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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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지문날인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준도 | 편집부장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능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유령은 없다, 지문날인 거부모임

1983년일 것이다. 전라남도 완주군의 한 농부가 TV시청료를 못내겠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KBS News에서 농촌의 실상을 왜곡해서 보도했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추곡수매가 인상이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뉴스는 농민들의 어려운 상황보다 수매가 동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주장만을 보도했던 거다. 이것이 4년여의 시간동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참가한 KBS-TV 시청료거부운동의 발발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불복종 운동의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이것에 덮어놓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이나, 다음과 같은 사실이 간과어서는 안될 것이다. 첫째, 동원된 대중이 아닌, 피해 당사자 스스로의 직접적 행동이 가지는 파장력. 둘째, 광범위한 대중투쟁이 고양되는 시점에서 국가에 의해 봉합된 대중이데올로기를 파괴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이자,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셋째, 따라서, 피해당사자들의 직접적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명백한, 대중운동의 주요한 과제라는 것. 이상 세가지

2000년 4월 8일 지하의 한 술집에 몇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고,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도 하나였다. 6월이면 갱신될 새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주민등록증을 갱신할 의사도 없다는 공통점에, 모두들 앞으로 다가올 직접적 피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지문날인 거부 운동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가 궁금해 한다는 것.
4월 15일 올라온 논의 정리를 보면 당일 모임이 얼마나 중요했으며, 소중한 결론이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지문날인 거부 및 폐지 운동은 몇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싸워야 할 사안이고,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직접행동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실질적인 대응이 어렵게 됩니다…. 따라서 지문날인 거부자들을 중심으로 '지문날인 거부모임'을 만들고, 구심의 역할을 자임하고 지문날인 폐지운동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6월 구신분증폐지에 즈음해 매우 많은 것을 시시한다. 이제까지 지문날인 거부운동의 주체가 사회단체라면 지금부터는 불복종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된 대중들 자신이다.


지문날인 거부자 모임

내가 지문날인 거부자다
"이 지문날인 거부 운동이 결코 유령이 아니었음을 모두에게 확인시켜줍시다!!"
- 지문날인 거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소박해 보이는 듯한 이 말은 현재의 난관을 헤쳐가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법이라는 당위명령을 통해 제도와 상식을 결합시키는 국가의 주도면밀한 작업 앞에서 그리고 주민등록증이 마치 주권의 행사인 듯 당연히 받아들이는 대중들 앞에서, 지문날인 거부운동은 유령 아닌 유령으로 남아있었다. 명백히 수천명의 서명자가 있건만, 지문날인 거부 운동은 사회적으로 잊혀져갔고, 동시에 지문날인 거부 운동이 제기한 신체의 디지털 채취 문제조차 잊혀져갔다. 수천명의 지문날인 거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와중에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스스로 그 존재를 대사회적으로 밝힘으로써 유령이라는 누명을 벗게된 것이다.

강요와 협박이 동반된 행정처리가 불법임을 시인할 때에도, 4/13총선 때 구주민등록증을 발급할 때에도 그들은 주민등록 거부자들의 실체가 확인될 때에야 반응을 보였다. 이는 그토록 찬사해 마지 않는 이 새 주민등록증이 실은 어떤 법적 논거도, 논리적 명분도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잠잠해지기만 하면 강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이제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직접 자신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겠다고 선언했다. 6월 구 주민등록증이 법적으로 만료되는 그 날에 말이다.

"법적으로는 우리들의 의견이 옳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소리가 적은 관계로 묵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금쯤은 소란스럽게 굴어서 사회적 이슈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렇다. 아직도 존재하는게 아니라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알릴 것이다. 우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사회를 소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는 결코 소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웁니다

"거부자 분들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을 것 같습니다"

지문날인 거부자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다른 투쟁과는 달리 이 투쟁은 개인에게,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이며 실질적인 불이익이 오기 때문이고, 이는 개인의 문제인양 환원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운전면허증도 없고... 여권도 없고..." , "(구) 주민증을 분실"한 사람도 있으며, 설사 있다하더라도 6월 1일부터 "당장 생활에서 불편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지금 시점에서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기를 갈망하고 "헌법소원심판은 어찌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30여년이나 지속되어온 주민등록증의 안정성에 기반해 물리적 강제력을 가지는 국가, 제도와 사회적 상식을 통합시키는 국가, 인격과 신체를 코드화해 체계적으로 통제하려는 국가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빨갱이""간첩"이라는 대중들의 지배적 관념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끝날 싸움이 아니다.

결국은 새로운 주민등록증 꼭 있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제기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피해를 입은 지문날인 거부자에 대한 지원과 엄호"를 할 것이며, 또한 "피해 사례를 분석하여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 사회적 제도와 관행에 대한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진행"하면서, 주민등록증의 사회적 권위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 운동은 자신들이 거점을 형성하고 투쟁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주체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조건지워져 있다.

"어차피 시일이 정해진 운동이 아닌 상징적 불복종 저항운동이지 않습니까."

일상적인 피해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문날인 거부자들 자신의 직접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가 곧 거부자요, 거부자가 곧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문날인을 거부한 이는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운동의 최대 적입니다. 사이버 연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게 사람이라, 모여서 얼굴을 대하면 힘이 나죠. "

이 싸움은 결코 개인이 단지 거부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적 권력과 이데올로기 앞에 개인은 해체될 수 밖에 없다. 거부자 스스로 연대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하술집에서의 모임 이후, 신촌에서 마산에서 부산에서 원주에서 지문날인 거부자들간에 서로의 얼굴들을 확인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집약된 대응이 아닌 지역간의 모임을 통해 거대 네트워크를 이루려는 것이다. 일상적인 불이익이 오는 만큼 일상적인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서울의 한 은행에서, 광주의 예비군 훈련장에서, 원주의 토익시험 장소에서, 부산의 관공서에서, 제주의 공항에서 항의가 빗발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또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문날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습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아직도 우리의 투쟁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싸움에 동참할 의지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틀을 고민하고 있다. 실천적으로, 조직적으로 말이다.

"이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을 완전히 방어할 수 없습니다…. 지문날인거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신념의 문제나 의지의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가능한 한 전국적이고 조직적인 대응들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들의 주장이긴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옳지 않은가?


우리는 지문날인이 폐지될 때까지 거부할 것입니다

"만약 병용체계가 이루어진다면, 우린 '지문날인 거부'라는 간판을 내리고 '지문 정보 삭제'라는 운동을 벌여야 할까? "

30여년간이나 호적제도와 주민제도를 사실상 통합한 이 강력한 신분증-주민등록증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대하다. 대체신분증이라 할 수 있는 운전면허증, 여권 등 모든 신분증이 이 주민등록증에 기초해있다는 사실은 전율스러울 정도이다. 그래서 결국 이 위력적인 신분증을 단지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만 있으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문이 찍히지 않은 신분증을 발급받으면 되는 문제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운동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분증 소유 의무"조항이 삭제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우리의 법률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꾸로 신분증 없이도 국민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이미 지문은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완성되는 순간, 신분증은 별 의미가 없다. 경찰은 언제든지 지문 확인장치만 들고 다니면 되며, 은행에서도 지문 확인장치만 있으면 된다. 이는 각 개인의 모든 정보가 그대로 국가에 의해 통합관리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민중들의 의결과 저항적 행동 모두가 관리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않은가?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사문화하고 민주주의를 뒤로 후퇴시킬 수 있는 유력한 국가의 기초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지문날인 거부는 단지 개선된 신분증의 문제가 아니다.

"이 플라스틱 주민증은 발급 시스템은 물론, 발급 장비 그리고 형태에서도 실제로 전자주민카드제도와 많은 점에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제도라고 불리우는 전국민 지문날인제도를 여전히 유지할 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확장시켜 디지털화된 전자정보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 문제의 심각성이 한층 높다할 수 있습니다." - <지문날인 이래서 거부한다(1999. 7.)>

또한 주민등록증제도에 의한 개인정보의 양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디지털화의 기반이며, 이 정보에는 가부장적인/ 권위적인/ 성차별적인/ 지역차별적인 것으로 활용가능한 정보가 담겨져 있어, 이 정보만을 가지고도 개인의 인권, 나아가 사회적 인권을 침해할 여지가 많이 있다. 이 정보를 개인이 아닌 기관/ 단체가 임의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이유를 분명히 할 것이다. 우리는 이 투쟁이 국가, 권력자에 의해 관리되는 개인의 신체정보 및 코드정보를 재탈환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개인이, 아니 민중들이 되찾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하고 주민등록제도를 혁신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문날인 거부모임은 지문날인 폐지, 주민등록제도의 혁신적인 개선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스스로 내린 해답이요, 스스로에 대한 문제이며, 결의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이 기대감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올바르게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건 이 운동은 장기화 될것이고, 구심점은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구심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임이 지문날인 거부 운동본부입니다" - 지문날인거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지문날인 거부자 모임이 나아가야 할 길

이상에서 우리는 거부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았던 모든 기록을 살펴보았다. 지문날인 운동이 정체되어 있을 때, 새롭게 나선 지문날인 거부자 모임.
이 모임은 지문날인 거부 운동에서 투쟁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 상징은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존재하는 상징이다. 그렇기에, 이 모임은 지문날인 거부 운동의 새로운 모체가 될 것이다.
이 모체는 이미 앞서 밝힌바와 같이 그들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다. 투쟁의 주체는 지문날인 거부자들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실천적 연대를 위해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는다. 또한, 지역거점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이루는 형태의 조직구성체계를 가져갈 것이다. 끝으로, 투쟁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궁극적으로 지문날인제도 폐지, 주민등록법 혁신을 지향한다. 이상 세가지의 답.

지문날인 거부모임의 싸움이 선도적인 싸움인지, 자기 반란인지 아직 무어라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만은 명확하다. 우리들의 문제는 누구의 손에 맡긴다고 해결될 수 없기에 우리가 직접 옹호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국가의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폭력에 맞서는 민중들의 투쟁의 역사에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거부모임은 헌법소원재판의 결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대중들의 힘에 근거해서 대중들의 상식으로 당연히 지문날인을 거부하도록 아니, 지문날인 제도룰 퍠자하고 신분증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도록 끈질기게 버티고 직접적이고 계속적으로 문제제기해야 한다. 이 투쟁에서 대중들이 우리를 환호할 때까지 말이다.

1999년 작고하신 계훈제 선생의 경우 평생을 지문등록증 없이 지내셨다고 한다. 어떤 뜻이 있었는지 헤아릴 길 없으나, 이래저래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리들에게 다음을 확인시켜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지문등록증 없이 사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닐 것이라는 것 하나와 당신의 모습에서 우리가 얻은 용기만큼, 우리의 선택이 망설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 하나.

모든 언론이 말하기로는 새 주민등록증의 보급율이 96%나 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행정력의 승리에 고무되겠지만. 여기에서부터 흠집을 낼 필요가 있다. 아직 300만이나 되는 사람이 아직 지문날인을 하지 않고 신분증 발급을 거부했다는 사실! 우리의 싸움은 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문날인거부자 100인 위원회로 돌파한다※

지문날인 거부자 모임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불이익, 예상되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지문날인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채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지속시킬 100명의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 운동을 지속시켜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지문날인 거부자들은 전국 각지에 산개해 있고, 어떤 사람이 지문날인 거부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 둘째, 이런 상황에서 지문날인 거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닥칠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을 완전히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 셋째,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지문날인 거부 운동에 오랜 시간동안 피해를 감수하면서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지문날인 거부자 100인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가칭) 지문날인 거부자 100인 위원회는 주민등록증의 지문날인을 거부하며, 주민등록증 미 발급에 따른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 그리고, 지문날인제도 폐지를 위해 사회적, 법적, 국제적, 대안적 운동을 지속시켜 나가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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