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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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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명박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이상훈 | 교육국장
이명박의 기세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르고 있다. 도곡동 땅투기, BBK 주가조작사건도 소용이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은 아예 노골적으로 "어차피 선거는 '덜 나쁜 사람'(lesser of the evils)을 선택하는 제도"이라며, 이명박 비리가 별 문제 될 것 없다는 식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의 무능, 부패는 어느 때부터인가 "좌파의 실패"로 둔갑했다. 현 정권의 실정과 반민중성에 분노한 대중의 선택은 '좌파정권 심판'을 내걸은 이명박, 이회창에게 온통 쏠려 있다. 마치 보수=반민중적 정치이념, 진보=민중적 정치이념이라는 근대 정치이념의 기본 도그마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보수화에 대처하는 두 가지 대응 : 탈주냐 반보수 연합이냐

전형적인 반응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국민이 노망났다"는 김근태 식의 반응이다. 민중생존을 파탄 내버린 정권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김근태의 발언은 후안무치하고 오만방자한 지껄임에 불과하다. 같은 맥락이지만 조금은 다른 취지로, 예컨대 이진경의 견해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현 정세는 '잘못된 민중의 뜻'이 지배하는 국면이며, 이와는 다른 결의 정치를 위한 "탈주"와 "아방가르디즘"(민중의 뜻과 분리된 전위주의)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다.(프레시안 인터뷰) 근본적인 혁신과 대안형성이 중요하다는 면에서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진단이다. 그러나 '대중의 양면성'을 단지 옳고 그름과 진보, 보수의 기계적 대립 상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뿐더러, 현실의 대중운동과 분리·괴리된 주관주의적 대응방향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다른 반응은 현 정세를 수구보수화로 규정짓고, 반보수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조류다. 오래전부터 기승을 떨쳐온 비판적 지지의 새로운 버전이라는 점에서 매우 낯익은 대응방향이다. 물론 노골적인 문국현·정동영 지지 그룹을 제외로 한다면, 민주노동당을 진보 정치세력의 독자적 구심으로 상정한 가운데, 반보수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비판적 지지 흐름과는 보다 복잡한 모양새를 띤다. 각 세력과 논자들마다 설명방식과 주장의 톤이 다르긴 하지만, 그 핵심요지는 결선 투표제와 정당명부제를 도입하고, 민주노동당을 노동자 운동정당에서 진보개혁정당 혹은 민족민주정당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노동당 자체를 '비판적 지지 정당'화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명박/박근혜의 등장을 보수 반동적 흐름으로 경계하는 상식적인 외양을 띠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기화로 운동전선의 후퇴와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몰정세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의견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반된 두 가지 편향의 진단방식과 대응방향을 넘어서는 대안적 대응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핵심 논점은 세 가지다.


첫째, 이명박 현상은 노망난 대중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투쟁 패배의 정치적 효과다

국민의 60%가 이명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꺾일 줄 모르는 이명박 지지의 기세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막대기를 꽂아 놓아도 당선될 것이라는 한나라당 프리미엄 때문이겠지만, 그것은 왜 또 그러한 것인가. 원인은 "정권을 바꿔, 자기 생존의 여건을 개선하려는" 대중의 열망이 그만큼 확고한 탓이다. 그렇다면 대중 혹은 노동자, 민중은 보수화된 것인가, 혹은 노망이 나버리고 만 것인가.
대중의 생존적 열망은 그 자체로는 옳거나 그른 무엇이 아니고, 진보적 이념과 결합할 수도 보수적 이념과 결합할 수도 있다. 대중의 양면성은 옳은 대중과 틀린 대중이 공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세적 역동성과 다면성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다. 대중이 보수 지향적인 성장-발전주의적 정치지도자를 선택했다고 해서, 대중의 생존적 열망이 보수 이념적인 무엇으로 변질된 것으로 비난하거나, 비대중적인 어디인가를 향해 탈주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작금의 이명박 현상은 거듭된 '반신자유주의 투쟁 패배의 정치적 후폭풍'이다.
좁고 낮은 수준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환멸과 생존적 요구를 받아 안는데 실패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대안은 지배정치의 보수화에 조응하는 전선의 후퇴와 우경화가 아니라, 대중의 열망의 깊이와 높이에 부합하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혁신과 확장이다.

둘째, 보수 정치세력의 강력한 등장과 정치적 불안정성의 심화라는 위험 : 현재의 정치국면은 2002~2003년에 버금가는 정치공황의 도입부이다

두 번째 논점은 이명박·한나라당 집권이 불러올 위험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이명박·한나라당 집권이 불러올 위험은 정치이념, 정책의 수구 보수적 반동화의 위험이라기보다는 김대중·노무현을 압도하는 강력한 보수적 정치선동을 구사하는 인민주의적 정치의 위험이다. 이명박의 이념적 지향은 확실히 보수적 색채를 띠지만, 그는 수구 이념적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관리자형 정치가다. 그가 민자당·신한국당 출신이라고 해서 민자당 군부세력이 귀환한 것은 아니다. "정권을 바꿔 경제를 살리자."는 그의 선거 캠페인 또한 어떤 수구보수적인 정책이념을 표방 한다기보다는 내용 없는 인민주의적 선동에 가깝다. 그의 정책이념의 실체는 기껏해야 그 말 많고 탈 많은 대운하건설공약 뿐이다. 반면, 박근혜·이회창의 경우가 보다 보수 이념적이고, 권위주의적 퇴행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 우파라는 큰 틀의 정책적 컨센서스(금융-군사세계화, 노동유연화) 안에서, 노무현정권의 실정을 비난하는 것에 보수적인 정치적 레토릭을 동원하는 차원의 보수우파다. 따라서 이명박·한나라당, 혹은 박근혜·한나라당 현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 기조를 뒤집기보다는 이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의 변화를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바뀐 것이 없는가? 물론 상황은 더 나빠졌다. 무엇이 더 악화되고, 위험해진 것이란 말인가.
현 대선정국의 본질적 특징은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세력(과 이념)의 압도적 우위가 아니라, 어떤 선거결과로도 깔끔하게 매듭지어 질 수 없는 정치적 불안정성에 있다. 누가 이런 대선의 결과를 온전히 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의 고공 지지율이 고스란히 표로 연결되어 당선되더라도, 그의 지지율은 당선 다음날부터 내년 총선까지 몰아닥칠 온갖 비리의혹과 한나라당 내부 분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은 정책과 이념이 아니라 온갖 고소 고발과 검찰수사로 진행된 선거다. 이런 선거를 통해 등장한 정권이 어떤 정치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어떤 정치적 통합력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대선의 결과는 곧 총선정국의 지분을 둘러싼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으로 연결될 것이다. BBK 관련 의혹이 한 번의 검찰수사발표와 대선을 끝으로 마무리되지도 않을 것이고, 삼성 비자금 관련 사건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어떤 수준으로까지 확대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2002년 대선 직후 노무현 정권은 여당의 분당과 야당의 탄핵으로 이어진 혼돈의 세월을 보냈다. 그 후 노무현 정권은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기화로 일시에 회복된 듯 보였지만, 장기 구조화된 경제위기와 잇단 측근 비리로 결국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이 같은 정치적 불안정성은 더욱 확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2008년은 전후 최악의 미국경제 불황이 예고된 해이고, 이명박의 지지층은 노무현의 지지층보다 다양하고 단일한 결집력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노무현의 탄핵 촛불시위 같은 카드가 이명박에게는 없다.

셋째, 이명박·한나라당에 맞서는 우리의 대안은 비상한 정세인식과 태세에 걸 맞는 변혁의 정치다

결국 정리하자면 이렇다. 보수적 정치세력의 집권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명박·한나라당의 집권은 보수 정치이념의 재등장으로 인한 위험이라기보다는 대안도 없고 방향도 불분명한 정치적 불안정화의 위험이 증폭되는 계기다. 현재의 정치국면은 2002~2003년에 버금가는 정치공황의 도입부이다.
그리고 물론 이 같은 정세인식은 보수 정치세력의 취약성을 밝혀 위안거리로 삼거나, 다음 정권의 예고된 실패를 점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한나라당의 기세는 놀랍도록 크고 강하다. 그것은 당분간 강력한 정치적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새로운 통합과 합의를 이루는 대안적 내용과 대안적 체계를 가지 못한 채 매우 불안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이성적으로 폭압적일 수 있는 정치적 불안정성 자체다. 때문에 보수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화로 한 타협과 우경화(중도적 연합전선)라는 대안은 이 같은 정세적 변화의 맥을 헛짚은 공상에 불과하다. 현 정세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10년 간 구조화된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나날이 격화되고 심화되어온 정치적 불안정성이 단순히 지배정치의 취약성을 뜻하기보다는,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민주주의의 파괴와 대중의 정치적 환멸을 키워왔다는 점이다. 작금의 대선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보수 반동적 정치세력들의 대 부흥현상은 이러한 민주주의 파괴의 부산물이고, 대중의 정치적 환멸의 잠정적 도피처일 뿐이다. 심각하고도 본질적인 사실은 그 같은 파괴와 환멸이 비단 지배정치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연대를 파괴한 가장 큰 동력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 이어져온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한 퇴행적 탄압과 분열, 패배의 악순환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운동의 근본적 자기성찰과 혁신을 통한 대안적 연대창출이 지체된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도탄에 빠진 민중의 생존을 개선해줄 수 없는 것이 명확하다면, 그들의 예정된 파국은 민중의 더 큰 불행이 되지 않도록 변혁되어야 한다. 자기 생존을 갈망하며 한나라당을 선택한 대중들을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악화된 현실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생산하자. 보수 세력의 위용에 놀라 투쟁대오를 뒤로 물리기보다는 변혁과 이행의 정치복원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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