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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이 있는 곳에 해방을!

-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미니의 짧은 생각

미 니 | 팔레스타인해방연대 활동가
그동안 저도 『월간 사회운동』의 애독자라면 애독자였는데 이번에는 제가 글을 쓰게 되었네요. 이번 글은 제가 팔레스타인에 있으면서 느낀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연대 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입니다.

제가 겪은 점령 - 살피트에서의 하루

지난 주말에는 살피트라고 하는 곳이 갔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어느 군 단위쯤 되는 곳입니다. 먼저 저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칼리드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니 칼리드의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칼리드가 아버지는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하기 이전, 요르단 통치 아래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9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적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또 1차 인티파다1)때는 칼리드를 포함해 칼리드의 형제 1명과 아버지가 함께 감옥에 간 적도 있어서 집에 어머니와 자매들만 남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칼리드는 인티파다 이전에 2번, 인티파다 때 5번 총 7번 이스라엘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번은 어떤 재판이나 그런 것 없이 임의로 몇 달씩 갇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한 무슬림이 기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알 자지라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알 자지라를 보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하나가 방송되었습니다. 위 사진을 그냥 보시면 뭐 특별할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사진 위쪽을 보시면 그림이 보입니다. 모스크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스크 내부에는 기독교나 불교처럼 누군가를 상징하는 표식이나 이런 저런 장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그림의 정체는 점령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슬림들의 모스크를 몰수해서 유대인들의 그림 전시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위 사진 속의 무슬림은 모스크를 되찾기 위한 운동 차원에서 지금은 그림 전시장이 되어버린 곳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송 내용에는 모스크가 유대인 카페로 변한 곳도 있었고, 기독교인들의 교회도 빼앗기거나 파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 - 기독 - 이슬람 순으로 한 뿌리에서 태어난 종교이지만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지배 - 피지배가 갈리고 있습니다.
살피트 지역 주변에 진행 중인 장벽 공사

방송을 보고 나서 우리는 칼리드의 친구 아베드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장벽 공사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살피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 자체를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장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 드리면 제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서 있는 곳은 쇠막대기 울타리가 처져 있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진 가운데 세워져 있는 쇠막대기에는 앞으로 철조망이 처질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편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고 있습니다. 주로 이스라엘군이 군사용으로 사용하게 될 도로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땅이 보입니다. 아베드도 그렇고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장벽 너머에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갈 수 없게 되었고, 고스란히 이스라엘에게 빼앗겼습니다.
사진을 계속해서 보시면 집들이 쭈욱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체계적으로 빼앗기 위해 진행 중인 점령촌 확대 정책의 일부입니다. 많은 점령촌들이 이렇게 산꼭대기에 지어집니다. 그리고 산 아래쪽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구요. 점령촌 안에는 군대와 경찰은 물론 학교와 병원 같은 것들이 있어서 하나의 ‘점령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 점령촌의 이름은 ‘아리엘’입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아베드가 아리엘이 히브리어로 ‘신의 사자(lion)’라는 뜻이라고 해서 제가 ‘미친 사자’라고 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잠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군인들이 차를 타고 뾰로록 달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장벽 공사 현장은 물론 산 위에서 살피트 전역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군인이 여기서 뭘 하냐고 묻기에 그냥 구경하고 있다고 하니깐, 같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냐고 했고 저는 능숙한 거짓말로 통역을 해 주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무전기로 어디론가 연락을 해 보더니 그냥 돌아갔습니다.
장벽을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무클레아 사용법을 보고 배우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무클레아는 팔레스타인 관련 사진을 보면 자주 나오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인에 맞서 싸울 때 긴 끈을 이용해 돌을 던지는 도구입니다. 장벽 건설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곳에 가거나 하면 지금도 무클레아를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무클레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우리는 마을을 지나 맞은편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서는 순간 저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어느 곳을 가나 올리브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곳처럼 산과 산을 넘어 끊임없이 펼쳐진 ‘올리브 나라’는 처음 보았습니다. 칼리드가 올리브 나무가 몇 그루나 되는지 세어볼 수 있겠냐고 하더니 한국 사람들이 모두 여기로 와서 한꺼번에 세어보면 아마 셀 수 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나라.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진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올리브 나라가 이어집니다.


아베드도 자신의 올리브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에서 보이는 가운데 지역을 가리키며 거기는 다른 곳과 색깔이 다르니깐 잘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정말 그곳은 다른 곳과 색깔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물어보니 인티파다가 진행 중일 때 이스라엘군이 와서 불을 질렀고 그 다음에 다시 심은 거라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살피트는 그야 말로 올리브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올리브를 수확해서 어떻게 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농민들에게는 어떤 작물을 심고, 어떻게 팔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올리브의 판로를 막아 버려 농민들이 집에다 올리브를 쌓아 놓고 있는 지경입니다.
살피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와 농촌을 가 봐도 농민들이 애써 생산해 놓은 농산물을 팔지 못해 난리입니다. 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이동을 가로 막고는 팔레스타인 도시들에다 이스라엘산 농산물을 팔아먹기 때문입니다.

연대 운동을 위한 짧은 생각

팔레스타인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남북관계, 월드컵,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아주 친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반미 투쟁, 민주화 운동 등입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친하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눈초리 받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미국과 맞서 싸운다고 하면 잘하고 있다고 좋아합니다.

1) 진보운동의 진보

진보운동에는 국가와 민족의 차이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일 뿐 넘지 못할 장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진보운동이 자신의 사고와 활동 분야에서 국제주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국경을 넘어 연대한다는 것은 짬이 나면 한번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든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박

중동/아랍권의 많은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주된 관심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이들 국가의 지배층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미국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의 정치력이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바꾸는데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아랍권의 강국인 이집트가 서서히 민주화 되고 이집트 민중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더욱 강하게 하고 나선다면 이스라엘에겐 압박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2005년에만도 25억 달러 가량을 이스라엘에 지원했습니다. 이 액수의 대부분은 군사 지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미국과 EU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해 놓고 있으며, 정치·군사적으로 열세인 하마스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의 생존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만 줄여도 팔레스타인 해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중동 지역도 마찬가지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진보운동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만약 EU가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군사독재 정권으로 지목한다면 이스라엘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대지 않을까요?

3) 경제적 고립 : 투자 중단, 불매운동, 경제제재

지난 05년 12월16일 노르웨이의 한 지역의회가 이스라엘 상품에 대해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요구하는 발의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소르 트론데라그(Sor-Trondelag)는 27만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군(郡)에 불과하지만,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불매운동을 벌인 경험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른 예로는 버마 군사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활동가들이 버마에 대한 투자 철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제적 수단으로 지배 체제를 흔들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은 이스라엘로부터 군사 장비를 수입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부수는데 ‘DAEWOO(대우)' 상표가 커다랗게 붙어 있는 불도저가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명백한 점령 국가이고 독재 국가입니다. 국제 경제 분야에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팔레스타인과는 연대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국제 사회가 연대해서 이스라엘을 경제제재 해야 합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하는 상품을 교류하는 것도 연대의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경제적 자립은 정치적 자주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팔레스타인 농민연대 사무실에서 농민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4) 정보 전쟁과 대안 정보의 소통

우리가 보는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와 종교, 학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나오는 정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4번의 중동전쟁을 표현하면서 ‘아랍 연합군의 침공에 맞서 전 세계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몰려가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아랍인들은 모두 도망갔다’ 식입니다. 또 아니면 ‘부지런하고 똑똑한 유대인들은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왔다, 세계에서 유명한 인사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얼마나 많으냐,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 그리고 강력한 무력 때문입니다. 아랍군이 도망갔던 것은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싸울 의지가 별로 없거나 무력이 약해서이고,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인들이 떠났던 것은 죽이려고 하니 살려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짜로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비옥한 농토를 지금도 빼앗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바꿉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서 정확한 사실과 진보적인 시각의 정보가 보다 생산되고 소통될 필요가 있습니다.

5) 현장성과 연대 운동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현장에서 느껴보면 상황을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조직이라도 준비가 된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직접 활동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만난 한 조직은 3개월씩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과제를 가지고 연대 운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겐 토지 몰수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금 한국 정부가 평택에서 시도하고 있는 토지 몰수 사례를 얘기하면 깜짝 놀라면서 한국에서도 그러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한국의 농민도, 팔레스타인의 농민도 정도는 달라도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희생당하고 있으며 이것이 연대의 주요한 뿌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여성, 노동, 인권 등 각 분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정리한 짧은 생각입니다. 처음엔 간단한 역사 해설도 붙였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지웠습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신 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연대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http://www.pal.or.kr)을 방문해 주십시오. 하루하루 더욱 건강하고 진보하시는 날들 되시길 바라며 미니는 이만 물러갑니다.

1)
[편집자 주] 봉기?반란?각성 등을 뜻하는 아랍어로서 그 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이 국제연합의 일방적인 국경선 획정과 이스라엘 통치에 저항하여 일으킨 봉기를 의미한다.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군의 지프차에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폭압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불만이 봉기로 폭발한 점령지 내부의 최초의 대중운동으로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지속되었다. 1차 인티파다를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가 국제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그 이후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군대의 무자비한 검문과 점령지 통제는 중단되지 않았고 2000년 9월 이스라엘 야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동예루살렘을 방문한 데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을 이스라엘 군대가 진압한 사건을 계기로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무차별적인 자살폭탄 공격을 ‘테러’로 규정하고 그 몇 배의 화력을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공습과 봉쇄를 유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은 결국 올해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그동안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해 의존적이었던 집권 파타당의 패배와,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과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대중적 기반이 튼튼한 하마스의 승리로 귀결된다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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