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동조합의 희망을 만들고 있는가?
지역이 나에게 준 경험들
나는 2013년부터 3년간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에서 활동했으며, 2016년 2월부터 2024년 2월까지는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본부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움에서 교육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내부에 굉장히 다양한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조직이다. 일하는 업종도 공공, 운수, 사회서비스 분야에 고루 분포하며 연령 역시 10대에서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고용형태 측면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으며, 살아온 삶의 경험 역시 매우 다채롭다.
현장의 노동자들과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지역에서 활동을 통해 나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노동의 현실을 더 깊게 마주할 수 있었다. 단결과 연대의 힘으로 승리하는 경험도 하며 노동조합이 가지는 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충북지역 운동사는 ‘연대사’로 요약할 수 있다는 지역 선배 활동가의 말처럼, 그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자신의 노동조합을 지키고 조금 더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간부, 단결과 연대의 힘을 믿으며 노동조합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고뇌하고 책임감 있게 활동하는 간부가 여전히 많다는 것 역시 경험했다.
물론 노동자들이 서로 갈등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조합을 탈퇴하기도 하고, 노동조합이 해 준 것이 뭐가 있냐며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도 하고 좌절도 했다. 물론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활동가로서 현장과의 적정한 거리를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으니 이 역시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이었다.
지역에서 사회진보연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청주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막막함과 두려움은 함께 지역에 있던 동지들, 이후에 계속 충북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해보겠다며 내려온 동지들 덕분에 잘 극복할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활동 과정에서 이견이 존재하기도 했고, 갈등도 있었다. 노동조합 활동 속에서 오히려 활동의 의지를 점점 잃어가며 힘들어하던 동지들을 보며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답답함과 속상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충북지역 운동에서 전망과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 같이 노력하고, 함께 학습하고 토론하며 엄혹한 정세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우리의 길을 만들어가고자 고민했던 과정은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본 노동조합의 지역 활동
공공운수노조 지역 간부로 활동한다는 것은 공공운수노조가 가진 다양성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은 공공운수노조가 가진 다양성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모아내며 서로 간의 연결을 만들어가야 하는 공간이다.
최근 노동조합 활동에서 현장의 대표자 및 간부들이 많이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가 중앙과 현장이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괴리를 메워주고 조합원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역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지역은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서 서로 간의 관계를 만들고 연대를 조직하는 데 큰 장점이 있다.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업장이 직면한 의제들의 공통점을 모아내서 서로를 연결하고 공동의 사업을 만들어내기도 쉽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아래로부터 힘을 모아내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은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긴요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예전보다 회의나 모임이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온라인은 여전히 오프라인 만남에 비해 서로 공감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운동은 자신의 인식을 계속 확장하려는 노력을 놓칠 경우, 지역이라는 공간에 갇힐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지역 활동가가 모든 영역의 전문가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특히 지역본부 상근활동가가 몇 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명만 배치되어 있어 더 어려움이 존재했다. 노동조합이 다루는 다양한 쟁점과 현안에 대해 간단하게는 파악할 수 있으나, 깊이 있게 모든 것을 파악하고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업화하는 것은 또 다른 에너지와 역량이 필요하다. 결국 활동가 개인 또는 조직이 그 시기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심으로 집중과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활동가와 조직이 정세에 따라 집중과 선택을 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제를 중앙과 지역이 체계적으로 함께 가져가지 못하고, 자원과 역량을 중앙과 지역이 그리고 지역 내에서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가 잘 정리되지 못할 경우, 지역 입장에서는 한정된 역량 속에서 다른 업무와 현안 투쟁에 밀려 집중해야 하는 영역들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노조 중앙과 지역의 운동이 지금보다 좀 더 잘 만날 필요가 있다. 노조와 지역이 각각 적절한 역할을 담당하고, 노조 중앙이 집중하는 것과 지역의 집중점이 잘 연결되고 만날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며, 노조가 나아갈 방향을 잃지 않고 함께 발전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역을 떠나 중앙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지역의 상황과 조건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활동가가 노조 중앙에서 활동했을 때 중앙과 지역 모두의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고민의 폭을 계속 확장하려고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전체 운동의 정세와 상황에 대한 분석을 놓치기 쉽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점검하기란 쉽지 않다. 현장의 임단투 쟁점, 투쟁 과제, 소속 사업장의 현안 해결에 훨씬 더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자신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전체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으며 지역 운동이 잘 되면 전체 운동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쉽다. 물론 지역 운동이 잘 되면 전체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언제나 그러하지는 않다. 이 점을 놓치는 경우, 더욱이 자신의 시야를 지역 내로 한정 해버릴 수도 있다. 결국 노조 간부로 채용되었지만, 우리가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성장하려면 현장 또는 지역의 현안과 전체 운동의 과제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자신의 시야와 인식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노동조합의 희망을 만들고 있는가?
나는 가끔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의 활동을 되돌아본다. 나는 지금 노동조합의 희망을 만들고 있을까? 아니면 전체 노동운동의 과제는 모르겠고 자기 사업장 문제해결에만 더 집중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활동은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리는 것에만 집중되고 있지는 않을까?
노동조합 운동은 현재 많은 위기를 겪고 있다. 중앙과 현장의 괴리가 증가하고 있으며, 같은 사업장 내 직종, 세대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함께 잘 사는 것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노조 내에도 많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 지금 세계 및 국내 정세를 보면 정말 절망적이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했고, 심지어 이에 대해 반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후 국내 정치 상황은 더욱 암울해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노동운동이 정말 새로운 대안적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역에서 다양한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 자신의 사업장 일이 아님에도 헌신적으로 연대 활동을 조직했던 간부들, 다른 사업장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자 당연한 역할이라고 인식하는 간부들. 그러한 동지들을 보며 지금 시기 활동가의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0년이 넘는 충북지역 운동을 정리하고 내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지역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시야와 계획을 세우고 공공운수노조에서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절망적인 정세 속에서 그래도 여전히 노동운동이 가장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노동운동의 후퇴가 더 이어진다면, 그것이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고 엄혹한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노동조합이 당장 변화할 것으로 바라는 것은 활동가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활동가의 역할이 노동조합 운동의 방향을 만들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노동조합의 희망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지를 계속 점검하고 되돌아보면서 그렇게 활동하기 위해 애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경제, 정치, 사회, 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무엇을 위해 나는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나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계속 질문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다. 서로의 경험과 고민, 생각을 나누고 함께 토론하면서 그렇게 길을 만들어 가보자. ●