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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3-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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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위기에 맞서는 노동자 운동

2009년 세계사회포럼 참가 후기

이창근 | 민주노총 국제국장
벨렝(Belem) 세계사회포럼 단상

세계사회포럼은 반(反)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성과로 지난 2001년 처음으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이후, 세계사회운동 세력들의 소통과 연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2007년 1월 케냐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은 그 동안 포럼 내부에 잠재해 있던 문제들을 아주 심각한 형태로 드러내면서, 포럼의 정치적 전망과 그것의 의미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착취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할 세계사회포럼에 케냐의 풀뿌리 활동가와 도시 빈민들은 높은 등록비와 조직위원회의 배타적 태도로 참가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였다. 이에 대한 불만은 결국 현장에서 세계사회포럼을 강력히 비판하는 직접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더욱이 거대한 국제시민단체와 북반구의 후원을 받는 현지 NGO들은 막강한 재원을 바탕으로 세계사회포럼의 전체적인 프로그램과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장과 대중운동에 근거한 세계사회포럼의 확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이 과연 아프리카 사회운동을 진전시키고, 세계사회포럼 운동 그 자체에 역동성을 부여했는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나아가 “세계사회포럼이 소통의 ‘공간’(space)이냐 ‘운동으로서의 과정’(process as a movement)이냐”라는 그것의 미래를 둘러싼 전략 토론은 제자리를 맴돌면서, 세계사회포럼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2008년 1월 조직된 ‘세계사회포럼 1.26 세계 행동의 날’은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세계사회포럼을 어떻게 다시 활성화시킬 것인가는 2009년 벨렝 세계사회포럼을 앞두고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였다.
벨렝(Belem)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세계사회포럼이 보다 적극적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사실 아마존 지역인 브라질 벨렝이 세계사회포럼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환경’과 ‘원주민 권리’라는 의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계사회포럼을 포르투알레그레 이후 다시 브라질로 유치하기 위한 브라질 단체들의 의도가 개입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벨렝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위기’라는 화두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경제/금융위기, 생태위기,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나아가 ‘문명의 위기’ 등 저마다의 관점에서 위기를 말하고, 그 해법을 찾는데 골몰했다. 특히 각 부문 네트워크들 사이의 공동 토론을 통해, 위기에 대한 세계적 해법을 토론하고 공동 행동 계획을 도출하고자 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세계적 위기가 터지자마자 지배계급들은 G20 정상회담 개최 등 신속한 대응을 모색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뭐했느냐’며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의 느린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긴급한 국제 공동행동, 상호지지/지원 투쟁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특히 3월 28일 G20 정상회담, 12월 UN 기후변화회의 대응 국제공동행동은 대다수 참가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다만,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을 문제의 심각성과 긴급성에 비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벨렝 세계사회포럼은 세계 사회운동들의 공간이자 네트워크로서 자신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한편 2007년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결성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이번 벨렝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조직하여 세계적 위기 속에서 노동자 운동의 대응을 모색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그동안 전통적인 노동조합 운동에서 배제되거나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았던 노동자, 즉 비공식 부문 노동자, 이주노동자, 가내 노동자 등을 조직하고, 세계적 연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 프랑스노동총동맹(CGT), 미국의 ‘세계적 정의를 위한 풀뿌리운동’(Grassroots Global Justice) 등 북반구 조직들과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남아공노총(COSATU), 브라질노총(CUT), 네팔노총(GEFONT), 인도의 새로운노동조합계획(New Trade Union Initiative, NTUI) 등 남반구 조직들이 참가하였다. 동시에 국제금속노련(IMF),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등 국제조직들도 참가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주관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핵심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첫째는 공식/비공식 부문을 망라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벨렝에서 열린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총회에서 제안된 선언은 그 문제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생산 노동뿐만 아니라 재생산 노동까지, 공식부문 뿐만 아니라 비공식부문 노동까지, 종속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자율적인 노동까지, 노동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갱신하고 확장한다.” 특히 비공식 부문 노동자의 포괄을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단순히 주변화된 빈곤층 혹은 룸펜-프롤레타리아트, 혹은 잘해야 사회복지가 필요한 대상이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희생양으로 간주하기보다, 변화하는 세계적 노동시장에 통합된 일 부문으로 인정하여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조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두 번째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계를 넘어선 수평적이고 평등한 세계적 노동자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남반구뿐만 아니라, 북반구 노동자와 노동시장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남반구와 북반구 노동자들 간의 연대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능한 조건을 창출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시켜낼 때 현재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또한 전통적 혹은 공식적 국제노동조합운동이 북반구 노동조합의 강력한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상호간에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 의미의 제3세계주의 혹은 남-남 노동자 연대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세계사회포럼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탄생하였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그에 맞선 대항의 정치적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탄생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사회포럼의 긍정성을 존중하고, 노동자 운동의 미래는 세계적 정의를 위한 사회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찾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다. 또한 세계사회포럼이 NGO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운동 혹은 대중운동 중심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쟁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의 두 가지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출발하였다. 하나는 공식/비공식 부문을 넘어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건설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남반구/북반구 노동자의 평등하고도 수평적 연대를 존중하는 문제다. 이는 벨렝에서 제안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성명서에 잘 나타나 있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공동의 이해, 특히 북반구 노동운동과 신흥 경제권 노동운동간의 공동 이해에 관한 솔직한 토론을 통해 세계적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는데 전념한다.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는 또한 공식, 비공식 경제를 망라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 및 그 조직들과의 연대를 건설하는데 전념한다.”
위 두 가지 문제의식 중에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해야 한다는 것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원칙적인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전통적 의미의 노동조합운동을 개혁하는 수준에서 위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전통적 노동조합운동의 급진적 전환을 주장하는 것인지는 의견 차이가 있다. 또한 대륙별, 국가별 정치경제적 상황의 차이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기니(Guinee)의 경우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50% 이상이고, 남아프리카의 경우에도 30-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이 북반구 국가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반구 국가들에서는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화’에 맞선 대응이 주요한 의제인데, 이를 넘어서 비공식부문 노동자 조직화까지 확장되기에는 아직 토론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평적이고 평등한 남-북 노동자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점들이 존재했다. 실제로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조직한 ‘새로운 투쟁, 새로운 동맹 - 세계적 노동헌장을 위하여’라는 토론회에서, 남아공노총(COSATU)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대응의 예를 들면서, 북반구 노동자들의 ‘민족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남북 노동자연대의 현실적 곤란함을 지적하였다. 북반구 노동조합들이 ‘민족주의적’ 입장을 버리지 않는 한, 남북 노동자연대는 공허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피터 워터만(Peter Waterman)은 세계적 위기 시대에 과연 남반구와 북반구라는 문제 설정과 남반구에 국한된 노동자 연대가 여전히 정치적 유의미성을 지니는지 의문시된다면서, 지금이야 말로 그 경계를 넘어선 세계적 노동자 연대의 실현이 가능하고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참가자와 조직들 사이에 이 쟁점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쟁과 토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속가능한 세계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각국의 투쟁과 실천을 세계적 수준에서 조정해낼 수 있는가, 이미 존재하는 다른 노동자 혹은 사회운동 네트워크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지극히 실천적인 쟁점이 남아 있다. 네트워크가 건설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참가자들의 적극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일정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필수적 요소인 ‘공감대’를 넘어선 적극적인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또한 참가 조직들 간의 소통과 공동행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 내부를 들여다보면, 적극적 행위자는 이탈리아 사회운동체인 ‘이탈리아를 변혁하자(Transform! Italia)’,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세계적노동전략(Global labor Strategy) 등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 네트워크가 말 그대로 보다 공식/비공식 부문을 포괄하는 세계적 노동자 연대 네트워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위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의 연계 혹은 포섭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위기와 노동자 투쟁

‘노동자와 세계화’ 네트워크가 주관한 “세계적 위기 속의 노동자”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유하면서 이를 어떻게 지지/지원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였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역사상 처음으로 8개 노총이 공동으로 1월 29일 공동파업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 투쟁에 약 250십만 명이 참가하였다고 보고했다. 주요한 요구는 임금인상, 노동권 보장, 노동조건 개선, 퇴직노동자 보호,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 확대, 노동자를 위한 저비용 주택 공급 확대 등이었다. 또한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산별교섭 체계를 개악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시도에 맞서 작년 12월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였다. 브라질노총(CUT) 역시 심각한 위기 속에서 임금 삭감 반대, 빈곤층에 대한 지원 확대, 사회보장지출 확대,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G20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고 공유했다.
참가자들은 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스템이 실패했는가를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논리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공유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 자동차 제조업체 등에 대한 구제금융은 ‘실패한 모델’의 지속을 위한 지원에 불과하며, 위기의 해결이 아니라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효과만을 가져올 것이라 비판하였다. 진정한 위기 극복 정책은 ‘자본만을 살리는 구제금융정책’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저임금을 포함하여 임금을 인상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것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경제위기 극복은 환경, 에너지, 식량 등 총체적인 위기에 맞서는 계획과 긴밀히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좋은 일자리 창출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일자리,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일자리 등 환경 친화적 일자리 창출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현 위기의 근원인 국제금융자본 규제 및 국제금융질서 개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Tobin Tax)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급진적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런 점에서 3월 28일로 제안된 G20정상회담에 맞선 국제공동행동 조직화가 다시 한 번 강조되었다.
세계적 위기 국면은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해왔던 요구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며, 보다 급진적인 요구까지도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은행 국유화’에 관한 최근의 논쟁과 흐름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독일 노동운동가가 자국 상황을 두고 “자본은 마르크스를 논하고 있는데, 좌파는 케인즈를 논하고 있다”고 말했듯이, 현재 노동운동이 ‘사회 타협적 노동조합운동’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현 국면이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운동의 대응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주제어
노동 국제 이론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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