은 감언이설에 불과하다. 실제 성노동자들의 자활은 성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저축 등)으로 준비되고 있다.
이미 여성가족부는 시범사업의 성과를 예전의 ‘탈성매매율’에서 ‘탈업소율’로 용어를 바꾸어 발표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성노동자들에 대한 탈성매매를 포기하고 있다는 징후로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은 음성 성거래나 해외 부분과 상관없이 어쨌든 집창촌에서만 성노동자들을 내보내면 된다는 전시행정적인 발상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특법은 음성적성매매권장특별법이다.
여성가족부는 성매매와 관련하여 국내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2002년 3등급에서 올해는 1등급으로 올라섰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용상 거짓말이다. 미국은 한국을 세계에서 유력한 성매매여성 송출 다발국가 중 하나로 선정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성특법 이후 해외에서 ‘세계 최대 성매매 여성 수출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1등급 운운은 한국정부가 미 부시행정부의 「성매매 반대서약」프로그램에 동참한데 따른 형식적인 ‘칭찬’에 불과하다.
성노동 운동 연대와 궁극적 폐절론 등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말하면서 동시에 “성매매의 궁극적 폐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우리는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을 구분해야 하는 관념적인 학술토론회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권력 진입에 성공한 성매매 금지주의자들과 사활을 건 생존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 성매매의 ‘궁극적 폐절론’은 성매매 금지주의자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제공한다. 그들은 ‘폐절해야 할 대상과 연대하면서 어떻게 성매매를 줄여나갈 것이며 폐절시킬 수 있단 말인가’ 라는 논리로 성노동 운동 진영을 공격할 것이다.
만약 성매매의 과잉이 ‘성매매의 구조적 원인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궁극적 폐절론이 아니라 ‘대안적 축소론’으로 바꿔 불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안적 축소론’이라면 얼마든지 동의할 용의가 있다. 이는 유럽형의 성매매 비범죄주의 혹은 합법적 규제주의와 함께 심도 있게 연구해볼만한 사항이다.
우리는 어떤 논리도 빈부양극화의 원인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 다수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가난의 대물림과 학벌카스트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결과이다. 한국의 성노동자들은 인도의 달리트(불가촉천민)와 다르지 않다. 만약 우리 성노동자들이 사라져야 할 직업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성노동 운동의 힘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당당하게 투쟁해 노동권을 쟁취하고 싶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부유한 자들의 넘쳐나는 성적 유희는 반대하지만, 서민들의 억압받는 성은 그것이 여성이나 남성에 상관없이 해결되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성노동자들은 대가를 제외하고 오직 성적 행태로만 본다면 다양한 성적소수자 중 하나이다. 우리가 단지 일부일처제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성노동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은희 전 장관이 말한 ‘프리섹스 오케이’ 정신과 근접해있다.
‘궁극적 폐절론’은 성노동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를 성노동 현장까지 오게 한 그 근원적인 구조에 대한 폐절을 논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