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 논의에 앞서
들어가며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선질서 재편이라는 과제는 8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이후 변혁론과 조직론을 둘러싸고 줄곧 논의되어 왔던 문제다. 우선 ‘전선운동’은 역사적인 개념으로,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변혁운동의 성격과 구조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전적·일반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기층 민중운동진영을 비롯한 정치조직 및 시민사회단체가 해당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이슈와 현안을 내걸고 공동의 투쟁을 전개함’을 의미한다. 이런 일반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80년대 이후 추진된 전선운동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1)
기간 전선운동의 개괄적 흐름
1984년 <민중민주운동협의회>와 1970년대 이래 재야운동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민주통일국민회의>가 주축이 되어 1985년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하 민통련)을 건설했다. 당시 이 조직들은 자신을 전선운동의 출발점으로 사고하였으며, 민통련의 건설은 본격적인 전선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85년 2.12 총선을 거치며 본격화된 개헌투쟁에 대응해 약 25개 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3월 25일 ‘민통련’을 결성하게 되는데, 민통련은 군부독재에 의한 구속, 수배와 같은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전개하였다.2) 이런 투쟁은 1987년 김대중 씨, 김영삼 씨를 포함, 당시의 야당 정치세력까지 참여하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본>은 군부독재에 맞서 1987년 6월 호헌철폐라는 국민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국본>을 이끌었던 세력은 김대중,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야당 인사들이었고, 따라서 실질적인 투쟁의 성과가 민중운동진영의 힘으로 귀결되기보다는 보수야당으로 수렴되는 한계를 낳았다. 그러나 1987년 호헌철폐를 기점으로 7월과 8월에는 억눌려 있던 남한 사회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 일어난다. 1987년 노동자들의 역사적·혁명적인 투쟁 앞에 자본과 정권을 비롯한 전 세계가 놀랐지만, 6월의 호헌철폐가 보수야당의 성과로 끝난 상황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을 지도할 조직적 힘은 대단히 미약했다. <국본>은 1987년 대선을 둘러싸고 단일한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채 양 김 씨에 대한 태도와 지지를 둘러쌓고 분열되었으며, 결국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이 재집권하게 된다.3)
1987년 대선 이후 분열을 극복하고 노태우 정권에 대한 총력 대응을 조직하기 위해서 19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이하 전민련)가 결성되었다. <전민련>에는 <서울민족민주운동연합회> 등 지역운동단체 12개와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와 <전국농민운동연합> 등 부문운동단체 8개를 비롯하여 개별운동단체 약 200개가 참여했다. 그러나 <전민련>은 불과 8개월 만에 정기중앙위에서 합법정당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내부 분열을 겪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0년, 대중조직들은 민자당 합당에 대해 아래로부터 정치적 반대를 조직하려했고, 4월 21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빈민연합> 등 기층조직과 13개 재야단체가 한시적 공동투쟁체인 <국민연합>을 결성하는 등 운동세력의 통일단결을 위해 노력한다. 1991년 대대적으로 몰아닥친 공안탄압으로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이 희생되었지만, 민중당을 중심으로 ‘지방선거에서 표로 심판하자’ 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투쟁전선은 급격히 약화된다.
1991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운동진영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연합>, <전민련> 등을 통합·확대하여 <민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을 공식 출범시킨다. <전국연합>은 해방 이래 최초로 전국적 조직을 규합하여 전선운동으로서 위상과 조직체계를 갖추고 출발했다. 그러나 그해 <전국연합>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87년 악몽을 되풀이한다. 후보전술을 둘러싸고 격렬한 내부 논쟁이 일어났으며, 결국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채택, 김대중을 후보로 선택했다. <전국연합>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하에서 민주대연합을 이뤄 보수수구세력을 압박하고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앞당겨야 한다는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대선에 임하지만, 결국 92년 대선은 수구세력과 손잡은 김영삼의 당선으로 끝났다. <전국연합>은 이후 통일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내부 논쟁에 휘말리고, 민간 부르주아 정부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질서 등 1990년대 변화된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 기층대중조직의 생존권적 요구가 대두되면서 당면한 정치적 임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거나, 이와 반대로 기층대중조직의 민중생존권 투쟁이 경제주의적 투쟁으로 폄하되거나 정치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전국연합>이 민중생존권 투쟁과 기층민중 운동진영의 투쟁을 제대로 엄호하지 못하자 <전노협>, <전빈련> 등이 <전국연합>을 탈퇴했고, ‘전선체’를 표방했던 <전국연합>의 전망은 사실상 빛이 바래게 된다.
그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노동유연화가 광풍처럼 우리사회에 몰아치고 IMF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이에 맞서 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사안별 연대기구가 만들어졌다 해소되기를 반복했고, 이후 1998년 5월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IMF 범국본)가 한시적 공동투쟁체로 구성된다.은 ‘민중대회’와 같은 공동투쟁을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2000년 3월, 32개의 노동자, 빈민, 농민, 사회단체가 참여한 전국적 차원의 공동투쟁체인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민중대회위원회>를 거쳐 현재의 <전국민중연대>가 결성되었다.
전선운동에 대한 간략한 평가
민중운동진영은 80년대 광주민중항쟁을 시작으로 전두환, 노태우 군부 독재에 맞선 강고한 투쟁을 전개하며 정치적 고양기를 맞이하지만, 한편으로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등으로 인한 대대적인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남한 정세는 다양한 변화와 투쟁 속에서 1, 2년에 한 번씩 매우 빠른 형태로 재편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전선체’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과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민족운동’ 진영에서는 ‘민족민주전선을 통한 자주민주정부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상정하게 된다. 그리고 ‘계급운동’ 진영의 일각에서는 ‘노동자 민중계급전선을 통한 민중권력 또는 노동자 권력’을 목표로 상정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노선의 차이는 연대와 제휴의 대상인 시민운동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이어진다.4)
1990년대 민간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부상한 시민운동은 부동산 토지공개념, 재벌 및 부패정치 해소 등의 개혁 의제들을 관철시키거나 자본과 정권을 감시하는 등 우리사회의 진보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는 자본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거나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자본의 중도우파 정권)의 2중대 역할을 함으로써 전선을 심각하게 교란시켰다. 대표적인 예로 1997년 IMF 당시 시민운동은 경제위기의 총체적 책임자인 재벌의 해체, 그리고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IMF와의 재협상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했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로 구성된 <실업대책국민운동본부>는 이런 본질을 외면한 채 전 국민의 관심을 개별적 부조형태로 바람몰이하며 ‘금 모으기’와 같은 이벤트를 전개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실업대책을 중심으로 한 민중생존권 쟁취투쟁의 의지를 꺾어 놓는데 앞장섰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반복되었는데, 2005년 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던 때에도 시민단체들이 한국노총등과 공조하여 고용의제 관련 일부조항을 후퇴시키는 방안을 토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빈곤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양극화 국민연대>5)는 비정규직 해결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노무현 정권의 참여복지의 핵심인, 노동과 복지의 연계를 강화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관철시키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노무현 정권의 탄핵 시 <전국민중연대> 소속단체는 각자 대응했던 경험을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다.
1990년 후반 IMF 경제파탄 이후 <전국민중연대>가 각계각층의 요구를 모아 투쟁하고 있지만, <전국민중연대>에 참여하는 단체 간의 정세인식 차이는 안정적인 집행력인 확보를 통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라는 당면 요구사안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전국민중연대>가 현안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여 지원하는 연대단위에 머무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전국민중연대>를 통해 처리되지 못하는 다른 사안이나 의제들은 별도의 대책기구가 구성이 되어 쟁점별로 분산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민중연대 조발논의에 대한 의견
<전국민중연대> 정책위원회가 제출한 바 있는 ‘단일연합전선체 건설로 진보운동진영의 새로운 전망을 개척하자’(이하 단일연합전선체(안))에 대해 몇 가지를 검토해 보자. 우선 ‘단일연합전선체(안)’은 객관정세의 절박한 요구라는 주장과 더불어 운동의 분산성 극복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서술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자료는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반제, 반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와 국내 독점자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어떤 상호 연관성으로 결합되어 있는지 서술하지 못하고 있으며 운동진영의 주체 역량과 준비 정도에 대한 분명한 분석과 입장을 성실하게 명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일연합전선체(안)’은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운동의 효율성, 예를 들어서 ‘사안별 연대체’가 난립으로 인한 문제해결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전국민중연대>가 재편이 될 때, 다른 ‘사안별 연대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병렬·분산된 투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별도의 ‘사안별 연대체’가 구성될 수밖에 없는 조건 또한 우리 운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안별 연대체’ 의 교통정리가 <전국민중연대> 재편의 주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독자성과 연대운동의 역사성 그리고 전문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사안별 연대체’가 무조건 지양되어서는 안 되고 각각 정세적인 조건에서 구축되고 만들어진 기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단일연합전선체(안)’은 자체적으로도 많은 논쟁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안)에서 ‘진보정당은 연합 전선체가 제도권에 파견한 정치적 대표체’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문맥상 명백히 ‘진보정당’이 ‘연합 전선체’의 지도를 받는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장기적으로 ‘전선체’가 정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항목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더딘 제3세계 운동의 한 형태인 전략적 전선운동의 사고를 내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이런 문제는 또 다른 편향인 전선과 당의 양날개 론으로 대두되기도 한다. 합법정당 내부 사민주의 세력의 경향성이 특히 그러한 데, 전선운동을 합법정당의 독자적 집권을 위한 들러리 정도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단일연합전선체(안)’은 ‘남북 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른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변화와 함께 냉전 지배체재의 급속한 붕괴로 민중의 정치적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한국 진보 운동세력들이 집권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판단하는 인식의 기저에는 수구보수 세력에 맞선 민주연합을 통해 ‘민족민주전선체’를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으로 나아간다는 목표가 상정되어 있는 듯하다.
이밖에도 <전국민중연대> 소속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에서는 연합전선체가 ‘민족적 자주성과 진보적 민주주의, 그리고 조국통일을 실현해 가는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민족자본가, 그리고 군인까지 포괄하는 가장 폭넓은 사회정치적 결집력을 자기의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변혁운동’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2006년 5월 지방선거, 2007년 12월 대선, 2008년 4월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 속에서 ‘민족운동세력’은 자주통일·진보개혁세력 대 친미수구세력의 구도 하에서 연방·연합제 통일정부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노무현 정권과의 관계를 긴밀히 검토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 1990년대 전선운동 흐름의 대부분이 ‘민주 대연합론’을 구사하며 실질적으로는 보수야당에 대한 추종으로 변질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비춰보더라도 ‘연정’을 둘러싼 의문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6)
때문에 <전국민중연대>가 이런 입장과 관련한 의문을 해결하지 않은 채 효율성을 강조하여 현재 추진 중인 ‘연대체’ 간의 통합을 밀어붙이고 내부 조직체계에 있어서 ‘대의원대회’를 두는 것은 향후 정치 일정의 정치 방침을 둘러싸고 아래로부터 동의를 끌어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통일성 없는 집행력 강화로 귀결될 것이며 애초 취지인 ‘대단결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통합 방식은 ‘발전적 재편을 낳는다기보다는 연대체를 상층주도의 패권적 운동방식 그리고 특정 정파의 전망과 논리를 중장기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판에 직면 할 것이다. <전국민중연대> 재편을 둘러싸고 운동 세력들 사이에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과 ‘민족과 계급’을 둘러싼 뿌리 깊은 정세 인식차이가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어야 하며, 따라서 <전국민중연대>는 조직 발전 논의를 추진하면서 올해 안으로 다음과 같은 사업들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
첫째, 시민운동과 <전국민중연대>의 관계에 대해서 <전국민중연대>는 계급적 원칙 속에서 정책협의 과정을 거친 후 제휴와 견인, 비판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전국민중연대>는 분기별 쟁점 또는 중요 사항에 대해 정기 토론회 등의 방식으로 사업을 개방적으로 논의하고 분기별 사업평가 및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수련회를 개최해야한다. 셋째, <전국민중연대>는 당면한 공동의 과제인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공동의 투쟁에 더욱 복무해야 한다.
한편 전선운동의 방향은 그 나라가 규정하는 사회변혁의 역사적 조건과 이에 따른 투쟁의 전략, 전술, 투쟁역량의 수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 운동의 현실적 조건에 비춰 <전국민중연대>가 ‘통일적인 전선체’로 발전하여 궁극적인 노동자, 민중의 대체 권력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는 좀 더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다. 우선 전선운동의 규모가 확대되면 될수록 정치적 통일성은 약해지고 다양성의 폭은 넓어진다. 이에 따라 전선운동 안에는 위와 같은 경향성이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나타나며 어떤 운동세력이 주도권을 쥘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이밖에도 급격한 사회변화와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운동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국내외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전선 운동 내에 노동자계급의 주도권이 관철되는 것이야말로 전선운동의 원칙이라 하겠다. 또 다른 축으로 탄압과 통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조건 속에서 <전국민중연대>를 단일한 집행력을 담보한 전선체로 발전시키기보다는 각각의 차이를 인정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라는 당면한 정세적 요구사안을 분명히 하고 연대투쟁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투쟁체’로 강화하기 위해 의결과 집행단위를 간결하게 구축하는 것이 보다 실천적일 것이다.
‘노동자 민중연대’건설을 위하여
‘민족운동’ 진영이 오랫동안 전선운동을 주요하게 사고하고 전선운동을 통해 운동의 방향을 모색했으며 실질적 주도권과 집행력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전선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운동’ 진영에 대해 ‘계급운동’ 진영은 기층 민중운동조직의 내부 논의 부족, 지역적 ‘민중연대’ 의 부재, 집행력의 확보의 어려움, 단일한 정치전선을 건설하는 데 대한 실천적 합의 수준의 미흡과 같은 문제를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런 ‘계급운동’ 진영의 반복된 문제제기는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제 ‘딴지걸기식’이 되어 버렸다. ‘계급운동’ 진영도 전선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긴급히 각인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현재 논의 중인 <전국민중연대>를 넘어서 사고하자는 것이다. 즉, 계급적 연대운동을 통해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연대’ 질서를 부차적이거나 미래의 과제로 상정을 하는 오류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계급운동’ 진영은 자체적인 ‘노동자 민중연대’ 질서를 구축하고 이에 근거하여 <전국민중연대>에 참여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주도성이 관철되는 전략적 연대 단위와 이를 보완하는 더 광범위한 전술적 연대 단위가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현실적인 역량이나 참여대상에서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내용에 있어서 ‘노동자 민중연대’ 구축이라는 중장기적 전망을 각인하고 ‘반제, 반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그리고 궁극적으로 ‘반자본주의’ 투쟁을 자신의 전략적 과제로 상정해야 한다. 후자는 현재 ‘민족운동’ 진영이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추진 중에 있는 ‘민족민주연대체’가 될 수 있으며 ‘계급운동’ 진영에서는 이와 전술적으로 제휴해야 한다. ‘전략적 연대체’의 선(先)결집을 통해 ‘전술적 연대체’인 ‘민족민주연대체’에 참여하는 이중 구조를 적극적으로 상정하는 이유는 기층대중조직의 상층이 ‘민족민주연대체’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중앙조직이나 대중조직의 상층과 이들의 협의를 통해 집행되는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계급운동’ 진영은 좀 더 포괄적인 연대 단위인 <전국민중연대>, 즉 ‘민족민주연대체’ 안에서 ‘노동자 민중연대’ 블록을 통해 ‘기층대중조직’을 대자적인 의식으로 끌어올려 계급적 대중운동으로 재편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각각의 조직들이 검증·평가받고 향후 더 높은 단계로의 발전 전망과 조직결집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조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를 지향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공동투쟁, 공동논쟁을 전개하면서 한편으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엄호해 나가야한다. ‘민족운동’ 진영에서도 위와 같은 모습을 분파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고, 조직운동의 자연스러운 분화와 발전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전국민중연대>처럼 서로의 입장 차이를 드러내지 않고 이합집산 연대하는 방식은 서로를 피곤하고 지치게만 할뿐이다. <전국민중연대> 안의 모든 운동진영이 건강하게 상호 경쟁하고 공동의 투쟁을 도모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전국민중연대>의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며 향후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면 될수록 차츰 연대의 폭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그동안 ‘계급운동’ 진영은 대중을 아래로부터 조직하기는 상층조차 조직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 결과 외연은 협소하고, 내적으로도 자기조직의 발전 전망에 갇히거나 매몰되는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초국적 금융자본의 경제침략과 현 정권의 세계화 정책은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민중의 생존권 위기로 드러났으며, 그 결과 빈곤 인구 8백만을 바라보는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현장을 넘어 전 영역에서 그들의 이윤과 착취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운동의 조건이 성숙해졌고 풍부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약간의 절차적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민중을 억압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하여, 패배주의, 무한정 기다리는 대기주의, 자기조직의 발전 안에 갇혀 탁상공론 하거나 나아가 조직적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해체주의적인 경향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와 같은 관점은 노동자, 민중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구조화되어있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각계 분산되어 있는 계급운동 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조직적 틀을 갖고 있는가? 아직은 없다. 우리는 이를 만들어 나가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올바른 조직 없이 우리 사회의 변혁은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일이기에, 각각의 조직적 진로와 방향을 위해서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그리고 ‘반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요구에 부응하는 ‘노동자 민중연대’를 통한 공동의 투쟁체를 시급히 건설해야한다. 새롭게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조직적 틀을 확보하는 것, 이는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긴급한 과제다.
1) 이글은 개인의견이라는 것을 사전에 밝힌다. 본문으로
2) 「민통련 창립 20주년 자료집」 중 본문으로
3) 최인기, 「상설공투체에 대한 전노련의 입장」 본문으로
4) 한편 <사회양극화 국민연대>와 <전국민중연대>가 상호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이유는 <전국민중연대>와 시민운동 단체 사이에 일정 부분 이해가 맞닿기 때문이다. <전국민중연대>는 중간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를 통하여 중간층을 획득하고자 하고, 시민운동 단체들은 의회를 통한 정책 입안을 가능케 하는 <민주노동당>의 등장으로 시민단체들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전국민중연대>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데 있어서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본문으로
5) “우선 사회양극화는 중간층의 유실이라고 진단을 하기에 중간층의 회복이라는 것을 정책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재분배 정책이나 경기부양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금융세계화에 따른 소수의 금융소득자를 위한 절대 다수의 궁핍화를 놓치게 되고 해결 방안도 일을 통한 빈곤탈출로 나아가게 된다.” 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2005.10. 본문으로
6) 한호석(통일학연구소)은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과 민족통일전선의 형성’, ‘연정수립전략의 파산과 통일전선운동의 전진’, ‘자주적 민주정권, 전민항쟁, 그리고 통일전선운동’과 같은 글을 통해 다양한 전략적·전술적 통일전선 운동을 소개한다. 본문으로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선질서 재편이라는 과제는 8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이후 변혁론과 조직론을 둘러싸고 줄곧 논의되어 왔던 문제다. 우선 ‘전선운동’은 역사적인 개념으로,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변혁운동의 성격과 구조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전적·일반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기층 민중운동진영을 비롯한 정치조직 및 시민사회단체가 해당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이슈와 현안을 내걸고 공동의 투쟁을 전개함’을 의미한다. 이런 일반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80년대 이후 추진된 전선운동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1)
기간 전선운동의 개괄적 흐름
1984년 <민중민주운동협의회>와 1970년대 이래 재야운동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민주통일국민회의>가 주축이 되어 1985년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하 민통련)을 건설했다. 당시 이 조직들은 자신을 전선운동의 출발점으로 사고하였으며, 민통련의 건설은 본격적인 전선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85년 2.12 총선을 거치며 본격화된 개헌투쟁에 대응해 약 25개 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3월 25일 ‘민통련’을 결성하게 되는데, 민통련은 군부독재에 의한 구속, 수배와 같은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전개하였다.2) 이런 투쟁은 1987년 김대중 씨, 김영삼 씨를 포함, 당시의 야당 정치세력까지 참여하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본>은 군부독재에 맞서 1987년 6월 호헌철폐라는 국민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국본>을 이끌었던 세력은 김대중,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야당 인사들이었고, 따라서 실질적인 투쟁의 성과가 민중운동진영의 힘으로 귀결되기보다는 보수야당으로 수렴되는 한계를 낳았다. 그러나 1987년 호헌철폐를 기점으로 7월과 8월에는 억눌려 있던 남한 사회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 일어난다. 1987년 노동자들의 역사적·혁명적인 투쟁 앞에 자본과 정권을 비롯한 전 세계가 놀랐지만, 6월의 호헌철폐가 보수야당의 성과로 끝난 상황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을 지도할 조직적 힘은 대단히 미약했다. <국본>은 1987년 대선을 둘러싸고 단일한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채 양 김 씨에 대한 태도와 지지를 둘러쌓고 분열되었으며, 결국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이 재집권하게 된다.3)
1987년 대선 이후 분열을 극복하고 노태우 정권에 대한 총력 대응을 조직하기 위해서 19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이하 전민련)가 결성되었다. <전민련>에는 <서울민족민주운동연합회> 등 지역운동단체 12개와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와 <전국농민운동연합> 등 부문운동단체 8개를 비롯하여 개별운동단체 약 200개가 참여했다. 그러나 <전민련>은 불과 8개월 만에 정기중앙위에서 합법정당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 내부 분열을 겪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0년, 대중조직들은 민자당 합당에 대해 아래로부터 정치적 반대를 조직하려했고, 4월 21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빈민연합> 등 기층조직과 13개 재야단체가 한시적 공동투쟁체인 <국민연합>을 결성하는 등 운동세력의 통일단결을 위해 노력한다. 1991년 대대적으로 몰아닥친 공안탄압으로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이 희생되었지만, 민중당을 중심으로 ‘지방선거에서 표로 심판하자’ 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투쟁전선은 급격히 약화된다.
1991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운동진영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연합>, <전민련> 등을 통합·확대하여 <민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을 공식 출범시킨다. <전국연합>은 해방 이래 최초로 전국적 조직을 규합하여 전선운동으로서 위상과 조직체계를 갖추고 출발했다. 그러나 그해 <전국연합>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87년 악몽을 되풀이한다. 후보전술을 둘러싸고 격렬한 내부 논쟁이 일어났으며, 결국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채택, 김대중을 후보로 선택했다. <전국연합>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하에서 민주대연합을 이뤄 보수수구세력을 압박하고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앞당겨야 한다는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대선에 임하지만, 결국 92년 대선은 수구세력과 손잡은 김영삼의 당선으로 끝났다. <전국연합>은 이후 통일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내부 논쟁에 휘말리고, 민간 부르주아 정부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질서 등 1990년대 변화된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 기층대중조직의 생존권적 요구가 대두되면서 당면한 정치적 임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거나, 이와 반대로 기층대중조직의 민중생존권 투쟁이 경제주의적 투쟁으로 폄하되거나 정치적으로 소외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전국연합>이 민중생존권 투쟁과 기층민중 운동진영의 투쟁을 제대로 엄호하지 못하자 <전노협>, <전빈련> 등이 <전국연합>을 탈퇴했고, ‘전선체’를 표방했던 <전국연합>의 전망은 사실상 빛이 바래게 된다.
그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노동유연화가 광풍처럼 우리사회에 몰아치고 IMF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이에 맞서 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사안별 연대기구가 만들어졌다 해소되기를 반복했고, 이후 1998년 5월 <고용·실업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IMF 범국본)가 한시적 공동투쟁체로 구성된다.
전선운동에 대한 간략한 평가
민중운동진영은 80년대 광주민중항쟁을 시작으로 전두환, 노태우 군부 독재에 맞선 강고한 투쟁을 전개하며 정치적 고양기를 맞이하지만, 한편으로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등으로 인한 대대적인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남한 정세는 다양한 변화와 투쟁 속에서 1, 2년에 한 번씩 매우 빠른 형태로 재편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전선체’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과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민족운동’ 진영에서는 ‘민족민주전선을 통한 자주민주정부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상정하게 된다. 그리고 ‘계급운동’ 진영의 일각에서는 ‘노동자 민중계급전선을 통한 민중권력 또는 노동자 권력’을 목표로 상정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노선의 차이는 연대와 제휴의 대상인 시민운동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이어진다.4)
1990년대 민간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부상한 시민운동은 부동산 토지공개념, 재벌 및 부패정치 해소 등의 개혁 의제들을 관철시키거나 자본과 정권을 감시하는 등 우리사회의 진보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는 자본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거나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자본의 중도우파 정권)의 2중대 역할을 함으로써 전선을 심각하게 교란시켰다. 대표적인 예로 1997년 IMF 당시 시민운동은 경제위기의 총체적 책임자인 재벌의 해체, 그리고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IMF와의 재협상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했어야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로 구성된 <실업대책국민운동본부>는 이런 본질을 외면한 채 전 국민의 관심을 개별적 부조형태로 바람몰이하며 ‘금 모으기’와 같은 이벤트를 전개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실업대책을 중심으로 한 민중생존권 쟁취투쟁의 의지를 꺾어 놓는데 앞장섰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반복되었는데, 2005년 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던 때에도 시민단체들이 한국노총등과 공조하여 고용의제 관련 일부조항을 후퇴시키는 방안을 토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빈곤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양극화 국민연대>5)는 비정규직 해결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노무현 정권의 참여복지의 핵심인, 노동과 복지의 연계를 강화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관철시키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노무현 정권의 탄핵 시 <전국민중연대> 소속단체는 각자 대응했던 경험을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다.
1990년 후반 IMF 경제파탄 이후 <전국민중연대>가 각계각층의 요구를 모아 투쟁하고 있지만, <전국민중연대>에 참여하는 단체 간의 정세인식 차이는 안정적인 집행력인 확보를 통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라는 당면 요구사안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전국민중연대>가 현안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여 지원하는 연대단위에 머무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전국민중연대>를 통해 처리되지 못하는 다른 사안이나 의제들은 별도의 대책기구가 구성이 되어 쟁점별로 분산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민중연대 조발논의에 대한 의견
<전국민중연대> 정책위원회가 제출한 바 있는 ‘단일연합전선체 건설로 진보운동진영의 새로운 전망을 개척하자’(이하 단일연합전선체(안))에 대해 몇 가지를 검토해 보자. 우선 ‘단일연합전선체(안)’은 객관정세의 절박한 요구라는 주장과 더불어 운동의 분산성 극복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서술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자료는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반제, 반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와 국내 독점자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어떤 상호 연관성으로 결합되어 있는지 서술하지 못하고 있으며 운동진영의 주체 역량과 준비 정도에 대한 분명한 분석과 입장을 성실하게 명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일연합전선체(안)’은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운동의 효율성, 예를 들어서 ‘사안별 연대체’가 난립으로 인한 문제해결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전국민중연대>가 재편이 될 때, 다른 ‘사안별 연대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병렬·분산된 투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별도의 ‘사안별 연대체’가 구성될 수밖에 없는 조건 또한 우리 운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안별 연대체’ 의 교통정리가 <전국민중연대> 재편의 주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독자성과 연대운동의 역사성 그리고 전문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사안별 연대체’가 무조건 지양되어서는 안 되고 각각 정세적인 조건에서 구축되고 만들어진 기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단일연합전선체(안)’은 자체적으로도 많은 논쟁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안)에서 ‘진보정당은 연합 전선체가 제도권에 파견한 정치적 대표체’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문맥상 명백히 ‘진보정당’이 ‘연합 전선체’의 지도를 받는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장기적으로 ‘전선체’가 정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항목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더딘 제3세계 운동의 한 형태인 전략적 전선운동의 사고를 내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이런 문제는 또 다른 편향인 전선과 당의 양날개 론으로 대두되기도 한다. 합법정당 내부 사민주의 세력의 경향성이 특히 그러한 데, 전선운동을 합법정당의 독자적 집권을 위한 들러리 정도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단일연합전선체(안)’은 ‘남북 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른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변화와 함께 냉전 지배체재의 급속한 붕괴로 민중의 정치적 진출이 가속화되었고 한국 진보 운동세력들이 집권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판단하는 인식의 기저에는 수구보수 세력에 맞선 민주연합을 통해 ‘민족민주전선체’를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으로 나아간다는 목표가 상정되어 있는 듯하다.
이밖에도 <전국민중연대> 소속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에서는 연합전선체가 ‘민족적 자주성과 진보적 민주주의, 그리고 조국통일을 실현해 가는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민족자본가, 그리고 군인까지 포괄하는 가장 폭넓은 사회정치적 결집력을 자기의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변혁운동’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2006년 5월 지방선거, 2007년 12월 대선, 2008년 4월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 속에서 ‘민족운동세력’은 자주통일·진보개혁세력 대 친미수구세력의 구도 하에서 연방·연합제 통일정부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노무현 정권과의 관계를 긴밀히 검토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 1990년대 전선운동 흐름의 대부분이 ‘민주 대연합론’을 구사하며 실질적으로는 보수야당에 대한 추종으로 변질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비춰보더라도 ‘연정’을 둘러싼 의문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6)
때문에 <전국민중연대>가 이런 입장과 관련한 의문을 해결하지 않은 채 효율성을 강조하여 현재 추진 중인 ‘연대체’ 간의 통합을 밀어붙이고 내부 조직체계에 있어서 ‘대의원대회’를 두는 것은 향후 정치 일정의 정치 방침을 둘러싸고 아래로부터 동의를 끌어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통일성 없는 집행력 강화로 귀결될 것이며 애초 취지인 ‘대단결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통합 방식은 ‘발전적 재편을 낳는다기보다는 연대체를 상층주도의 패권적 운동방식 그리고 특정 정파의 전망과 논리를 중장기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판에 직면 할 것이다. <전국민중연대> 재편을 둘러싸고 운동 세력들 사이에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과 ‘민족과 계급’을 둘러싼 뿌리 깊은 정세 인식차이가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어야 하며, 따라서 <전국민중연대>는 조직 발전 논의를 추진하면서 올해 안으로 다음과 같은 사업들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
첫째, 시민운동과 <전국민중연대>의 관계에 대해서 <전국민중연대>는 계급적 원칙 속에서 정책협의 과정을 거친 후 제휴와 견인, 비판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전국민중연대>는 분기별 쟁점 또는 중요 사항에 대해 정기 토론회 등의 방식으로 사업을 개방적으로 논의하고 분기별 사업평가 및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수련회를 개최해야한다. 셋째, <전국민중연대>는 당면한 공동의 과제인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공동의 투쟁에 더욱 복무해야 한다.
한편 전선운동의 방향은 그 나라가 규정하는 사회변혁의 역사적 조건과 이에 따른 투쟁의 전략, 전술, 투쟁역량의 수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 운동의 현실적 조건에 비춰 <전국민중연대>가 ‘통일적인 전선체’로 발전하여 궁극적인 노동자, 민중의 대체 권력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는 좀 더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다. 우선 전선운동의 규모가 확대되면 될수록 정치적 통일성은 약해지고 다양성의 폭은 넓어진다. 이에 따라 전선운동 안에는 위와 같은 경향성이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나타나며 어떤 운동세력이 주도권을 쥘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이밖에도 급격한 사회변화와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운동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국내외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전선 운동 내에 노동자계급의 주도권이 관철되는 것이야말로 전선운동의 원칙이라 하겠다. 또 다른 축으로 탄압과 통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조건 속에서 <전국민중연대>를 단일한 집행력을 담보한 전선체로 발전시키기보다는 각각의 차이를 인정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라는 당면한 정세적 요구사안을 분명히 하고 연대투쟁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투쟁체’로 강화하기 위해 의결과 집행단위를 간결하게 구축하는 것이 보다 실천적일 것이다.
‘노동자 민중연대’건설을 위하여
‘민족운동’ 진영이 오랫동안 전선운동을 주요하게 사고하고 전선운동을 통해 운동의 방향을 모색했으며 실질적 주도권과 집행력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전선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운동’ 진영에 대해 ‘계급운동’ 진영은 기층 민중운동조직의 내부 논의 부족, 지역적 ‘민중연대’ 의 부재, 집행력의 확보의 어려움, 단일한 정치전선을 건설하는 데 대한 실천적 합의 수준의 미흡과 같은 문제를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런 ‘계급운동’ 진영의 반복된 문제제기는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제 ‘딴지걸기식’이 되어 버렸다. ‘계급운동’ 진영도 전선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긴급히 각인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현재 논의 중인 <전국민중연대>를 넘어서 사고하자는 것이다. 즉, 계급적 연대운동을 통해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연대’ 질서를 부차적이거나 미래의 과제로 상정을 하는 오류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계급운동’ 진영은 자체적인 ‘노동자 민중연대’ 질서를 구축하고 이에 근거하여 <전국민중연대>에 참여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주도성이 관철되는 전략적 연대 단위와 이를 보완하는 더 광범위한 전술적 연대 단위가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현실적인 역량이나 참여대상에서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내용에 있어서 ‘노동자 민중연대’ 구축이라는 중장기적 전망을 각인하고 ‘반제, 반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그리고 궁극적으로 ‘반자본주의’ 투쟁을 자신의 전략적 과제로 상정해야 한다. 후자는 현재 ‘민족운동’ 진영이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추진 중에 있는 ‘민족민주연대체’가 될 수 있으며 ‘계급운동’ 진영에서는 이와 전술적으로 제휴해야 한다. ‘전략적 연대체’의 선(先)결집을 통해 ‘전술적 연대체’인 ‘민족민주연대체’에 참여하는 이중 구조를 적극적으로 상정하는 이유는 기층대중조직의 상층이 ‘민족민주연대체’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중앙조직이나 대중조직의 상층과 이들의 협의를 통해 집행되는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계급운동’ 진영은 좀 더 포괄적인 연대 단위인 <전국민중연대>, 즉 ‘민족민주연대체’ 안에서 ‘노동자 민중연대’ 블록을 통해 ‘기층대중조직’을 대자적인 의식으로 끌어올려 계급적 대중운동으로 재편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각각의 조직들이 검증·평가받고 향후 더 높은 단계로의 발전 전망과 조직결집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조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를 지향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공동투쟁, 공동논쟁을 전개하면서 한편으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엄호해 나가야한다. ‘민족운동’ 진영에서도 위와 같은 모습을 분파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고, 조직운동의 자연스러운 분화와 발전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전국민중연대>처럼 서로의 입장 차이를 드러내지 않고 이합집산 연대하는 방식은 서로를 피곤하고 지치게만 할뿐이다. <전국민중연대> 안의 모든 운동진영이 건강하게 상호 경쟁하고 공동의 투쟁을 도모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전국민중연대>의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며 향후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면 될수록 차츰 연대의 폭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그동안 ‘계급운동’ 진영은 대중을 아래로부터 조직하기는 상층조차 조직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 결과 외연은 협소하고, 내적으로도 자기조직의 발전 전망에 갇히거나 매몰되는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초국적 금융자본의 경제침략과 현 정권의 세계화 정책은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민중의 생존권 위기로 드러났으며, 그 결과 빈곤 인구 8백만을 바라보는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현장을 넘어 전 영역에서 그들의 이윤과 착취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운동의 조건이 성숙해졌고 풍부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약간의 절차적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민중을 억압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하여, 패배주의, 무한정 기다리는 대기주의, 자기조직의 발전 안에 갇혀 탁상공론 하거나 나아가 조직적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해체주의적인 경향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와 같은 관점은 노동자, 민중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구조화되어있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각계 분산되어 있는 계급운동 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조직적 틀을 갖고 있는가? 아직은 없다. 우리는 이를 만들어 나가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올바른 조직 없이 우리 사회의 변혁은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일이기에, 각각의 조직적 진로와 방향을 위해서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그리고 ‘반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요구에 부응하는 ‘노동자 민중연대’를 통한 공동의 투쟁체를 시급히 건설해야한다. 새롭게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조직적 틀을 확보하는 것, 이는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긴급한 과제다.
1) 이글은 개인의견이라는 것을 사전에 밝힌다. 본문으로
2) 「민통련 창립 20주년 자료집」 중 본문으로
3) 최인기, 「상설공투체에 대한 전노련의 입장」 본문으로
4) 한편 <사회양극화 국민연대>와 <전국민중연대>가 상호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이유는 <전국민중연대>와 시민운동 단체 사이에 일정 부분 이해가 맞닿기 때문이다. <전국민중연대>는 중간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를 통하여 중간층을 획득하고자 하고, 시민운동 단체들은 의회를 통한 정책 입안을 가능케 하는 <민주노동당>의 등장으로 시민단체들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전국민중연대>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데 있어서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본문으로
5) “우선 사회양극화는 중간층의 유실이라고 진단을 하기에 중간층의 회복이라는 것을 정책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재분배 정책이나 경기부양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금융세계화에 따른 소수의 금융소득자를 위한 절대 다수의 궁핍화를 놓치게 되고 해결 방안도 일을 통한 빈곤탈출로 나아가게 된다.” 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2005.10. 본문으로
6) 한호석(통일학연구소)은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과 민족통일전선의 형성’, ‘연정수립전략의 파산과 통일전선운동의 전진’, ‘자주적 민주정권, 전민항쟁, 그리고 통일전선운동’과 같은 글을 통해 다양한 전략적·전술적 통일전선 운동을 소개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