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의 쟁점과 의의
2005년 하반기 한국 사회의 장애인 운동계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올라 있으며, 현장투쟁도 이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 9월 20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내놓은 법안이 입법 발의된 이후 다양한 형태의 대중 집회와 문화제, 대 시민 홍보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이하 전장연(준)]이 동력을 형성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공동투쟁단(이하 장차법공투단)은 지난 10월 26일부터 국회 앞 천막농성에 돌입해 있는 상태이다.
언뜻 보면 현재의 투쟁은 장애인의 차별을 막아낼 수 있는 법률을 만들자는 매우 선명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투쟁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정부와 장애인 운동계 뿐만 아니라, 운동 사회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논란을 형성해 온 듯하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배경 및 과정과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고, 일정한 논쟁의 지점이 남아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과의 관계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의 의견의 정리해보고자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개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1990년 미국에서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 : 이하 ADA)을 하나의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에 강력히 전개되었던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1964년 시민권법(Civil Right Act of 1964)1)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이러한 민권운동의 흐름은 여성과 장애인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ADA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1964년 시민권법의 구조와 틀을 장애인 영역으로 확대 적용하여 제정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에서 ADA가 제정된 이후 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호주(1992), 영국(1995), 홍콩(1995), 독일(2000) 등 세계 각 국에서 유사한 형태의 장애인차별금법을 제정하게 된다.
미국 ADA의 경우 그 내용은 크게 TitleⅠ: 고용(employment), TitleⅡ: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2) , TitleⅢ: 민간운영 공공편의시설 및 서비스(public accommodation and services operated by private entities), TitleⅣ: 통신(tele-communication)3) 그리고 기타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Title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1장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가 지니고, 교통과 관련한 차별은 교통부(Dept. of Transportation)가 담당하는 등 각각의 영역에 대한 업무는 별도의 기구를 두지 않고 기존의 기구나 부서들이 담당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구조와 내용,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 시정 기구에 대해서는 각 국의 법률 체계 및 행정 시스템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예를 들어 영국이나 홍콩 등은 독자적인 차별시정 기구를 두고 있으며, 호주나 뉴질랜드는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역시 미국의 ADA와 외국 여러 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참조하여 그 안이 만들어지게 되지만, 나름의 독자성 역시 지니고 있다. 장추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이하 장차법(안)]은 크게 제1장 총칙, 제2장 차별금지, 제3장 여성장애인 및 장애아동, 제4장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제5장 손해배상과 입증책임, 제6장 벌칙의 총 6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장 차별금지와 관련된 영역이 총 14개 영역으로 매우 구체적이며 세분화4)되어 있고,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별도의 장을 마련하는 등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과정
한국사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2003년 4월 15일 한국장애인계를 양분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애인단체가 총망라된 장추련이 공식 출범5)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장추련의 출범 이전인 2001년부터 부산 지역의 열린네트워크는 국토순례와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시작하였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역시 법안마련을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장추련으로 모아지게 된 것이다.
장추련은 조직의 구성 이후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개최를 통한 의견 수렴과 함께,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장추련 법제정 위원회 내에 법안소위를 구성하여 2004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인 조문 구성 작업에 돌입하였으며, 5월 14일에는 처음으로 법안의 초안을 발표하고 공개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도 5대 차별영역(학벌,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의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후 보건복지부장관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안 마련을 위한 추진단(가칭)'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5월 25일에는 보건복지부의 주최로 용역 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5년에 접어들어 장추련은 실질적인 법안의 발의를 위한 정당 선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장추련의 법안을 원안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민주노동당을 통해 법안의 발의를 준비하게 된다.6) 그리고 법안 제정 운동에 있어 기본적인 실무력을 담보하기 위해 사무국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01년도부터 4년여 간 준비되어온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5년 9월 20일 정식으로 입법발의 되었고, 본격적인 입법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입법발의 전인 9월 14일 장추련은 국회에서 입법발의 기자회견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결의대회를 열고,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통한 법무부 소관법률로 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단지 장애인 관련 법률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 의안과에 의해 결국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되고 만다. 또한 정부는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청와대의 지침아래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작업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
이렇듯 국회와 정부 내에서도 법안의 제정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가운데, 장추련은 내부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나갈만한 어떠한 활동의 흐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해내기 위해 전장연(준)은 기존의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인계 내의 주요 연대체들과 인권·사회단체, 정당까지를 포괄해내는 장차법공투단을 제안·구성하고 마지막 현장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전장연(준) 출범식이 있던 10월 26일 장차법공투단은 국회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으며, 농성 돌입 후 보름 사이에만 세 차례에 걸친 농성장 침탈7)을 겪으면서도 현재까지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다. 또한 11월 9일에는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11월 22~23일에 걸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전동(前動) 거리 대행진'을 진행하는 한편, 수요 거리 문화제, 사이버 시위 등 다양한 대중 투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핵심 내용과 쟁점
(1)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장애인계의 장차법(안)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침해받은 권리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하여,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내 일개 부서가 아닌 국무총리산하의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는 법률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니 하지 말아야 함을 명시하는 법률이며, 차별이 제기되었을 때 이를 판정하고 시정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정과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애인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닌 상시적 인력과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2005년 3월말까지 3년 5개월 동안 제기된 장애인의 차별 진정 사건은 124건으로, 연평균 35건에 불과했다. 과연 480만 장애인 중 일 년에 차별을 경험하는 사례가 35건에 불과할까? 이는 같은 기간 종료 처리된 94건의 사건 중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입에 의한 합의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은 4건에 불과했으며, 9건의 권고 조치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해가 될 수 있다.8)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존의 기구가 장애인 차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며,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차별을 경험해도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존의 인력과 예산의 수준에서 모든 차별시정업무를 통합하겠다고 하고 있어, 결코 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차별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즉 장애인 차별시정을 위한 자문 격의 전문위원이 아닌 상시적 전문 인력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는 장차법이 또 하나의 선언문으로 남지 않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① 시정명령제도 및 이행강제금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떤 사안이 차별이라고 판명되더라도 이에 대해 합의나 조정, 권고까지만 할 수 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즉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진정서를 제출한 차별받은 사람은 아무런 사후보장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 쟁점이 되는 사안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9)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당성과 힘을 실어주는 효과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개인의 경우 아무런 강제성 없는 권고는 오히려 더 큰 피해만을 안겨 줄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이 기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진정을 하고 이에 대해 권고 조치가 내려진다 해도 기업주는 이를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며, 오히려 기업주의 눈 밖에 난 진정인은 다양한 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이후에 다른 이유를 핑계로 해고를 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차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조정을 거부하거나 권고를 수락하지 않은 경우, 다른 법률에 근거한 구체적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악의의 차별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보다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제도는 반사회적인 인권침해행위를 한 후 실제 손해액만을 보상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경우를 막고, 강한 제재로서 법적 실효성을 높임과 동시에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예방의 목적도 지니고 있다. 장차법(안)은 차별행위를 고의로 반복하여 행한 경우, 시정권고 또는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악의에 의한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고 있지 않은 제도라는 점과 현행 법체계를 고려하여 그 액수를 실제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로 한정10)하고 있으며, 정신적 손해배상은 500만 원 이상으로 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③ 입증책임의 전환
입증책임의 전환은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진정인이 제기하면,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거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가해자가 입증하여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전환은 미국이나 홍콩 등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1989. 4)시 "이 법과 관련된 분쟁 해결에서의 입증책임은 사업주가 부담 한다"는 입증책임의 전환 조항을 두고 있다.
권력 관계에 있어 약자의 위치에 있기 쉬운 장애인이 피해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물리적·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며, 특히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에는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입증책임의 전환은 실질적인 권리구제수단의 마련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의 의미와 사회적차별금지법11)
앞서 언급되었듯이 현재 노무현 정부는 단순히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자체를 중단하고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만'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기구(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만들 경우 소요될 예산과 인력의 문제, 그리고 장차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실현될 경우 발생할 정부와 기업의 부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운동사회 안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일정한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근거 때문이겠지만, 국가인권위위원회로의 차별시정업무 일원화가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통합적인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12)
먼저 확인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결코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도, 이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정부의 논리일 수 있지만, 이에 운동사회가 끌려갈 필요는 없다. 또한 장애인 집단에게 있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법률이 요구되고 존재했던 것은 비단 차별금지라는 영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새삼스럽지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해왔고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취업/고용권13) 영역에 있어서의 장애인고용촉진법, 이동권 영역에 있어서의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교육의 영역에 있어서의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존재해왔으며, 이러한 형태의 법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존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앞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선례가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러한 법률의 제정이 시민권(citizenship)운동이라는 배경 하에서 제정되었음을 언급하였다. 시민권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규정할 수 있지만, 근대 자본주의적 민족국가가 자신의 정당한 구성원(member)이라고 인정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여하는 실정법상의 기본권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마지막 집단중의 하나가 바로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14) 독자적인 차별금지법이 제기되어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취업/고용권, 이동권, 교육권 등 기간에 이루어졌던 장애인 대중 투쟁 자체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에 있어 세로축을 형성하는 운동이었다면, 현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또 다른 방향에서 가로축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주체들은 결코 이 법률이 장애인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그 결과 이상으로 투쟁의 과정에서 장애인 대중의 집단적 역능 증대라는 운동의 기본과제를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며, 이는 대중투쟁이라는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차별금지법이 그 어떤 단위에서도 대중적 투쟁을 이끌어 낼만한 실질적 이슈로서 형성되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제도적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결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 시안 속에는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과 관련된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전환 등이 모두 언급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는 장애인계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적 조건 속에서 장애인운동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투쟁을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는 보다 강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적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전술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 안에 위의 3가지 내용이 포함된다면, 운동사회는 이를 근거로 사회적차별금지법 내에도 이러한 조항이 포함되어야함을 실제로 보다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끝까지 거부한다 해도, 장차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회적차별금지법(안)과 함께 상정되어 병합 심리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권리구제수단과 같은 동일한 범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장애인 대중의 치열한 현장투쟁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게 될 것이며, 한국 사회의 변화에 그 의미와 성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각주]
1) 이 법은 숙박시설, 식당, 주유소, 영화관, 스포츠 시설 등의 공공편의시설, 주정부 등의 공공기관 소유 시설 및 공공 교육시설에 있어 인종(race), 피부색(color), 종교(religion), 출신국가(national origin)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고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4가지 외에 성별(sex)을 포함한 5가지 사유를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그 집행을 위해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의 설치를 규정하였다.본문으로
2) 제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모든 사업, 활동, 서비스에 적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이들이 운영하는 공공교통(public transportation)에 대한 규정이다.본문으로
3) 제4장은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전화중계서비스 및 연방정부의 재정보조를 받는 공공서비스의 TV공고에 대한 자막처리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4) 제2장은 고용, 교육, 건축물 및 시실의 이용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권,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문화·예술, 체육, 사법·행정 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 성(性), 가족·가정·시설, 건강권, 폭력의 14개 절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5) 장추련은 출범 당시 한국장총과 장총련을 비롯한 58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였으며, 상임공동대표로는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변경택(열린네트워크 대표), 이예자(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 정광윤(장총련 회장), 주신기(한국장총 회장)가 선임되었다..본문으로
6) 어느 당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의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장추련 내부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장추련 내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장총련과 한국장총 쪽에서는 원안의 핵심적 요구사항이 어차피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가정 아래, 원내에 있는 장애인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장향숙, 한나라당 정화원)을 통해 발의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본문으로
7) 공권력은 국회 부근의 천막농성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10월 27일, 11월 2일, 11월 11일 3차례에 걸쳐 농성장을 침탈하였다.본문으로
8) 특히 사건 종료 처리된 총 94건 중 각하처분을 받은 경우가 6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기각이 17건을 차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각하처분은 진정의 내용이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진정의 내용이 거짓이거나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내려진다. 또한 기각은 위원회가 진정을 조사한 결과 진정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 조사대상 인권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등에 이루어지는데, 과연 이러한 80건의 차별 사례가 그냥 방치되어도 좋을 사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본문으로
9)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관계기관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본문으로
10) 미국 ADA의 경우에는 그 액수를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11) 노무현 정부가 제기했던 사회적차별금지법은 현재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고,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안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그대로 사회적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본문으로
12) 이러한 논란은 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총사퇴와 관련된 『프로메테우스』의 「사퇴는 기본, 당이 혁신되어야 한다」(10/31)에서는 "....단체와의 관계 재정립 문제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책임 없이 발의해준 법안은 처리가 묘연하고 당의 부담으로 남는 다는 설명이다....한 연구원은 "장애인 단체가 요구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 경우로 모든 문제를 인권위의 차별시정기구로 단일화하기로 했던 최초의 원칙이 무시된 경우"라면서..."라고 적고 있다. 또한 사회적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장 실질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인권단체들 내부에서도 일정한 이견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본문으로
13)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권은 자본주의적 임노동에 편입될 권리나, 그러한 임노동 관계 속에서 자신의 권익을 보장하고 지킬 수 있는 소위 노동 3권에 한정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이고 변혁적인 의미의 노동권은 자신의 노동 자체를 스스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며, 이렇게 해석한다면 장애인자립생활에서 이야기하는 하는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보다 한정된 의미로 취업/고용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본문으로
14) 물론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더욱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그리고 성적소수자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본문으로
언뜻 보면 현재의 투쟁은 장애인의 차별을 막아낼 수 있는 법률을 만들자는 매우 선명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투쟁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정부와 장애인 운동계 뿐만 아니라, 운동 사회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논란을 형성해 온 듯하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배경 및 과정과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고, 일정한 논쟁의 지점이 남아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과의 관계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의 의견의 정리해보고자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개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1990년 미국에서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 : 이하 ADA)을 하나의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에 강력히 전개되었던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1964년 시민권법(Civil Right Act of 1964)1)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이러한 민권운동의 흐름은 여성과 장애인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ADA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1964년 시민권법의 구조와 틀을 장애인 영역으로 확대 적용하여 제정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에서 ADA가 제정된 이후 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호주(1992), 영국(1995), 홍콩(1995), 독일(2000) 등 세계 각 국에서 유사한 형태의 장애인차별금법을 제정하게 된다.
미국 ADA의 경우 그 내용은 크게 TitleⅠ: 고용(employment), TitleⅡ: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2) , TitleⅢ: 민간운영 공공편의시설 및 서비스(public accommodation and services operated by private entities), TitleⅣ: 통신(tele-communication)3) 그리고 기타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Title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1장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가 지니고, 교통과 관련한 차별은 교통부(Dept. of Transportation)가 담당하는 등 각각의 영역에 대한 업무는 별도의 기구를 두지 않고 기존의 기구나 부서들이 담당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구조와 내용,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 시정 기구에 대해서는 각 국의 법률 체계 및 행정 시스템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예를 들어 영국이나 홍콩 등은 독자적인 차별시정 기구를 두고 있으며, 호주나 뉴질랜드는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역시 미국의 ADA와 외국 여러 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참조하여 그 안이 만들어지게 되지만, 나름의 독자성 역시 지니고 있다. 장추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이하 장차법(안)]은 크게 제1장 총칙, 제2장 차별금지, 제3장 여성장애인 및 장애아동, 제4장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제5장 손해배상과 입증책임, 제6장 벌칙의 총 6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장 차별금지와 관련된 영역이 총 14개 영역으로 매우 구체적이며 세분화4)되어 있고,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별도의 장을 마련하는 등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과정
한국사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2003년 4월 15일 한국장애인계를 양분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애인단체가 총망라된 장추련이 공식 출범5)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장추련의 출범 이전인 2001년부터 부산 지역의 열린네트워크는 국토순례와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시작하였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역시 법안마련을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장추련으로 모아지게 된 것이다.
장추련은 조직의 구성 이후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개최를 통한 의견 수렴과 함께,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장추련 법제정 위원회 내에 법안소위를 구성하여 2004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인 조문 구성 작업에 돌입하였으며, 5월 14일에는 처음으로 법안의 초안을 발표하고 공개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도 5대 차별영역(학벌,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의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후 보건복지부장관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안 마련을 위한 추진단(가칭)'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5월 25일에는 보건복지부의 주최로 용역 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5년에 접어들어 장추련은 실질적인 법안의 발의를 위한 정당 선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장추련의 법안을 원안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민주노동당을 통해 법안의 발의를 준비하게 된다.6) 그리고 법안 제정 운동에 있어 기본적인 실무력을 담보하기 위해 사무국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01년도부터 4년여 간 준비되어온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5년 9월 20일 정식으로 입법발의 되었고, 본격적인 입법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입법발의 전인 9월 14일 장추련은 국회에서 입법발의 기자회견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결의대회를 열고,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통한 법무부 소관법률로 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단지 장애인 관련 법률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 의안과에 의해 결국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되고 만다. 또한 정부는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청와대의 지침아래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작업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
이렇듯 국회와 정부 내에서도 법안의 제정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가운데, 장추련은 내부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나갈만한 어떠한 활동의 흐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해내기 위해 전장연(준)은 기존의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인계 내의 주요 연대체들과 인권·사회단체, 정당까지를 포괄해내는 장차법공투단을 제안·구성하고 마지막 현장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전장연(준) 출범식이 있던 10월 26일 장차법공투단은 국회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으며, 농성 돌입 후 보름 사이에만 세 차례에 걸친 농성장 침탈7)을 겪으면서도 현재까지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다. 또한 11월 9일에는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11월 22~23일에 걸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전동(前動) 거리 대행진'을 진행하는 한편, 수요 거리 문화제, 사이버 시위 등 다양한 대중 투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핵심 내용과 쟁점
(1)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장애인계의 장차법(안)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침해받은 권리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하여,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내 일개 부서가 아닌 국무총리산하의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는 법률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니 하지 말아야 함을 명시하는 법률이며, 차별이 제기되었을 때 이를 판정하고 시정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정과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애인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닌 상시적 인력과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2005년 3월말까지 3년 5개월 동안 제기된 장애인의 차별 진정 사건은 124건으로, 연평균 35건에 불과했다. 과연 480만 장애인 중 일 년에 차별을 경험하는 사례가 35건에 불과할까? 이는 같은 기간 종료 처리된 94건의 사건 중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입에 의한 합의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은 4건에 불과했으며, 9건의 권고 조치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해가 될 수 있다.8)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존의 기구가 장애인 차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며,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차별을 경험해도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존의 인력과 예산의 수준에서 모든 차별시정업무를 통합하겠다고 하고 있어, 결코 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차별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즉 장애인 차별시정을 위한 자문 격의 전문위원이 아닌 상시적 전문 인력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는 장차법이 또 하나의 선언문으로 남지 않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① 시정명령제도 및 이행강제금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떤 사안이 차별이라고 판명되더라도 이에 대해 합의나 조정, 권고까지만 할 수 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즉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진정서를 제출한 차별받은 사람은 아무런 사후보장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 쟁점이 되는 사안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9)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당성과 힘을 실어주는 효과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개인의 경우 아무런 강제성 없는 권고는 오히려 더 큰 피해만을 안겨 줄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이 기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진정을 하고 이에 대해 권고 조치가 내려진다 해도 기업주는 이를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며, 오히려 기업주의 눈 밖에 난 진정인은 다양한 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이후에 다른 이유를 핑계로 해고를 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차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조정을 거부하거나 권고를 수락하지 않은 경우, 다른 법률에 근거한 구체적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악의의 차별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보다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제도는 반사회적인 인권침해행위를 한 후 실제 손해액만을 보상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경우를 막고, 강한 제재로서 법적 실효성을 높임과 동시에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예방의 목적도 지니고 있다. 장차법(안)은 차별행위를 고의로 반복하여 행한 경우, 시정권고 또는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악의에 의한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고 있지 않은 제도라는 점과 현행 법체계를 고려하여 그 액수를 실제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로 한정10)하고 있으며, 정신적 손해배상은 500만 원 이상으로 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③ 입증책임의 전환
입증책임의 전환은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진정인이 제기하면,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거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가해자가 입증하여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전환은 미국이나 홍콩 등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1989. 4)시 "이 법과 관련된 분쟁 해결에서의 입증책임은 사업주가 부담 한다"는 입증책임의 전환 조항을 두고 있다.
권력 관계에 있어 약자의 위치에 있기 쉬운 장애인이 피해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물리적·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며, 특히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에는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입증책임의 전환은 실질적인 권리구제수단의 마련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의 의미와 사회적차별금지법11)
앞서 언급되었듯이 현재 노무현 정부는 단순히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자체를 중단하고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만'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기구(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만들 경우 소요될 예산과 인력의 문제, 그리고 장차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실현될 경우 발생할 정부와 기업의 부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운동사회 안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일정한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근거 때문이겠지만, 국가인권위위원회로의 차별시정업무 일원화가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통합적인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12)
먼저 확인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결코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도, 이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정부의 논리일 수 있지만, 이에 운동사회가 끌려갈 필요는 없다. 또한 장애인 집단에게 있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법률이 요구되고 존재했던 것은 비단 차별금지라는 영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새삼스럽지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해왔고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취업/고용권13) 영역에 있어서의 장애인고용촉진법, 이동권 영역에 있어서의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교육의 영역에 있어서의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존재해왔으며, 이러한 형태의 법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존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앞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선례가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러한 법률의 제정이 시민권(citizenship)운동이라는 배경 하에서 제정되었음을 언급하였다. 시민권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규정할 수 있지만, 근대 자본주의적 민족국가가 자신의 정당한 구성원(member)이라고 인정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여하는 실정법상의 기본권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마지막 집단중의 하나가 바로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14) 독자적인 차별금지법이 제기되어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취업/고용권, 이동권, 교육권 등 기간에 이루어졌던 장애인 대중 투쟁 자체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에 있어 세로축을 형성하는 운동이었다면, 현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또 다른 방향에서 가로축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주체들은 결코 이 법률이 장애인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그 결과 이상으로 투쟁의 과정에서 장애인 대중의 집단적 역능 증대라는 운동의 기본과제를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며, 이는 대중투쟁이라는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차별금지법이 그 어떤 단위에서도 대중적 투쟁을 이끌어 낼만한 실질적 이슈로서 형성되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제도적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결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 시안 속에는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과 관련된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전환 등이 모두 언급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는 장애인계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적 조건 속에서 장애인운동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투쟁을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는 보다 강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적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전술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 안에 위의 3가지 내용이 포함된다면, 운동사회는 이를 근거로 사회적차별금지법 내에도 이러한 조항이 포함되어야함을 실제로 보다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끝까지 거부한다 해도, 장차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회적차별금지법(안)과 함께 상정되어 병합 심리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권리구제수단과 같은 동일한 범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장애인 대중의 치열한 현장투쟁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게 될 것이며, 한국 사회의 변화에 그 의미와 성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각주]
1) 이 법은 숙박시설, 식당, 주유소, 영화관, 스포츠 시설 등의 공공편의시설, 주정부 등의 공공기관 소유 시설 및 공공 교육시설에 있어 인종(race), 피부색(color), 종교(religion), 출신국가(national origin)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고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4가지 외에 성별(sex)을 포함한 5가지 사유를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그 집행을 위해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의 설치를 규정하였다.본문으로
2) 제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모든 사업, 활동, 서비스에 적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이들이 운영하는 공공교통(public transportation)에 대한 규정이다.본문으로
3) 제4장은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전화중계서비스 및 연방정부의 재정보조를 받는 공공서비스의 TV공고에 대한 자막처리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4) 제2장은 고용, 교육, 건축물 및 시실의 이용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권,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문화·예술, 체육, 사법·행정 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 성(性), 가족·가정·시설, 건강권, 폭력의 14개 절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5) 장추련은 출범 당시 한국장총과 장총련을 비롯한 58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였으며, 상임공동대표로는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변경택(열린네트워크 대표), 이예자(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 정광윤(장총련 회장), 주신기(한국장총 회장)가 선임되었다..본문으로
6) 어느 당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의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장추련 내부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장추련 내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장총련과 한국장총 쪽에서는 원안의 핵심적 요구사항이 어차피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가정 아래, 원내에 있는 장애인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장향숙, 한나라당 정화원)을 통해 발의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본문으로
7) 공권력은 국회 부근의 천막농성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10월 27일, 11월 2일, 11월 11일 3차례에 걸쳐 농성장을 침탈하였다.본문으로
8) 특히 사건 종료 처리된 총 94건 중 각하처분을 받은 경우가 6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기각이 17건을 차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각하처분은 진정의 내용이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진정의 내용이 거짓이거나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내려진다. 또한 기각은 위원회가 진정을 조사한 결과 진정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 조사대상 인권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등에 이루어지는데, 과연 이러한 80건의 차별 사례가 그냥 방치되어도 좋을 사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본문으로
9)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관계기관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본문으로
10) 미국 ADA의 경우에는 그 액수를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11) 노무현 정부가 제기했던 사회적차별금지법은 현재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고,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안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그대로 사회적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본문으로
12) 이러한 논란은 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총사퇴와 관련된 『프로메테우스』의 「사퇴는 기본, 당이 혁신되어야 한다」(10/31)에서는 "....단체와의 관계 재정립 문제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책임 없이 발의해준 법안은 처리가 묘연하고 당의 부담으로 남는 다는 설명이다....한 연구원은 "장애인 단체가 요구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 경우로 모든 문제를 인권위의 차별시정기구로 단일화하기로 했던 최초의 원칙이 무시된 경우"라면서..."라고 적고 있다. 또한 사회적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장 실질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인권단체들 내부에서도 일정한 이견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본문으로
13)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권은 자본주의적 임노동에 편입될 권리나, 그러한 임노동 관계 속에서 자신의 권익을 보장하고 지킬 수 있는 소위 노동 3권에 한정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이고 변혁적인 의미의 노동권은 자신의 노동 자체를 스스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며, 이렇게 해석한다면 장애인자립생활에서 이야기하는 하는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보다 한정된 의미로 취업/고용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본문으로
14) 물론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더욱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그리고 성적소수자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