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탈출
나는 박치(拍痴)다. 학생시절 단과대학 노래패에서 활동을 했던 나는 노래실력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타반주자로 변신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내가 박치라는 사실마저 확인하고 얼마나 좌절했던지. 당시 반주팀이 드럼이나 베이스 없이 어쿠스틱 기타와 신디사이저만으로 구성되었던지라, 리듬기타가 사실상 드럼의 역할을 해야 했다. 따라서 반주자로 살아남는데 박치는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그래도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공연의 내용적 구성이나 메시지를 중시했던 분위기 덕택에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학 학생회선거의 문예선동곡으로 선정된 노래의 반주테이프를 구할 수 없어 내가 연주에 참여했던 공연녹음테이프를 썼어야 했을 때, 박자가 제멋대로인 부분이 반복해서 재생되었을 때, 그 부분에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선동참여자들의 얼굴을 봐야 했을 때, 그들 사이로 멋진 척 하며 내가 등장해야 했을 때, 난 내가 두 번 다시 연주를 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어찌나 화끈거렸던지... 그 뒤로는 노래패 활동을 접었고 학생회 활동에 비중을 더 두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그놈의 박자감각은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본의 아니게 큰 공을 세운 셈이다.
그런데 그놈의 박자감각은 노래나 연주에만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박자감각의 다른 면이 내 새로운 활동에 발목을 잡고 나섰다. 박치의 기본 특징은 마음 속의 메트로놈 속도가 제멋대로라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기준이 불안하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보면 난 시간에 대한 약속이나 규율을 지키는 데도 박치였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기본, 30분 늦는 것은 예의, 1시간 늦는 것은 애교로 간주하던 당시 나의 태도는 주변 사람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들쭉날쭉한 생활습관도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서로의 관념이 다를 뿐이라고 위안하기도 했다. 심지어 나의 이러한 태도가 시간을 적당한 단위로 절단하여 채취하는 근대적 시간관념에 대한 저항이라고, 이에 기반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훈육과정에 대한 반란이라고 슬그머니 합리화하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겉으로는 시간에 대한 공동체 내부의 규율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것에 나를 최대한 맞추려 하고 이를 능숙하게 해 내는 모습을 꿈꾸기도 했지만, 의식 깊은 곳에는 언제나 이에 대한 반발심과 나의 박자감각을 옹호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었다. 결국 나는 이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박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려고 한다. 돌이켜 보면 근대적 시간관념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시간에 대한 약속과 규율을 지키는 문제를 고정된 어떤 시간적 기준과 규율에 대한 복종/불복종으로 사고하는 한, 끊임없이 그 대당의 양 극단을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 자신의 삶을 집중시키는 행위, 서로의 이질적인 박자를 맞추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개인의 고유한 시간과 공간을 침해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불가피한 고통이 아니던가. 결국 나에게는 주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려는 태도, 고유한 박자들을 어느 순간에 집중하여 상호역능의 증대를 꾀하는 태도, 삶의 자세가 부재하거나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대중운동을 이해하고 대중운동에 개입하고자 할 때도 중요하다. 대중운동에는 고유의 박자, 고유의 파고가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한없이 느려지기도 한다. 대중운동에 개입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대중운동의 빠른 박자를 놓치기 쉽고, 누적된 피로도를 호소하며 느려지려는 상황을 의지로 돌파하려고 하다가 헛물을 켜기 일쑤다. 이질적인 다양한 박자들의 만남을 기획하지 못하고 자신의 박자만을 내세우기도 하고, 분산되어 있는 박자들에 그냥 몸을 실어버리기도 한다.
나의 대중운동에 대한 박자감각은 대체로 미세한 변화에 둔감하고, 그래서 대중들의 진출에 뒤쳐지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우리 집행위원장님의 민감성에 많은 것을 배우곤 한다. 또한 나를 포함하여 이른바 좌파들은 전술적 유연함이 많이 부족한 듯 보인다. 입장보다는 전술의 과격함으로 스스로의 급진성을 표출하려 한다고 할까. 하지만 실제 대중운동은 ‘투쟁-투쟁-마침내 승리’라는 단선적 경로를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른바 간디 식의 ‘투쟁-휴전-더 큰 투쟁’이라는 인식, 혹은 전술적 배치가 오히려 대중운동의 속성에 적합하다. 여기서 ‘투쟁’은 대중적이고 강력한 비타협적? 비합법적 투쟁을 하는 때이고, ‘휴전’은 대중운동의 역량을 복구하면서 투쟁 시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투쟁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투쟁의 시기에는 단기적인 전술적 목표를 너무 과도하게 설정하여 대중운동의 현실적인 피로도와 제약을 무시하며 자체의 투쟁에 매몰되지는 않는지, 투쟁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대중운동의 역량을 복구하고 이후의 투쟁을 준비하는데 너무 게으르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중운동에서 이러한 박자감각을 단련시키는 것이야말로 나의 박치탈출의 최종적 목표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박치이지만 그래도 박치에서 탈출하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려 하고 있고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주변 사람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일에 능숙해질 때, 대중운동의 복잡한 박자변화에 민감해지고 대중운동의 다양한 박자들을 하나의 박자로 모아내는데 나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박치탈출은 나의 중요한 숙제다.
그런데 그놈의 박자감각은 노래나 연주에만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박자감각의 다른 면이 내 새로운 활동에 발목을 잡고 나섰다. 박치의 기본 특징은 마음 속의 메트로놈 속도가 제멋대로라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기준이 불안하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보면 난 시간에 대한 약속이나 규율을 지키는 데도 박치였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기본, 30분 늦는 것은 예의, 1시간 늦는 것은 애교로 간주하던 당시 나의 태도는 주변 사람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들쭉날쭉한 생활습관도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서로의 관념이 다를 뿐이라고 위안하기도 했다. 심지어 나의 이러한 태도가 시간을 적당한 단위로 절단하여 채취하는 근대적 시간관념에 대한 저항이라고, 이에 기반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훈육과정에 대한 반란이라고 슬그머니 합리화하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겉으로는 시간에 대한 공동체 내부의 규율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것에 나를 최대한 맞추려 하고 이를 능숙하게 해 내는 모습을 꿈꾸기도 했지만, 의식 깊은 곳에는 언제나 이에 대한 반발심과 나의 박자감각을 옹호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었다. 결국 나는 이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박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려고 한다. 돌이켜 보면 근대적 시간관념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시간에 대한 약속과 규율을 지키는 문제를 고정된 어떤 시간적 기준과 규율에 대한 복종/불복종으로 사고하는 한, 끊임없이 그 대당의 양 극단을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순간, 어떤 장소에 자신의 삶을 집중시키는 행위, 서로의 이질적인 박자를 맞추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개인의 고유한 시간과 공간을 침해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불가피한 고통이 아니던가. 결국 나에게는 주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려는 태도, 고유한 박자들을 어느 순간에 집중하여 상호역능의 증대를 꾀하는 태도, 삶의 자세가 부재하거나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대중운동을 이해하고 대중운동에 개입하고자 할 때도 중요하다. 대중운동에는 고유의 박자, 고유의 파고가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한없이 느려지기도 한다. 대중운동에 개입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대중운동의 빠른 박자를 놓치기 쉽고, 누적된 피로도를 호소하며 느려지려는 상황을 의지로 돌파하려고 하다가 헛물을 켜기 일쑤다. 이질적인 다양한 박자들의 만남을 기획하지 못하고 자신의 박자만을 내세우기도 하고, 분산되어 있는 박자들에 그냥 몸을 실어버리기도 한다.
나의 대중운동에 대한 박자감각은 대체로 미세한 변화에 둔감하고, 그래서 대중들의 진출에 뒤쳐지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우리 집행위원장님의 민감성에 많은 것을 배우곤 한다. 또한 나를 포함하여 이른바 좌파들은 전술적 유연함이 많이 부족한 듯 보인다. 입장보다는 전술의 과격함으로 스스로의 급진성을 표출하려 한다고 할까. 하지만 실제 대중운동은 ‘투쟁-투쟁-마침내 승리’라는 단선적 경로를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른바 간디 식의 ‘투쟁-휴전-더 큰 투쟁’이라는 인식, 혹은 전술적 배치가 오히려 대중운동의 속성에 적합하다. 여기서 ‘투쟁’은 대중적이고 강력한 비타협적? 비합법적 투쟁을 하는 때이고, ‘휴전’은 대중운동의 역량을 복구하면서 투쟁 시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투쟁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투쟁의 시기에는 단기적인 전술적 목표를 너무 과도하게 설정하여 대중운동의 현실적인 피로도와 제약을 무시하며 자체의 투쟁에 매몰되지는 않는지, 투쟁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대중운동의 역량을 복구하고 이후의 투쟁을 준비하는데 너무 게으르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중운동에서 이러한 박자감각을 단련시키는 것이야말로 나의 박치탈출의 최종적 목표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박치이지만 그래도 박치에서 탈출하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려 하고 있고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주변 사람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일에 능숙해질 때, 대중운동의 복잡한 박자변화에 민감해지고 대중운동의 다양한 박자들을 하나의 박자로 모아내는데 나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그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박치탈출은 나의 중요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