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에 맞선 사회주의자 런던시장
시민들에게서 받은 승리의 월계관
5월 5일 개표결과가 드러날 때쯤, 런던시장 무소속후보 켄 리빙스턴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대다수 런던시민들과 토니 블레어와 신노동당(New Labour, 블레어가 장악한 현 노동당을 이렇게 부른다)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있는 많은 진보적 세계인들은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럴만도 하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20년 넘게 충성을 바쳐온 그 당(노동당)으로부터 책략의 대상이 됐고, 출당당했으며, 제1의 공격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런 그가 결국은 런던시민들로부터 승리의 월계관을 받은 것이다. 리빙스턴,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런던시장 출마를 둘러싼 모든 소동들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켄 리빙스턴과 GLC의 실험
1945년생인 케네쓰 로버트 리빙스턴(Kenneth Robert Livingstone, Ken은 Kenneth의 애칭)은 전문대출신의 기술직 노동자였다. 그는 1960년대말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도 급진화 물결이 일 무렵, 노동당에 입당해 줄곧 지방자치체 활동가로서 당내에서 성장해왔다. 그는 1973년부터 런던광역시의회(Greater London Council, GLC) 의원으로 활동해왔는데, 지금의 그를 있게한 것이 바로 이 GLC였다.
런던시 지자제는 1980년대만 해도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다수당이 시정부를 형성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1981년 노동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리빙스턴이 GLC 내 노동당 지도자로 뽑혔다. 이는 1980년대초 북부 산업지대와 런던시를 중심으로 노동당 내에 급진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높아가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마침 당시는 토니 벤(Tony Benn)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차원의 노동당 개혁 운동이, 벤의 부당수직 경선 실패로 인해 한 풀 꺾이던 상황이었다. 리빙스턴은 갑작스레 런던시 차원에서 노동당 좌파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빙스턴의 활약은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지금도 런던시민들은 '켄' 하면 편리하고 값싼 대중교통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는 공공요금의 대폭 인하, 공공교통체계의 확충 등을 통하여 자가용 없이도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런던시를 만들어냈다. 또한 노동조합 및 유색인종, 여성 등의 사회운동세력들에게 시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참여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다. 또한 런던시가 운용할 수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직역연금기금을 투자재원으로 활용해, 루카스항공사 같이 노동자들이 생산에 대한 자주관리실험을 단체협상을 통해 추구하는 경우나 협동조합의 시도들에 자금을 대주었다.
이러한 재정 지원은 대안적 기업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도 행해졌다. 이 모든 시도들은 당시 대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갈망하던 영국 좌파들로 하여금, 지방자치체에 기반한 사회주의 실험의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중앙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마가렛 대처와의 한 판 승부는 불가피했다. 특히 공공요금 인하와 관련해서는, 세수입의 장악을 통해 진보적 지자체들을 길들이려던 대처의 탄압에 맞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GLC는 북부 산업지대의 다른 노동당 지자체들과 연대해서 어느 정도 승리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 사회주의의 한계도 분명했다. IRA의 민족해방투쟁을 옹호하는 등 대처의 눈에 거슬리는 일만 골라서 했던 리빙스턴의 원대한 실험은, 1986년 대처가 직선 지자체 자체를 없애버리면서 무참히 끝나버렸다.
그 후 리빙스턴은 줄곧 노동당 하원의원석 구석에 틀어박혀 노동당 지도부의 탄압으로부터 의원직을 지키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회주의 신념이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계속 노동당 내 좌파의원그룹인 '사회주의캠페인그룹(Socialist Campaign Group)'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런던의 거리를 지하철로 오가면서 시민들을 만나고 TV 코미디프로그램에 등장하거나 대중신문에 음식점 비평 등을 쓰면서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계속 다져갔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사회주의 정치인, 이는 우파에게나 노동당 지도부에게나 꽤 거북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블레어의 술책 vs 올곧은 시민들의 선택
블레어가 자신의 '현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런던시 지자제를 재건하기로 하면서, 리빙스턴은 다시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가 직선으로 뽑게 될 런던시장 자리에 도전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유일한 방애물은 '붉은 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보인 신노동당 지도부뿐이었다.
일례로, 리빙스턴이 2년여전부터 시장직에 도전하면서 내건 핵심구호는 '런던지하철 민영화 반대'였다. 이 구호는 최근 몇년간 영국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중요한 요구이기도 했다. '제3의 길'이라는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자들인 블레어 내각은, 런던지하철의 문제들을 민영화라는 해법하나로 풀려했고 노동자들과 런던시민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민영화가 궁극적 원인인 것으로 드러난 최근 몇달간의 열차참사는 이러한 여론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했다. 이 문제에 대한 리빙스턴의 대안은, 런던지하철의 공적 소유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대신 뉴욕시에서 지하철 개혁을 위해 실시했던 것처럼 채권을 발행해 혁신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과거 성공적인 공공교통정책의 추진자였던 그의 이미지와 겹쳐 이러한 대안은 그의 인기를 급상승하게 만들었다. 신노동당 지도부도, 보수당도 모두 난처한 얼굴로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빠짐없이 50%가 훨씬 넘는 지지를 받는 급진좌파 정치인을 마주해야 했다.
신노동당 지도부가 이 '사회주의자 망나니'가 수상에 버금가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막으려면, 단지 그가 선거에 나가기 전에 좌절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를 위해 블레어파는 당내 런던시장 후보경선에 기만적인 간접선거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따르면 런던시내 노동당 지구당 당원들이 선거인단 중 1/3을 뽑고, 런던시의 노동조합들이 다시 선거인단 1/3을 뽑으며, 런던에 지역구를 둔 노동당 하원의원들과 유럽의회 의원들이 나머지 1/3을 뽑는다. 이는 결국 당원 및 노동조합원 수백명의 표가 하원의원의 한 표와 같게 계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내에 1인1표제를 적극 도입하여 현대화를 이루겠다고 큰소리치던 블레어로서는 참으로 속보이는 술책이 아닐 수 없었다. 예상대로, 4월에 있었던 당내 경선에서 이 기형적인 선출방식에 따라 블레어측의 프랭크 돕슨 후보 경선자는 그보다 3배 이상의 득표를 한 리빙스턴을 '물리쳤다'.
이에 리빙스턴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신노동당 지도부는 기다렸다는 듯 그를 제명했다. 하지만 그가 노동당을 떠났어도 사람들은 노동당을 비난하지, 그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인기는 40%대라는 안정선을 유지했으며 당원 및 노동조합원들의 공공연한 지지가 계속되어, 신노동당 지도부도 이를 묵인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실 리빙스턴 자신은 노동당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중도좌파로부터 극좌파까지 그의 무소속 출마를 원하는 여론이 워낙 비등했기에 그로서도 더욱 굳세게 마음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블레어파는 리빙스턴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출판 및 강연수입 탈세사례를 찾아내 그에게 도덕적 타격을 주려는가 하면, 청년 급진운동단체들의 전투적인 메이데이 시위를 옹호한 그를 '무정부주의자'로 비난하고 나서는 등 히스테릭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런던시민은 5월 4일 투표에서 그에게 40.3%의 지지를 던져 1위를 선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최다득표자가 과반수를 넘지 못했을 경우에 효력을 갖는 차선 지지후보 기표에서도 압도적인 지지가 확인돼, 리빙스턴은 결국 역사상 첫 직선 런던시장의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
이미 충분히 예상된 이 승리에 대비하기 위해 블레어파는 선거 직전부터 '리빙스턴 다시 길들이기' 전략을 짜야만 했다.
백척간두의 사회주의자 시장
하지만 '붉은 켄'의 승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는 블레어의 '제3의 길'에 반감을 품은 다양한 민중집단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이 지지는 특정한 조직적 세력으로 모이지 못했다. 다만 켄 리빙스턴이라는 한 정치인에 체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한계는 시장선거와 함께 치뤄진 시의원 선거결과에 분명히 나타난다. 노동당 9석, 보수당 9석, 자유민주당 4석, 녹색당 3석 중에서 리빙스턴의 우군은 3석의 녹색당뿐이며, 런던시 노동당은 블레어의 충신들로 채워져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훼방꾼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는 리빙스턴이 아무리 지하철 민영화 반대 등 혁신적인 정책과 예산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시의회 내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 뻔하다. 바로 여기에 사회주의자 시장의 절대절명의 과제가 있다.
현재 그는 이를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최대한 유연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우선 자신이 한 당파의 대표가 아니라 런던시 대연정의 수장임을 자임하면서, 시의원들로 하여금 당파정치보다는 런던시민들의 이해에 충실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넣고 있다. 그는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대항해 싸워온 급진적 흑인지도자 리 재스퍼에게 소수인종보호 및 경찰 감독업무를 맡기는 등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도, 노동당의 여성시의원 닉키 개브론에게 부시장 자리를 약속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30석이 채 안되는 미니 의회에서 벌써부터 의원단을 구성하고 원내총무를 뽑는 등 법석을 떨고있는 기성 정당들에게 이러한 처방이 오랫동안 약발을 발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다 곧은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반대파가 다수인 시의회를 압도하기 위해 예산결정 등에 사회운동세력들, 대중집단들이 참여할 수 있게 참여민주주의 실험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가령 브라질 노동자당이 리우 그란데 두 술주의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예산결정평의회를 건설해 보수적 시의회를 압박할 수도 있다. 런던같은 국제도시에서 이러한 실험이 실시된다면 이는 세계의 미래상을 둘러싼 세기적 접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조직화된 정치부대의 지지가 강력히 요청된다. 포르투 알레그레시에도 분명 노동자당 좌파라는 조직된 세력이 참여민주주의 실험의 거름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리빙스턴의 원래의 전장(戰場), 즉 아직도 영국의 노동계급과 진보적 대중들 다수를 포괄하고 있는 노동당 내에서의 싸움이다. 마침 새 런던시장을 길들일 필요도 있고하여 노동당 지도부 쪽에서는 리빙스턴에 대한 5년간의 출당령을 철회하겠다는 언질이 오가는 가운데, 올해 안에 그의 노동당 재입당이 이뤄지리라는 것이 영국 언론으로부터 확실시되고 있다. 블레어측으로서는 사자를 다시 우리에 가둬두겠다는 의도가 강하지만, 리빙스턴으로서는 마치 토니 벤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당 내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반란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일단 노동당에 남은 동지들에게 돌아가는 게 긴요하다.
그럴 경우에만 노동당 좌파를 중심으로 진보적인 시정(市政) 실험의 조직적 기반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더 나아가 리빙스턴을 지지하는 영국 좌파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신노동당보다 급진적인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보자는 원대한 구상도 나오고 있다.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이며 New Left Review의 편집위원 중 한 사람인 타리크 알리(Tariq Ali)가 대표적인 경우다.
게다가 실제로도 이런 구상이 몇몇 개인들의 몽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자라나고 있다. 이번에 런던시의회에 3명의 의원을 진출시킨 녹색당은 리빙스턴과 함께, 시티(City, 런던의 국제금융가)의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런던시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녹색당 시장후보로 나섰고 새 시정부의 환경담당으로 내정돼 있는 대런 존슨(Darren Johnson)은 사회주의세력과 생태주의세력이 손잡는 적-녹연합 형태의 새 정치세력 형성에 대해 운을 띄우고 있다.
또한 고질적인 분파주의로 유명한 극좌파들 사이에서도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의 실험 등에 고무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극좌파 내에서 항상 독야청청하던 사회주의노동자당(국내에 '국제사회주의'(IS) 경향으로 잘 알려져 있음)이 주동이 되어, 각 분파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영국공산당 잔류파, 노동당을 탈당한 좌파 등이 모여 런던사회주의연합(London Socilaist Alliance)이라는 전선체가 결성됐고, 이 틀을 통해 영국 극좌파는 모처럼 하나의 대오로 런던시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이들은 비록 한명의 시의원도 배출하지 못했지만 몇몇 선거구에서 노동당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정도로는 선전했다.
켄 리빙스턴이라는 대중적 구심의 등장이 이러한 변화가 비롯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으며, 일단 대승적 실험의 첫 걸음을 내딛은 극좌파가 이번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란 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희망들을 보다 넓은 틀에서 아우르기 위해서도 일단은 리빙스턴의 노동당 재입당과 그 이후의 당내투쟁이 중요하다. 노동당을 떠난 당내 좌파 중에서는 노동당 창당이후 처음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한 정치인을 계기로, 노동당 안팎의 힘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 우선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탄생지, 그 곳에서 벌어질 신자유주의 vs '제 3의 길' vs 사회주의의 이 싸움에 우리 모두 주목해보자.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좌파의 대안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이는 분명 일정한 영감을 던져줄 것이다(가령, 자본주의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서 지방자치제가 중요한 전장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 그런 점에서 리빙스턴과 영국 진보세력의 투쟁은 결코 '남의 집 싸움'이 아니다.
5월 5일 개표결과가 드러날 때쯤, 런던시장 무소속후보 켄 리빙스턴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대다수 런던시민들과 토니 블레어와 신노동당(New Labour, 블레어가 장악한 현 노동당을 이렇게 부른다)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있는 많은 진보적 세계인들은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럴만도 하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20년 넘게 충성을 바쳐온 그 당(노동당)으로부터 책략의 대상이 됐고, 출당당했으며, 제1의 공격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런 그가 결국은 런던시민들로부터 승리의 월계관을 받은 것이다. 리빙스턴,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런던시장 출마를 둘러싼 모든 소동들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켄 리빙스턴과 GLC의 실험
1945년생인 케네쓰 로버트 리빙스턴(Kenneth Robert Livingstone, Ken은 Kenneth의 애칭)은 전문대출신의 기술직 노동자였다. 그는 1960년대말 영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도 급진화 물결이 일 무렵, 노동당에 입당해 줄곧 지방자치체 활동가로서 당내에서 성장해왔다. 그는 1973년부터 런던광역시의회(Greater London Council, GLC) 의원으로 활동해왔는데, 지금의 그를 있게한 것이 바로 이 GLC였다.
런던시 지자제는 1980년대만 해도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다수당이 시정부를 형성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1981년 노동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리빙스턴이 GLC 내 노동당 지도자로 뽑혔다. 이는 1980년대초 북부 산업지대와 런던시를 중심으로 노동당 내에 급진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높아가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마침 당시는 토니 벤(Tony Benn)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차원의 노동당 개혁 운동이, 벤의 부당수직 경선 실패로 인해 한 풀 꺾이던 상황이었다. 리빙스턴은 갑작스레 런던시 차원에서 노동당 좌파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빙스턴의 활약은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지금도 런던시민들은 '켄' 하면 편리하고 값싼 대중교통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는 공공요금의 대폭 인하, 공공교통체계의 확충 등을 통하여 자가용 없이도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런던시를 만들어냈다. 또한 노동조합 및 유색인종, 여성 등의 사회운동세력들에게 시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참여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다. 또한 런던시가 운용할 수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직역연금기금을 투자재원으로 활용해, 루카스항공사 같이 노동자들이 생산에 대한 자주관리실험을 단체협상을 통해 추구하는 경우나 협동조합의 시도들에 자금을 대주었다.
이러한 재정 지원은 대안적 기업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도 행해졌다. 이 모든 시도들은 당시 대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갈망하던 영국 좌파들로 하여금, 지방자치체에 기반한 사회주의 실험의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중앙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마가렛 대처와의 한 판 승부는 불가피했다. 특히 공공요금 인하와 관련해서는, 세수입의 장악을 통해 진보적 지자체들을 길들이려던 대처의 탄압에 맞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GLC는 북부 산업지대의 다른 노동당 지자체들과 연대해서 어느 정도 승리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 사회주의의 한계도 분명했다. IRA의 민족해방투쟁을 옹호하는 등 대처의 눈에 거슬리는 일만 골라서 했던 리빙스턴의 원대한 실험은, 1986년 대처가 직선 지자체 자체를 없애버리면서 무참히 끝나버렸다.
그 후 리빙스턴은 줄곧 노동당 하원의원석 구석에 틀어박혀 노동당 지도부의 탄압으로부터 의원직을 지키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회주의 신념이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계속 노동당 내 좌파의원그룹인 '사회주의캠페인그룹(Socialist Campaign Group)'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런던의 거리를 지하철로 오가면서 시민들을 만나고 TV 코미디프로그램에 등장하거나 대중신문에 음식점 비평 등을 쓰면서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계속 다져갔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사회주의 정치인, 이는 우파에게나 노동당 지도부에게나 꽤 거북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블레어의 술책 vs 올곧은 시민들의 선택
블레어가 자신의 '현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런던시 지자제를 재건하기로 하면서, 리빙스턴은 다시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가 직선으로 뽑게 될 런던시장 자리에 도전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유일한 방애물은 '붉은 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으로 보인 신노동당 지도부뿐이었다.
일례로, 리빙스턴이 2년여전부터 시장직에 도전하면서 내건 핵심구호는 '런던지하철 민영화 반대'였다. 이 구호는 최근 몇년간 영국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중요한 요구이기도 했다. '제3의 길'이라는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자들인 블레어 내각은, 런던지하철의 문제들을 민영화라는 해법하나로 풀려했고 노동자들과 런던시민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민영화가 궁극적 원인인 것으로 드러난 최근 몇달간의 열차참사는 이러한 여론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했다. 이 문제에 대한 리빙스턴의 대안은, 런던지하철의 공적 소유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대신 뉴욕시에서 지하철 개혁을 위해 실시했던 것처럼 채권을 발행해 혁신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과거 성공적인 공공교통정책의 추진자였던 그의 이미지와 겹쳐 이러한 대안은 그의 인기를 급상승하게 만들었다. 신노동당 지도부도, 보수당도 모두 난처한 얼굴로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빠짐없이 50%가 훨씬 넘는 지지를 받는 급진좌파 정치인을 마주해야 했다.
신노동당 지도부가 이 '사회주의자 망나니'가 수상에 버금가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막으려면, 단지 그가 선거에 나가기 전에 좌절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를 위해 블레어파는 당내 런던시장 후보경선에 기만적인 간접선거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따르면 런던시내 노동당 지구당 당원들이 선거인단 중 1/3을 뽑고, 런던시의 노동조합들이 다시 선거인단 1/3을 뽑으며, 런던에 지역구를 둔 노동당 하원의원들과 유럽의회 의원들이 나머지 1/3을 뽑는다. 이는 결국 당원 및 노동조합원 수백명의 표가 하원의원의 한 표와 같게 계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내에 1인1표제를 적극 도입하여 현대화를 이루겠다고 큰소리치던 블레어로서는 참으로 속보이는 술책이 아닐 수 없었다. 예상대로, 4월에 있었던 당내 경선에서 이 기형적인 선출방식에 따라 블레어측의 프랭크 돕슨 후보 경선자는 그보다 3배 이상의 득표를 한 리빙스턴을 '물리쳤다'.
이에 리빙스턴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신노동당 지도부는 기다렸다는 듯 그를 제명했다. 하지만 그가 노동당을 떠났어도 사람들은 노동당을 비난하지, 그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인기는 40%대라는 안정선을 유지했으며 당원 및 노동조합원들의 공공연한 지지가 계속되어, 신노동당 지도부도 이를 묵인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실 리빙스턴 자신은 노동당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중도좌파로부터 극좌파까지 그의 무소속 출마를 원하는 여론이 워낙 비등했기에 그로서도 더욱 굳세게 마음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블레어파는 리빙스턴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출판 및 강연수입 탈세사례를 찾아내 그에게 도덕적 타격을 주려는가 하면, 청년 급진운동단체들의 전투적인 메이데이 시위를 옹호한 그를 '무정부주의자'로 비난하고 나서는 등 히스테릭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런던시민은 5월 4일 투표에서 그에게 40.3%의 지지를 던져 1위를 선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최다득표자가 과반수를 넘지 못했을 경우에 효력을 갖는 차선 지지후보 기표에서도 압도적인 지지가 확인돼, 리빙스턴은 결국 역사상 첫 직선 런던시장의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
이미 충분히 예상된 이 승리에 대비하기 위해 블레어파는 선거 직전부터 '리빙스턴 다시 길들이기' 전략을 짜야만 했다.
백척간두의 사회주의자 시장
하지만 '붉은 켄'의 승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는 블레어의 '제3의 길'에 반감을 품은 다양한 민중집단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이 지지는 특정한 조직적 세력으로 모이지 못했다. 다만 켄 리빙스턴이라는 한 정치인에 체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한계는 시장선거와 함께 치뤄진 시의원 선거결과에 분명히 나타난다. 노동당 9석, 보수당 9석, 자유민주당 4석, 녹색당 3석 중에서 리빙스턴의 우군은 3석의 녹색당뿐이며, 런던시 노동당은 블레어의 충신들로 채워져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훼방꾼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는 리빙스턴이 아무리 지하철 민영화 반대 등 혁신적인 정책과 예산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시의회 내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 뻔하다. 바로 여기에 사회주의자 시장의 절대절명의 과제가 있다.
현재 그는 이를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최대한 유연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우선 자신이 한 당파의 대표가 아니라 런던시 대연정의 수장임을 자임하면서, 시의원들로 하여금 당파정치보다는 런던시민들의 이해에 충실하도록 여론의 압력을 넣고 있다. 그는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대항해 싸워온 급진적 흑인지도자 리 재스퍼에게 소수인종보호 및 경찰 감독업무를 맡기는 등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도, 노동당의 여성시의원 닉키 개브론에게 부시장 자리를 약속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30석이 채 안되는 미니 의회에서 벌써부터 의원단을 구성하고 원내총무를 뽑는 등 법석을 떨고있는 기성 정당들에게 이러한 처방이 오랫동안 약발을 발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다 곧은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반대파가 다수인 시의회를 압도하기 위해 예산결정 등에 사회운동세력들, 대중집단들이 참여할 수 있게 참여민주주의 실험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가령 브라질 노동자당이 리우 그란데 두 술주의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예산결정평의회를 건설해 보수적 시의회를 압박할 수도 있다. 런던같은 국제도시에서 이러한 실험이 실시된다면 이는 세계의 미래상을 둘러싼 세기적 접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조직화된 정치부대의 지지가 강력히 요청된다. 포르투 알레그레시에도 분명 노동자당 좌파라는 조직된 세력이 참여민주주의 실험의 거름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리빙스턴의 원래의 전장(戰場), 즉 아직도 영국의 노동계급과 진보적 대중들 다수를 포괄하고 있는 노동당 내에서의 싸움이다. 마침 새 런던시장을 길들일 필요도 있고하여 노동당 지도부 쪽에서는 리빙스턴에 대한 5년간의 출당령을 철회하겠다는 언질이 오가는 가운데, 올해 안에 그의 노동당 재입당이 이뤄지리라는 것이 영국 언론으로부터 확실시되고 있다. 블레어측으로서는 사자를 다시 우리에 가둬두겠다는 의도가 강하지만, 리빙스턴으로서는 마치 토니 벤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당 내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반란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일단 노동당에 남은 동지들에게 돌아가는 게 긴요하다.
그럴 경우에만 노동당 좌파를 중심으로 진보적인 시정(市政) 실험의 조직적 기반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더 나아가 리빙스턴을 지지하는 영국 좌파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신노동당보다 급진적인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보자는 원대한 구상도 나오고 있다.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이며 New Left Review의 편집위원 중 한 사람인 타리크 알리(Tariq Ali)가 대표적인 경우다.
게다가 실제로도 이런 구상이 몇몇 개인들의 몽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자라나고 있다. 이번에 런던시의회에 3명의 의원을 진출시킨 녹색당은 리빙스턴과 함께, 시티(City, 런던의 국제금융가)의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런던시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녹색당 시장후보로 나섰고 새 시정부의 환경담당으로 내정돼 있는 대런 존슨(Darren Johnson)은 사회주의세력과 생태주의세력이 손잡는 적-녹연합 형태의 새 정치세력 형성에 대해 운을 띄우고 있다.
또한 고질적인 분파주의로 유명한 극좌파들 사이에서도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의 실험 등에 고무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극좌파 내에서 항상 독야청청하던 사회주의노동자당(국내에 '국제사회주의'(IS) 경향으로 잘 알려져 있음)이 주동이 되어, 각 분파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영국공산당 잔류파, 노동당을 탈당한 좌파 등이 모여 런던사회주의연합(London Socilaist Alliance)이라는 전선체가 결성됐고, 이 틀을 통해 영국 극좌파는 모처럼 하나의 대오로 런던시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이들은 비록 한명의 시의원도 배출하지 못했지만 몇몇 선거구에서 노동당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정도로는 선전했다.
켄 리빙스턴이라는 대중적 구심의 등장이 이러한 변화가 비롯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으며, 일단 대승적 실험의 첫 걸음을 내딛은 극좌파가 이번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란 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희망들을 보다 넓은 틀에서 아우르기 위해서도 일단은 리빙스턴의 노동당 재입당과 그 이후의 당내투쟁이 중요하다. 노동당을 떠난 당내 좌파 중에서는 노동당 창당이후 처음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한 정치인을 계기로, 노동당 안팎의 힘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 우선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탄생지, 그 곳에서 벌어질 신자유주의 vs '제 3의 길' vs 사회주의의 이 싸움에 우리 모두 주목해보자.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좌파의 대안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이는 분명 일정한 영감을 던져줄 것이다(가령, 자본주의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서 지방자치제가 중요한 전장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 그런 점에서 리빙스턴과 영국 진보세력의 투쟁은 결코 '남의 집 싸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