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1-12.85호
첨부파일
85_특집_류주형.pdf

정당운동과 민중연대 투쟁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논의 궤적

류주형 | 조직위원장
IMF-DJ 체제 이후 신자유주의 비판과 새로운 사회운동의 정형 창출을 기치로 1998년 출범한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의 변혁적 사상 이념의 재건 ▲신자유주의적 금융 군사세계화에 대한 국제적 민중적 대안의 모색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의 혁신을 주요 과제로 정립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10년간 사회진보연대의 활동 중에서도 주로 1998년 이래 정당운동과 민중연대 투쟁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논의 궤적을 살피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운동의 상황과 관련하여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우선 사회진보연대 출범의 의의와 2002년 대선 시기 전선재편에 관한 사회진보연대의 문제의식을 확인한다. 이어서 민중연합 사상 및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형성으로 정립된 사회진보연대의 기본 노선을 개괄한 뒤, 이것이 현 정세에서 지니는 의미를 구체화한다.

사회진보연대 출범의 문제의식

1979-80년 경제위기 이후 거시적 안정화와 미시적 구조조정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단행한 한국 경제는 1986-88년 ‘3저 호황’ 이후 시대착오적 성장을 구가한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재발한 경제위기 속에서 김영삼 정부는 다시 반도체?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 등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를 추진함으로써 고정자본 투자의 급증과 이윤율의 급락을 초래하고, 이는 결국 1997-98년 경제위기 및 외환위기로 귀결된다.
이전 집권세력을 지역 패권주의와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으며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는 정리해고제 수용,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집단소송제 도입 등 김영삼 정부가 IMF와 맺은 협약에는 없었던 내용을 추가적으로 승인하였다. 또한 비상대권을 활용하여 의회정치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국난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호소하며 대중적 저항을 미연에 봉쇄했다. 김대중 정부는 취약한 지지기반을 보충하기 위해 보수주의 지역정당과 야합하는 한편 정책개혁의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386세대와 진보적 지식인, NGO를 동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과 정리해고제 및 파견근로제를 교환하고 변형근로제를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민주노총은 구조조정을 통한 대량실업(정리해고)의 물결 속에서 노동의 신축화로서 실업의 조직화(비정규직화)를 사실상 차악으로 선택함으로써 노동자계급 내부의 거대한 분할을 자초한다. 또한 이른바 ‘재벌개혁’과 ‘생산적 복지’의 미망 속에서 시민운동과 풀뿌리운동이 정치적 행정적 NGO로 변질되고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적 지지 속에서 통일운동이 우경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연대 투쟁은 급속히 이완되었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사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진보정당 건설과 선거 참여 및 의회 진출로 그 의미가 쇠퇴해온 정치세력화 흐름은 1997년 대선 이후 민주노총의 공식 결의에 따라 2000년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일단락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회운동 전반의 변모는 현존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전략적 침로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던 1990년대 사회운동의 위기가 한층 심화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 사회운동의 대응은 두 가지 층위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 우선 IMF-DJ 체제 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과학적 비판적 인식의 확보를 통해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회운동의 통합적 대응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보다 심층적으로는 과학적?비판적이자 혁명적인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운동의 융합의 위기가 나타나는 속에서 사회운동의 사상 이념 및 노선을 재건하고 혁신하는 노력이 요청되었다.
이에 ‘민주적 계급적 사회운동’을 표방하며 출범한 사회진보연대는 “계급운동의 대중적 풍부화와 대중운동의 계급적 급진화”라는 테제에 입각하여 노동자운동의 다양한 요소들 및 민중운동의 다양한 부문들, 그리고 대중운동의 다양한 형태들이 상호 교통하고 연대함으로써 급진화되는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사회진보연대는 금융세계화를 촉진하는 초민족적 제도와 기구 또는 지배계급의 정책들에 맞선 국제적 국내적 투쟁을 적극 제기하는 한편, 노동의 궁핍화와 불안전화에 맞서 대중 저항 주체를 형성하고 페미니즘과 평화주의와 같은 새로운 이념적 요소를 사회운동 속에서 접합하기 위한 노력들을 다각도로 펼쳐나갔다. 나아가 노동자운동의 두 가지 주요한 실존 형태로서 노동조합과 정당 운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사회경제적 노조주의와 정치적 노조주의 양자 모두와 대별되는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정립해 나갔다.
신자유주의 비판이라는 전술적 계기 속에서 사회운동의 전략적 혁신을 도모하는 시도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사회진보연대의 문제설정은 무엇보다 2002년 대선을 전후로 한 전술 방침 수립과 전국민중연대의 건설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쟁점을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정당 형태의 모순에 대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맹목을 반성하려는 사회진보연대의 시도는 정당 지향적 운동세력 전반에 대해 쟁점을 형성했다.

2002년 대선과 전선재편의 문제의식

사회진보연대는 2002년 초반 ‘정치세력화인가 전선재편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당시 민주노동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세력화 흐름을 비판하고, 상대화하고자 했다. 우선 사회진보연대는 대선 대응 방향과 관련하여,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을 경과하면서 사회운동 내부의 노선 분화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각각의 요구를 정당을 매개로 절충하고 조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대중운동의 장을 확장시키고 계급적 대중운동의 연대질서를 구축하는 과제에 복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즉 정치세력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조직을 포괄하는 전선의 재편이나 또는 대중운동의 쇄신이 전국적 차원의 응집력 있는 전선 운동체의 건설과 지역차원에서 정치활동의 복원의 전제 조건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전국민중연대의 건설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한편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민중운동의 분열을 야기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을 막고 민중투쟁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적 재편을 분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되도록’ 대선공동투쟁본부-노동해방대선실천단 결성을 주도하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이미 허구적 코포러티즘을 수용하면서 실리주의에 경도된 민주노총의 내부적 개혁 노력 없이 단순히 배타적 지지 방침에 입각해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치 방침을 협소화하는 ‘우파적’ 흐름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 주류의 사민주의 또는 민족주의 노선에 대당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주의 또는 계급적 좌파의 분별 정립(민주노동당 외부의 독자 정당 건설)을 통한 대선 대응이라는 ‘좌파적’ 주장을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사회진보연대는 대선 대응 과정에서 실제로 활동가 수준의 좌파 통합(활동가 정치조직 결성 흐름)을 지지하면서도 민중운동진영의 단일한 대응(민중경선-민중후보-공동 행동강령)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한편으로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 고수와 다른 한편으로 좌파 진영의 독자 정당 건설론 또는 사실상 선거 대응 무용론에 다름 아닌 ‘대중투쟁 돌파론’에 가로 막혀 좌초하게 된다. 노조의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제출하지 못하고 그것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수동적 지지로 대체하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을 조합원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문제로만 접근하는 좌파적 시각은 민주노동당에 대당하는 별도의 정당을 건설하려는 경향이 잠복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고 대선을 매개로 정치투쟁과 대중투쟁을 결합함으로써 향후 민중운동의 정치적 조직적 전망을 수렴한다.’는 사회진보연대의 구상은 잠정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아울러 활동가 수준의 좌파 통합 흐름 역시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중도반단하고 만다.
사회진보연대는 이와 같은 뼈아픈 실패를 반성하면서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여 민중운동이 새롭게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할 것인가 아니면, 각 정치세력의 자폐적인 폐쇄회로 속에서 갇혀 민중운동 공도동망의 길을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며 전국민중연대(준)에 능동적으로 임할 것을 주장한다. 아울러 사회진보연대 스스로도 대선 방침 실패를 계기로 내적인 한계를 절감하며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형성이라는 입장을 더욱 발본화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노동자연합 사상 및 계급동맹 전략으로서 민중연합 노선

이와 같은 2002년 당시 전술 방침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은 당면 정세에 대한 판단 차이와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2002년 활동가 정치 조직 결성 흐름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표방하는 여러 좌파 세력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우선 사회진보연대는 기왕의 신자유주의 비판을 자본주의의 위기론과 결합하여 이행의 객관적 요소에 대한 마르크스적 인식을 확보하였다. 동시에 마르크스의 노동자연합 사상과 계급동맹 전략을 재해석하면서 이행의 주체적 요소에 대한 사고의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마르크스가 증명한대로 자본주의는 위기와 붕괴의 메커니즘을 내포한다. 화폐의 자본으로의 변형과 노동력의 상품화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적합한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출현시킨다. 기계제대공업 아래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 실현되고, 사회적 기술적 분업을 통해 집합노동자가 형성되는 동시에 그 내부에서 육체노동자와 지식노동자가 분할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이윤의 형태로 사적으로 영유하는 계급사회로서,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이 노동력가치로부터 괴리, 지체되는 경향과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노동의 악순환을 고유한 특성으로 한다. 이러한 자본가의 이윤 동기는 생산력의 모순적 발전으로서 노동절약적이고 자본소비적인 편향적 기술진보를 추동하고 이는 결국 자본생산성의 저하(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윤율 저하를 초래한다. 자본축적의 한계를 의미하는 이윤율 하락은 자본축적의 일반적 법칙의 두 가지 결과로서 자본의 과잉(금융화)과 노동의 과잉(궁핍화), 즉 ‘착취와 억압의 증대’를 야기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착취와 억압의 최저한도’를 토대로 하는 이행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변혁과 함께 노동자연합에 의한 개인적, 사회적 소유의 재건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연합을 ‘공동체의 사회적 생산수단으로 노동하고 또 수많은 개인들의 노동력이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지출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또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개인들의 연합’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소유란 ‘생산관계의 법적 표현’일 따름이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모순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변혁과 함께 가치형태와 화폐형태, 특히 임금형태의 사멸이 필요하다. 현존사회주의에서 노동자 통제 없는 국유화, 계획화는 개인적 소유 없는 사회적 소유라는 결함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가치형태와 화폐형태, 특히 임금형태를 재생산했다는 점에서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국가는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에서 다양한 기능을 갖는 장치들의 조합으로서, 억압적 장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치, 경제적 장치 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재생산에서 각자 고유한 가능을 수행한다. 동시에 이 장치들은 ‘국가기계’로 조합되어 계급투쟁에서 지배계급이 행사하는 폭력의 최악의 형태를 권리, 법, 규범의 형태로 변환함으로써 폭력을 구조화한다. 따라서 노동자연합은 부르주아의 계급적 착취와 억압을 포괄하는 계급지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배형태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지배형태는 국가기계의 핵심으로서 억압적 국가장치의 파괴와 모든 국가장치들 내부에서 지배와 종속의 형태들의 파괴를 의미한다. 그것은 다양한 장치들 사이의 분업의 형태의 파괴, 가령 행정부와 입법부의 분리, 노동과 교육의 분리, 정치와 문화의 분리,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리 등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의 파괴는 국가의 ‘소멸’, 즉 대중의 창의력에 조응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기초 위에서 ‘비국가들로서의 국가’와 대중의 관계를 새롭게 확립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형태에서 노동자통제와 결합된 국유화, 통치형태에서 공장평의회와 지역평의회의 대표자로 구성된 전국평의회(소비에트), 그리고 이데올로기형태에서 ‘문화혁명’이라고 부른 지속적 투쟁 등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폭력’ 또는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합법적 이행’이라는 문제는 절대적, 필연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세력관계, 즉 정세의 문제로서, 따라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에게 유리한 세력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부르주아 계급독재의 대중적 토대를 침식할 수 있는 광범위한 동맹세력을 결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행을 예비하는 노동자운동은 노동시장, 노동과정, 노동력재생산의 불안전화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자 대중의 분할 관리에 맞서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계급 대중의 ‘계급동맹’을 구현하고 대중운동 내의 능동적 분파 사이의 연대를 실현하는 방안을 핵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정당을 계급투쟁의 최고로 발전된 형태이자 중심으로 간주하는 통념은 이러한 과정이 정당을 매개로 보증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마르크주의 운동의 정당들은 계급투쟁으로부터 체질적으로 면역된 것이 아니며, 심지어 이행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투쟁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역사적 사회주의 운동은 이행을 생산양식의 전화(실질적 사회화)로 파악하는데 실패했고, 도리어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국가(당)에 의한 계획화를 ‘사회주의 생산양식’으로 규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행의 주체에 대한 사고가 사라지고, 기존에 존재하던 국가를 변혁하고 노동자의 자기통치 기관을 형성함으로써 노동자연합의 정치적 주도권을 강화한다는 사고도 사라졌다. 따라서 사회진보연대는 국가의 변혁과 이행의 주체로서의 노동자연합의 복원, 노동자대중의 능동적 활동을 위한 객관적 조건의 창출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 것이다.

사회운동 정당론

나아가 사회진보연대는 정당운동에 대한 역사적 반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중연합 노선을 사회운동 정당론으로 구체화했다. 전통적으로 정당을 지향하는 노동자운동은 의회정당을 모델로 설정함으로써 대중운동에 대한 정당의 우위를 확립하고 선거를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한편, 군사적 서열조직을 모델로 수직적 분할을 확립하여 기층당원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분파주의적’ 행동으로 간주하고 이를 규제한다. 이에 따라 이론과 정치의 관계, 정당과 대중운동의 관계, 지도부와 기층당원의 관계가 부르주아적인 형태로 변질, 재생산되며, 그 결과 계급투쟁의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소멸하고 정당은 대중운동과 괴리된다.
그러나 마르크스, 심지어 레닌의 사상에서 정당과 정당의 내부적 통일성은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정당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계급투쟁에 봉사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은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해방이라는 명제를 항상 옹호하며, 대중운동 내부의 능동적 분파들은 ‘계급투쟁의 분석자’이자 ‘사회운동의 실험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운동 정당론은 ‘노동자계급의 객관적 이익을 표현하는 의식성의 최고 형태’로서 정당이라는 관념을 기각하고, 대신 정당이 사회운동의 하나의 주체이며 정당은 사회운동을 지도하는 ‘전위’(vanguard)가 아니라 사회운동을 지지하고 심지어 봉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마르크스 자신이 행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당에 대립하는 특수한 당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실천적으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당의 가장 단호하고 언제나 추동적인 일부다. 그들은 이론적으로 다른 노동자대중에 앞서 노동자운동의 조건, 경과, 보편적 결과에 대한 인식을 갖는다.”
이와 함께 사회진보연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보정당 운동이 1980년대 민중운동의 ‘부정적’ 수렴점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정당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주류화된 대중정당과 선거정치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했다. 노동자운동의 요구는 의회정치, 즉 정당을 매개로 한 계급타협과 임금정책, 사회정책으로 부정적으로 수렴되며, 국가는 기술관료적 지식을 통해 대중을 수동적으로 예속시킨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는 정당정치의 안정성을 크게 침식시키며, 한편으로는 인민주의적 정치기법과 기술관료적 NGO의 득세를 향한 길을 내주었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현재의 제도화된 진보정당의 내적 모순 즉 선거정당, 지배정당으로의 경향과 사회운동으로의 경향에 작용해서 후자를 강화시킴으로써 사회운동에 복무하는 정당으로 변모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는 현재의 주류화된 노동조합의 내적 모순, 즉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의 기술관료적 경향과 사회운동적 경향에 작용해서 후자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의 기관으로 개조한다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쌍을 이룬다.
나아가 현재 한국의 주요 운동조직이 진보정당에 대한 공식적 지지방침을 결정하며 인적, 물질적 지원관계를 형성하고,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반영하여 운동조직으로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회진보연대가 좀 더 엄밀한 평가와 실천적인 개입지점을 모색할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즉 사회진보연대는 정당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도 현실 운동에서의 실천적 계기점을 찾고자 했고, 이를 ‘정당의 사회운동적 경향’과 결합하자는 말로 표현하고자 했다. 즉 앞서 제기한 객관적 조건에서 대중운동을 토대로 한 진보정당의 ‘부르주아 정당화’(그리고 정당의 위기 메커니즘의 공유)가 객관적 경향이라면, 그에 반경향을 창출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정당의 사회운동적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 한편으로 선거정치는 대중운동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분할하려는 경향을 낳는다. 사회운동을 지향하는 정당은 대중운동의 통합적 발전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운동적 정당은 자신의 지역적 토대에 주목해야 한다. 산별협상이나 사회협약, 이를 위한 노동조합 활동의 중앙집중화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운동은 지역, 현장 수준의 공동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사회운동 정당은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쌍을 이루며, 지역, 현장 수준의 대중운동의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적 쟁점

그렇다면 정당운동과 민중연대 투쟁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은 현재 사회운동의 상황에 비춰볼 때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가.
먼저 전국민중연대의 해소와 한국진보연대의 출범은 민중연합 또는 통일전선과 관련하여 중요한 쟁점을 내포한다. 한국진보연대는 논란 끝에 반쪽짜리로 출범한 이후 민중운동 내에서 합력을 창출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시민운동 진영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지난 대선 시기부터 시민운동 진영과 함께 ‘반이명박’ 캠페인에 가세한데 이어 총선과 ‘촛불집회’(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경과하며 민생민주국민회의(준)를 결성한 상태다. 이러한 한국진보연대의 행보는 ‘반이명박 전선’이라는 정세 인식의 오류와 함께 ‘비판적 지지’라는 구래의 관념이 투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민중연합이란 계급동맹의 관점에 입각하여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부분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전개하는 투쟁, 즉 노동자대중과 노동자, 민중, 빈민 계급의 단결과 동맹 속에서 프티 부르주아,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일부까지도 분할, 견인하는 투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정치조직 간의 계약, 즉 정당들 간의 선거 제휴와 같은 관념에서 유래하는 통일전선 또는 계급연합의 관념과 구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의 만성적 위기에 대해 살펴보자.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산별노조로의 전환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에 매진해왔다. 그러나 산별교섭은 현재까지 난항을 겪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 이후 분열하여 사실상 배타적 지지 방침에 입각한 정치세력화 운동은 한 순환을 마감한 상태다.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허구적 코포러티즘’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자운동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했고, 따라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에 대한 좌파적 대안 역시 부재한 상황이다.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되어온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이어 2003년 변형근로제를 수용함으로써 사실상 노동신축화로 귀결되었다. 노동신축화가 심화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는 점차 확대되었고,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일상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대선 실패 및 분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공식적 결의와 지원에 기반을 둔 노동자정당인 동시에 다양한 정파들이 공존하는 일종의 ‘정치연합’으로서 성격이 공존해왔다. 민주노총의 공식적 결의와 지원은 정당이 ‘정치계급’으로 자립화되는 것을 구속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나, 역으로 민주노총 활동이 빈곤해질 경우 정당의 무기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정파들의 연합은 민주노총의 공식적 지원이라는 토대 위에서 정파세력 간에 경쟁과 협력의 계기가 될 수 있으나, 역시 역으로는 정파연합의 붕괴는 민주노총의 분할로 이어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7년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는 그동안 누적되어온 민주노총 운동의의 무기력과 정파 간의 갈등이 파괴적 양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출범에 이어 계급정당 또는 사회주의정당을 추진하는 흐름이 가시화되면서 궁극적으로는 민주노총의 분할이라는 사태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정당운동을 둘러싼 세력 구도, 즉 •민주노동당 자주파와 민주노총 국민파의 연합 •(민주노동당 평등파→)진보신당과 민주노총 중앙파의 연합 •계급정당 또는 사회주의정당 지향 세력과 민주노총 현장파의 연합이라는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사회운동의 분열과 침체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운동에 봉사하는 정당’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면, 정당의 분열은 사회운동,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조합의 분열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주노총 운동, 특히 선거를 둘러싼 정파들 간의 허구적 대립을 축소 지양하고 민주노총의 개조와 통합을 추구함으로써 역으로 정당들의 통일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의 가시화되며 세계적 차원의 대불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운동의 단결과 통합을 촉구하고 매개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향후 사회진보연대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을 필두로 민주노총과 정당운동을 내부적으로 혁신하려는 여러 흐름들의 공동 행보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통합적 사회운동체로서 사회진보연대는 반전ㆍ반빈곤 운동이나 평화ㆍ인권ㆍ생태운동 등 다양한 운동 흐름들이 전국적ㆍ지역적으로 소통ㆍ연대할 수 있는 틀거리를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의 연합을 강화해야 한다.
주제어
정치 이론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