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희의 육아일기 ②
<b>좀도둑과 아이들 2000년 4월 25일 화요일</b>
시고모님 댁에 결혼식이 있어 부산에 내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셋째 시누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 안방문이 안으로 잠겨있어 이상하다며 열쇠로 문을 여는 순간…. 그 처참한 광경이라니.
옷을 비롯한 집안물건이 몽땅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4년전 우리가 신림동 살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만삭인 내가 너무도 놀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였다. 다행이도 좀도둑이라(어린 학생들 같음) 아무렇게나 숨겨놓은(?) 현금을 발견 못하고 동전이 들어있던 저금통과 CD플레이어만 들고간 것이다.
나와 시누들이 놀라서 수선을 피우는 사이, 산하와 병하가 겁에 질려(아마도 분위기로 감을 잡은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운다. 아이구, 놀랬어? 산하야 병하야 엄마하고 고모야 하고 지금 보물찾기 하는거야. 막내 고모가 달래도 불안한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없어진 물건은 시누이 부부의 결혼반지다. 통장과 도장이 나란히 들어있었지만 가져가진 않았다. 추측컨대 소행이 어린애들 짓이다.
뒤늦게 도착한 남정네들(종권, 고모부)과 주인아저씨가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이 방 저 방을 둘러보고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겠다는 다짐을 하고 경찰이 돌아가자 흩어진 옷가지를 정리했다. 정말 기분 나쁘네.
세수를 하러나간 시누가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다.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미치겠다야, 욕실에…'똥'쌌다! 이것들이 똥싸고 그 위에다가 걸레를 덮었다."
어머, 못살아. 어떡해.
"언니야, 니 그거 만졌나? 근데, 얼마나 쌌데? 많이 쌌나?"
"킥킥… 지금 그게 궁금해?"
기분 나쁜 건 나쁜 거지만, 웃음이 나온다. 씩씩한 남자들이 치우고 나서 그걸로 끝인줄 알았다. 깨끗하게 치웠는지를 거듭 확인한 막내 시누가 욕실에서 나오더니,
"언니야, 때 타올에다가 똥 닦았다!"
뒷처리까지… 탄성은 절정에 달했다. 우째 이런 일이!!
속설에 똥을 싸고나오면 잡히지 않는다나, 해서 그랬을 거라며 맥주를 마시면서 기분을 좀 달랬다(술은 다들 잘 마시더라).
도둑이 든 사실과 '똥' 때문에 잊은게 있었다는 것을 안 건 새벽이었다. 잘 자고있던 산하가 갑자기 울면서 나를 꼭 껴안는다. 흐느끼는 정도가 뭔가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아서 산하야, 무서운 꿈 꿨어? 가느다란 목소리로 "어, 엄마-." 착 달라붙는다. 팔이 저려서 빼야겠는데…. 머리를 쓸어주다보니 땀이 촉촉하다. 산하 물 마실래? 고개를 끄덕인다. 일어나려고 하자 '어헝-' 가슴에 딱 붙어서 안 떨어진다. 잔뜩 겁먹은 태도다.
손을 잡고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다. 불을 끄려고 했더니 손을 내 저으며 기겁을 한다. "안돼여, 끄지마!" 켜 놓고 잘까? 끄덕끄덕, 얼른 침대위로 올라가 눕는다.
팔이 아파서 자리를 바꿨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잘 생각을 안하기에 등을 토닥이며 노래를 불러줬다. 잘자라 내아기이 내애 귀여운 아아기이~
잠이 들었다고 느꼈는데 산하가 자꾸만 내 얼굴을 자기쪽으로 잡아돌린다. "엄마, 나 봐. 나 좀 보고 자."
피곤함과 아이의 보챔이 더해 슬그머니 짜증이 나 팔을 빼버리자, 아이가 더 달려든다.
(산하는 겁이 날 때나 벌을 줄 때 방에 혼자두면 극도로 불안을 느낀다) 다시 자리를 바꿔서 팔베게를 하고 안아주자 눈물을 닦더니 내 손을 꼭 잡는다. 시계를 보니 6시다.
"저기, 어, 벼에셔(벽에서) 개물이 나와쪄." 벽을 가리키며 속삭인다. 괜찮아. 산하가 꿈을 꿨나봐. 이제 괜찮아, 괜찮지?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아이들이 많이 놀랬을 거란 생각을 못했다. 아이들은 분위기만으로 감지한다. 종권이와 내가 장난삼아 말싸움을 해도 "싸우지마" 하며 정색을 하던 산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냥 좋아서 사달라고 떼를 쓰는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로봇 장난감과 만화를 보며 공룡그림을 보고 칼싸움을 하며, 산하는 엄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제 정말 괜찮아. 엄마가 안아줄게.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늦은 잠에 빠져들었다.
<b>사랑의 표현방법 2000년 4월 27일 목요일</b>
"귀 잡고 눈 감고, 쪽- 이건 사탕뽀뽀야."
"음- 달콩해!"
언제부턴가 '달콤'이 '달콩'으로 소리나는 산하의 발음이 너무 귀여워서 정정을 못해주고 있다.
약간은 농도짙은(?), 보드라운 아이와의 입맞춤은 언제해도 기분 좋다. 가랑비를 맞아가면서 장화를 신고 물장난을 하던 아이가 꺄아 웃는다.
아이에게 사랑표현을 하는 것은 쉽고도 즐거운 일이다.
"엄마! 엄마는 나를 언마컴(얼만큼) 샤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와! 정말? 고마셥니다아!"
"산하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는데?"
"하뉼마큼, 땅마큼!"(두 팔을 벌려 머리위로 모은다)
몰두하면서 노느라 양볼이 상기된 모습이, 비에 젖은 잔디만큼이나 싱그러워 보인다.
칭찬과 사랑으로 크는게 아이들이다. 단순히 '기분 좋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담겨 있다고 본다.
서로가 기분이 좋아 쪽쪽 뽀뽀를 하다보니 산하가 칭찬 받을 때와 엄마의 칭찬방법이 몇 가지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절한 칭찬은 사랑 표현의 하나이다.
스스로 세수를 하거나 양치를 했을 때,
"와! 우리 산하 정말 착하다. 이젠 다 컸구나."
블록으로 장난감 로봇(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맞춰 안정감 있는 구도로 잘 만든다)을 만들어
"엄마, 선물이야." 하면
"음, 고마워요. 엄마 주려고 만들었어? 정말 멋진데!"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서 인사를 잘 하면
"야, 산하는 인사도 잘 하는구나. 멋져!"
설거지를 하겠다며 바닥에 물을 질질 흘리며 옷을 다 적셔도
"산하가 엄마를 도와줬구나! 고마워요."
사실 이 이상 어떻게 할까하는 마음도 있긴 하다. 하지만 뭔가 아이에게 특별한 느낌을 남길 수 있는 칭찬방법을 개발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왜냐면 늘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하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하를 감동시킬 수 있는 칭찬과 사랑표현 방법. 특별한 '말'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요즘 산하는 엄마의 일방적이고도 과격한(!) 스킨쉽을 당한다. 사실 그것은 언어로 아이를 감동시킬 자신감을 대신하고자 하는 엄마의 개김성(?)에 기인하지만 '몸의 언어'가 더 아이와의 유대감을 높여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혹 간지럼을 하다가 모서리에 머리를 찧긴 하지만 심드렁한 오후에 그렇게 한바탕 웃고나면, 둘 다 생기가 돌고 밥도 잘 먹게 된다. 원초적인 몸의 언어가 발휘하는 효과의 하나다.
<b> '이야기 밥' 어린이 도서관 2000년 5월 3일 수요일</b>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참석해서-
구로에는 어린이전문서점이나 '어린이도서관'이 전용으로 설치된 곳이 '학교'라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학교는 아이들이 머물러 있으면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글짓기학원이나 과외를 통해서 책을 접하는 게 고작이고 설령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구를 벗어나 큰 서점엘 가야 하기 때문에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않은 실정이다. 빌려보면 되잖아? 뭐하러 비싸게 돈주고 책을 사?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대여점이 가까이 있길 희망할 뿐이다. 아울러 저렴한 곳이길.
외국의 경우처럼 도서관이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만들어져서 시민들에게 늘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해도, '도서관'이란 공간이 책을 끼고 외우거나 시험을 대비한 수험생 전용으로 쓰여져 아이들이 도서관에 대한 편견을 갖게되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다행히 부모가 주체가 되어 '동화읽는 어른 모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녀교육을 포함한 감성개발과 다양하고도 폭넓게 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만들어 간다기에, 오늘 그 모임 첫 회에 참석했다.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의 부모를 위한 글쓰기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의외로 자녀교육이란 측면에서는 너무도 많은 엄마들이(대개 엄마다, 아빠는 없다) 고민을 하고, 실전에도 참여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교육적 측면이란 학교에서 혹은 글쓰기(논술 대비)에서 어떻게 좋은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방법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한 부분이었음을, 이후에 토론을 하면서 알 수 있었다. 대개의 부모들이 바라는 책이란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할 뿐이다. 실제로 학교 교육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몇명 되진 않았지만 오늘 모임을 하면서 느낀 것은, 다수보다 소수이지만 그 소수인 엄마들이 바라는 책읽기의 올바른 관점을 맞춰줄 수 있는 도서관이, 양보다 질적인 측면에서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이의 책 읽어주기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좋아 밖에 나가 뛰어놀다 보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서야 몇 권을 읽어주는 게 고작이다. 읽는 양이 뭐 중요할까? 단 한권을 읽더라도 아이가 그 책에, 내용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단지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가까이하고, 좋은 책을 접하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 전에 잠깐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초등학교 수준까지의 바른 글쓰기와 지도방법은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려하지 않았던 점도 있다.
책보다는 지금의 산하가 뛰어놀 시간이 더 필요하고 그 연령에 맞는 놀이를 함께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책은 '맛있는(특별한) 간식' 정도로 만족하고 싶다. 아이도 그것을 더 바랄 것이다.
모든 것의 '열성'이 지나치면 '극성'이 된다. 아이나 엄마가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책을 접하려면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눈높이'가 필요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 읽기, 그리고 그 눈높이에 맞는 엄마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재미와 학습이 보태지는 '동화 읽는 어른'들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고모님 댁에 결혼식이 있어 부산에 내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셋째 시누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 안방문이 안으로 잠겨있어 이상하다며 열쇠로 문을 여는 순간…. 그 처참한 광경이라니.
옷을 비롯한 집안물건이 몽땅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4년전 우리가 신림동 살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만삭인 내가 너무도 놀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였다. 다행이도 좀도둑이라(어린 학생들 같음) 아무렇게나 숨겨놓은(?) 현금을 발견 못하고 동전이 들어있던 저금통과 CD플레이어만 들고간 것이다.
나와 시누들이 놀라서 수선을 피우는 사이, 산하와 병하가 겁에 질려(아마도 분위기로 감을 잡은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운다. 아이구, 놀랬어? 산하야 병하야 엄마하고 고모야 하고 지금 보물찾기 하는거야. 막내 고모가 달래도 불안한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없어진 물건은 시누이 부부의 결혼반지다. 통장과 도장이 나란히 들어있었지만 가져가진 않았다. 추측컨대 소행이 어린애들 짓이다.
뒤늦게 도착한 남정네들(종권, 고모부)과 주인아저씨가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이 방 저 방을 둘러보고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겠다는 다짐을 하고 경찰이 돌아가자 흩어진 옷가지를 정리했다. 정말 기분 나쁘네.
세수를 하러나간 시누가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다.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미치겠다야, 욕실에…'똥'쌌다! 이것들이 똥싸고 그 위에다가 걸레를 덮었다."
어머, 못살아. 어떡해.
"언니야, 니 그거 만졌나? 근데, 얼마나 쌌데? 많이 쌌나?"
"킥킥… 지금 그게 궁금해?"
기분 나쁜 건 나쁜 거지만, 웃음이 나온다. 씩씩한 남자들이 치우고 나서 그걸로 끝인줄 알았다. 깨끗하게 치웠는지를 거듭 확인한 막내 시누가 욕실에서 나오더니,
"언니야, 때 타올에다가 똥 닦았다!"
뒷처리까지… 탄성은 절정에 달했다. 우째 이런 일이!!
속설에 똥을 싸고나오면 잡히지 않는다나, 해서 그랬을 거라며 맥주를 마시면서 기분을 좀 달랬다(술은 다들 잘 마시더라).
도둑이 든 사실과 '똥' 때문에 잊은게 있었다는 것을 안 건 새벽이었다. 잘 자고있던 산하가 갑자기 울면서 나를 꼭 껴안는다. 흐느끼는 정도가 뭔가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아서 산하야, 무서운 꿈 꿨어? 가느다란 목소리로 "어, 엄마-." 착 달라붙는다. 팔이 저려서 빼야겠는데…. 머리를 쓸어주다보니 땀이 촉촉하다. 산하 물 마실래? 고개를 끄덕인다. 일어나려고 하자 '어헝-' 가슴에 딱 붙어서 안 떨어진다. 잔뜩 겁먹은 태도다.
손을 잡고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다. 불을 끄려고 했더니 손을 내 저으며 기겁을 한다. "안돼여, 끄지마!" 켜 놓고 잘까? 끄덕끄덕, 얼른 침대위로 올라가 눕는다.
팔이 아파서 자리를 바꿨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잘 생각을 안하기에 등을 토닥이며 노래를 불러줬다. 잘자라 내아기이 내애 귀여운 아아기이~
잠이 들었다고 느꼈는데 산하가 자꾸만 내 얼굴을 자기쪽으로 잡아돌린다. "엄마, 나 봐. 나 좀 보고 자."
피곤함과 아이의 보챔이 더해 슬그머니 짜증이 나 팔을 빼버리자, 아이가 더 달려든다.
(산하는 겁이 날 때나 벌을 줄 때 방에 혼자두면 극도로 불안을 느낀다) 다시 자리를 바꿔서 팔베게를 하고 안아주자 눈물을 닦더니 내 손을 꼭 잡는다. 시계를 보니 6시다.
"저기, 어, 벼에셔(벽에서) 개물이 나와쪄." 벽을 가리키며 속삭인다. 괜찮아. 산하가 꿈을 꿨나봐. 이제 괜찮아, 괜찮지?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아이들이 많이 놀랬을 거란 생각을 못했다. 아이들은 분위기만으로 감지한다. 종권이와 내가 장난삼아 말싸움을 해도 "싸우지마" 하며 정색을 하던 산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냥 좋아서 사달라고 떼를 쓰는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로봇 장난감과 만화를 보며 공룡그림을 보고 칼싸움을 하며, 산하는 엄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제 정말 괜찮아. 엄마가 안아줄게.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늦은 잠에 빠져들었다.
<b>사랑의 표현방법 2000년 4월 27일 목요일</b>
"귀 잡고 눈 감고, 쪽- 이건 사탕뽀뽀야."
"음- 달콩해!"
언제부턴가 '달콤'이 '달콩'으로 소리나는 산하의 발음이 너무 귀여워서 정정을 못해주고 있다.
약간은 농도짙은(?), 보드라운 아이와의 입맞춤은 언제해도 기분 좋다. 가랑비를 맞아가면서 장화를 신고 물장난을 하던 아이가 꺄아 웃는다.
아이에게 사랑표현을 하는 것은 쉽고도 즐거운 일이다.
"엄마! 엄마는 나를 언마컴(얼만큼) 샤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와! 정말? 고마셥니다아!"
"산하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는데?"
"하뉼마큼, 땅마큼!"(두 팔을 벌려 머리위로 모은다)
몰두하면서 노느라 양볼이 상기된 모습이, 비에 젖은 잔디만큼이나 싱그러워 보인다.
칭찬과 사랑으로 크는게 아이들이다. 단순히 '기분 좋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담겨 있다고 본다.
서로가 기분이 좋아 쪽쪽 뽀뽀를 하다보니 산하가 칭찬 받을 때와 엄마의 칭찬방법이 몇 가지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절한 칭찬은 사랑 표현의 하나이다.
스스로 세수를 하거나 양치를 했을 때,
"와! 우리 산하 정말 착하다. 이젠 다 컸구나."
블록으로 장난감 로봇(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맞춰 안정감 있는 구도로 잘 만든다)을 만들어
"엄마, 선물이야." 하면
"음, 고마워요. 엄마 주려고 만들었어? 정말 멋진데!"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서 인사를 잘 하면
"야, 산하는 인사도 잘 하는구나. 멋져!"
설거지를 하겠다며 바닥에 물을 질질 흘리며 옷을 다 적셔도
"산하가 엄마를 도와줬구나! 고마워요."
사실 이 이상 어떻게 할까하는 마음도 있긴 하다. 하지만 뭔가 아이에게 특별한 느낌을 남길 수 있는 칭찬방법을 개발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왜냐면 늘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하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하를 감동시킬 수 있는 칭찬과 사랑표현 방법. 특별한 '말'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요즘 산하는 엄마의 일방적이고도 과격한(!) 스킨쉽을 당한다. 사실 그것은 언어로 아이를 감동시킬 자신감을 대신하고자 하는 엄마의 개김성(?)에 기인하지만 '몸의 언어'가 더 아이와의 유대감을 높여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혹 간지럼을 하다가 모서리에 머리를 찧긴 하지만 심드렁한 오후에 그렇게 한바탕 웃고나면, 둘 다 생기가 돌고 밥도 잘 먹게 된다. 원초적인 몸의 언어가 발휘하는 효과의 하나다.
<b> '이야기 밥' 어린이 도서관 2000년 5월 3일 수요일</b>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참석해서-
구로에는 어린이전문서점이나 '어린이도서관'이 전용으로 설치된 곳이 '학교'라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학교는 아이들이 머물러 있으면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글짓기학원이나 과외를 통해서 책을 접하는 게 고작이고 설령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구를 벗어나 큰 서점엘 가야 하기 때문에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않은 실정이다. 빌려보면 되잖아? 뭐하러 비싸게 돈주고 책을 사?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대여점이 가까이 있길 희망할 뿐이다. 아울러 저렴한 곳이길.
외국의 경우처럼 도서관이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만들어져서 시민들에게 늘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해도, '도서관'이란 공간이 책을 끼고 외우거나 시험을 대비한 수험생 전용으로 쓰여져 아이들이 도서관에 대한 편견을 갖게되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다행히 부모가 주체가 되어 '동화읽는 어른 모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녀교육을 포함한 감성개발과 다양하고도 폭넓게 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만들어 간다기에, 오늘 그 모임 첫 회에 참석했다.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의 부모를 위한 글쓰기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의외로 자녀교육이란 측면에서는 너무도 많은 엄마들이(대개 엄마다, 아빠는 없다) 고민을 하고, 실전에도 참여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교육적 측면이란 학교에서 혹은 글쓰기(논술 대비)에서 어떻게 좋은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방법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한 부분이었음을, 이후에 토론을 하면서 알 수 있었다. 대개의 부모들이 바라는 책이란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할 뿐이다. 실제로 학교 교육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몇명 되진 않았지만 오늘 모임을 하면서 느낀 것은, 다수보다 소수이지만 그 소수인 엄마들이 바라는 책읽기의 올바른 관점을 맞춰줄 수 있는 도서관이, 양보다 질적인 측면에서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이의 책 읽어주기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좋아 밖에 나가 뛰어놀다 보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서야 몇 권을 읽어주는 게 고작이다. 읽는 양이 뭐 중요할까? 단 한권을 읽더라도 아이가 그 책에, 내용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단지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가까이하고, 좋은 책을 접하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 전에 잠깐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초등학교 수준까지의 바른 글쓰기와 지도방법은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려하지 않았던 점도 있다.
책보다는 지금의 산하가 뛰어놀 시간이 더 필요하고 그 연령에 맞는 놀이를 함께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책은 '맛있는(특별한) 간식' 정도로 만족하고 싶다. 아이도 그것을 더 바랄 것이다.
모든 것의 '열성'이 지나치면 '극성'이 된다. 아이나 엄마가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책을 접하려면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눈높이'가 필요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 읽기, 그리고 그 눈높이에 맞는 엄마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재미와 학습이 보태지는 '동화 읽는 어른'들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