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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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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에 대한 두 글

이슴산 | 편집위원
한국이 금융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김대중 정권 이후부터 불안정 노동이 보편화되고 소득과 자산의 차가 확대되며 빈곤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학계와 언론이 신빈곤층, 근로빈곤과 같은 용어를 생산·유통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중산층 위기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용어법을 정리하여 IMF 이후 사회변화의 대부분을 '양극화'로 해석하는 담론이 유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사회양극화해소국면연대>나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등 시민단체와 그 소속 인사들이 참여한 연석회의와 청와대 직속위원회를 만들고, 저출산·고령화 담론과 연합해 '희망2030' 같은 프로젝트를 제시한바 있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듯 빈곤에 관한 책의 출판도 눈에 띄는데 나는 우연히 두 글을 비교하며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강국, 『가난에 빠진 세계』, 책세상

『다보스, 포르투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세계화의 두 경제학』에서 세계화에 대한 경제학계의 분석과 논쟁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던 이강국은 이 책에서도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통계를 가지고 세계적인 가난의 실상을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세계 빈곤층의 수는 약간 감소하였지만 지역별 편차는 더 커졌다. 동아시아의 빈곤은 감소하였으나 남아시아는 현상유지 수준이고 동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증가하였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경우는 국내총생산(GDP)이 오히려 감소하고 절대적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증가하는 등 빈곤의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
고소득 국가로 눈을 돌리면 미국은 절대적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13%, 상대적 빈곤선 이하가 20%이상이고 상?하위 계층간의 소득분배 차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의 장기침체 이후 전통적인 고용구조가 파괴되어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지니계수가 상승했는데, 평균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의 비율이 15%로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2위이다. 일본 내에서는 변화한 현실을 '격차 사회'로 일컫는다고 한다. 서유럽의 경우 인종적 차별과 폭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민자의 실업률이 평균 실업률을 훨씬 상회하는 등 사회적 배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에 이민자들의 불만이 도시소요 형태로 분출되고, 원주민들은 경제적 불황과 고용불안에 대한 적의를 이민자들에게 돌린다. 이에 발맞춰 사회복지도 포섭과 배제의 선을 다시 그으며 강제 노동을 종용하고 시민의 권리를 축소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을 빈곤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주도적 경제학자들이 경제 성장의 요건으로 내세웠던 거시경제 안정, 무역 자유화와 개방이 성장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역사적·실증적 증거는 없다. 경제학 내부에서도 그간의 이론을 반성하면서 정부의 적절한 역할을 다시 강조하는 흐름이 부각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 입장에 동조한다. 개도국이 가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원조뿐 아니라 사회 내부의 개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 개혁을 통해 투자와 임금은 함께 늘이고, 분배와 성장이 동반하는 평등주의적 발전의 사이클을 발명하는 것이 가능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소득과 토지 분배가 비교적 균등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정부의 행정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한다. 최근에는 세계은행도 과거를 반성하고 소득분배와 빈곤 문제를 고려한 '빈곤층을 위한 성장'을 제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가난을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김대중 정부 이후 복지 예산의 증가율은 전체 예산 증가율의 두 배를 기록했으나 가난한 사람의 대다수가 공적인 사회보장에서 배제되어 있고, 사회복지 지출 중 소득 재분배의 기능이 미미한 사회보험과 기업복지의 비중이 70%를 넘는 등 한계가 명확하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다섯 가지 국내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①조세 개혁을 통한 사회복지 예산 확충과 소득재분배 기능 제고, ②금융 부문의 공공성 확보 및 빈곤층과 중소기업의 금융 소외 극복, ③비정규직 증대 억제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도입, ④공교육 강화와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 ⑤자유화와 개방으로 경도된 거시경제 정책 변화. 그리고 국제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동북아 경제협력과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요청하면서 구체적으로 동아시아 국가 간의 통화스왑 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발전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최예륜,「저임금-빈곤 철폐를 위한 집중행동을 전개하자」, 『사회운동』 2007년 5월호

최예륜 글의 얼개는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빈곤과 저임금,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라는 부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빈곤이 악화되는 이유로 노동의 불안정화, 약소자에 대한 배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를 들고 있다. 이 세 가지는 국가를 통해서 추진되는데 이를 통칭하여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세계화와 이의 적극적 동맹자인 노무현 정권이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인식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 담론의 틀 내에서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악화되고 있는 소득 분배수준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정략적이고 수사적인 논쟁에 그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담론, 양극화나 중산층 위기 담론도 국가를 단위로 한 경제성장 담론과 결합되어 있다. 정부는 사회투자국가론을 전거로 사회·복지 서비스의 사유화·시장화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빈곤을 해결하고 복지 서비스를 확충할 수 있는 묘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담론은 빈곤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제기를 가로막은 채 중산층 복원을 통한 사회통합을 시도하기 때문에 계급 관리 전략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빈곤의 확산에 대한 대안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투쟁,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민중의 연대이다.
그녀는 빈곤에 맞서는 민중의 연대를 위한 과제로 먼저 노동자 운동의 변화를 촉구한다. ①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를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만들기 위한 지역연대운동, ② 사회복지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마련하는 운동, ③ 재생산 노동과 사회 서비스 노동의 값싼 전담자로 여성을 규정하는 것에 반하는 운동이 변화를 위한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를 포괄하는 원리로 "노동권과 생활권의 동시 쟁취"라는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두 권리를 매개하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

빈곤 확산의 주범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러나 대안은 달라

두 글의 초점은 다르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곤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는 점은 동의하고 있다. 이강국은 다소 조심스럽게 “세계시민 사이의 소득분배에 관한 논쟁이 경제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시민의 소득분배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결국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전 세계적 차원에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가난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p. 81)고 주장한다. 최예륜은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빈곤은 IMF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 세계화 편입 전략에 따른 것이다. …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으로 인해 빈곤은 확대될 뿐더러 민주주의와 인권 역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pp.64-65)며 신자유주의를 강력히 비판한다.
하지만 저자들의 대안은 차이가 있는데, 대안의 수준과 그 대안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가 쟁점이다. 앞서 정리한 이강국의 대안은 주로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세계적 차원의 가난을 분석하다가 한국 정부 정책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의외이다. 그는 국가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평등주의적 경제 발전이 빈곤 해결을 위한 길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일관된 정부 정책이 필요하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첫째,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정부”가 어떻게 대안적 정책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주체이지 않은가? 이강국은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책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노사와 정부, 학계와 시민운동 단체 등 다양한 그룹이 참여하는 열린 토론을 통해 사회 세력 간의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의를 이끌어내는 정부의 유연한 리더십과 중재자역할도 중요하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발상을 전환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심각한 가난과 빈부의 격차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p. 191) 그런데 또 어떻게 열린 토론, 대타협,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둘째, 빈곤을 악화시키는 구조적인 제약으로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존재는 어떻게 된 것인가? 저자는 민족국가가 세계화를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개방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이고 주체적인 세계화이며 개방의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p. 190) 이미『다보스, 포르투알레그레 그리고 서울』의 결론에서 저자는 “세계경제의 통합 그 자체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며,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대신에 어떻게 보다 인간적인 얼굴을 한 세계화가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p. 376)고 주장한 바 있다. 저자가 제도의 중요성과 국가의 적절한 역할을 강조하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나 2015년까지 전 세계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UN밀레니엄 개발목표'에 주목하는 맥락은 이러한 세계화론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최예륜의 대안은 사회운동 활동가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담고 있어 보다 분명하다. 저임금과 빈곤의 철폐를 위해 노동자 운동과 빈민운동, 여타 사회운동이 집중행동을 전개해나가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07년 '저임금 노동자 집중행동'을 제안하는데, ①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법제화하고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확대 강화해 나가고, ②저임금 비정규 노동자가 스스로 인간다운 수준의 임금이 무엇인지를 토론하고 요구하는 운동을 만들고, ③2007년 6월에 지역별로 저임금의 원인과 실태를 고발하는 증언대회를 열어 교육과 선전을 통해 최저임금 투쟁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또 중기적인 과제로 ④상대적 빈곤선 수준으로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기 위한 운동을 만들고, ⑤적정 생계비와 임금을 민중이 스스로 설정하기 위한 조사와 교육을 시작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빈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차별과 억압을 받는 사람들이 대안세계화 운동의 주체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강국은 대안적인 사회 발전 전략(또는 대안 경제 모델)이 없는 계급 갈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가난과 빈부 격차가 심각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의 저항과 소요가 심각해지고 있다. …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 무토지농민운동 … 그러나 이러한 저항과 사회적 갈등은 정치경제적 불안을 가중시켜 가난에서 탈출하는 길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pp. 47-48) 책 전체에서 유일하게 사회운동을 논하는 부분인데 매우 부정적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최근 진보적 씽크탱크를 자임하는 여러 연구단체나 연구자들이 대안경제모델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맥락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대안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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