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하반기 정세를 조망한다
국민의 정부, 불구가 된 오리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폐업·재폐업을 반복하고 있고, 금융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롯데호텔,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경찰투입으로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그리고 한·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인 SOFA 불평등조항을 개정하고 환경조항 신설하라는, 그리고 매향리 미군국제사격장 이전을 요구하는 투쟁은 반미투쟁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관료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개각직전이란 시기적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정부의 행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편 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무성 초청으로 출국하여 임시국회에 불참한 세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단 1표의 조각표라도 모아서 날치기까지 감안하여 정권장악력을 높여보려던 김대중 정권에 정치적 타격을 가한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전 국정운영능력을 상실했다는 표제를 1면 주요기사로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는 그 자체 보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의미있는 지적이다. "국민의 정부에 레임덕은 없다"는 한광옥 비서실장의 강변은 현 정권의 오늘을 정확히 반증하고 있는 듯하다.
"햇볕은 문제해결의 처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는 부담"
이런 빈 자리를 남북정상회담이 메꿀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의 반민중적 결과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해왔다. 지난 2년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라는 대중적 쟁점을 형성해 왔던 노동자·민중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은, 4·13총선을 계기로 총선시민연대가 형성한 개혁국면으로의 쟁점이동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더하여, 페리보고서를 벗어나지 않는 제한된 행보일지라도 정상회담 국면으로 인해, 그간 노동배제적인 자본축적체제로의 재편으로 허물어져 가던 김대중 정권이 정치적 정통성을 새로이 구축하여 그간 민중운동의 성과가 일대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한편 시민운동과 통일지상주의적 민족주의운동이 함께하는, 김대중 정권 후반기 범국민적 동원체제가 구축된다면 더욱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여 최악의 결과를 맞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사건들로 인해 정상회담 국면에서 시민운동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고, 김대중 정권의 자민련에 대한 무리한 견인작업으로 정치권 합의를 조성하려던 시도마저 금이 갔다. 그 본질적 문제는 분단 이데올로기로 구축된 남한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재편 없이, 단지 북한에 공세적인 페리프로세스를 벗어날 수 없는(!) 행보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한, 그 자체의 문제가 터져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세적인 회담자세가 이를 더욱 굴절시키면서 이미 예상은 크게 벗어나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남북정상회담은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명의의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1, 2항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방안이 관철되었다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선언이란 점에서 초기 구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즉,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선언함으로서, 분단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통치권의 문제와 아울러 미국의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도 어쩔 수 없이 환영의 뜻을 표시하였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모리 수상에게 가장 먼저, 그 진의가 무엇인지를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도 모자라 미국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보내 DJ의 한반도 구상을 직접 탐색하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우려한 바는 현실로 나타났다. 자주와 공존으로 표현되는 남북정상회담 1, 2항으로 인해, 북이라는 적으로 정당화되던 단지 반(反)북만이 아니라 반(反)사상의 자유를 강제하던 국가보안법과 같은 통치의 기제를 허물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지위를 제고하게 만들어 그간 선도적인 투쟁으로 유지되어 오던 반미를 정당화시켜버린 것이다. 한·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SOFA) 불평등조항을 개정하라는 주장은 이제 환경·여성조항을 신설하라는 것, 그리고 매향리 미군국제사격장 이전을 요구하는 투쟁에 머물지 않는다. 시기적절한(?) 녹색연합의 주한 미군의 독극물 한강방류 폭로를 계기로 시민운동까지 합세하고 노동자 대중들이 투쟁일선에 나서게 됨으로서 반미투쟁으로 전화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 선도적인 투쟁이 아니라 대중적 투쟁이 된 것이다.
결국 SOFA 불평등조항을 개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도 모자라,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국의 정책이 잘못된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그것이 반미로 연결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진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햇볕은 문제해결의 처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는 부담이기도 하다'는 유근일의 논설이 설득력을 가지면서, 보수주의와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김대중 정권만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의 1, 2항이 전체 기조적 내용이라면,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간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는 3, 4, 5항은 실천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만으로, 앞으로 있을 국군포로문제를 제쳐두고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덮어두기엔 보수주의적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월남민을 탈북자의 시각으로 보고있는 북한에게 또 한번의 양보를 요구하기엔 무리이니 말이다.
또한 자본과 보수세력이 기대하는 경제협력은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어서 김대중 정권의 통일을 내세운 정통성을 구축하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LG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00억불로 추산된다. 남쪽이 현재 신용위기를 거론할 정도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이니, 북한에 그 정도의 액수를 장기적으로 투자할 여유는 없다. 결국 북일수교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되는 50억에서 150억불이 거론되고 있는 배상금에 우선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고, 모자라는 것은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차관에 기대본다는 것이 궁여지책으로 나온 조달방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국은 일본이 김대중 정권의 통치권을 가늠하는 구세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쯤 되면 일본대중문화 3차개방이 '남북한 통일 분위기 조성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는 6월 27일 한겨레신문의 짧은 보도가 유난히 눈에 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오부치 수상조문을 위해 방일한 이후 거의 4개월도 안되어서, 9월 하순경 또 방일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행보며, 최근 이슈인 남북철로 연결조차도 남측 단독으로 할 능력이 없어 일본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외신들이 있고 보면, 한일간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가능성은 더더욱 크다. 즉, 한국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같은 일본의 일방적 요구조차도 받아들이는 한일투자협정의 체결 등 한일간 정치경제적 관계재편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결국 남북장관회담, 남북철로연결, 8·15공동행사 그리고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제교류와 같은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수준에서는, 현재 굴절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챙기기엔 역부족이다. 현재 김대중 정권이 판독하는 정상회담 지형은 오히려 또 한번의 굴절을 맛본다손 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정도의) 행사를 거치면서 시간을 벌지 않고는 더 어려운 지경으로 몰릴 형국인 것이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대표단은 군사·경제전문가를 제외시킨 채 `통일 문제` 위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하고, 반면 남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안전보장, 경제협력 등 폭넓은 협의를 갖고자 했다. 현재 남북의 입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적인 모습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해서,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TMD, NMD를 축으로 하는 미·일·한국의 연대전선에 균열을 가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일의 방중, 김대중대통령 방북 이후의 러시아 푸틴수상의 방북과 방중,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으로 그들간의 연대전선은 강화되고 있다. 또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안보를 다루는 유일한 국제기구인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함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으며, ARF에서 대부분의 ASEAN회원국들이 미국의 NMD 계획에 대해 `상당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산께이신문은,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벗고 나서면서 동아시아에 새로운 정치·안보환경이 조성되고 미국의 역할이 약화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변화가 미국에게 역내 주둔군 감축과 NMD 철회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분석에 때맞추어,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목적과 기능이 전면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헤리티지재단의 발표는 현실 역관계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DJ정권의 2단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각 진영의 행보
2000년 7월 14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때 설치됐던 세계은행(IBRD) 서울사무소가 마침내 2년3개월만에 철수한 것이다. 재경부는 세계은행과 차관협약에 따른 정책협의가 사실상 끝나고 추가자금을 지원받을 필요성이 없어져 세계은행 서울사무소가 이날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IMF는 한국정부와의 마지막 정책협의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제 IMF의 남은 일정은 금번 협의결과를 8월23일(잠정) IMF이사회에 상정하여 심의·통과시키고, 오는 2000년 12월3일부로 다가온 대기성차관협약 만료일까지 그 이행을 지켜보는 일 뿐이다. 어찌보면 이는 IMF신탁통치 종결의 서막과도 같은 행사였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는 세계은행 Aiyer 서울사무소소장은 한국은 자기만족을 버리고 구조조정을 계속하도록 주문했다. 실제 우리 경제의 현실은 자기만족 타령할 시절이라기보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사이를 헤메는 형국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의 경우, 현대건설만 6월말 현재, 80억 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으며 5개월 안에 갚아야 할 회사채와 기업어음도 32억 달러나 된다. 현대의 자금사정에 따라 6월 위기설이 7월 위기설로 그리고 연말의 위기설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은 둔화되고 있고, 고원유가와 종금사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최근의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폭락이 증시에 영향을 미쳐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실제 IMF이후 기업 부채도 올들어 증가세로 돌아서,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는 5월말 현재 468억달러로 불어나 총외채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2년2개월 만에 최고치인 33.1%로 치솟았으며, 앞으로 1년이내 상환해야 할 자금이 무려 620억 달러에 달한다. 더욱이 올 상반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순유입액은 이미 96억3천만 달러를 넘어, 지난해 순유입액 52억 달러를 두배 가까이 넘어섰고 실제 포트폴리오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800억에 이른다는 추산이고 보면, 독일보다도 많은 세계5위의 외화보유고(902억달러)를 가지고도 모자라 더많은 외환보유고가 없이는 위태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제 한국경제는 자유화, 개방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더 강한 자유화 개방화를 강제하는 - IMF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의도한 - 형국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정상회담 이후 더욱 입지가 좁아진 김대중 정권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그들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관이 제안하는 자유화, 개방화라는 외통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다.
지난 6월23일, 정부는 재경부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200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확정, 발표하였다. 모두 5개 항목으로 이루져있는 그 내용은 안정기조속의 지속성장기반 확충, 2단계 구조개혁의 완료, 디지털-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 촉진, 국민 삶의질 향상(생산적 복지), 남북 및 대외경제협력 추진등이다. 남북경제협력이 아직은 정치적 의미가 강하다면 나머지 들러리로 장식한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은 여전히 2단계 구조개혁일 것이다. 이는 은행사유화와 해외매각을 목표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법을 도입함으로서 실질적으로는 초민족자본의 금융장악를 노리는 금융개혁, 공공부문의 민영화, 사유화와 이에 따른 민중적 부담을 제고하는 공공부문 개혁, 재벌개혁과 자본투기시장의 활성화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소유구조 도입으로 요약되는 기업구조 개혁, 그리고 이러한 제반의 구조조정에 따르는 비정규·임시직화와 같은 노동의 불안정화, 연봉제 우리사주제 등 임금체계의 개편, 노동 강도와 통제의 강화를 이루기 위한 노동부문 구조개혁을 포함한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던 2단계 외환자유화조치 입법화로 한국경제의 100% 자유화·개방화를 실현하여 이를 보완하고, 이어서 올해 안에 한미, 한일투자협정을 체결하는 등 지구적 통제아래 편입되면서 국내자본의 해외진출을 보장하는 마무리 수순으로 진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정책방향이 더 이상 1단계 구조조정과 같이 쉽사리 관철될 조건은 아니다.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투쟁의 대열을 갖추기 시작하고, 민주노총은 제외하더라도 한국노총 소속 금융부문 노동자들조차도 파업에 돌입하여, 더이상 통제가능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시장에의 연동으로 생존권의 위기에 봉착한 농민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권 이후 끝이 없는 구조조정을 지속해야 하는, 그리하여 더 이상 IMF국난을 극복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김대중 정권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지금 김대중 정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국민적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더욱 강력한 사회통합력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민중주의적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앞으로 집권하반기를 새롭게 이끌어 갈 내각을 외교안보팀, 경제팀, 교육·인적개발팀, 사회복지팀 등 크게 4개 팀제로 각 팀장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영하고, 김대중대통령은 4강 및 국제외교와 남북문제에 전념하겠다는 국정운영 방향이 한 갈래이다. 통일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지도력으로 어디에도 물러설 여지가 없는 정치경제적 정세를 돌파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한편 시민운동은 '총선연대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이어받아 공동의 실천과제를 공유한 일상적인 전국적 시민운동 연대조직'인 '개혁연대'를 띄우기로 하고, 선거법, 정당법, 국회법, 정치자금법 개정과 같은 정치개혁에 나설 계획이다. 주5일 근무 및 수업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5인 미만 사업장 및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사회보험적용, 실업대책 등 사회보장 문제에 대해 공동 대처하는 사회권연대기구를 결성하는 방안을 논의중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민운동, 즉 소부르주아의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정치개혁의 정당성을 보완하는 한편, 비정규직 및 임시·일용직 그리고 실업을 기정사실화한 구조개혁을 정당화하는 전제 아래서 생산적 복지를 뒷받침하는 계획에 다름 아니다. 이는 현재 김대중 정권의 통일방안을 두고 내부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일부 민족주의적 운동세력과 함께 국가통합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공공성의 유지 및 확대·강화아래 전열을!
투쟁의 긴장감이 높아지면 여느 때나 그러하듯 명동성당 투쟁의 상징성이 높아진다. 경찰특공대의 군화발에 짓밟힌 롯데호텔노조, 사회보험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투쟁, 시장개방에 따른 30여조의 빚을 탕감하고 개방농정 철폐하라는 농민들의 투쟁, 매향리 미군 국제사격장 이전, SOFA개정에 이은 반미투쟁,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그리고 스크린쿼터 사수와 일본 대중문화시장 개방저지를 위한 한미/한일/한칠레투자협정 반대 투쟁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투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각기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투쟁은 올해 말 상설 공투체 결성을 염두에 둔 민중대회 조직위를 중심으로 집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조차도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치적 전망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은 상설 공투체의 한계는 자명한 것이어서, 현실적으로는 일정상의 그리고 역량 배분상의 조정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전개된 수많은 투쟁과 그에 따른 희생은 단지 나열적인 역량배분상의 문제 이상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전망을 전제로 한 집중성을 높여내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상설 공투체의 전망을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하자.
당면한 투쟁전망을 구도해 본다면, 2단계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 그리고 제사회세력의 투쟁을 통하여 근저적인 대오를 구축하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대중 정권이 자초한, 정치사상의 자유 획득을 정당화하는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그리고 SOFA개정투쟁, 매향리 미군국제사격장 철폐투쟁 등을 통하여 한국에서 미국의 지위를 대중적으로 각인하는 투쟁을 통하여, 정권의 정통성에 균열을 가하는 한편 민중주의적 지도력 구축을 의도하는 현정권을 고립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2단계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투쟁은 더 이상 저지 또는 반대전선이 아니라 그간의 투쟁성과를 바탕으로 노동자 민중의 사회적, 계급적 요구를 내세워, 보다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화함으로서 현재의 교착상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통하여 노동자 민중들은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싸우면서도, 한편 산발적으로 공공성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의 요구들을 제출하였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기업 유지와 대우차 해외매각과 관련한 공기업화의 요구, 사회보험 노조의 의료개혁 등 국가개입의 통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공공영역의 확대를 그 직접적인 요구로 내걸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시장 효율성을 기치로 한 구조조정이 보다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구조조정이라는 부메랑을 피할 수 없으며, 노동자 민중은 점점 더 깊은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 민중은 지난 2년간의 투쟁을 통해, 이 수렁을 벗어나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서, 민중생존을 위한 공공영역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를 각인한 것이다. 이 요구를 정식화하는 것이야말로 당면한 산발적인 투쟁전선을 집중하는 핵심적 과제일 것이다.
특히, 하반기 이후 진행될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 체신, 통신과 같은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함으로서 공공의료보험을 해체하려는 시도, 2002년부터 전면 실시하겠다는 7차 교육과정으로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하려고 시도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2000년 하반기 노동자 민중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투쟁은 이러한 시장화에 반대하는 공공영역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의 요구를 바탕으로 전선을 더욱 확장 심화시켜 나아갈 것을 진지하게 제안한다. 이를 통해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아닌 집중되고 예각화된 구조조정 분쇄투쟁, 정치적 반DJ전선이 전국적인 수준에서 보다 명확해 질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2000년 하반기는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아닌 민중적 전망으로의 재편가능성을 모색하고 투쟁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폐업·재폐업을 반복하고 있고, 금융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롯데호텔,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경찰투입으로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그리고 한·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인 SOFA 불평등조항을 개정하고 환경조항 신설하라는, 그리고 매향리 미군국제사격장 이전을 요구하는 투쟁은 반미투쟁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관료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개각직전이란 시기적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정부의 행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편 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무성 초청으로 출국하여 임시국회에 불참한 세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단 1표의 조각표라도 모아서 날치기까지 감안하여 정권장악력을 높여보려던 김대중 정권에 정치적 타격을 가한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전 국정운영능력을 상실했다는 표제를 1면 주요기사로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는 그 자체 보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의미있는 지적이다. "국민의 정부에 레임덕은 없다"는 한광옥 비서실장의 강변은 현 정권의 오늘을 정확히 반증하고 있는 듯하다.
"햇볕은 문제해결의 처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는 부담"
이런 빈 자리를 남북정상회담이 메꿀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의 반민중적 결과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해왔다. 지난 2년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라는 대중적 쟁점을 형성해 왔던 노동자·민중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은, 4·13총선을 계기로 총선시민연대가 형성한 개혁국면으로의 쟁점이동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더하여, 페리보고서를 벗어나지 않는 제한된 행보일지라도 정상회담 국면으로 인해, 그간 노동배제적인 자본축적체제로의 재편으로 허물어져 가던 김대중 정권이 정치적 정통성을 새로이 구축하여 그간 민중운동의 성과가 일대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한편 시민운동과 통일지상주의적 민족주의운동이 함께하는, 김대중 정권 후반기 범국민적 동원체제가 구축된다면 더욱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여 최악의 결과를 맞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사건들로 인해 정상회담 국면에서 시민운동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었고, 김대중 정권의 자민련에 대한 무리한 견인작업으로 정치권 합의를 조성하려던 시도마저 금이 갔다. 그 본질적 문제는 분단 이데올로기로 구축된 남한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재편 없이, 단지 북한에 공세적인 페리프로세스를 벗어날 수 없는(!) 행보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한, 그 자체의 문제가 터져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세적인 회담자세가 이를 더욱 굴절시키면서 이미 예상은 크게 벗어나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남북정상회담은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명의의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1, 2항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방안이 관철되었다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선언이란 점에서 초기 구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즉,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선언함으로서, 분단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통치권의 문제와 아울러 미국의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도 어쩔 수 없이 환영의 뜻을 표시하였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모리 수상에게 가장 먼저, 그 진의가 무엇인지를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도 모자라 미국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보내 DJ의 한반도 구상을 직접 탐색하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우려한 바는 현실로 나타났다. 자주와 공존으로 표현되는 남북정상회담 1, 2항으로 인해, 북이라는 적으로 정당화되던 단지 반(反)북만이 아니라 반(反)사상의 자유를 강제하던 국가보안법과 같은 통치의 기제를 허물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지위를 제고하게 만들어 그간 선도적인 투쟁으로 유지되어 오던 반미를 정당화시켜버린 것이다. 한·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행정협정(SOFA) 불평등조항을 개정하라는 주장은 이제 환경·여성조항을 신설하라는 것, 그리고 매향리 미군국제사격장 이전을 요구하는 투쟁에 머물지 않는다. 시기적절한(?) 녹색연합의 주한 미군의 독극물 한강방류 폭로를 계기로 시민운동까지 합세하고 노동자 대중들이 투쟁일선에 나서게 됨으로서 반미투쟁으로 전화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 선도적인 투쟁이 아니라 대중적 투쟁이 된 것이다.
결국 SOFA 불평등조항을 개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도 모자라,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국의 정책이 잘못된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그것이 반미로 연결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진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햇볕은 문제해결의 처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는 부담이기도 하다'는 유근일의 논설이 설득력을 가지면서, 보수주의와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김대중 정권만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의 1, 2항이 전체 기조적 내용이라면,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간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는 3, 4, 5항은 실천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만으로, 앞으로 있을 국군포로문제를 제쳐두고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덮어두기엔 보수주의적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월남민을 탈북자의 시각으로 보고있는 북한에게 또 한번의 양보를 요구하기엔 무리이니 말이다.
또한 자본과 보수세력이 기대하는 경제협력은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어서 김대중 정권의 통일을 내세운 정통성을 구축하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LG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00억불로 추산된다. 남쪽이 현재 신용위기를 거론할 정도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이니, 북한에 그 정도의 액수를 장기적으로 투자할 여유는 없다. 결국 북일수교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되는 50억에서 150억불이 거론되고 있는 배상금에 우선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고, 모자라는 것은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차관에 기대본다는 것이 궁여지책으로 나온 조달방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국은 일본이 김대중 정권의 통치권을 가늠하는 구세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쯤 되면 일본대중문화 3차개방이 '남북한 통일 분위기 조성에 대한 일본의 지원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는 6월 27일 한겨레신문의 짧은 보도가 유난히 눈에 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오부치 수상조문을 위해 방일한 이후 거의 4개월도 안되어서, 9월 하순경 또 방일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행보며, 최근 이슈인 남북철로 연결조차도 남측 단독으로 할 능력이 없어 일본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외신들이 있고 보면, 한일간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가능성은 더더욱 크다. 즉, 한국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같은 일본의 일방적 요구조차도 받아들이는 한일투자협정의 체결 등 한일간 정치경제적 관계재편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결국 남북장관회담, 남북철로연결, 8·15공동행사 그리고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제교류와 같은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수준에서는, 현재 굴절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챙기기엔 역부족이다. 현재 김대중 정권이 판독하는 정상회담 지형은 오히려 또 한번의 굴절을 맛본다손 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정도의) 행사를 거치면서 시간을 벌지 않고는 더 어려운 지경으로 몰릴 형국인 것이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대표단은 군사·경제전문가를 제외시킨 채 `통일 문제` 위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하고, 반면 남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안전보장, 경제협력 등 폭넓은 협의를 갖고자 했다. 현재 남북의 입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적인 모습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해서,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TMD, NMD를 축으로 하는 미·일·한국의 연대전선에 균열을 가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일의 방중, 김대중대통령 방북 이후의 러시아 푸틴수상의 방북과 방중,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으로 그들간의 연대전선은 강화되고 있다. 또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안보를 다루는 유일한 국제기구인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함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으며, ARF에서 대부분의 ASEAN회원국들이 미국의 NMD 계획에 대해 `상당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산께이신문은,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벗고 나서면서 동아시아에 새로운 정치·안보환경이 조성되고 미국의 역할이 약화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변화가 미국에게 역내 주둔군 감축과 NMD 철회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분석에 때맞추어,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목적과 기능이 전면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헤리티지재단의 발표는 현실 역관계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DJ정권의 2단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각 진영의 행보
2000년 7월 14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때 설치됐던 세계은행(IBRD) 서울사무소가 마침내 2년3개월만에 철수한 것이다. 재경부는 세계은행과 차관협약에 따른 정책협의가 사실상 끝나고 추가자금을 지원받을 필요성이 없어져 세계은행 서울사무소가 이날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IMF는 한국정부와의 마지막 정책협의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제 IMF의 남은 일정은 금번 협의결과를 8월23일(잠정) IMF이사회에 상정하여 심의·통과시키고, 오는 2000년 12월3일부로 다가온 대기성차관협약 만료일까지 그 이행을 지켜보는 일 뿐이다. 어찌보면 이는 IMF신탁통치 종결의 서막과도 같은 행사였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는 세계은행 Aiyer 서울사무소소장은 한국은 자기만족을 버리고 구조조정을 계속하도록 주문했다. 실제 우리 경제의 현실은 자기만족 타령할 시절이라기보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사이를 헤메는 형국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의 경우, 현대건설만 6월말 현재, 80억 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으며 5개월 안에 갚아야 할 회사채와 기업어음도 32억 달러나 된다. 현대의 자금사정에 따라 6월 위기설이 7월 위기설로 그리고 연말의 위기설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은 둔화되고 있고, 고원유가와 종금사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최근의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폭락이 증시에 영향을 미쳐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실제 IMF이후 기업 부채도 올들어 증가세로 돌아서,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는 5월말 현재 468억달러로 불어나 총외채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2년2개월 만에 최고치인 33.1%로 치솟았으며, 앞으로 1년이내 상환해야 할 자금이 무려 620억 달러에 달한다. 더욱이 올 상반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순유입액은 이미 96억3천만 달러를 넘어, 지난해 순유입액 52억 달러를 두배 가까이 넘어섰고 실제 포트폴리오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800억에 이른다는 추산이고 보면, 독일보다도 많은 세계5위의 외화보유고(902억달러)를 가지고도 모자라 더많은 외환보유고가 없이는 위태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제 한국경제는 자유화, 개방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더 강한 자유화 개방화를 강제하는 - IMF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의도한 - 형국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정상회담 이후 더욱 입지가 좁아진 김대중 정권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그들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관이 제안하는 자유화, 개방화라는 외통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다.
지난 6월23일, 정부는 재경부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200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확정, 발표하였다. 모두 5개 항목으로 이루져있는 그 내용은 안정기조속의 지속성장기반 확충, 2단계 구조개혁의 완료, 디지털-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 촉진, 국민 삶의질 향상(생산적 복지), 남북 및 대외경제협력 추진등이다. 남북경제협력이 아직은 정치적 의미가 강하다면 나머지 들러리로 장식한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은 여전히 2단계 구조개혁일 것이다. 이는 은행사유화와 해외매각을 목표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법을 도입함으로서 실질적으로는 초민족자본의 금융장악를 노리는 금융개혁, 공공부문의 민영화, 사유화와 이에 따른 민중적 부담을 제고하는 공공부문 개혁, 재벌개혁과 자본투기시장의 활성화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소유구조 도입으로 요약되는 기업구조 개혁, 그리고 이러한 제반의 구조조정에 따르는 비정규·임시직화와 같은 노동의 불안정화, 연봉제 우리사주제 등 임금체계의 개편, 노동 강도와 통제의 강화를 이루기 위한 노동부문 구조개혁을 포함한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던 2단계 외환자유화조치 입법화로 한국경제의 100% 자유화·개방화를 실현하여 이를 보완하고, 이어서 올해 안에 한미, 한일투자협정을 체결하는 등 지구적 통제아래 편입되면서 국내자본의 해외진출을 보장하는 마무리 수순으로 진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정책방향이 더 이상 1단계 구조조정과 같이 쉽사리 관철될 조건은 아니다.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투쟁의 대열을 갖추기 시작하고, 민주노총은 제외하더라도 한국노총 소속 금융부문 노동자들조차도 파업에 돌입하여, 더이상 통제가능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시장에의 연동으로 생존권의 위기에 봉착한 농민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권 이후 끝이 없는 구조조정을 지속해야 하는, 그리하여 더 이상 IMF국난을 극복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김대중 정권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지금 김대중 정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국민적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더욱 강력한 사회통합력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민중주의적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앞으로 집권하반기를 새롭게 이끌어 갈 내각을 외교안보팀, 경제팀, 교육·인적개발팀, 사회복지팀 등 크게 4개 팀제로 각 팀장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영하고, 김대중대통령은 4강 및 국제외교와 남북문제에 전념하겠다는 국정운영 방향이 한 갈래이다. 통일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지도력으로 어디에도 물러설 여지가 없는 정치경제적 정세를 돌파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한편 시민운동은 '총선연대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이어받아 공동의 실천과제를 공유한 일상적인 전국적 시민운동 연대조직'인 '개혁연대'를 띄우기로 하고, 선거법, 정당법, 국회법, 정치자금법 개정과 같은 정치개혁에 나설 계획이다. 주5일 근무 및 수업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5인 미만 사업장 및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사회보험적용, 실업대책 등 사회보장 문제에 대해 공동 대처하는 사회권연대기구를 결성하는 방안을 논의중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민운동, 즉 소부르주아의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정치개혁의 정당성을 보완하는 한편, 비정규직 및 임시·일용직 그리고 실업을 기정사실화한 구조개혁을 정당화하는 전제 아래서 생산적 복지를 뒷받침하는 계획에 다름 아니다. 이는 현재 김대중 정권의 통일방안을 두고 내부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일부 민족주의적 운동세력과 함께 국가통합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공공성의 유지 및 확대·강화아래 전열을!
투쟁의 긴장감이 높아지면 여느 때나 그러하듯 명동성당 투쟁의 상징성이 높아진다. 경찰특공대의 군화발에 짓밟힌 롯데호텔노조, 사회보험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투쟁, 시장개방에 따른 30여조의 빚을 탕감하고 개방농정 철폐하라는 농민들의 투쟁, 매향리 미군 국제사격장 이전, SOFA개정에 이은 반미투쟁,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그리고 스크린쿼터 사수와 일본 대중문화시장 개방저지를 위한 한미/한일/한칠레투자협정 반대 투쟁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투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각기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투쟁은 올해 말 상설 공투체 결성을 염두에 둔 민중대회 조직위를 중심으로 집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조차도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노동자 민중운동의 정치적 전망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은 상설 공투체의 한계는 자명한 것이어서, 현실적으로는 일정상의 그리고 역량 배분상의 조정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전개된 수많은 투쟁과 그에 따른 희생은 단지 나열적인 역량배분상의 문제 이상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전망을 전제로 한 집중성을 높여내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상설 공투체의 전망을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하자.
당면한 투쟁전망을 구도해 본다면, 2단계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 그리고 제사회세력의 투쟁을 통하여 근저적인 대오를 구축하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대중 정권이 자초한, 정치사상의 자유 획득을 정당화하는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그리고 SOFA개정투쟁, 매향리 미군국제사격장 철폐투쟁 등을 통하여 한국에서 미국의 지위를 대중적으로 각인하는 투쟁을 통하여, 정권의 정통성에 균열을 가하는 한편 민중주의적 지도력 구축을 의도하는 현정권을 고립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2단계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투쟁은 더 이상 저지 또는 반대전선이 아니라 그간의 투쟁성과를 바탕으로 노동자 민중의 사회적, 계급적 요구를 내세워, 보다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화함으로서 현재의 교착상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통하여 노동자 민중들은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싸우면서도, 한편 산발적으로 공공성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의 요구들을 제출하였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기업 유지와 대우차 해외매각과 관련한 공기업화의 요구, 사회보험 노조의 의료개혁 등 국가개입의 통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공공영역의 확대를 그 직접적인 요구로 내걸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시장 효율성을 기치로 한 구조조정이 보다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구조조정이라는 부메랑을 피할 수 없으며, 노동자 민중은 점점 더 깊은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 민중은 지난 2년간의 투쟁을 통해, 이 수렁을 벗어나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서, 민중생존을 위한 공공영역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를 각인한 것이다. 이 요구를 정식화하는 것이야말로 당면한 산발적인 투쟁전선을 집중하는 핵심적 과제일 것이다.
특히, 하반기 이후 진행될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 체신, 통신과 같은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함으로서 공공의료보험을 해체하려는 시도, 2002년부터 전면 실시하겠다는 7차 교육과정으로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하려고 시도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2000년 하반기 노동자 민중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투쟁은 이러한 시장화에 반대하는 공공영역의 확대와 민주적 통제의 요구를 바탕으로 전선을 더욱 확장 심화시켜 나아갈 것을 진지하게 제안한다. 이를 통해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아닌 집중되고 예각화된 구조조정 분쇄투쟁, 정치적 반DJ전선이 전국적인 수준에서 보다 명확해 질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2000년 하반기는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아닌 민중적 전망으로의 재편가능성을 모색하고 투쟁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