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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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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의 말살, 한일투자협정 '진지조항'

류미경 | WTO반대국민행동 사무국
한국과 일본을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음모가 슬쩍 완성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기간의 몇몇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원샷'에서부터 두 정상 사이에 오고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온통 '정상회담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또다른 정상회담은 어느새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인고 하니, 지난 5월 29일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모리 요시이 일본 총리간 회담이 바로 그것이다. 회담을 통해 그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일관계 개선에 관해 논의하였음은 물론, 투자협정을 연내에 조속히 체결하고, 차기 WTO 협상과 관련한 입장을 맞추는 등 그동안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이라는 슬로건아래 구축해왔던 한일관계를 더욱 공고히할 것을 약속하였다.
슬쩍 잊어버리기에는 그냥 놓쳐서는 안 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이 오고 갔다.

실제로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상호간 투자협정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체결을 위한 실무회담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1999년 9월, 2000년 2월에 도쿄와 서울에서 각각 열렸던 두 차례에 걸친 본회담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외국인 투자 제한업종에 대한 약간의 의견차이를 남겨두고 대부분 사항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고, 한두차례 실무협상을 진행하면 연내에 체결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고 이미 공공연하게 선언된 상태이다.
때를 맞춰 바로 전 24일에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의 공동주최로 열린 토론회를 통해, 두 국책기관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관한 논의를 공식적인 정부간의 협상으로 진행할 것이 제안되었고, 역시 29일 회담을 통하여 이와 관련된 합의가 이루어졌다. 자유무역협정은 자유화·개방화의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은 것으로, 투자협정을 포함하여 자유로운 무역에 장애가 되는 관세 및 비관세장벽 철폐, 상호인증제도를 도입, 지적소유권의 효과적 보호에 관한 협력 등을 담고 있다. 결국 한일 시장을 일체화시키는 것이다.


양국 정부는 왜 양자간 투자협정/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목을 매는가?

WTO체제는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거래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전통적인 상품거래만을 다루었던 GATT체제보다 더 나아가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까지 포괄범위가 넓어져 지식집약적이고 투기적인, 새로운 자본의 성격에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배력을 무한히 확장하고픈 초국적 자본은 WTO 내의 투자조치협정이나 서비스협정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다. 생산-설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투기성 자본도 보호를 받아야겠고, 투자대상국이 자국 국민경제에 투자가 미칠 영향에 대하여 심사하고, 투자가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지도 못하도록 투자 설립의 전단계에서부터 보호를 받아야겠다고 한다.

게다가 환경/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금지시키고 싶은데, WTO는 여기까지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OECD에서는 이러한 초국적 자본의 욕심 또한 제도적으로 보장하고자, 다자간투자협정(MAI)체결을 시도하였으나 민중들의 거센 저항으로 결국 좌절되었다.
이후 EU 통화통합, 미국의 북미자유무역지대를 전미지역으로 확대(FTAA)하려는 움직임 등,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지역블록이 등장하자, 다자간 협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유무역권을 못 가진 일본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인구고령화, 출생률저하로 소비인원이 감소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필요성과 이른바 '새로운 일본식 경영으로' 비정규직, 실업의 급증, 산재사망, 직업병, 자살 증가로 민중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과 맞물려 있다. 결국 일본은 독자적인 지역블록구축을 위한 '양자간 협정'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한일투자협정'을 시금석으로, 미국/유럽에 대항하기 위한 지역적 기반확보를 시도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그동안 IMF-구제금융, 경제위기를 '외자유치'를 통하여 극복하겠다고 호언해왔다. 이에 따라 최적의 '투자환경'으로 초국적 자본을 유인하기 위하여, 이를 제도적으로 안착화하는 '투자협정'을 체결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해온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남한 시장을 전면 개방하여 초국적 자본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데까지 이어진다. 이에 따라 벌어지는 국제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 시장에 편입하는 것으로, 난항을 타개하겠다는 것이 바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전략'인 것이다.


초국적 자본의 이익에 대한 극한의 안전장치는 밀실에서 마련되고 있다

한일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가 마무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협상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지 공개된 바는 하나도 없다. MAI 협상 내용이 인터넷을 통하여 공개되자, 초국적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면서 민중의 삶에는 치명적인 조항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민중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좌절된 선례가 있는 터라, 실제 협상 텍스트는 꼭꼭 숨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몇가지 단서를 가지고 협정의 기본 골자와 그것이 미칠 파장을 가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서1/
"한일 투자협정은 OECD에서 협상 중인 다자간투자협정(MAI)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 되어, 유례없는 강력한 투자협정이 될 것이다."(한덕수 외통부 통산교섭본부(한덕수 외통부 통상교섭 본부장, 1999.1.23. 니혼케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투자자들의 권리, 이보다 더 보장될 수는 없다!'


MAI 협정의 초안은 미국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즉, MAI는 NAFTA의 세계판이다. 한일 투자협정이 이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의 협정이라고 하니, 알려지지 않은 한일 투자협정의 내용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MAI 초안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초국적 자본의 투자활동에 장벽이 되는 모든 요소를 없애고,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투자한 자본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인 MAI는 다음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한다.

첫째로, '투자'를 광범위하게 개념화하여 모든 투자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를 추구한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민간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상관없이 모두 투자자가 되며 주식, 채권, 지적재산권 등 모든 형태의 자산이, 생산설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초단기성 투기자본까지도 투자로 인정되어 보호받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로, 국가 주권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MAI에 따르면, 개별국가는 특정한 해외직접투자가 자국의 국민경제에 필요한지, 사회적·민중적 이해에 부합하는지를 심사하여 그것의 진입여부를 결정할 수 없게 되며, 국민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특정 경제부분에 대하여 이국인의 소유를 제한한다거나 중소기업 및 농민들에게 보조금 및 대부금을 지원하는 것도 금지된다.

게다가 협정 이행에는 '규제철폐'와 '민영화'가 전제된다. 해외투자자들과 국내투자자들 사이의 차별, 해외투자자들간의 차별은 어떤 경우에서도 금지된다. 한 술 더 떠 투자협정의 긍정적 효과로, 정부가 그토록 선전하는 '기술이전의 효과', '고용증대'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고, 초국적자본의 기업활동에 '국내에서 고용되는 종업원의 최소인원을 정하거나', '특정한 분야에 대한 기술협력을 요구하는 것', '국내에서 획득한 이윤의 일정비율을 국내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것' 등의 요구조건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수용과 보상, 분쟁해결 등의 구조를 만들어 노동운동, 환경운동 등을 합법적으로 탄압할 수 있도록 한다. 투자자나 그의 투자자산에 대해 손실을 입히거나,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정부조처에 대해 해외투자자는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게 된다. 특정기업의 상품이 건강에 유해하거나, 환경을 파괴한다는 판단하에 수입을 금지하는 것, 부당노동행위를 근거로 일정한 제제를 가하는 것은, 투자자의 자산에 대해 손실을 입히는 것으로 간주되어 투자자는 정부를 제소할 수 있고(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하는 것만 허용된다), 정부가 패소하게 되면 손실분만큼을 배상해야 하는 것이다. 투자자의 이익이 민중의 건강권, 환경권의 기본권에 우선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기본권에 파괴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저항도 봉쇄해버리는 것이 바로 MAI이며, 그보다 더 강력하다고 전해지는 것이 한일 투자협정이다.

이상이 흔히 들어오던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국적조항 금지 및 이행의무부과 금지', '정부의 투자자산에 대한 수용(expropriation)과 그에 대한 보상규정', 자본이 직접 정부에 제소할 수 있는 '분쟁과 관련한 조항', ' 자유로운 송금 및 세이프가드 폐지' 등 투자협정이 내포하고 있는 각종 조항들의 실체이다.

▶단서2
"'일한 투자협정의 한 대목으로 노동문제 중재기관이 공평적으로 분쟁을 처리할 것 등을 요구한 '진지규정'을 담아넣도록 일본측이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9.4.4, 니혼케이자이 신문)
" 한국은 특히 일본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일본기업 전용공단을 조성, 세제감면은 물론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투자기업에 배치하겠다는 의시를 일본쪽에 전달했다"(1999.10.25. 동아일보)
⇒ '노동자들의 권리? 최선을 다해 막아라!'


문제의 '진지(眞摯)조항'을 통해 우리는 투자협정이 지니고 있는 반민중성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에서 신청이 있을 경우 문제 해결에 진지하게 대응한다.' '한국은 한국에 진출하는 일본기업의 노동 애로사항을 다룰 별도 협의회를 설치해 준다', '노동문제 중재기관은 공평하게 분쟁을 처리한다' 등이 그 내용이다. 도대체, 현재까지 체결된 어떤 투자협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조항을 일본은 왜 제안했는가? 한국정부는 왜 이를 앞질러 '한국에 진출하는 일본기업을 위한 전용공단을 조성하고, 노동 애로사항을 다룰 협의회에 공무원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한 것일까?

일본 통산성이 한국으로 진출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한국에서의 최대 투자장애는 '노사관계'이며, '노동관련 법이 올바르게 운용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답변이 다수였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의 '일한 민중연대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일본 외무부의 북동아시아과 야나키 기획관을 만나 일본정부가 진지조항을 요구한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에 진출한 수미다 전기에서 1980년대 후반 노동쟁의가 격화되고 일본에까지 와서 말썽을 일으켰는데도, 한국정부는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이번 투자협정을 통해 이같은 의구심을 씻어내려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자신들의 이윤을 무한정 창출하는 데 방해가 되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는 것까지 투자협정을 통하여 보장받으려는 일본 초국적 자본의 '너무하다 싶은' 의도를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에서도 유명한 '철새'자본으로 알려져있는 수미다는, 노조 결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조를 인정하라는 쟁의가 발생하면 곧바로 구사대를 동원하는 등 무자비한 폭력과 집단 해고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이에 대항하는 투쟁의 파고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점점 높아지자, 팩스 한 장을 날려 '폐업'을 통보하고 더 저렴하게 노동력 착취가 가능한 중국으로 옮겨가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에 항의하고 싸워야할 대상이 갑자기 사라져버려, 그들의 본국인 일본으로 가서 투쟁한 것을 일본의 초국적 자본은 '말썽'이며,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침해하는 '과격함'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한국 정부가 제제하지 않을 정도로 노동과 관련된 법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법률을 엄격히 운용하도록 공적 기관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제도자체의 개정을 종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또한 일본의 입장이다.

용역깡패를 투입해도 물러섬 없이, 노조활동을 탄압 말라며 도쿄까지 달려와 투쟁할 수 있는(1997년 12월, 한국후꼬꾸 노동조합의 동경탑 기습시위) 한국의 노동운동. 일본은 이렇게 '신자유주의 반대'까지 주장하는 한국의 민중운동을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아무런 손해 없이 자유로운 투기활동을 펼칠 수 있다고 안심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 만연한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기업-한국노동자 간에 노동쟁의가 발생했을 시에 일본기업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유리할 수 없다는 것은 또한 일본의 초국적 자본에게는 우려의 대상이다.

이러한 일본 투자자들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기 위해서인지, 1999년 12월 노사정위원회를 대표하여 일본을 방문한 이기호 전 노동부장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강연을 통해 자본의 무한착취를 위한 토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음을 선전하며 일본자본의 한국으로의 투자를 호소하였다.
"1970년대 한국에 진출했던 일본기업은 한국의 노조가 너무 힘이 세서 고생이 심했지만, 현재 정부는 위법행위에 대하여 엄중히 대처하고 있다. 최근에 국내 자동차 부품회사(만도기계)에서 불법파업이 발생했으나, 경찰을 투입하여 강경하게 진압했다. 또한, 구조조정을 통하여 노동유연화를 추진했다. 현대자동차에서도 1만명의 정리해고를 성공했고 노동자들의 이직률이 34%에 이르러, 평균 근속연수는 5년 정도로 '종신고용'의 개념은 없어지고 있다..."

이처럼 진지조항은 '노사관계'에 대하여 공평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용불안, 실질임금 삭감을 강요하고도 이에 대해 절대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만약 쟁의행위가 발생할 시에 한국 정부가 '편파적'으로 강경하게 탄압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투자협정, 자유무역 협정 체결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투자협정 체결의 의도가 이렇게 드러난만큼, 우리는 초국적 자본에게는 극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즉각 저지시켜야 할 것이다. 투자협정은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투자에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몇가지 노동자들의 권리 혹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을 삽입한다거나, '진지조항'과 같은 과도한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그것이 지닌 해악성을 제거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러한 것은 투자협정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정부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협상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한일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이 양국의 노동자/민중의 권리, 사회·환경·발전에 미칠 영향을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 민중들과의 연대로, 국제적인 민중연대로 투자협정·자유무역 협정을 포함한, 개방화 자유화를 촉진시키는 제도들에 대한 반대투쟁을 폭넓게 전개하자.
주제어
경제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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