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스크린쿼터, 그리고 문화운동
<사회자>
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토론자>
박문칠 | 독립영화인
박주영 | 영화 <태풍태양> 프로듀서
이지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장
하주영 | 공동체라디오 연구모임 씨알
<일시> 2006년 3월 23일 7시 30분
<장소> 사회진보연대 사무실
<정리> 신진선, 장진범
사회자: 지난 3월 7일 국무회의가 스크린쿼터 축소를 골자로 한 영화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써 대통령 재가라는 형식적 절차만 남아 있을 뿐, 스크린쿼터는 사실상 축소된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 변화를 강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운동의 목표를 스크린쿼터 원상회복으로 변경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목표와 과제를 제시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운동 의제를 재설정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 투쟁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일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오늘 회원쟁점토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영화의 변화 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자: 스크린쿼터 투쟁 과정에서 제기된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한국영화의 현 주소입니다. 한편에서는 한국영화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거나 또는 갖추기 위해서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편에서는 아직 한국영화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한국영화의 현실을 우선적인 토론의 쟁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까 80년대 중후반 UIP 직배와 대기업의 영화시장 진출 등을 계기로 발생한 변화를 한국영화의 산업화라고 규정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다가 99년 「쉬리」, 00년 「JSA」, 01년 「친구」로 이어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성공을 거치면서 한국영화산업의 ‘선순환구조’가 정착됐다고 보구요. 이런 변화 자체는 하나의 사실관계일 텐데, 이 같은 변화 과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는 쟁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논의를 시작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준영: 영화를 공부하신 분들께서 먼저 얘기를 해 주시면 좋겠지만, 아무도 얘기를 하지 않으시니 말을 여는 차원에서 주신 글을 보고 몇 가지 느낀 점을 말해 보겠습니다. 주신 글에 보면 한국영화산업의 선순환구조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부 쪽에서 스크린쿼터를 줄이거나 시장이 개방되어도 한국영화산업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구조가 형성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영화산업은 배급에 종속된 산업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유통이 이윤 발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90년대 들어서 나타난 이른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90년대 초반 스크린쿼터 감시단의 기여가 있었다고 보구요.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90년대 후반 들어서 이른바 멀티플렉스가 생겨나는 등 배급망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처럼 스크린쿼터와 배급망의 확대가 결합되면서 한국영화의 제작 조건이 개선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헐리우드 자본이 기본적으로 배급이나 유통의 문제인 스크린쿼터 문제를 치고 들어오는 것은 그만큼 배급 문제가 핵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한국영화의 제작환경은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크린쿼터가 있었기 때문에 제작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는 기본적으로 매우 상업적인 차원의 질서입니다. 저는 누가 스크린쿼터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독점방지제도다, 헐리우드 독점 방지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나중에 문화다양성 얘기를 할 텐데, 물론 상업영화 안에서 부분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문화다양성을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독립영화 예술영화 문제와 관련된 문화다양성은 사실 스크린쿼터와 크게 연관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주류 질서에 속하는 영화들의 유통 문제들을 억지로 스크린쿼터 문제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CJ의 독과점을 해결하는 방안, 스크린쿼터에 대해 고민하는 방안, 혹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유통 방안, 이런 식으로 쿼터 문제는 쿼터 문제, 다른 문제는 다른 문제로 보는 게 좋겠다는 것입니다.
박주영: 돌이켜 보면 예전에는 영화제작에서 극장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규모도 하나의 극장에서 하나의 영화를 개봉하는 수준이었죠. 그러다가 90년대 초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큰 영화들을 만들어 「쉬리」와 같은 블록버스터가 출현하는 데까지 오죠. 이 대기업들은 IMF 들어오면서, 수입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압력 때문에 다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창투사와 같은 다양한 펀드들이 생겨나 충무로에 한때 큰 붐이 일었는데, 그 펀드들이 대거 망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대자본이 들어오지요. CJ, 오리온, 롯데 등이 극장사업을 끼고, 제작부터 케이블TV에 이르는 소위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충무로 토착자본의 대표 격이었던 시네마서비스도 CJ에 인수되지요.
이 같은 산업화 과정에서 영화인들이 주로 경계했던 부분은 대기업이나 대자본은 언제나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은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윤창출이 없으면 떠나는 게 기본 논리입니다. 물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 안 본다는 풍토에서 요즘은 한국영화를 더 먼저 본다는 식으로 바뀌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호는 그 시기의 유행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잘 나갈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수지타산이 안 맞게 되면 자본이 좍 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영화를 일으킬 수 있는 지반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가상시나리오가 아니고, 외국에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렇듯 산업화가 되서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몇 개의 대기업에 장악되어 있고 또 자본이 언제 어떻게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뿌리가 얕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없으면 소수 문화는 언제든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지연: 저는 보통 얘기하는 것처럼 지금 한국영화가 경쟁력이 있느냐 없느냐 를 기준으로 스크린쿼터 얘기를 하는 것은 스크린쿼터 혹은 한국영화 자체가 갖는 근본적 문제점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현재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대책위가 있고 그 안에 독립영화 쪽 분들이 있는데, 독립영화 쪽에서는 영화인대책위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스크린쿼터가 존속되든 폐지되든 우리랑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스크린쿼터 문제에 관해 영화인들 안에서도 왜 이렇게 상반된 이야기가 나오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점을 지적하자면, 우선 현재 배급/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들인데, CJ가 드림웍스와 지분을 나누고 있는 데서 상징되듯 이들은 전통적 의미에서 ‘민족자본’이 아닙니다. 또한 이들은 현재 배급/유통망 뿐만 아니라 투자도 독점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들이 영화산업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기업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할 것이고, 이때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영화 자체가 아니라 문화상품일 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스크린쿼터가 문화상품화 경향을 제대로 제어했다든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 한국영화가 무엇인가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예컨대 「박하사탕」이 한국영화라고 하는데, 이 영화에는 한국자본 뿐만 아니라 일본자본이 투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한국영화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한국영화를 한국 사람들이 제작하는 영화에만 한정한다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더라도 지속적으로 지금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주영: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대로 이미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의 제작투자유통 시스템 전체가 대기업에게 장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하여 영화진흥위원회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이들 역시 그런 상황을 우려하더군요. 한편으로 거대 자본이 투자/제작/유통에 이르는 영화전반을 장악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투자 과정에서 대기업 자본들이 계속 들어올 것인가 선순환 구조가 유지될 것인가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제시하면서, 투자 면에서는 영화산업 구조 자체가 투자 이후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산업적 대안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식의 논의를 펼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라면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닌 상품화 논리를 문제삼고, 한미FTA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최소한의 독립영화 기반시설이나 공공적 시설에 공격받는 측면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즉 한국영화의 산업적 측면 이외에, 운동과 연관되었던 영역, 공공성의 영역의 축소를 이야기하고, 의제와 내용의 다양성들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사회자: 주로 한국영화 산업 구조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관련해서 최근 MK픽쳐스와 IHQ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작사들이 작년을 거치면서 주식시장에 대거 상장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 얘기를 드리는 것은, 설사 스크린쿼터가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제작사의 성격이 바뀌면 스크린쿼터의 성격도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인터뷰를 보면 그 회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1년에 전보다 많은 편수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소위 뜰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스크린쿼터가 흔히 표방하는 문화다양성과는 전혀 상반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주영: 현재의 상장열풍에는 몇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대형 매니지먼트사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인데 이는 약간 다른 차원에서 논해야 할 것 같구요. 그 외로 명필름이나 사이더스 등은 배급을 천명하면서 주식상장을 하는 식인데, 이것은 제작사의 자구책 차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제작사들이 1년에 1편 만들기가 힘들고 경상비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안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상장 등을 통해 산업적 기반을 확보해 배급/투자 수익, 배급대행료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사실 제작사의 입장으로 봤을 때 상장은 매우 부러운 일이고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안정적 구조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어쨌든 이것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산업화와는 얼마간 다른 궤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문칠: 발생배경이나 추동력은 구분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로부터 초래되는 결과는 둘다 우려스럽습니다. 아까도 산업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왔는데, 산업화가 된다는 것은 결국 산업적 합리성이 도입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냥 호기로운 극장주가 영화를 만드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지표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된다는 얘기지요. 이는 결국 금융적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요건을 갖췄다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J 흐름과 MK 흐름을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둘다 합리화를 통해 금융자본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게임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제작자본들이 한꺼번에 유상증자 등을 통해 당장은 안정된 자본을 모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과연 앞으로 주가관리를 어떻게 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상장이 되어 주식회사가 된다면, 어떤 기업이나 그렇듯이 부실한 부분은 정리하고 이익 남는 것은 남기는 식으로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갈수록 들어오는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요. 아까 대기업 자본 얘기하면서 자본의 철수 문제가 많이 나왔는데, 물론 이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화의 성격이 변화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적 합리성의 도입이 돈나오는 영화 등으로 영화의 성격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점이 저로서는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스크린쿼터 폐지의 진정한 노림수는 무엇인가?
사회자: 산업화 또는 그런 식의 자본유치 과정이 궁극적으로 영화에서 블록버스터나 오락적 측면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시군요. 토론자들의 의견을 간단히 종합해 보면, 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변화는, 전반적으로 대기업 자본이 됐든 다른 자본이 됐든 흔히 금융화라고 표현하는 그런 질서에 맞춰 가는 식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논의는 이 정도로 마무리짓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 보지요. 이번에 얘기해 보려 하는 주제는 스크린쿼터 폐지의 진정한 노림수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도 살펴본 것처럼, 영화산업의 경우, 스크린쿼터 폐지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금융세계화에 맞게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국내 영화에 대한 투자의 자유는 완전히 자유화된 셈입니다. 또한 영화는 특정 지역 정서에 맞게 만드는 것이 더 상품성이 있다는 연구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영화를 만드는 국내제작사에 투자하여 충분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는 한에서, 초민족자본이 스크린쿼터를 선호하는 상황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같은 얘기지만, 스크린쿼터를 유지한다고 해서 한국영화가 헐리우드 또는 차라리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산업의 ‘글로벌 스탠다드’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스크린쿼터 폐지를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를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서라고만 설명하면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노림수가 있을 수 있는지 의견을 나눠봤으면 합니다.
최준영: 스크린쿼터 관련 토론을 하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국 스크린쿼터의 상징성입니다. 스크린쿼터와 같은 예외적인 제도들을 깨 나감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인도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으로의 진출을 보다 원활히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청각 미디어 분야 전반의 개방이라는 문제입니다. 시청각 미디어 분야라고 하면 영화․방송․통신으로, 이 세 분야는 상당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는데, 이 세 분야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현재 영화는 꺾인 셈이고. 통신의 경우 미국-호주 FTA에서 주된 쟁점이 되어 결국 개방이 된 분야인데, 이는 한미FTA에서도 주된 쟁점이거니와 얼마 전 정보통신장관이 통신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 라고 해서 자발적 자유화 조치를 이미 천명한 바 있습니다. 또 하나가 방송입니다. 현재 방송의 경우 언론사-방송사 겸업 금지 조항 등 겸업 금지 조항, 49% 소유지분 제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만이 방송국/통신사를 가질 수 있다는 국정 조항, 그리고 방송쿼터 등 규제조항이 있는데, 이를 없애고 초민족자본이 들어오겠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 한미FTA저지 시청각 미디어 공대위 토론회 발제문을 봤는데, 한국에서는 한미FTA의 중요한 쟁점이 될 방송시장이나 통신시장 개방과 관련해서 아직까지 별 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큰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규제 조항들이 폐지되고 방송시장이 해외자본에 장악될 때 어떤 문제가 생겨날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어떤 컨텐츠로 방송이 만들어지고, 그런 컨텐츠로 인해 생기는 여론 등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뉴미디어와 관련해서 문제가 좀더 복잡해집니다. 사실 지금 통신시장의 경우에는 핸드폰 컨텐츠를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렇게 통신시장이 재편되면 영상산업 및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SK 텔레콤과 KT 등 통신회사가 영화산업에서 새로운 거대 투자자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주영: 통신시장이나 방송시장보다 영화시장이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아마도 앞의 두 영역보다 영화 쪽이 안정적 자본 확보 면에서 훨씬 취약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으로 방송 통신 쪽에서 FTA 문제와 관련하여 감이 떨어지는 것은, 훨씬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한미FTA나 문화시장개방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면, 이곳 역시 영화산업과 비슷한 전철을 밟으리라고 예상됩니다.
이와 함께 한미FTA 협상 전반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의도도 있겠지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미FTA를 체결하려고 하는데, 관련하여 방해가 될 수 있는 몇 가지를 미리 처리해 버렸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점 때문에 현재의 스크린쿼터 논의는 90년대 있었던 스크린쿼터 논의와 달라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와 지금이 자본의 흐름 면에서도 다르겠지만, 지금처럼 한미FTA와 같은 더 큰 흐름과 연결해서 얘기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같은 상황은 스크린쿼터 논의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자료를 보면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극장에서 버는 수입보다는 다른 수입원이 오히려 더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방송이나 케이블 TV와 같은 다른 윈도우를 통한 부가수입이더군요. 이렇게 보면 헐리우드 자본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방송시장의 개방이 중요할 테고, 스크린쿼터 폐지는 이를 위한 지렛대로 삼았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주영: 그게 꼭 그렇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다양한 윈도우가 중요한 수입원이 되는 것은 사실이고, 컨텐츠의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는 있겠는데, 방송의 영상물 시장은 각 영역별로 메커니즘이나 자본의 지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스크린쿼터 투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회자: 이상에서 한국영화산업의 구조 및 스크린쿼터 폐지에 담긴 노림수를 가늠해 보았는데, 이에 따라 지금까지 스크린쿼터 투쟁이 진행되면서 나왔던 여러 가지 입장들을 평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첫 번째는 영화인대책위를 중심으로 투쟁하면서 구사된 슬로건이나 담론, 입장 등이 있겠구요. 두 번째는 영화노동자들이나 독립․예술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투쟁에 참여하면서도 기존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할 때 주류 영화계 쪽에서 내놓은 입장, 특히 영화계의 ‘자정능력’이라는 입장을 평가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주류영화인들의 의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앞서 살펴본 영화산업의 구조에 비추어 그 현실성을 판단하는 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영화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전국영화산업노조가 생기고 또 독립․예술영화인들이 마이너쿼터 등을 비롯한 새로운 목소리들을 내놓았는데, 아직 이런 흐름들은 평가의 대상으로 올리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관련해서 몇 가지 의견을 나눠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스크린쿼터 사수라는 입장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주영: 쿼터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를 분석한 자료를 봤는데. 스크린쿼터가 줄어들면 이로부터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난다고 얘기하더군요.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실질적으로 산업 자체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스크린쿼터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파장들에 더 주목합니다. 영화산업 자체가 축소되는 것도 하나의 파장일 테구요. 하지만 그보다는 초반에 얘기한 것처럼 의제나 내용들의 실질적 다양성이 축소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기존 제도를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공적인 것,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연: 흔히 스크린쿼터 사수를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제작편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인데,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HD 카메라가 들어오는 등 영화기술이 발달하면서 영화생산가가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또 현재 한국영화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경우 배급은 물론 제작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를 쉽게 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영상산업의 경우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이 만드는 영상물들이 더 잘 소비되고 따라서 더 많은 이윤창출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지금 헐리우드 영화보다 한국영화가 흥행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닌 셈입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스크린쿼터가 보호한다는 한국영화가 무엇인지도 의문입니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한국의 자본이 조금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그것은 한국영화로 분류됩니다. 그러므로 스크린쿼터가 있더라도 그것은 초민족자본의 한국영화 지배를 전혀 제어할 수 없습니다. 또 영화의 성격 면에서 보더라도, 한국영화와 헐리우드 영화는 별로 다른 게 없습니다. 독립영화/저예산영화, 문화다양성과 관련해서도 스크린쿼터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박주영: 그런데 그렇게 헐리우드 영화나 한국영화나 진배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헐리우드와 한국영화가 다를 바가 없고, 그러니 굳이 스크린쿼터를 지킬 필요가 있느냐고 말씀하신다면 말입니다.
사실 이건 저 스스로 드는 의문이긴 한데요. 최근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보니까 내용이 정말 좋은 거예요. 상업영화 판이라고 해서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업영화들 안에서도 완성도 있고 예술적인 작품이 있을 수 있고 저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정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컨대 코미디 영화를 찍더라도 프랑스/헐리우드 코미디와 우리 영화의 정서는 다릅니다. 상업영화 안에서도 각자의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스크린쿼터가 있어줘야 되는 건 자본 안에서도 나름의 룰이 있어야 하는데 스크린쿼터 폐지는 그 룰마저 대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거 스크린쿼터를 폐지한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자국영화산업이 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나라 영화산업도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감수성에 맞춘 영상물들이 더 잘 소비된다는 점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선례들이 두려울 정도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산업의 키를 자본과 배급이 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배급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저는 이들이 영화를 생산물로 이윤을 만드는 사업가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산업적 논리로 생각하면 이윤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게 맞거든요. 배급 입장에서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해서 자극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영화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건 대부분의 관객들도 마찬가지구요. 또 HD가 제작비를 낮춘다고 하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같은 경우 HD로 찍었음에도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작비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박문칠: 저는 스크린쿼터가 사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지만 자국영화산업 자체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도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당장 영화산업이 망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영화계에서 말하듯 쇠퇴기를 위해서 쿼터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흔히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영화산업이 존재해야만 그 토양 위에서 다른 종류의 영화들도 자라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그렇고, 좀더 세부적으로 보자면요. 저는 영화산업 내에서 다양한 시도가 일어난다거나, 독립과 상업을 오가는 흐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자본이 가장 노하우가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제의식과 별개로 말입니다. 기존 영화산업 안에서 그런 만듦새가 나오면 그것이 독립영화로 환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은 모르는 부분이고 그래서 아주 비현실적인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지금 생각엔 영화산업의 보호 역시 필요하고 이것이 독립영화 차원과 연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연: 제가 핵심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을 중심에 놓는 식의 논리에 반대한다는 점입니다. 스크린쿼터 사수, 그리고 앞으로는 원상복귀가 아니라,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화시장개방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화시장개방이라는 전반적인 맥락에서 볼 때 영화 자체는 큰 중요성이 없습니다. 영화는 이미 해외자본에 다 개방되어 있는 상황이고, 문화다양성도 지금의 스크린쿼터로는 별로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정확한 방향으로 가려면 문화시장개방반대와 한미FTA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스크린쿼터 자체가 현재 한국영화산업에 대해 미치는 영향보다는, 한미FTA나 문화시장개방 등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지위 때문에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시장개방이나 한미FTA 반대 식으로 가야만 스크린쿼터 문제가 다뤄질 수 있다. 이와 함께 기존 한국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지키자는 식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함께 얘기하는 식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지금 문화다양성 문제가 나왔는데, 이 문제를 한번 얘기해 보지요.
최준영: 문화다양성은 단순한 다양성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다양성들 간의 민주적 소통, 그리고 저는 특히 거기에 퍼블릭(공공성)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스크린쿼터 시위할 때 영화배우들이 문화다양성을 지켜주십시오 라고 한 것은 좀 어폐가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문화다양성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폄하하는 것보다는, 영화인들이 문화다양성 수호를 얘기하려면 이러이러한 부분이 들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문화다양성 개념을 매개로 한 논쟁을 하고 적극적 해석을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주영: 사실 문화다양성은 그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곳에서조차 논란이 참 많은 개념입니다. 게다가 지금 영화배우들이 말하는 문화다양성이 추상적이고 냉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 자체가 문화다양성을 구현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외국 같은 경우는, 물론 거기에도 우리나라 CGV 같은 상영관이 있을 것입니다만, 동시에 굉장히 공공적이면서 전문적인 상영관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런 인프라가 있다면 문화적 다양성을 얘기할 때 훨씬 사회적 여론화가 쉽겠지만, 현재와 같이 다양성의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개념으로만 주장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주영: 많은 분들이 문화다양성 개념이 어렵다고 하시고, 또 배우들이 문화 다양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럴려면 문화다양성 개념이 좀더 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배우들이 말하는 다양성은 헐리우드 영화와 다른 영화를 찍는다는 것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와 선을 그으면서 독립영화상영관 등 국내 인프라의 부족과 그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식으로 강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준영: 아까 제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다만 저는 문화다양성을 수호하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사수하자는 입장이 궁색하다는 점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일단 스크린쿼터 사수와 문화다양성은 등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당신들이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 사수만이 아니라 최소한 이러이러한 부분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스타들의 개런티 올라가고 이익을 얻는 만큼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노력했느냐고 물으면서 영화인들의 반성 및 그에 걸맞는 대안을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지연: 저는 지금 말하는 문화다양성이 대개 문화상품의 다양성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품의 다양성과 문화의 다양성은 다를뿐더러, 양자를 뒤섞어 버리면 결국 자국산업보호론, 우리나라 영화를 보게 해 달라는 수준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주영: 많은 분들이 문화다양성은 문화상품의 다양성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면서 말하자면 예술영화 쿼터나, 독립영화를 키우자는 그런 얘기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예술/상업영화의 구분은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이 부분이 가장 헷갈립니다. 자본을 끌어들이면 내용에 상관없이 상업영화고 그와 무관하게 자신의 뜻대로 만들면 예술영화인가 하는 고민이 듭니다. 독립영화 쪽에서 그 선을 어디에 긋는지 궁금합니다.
사회자: 이건 세 번째 쟁점하고도 관련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함께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주영: 이건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사실 영화운동의 경우도 80년대 시작되어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지만 지금 이른바 독립영화들을 보면 이게 독립영화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컨텐츠로 구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상업적인 시스템이 아닌 그런 것이 독립영화인지 그 규정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일단 예술영화는 논외로 치고 보자면, 독립영화는 주로 상업영화의 컨텐츠나 재생산 논리 등에 대한 반정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 문화다양성 얘기를 했지만, 이런 논리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이건 영화운동이나 미디어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온 담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문화다양성이란 가장 순수하게 생각하자면 인종/계급/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여러 가지 다양성일 테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독립영화운동이나 이것이 영상에 한정되지 않는 미디어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쓰인 것은 법제도화 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저예산영화에 투자/지원하는 제도적 틀이 생겨나면서, 이런 제도영역에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다양성, 민주성, 참여성 등의 논리들이 개발된 것이 사실입니다. 즉 문화다양성이 한편에서 상품의 다양성, 기호에 맞춰서 보다 많은 것들을 맛볼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라면, 다른 편에서는 사회인프라의 제도화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두 가지를 이어서 얘기했는데, 어쨌든 독립영화진영의 경우 기존 산업영역에 반정립하는 것은 있지만, 그 이상의 논리 개발 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연: 영화와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처음 얘기한 것처럼 영화산업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것은 영화 배급망이고, 영화의 최종 목적이 실제로 영화가 걸리는 것이라고 할 때, 영화에서 문화다양성은 배급으로부터 배제되는 독립영화/예술영화에게 배급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문칠: 저도 지금 상황에서 스크린쿼터 사수만을 외치기에는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역시도 다양성의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보충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을 함께 주장했을 때 힘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투쟁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예컨대 10년 전부터 계속 외친 독립영화전용관부터 해서 많이 있다고 보는데, 주류영화계에서 이런 것을 흡수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왜 안 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아까 예술영화가 무엇이냐 하는 쟁점이 있었는데, 이는 영원히 애매모호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게 돈이나 의도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결국 작품에 대해 사후적으로 내려지는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립영화 문제는 좀 다를 것 같은데, 이들의 경우 존재양태나 제작방식이나 유통구조 면에서의 불리함/소수성 등 규정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활로를 트자는 차원에서 전용관이나 쿼터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현재의 상업적/획일적 구도 하에서 상영의 기회가 적은 영화들에게 활로를 터 주는 것이 문화다양성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논의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문화다양성 담론의 경우 영화인들이 문화다양성이 가능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나 현실적으로 해온 일과 관련해서 보자면 괴리되는 부분이 많다, 문화다양성은 문화상품의 다양성을 포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한되지는 않을 텐데 양자의 구별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상품화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배급이 됐든 상영관이 됐든 공적인 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이 그런 담론을 쓰는 것을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공세적으로 문화다양성을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이 개념을 확장/심화해 가자는 의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핵심이 무엇이냐가 논점일 텐데, 이 자리에서 이 문제가 아주 상세하게 얘기되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과제라는 점은 분명히 한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쟁점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잠깐 얘기했습니다만 독립영화전용관이라든지 스탭 처우 개선이라든지 이런 얘기가 옛날부터 나왔는데도 이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이 현재 스크린쿼터 투쟁과 관련한 불신의 뿌리가 되고 있는데, 이에 관해 문제제기가 나오면 대답으로 영화계의 자정능력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주영: 얼마 전 감독과 배우가 개런티 문제로 충돌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작자 쪽에서 배우 곧 매니지먼트사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가져간다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죠. 그런데 이 사태를 보면서 실제로 한국영화를 지배하는 것이 투자사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요새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스타를 데려오는 것이, 이걸 투자사에서 요구하고 또 스타들의 서열이 투자사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거든요. 매니지먼트사가 큰 것도 투자사 때문이고,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가 싸우는 것도 실은 제작사가 투자사를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티켓파워가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받는데, 이런 걸 보면 영화 한편에 400만원 받는 스탭들은 참 허무하지요. 이 판을 투자자가 관리하고 있고 정형화되어 있는데, 이런 시스템 전체를 바꾸지 않는 한 자정능력이나 스텝 처우 개선은 떡고물 주는 것 이상을 얘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개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선의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최준영: 소위 자정능력에 대해서는 스크린쿼터 투쟁이 처음 벌어질 때 인터넷에 달린 리플이 가장 솔직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으로 평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도 부정적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산업 내부에서 앞서 지적한 독점적인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 이런 점을 보더라도 사실상 영화계라고 통칭할 수 있는 덩어리 그 자체에서 자정능력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사회자: 현실적으로 투자자의 권력이 강한 상황에서, 영화계 내부의 변화는 상당히 제약이 있다는 의견이신 것 같습니다. 투자자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이 금융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노동의 불안정화를 동반하지요. 그 점에서 볼 때 한 가지를 짚고 싶은데, 앞서 말한 것처럼 몇몇 제작사들이 상장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자본을 유치하고 배급망을 확보함으로써 이 같은 상태를 개선해 보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박문칠: 그런 열망이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빚을 져 가면서 영화를 만들겠지요. 그렇지만 개인에게 그런 열망이 있는 것과, 판 자체가 점점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판으로 굴러간다는 점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지연: 제작사들이 결국 기대는 것은 투자자들일 텐데, 이들은 문화의 다양성이나 영화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결국 말 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주영: 현재 영화산업의 구조를 감안해 보면 저런 식으로 진행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독립/예술영화의 배급망을 마련하려면, 미디어센터, 도서관, 공공문화시설에 대한 법들을 제정하고 그에 기초해서 전용관을 만드는 게 차라리 빠른 시도일 것입니다.
최준영: 영화산업노조도 만들어지는 과정이 길었는데, 이게 자정능력이라는 주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건 단적인 예인데, 처음 스크린쿼터 투쟁 터졌을 때 기자회견 자리를 가 보면 말하자면 유명한 배우들이 앞에 앉고 노조는 발언도 없을뿐더러 구석으로 몰리더군요.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노조의 투쟁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앞서 독립/예술영화 문제는 좀 다룬 것 같구요, 방금 전국영화산업노조 얘기가 나왔는데 이 부분을 좀더 얘기해 보기로 하죠.
이지연: 영화산업노조의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에 비해 현실적으로 이들이 가진 힘은 너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작자 대표랑 감독 대표 노조 대표가 모여 공청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영화산업노조 측의 활동이라든가 현장 스탭들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해도 발언을 계속 삼가더군요. 발언을 바깥으로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박주영: 노조의 경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우선 대화의 창구가 불명확합니다. 노조니까 회사의 대표와 얘기해야 하는데, 배급하고 상장하는 회사는 모르겠지만 군소영화사들은 힘이 없습니다. 실권을 지닌 투자자들은 노조를 만나지 않고, 제작자들은 노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게다가 한국영화 제작시스템도 문제입니다. 사실 미국의 독립영화 시스템이 한국영화 메이져 영화사의 시스템이 된 것인데, 이것은 작품마다 감독 일개인을 중심으로 모였다 헤쳤다 하는 비정규직 구조이기 때문에 응집력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또 영화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도제적 관습도 문제입니다. 나는 곧 연출,촬영,조명, 미술 등 각 파트의 감독이 될 것인데 내가 현재 막내라고 해서 왜 지금의 처지를 대변하려 하느냐 는 식의 정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박문칠: 어차피 노조 쪽에서 요구하는 표준계약이 성립하더라도 결국 작품당으로 계약이 이뤄질 텐데, 현재 작품당 수익률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스타 얼마 주고 하면 쪼갤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혹시 요새 상장한 영화사들이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춰서 이 영화사에서 하는 모든 작품에 참여하는 식으로 전속계약을 하고 연봉/월급제가 성립한다면 모르겠는데, 사실 이런 시스템은 헐리우드에서도 황금기에나 있었던 데다가, 한국영화의 경우 시장도 협소하고 해서 이런 규모를 갖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스크린쿼터가 사실상 축소된 지금,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사회자: 그럼 이제 마지막 쟁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어쨌든 스크린쿼터가 사실상 축소가 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데, 앞서 논의를 하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든 것이지만 영화산업 또는 ‘문화산업’이라는 문제설정을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고민을 더 진전시키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문화의 상품화를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검토해 보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함께 토론해 봤으면 합니다.
하주영: 관련해서 공동체 라디오 운동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운동은 해외에서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기술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특히 남미 등에서 공동체들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사실 세계에서 공동체의 교통을 위해 라디오를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 바로 남미 지역이었습니다. 중남미에서는 1940년대, 다양한 전자미디어들이 보급되기 이미 30년 전에, 가난한 농부들(campesinos)이나 탄광 노동자들의 공동체가 국가 독점 미디어에 도전하고, 최초로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소유하기 위한 공동체 라디오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70년대 군부독재 시기에 저항의 매체로서 폭넓게 확산되었습니다. 대부분 FM이고, 지역의 언어, 문화, 필요성에 맞춰 어떠한 소규모 나라에서도 수백 여 개의 방송국이 존재하였습니다. 최근의 사례로는 베네수엘라를 들 수 있는데요, 베네수엘라의 대안 미디어, 공동체 미디어 또한, 지난 2년여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5개에 불과했던 베네수엘라의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은 지난 2년간 80여 개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2002년 4월의 반 차베스 쿠데타에서의 대안적 공동체 미디어의 활약이 그 폭발의 분기점을 이루었는데요, 48시간 만에 반대파의 쿠데타를 무력화시키고 차베스를 복귀시킬 수 있도록 한 광범위한 대중 투쟁은 주류 상업 미디어의 정보 차단과 왜곡된 정보의 유통망을 뚫고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던 공동체 미디어(라디오, TV 등)와 대중들 간의 자발적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베스 정부는 쿠데타의 경험을 통해 볼리바르 혁명의 과정에서 국영 미디어가 갖는 한계를 인정하며 자치적 민중 미디어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법적 재정적 지원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강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운동적 측면이 아직까지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도의 대중적 기반이 없고 국가보안법 등 법제도적 제약도 남아 있는 상태인데, 다만 공동체라디오가 제도화됐기 때문에 그것에 개입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문화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이라는 지점에서 대안미디어나 퍼블릭 액세스 센터 등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실 스크린쿼터를 필두로 하여 한미FTA에서 시청각 분야를 개방하게 되면,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공공성이나 기본 인프라의 지반 자체가 공격받을 위험이 대단히 큽니다. 실제로 이미 그렇게 되고 있고, 영화의 경우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FTA 반대투쟁에 함께 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주영: 스크린쿼터를 문화적 공공성의 차원으로 확대해 생각한다면, 지금 이미 진행되고 있지만 영화교육이 공교육 안에 제도화되어서 일반 다수가 영상을 접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된다든지, 사람들이 영상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지역 차원의 영상센터들이 구축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지금 제도화의 차원에서 얘기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도화에 고유한 위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보자면요.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의 해결 차원에서 적극적 평등 조치(affirmative action) 같은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제도가 구축되는 것과 대중들 전반이 인종주의나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함께 동반된다면 좋겠지만, 양자가 분리된 상태로 제도만 구축되었을 경우 별다른 유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결국에는 ‘반격’(backlash)을 초래하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제도적으로 학교 교육에 수업을 넣는다거나 마이너쿼터를 제도화해서 의무적으로 독립․예술영화를 튼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이 그런 영화를 안 볼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오히려 평범한 대중들이 헐리우드 영화나 오락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제도만으로는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고, 말하자면 제도와 주체를 동시에 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운동’의 시도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하여 공동체라디오 운동 얘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영화 쪽이라면 과거 장산곶매 같은 영화운동의 시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얘기해 볼 수도 있겠지요. 과거 장산곶매의 구성원들이 지금 영화계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따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당시에 주로 시도했던 것들 중 하나가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었는데, 물론 당시 대중운동 전체가 쇠퇴하면서 그런 시도가 중도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시도 자체에 대한 평가를 얘기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흔히 문화운동이라고 얘기하는 시도와 관련하여 그것들이 부딪치는 난점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제도와 관련해서 보자면 제도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등을 얘기해 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박문칠: 영화와 관련해 얘기해 보자면, 영화라는 예술의 성격도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문학 분야에서 그런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면 좀더 독자성을 오래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워낙에 자본집약적인 예술인데다가, 상영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점 때문에 그런 운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운동만으로 존재해서는 어렵고, 제도적인 변화나 진출 또는 쟁취 등과 맞물려야 합니다. 물론 아주 혁명적인 정세라면 얘기가 다를지 모르겠지만요.
이 때문에 미디어 센터 등의 중요성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미디어 센터가 없으면 영화장비를 못 빌리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안적 공간들도 중요하지만, 좀 덧붙이고 싶은 부분은 영화산업이나 영화자본 자체를 강제하기 위한 방법들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구요, 또 분명히 충무로가 갖고 있는 제작 여건, 장비, 노하우 등이 있는데 사실 이런 것을 환류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적인 판도 중요하지만, 충무로 안에서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면서 그것이 다른 흐름과 연결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 세계가 분리되는 식이 아니구요.
하주영: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다소 위험한 접근일 수 있습니다. 이전에 CJ 등이 대안적인 영화운동이나 미디어활동, 영화에 관한 연구에 지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연구지원 뿐만 아니라 제작지원도 영역을 나눠서 다큐멘터리 등에도 지원을 해 줬는데요. 지금은 그나마도 중단된 상태인데, 처음에 사람들이 이를 활용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결과 면에서 보면 이를 통해 영화산업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영화계에 진입하려는 노동인력들이 영화산업, 영화시장 안으로 포섭되게 됩니다. 일종의 제2부대가 된 셈이지요. 또 CJ 쪽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선전 광고로 사용했습니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는 미디어 센터들을 더 강화한다든지 하는 공공성의 강화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동체라디오 같은 경우, 영국에서는 공동체미디어로 전환된 상황인데요, 이를 지원하는 펀드가 국가적 제도 차원에서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금을 조성해서 지원을 한다든가, 공교육을 확대한다든가 아니면 영상원 같은 경우 학교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한 공공서비스를 한다든가 하는 시도를 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공공적인 영역의 확대와 강화를 얘기할 때지, 제2부대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선타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준영: 저는 영화산업을 놓고 보면 잘 모르겠는데, 지금 대안으로서 제도문제가 나왔잖아요. 기금, 미디어센터 등이 그런 것일 텐데요. 제가 요즘 느끼는 것은 대안으로서 제도, 공공적인 장치 등을 고민할 때 중심이 어디 있느냐를 잘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정동채가 쿼터 줄이고 4000억 지원 얘기했는데, 이건 뭐 공식적인 얘기는 아닙니다만 영화계에서는 이 돈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제도나 돈 이런 것이 분명한 중심이나 운동적 관점이 없을 때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지금 스크린쿼터 투쟁과 FTA 반대운동의 결합을 말하고 있는데, 저는 FTA 반대운동이 반자본주의 운동이고 반자본주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FTA에 반대하는 우리 운동의 대안은 반자본주의적 대안이나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FTA에 반대하는 문화운동 역시 여기에 중심을 두고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도나 공적인 기금 같은 부분도 이런 부분에 중심을 두는 한에서 활용이나 접근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연: 지금 대안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저는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의 얘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정말 처음으로 영화산업노조가 만들어졌고, 다소 동원되는 식이긴 하지만 영상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대책위를 마련함으로써, 현장노동자들과 곧 현장노동자들이 될 학생들 간의 연대 지점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후 영화산업 안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생이기 때문에 더욱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인데요,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강고한 연대를 하기 위해서 같이 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더 많이 얘기를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얘기해 보자면. 현장노동자 곧 스탭들의 경우 자신을 소개할 때 몇 편의 작품을 했다고 얘기를 해요. 영화에 자기 이름이 박히기도 하구요. 그런데 실제로 작품에 대한 권리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영화제작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인데요, 과거 장산곶매랄지 예전 학교에서 영화동아리 같은 곳에서 영화를 찍을 때 공동제작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 얘기는 무엇이냐면 모든 스탭들이 연출이건 제작이건 촬영이건 간에 모두 다 작품에 대해 발언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현재의 제작방식을 보면 기획된 영화에 대해서 투자자가 이윤논리에 따라 판단한 다음에는, 그것은 제작자와 투자자의 영화일 뿐이지, 스탭들이나 심지어 감독들조차 여기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다소 허황되어 보이긴 하지만, 만일 제작자협회에서 정말 자정능력을 말하고자 한다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떡고물 주겠다는 식의 선언 말고 현장에서 제작과정에 관련된 변화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지금 제도 얘기 시장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만약 현재 국가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현재의 국가나 산업이든 과연 그것을 해줄 수 있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진짜 잘 나간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데, 혹자는 이를 거품이라고 보기도 하는 것 같구요, 만일 그런 것이라면 이 시도는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FTA의 경우 세계적인 질서에 기존의 공공적 시도들이 공격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랬을 때 여기에 기초해 운동을 고민하는 것 역시 곤란함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만일 제도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아주 전통적으로 말했을 때 검열이라는 문제, 곧 과연 독자성을 획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저번에 어떤 독립영화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까, 정부의 지원이 참 필요하긴 한데 이게 양날의 칼이라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유비를 해 보자면, NGO들의 경우 국가 지원금을 받을 때 그 독자성이 상당히 침해되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요컨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기반하려고 하는 구조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주영: 정리하신 부분에 대해 이견이 있습니다. 장산곶매부터 얘기를 해 보자면, 이것이 처음에 얄라셩 같은 동아리 중심으로 영화운동으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 독립영화로 전환 되고, 또 사회적으로는 비디오라는 매체가 직접 손에 쥐어지는 등 테크놀로지 자체가 변화했고 사회 인식도 변화했습니다. 아까 제도적 영역을 얘기했지만, 이는 이런 영화운동의 역사적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해서 대중운동이 있은 다음에 제도를 활용하는 계획이 있는 식이 아니라, 제도화 자체가 투쟁의 성과이고 그런 것들이 현재 상태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는 공교육 안에서 영화수업이 들어갔다든지, 미디어 센터가 만들어진다든지, 공동체라디오의 형성도 마찬가지고, 독립영화인들이 영화를 제작하는 것 등의 시도들이 다 그런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송영역의 경우도 출구 자체가 열려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이 출구를 누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이거든요.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 여기를 점유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제도적 영역과 관련하여 선점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주영: 그런데 운동주체는 어디에 있나 싶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들이 제도화되고 편입되면서 사라진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구심도 없어진 것 같구요. 그러다 보니까 그들이 지금 운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공성 확대의 수혜를 입는 것인지 잘 구분이 안 갑니다. 당장 미디어센터도 국가기관의 일부이고, 장산곶매의 많은 구성원들이 상업영화로 들어가서 활동하는데, 그것 자체는 뭐라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과거에 구심이 됐던 단체들이 없으니까 현재 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깃발이 사라진 형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주영: 미디어 관련해서 그런 제작집단들이 아직 있긴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가졌던 예전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요. 영화 쪽으로 보면 독립영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영화운동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에 관한 논의는 부재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굳이 FTA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이 운동이 한 순환을 그린 시점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80년대 독립영화 운동, 공공성 영역의 확대, 이런 것이 사실 주체의 흐름의 과정에서 보면 이어져 왔는데, 이 과정에서 운동성이 희석된 것이 사실이고 이는 비판의 지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싸이클 자체가 한번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최준영씨가 제도에 대해 운동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문칠: 저도 많은 부분 동의를 합니다. 독립영화진영 쪽에서 영화운동 역사를 서술하는 걸 보면, 예컨대 1차 충무로 진출, 2차 충무로 진출 식으로, 80년대에 형성되었던 동력이 몇 차례 소진되고 분산되는 과정을 얘기합니다. 이 과정을 남아 있는 주체들이 제도화됐다고 볼 수도 있고 제도적 성과를 쟁취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일면적이지는 않겠지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한 순환이 마감됐는데, 그 과정에서 깃발도 깃발이지만 대중이, 대중운동이 없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미디어센터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 봐도, 제도는 계속 열려져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말을 합니다. 이용을 하긴 하지만, 과거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걸 열면 노동자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드는 것이 아니라, 주로 충무로 지망생들이 온다는 거죠. 또 개인의 영상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지원금이 있는데,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제도는 열려졌지만 이용할 주체들이 없는 불균형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저 역시 운동적 사고를 다시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회자: 현재 제도와 대중적 주체의 분리를 지적해 주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문제는 이 분리를 극복하는 대중운동의 고양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일 것입니다. 관련해서 저는 대중운동이 고양되려면 지적이고 정서적인 고양도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와 관련하여 문화예술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역으로 대중운동이 고양되는 과정에서 대중들이 지금까지의 문화와 다른 것을 원하게 되면서 문화예술의 공간이 열리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말하자면 이것이 문화예술의 발전과 관련하여 대중운동이 고유하게 기여할 수 있는 점이겠죠. 하지만 마찬가지로 문화예술 역시 단순히 제도적 망을 확보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유한 기획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자체가 고민일 텐데, 저는 이번 토론을 통해 관련된 얘기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최준영: 사실은 여기저기서 사회운동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 혹은 재편 혹은 전망 관련해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도 고민이 많이 듭니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열심히 하자 이런 환원론적 결론이 아니라 그래 뭐라도 하자 그런 것을 만들자는 식의 고민이 들었고, 지금은 아주 추상적인 수준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가 아주 폭넓게 말해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본다면 근본적으로 사회운동이 가져야 되는 전망이라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방식의 운동, 자본주의가 아닌 방식의 삶을 살 수 있는 운동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뜬구름 잡는 얘기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소비/재생산의 영역에서 지속적인 동력을 가진다고 할 때 이 부분에 대해 근본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박주영: 반자본주의 운동이 큰 전략인데 스크린쿼터를 앞두고 전술을 짜는 데 얘기하기엔 너무 큰 얘기가 아닌가요.
최준영: 저는 FTA 투쟁, 스크린쿼터 투쟁 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당장의 FTA를 유보하거나 특정 분야를 제외하는 투쟁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FTA를 체결하지 말자고 할 때 당장 나오는 의견이 경제주의적인 논리가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을 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 를 얘기하려면 이런 부분으로 고민이 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좀더 근본적인 고민과 함께, 기존의 공동체, 사회시스템 사회문화적 네트워크가 있는 상황에서 당장에 힘들긴 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요새는 생협운동에 관심이 있어요. 흔히 예전에 운동할 때 그냥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하는 거구나 했던 이런 운동이나 사무실 안에서 공동체, 말하자면 비혼이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주거공동체 문제를 만드는 것 같은 경우는 지금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겠지만요.
박문칠: 저도 요새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운동에 관해 보자면, 단순한 오락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고 남들도 표현하고, 그것을 교류하는 것이 기저에 깔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저는 여차저차해서 미디어 센터에 많이 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하는 활동이 누구에게나 카메라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스스로도 자기표현의 희열이 있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이 모아지거나 교류되거나 하는 과정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대안적인 삶의 양식 문화를 만드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기존 사회운동과 접목될 수 있는 부분도 있구요. 또 거기에서 여성들이나 장애인들에게 카메라를 주는 시도를 하는데, 기존 카메라의 앵글이 여기 있다면, 색다른 앵글이 나타나게 되고 이걸 보면서 우리도 배우게 됩니다. 관련해서 보자면 기존 사회운동이 지금까지 진보적인 영상이라고 했던 고정된 형식이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소통의 장이 열리는 점에 주목한다면, 기존 사회운동의 혁신 지점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영상에 한해서 얘기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들에서 산업을 벗어난 문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준영: 간담회 마무리를 위해서 다시 구체적인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우선은 쿼터 관련해서 관건은 영화산업노조가 이번 쿼터 투쟁에서 어떤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느냐 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상 영화인대책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입니다. 관련해서 지원도 필요하겠구요, 어쨌든 상당히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안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는데, 당장의 문화예술운동이 지금의 투쟁이나 정세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아래로부터 투쟁에 대한 주목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투쟁을 조직한다는 것은 그게 문화예술 미디어를 무기로 가지든 뭐를 무기로 가지든 좀더 현장지향적으로 운동하는 것일 테고, 그런 점에서 기존의 운동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활동가들의 모임이나 이런 부분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중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할 때 이제는 당장의 투쟁을 선전선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좀더 대안적인 모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방식의 내용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소 급진적이고 무모하더라도 우리 운동의 대안이 환류되고 소통될 수 있는 그런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문칠: 저는 독립영화인들 역시 이런 논쟁 구도 안에서 중요하게 자기 목소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한미FTA 스크린쿼터가 다양한 쟁점들을 끌어낼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잠복되어 있었던 쟁점들이 드러나면서 독립영화계들도 발언을 강제받은 상황이고 사람들이 들어주는 상황이 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독립영화전용관을 지난 10년간 주장해 왔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대중적인 힘의 부족 때문일 텐데, 이번이 좋은 계기가 될 것 같고, 그 외로도 지금 단계에서 다양한 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독립영화인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주영: 문화예술운동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의 사회운동이 어떻게 개조되어야 하는가, 대중운동과 만나기 위해 문화예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또 양자의 결합을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등의 질문을 제기하셨는데요. FTA 관련해서 투쟁을 전개하든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전개하든, 저는 문화예술운동을 운동진영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사고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기존에 있던 미디어 운동이나 활동들에 대해서 전체운동이나 사회운동이 접근해 온 방식, 그 고유한 운동의 메커니즘이나 역사적 성과물, 현재 지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보면, 아직까지 미디어/문화에 대한 도구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지난 홍콩투쟁이나 아펙투쟁 때 투쟁단위들이 꾸려질 때를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미디어나 문화의 중요성을 잘 안다고는 하지만 일이 실제로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운동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고민은 거의 없는 채로 도구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많고 이 점이 비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문화예술 진영도 사회운동과 전체운동 속에서 활동을 해 나갈 때, 계속적인 이해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운동의 과정에서 운동의 메커니즘이나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공동체나 자기가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현장과 결합하고 호흡하면서 미디어 운동들이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대중과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한 자기 기획들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이제 논의를 마무리지으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논점에 관해 저도 한 마디 해 보자면, 어떻게 보면 기존에 사회운동이 문화예술을 사고했던 방식이라는 것이 이른바 ‘정치화된 예술’, 그러니까 문화예술을 정치라고 불리는 특정한 영역의 내용을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확산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방식이 되지 않으려면 문화나 예술이 고유하게 운동이나 정치에 대해서 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문칠씨 같은 경우 대중들에게 표현수단을 준다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예컨대 이런 게 될 수도 있겠구요. 어쨌든 질문을 정치가 예술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고 던진다면, 결국 관건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해명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긴 시간 토론하시느라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