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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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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 파업에 연대하자

김정은 | 여성부장
파업 한 달째에 접어드는 KTX 승무원들의 투쟁이 한층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철도공사가 5월 15일자로 철도유통의 승무사업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철도유통은 파업 승무원 전원에 대한 해고협의 통보를 한 상태다. 새로운 위탁업체인 KTX 관광레저는 지난 3월 23일, 신규채용 공고 예정일이던 4월 1일보다 일주일이나 앞당겨 신규채용 원서 접수를 시작하는 등, 파업 대오에 대한 분열 책동을 일삼고 있다. 철도공사 측은 KTX 승무원들의 정당한 투쟁을 불법파업으로 매도하고 갖은 수단으로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KTX 승무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연일 강위력한 투쟁들을 진행하고 있다. 파업을 한두 달 더 지속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위탁회사의 비정규직으로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굳은 결의로 KTX 승무원들은 투쟁하고 있다. KTX 승무원 파업 투쟁이 한 달여간 지속되고 있는 지금, KTX 위탁 철회, 정규직화 쟁취 투쟁의 의의를 살펴보고, KTX 승무원 파업 투쟁의 나아갈 바를 짚어보자.

끝나지 않은 철도 파업 투쟁, 철도 구조조정 막아내자

3월 1일 철도 상업화 철회 및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구조조정 중단, 해고자 복직 등을 내건 철도 총파업 투쟁이 비록 3월 4일 현장 복귀를 시점으로 중단되었지만, 지도부의 복귀 방침 이후 철도 현장에서 노조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수도권 전동차 차량지부를 중심으로 작업 거부 투쟁이 진행 중이며, 철도공사의 교섭거부와 대량징계 협박 철회를 위한 철도 노동자의 1차 규정 지키기 투쟁(일명 준법투쟁) 또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재파업에 준하는 작업거부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고 KTX 승무원지부의 파업대오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철도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한 철도 노동자의 재파업 조직화에 철도 내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와 남성, 여성 노동자가 함께 하면서 철도 노동자의 단결력을 높이고 공사 측의 탄압에 저항하고 있다.
특히 이번 파업 투쟁의 쟁점이 되었던 해고자 복직, KTX 승무원 정규직화 요구는 공사와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노사 교섭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철도 구조조정의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철도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해고 조치로 탄압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한층 악화하는 조치들은 언제고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을 억압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철도 공사는 기관사, 시설, 전기 등 핵심 업무를 제외한 다양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고 현재 철도공사가 고용한 직접외주노동자는 3천여 명, 간접외주노동자는 2만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철도 부문 외주화는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악화시키고, 철도 내 협업체계를 약화시켜 철도 안전을 크게 위협한다. KTX 승무원에 대한 외주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철도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철도 노동권을 옹호하는 투쟁의 일환이다. KTX 승무원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며 철도 노동조합과의 공동투쟁에 적극 결합하고 있다. 철도 노동자 역시 KTX 승무원 파업 투쟁을 지지엄호하고 강위력한 투쟁 대오를 형성함으로써 철도 구조조정 저지에 나서야 한다.

여성 직제 비정규직화 철폐하자

철도공사는 공사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새마을호 승무원들 역시 KTX 승무원과 함께 위탁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공공연히 발표하고 있다. 열차를 불문하고 승무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가운데 여성 승무원은 모두 비정규직화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열차 안에서 기관사, 열차팀장, 여객전무 등이 함께 안전과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승무원’ 직제를 따로 만들어 이 직제를 모두 외주화하겠다는 철도공사의 방침은 명백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침해요, 차별이다. 이는 성별로 구분된 직종 및 직제 중 여성 직종을 먼저 손쉽게 비정규직화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KTX 승무원들은 열차 안에서 여느 노동자들처럼 안전 업무와 함께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공사 관계자들은 승무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안전 교육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서, 여승무원에 대해 ‘미소 짓고, 음료 서비스나 하라’는 말을 일삼으며 승무원이 수행하는 서비스 노동을 가치절하했다. 그랬던 철도 공사가 ‘같은 열차에서 안전업무를 총괄하는’ 숙련된 노동자와 ‘단순한 고객서비스 업무를 하는 승무원은 당연히 대우가 달라야 한다’는 말을 하며 KTX 승무원의 투쟁을 정규직 자리나 탐내는 뻔뻔한 요구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 공사 측의 말대로라면 KTX 승무원들이야말로 승무업무를 수행해 왔고 공사 측이 안전업무를 맡겨야 하는 경력직 노동자다. 안전 교육도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고, 한편으로는 서비스나 하라는 말을 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단순 업무’라는 이유로 정규직화 요구를 묵살하는 것은 업무나 직종과는 상관없이 노동자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고용 안정과 적절한 임금의 권리를 박탈하고자 하는 지배세력들의 공격일 뿐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60%에 달하고 그 중 여성이 70%를 차지한다. 여성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왜 비정규직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여성에게 불안정한 일자리가 집중되는가. 여성의 노동은 별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다거나, 여성의 수입이 이른바 ‘남성 가장’의 수입에 부차적이라는 등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노동력을 평가절하하고, 여성의 저임금을 합리화한다. 이러한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기초 짓는 기제가 성별로 구분되는 직종분리와 직무분리다. 실제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 다수이거나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판매직이나 서비스직,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 이러한 직종은 저임금, 불안정, 미조직 일자리라는 특성을 갖는다. 여성은 자신의 능력보다 사회구조적으로 여성에게 할당된 직종이나 직무에 따라 고용조건이 결정되는 셈이다. 여성을 언제든 싼 값에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려는 자본의 요구와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결합하면서 여성은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여성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확대하고 노동권을 박탈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한편, 여성을 둘러싼 성차별적 인식과 구조를 바꿔나가기 위한 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자

철도 공사 관계자들은 ‘여승무원이 아줌마 되서도 일하면 보기 흉하다’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서비스 업무는 예쁘고 젊은 여성이 수행하는 것이 좋다는(누구를 위해?) 관념을 드러내 주는 발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여승무원들을 위탁업체의 일년 단위 계약직으로 고용한 의도가 연령이나 결혼, 출산을 이유로 쉽게 해고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몇몇 승무원들이 출산을 앞두고 휴가를 가긴 하지만, 관련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인력이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을 믿고 돌아올 기약 없는 길을 가기도 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비한답시고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들은 정작 여성에게 절실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구조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실효성도 거의 없는 생색내기 정책들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여성이 출산을 이유로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여성보호조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여성노동자 2명 중 1명은 첫아이를 출산하면서 회사를 그만둔다.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했을 때, 여성이 돌아갈 일자리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비정규직일 뿐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와 사회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을 도리어 이기적인 여성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강화되고, 다시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라는 이유로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바로 오늘날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여성노동자의 70%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허덕이는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출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여성의 온전한 노동권은 실현될 수 없다.

여성 노동자 투쟁의 확장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투쟁은 그 시작부터 언론이나 주변 단위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고속철도 개통 당시부터 ‘고속철도의 꽃’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어리고 예쁜 승무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던 언론의 행태는 어쩌면 그 이면에 가려진 착취와 억압을 은폐하기 위한 철도 공사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나선 KTX 승무원의 투쟁 또한 ‘비정규직 투쟁의 꽃’으로 비유되거나 투쟁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방식이 아닌 단편적인 ‘여성’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방식과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KTX 승무원 투쟁에 연대하는 단위나 철도 노동자에게서도 드러난다. KTX 승무지부의 선도적인 투쟁을 어리고 연약한 여성들의 ‘가상한’ 투쟁으로 인식한다거나, KTX 파업 투쟁에 연대하는 것을 KTX 승무원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도 남성 노동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안정한 일자리와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다. KTX 승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찬사 속에서 가려진 착취와 억압을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 투쟁에 나선 KTX 승무원들을 투쟁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모든 연대단위들은 그녀들이 파업투쟁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거쳐 주체적이고 치열한 ‘여성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여성’ 노동자 투쟁을 ‘여성’ 사건으로 부각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성별 차이’를 인정하되 이 차이를 억압하거나 획일화하는 방식이 아닌 ‘여성노동자 주체’를 형성하는 것에 노동운동의 고민이 모아져야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지지지원하고, 여성 노동자의 온전한 권리를 인식하려는 노력과 함께 여성의 생애 주기와 생활 조건을 고려한 조직화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다양한 실험들이 필요하다.

나아가며

지난 새마을 여승무원 집단계약해지 저지 투쟁 때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승무원 직제 비정규직화 방침이 성차별이라는 진정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철도 공사는 차별을 시정하기는커녕, ‘남성 비정규직 승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남녀평등’을 실현했다. 승무 업무에 남성 승무원을 뽑아 같이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그들의 남녀평등이었던 셈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성별과 인종, 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차이를 매개로 노동력을 위계화하고, 이 때문에 여성은 일차적인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 저임금 시스템은 점차 노동시장 전체, 사회 일반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여성 선별적인 비정규직화에 맞서는 투쟁은 노동자 일반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이 된다. KTX 승무원들의 ‘위탁 철회, 정규직화 쟁취’ 투쟁은 결코 KTX 승무원만의 정규직 일자리 따내기 투쟁이 아니다. 이는 철도 부문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투쟁, 여성 선별 비정규직화 철폐를 위한 투쟁,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KTX 승무원 투쟁이 파업 투쟁 속에서 이러한 목표를 인식하고 투쟁하며, 진정한 투쟁 승리를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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